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어느 새 완전히 잊고 있다가 이제서야 본 책이다. 재미있다! 왜 번역작이 적은지 이해가 안 간다. 분위기나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도덕 상실증인 건 몰타의 매를 방불케한다만, 주인공이 좀 쫄보에 속물이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양심이 있어서 시작은 편했는데...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때까지 양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궁지에 몰린 적이 없던 것뿐인가 싶어 주인공에게 좀 실망하기도. 하긴, 역자 해설에 나온 것처럼 주인공마저도 작가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이라면 어쩔 수 없지...디미트리오스도 나쁜 놈이다만, 신의 섭리가 어쩌고 떠들면서도 어차피 내가 안 해도 딴 놈이 할 거니까 나쁜 짓 한다는 피터스의 캐릭터도 그렇고 조연들의 비호감 스타일도 참 다채롭기도 하다. 당시 입장에서의 국제 관계 설명도 참 씁쓰무리하고...1939년 소설인데 2편이 69년에 나왔다니 주인공은 대체 어떻게 변했을지 참으로 궁금하다. 알려면 원서 구해야지 뭐...


블러디 프로젝트도 흐린 날 가랑비에 젖어드는 축축함이 있었는데, 이쪽은 습기는 덜하지만 참 읽기 힘들었다. 그렇게 두껍지도 않고 글자 사이즈가 적은데 갑갑해서 중간에 다른 책들 읽느라 시간이 걸렸다. 지금 나의 모습이 정말 나인지, 내가 연기하고 싶은 모습인지를 이런 식으로 피로하게 생각하게 될 줄은...(그냥 없는 지식 가지고 머리를 굴리려니 피곤한 거 아니냐고 한다면...부정할 건덕지가 없다만) 읽으면서 정말 불쾌하지 않은 부분이 단 하나도 없는 브레이스웨이트 - 설마 이런 불쾌한 인물의 실존 모델이 있는 것인가 싶어 검색했는데 없는 것 같아 다행이다 - 의 말들이 목에 걸린 생선 가시같다.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지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안 그래도 스물스물 뭐가 올라오는 기분이, 대사가 한 마디씩 더해질수록 점점 가라앉는다.
"내가 벗어나려다 실패한 대상은 나 자신이었다" 로 불안의 돌더미가 우르르 무너질 때, 안도하면서도 왜 애초에 발언들을 보면서 그리 끙끙대었는가 생각해보는데 내 생각을 나도 모르겠다. 비망록 파트의 마지막도 소름끼치고 마지막에 작가가 만나는 인물을 보면서 이거 아주 조금만 틀었으면 공포 소설이 되었을텐데. 개인적으론 그쪽이 더 재미있었겠지만 내가 문학의 무엇을 알리...아직 나오지도 않았지만 저자의 다음 작품을 집을 용기가 지금은 없다.


끝난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코로나가 유행하는 와중에 들춰본 가족 시트콤이다. 2080년 주인공 마티아가 과거 회상을 하면서 시작되는데, 미래 아이들이 판데믹이 시시한 상상이라 여긴다는 대목이 뻥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간에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거나, 일이 끊기면서 정말 굶게 되는 사람, 간호사 집에 붙여진 혐오 메모 등 심각한 이야기도 나온다만 서로 한 마디도 안 지는 가족들의 티키타카와 사람 사는 이야기로(격리생활도 사람의 성질머리를 죽이지는 못하니까) 책장 술술 넘어간다. 같은 건물에 사는 많은 이웃들이 등장하니 귀여운 인물들도 나온다만 비호감도 득시글. 특히 마티아의 아빠...명랑한 톤의 책에선 항상 이런 타입의 인물이 최종승리한다만 한 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다. 덕분에 캔식혜 마시듯이 읽는 책 중간중간에 마시다 목에 쌀알 걸리는 느낌을 자꾸 받는데다 거의 막판의 정신 나간 행각에는 거하게 사레 들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승리...그나마 이번엔 주인공의 행복이 이 인간의 만회 여부에 달려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인다.
"세상은 '현재' 안에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현재를 사는 동안 그 현재는 언제나 이전의 모든 현재들보다 훨씬 나빠 보였다. 그렇지만 몇 년 뒤 사람들은 왜곡된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 시간을 그리워했다.
우리가 수천 년 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회상을 할 날이 얼른 오기를 바라며, 휴일 독서 마무리.


