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전설의 명화(?) 쇼퍼홀릭에서 아일라 피셔가 말했었다. 손이 있으니까 장갑을 사야 된다고...열대지방에 사는 것도 아니고 건강 문제도 없다면, 양말은 진정 실용품이 아닌가. 양말 88켤레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뭔가 숫자도 길하게 느껴지는 콜렉션 숫자다. 책 88권이랑 비교하면 공간 잡아먹는 양도 얼마나 적은가. 그리고...이러니 저러니 하지만, 사랑에는 논리가 필요없지 않던가!
'양말 이야기를 빙자해 인생사의 희로애락을 털어놓는 대나무 숲'이라는 소개대로, 내 맘대로 끌 수도 없는 덕심의 불길과 노동과 눈물이 꼭꼭 뭉쳐있어 줄치면서 읽고 싶다. 카테고리 상 같은 덕심이라도, 코드가 조금만 다르면 공감하기 어려운데 간만에 영혼이 공명한다 우오오오오!
덕은 아니지만 양말 고르기는 좋아하는 편이라, 양질의 브랜드들 소개에 기쁨 두 배다. 트뤼도의 양말들도 뒤늦게 보는데, 끝내주는 양말 위의 활짝 웃는 얼굴에 살짝 씁쓰무리하다. 이런 미래를 모르던 시절의 해맑은 그대여...
2018년에 나온 책이니 참 늦은 감상이지만, 저자분 콜렉션 구성도 많이 바뀌었을텐데 2권 안 나오려나...백두산에서 어머님이 기념 양말을 구매하셨는지도 궁금하고, 코로나 이후 떠오르는 양말계의 샛별들은 더 있을지, 수입과 노동 시간의 슬픈 그래프는 역전이 좀 되셨는지...혹시 28년에 애니버서리 증보개정 스페셜 나와서 양말 끼워 판다던가...는 안 되려나.
발이 너무 시려 제일 두꺼운 양말만 계속 신고 다녔는데, 날도 살짝 풀렸으니 오늘은 나도 날주황 양말을 신어야겠다. 발가락에 소소하게 오렌지 파워!
"제철 양말을 고르는 티끌만한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행복은 양말이다. 양말과 함께라면 행복은 언제나 제철이다."


미술판 csi를 기대하며 펼쳤는데, 시작의 '위조와 사기의 범주'부터 무슨 생각하기 연습 서적인 줄 알았음. 일부만 변경하거나, 공동 작업 후에 합의해서 한 사람 작품이라고 발표하는 경우도 물음표가 뜬다만 - 달리 케이스는 그렇다치고, 소개된 워홀 위작 판정 기준은 이해를 할 방도가 없다 -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했다는 미술 작품의 기준도 뭔가 심오하다. 논술에 이런 문제들 안 나왔던 걸 다행으로 생각할 뿐...
어쨌든 메인은 각종 기술을 동원해 만들어진 위작과 위조범들 이야기니 야금야금 즐겨본다. 위조행각을 자기 PR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데서 웃다가, 나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과 업계에 복수한다는 동기가 흔하다는 것에 마음이 무거워지다가...그리고 자만심이란 대체 뭐길래. 자만심이 동기인 것만 해도 충분히 골치 아픈데, 자만심 때문에 내가 산 위작, 내가 진품이라고 잘못 감정한 위작을 진품이라고 우겨대는 건...입은 있는데 할 말이 없습니다. 역사나 과학 부문 위조는 인류 전체의 학습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인데도 분량이 짧아 잠시 툴툴대나, 미술 쪽보다는 위조 자체가 적어서 그런 거라면 다행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도난 케이스도 분량이 짧지만 내용의 임팩트는 하나같이 대단하였다. 정교한 위작으로 바꿔치기된 경우는 그렇다치고, '색칠한 포스터를 카드보드지에 붙인' 걸 대신 걸어놨는데 미술관에서 한참 몰랐다는 건 무슨 경우여. 갑자기 한국 미술관들은 안전한가 의심이 스물스물....
분량이 짤막해서 제일 아쉬운 건 미술 수사관 버넌 래플리 선생!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미술수사팀을 이끌며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위조범 사냥꾼'이라니 타이틀만 봐도 침이 넘어가는데, 공사다망하셔 그런가 저서가 없다는 게 너무나 아쉽다. 선생님 얇은 책이라도 좋으니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어릴 적 위인전과 학습 만화들에는 한석봉을 왕희지에 빗대 찬사하던 장면들이 왕왕 있어서, '왕희지=중국 서예왕'(...)이라는 인식은 있었다. 이후 강산이 몇 번 변할 동안 그대로였던 정보를 늦게나마 업데이트할 기회가 왔으니 봐야지 어쩌나. 역자분이 '국내에 왕희지의 전기가 없어서' 번역을 하셨다는데, 2016년 출간되고 지금까지 어린이용 위인전이 한 권 더 나온 것이 다이며 심지어 내국인 한석봉도 성인용 평전이 없다. 서예가 진짜 인기가 없나 봐...
