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이런 사람들 안 만났으면 그게 행복한 학창시절이라 깨우쳐주는 책이었다. 악역은 악역이니 비참한 말로를 맞는 것만 기대하며 어떻게 참는다만, 돌아가며 시점을 나누는 주역들도 어째...중간에 욕보는 코트니의 시점이 추가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잭도 정을 못 붙이겠고 사이다는 없는데 고구마만 계속 차오름. 책 더 두꺼웠으면 홧병날 뻔...
이거 대체 어떻게 끝나려나 했더니, 사이다를 들이붓는 게 아니라 쌓인 고구마를 폭파시키는 방식으로 끝났다. 원래도 비평 능력 제로지만, 인물들을 따라가며 스트레스가 너무 올라갔더니 결말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겠고 '아이구 끝났구나 아이고...'하며 그냥 대자로 뻗고 싶은 심정. 독자를 위한 가이드에 토론을 위한 질문이 열 개나 나오는데 대답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피로함. 뒷표지에 적힌 다른 작가들의 서평 중에는 '때로는 비틀린 유머에 폭소하게도 된다'라는 말도 있는데, 그런 부분이 있었어? 그게 우데고?


표지에서 풍기는 낭만의 냄새와 더불어, ‘라부카’라는 뜻도 모르는 단어에 홀리듯 집는다.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분명 릴케 시집에 실릴 것 같은 단어일 거야...라는 생각은 도중에 박살이 났다만, 어쨌든 잘 읽었으니 괜찮다.
주인공의 설정이 참 화려해서(젊은 나이, 안정된 직장, 본업이 아니라 취미라고는 해도 꽤 훌륭한 재능, 아니꼬워하는 동료가 있을 정도로 잘생긴 외모에 생각보다는 덜 어두운 과거까지) 감정이입이 어려운 조건인데도, 대유행하는 MBTI로 치면 I인 성격에, 자신을 이해할 사람이 없다고 완전히 포기하고 있고 친구도 없다는 상황에 공감할 사람들은 꽤 있을 것이다. 당장 시작부터 친하지도 않은 상사의 부담 백배 지령(경중은 다를지언정 너무나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심정)에 클리닉까지 다녀도 낫지 않는 불면증까지...그러나 23년 기준 판매 부수 10만 부의 원동력은 그런 슬픈 이유만이 아니라 감동 때문일 것이라 매우 믿고 싶어유.
버거운 상황에서 원치 않는 계기로 시작했을지언정, 좋아하는 걸 하고, 따라가고 싶은 멘토가 생기고, 취미활동 동료들을 만나는 것은 인생의 전기장판 아닌가. 잠입물(?)인 만큼 단맛 뒤 쓴맛의 순간도 피할 수 없지만, 다치바나가 의사에게 ‘감사합니다’ 소리까지 듣고 느껴본 적이 없었던 감각을 느낄 때는 나도 해동되는 느낌. 그리고 결과를 지레짐작하지 말고 상대방과 마주보려 시도해야 한다는 걸 새삼 생각한다. 쫄보에겐 주기적으로 이런 자극(?)이 필요함.
중요한 것은 다치바나의 성장이다만, 사실 읽으면서 옛날 생각 나게 한 건 아사바의 말이었다.(저렇게 재능이 있었던 적은 없다만서도)
"봄에 태어나서 얼마 전이 생일이었어. 지금까지는 나이를 신경 쓴 적이 없었는데, 앞으로 일 년이면 이십 대가 끝난다고 생각하니 좀 당황스럽더군. 일본 음악 콩쿠르에는 스물아홉 살까지만 참가할 수 있어. 스물아홉 살. 믿어져? 그 후로도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서른 살부터는 자격을 잃어. 스물아홉 살의 연주와 서른 살의 연주에 대체 어떤 차이가 있지? 아니면 내가 모를 뿐, 뭔가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걸까."
전체 스토리와는 별개로, 시작 페이지 내용부터 깜놀해서 검색하니 한국도 노래교실은 저작권을 내고 있었다. 주민센터도 할인받을 뿐이지 예외 없음. 저작권은 당연히 소중하고, 본문에서 다치바나가 열심히 설명하기도 했으니 이해가 가지만 노래방이 아니라 가르치는 곳에서도 징수된다는 건 몰랐다. 악보 구매로 끝나는 게 아니었구나...일본 쪽 기사를 보니 교사의 연주는 저작권료 지급 의무가 있고, 학생의 연주는 없다는 다소 복잡한 재판 결과가 나온 모양. 저작권 어렵다.
