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뭔가 생각과 다르다만(ak소총이나 이지스 얘기같은 거 나올 줄 알았음...) 서점 추천도서에 있는 이유는 알 것 같다. 감탄사가 우와! 가 아니고, 천천히 오오...오오...오오오...나온다. 너무 조악시러븐 표현인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이 있으나, 약간 다른 의미에서 법과 주먹은 세트로 움직이는구나 실감난다. 헌법이란 것이 참 얄궂다. 남을 쥐어짤 때도, 국가 차원의 범죄를 정당화할 때도, 다시 일어서기 위한 준비를 할 때도, 침해될 수 없는 권리를 말하기 위해서도, 우리 나라의 인권이나 지식수준은 후지지 않다고 주장할 때도 필요하니 인간들은 대체 무엇을 만든 것인가 살짝 소름 돋는다. 몇몇 강대국이 세계에 빨대 꽂고 빨아대던 시절 약소국들의 헌법 만들기는 그냥 안쓰럽고...전체적 흐름도 흥미롭지만 언급되는 인물들의 인생이 놀라워서, 이들에 관한 책이 없나 좀 찾아봐야겠다.
일본 챕터에 나온 아주 짧은 안중근 의사 대목이 참으로 와닿는다. 최근에 식민지 시절 안중근 의사를 흉한이라고 적은 당시의 글을 봐서 괜히 서글픔 두 배. 그리고 혹시나 해서 대한제국 헌법 찾았는데, 시대를 감안해도 기분이 아주 별로라 후회막심이다. 그러길래 모르면 편한데 왜 굳이 찾아가지고...어쨌든, 무심한 독자 1도 종이 위에 쓰여진 법이 가지는 양극단의 무한한 가능성을 잠시나마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긍정적인 부분의 실현만 보고 싶다는 건 헛꿈이겠다만...


제법 두툼한 책인데도, 다 읽고 나니 이 범위를 아는데 이 책 한 권으로는 모자라는구나 생각이 든다. 각주가 워낙 많아서 실제로는 그렇게 두껍지도 않고...아시아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중국해보다 차라리 지중해에 대해 아는 게 많은 수준이라(그 지식도 변변치 않다...) 이렇게나마 기본적인 지식을 접하게 되어 다행이다. 책 끝날 때 던지는 질문이, 서두의 정화 이야기와 맞물려서 상당히 오싹하기 때문에 '우와~'하면서 덮기에 무리는 있지만. 그래도 영화를 수십 편 찍어도 모자랄 이야기들, 놀라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지나가다 언급된 정도다만 암시장 세계 랭킹에서 2014년 기준 한국이 12위인 것도 살짝 충격. Havocscope 사이트에서 리스트는 안 나오고 링크만 자꾸 빙빙 돌아서 최근 한국의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일단 가장 최근에 발표된 상위 10개국에는 안 든 것을 보니 괜히 안심. 그렇다고 저 랭킹이 이삼십 단계 떨어졌을 거란 생각도 안 들긴 해...전체적으로 한국 항구의 역사는 언급이 정말 적지만 아쉽지 않다. 실린 내용이 조금인데도 갑갑하니까...입지는 괜찮고 국력이 거지같으면 해괴한 소리나 듣는 거지...
전체 해양 무역의 역사만 해도 복잡한데, 동남아쪽의 엄청난 섬 숫자(사실 이때까지 대략이나마도 몰랐다는 게 나의 문제겠지. 저 멀리 남아공도 아니고 비행기 타면 얼마 걸리지도 않는 곳인데...) - 필리핀이 약 7000개에 인도네시아가 만 칠천여 개(지리학 전공을 택하기엔 너무나 무서운 환경이다...)에 당연히 다른 나라들도 섬이 있으니 다 합치면 대체 얼마나 될지... - 를 낀 복잡한 모양새가 가져온 여러 가지 현상을 좀 이해하려면 책을 최소 열 권은 읽어야 될 것 같다. 12부의 등대 설치를 둘러싼 현지인들과 영국, 네덜란드의 신경전에서는 착취로 가는 여정이 블랙 코메디스러워 헛웃음이 나고...그 동네 분들이 보시면 아무리 옛날 얘기라도 웃을 얘기가 아니겠다만...단물 쪽쪽 빨려는 욕망의 개고생이 있어 어쨌든 안전한 바닷길이 정비되었으니 참 여러 가지 의미로 인간사는 놀랍다.
역사가 재미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루트들은 계속 살아있고 모든 활동들이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그리고 당연히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에 늦게나마 좀 더 알고 싶다. 얼마나 더 읽고 얼마나 더 이해할지는 자신없지만...최소한 뭔가 터졌을 때 놀라지 않는 마음가짐이라도 가질 순 있겠지.