생애부터 당시 예술 사조, 서예론이 들어가 있는 건 정석인데, 아들 왕헌지의 평전까지 포함된 것에 깜짝. 아니, 그 이름도 처음 듣는 나의 무지에 깜짝인가; 부자가 통칭 서예의 二王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대단한 아드님 성격에 다시 놀란다.(아버님도 안 놀라운 건 아녀라...) 두 사람 모두 능력 있고 성실한 위정자였던 건 믿어도 될 것 같은데, 사적 일화들에서 역시 인간이란 완벽하지 않은 존재라는 걸 재확인. 그래도 아버지 쪽의 일화들은 좀 애교(?)가 있는 반면, 아들 쪽은 아버지 글자도 까고, 자기 pr 때 뻥치고, 예절 따위 뭐나 줘 주의라(고벽강 선생의 빡친 멘트 왜 이리 공감 가나...) 길지도 않은 분량에 서프라이즈 참 많았다. 한 분야의 절대강자가 되려면 재능과 더불어 이 정도 깡이 필요한가.
서예 해설이 초심자에겐 거의 마법 주문이고(글자가 순정하다던가, 연결에 운치가 있다던가 하는 표현을 이해하기엔 기본 지식이 바닥임) 도판도 거의 없어 머리 아프긴 하지만, 인터넷으로 사진 찾으며 읽으니 어렴풋이 느껴지는 건 있다. 요새 인쇄물 뺨치게 칼 같은 규격의 글씨 풍조가(비문 내 같은 글자들이 겹치면 똑같다는 언급은 뻥튀기가 아니었음),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서 갑자기 오밀조밀한 글씨나 왕창 흘려쓴 글씨 등의 개성 대폭발로 이어지는 부분이 꽤나 재미짐. 이거...히피 아냐? 그 시대에 무려 나체족이 유행했다는 것도 뿜고, 용케 이 유행이 한반도까지 안 왔구나 생각에 웃고. 설마 기록 뒤지면 한반도 나체족이 나오...나?
여전히 서예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참으로 인상적인 개인사들과 더불어 천 년이 넘도록 극동 서예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한 대단함은 어느 정도 이해했으니 만족. 내용 기억하고 있을 동안 다음 업데이트의 기회가...올까?


워싱턴 포스트가 미국의 국보라고 했다는 저자의 이력에 읽기 전부터 한참 생각한다. 분명 대단한 사람이니 저런 평가를 받았을 텐데, 기준이 인지도인지 판매량인지 아니면 아름다운 영어 문장인지...그리고 국보 몇 호인지? 계속 생각하면 책을 못 읽으니까 일단 패스. 1986년 화재를 중심으로 한 로즈 앤젤레스 도서관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도서관 화재라는 말 자체가 소름 돋지만, 진화하다 부상 입은 소방관만 50명에 40만 권 소실, 70만 권 훼손이라는 수치면 허이구야...방화범 수사(뭐 이런 용의자가 다 있냐?), 재건 과정과 더불어 책 태우기의 역사(전쟁 때 타버린 책의 숫자도 엄청나다만, 평소에 화재가 이렇게 잦다니 이게 무슨...), 개성 만점 전현직 사서들, 소시적 여성의 위치와 사서직, 도서관 이용자들의 천태만상(이쪽은 한국이랑 큰 차이가 없을지도) 등등 신기방기 퍼레이드를 만끽했다.