나의 낭만 가득한 상상을 두 쪽 내는 라부카의 외모(생물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그냥 한국 이름 써서 ‘주름상어를 위한 소나타’였으면 좋을 뻔), 설마해서 검색했으나 역시 가상의 뮤지션이었던 오노세 아키라(놀랍게도 소설 팬이 작곡한 ‘전율하는 라부카’가 유튜브에 있다!) 등 여러 재미가 있었다. 책덕질이 이미 충분히 행복하지만, 본문에 나온 것처럼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주변도 잊는 그런 순간을 새해에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제목과 부제와 표지 그림이 기막히게 어울리면서도 뭔 소린지 짐작이 안 가니, 상상한다고 시간 쓰지 않고 바로 집어든다. 예상능력은 형편없을지언정 픽업 결과는 훌륭했으니 대만족.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라는 말은 보통 소화하기가 힘들다. 대개 의지가 중요하다는 걸 깔고 가는데, 의지랑 상관 없는 벼락이 아무데서나 쳐대는 것이 인생 아닙니까. 그런 피로한 얘기하는 책이 아니라 좋다. 성격과 시기와 개인사의 고통스런 교집합을 전할 때의 유머, 그 와중에 외국어 공부 팁(회화가 하고싶기 보다는 뭘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매우 적절한 팁이다), 언어가 밥줄인 사람이 생각하는 언어와 번역, 각종 영화(예전 dvd까지 소장했다 처분한 낮술 언급에 친밀감 혼자 급상승) 이야기와 책 추천, 시오랑, 자기 긍정에 관한 이야기들(정신이 바닥을 쳐본 사람의 진심이 뼈로 전해진다) 끝에 던져주는 한 마디는 힘이 있다. 마지막 챕터는 포스터를 만들어 벽에 붙이던가 책갈피 세트를 만들던가 수를 내야겠음.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싶다는 갈망이 저자만큼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습득이 느려 반 포기하던 것도 다니 도전하리라 다짐. 혼자 끙끙대는 게 아니라 학원에 가던가 인터넷 친구들을 만들던가 해야겠다. 하다보면 어떻게 책 읽을 정도는 되리라는 희망의 싹이 돋는다!
어쩌다보니 올해 감상을 쓰는 마지막 책이 되었는데 묘하게 시기나 내용이 개인 맞춤이 되었다. 사지 멀쩡히 연말 맞았으면 감사할 일이다만, 안 그래도 유리 멘탈인데 올해 제동 좀 걸렸더니 정신머리가 자꾸 가출하려해서...'마리아나 해구보다 깊이 가라앉은 자기 긍정감'을 끄집어내준 뎃초 선생께 목례.
올해는 그믐 가입해서 놀라운 경험들을 했으니 이것도 감사할 일. 어설픈 글 부끄러워하지 않고 혼자 공책에다 써놓아도 되는 것을, 굳이 인터넷 세상에 글 올리기 시작한 건 독서 모임이란 것에 대한 동경이나, 책 얘기 하면서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분명 나에게 있었기 때문일텐데...아직도 이게 맞는가 아리송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른 분들의 근사한 글 아래에다가 '이거 느무 재미있지요 겔겔겔겔' 이런 조악한 댓글 달면 안 될 것 같고, 과도한 감상이 잘못 전해지면 공포심을 유발할 것 같고...그래도 감사하게도 댓글 달아주신 분들도 계시고(읽은 사람이 있다는 것부터 깜놀) 쫄보 나름대로 모임도 좀 참가했고, 다 같이 낭독이라는 걸 해보고, 멋진 이야기들 들어서 즐거웠다. 그림책 모임 때문에 지름신이 온 것은...넘어가자. 충격이었던 건 도서 증정이 있다는 거. 덕질을 하는데 혀 차는 소리 대신에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니! 내가 신청해서 책 받아놓고도 얼떨떨. 내 문장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고(이런 거 일 년 썼다고 글이 늘면 온국민이 작가겠지) 조회수도 계속 0 언저리겠지만, 책으로 사람들과 닿기 시작해서 이런저런 즐거움들을 맛봤으니 정신 없는 갑진년에 좋은 일들 분명히 있었다. 뎃초 선생 말을 한 번 더 훑어보며 마무리!
"어디 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지금 거기 있다는 사실, 그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니 나에게는 다른 누구도 아닌 지금 거기 선 당신이야말로 미래다. 어이, 하면 할 수 있어!"