읽기 전에는 먹히는 이야기들에 대한 이론일 거라고, 어쨌든 잘 된 책이니 서점 사이트에서 잘 보이는 거라고 예상하고 보기 시작했다가 정말 놀랐다. 3장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에 전구랑 느낌표가 번갈아서 계속 뜸. 안다고 생각했던 길이 모르는 길이라 계속 자빠지는데 누가 붙잡아주는 그런 느낌이 마지막까지 계속된다. 난 왜 이 책을 이제 읽었을까? 뭐, 독자 1이 책을 빨리 읽었다고 엄청난 깨달음을 얻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더 기여할 것도 없다만...책 전체를 통으로 암기할 수 없는 것이 한이다.
모든 챕터가 다 중요하니 하나씩 토는 못 달겠고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우왕 놀라워 뿐이니까...) 일단 독서가 뇌 네트워크 구성에 물리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부터 - 볼 기회가 없으리라 생각한다만 내 뇌 네트워크 스캔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 개인의 생존부터 세상 전체 시스템까지 겨우 몇 개의 단어에 뒤흔들릴 수 있다는 것, 전혀 생각하지 못한 기후변화를 둘러싼 이야기까지 계속 빵빵 터진다. 여기 실린 것들 중에서 분명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털어보면 근본적인 부분은 이해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온 것들이 있으니 얼굴에 불도 나고. 유튜브를 보니 영어 영상은 없지만 저자들의 영상들 일부는 영어자막으로 볼 수 있어서, 몇 개라도 좀 챙겨보려 한다. 요 몇 년 안의 명절 독서 중에 제일 끝내줬고, 영어판도 없는 책이 한국에 번역된 것에 대해 원더박스 출판사에 마음의 큰 절 꾸벅...아이구 감사합니다...


시작할 때는 아리스가와 아리스 스타일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 밀실 살인이 일어나고, 주변의 법학도들을 하나씩 털면서 마지막에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 뚜껑을 여니 야쿠마루 가쿠 쪽이었다. (예상해서 맞는 게 없다...) 무고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살인범까지 사회복귀시킬 가능성도 불사하겠다던 가오루의 계획은 소설 속 내용이라도 씁쓸하다. 무고의 증명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맹목성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동력이다만...마지막에 죗값에 대한 두 사람의 모습이 완전히 갈리는 건 읽고 생각 많이 하라 내는 숙제라고 작가가 옆에서 말하는 것 같아 살짝 마음이 더 무거워진다. 법이 정해놓은 형 집행의 기준은 있지만, 그게 정말 충분한지, 죄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어째야 하는지는 바라는 답은 있어도 정답은 없으니...
더불어, 다시 시작할 수 없는 곳까지 몰아붙인 건 어른들인데, 괜찮으니 다시 시작하라고 하는 말을 어른이 꺼내는 것에 분노했던 미레이의 짧은 회상도. 괜히 어른인 나 자신의 무력함이나 무심함을 지적받는 것 같다. 과몰입이다만 반성은 해야겠지...어떻게 현업 변호사가 소설까지 쓸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다만(진짜 부럽다...), 그래서 무심한 독자의 피부에도 이리 와닿나보다.