책과 도서관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의미를 마음에 새기는 것이 아마 감상 후 모범 답안이겠다만, 자잘한 부분들이 재미지니 읽다가 삼천포로 계속 빠짐. 몇 대째 의사나 서점 주인은 들어봤어도 2대가 사서로 일한다는 집안 얘기는 처음이라, 찾아보니 사서 3대도 있고 한국도 2대 사서 이야기가 언급된 블로그가 있어서 더 놀람. 이것이 진정 성골! 사진 컬렉션이 있다는 것도 신기해서, 홈페이지 들어가 스캔된 흑백 사진들을 클릭하니 오오 빠져들어...호러영화 소품 같은 토끼 탈, 해변의 돼지들, 50년 전 슈워제네거 등등 설명 첨부된 진기한 사진들이 전부 봤다간 인터넷 폐인이 될 정도로 가득하다. LA의 초창기 사서나 도서관장의 사회적 지위에 감탄하다가 한국은 어땠는가 검색하니 오마이뉴스에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라는 종료된(크흑!) 문화 칼럼이 있어 또 한눈팔고요. 연재 다 끝나고 안 것이 아쉽지만, 국립중앙도서관 초대 관장과 부관장에 관한 씁쓸한 기사부터 각종 도서관 일화 가득한 노다지를 발견한 것이 뿌듯허다. 여하튼...주절주절 썼지만 요는 자나 깨나 불조심 해야 하며, 도서관이란 새삼 아름다운 장소더라. 그리고 약 백 년 전의 열정 독서 어드바이스 메모.
워런은 사람들이 책 읽을 시간을 마련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평생 동안 작은 정보지 "엘시어의 독서 성공법"를 발간했다. 책을 읽을 기회를 얻을 수만 있다면 거짓말도 괜찮다고 했다. 정보지에는 "저녁에 양어머니 여동생의 친한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면 전화를 걸어서 지독한 감기에 걸려 사람들에게 옮길까봐 겁난다고 말하라"는 조언도 있었다. "그냥 집에 머물면서 『루시 게이하트』를 보아뱀처럼 한입에 꿀꺽 먹어치워라."


출간된 지 거의 십 년 된 책이지만, 역시 이그노벨상 수상자의 저서에는 특별함이 있었다. 이정도는 되어야 세계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구나!
- 서른 셋 + 약 4년 간 슬럼프 + 은행이 계좌 개설 거부하는 수준의 소득 불안정
= (일반) 창업이나 자격증 알아보거나, 우울증 상담을 고려해본다.
= (저자) 뭐라도 해보자. 코끼리가 되고 싶은데 좀 어려울 것 같으니 그럼 염소가 되어 보자!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다른 종족이 되어보겠다는 옵션을 떠올릴 수 있다니 이것이 창조 정신. 이런 프로젝트에 돈을 대는 재단도 있다는 놀라움은 일단 접고(재단 홈페이지 가니 “Wellcome supports discovery research into life, health and wellbeing”이라는데...비록 ‘코끼리가 되는 줄 알고’ 돈을 대주기 시작했지만 이런 체험이 어느 쪽의 보건 증진에 도움이 되나 모르겠다. 인류? 코끼리?) 몰입 시작한다. 전문가들과의 상담과 기본 교습, 장비 제작, 염소가 되어 알프스를 넘는다는 목적도 진짜 달성하는 걸 보니 감동(?)이 밀려온다. 제대로 된 사람들의 조언과 개입이 없었다면 준비 중에 죽을 수도 있었겠다만,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이 없으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각종 염소 지식, 동물 부산물 수송 가능 면허, 인간이 사족 보행할 때의 위험성 등등)을 즐겼고 아름다운 알프스와 18번 염소의 사진도 보았으니 굿굿. 책 말미의 사진이 좀 많은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하긴, 저 고생을 하면서 알프스를 넘었으면 백 장이라도 싣고 싶겠지...
그나저나 학대 받는 염소가 보호소가 있어야 할 정도로 많다는 데서 어리둥절. 영국의 동물 보호소에서 다루는 동물들을 검색해보니 더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다. 백조, 소, 양, 알파카 등등...어디 연구소면 모를까, 개인들이 이런 동물들을 일부러 구해서 유기나 학대를 한다고? 설마 한국도 사정은 똑같고 보호소만 없는데 내가 모르는 건가? 세상 진짜 알 수 없다.


살인마 이야기야 넘쳐나지만, 피해자의 이야기를 ‘돈벌이’가 아니라 사명감으로 기록하는 책은 떠올리기 힘들다. 아파하는 유족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사적인 걸 알려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마음도 있고...하지만 ‘그녀의 삶 역시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말과, 조심스럽게 레티시아의 언니에게 양해를 구하는 도입부에 갑자기 사명감이 생긴다. 피해자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이때까지 몰랐다면, 늦은 게 창피해도 배워야지 어쩌겠나.
한참이 지난 지금 먼 나라의 타인이 보아도 레티시아의 죽음이 너무 억울하다. 짧은 인생에 이렇게 실망스러운 어른들을 많이 만나면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열심히 살았던 소녀는 처참하게 죽고 살인범은 법정에서 관종 쇼를 만끽하다니...양육이 뭔지 이해는 하는가 싶은 친부모, 나름 굴러가기는 하지만 구멍 숭숭 뚫린 아동복지제도, 보호관찰을 받았어야 하는 살인범을 놓칠 수밖에 없었던 교정당국의 문제가 먼나라 사정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걸 정치 캠페인의 일환으로 쓴 사르코지...하아...엄숙한 책에 무슨 블랙 코메디마냥 끼어있는 행적에 피로가 몰려온다.