나이 들어 갑자기 NBA선수가 될 수는 없다만, 일반적인 범위 안에서 뭔가를 그만 두고(또는 포기하고) 새로 시작하는 데는 나이가 없다고 머리로는 알지. 문제는 실제로 해보고 결과가 어찌되건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느냐인데...이럴 때 나를 무작정 응원하지는 않더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진심으로 함께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픽션의 세계여도 보면 흐뭇하다. ‘네가 친구이기 때문에 좋은 거다’라는 말까지 할 수 있을 정도면 행운지수 측정 불가겠지...루이가 데루코의, 친구의 존재를 열쇠에 비교할 때 정말이지, 정말 추운 날 벌벌 떨다 가게 들어가서 코 풀고 순두부찌개 드링킹한 뒤의 그 느낌 오랜만에 받았다(...마침 이 대목 읽을 때 손발이 좀 녹는 중이기도 했다만). 아이구 뜨신 것.
데루코가 갑자기 자금 충당하는 파트에서는 살짝 당황하긴 했다만(주부 버전 오션스인가...), 그 뒤의 진짜 ‘인사’,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니다’라는 그 다짐을 위해 필요한 순간이었나보다. 데루코뿐 아니라 이야기를 따라가는 나에게도...데루코 어디 가야 만날 수 있나요. 데루코형 AI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뭐, 데루코와 루이같은 관계를 못 만든다고 불평할 일도 아닌 것이, 각자의 덜컹대는 인생길에서 고생하면서도 간간이 나를 돌아봐주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연말 개인적인 사고도 있었고, 이런 경박한 감상문을 쓰기엔 슬픈 시기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언제 무슨 사고로 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지금 부지런히 읽고 부지런히 연말 인사 새해 인사 드리는 수밖에 없다. 감사하다고, 당신들의 따스함 항상 기억하고 있다고...


제목만 보고 나름 유명했던 곰 8마리로 역사를 푸는 책이려나 했다 프롤로그서 깜놀. 현존하는 곰이 8종밖에 안 된다구요?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참 다채롭게 복장터진다. 소름돋는 환경 문제, 인류 전체가 책임을 져야하는데 특정 지역 주민이나 국가 정책에 부담이 돌아가고, 거의 작살을 내놨다가 수가 겨우 늘어나니 너무 많다고 난리가 나니 피로가 몰려온다. 곰의 위기를 논하면 또 웅담이 빠질 리가 없으니 나라 망신은 원치 않는 보너스 □●...인류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점점 더 큰 실패를 저지르고 메꾸지를 못 하는 것 아닌가...
저자 말처럼 희망이 보이는 순간이 없는 건 아니다만, 모금 운동 외에 보통 사람이 뭘 할 수 있을까. 지구 인구가 80억을 넘은 마당에, 곰에게 충분한 거주지를 돌려줄 방법이 정녕 있나? 답답해서 괜히 챗gpt와 곰 이야기를 해보았는데, 이미 아는 이상의 해답은 얻지 못했으니 씁쓸하다.
그리고 곰들을 둘러싼 이슈에 비하면 사소하기 그지없는 의문이다만, 안경곰의 귀여운 외양이 왜 유명하지 않은 것인가? 팬더 이상의 찬사(+ 금전 효과)를 받아 마땅해 보이는데...살이 덜 쪄서? 봉제인형조차 완성도 높은 걸 찾기가 어렵고 스티븐 프라이가 20년도 더 전에 쓴 책이 겨우 있는 정도니, 대체 무엇이 판다와 안경곰의 인기를 가르는지 모르겠다. 이래서 내가 부자가 아닌 건가...


항상 즐겁고, 시간 지나면 과학 지식보다는 웃기는 얘기만 기억하게 되는(...) 샘 킨 슨생님 책. 이거 읽어야지 하고 잊었다가 정신차리니 몇 년이 지나갔다; 지금이라도 읽어서 다행...인가? 이겠지? 당장 제목의 의미 설명하는 대목에서 숨 참고 싶어진다. 별들의 먼지니 카이사르의 숨이니 하면 잠깐 낭만적일 수도 있다만, 과거부터 지금까지 지구상의 각종 생물이 배출하는 모든 기체를 흡입하고 있다는 걸 굳이 상상한다는 건 안 즐겁다. ‘한 사람이 24시간 동안 10의 24제곱 개의 산소 분자를 마신다’....저 많은 분자들의 출처가...과학적 진실이 나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구만. 특히나 핵무기 파트의 탄소-14 설명을 보면 숨쉬는 한 희망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기후 공학이나, 우주 정착의 가능성(...혜성 100개를 작살낼 핵폭탄을 먼 우주의 목표물에 정확히 쏘려면, 기술은 제껴놓고 자본이 대체 얼마나 들려나...)이나 우리들 숨결의 낭만적 이동 예상도 마지막에 보여주면서 끝내니 마냥 슬퍼할 것도 아니다. 그리고 뭐...따져보면 방사능과 수백만 인의 입냄새나 방귀를 태어날 때부터 마셔놓고 지금 새삼스레 슬퍼해 봤자...