특수청소를 하시는 분들이 내신 책들을 읽었을 때는 사람이 꽤 숙연해지니, 에세이가 아니라 소설이라면 굉장히 정적이고 무거울 것 같은데 나카야마 시치리의 책이니 그럴 일은 없다. 당장 첫 챕터인 기도와 저주 편이 너무 소름끼쳐서 - 역시 귀신보다 인간의 삐딱함이 훨씬 무섭다 - 대체 뒤는 어떻게 되려나 겁났는데, 점점 뒷표지에 쓰인 '휴먼' 비중이 커져서 다행이었다...절망과 희망에서 시라이가 재능과 열등감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괜히 가슴이 시리고...고독사라고는 해도 임종의 순간에 혼자였다는 것과 아예 그와 관계된 인간관계가 없다는 것은 다른 말이니, 특수청소가 필요한 물리적인 흔적과 더불어 타인에게 아무런 흔적을 안 남길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비중이나 호불호에 큰 차이가 있을지언정...
초반에 이오키베는 죽은 이들이 내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생각한다 말하는데, 아마 세상에 수도 없을 고독한 죽음의 애환을 이런 이야기로나마 애도하고 풀어주려 하는구나, 괜히 혼자 짐작하고 조금이나마 후련함도 느낀다. 하긴, 이것도 살아있는 사람 생각이지 간 사람들의 사연들이 소설 하나로 공양이 되겠냐마는...
이걸 읽고 나니 에세이 내셨던 분들이 얼마나 자신의 고생을 짤막하게 줄여 쓰셨는가 느껴져 더 존경스럽다. 주의할 게 얼마나 많고, 육체적으로 오는 부담이 얼마나 많은지만 쭉 써도 벽돌책을 몇 권을 내실텐데...이런 거 보면 불평 좀 덜 하고 살아야 하는데 연휴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이 마음가짐 유지될지 확신할 수 없는 나는 약한 사람...


제목이나 표지만 보고 읽어서 생각과 다른 책을 만나는 것도 재미다. 그래도 가끔은 그 차이가 너무 커서 혼란이 올 때도 있다. 백 퍼센트 자업자득이다만 갑자기 막 상상하게 되는 건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참...
제목도 여기저기서 봤고, 번역이 물 건너서도 잘 팔렸다는 정도의 사전지식만 갖고 뒤늦게 읽으며 뒷표지의 고딕소설이라는 문구에 대뜸 누가 시키지도 않는 상상이 머리 속에서 대팽창. '아마 식민지판 장화홍련이 투숙객의 앞에 나타나서, 투숙객이 추리를 하고...(여보게 그럼 고딕 소설이 아니라 추리 소설이라고 표지에 써져 있겠지...) 모스크바의 신사랑 샤이닝이 막 짬뽕이 되고...' 이런 망상하고는 비슷하지도 않은 내용이었다. 연결되는 건 장화홍련뿐...
셜리의 등장까지는 호오~ 하면서 보았는데, 설마 아무리 소설이라도, 그분이 인천에 왕림하신다는 대목이 나올 줄 몰랐으니 이름 보는 순간 잠깐 사고 정지. 어쨌든 계속 읽었고, 결말까지 하나도 예측하지 못했다. 액자소설의 내용도, 내내 주연들이 뿜는 독기가 사랑에 대한 급 깨달음으로 전환되는 결말도. 뭐, 개 같은 뭐라는 목소리가 원한을 사랑으로 바꾸길 바라는 목소리로 변했다면 좋은 결말이 맞겠지...책을 무작정 집는 이 버릇도 아마 못 고칠 것이고...