이것도 모자라 교정되지 않는 재범, 언론의 태도, 여성 혐오, 취약한 아이들에 대한 성범죄(수양 아버지의 형량이 깃털처럼 가벼워서, 서유럽이 적어도 이런 처벌은 극동보다 강력할 거라는 생각이 박살났다...)까지, 한 안타까운 죽음에 얽힌 문제가 너무 많다. 그 와중에 불편한 의문까지 생겨 뱃속이 얼음창고 됨. '피해자들이 안전해질 수 있는 사회의 보호책이 있었다면'을 따진다면, 그 분량이 미미하더라도 투표권 있는 성인들 모두가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인가? 나 자신도 못 지키는 일개 서민이 과한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아이들 앞에서도 책임 없다고 말할 수 있나? 그냥 내가 셀프 고문을 사서 하는 건가?
온갖 답답함 속에도, 레티시아의 언니 제시카가 정녕 한 줄기 희망이다. 이 많은 불행을 겪고도 세상을 저주하지 않고, 동생을 기념하면서 변함없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울컥. 십 년이 넘게 지나고 완전히 한 성인의 삶을 살고 있을 제시카가 제발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제발...!
보도된 뉴스를 볼 뿐인 입장에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꼴랑 이 한 권 봤다고 '피해자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다 이해했을 리도 없다. 그래도 범죄가 끔찍해 눈돌리기 전에, 뭐라도 머리 쥐어짜서 생각해야 한다는 걸 늦게나마 깨닫는다.
"만일 우리가 그녀 존재의 진실,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독, 그녀가 선택했던 길들. 그리고 그녀가 처했던 환경이나 사회와 따로 떼어서 생각한다면, 레티시아 죽음의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레티시아가 무엇을 했으며 남자들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수사관들의 모든 작업은 민주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안전은 하나의 권리이므로 우리는 악당들을 체포한다. 우리는 프랑스 국민의 이름으로 그들을 재판한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18세의 나이로 살해당한 국민 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공서비스의 임무와 마찬가지로 모든 이가 관심을 가질 만한 프로젝트라고."


안 그래도 날이 추운데 시작 장면부터 냉기 묘사라 한숨 팍. 뒷표지에 ‘차갑고 오싹한 진실’이라고 적혀있으나, 아기 목 검사(?) 장면 빼면 '오싹'은 모르겠고 그냥 춥 다. 타이타닉이 배경인 시점에서 어쩔 수 없겠지만, 읽으면서 왜 이리 전기장판에 눕고 싶은지 쩝...
추운 날 꾸역꾸역 걸을 때의 한기와 피로에, 심란함과 짜증과 찜찜함을 섞어 쉐낏쉐낏한 이 미묘한 느낌 무엇이뇨. 애니의 행적에 기분이 쳐지면서도, 조연들 이야기가 재미있어 또 업 되다가 하면서 읽는 동안 기분이 위아래로 요동을 친다. 그냥 다이나 루시가 주인공이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그것은 독자 1의 헛된 소망...등 뒤에서 '왁!' 소리 질러야 하는데 'ㅇㅗㅏㄱ' 하는 클라이막스에, 두 주역에도 정을 못 붙였는데도 저자의 스파이 소설 시리즈가 꽤 궁금해지는 걸 보면 결국 재미있게 읽었나벼...


근사한 표지에 낚여 읽을 책 리스트에 넣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25년이 되었다 으악...대단한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라 봐서 만족했지만, 인류 전체가 가장 큰 열정을 불태우는 분야가 ‘어떻게 해야 상대방을 더 효율적으로 작살낼 수 있느냐’라는 것을 재확인하니 룰루랄라 하긴 어렵더라. ‘기술이 발전하니 무기가 발전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도 찬물 샤워. 다 주워섬기기도 힘든 수많은 화기를 만들기 위해 전략을 바꾸고 인프라를 바꾸고 정치가 바뀌고 다른 시대가 열리는 흐름이 울적하면서도 사람 홀린다.