제목 보고 마음대로 상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내용이었다만, 두둥실 흘러가는 느낌으로 편하게 보았다. 기분에 따라 차를 고르고, 차나 간 식의 느낌에서 좋아하는 그림을 떠올리고. 편안하다. 쉽게 접하기 어려운 중국차들의 맛 이야기에 솔깃해지기도 하고. 우릴 때부터 향이 퍼지고 한 모금 마시면 사랑하는 사람과 걷는 중임을 알게 되는 맛, 불 기운이 느껴지는 맛, 중성적인 맛...좋아하기만 할 뿐 지식은 별로 없는 찻잎 소비자에게는 상상하기도 어렵고 참으로 궁금해지는 맛이다. 차 한 잔 두고 즐기는 여유가 중요한 것일텐데 한 두어통 지를까 마음이 동해 검색에 열올리는 본말전도인 나의 모습이 참...아니야 일단 쟁여놓는 것 중요해...차가 있어야 차를 마시지...


사람은 뭔가를 싫은 척, 좋은 척 할 수 있는 존재다만, 그게 굉장히 어려운 분야가 있다면 먹는 게 아닐까. 먹을 거 이야기하면서 진심이 아닌 사람을 아직까지는 본 적이 없다. 하다못해 음식이 싫은 이유를 댈 때도 진심이고, 써서 책까지 낼 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박찬일 셰프의 추천사부터 이미 쪽수가 모자라지 않은가 싶다.
유명한 17가지 품목이 뽑혀서 역사부터 평가, 출간 당시 판매 정보 등등이 나와있는데 흥미진진하다. 원서가 2014년에 나왔으니 찾으면 이후 변한 것들이 있다만(누텔라가 빵 없는 중국에 진입하지 못했다고 적혀있다만, 찾아보니 그 이후 누텔라는 항저우에 공장 세워서 2022년 한 해만 중국인들에게 6억 유로어치 누텔라를 팔았다...역시 마성의 음식!) 읽다보면 역사도 중요하지만 그냥 먹고 싶다. 그렇다고 이탈리아 물소 고기나 25년 묵은 발사믹 식초 같은 것들을 구하기엔 능력이 안 되고, 이 더위에도 식욕만 돋아서 다른 걸 더 먹었다. 책이 날 살찌게 하네...
읽다보니 여행기나 영상에서 자주 보이는 이탈리아 커피 부심이 좀 이해도 되고, 모짜렐라나 티라미스 파트는 할 수만 있으면 암송하고 싶다. 그나마 좀 심드렁해지는 것이 와인들 파트인데, 내 인생 전체 알콜 섭취 비율을 대충 계산해도 와인은 전체 열 병이 안 될 마당이니 각종 평가들이 와닿는 것이 없다. 마시면 채찍으로 한 대 맞는 기분이라는 페르네트 브란카가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만 SM은 땡기지 않는고로 마시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반주 문화가 알콜 소비에 큰 영향을 주는구나 새삼 느낀다. 전체 와인이 아니고 DOC 프로세코 와인만 1년 약 2억 5천만 병 만들어서 3분의 1이 국내 소비라는 게 대체...인구 1억도 안 되는 곳 맞나요...
어쨌든 재미있게 읽었고, 무더위 속 식욕증진은 덤이다. 먹는 얘기 만만세!