같은 소재의 영화는 추천받았다가 아직도 못 봤고, 참으로 늦게 책을 보게 되었는데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하다. 베네데타에 대한 사전 지식이 딱 두어줄 정도라, 여성 동성애에 관한 서론이 길고 당시 수녀원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가 펼쳐지니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수녀가 된 이가, 동성연인을 만들었다가 시대가 시대니만큼 지탄받았나보다'라고 추측을 했는데...뒤로 가면서 진짜 깬다. 사건 전체의 인상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건 나뿐인가...아니, 정확한 진실은 뒤안길이다만 이쪽은 권력을 이용한 장기간 성폭행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질이 더 나쁜가...
목적의 차이는 있다만, 뭔가를 얻으려고 사기를 치고 주변을 위협한 것 자체가 큰 문제인데 피의자의 성 정체성만 끝도 없이 부각되는 것이 좀 입맛이 쓰다. 베네데타에 대한 처벌이 가혹한가 아닌가에 대한 의견은 있겠다만, 저자도 말했듯 그 처벌은 성적 일탈보다는 사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니 전혀 안타깝지 않다. 그리고 신성으로 사기쳐먹는 사람이 소세지 식탐을 못 참다니...영화는 어떻게 만들었을지 궁금하기는 한데, 당장은 볼 마음이 좀 사그러든다. 아우 피로해...


냉전만 여러 사람 사상 검증으로 잡은 것이 아니니, 종교가 옵션이 아니던 때에 전향을 두 번이나 하고 안 죽었다는 건 여러모로 놀라운 일이다. 그라나다에서 살다 어릴 때 레콩키스타 때문에 지금의 모로코로 역이민가고, 외교일을 하면서 꽤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다 해적한테 납치당해서 유용할 수 있는 지식인 노예로 교황에게 상납당하고. 세례받고 글 배워서 책 쓰고, 그 와중에 로마가 작살나면서 잽싸게 고향으로 도주하는 그 파란만장함에 기대가 빵빵해져 페이지를 넘기는데...
자료가 적으면 최대한 가능성이 높은 추측을 논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추측 파트가 너무 많아서 중간에 피로해진다. 그는 아마 들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했을지도 모른다...확실한 건 저술한 책에 나오는 구절과 주변인들의 매우 적은 언급 뿐이니, 갑갑허다...이건 소개된 아민 말루프의 소설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은데 번역은 없고, 시대극을 영어로 보는 건...하아...
그래도 그 당시의 배경지식이 재미있고, 몸사려야하는 입장에서 저술할 때 얼마나 신경쓸 것이 많았는지 충분히 말해준다. 말 한 마디 잘못 썼다간 겉으로만 믿는 척 한다고 뭔 일 당할지 모르고, 기독교 최고예요 우왕 이런 거 썼다간 고향땅 진짜 못 밟을 것이고. 그런 것 치고는 꽤 과격한 한 마디를 쓰긴 했다만 저자가 추측을 꽤 길게 이야기해주니 납득. 짧게나마 그 시대에 번역이라는 걸 하는 애환도 나오고...낑낑댈 것이 뻔해도 역시 소설을 주문해야겠어...


의사도 사람이니 당연히 병에 걸린다만, 종양학과 교수가 암 치료를 받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그에 더해 전체 암의 1% 중에서 다시 1% 안에 드는 희귀암에 걸리고, 치료했는데 재발하고, 그 와중에 미국처럼 의료보험이 불안정한 곳에서 직장 의료보험으로 거의 무료치료(한 달 치료비 13만 달러인데 본인 부담금 50달러라는 게 기적 아닐까...)받는 참 여러모로 희귀한 이야기다. 뒷표지의 문구는 뭔가 오해의 소지가 있다만... "세계 최고의 암 전문의는 자신의 암을 어떻게 치료했을까?" 한 번 읊고 1분 광고 때린 뒤에, 바로 그 특효약은 매일 꾸준히 섭취한 ○○○...라고 말할 것 같은데 그런 걸 기대하고 보면 대실망할 테니까.
치료 중의 고통과 고뇌를 다 논하면 벽돌책 될 수도 있었을텐데 300페이지도 안 되며 치료의 기본 과정을 이미 다 숙지한 사람이 지식과 직접 경험을 섞어서 이야기해주어 정보 가치도 높다. 많이 힘든 결정이었겠지만, 자신의 얼굴 변형을 보여주는 사진 페이지로 링크되는 Qr코드도 실려있어서, 얼굴 상실 챕터의 글이 더 피부에 와 닿는다. "암은 잔인하고, 아프고, 상처 입히고, 변화시키고, 흔적과 흉터를 남깁니다." 한 챕터를 할애해서 희망과 긍정을 논하면서도, 생존 뿐 아니라 삶의 질, 통증 완화 등 개개인의 다양한 기대가 있다는 것도 분명히 말한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이 속시원해서 더 읽기 잘 했다고 생각한다.
"저에게 질병은 실존적 의미도 없고, 중요성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시험을 당하고 도전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잔인합니다."
"암이든 심장 질환이든 자가 면역 질환이든 어떤 환자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성장시키거나 증명할 기회를 달라고 청하지 않았습니다."
"목표는 깨달음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가족과 의사의 지원을 받는 환자들이 암과의 싸움에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바로 살아남는 것입니다."
병 걸리면 아프고 심해지면 죽을 뿐이니, 의미 같은 게 있겠는가. 덮기 전 치료 연표를 보면서, 그저 치료기술의 발전이 더 많은 사람들을 낫게 해주길 기원할 뿐이다.