튼튼한 배를 만들다 보니 대포도 실을 수 있게 되었다가 아니라, 대포를 실으려고 배를 재설계하기 시작했다는 부분부터 놀라고(이후 닮은 내용들이 반복되는데 계속 놀람), 호치키스가 문방구 회사가 아니라 군기업이란 것도 움찔(나만 몰랐나?). 미국이 딱히 군사 강국이 아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의외로 길지 않은 참호 파기의 이력, 러일전쟁이 ‘변화한 전쟁’이라는 면에서 가진 의미 등 세부적인 놀라움이 빼곡해서 책이 터지겠음. 각종 부속의 이름이나 원리가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무조건 유튜브 검색. 주인공이 쓰는 총이 개성의 한 축이기도 한 미국 액션 소설들 덕에 천조국 총덕들의 영상들은 좀 본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내가 검색하고도 정말 다 나온다는 사실에 깜짝. 포장한 화약 넣고 엄청 번거롭게 쏴야 하는데다 연기까지 엄청난 골동품 총(전쟁에서 살아남았어도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했을 듯...)을 일부러 사서 사용한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놀라운데, 양 세계 대전 때 쓰던 머신건이나 박격포를 민간인이 소장하다니...상당한 덩치의 화기를 사격 가능한 곳까지 트럭으로 운반하고, 설치하고 발포하고 영상 찍는 이 정성 무엇인가. 160년 전 야전삽, 초창기 수류탄(대체 어디서 사는 거지...) 등 없는 영상이 없고, 탱크나 비행기도 뉴스나 박물관 영상들이 수두룩하니 다른 의미로 오늘도 세상은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화기를 만든 것은 인간인데, 만들고 나서는 화기가 인간을 질질 끌고 간다는 것이 기막히면서도 왜 이리 익숙한지. 내가 뭘 어찌할 수도 없는데 괜히 무거워지는 마음을 폼폼포로 날려버리고 싶다. 폼! 폼!


전직 특수요원이나 경찰도 아니고, 눈치빨은 있으나 천재도 아닌 동네 주민 셋의 추리극이 소소하게 재미난다. 간식 먹으면서 읽기 매우 적절하달까. 포지션도 연령도 왕초인 주디스의 캐릭터가 취향이니 설정에 별 두 개. 수상하면 바로 찾아가서 질문하는 모습에 한숨도 나지만 거침없음이 매력이기도 하니 어쩌겠나. 매우 실용적인 다각도 망토 활용으로도 독자를 현혹시키기도 하니, 봄 오기 전에 나도 하나 사야겠다 결심.
개인적으로 수지가 두렵다. 주디스와 살짝 결이 다른 이 무모함 어쩌노. 옛적 미드면 대형사고 쳐서 수사 방해하거나, 들쑤시다 초중반에 살해당하는 스타일...클라이막스서 위험도 감수하는 모습에 살짝 호감도가 올라가다가, 추측을 입밖에 무필터로 다 쏟는 모습에 소름. 역시 무서워! 일단 3인방 다 누명 쓰거나 과거의 망령을 조우할 요소들이 있으니, 계속 챙겨보고 확인해야제.
이미 드라마가 나왔다길래 예고편 클립 봤더니, 누드 수영은 나오면서 망토가 없어 대실망! 수지도 뭔가 힙한 느낌이라 예상과 차이가 있지만, 영상작품에는 나름의 맛이 또 있겠지 쩝...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습니다』에 언급된 걸 보고 찾아 읽었다. 이미 호스피스 식사에 관한 책이 있었다는 것도 놀랐다만, 말기의 식사를 다루는 책인데도 책 모양새부터 내용이 밝으 니 국물 온기 뱃속에 퍼질 때 같은 조용한 경이로움이 있더라. 맛있는 음식 사진들(특히 초밥...침이 절로 고인다...)과 환자들의 인생 이야기, 정성이 느껴지는 스탭들의 말이 주는 훈훈함을 만끽했다. 한편으로는 삶이 이삼 주밖에 안 남았어도 그 하루하루가 '미래'라는 것을 깊게 생각하지 못한 스스로를 반성하고. 고통만 조절하는 기간이 아니라, 몸 상태 따라서 책이라도 한 줄 더 보고 햇볕 쬐고 수다도 떠는 작은 가능성들이 있는 시간들이니, 기력을 주는 즐거운 식사가 절실한 시간 아닌가. 이런 요소가 박탈당하는 마지막을 생각하면 다시 소름 돋는다만, 이런 미래도 준비할 수 있다는 걸 꼭 기억해야지.
"말기라고 해도 아직 먹고 말할 수 있는 사람에 한정된 탓도 있지만 만난 사람은 전부 다음 날의 식사를 기대하고 있었다. 즉 앞을 향해 살고 있었다. 가까운 미래에 죽음이 손짓한다고 해도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