처음 듣는 카를 보슈 이야기나(하버의 유명세를 생각하면 이 사람을 몰랐던 나에게 경악함) 디킨스 VS 조지 루이스, 방귀광 선생, 주기율표 기둥을 새로 만든 레일리와 램지의 미친 인내심(10년을 바친 연구에서 결과를 못 봤어도 불평을 안 하던 사람이 넌더리 난다고 대놓고 말할 정도면 얼마나 참은 거냐...), 하와이 원주민들에 대한 잔인한 범죄, 더불어서 과학자가 취한 행동이라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플루토늄 실험 중 실수들까지(이런 걸 교과서에 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과학 상식 외에도 서프라이즈 한가득이다. 이번에는 이야기 말고도 과학 원리가 기억나야 할 텐데 과연...책이 나온 시기를 대강 따지니 슬슬 슨생님의 신간이 나올 때라, 검색하니 내년 여름 출간 예정이다 오예! 이번에는 늦지않게 바로 챙겨봐야지...


뭔가 오싹한 것을 기대했는데 예상 외의 감동에 강타당함. 읽고 나서 책 뒷표지 다시 보니 선전문구에 밀려오는 미친 공감의 파도 밀려오구요. 일단 유랑 서커스 등장하는 데서 내 마음 속 기본 별점 두 개 먹고 들어가고, 악당 콤비가 비주얼 묘사부터 역할 분담까지 나의 이상(?)에 찰떡같이 들어맞으니 어쩜 좋소. 두근두근 읽다보니 60년대 기준이면 이미 평균 수명에 좀 가까운, 조용하고 기력없는 아버지가 명언 줄투척하면서 부성애, 중년의 정신 재생까지 다 보여주니 댁이 진주인공이셨네요. 사랑 논하는 파트는 교과서에 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한겨울 입술처럼 트고 건조한 마음에 뜻하지 않은 보습 타임.
"위안삼아 하는 말이지만 원래 모든 인간은 바보란다. 언젠가 최악의 바보가 돼서 '도와주세요!' 하고 외치는 날을 대비해 열심히 살아가는 거야." 추운 시기 마음 허한 어른이를 울리는 브래드버리...에잇 찬양한다!


여러모로 헤비한 책이었고, 최근 읽은 책 중에서 다 읽는데 제일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생소한 단어 찾아보다가, 갑자기 반성하다가 생각이 또 옆으로 새다가...날이 추워 그런가, 저자분 문장은 부드러운데 내용이 생각하면 할수록 무겁다.
시간 제대로 잡아먹은 것이 자연법 챕터. "이것을 정확히 아는 이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라고 저자분이 써놓지 않았으면 나의 이해력을 비관하며 눈물 흘릴 뻔...어떻게 보면 인간 행동에 대한 모든 바탕이니 초심자가 한 번에 이해하기엔 규모가 너무 크다. 낑낑대며 읽고 나서도 계급사회에서 어떻게 구성원들이 자연법을 이해했을까 계속 의문이 남다가, 후반에 불쑥 튀어나오는 원문 "시민법과 관련하여 노예는 사람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자연법으로는 그렇지 않다. 자연법과 관련하여 모든 사람은 평등하기 때문이다."에서 헉 소리. 이런 이해 방식은 지금도 크게 다를 건 없다는 슬픈 놀라움은 덤.
일부 지역 제외하면 현대의 법이란 당연히 세속적이라는 막연한 생각도 박살. 교회법이 노동이나 손해배상까지 다뤄가며 유럽 법에 영향을 주고, 그 법이 흘러흘러 극동의 법에까지 영향을 주는 이 세상의 신기한 흐름 무엇이뇨.
좌라락 실린 교회법이나 시민법의 법률 격언들은 강펀치를 날리는 문장들로 가득하니, 그 뒤의 정신을 현대에 사는 성인으로서 이해하고 있었는가 계속 반성...특히나 교회법 시민법 양쪽에서 "침묵하는 사람은 동의하는 것이다"가 반복될 때는 어깨 처진다. 내가 이 말을 실천하는 사람인가 확신이 없어...잔뜩 기 죽어있는 와중 튀어나오는 "자기 부도덕을 변명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용납되지 않는다.". 졸지에 수많은 이들을 범죄자 만드는 이 기습 싸대기...