"사소하게라도 미소 지을 만한 일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강해도, 아무리 똑똑하고 터프해도, 세상은 반드시 우리를 무너뜨릴 방법을 찾는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 버티기다."
데이지 존스 앤 더 식스는 배경도 좀 좋아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읽으면서 즐거운 부분도 많았다만, 개인적으로 연애소설에 좀 취약하고(그래도 재미있게 본 연애소설이 없는 건 아니니, 나의 감성세포가 말라죽지는 않았...겠지?) 데이지를 잘 이해할 수가 없어서 저자의 다른 작품을 또 손댈줄은 몰랐다. 한국판 제목에 낚인 탓인데('더...더 어떻는데?') 연애 파트는 여전히 소화가 잘 안 되었다만(주인공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할 때 공감이 가슴에서 우러나온다) 최악의 인상으로 만난 사람과, 다른 이들이 알아줄 수 없는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 천천히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것이 좋다. 연애도 그렇고 서로 보듬어주는 과정도, 소설이니까 그렇지 이런게 어딨냐 싶을 수도 있지만...그래서 이야기라는 게 좋은 게 아니겠는가. 누군가를 보내고 일어서는 일은 인생에서 반복될 수 밖에 없지만, 그걸 혼자 겪지 않아도 될 거라고 책 속에서라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나무와 숲의 문화적인 의미부터 역사, 기능까지, 주제인 나무들만큼이나 알찬 책이다. 게다가 번역가분의 정성에 괜히 글썽...중간중간 나무의 분포도 추가, 깨알지식 역주에 원문의 잘못된 부분에 해설들도 원문만큼 멋졌다. 사실 웃을 부분은 아닌데, 신화 속 마법 지팡이나 사람 때리는 회초리가 용도나 사용자에 따라 나무도 따로 있다는 게 왜 이리 웃긴가 모르겠다. 그리고 꽃에서 트릴메틸아민 때문에 비린내나는 나무들이 많다는 게 정말 뜻밖임. 어디 열대 희귀한 꽃 아니면야 꽃이란 당연히 향기롭겠다 생각한 것은 무지구나. 얼마전 자연의 악에서 나온 진공청소같은 벌채 이야기가 여기서도 나와서 잠깐 또 씁쓸하고. 타감 작용이란 것도 충격이고 인간은 어쩌면 나무란 존재를 이파리부터 본체까지 알뜰하게 사용하는지(...혹은 착취하는지...) 여러모로 즐겁고 끝까지 흥미진진했다. 언급된 책들도 읽고 싶고 장소들도 가고 싶고, 나중에 독일 갈 기회가 있다면 재독 필수!


"나는 묻는다 : 세상 모든 이야기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일까?"
드디어 리스펙토르의 작품을 처음 읽어봤는데 - 참 빨리도 본다.... - 기가 꺾인다. 정말 얇은 작품이 이정도면, 도서전시회에서 전시되었던 세상의 발견(천 페이지 넘어가면 책이 아니라 가구 아닌가...)은 보고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벤자민 모저라는 양반이(검색해보니 번역가이자 작가라고...) 카프카 이후 가장 중요한 유대인 작가로 뽑았다는데, 유대인 문학이라는 카테고리는 잘 모르겠다만 둘을 한 카테고리에 넣는다고 생각하니 절묘한지 기가 막힌 건지...카프카가 자글자글하다면 이 이야기는 꺼슬꺼슬하고, 카프카가 갈색으로 낡은, 헌 책 냄새 나는 하드커버를 연상시킨다면 이 이야기는 회색 표지 갱지로 찍고 울적한 부분은 인쇄 번져있는 책같은 느낌이다. 브라질에서 성인용으로 에드워드 골리같은 글을 쓰면 이렇게 되는 것일까...진짜 거의 마지막에 왜 별의 시간인지 알고 나니 더 우울하다. 책 소개도 안 읽고 제목에 홀랑 넘어간 나의 죄지 뭐 어쩌겠노. 세상의 발견은...용기가 좀 생기면 생각해보자. 이 얇은 책 속 한 여자의 불행으로 벌써 이번 달 한계치 다 찼음.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가 마지막 순간에 갚아야 할 것들의 가치가 더 커지는 것 같다.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되돌려 주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삶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를 과시하며 살아왔지만, 우리는 정작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요슈타인 가아더의 책을 본다. 나도 나이를 먹고, 주제마저 삶의 끝이다. 짧지만, 항상 기억해야하는 것, 생각해야하는 것들이 있고 부족한 나는 계속 곰씹으며 잊지 않도록 해야한다.


최근 세상의 흐름을 생각하면 인류애의 꿈과 같은 설정의 주인공이다. 터키인과 아르메니아인의 혼혈에, 유대인과 결혼해서, 서로가 상대가 속한 민족의 일을 더 고려하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하지만 주인공부터 자조하듯이 이 구제불능의 순진함은 현실과는 맞지 않지...책속에서라도 누군가가 괴로움 끝에 사랑과 희망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다행일지 모른다. 그리고 결말이 뻔하다면 뻔한데도 안도하는 내가 제일 뻔한 독자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