중독을 다룬 모든 매체는 기본적으로 보고 나서 기분이 좋을 일이 없다. 일상이 행복하고 충만한 사람이 자발적으로 중독의 길을 갈 리는 없으니까. 그래도 이 사람들은 극복을 했으니까 이 책을 썼으리라는 희망을 괜히 가진다. 어리석은 기대로 끝날 때도 있지만...
우울, 알콜 중독, 도피성 노숙생활에 입원 알콜치료까지 정말 살벌하고 지저분하고 이게 무슨 짓인가 싶은 이야기가 고전적인 둥근 그림체로 펼쳐지니 더 지옥같다. (어느 정도 시대가 겹쳐서 그런지, 옛날 데즈카 오사무 책 보다가 식껍한 기억이 갑자기 훅 올라옴) 당장 초반의 10분의 1도 안 지났는데 '이러고 인간의 몸이 버티는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정말 2~3페이지마다 '미치겠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중반에 참 실화같지 않은 스카웃으로 배관공 일을 하기 시작했을 때 안도하는 것도 잠시, 도저히 맨정신이라 믿을 수 없는 동료들 대체 뭔가;;
1권 말에서 간단히 다뤄졌다가 2권 전체를 통해 나오는 입원 치료기도, 그림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글보다 더 강력한 부분이 정말 많다. 웃기긴 웃긴다. 작가 본인이 코믹하게 다루려고 한걸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으니까(왜 본문 시작전이 아니라, 책 앞날개도 아니고 뒷날개에 들어있는지 모르겠다. 다 읽고나서 서문을 보다니...), 이 블랙코메디같은 세상을 웃으면서 감상해야 하는데...절망과 소름과 웃음이 동시에 밀려오니까 얼굴 근육이 안 움직인다. 인간은 정말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걸 느끼는 게 가능하구나 쓰잘데기 없는 딴 생각이나 잠깐 하고...
"언젠가는 술을 조절하면서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모든 병적인 음주의 완고한 강박관념" "현실에 대한 불안감, 공허감을 부정하기 위해 도취감을 갈구하는 것" "술이 없이 살아갈 때 생기는 마음의 공동을 무엇으로 메울지 생각해야 한다"등 작가가 병원에서 배운 각종 가르침들을 보면 술 아니어도 모든 의존증에 다 해당되는 이야기가 뼈를 친다. 퇴원 후 말년 식도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단주했고, 이 작품으로 상도 받았으니 그래도 굉장히 긍정적인 결말이다. 학교 도서관에 비치하면 학생들에게 평생 술에 손을 못 대게 하는 공포를 안겨줄 것 같은데 아쉽게 절판. 그리고 짤막한 언급이다만 데즈카 오사무의 원고를 찢고(!) 작가에게 무릎치기를 날렸다는 편집장...세상은 안 좋은 의미로도 정말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