미성년 구제부터 보복적 상소 방지, 고인의 금니 처리(...), 흥분 상태에서 내린 판단에 대한 대처 등등 많은 것들이 이미 존재했으니, 여러모로 법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어메이징했다. (...그냥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법 조항은 엄청 늘었지만, 법과 정의에 대한 생각은 여기서 얼마나 발전을 한 걸까. 용어들을 얼마나 기억할지도 걱정된다만, 그 이전에 내 작은 그릇이나마 반성하는 마음이라도 담고 갈 수 있어야 하는데 잘 될까 모르겄다;


저자가 장의사이자 시인이라는 데서 호기심이 발동. 시 이야기도 물론 나왔지만, 오늘을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업계 동향도 알아야 하고 사업 확장이나 신규 아이템 생각도 해보는 직업인의 현실이 새롭다. 아무리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직업이라는 건 먹고 사는 수단인데 막연히 이분들을 무슨 수도승처럼 여긴 것 같다. 시야가 좁은 이에게는 책과 작가들이 은인일세...
장의사들이 세미나도 하고, 찾아가지 않는 유해 상자의 보관료를 받기로 결정하는 것(이걸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이 앞다투어 유해를 찾아간다는 게 놀랍다. 부재를 마주하는 공포보다 두려운 보관료...)도, 시인이 어느 잡지에 시가 실리느냐를 신경 쓰고 저작권 생각을 하는 건 살아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결혼하고 이혼하고 변호사에게 애들 학비를 탕진하는 것도...저자 말대로 장례 자체가 산 사람을 위한 것이니기도 하니, 모든 게 오늘을 사는 문제로 되돌아온다. 저자가 이야기한 연령대별 시점에 공감도 되고, 얼마 전 대형사고를 운 좋아 모면했기 때문에 책이 내 어깨 툭툭 치며 살짝 취하신 멋진 삼촌처럼 이야기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살다보니 이런 저런 일들이 있었어 하고...
조력자살에 대한 글도 예상 외의 놀라움을 주었고(특히 커보키안의 조력자살을 받은 이들 중 75퍼센트가 여자라는 부분에 전기 충격), 저자가 스스로도 답을 못 찾은 질문을 잔뜩 할 때는 급 숙연해진다. 장례 사전 준비에 대한 질문들은 중구난방으로 생각이 올라와서 아예 정리가 안 되더라. 머리를 굴릴 수록 질문은 늘어나는데 결론을 낸 답이 하나 없으니, 죽음의 과정에 대해 가졌던 내 생각들의 근거는 이리도 약했던가 한숨이 난다.
고인을 보내는 작업과 사람들에 대한 진심어린 경의가 가득하고, 읽어서 좋았다. 그러나 연말에 정답도 없는 질문들을 이리 많이 토스받다니...어떤 질문은 답이 없는 걸 알아도 일단 던지는 게 중요하지만, 정답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괜히 바라는 것도 사람 마음이더라...


작가 전작도 재미있게 보았고, 비밀강령회라는 단어에 바로 낚였 다. 내가 생각한 비밀과 작품에 나온 비밀에는 차이가 좀 있었던 것은 백퍼 내 사정. 집었으면 그저 끝날 때까지 책장을 넘길 뿐이다.
나쁜 놈은 바로 냄새 풍기니까 그 행적에 놀랄 일은 없고, '있냐 없냐'에서 묘하게 여운 남기지 않고 한쪽으로 명확하게 간다는 게 반전이라면 반전일까('없다니까!'라면서 '그런데 있을지도...'로 가는 이야기가 많으니까...). 그리고 역시 돈독 오른 인간이 초자연보다 훨씬 공포스러버...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보다 레나가 느끼는 감정의 물결에 끌려가며 읽었다. 편히 감정 이입되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상대가 없는 데도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게 되는 심정, 내가 알지 못하던 모습을 알게 될 때의 충격, 툭하면 후회되고 갑자기 밀려오는 화를 엉뚱한 데 돌리는 모습이 참 피부에 스물스물...읽다 좀 기분 처지기도 했다만, 어쨌든 진실은 밝혀지고 주인공들은 앞을 보고 나아간다. 나도 또 하루 열심히 살고 또 다른 책 봐야겄지. 그나저나 작가 홈페이지서 육각 쪽지 접기 보는데 이거 잘 안된다; 왜 에비가 폈으면 다시 못 돌려놨을 거라 생각했는지 바로 이해가 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