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98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
전체보기(455)
사람 관계는 역시 예측불가

'비밀과 협박'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끝없이 나오는 건, 아무리 머리로는 대처법을 알아도 실제로 일이 닥치면 일단 숨기고 보는 게 사람이기 때문일까. 무슨 일 생기면 다른 생각 말고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낫다는 믿음이 굳어지는 것은, 도덕 정신 때문이 아니라 '탄로 나면 내 인생뿐 아니라 주변까지 가루가 된다'보다는 '인생이 많이 피곤해질 것이다'가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이나 연줄이 제대로 있거나, 로또 당첨에 버금가는 운이 있어 들키지 않고 잘 사는 사람들도 세상에 있지만, 난 그런 사람 아니니까...

어쨌든, 이런 내용이니 희망을 버리고, 중반부터는 어떤 불행한 얘기가 나와도 놀라지 않으리라 각오하며 읽었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는 원만한 결말에, '이러고도 평화가 올 수 있구나...' 하며 다른 의미로 놀람. 그리고 꾸준히 떡밥 나와서 놀라울 것은 없던 최종 보스의 정체보다, 인물들 간의 관계 변화가 개인적으로 흥미진진. 홀랑 믿던 이가 발등을 찍고, 못 믿을 것 같은 이와 신뢰 관계와 공감이 생기고, 회복이 안 될 것 같은 관계에 또 회복의 씨앗이 생기고...다 읽고 나니 인간관계 강의 영상 본 기분인 건 나뿐인가. 누가 배신을 때릴지 귀인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인 건 맞으니, 되도록 마주치는 모두와 온건한 관계를 맺으면 좋겠지만...생각만 해도 어려워서 한숨이 나온다. 일단은 없는 사교술은 생각 말고, 몸 사리고 지내는 게 최선인가. 하아...

또 다른 실종자
또 다른 실종자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선생님...

제목이 너무 진리라 홀리듯이 픽. 고문이면 모를까, 설득에 정치적 견해가 바뀐 사람 만나기는 쉽지 않지..."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을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말에 희망에 부풀어 읽기 시작하는데, 읽고 나니 공익을 논하기 전에 당장 스스로를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말을 많이 하고 듣는다는 것이 '참여도가 높다'는 말이 아니고, 시위나 SNS를 통한 정치 활동의 효과가 예상과는 꽤 다르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처음 알게 된 머스크와 슈퍼볼 트윗 사건(?)은 사건 자체보다 '정말 다른 세상이 되었다'는 쇼크도 크고. 정치 신념이란 것이 정체성과도 연결이 되어 있으니 남의 신념은 못 바꾸지만,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이런저런 말을 들어보며 벽의 높이를 어느 정도 낮춰갈 수 있다는 방향 제시는 확실히 현실에 맞는 듯 하고, 단순한 독자 1에게는 꽤 감동적이기도 했다.

문제는 사회적 고립을 다룬 파트. 고립이 가져오는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방지해야 한다는 성실한 고민이 가득한 파트인데도, 불행의 신탁을 받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가. 안 그래도 좁은 인간관계가 세월 지나며 더 좁아져 서글픈 이에겐, 처음 듣는 소리도 아니건만 '인지 부조화 심화, 편집증, 자살, 고혈압, 조기 사망, 치매 etc'라는 설명 아프다...그것도 모자라 혼자 아프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치 참여 저하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인프라가 축소되고, 결국은 사회 전체의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게 된다는 데서 절망. 자발적으로 소위 아싸가 된 것도 아닌데, 후손에게 죄 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참...

갑자기 교류를 왕창 늘리고 관용을 마구 뿜어내며 사는 것은 무리지만, 어쨌든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니 드러누울 일은 아니다. 남의 정치적 견해에 불평하기보다, 일단 들어보면서 내 마음 안의 극단적인 생각을 조금씩 줄여가도록(...쓰고 보니 이것도 허들이 충분히 높구나...아윽) 용쓰다 보면, 지금보단 나을 거야...낫겠...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의 대부분은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 내고 유지하기 위해

한결 같이 노력할 때 일어난다.

물론 이는 힘든 일이고,

다른 대단한 행동에 비하면 지루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정치는 말로 설득되지 않는다
정치는 말로 설득되지 않는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일확천금의 꿈

좀 웃으려고 봤는데 도저히 웃을 내용이 아니다. 목적을 이룬 사람들도, 목적을 못 이룬 사람들도 흥망성쇠 왜 이리 격한가. "그들이 투기에 열을 올린 것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와 제도가 그들을 투기판으로 내몰았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탈출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투기에 뛰어드는 이들은 지금도 있지만, 그 시절 식민지에서 빈곤과 불안에 시달리던 사람들의 절박함에는 비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면 그저 슬퍼진다.

벼락처럼 돈을 벌고 잃는 모습들이 허망하기도 하지만,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고민되는 장면들이 많다. 당장 김기진 파트에서는 이 사람은 운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판단 불가. 일단 큰돈 벌려고 신념도 계속 바꾸고 민족도 버리면서 용을 썼는데도(이렇게 돈 생각에 여념이 없는 사람이 사회주의 타령을 그렇게 오래했다는 게 제일 미스터리...) 꿈꾸던 거대한 부는 일생 손에 넣지 못했으니 본인 입장에서는 한탄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식민지에서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 끌려간 적은 있어도 어쨌든 요리조리 잘 살아남아서 메이저 언론사 주필로 천수를 다했으면 어마무시한 행운아가 맞기도 하고...이하영 부분도 생각한 게 좀 있었는데, 중간에 고종의 정신 나간 꿈에 너무 놀라서 뭔 생각을 했는지 잊어버렸다. 대체 어디서 뭘 어떻게 주워듣고 이런 발상을 했는지 어처구니가 없고, 주변에 정말 말린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가 생각하니 소름 돋는다. 호러 소설도 아닌데 이 무슨 공포!  

  감사히 읽는 와중에도, 저자분의 의견에 살짝 갸웃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이종만은 '30년 동안 28번 실패'했다고 평가되지만, 자금이 모자라서 중단된 적은 있더라도 본인이 원하던 교육과 복지 사업에서 눈을 돌린 적이 없으니까. '기생 혹은 탐관오리의 작부'였던 최송설당에 대한 '그런 부끄러운 과거를 가졌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는 말은 생선 잔가시처럼 걸린다.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직업도 별로 없었고 계급의 잔재는 여전한 상황의 빈곤한 식민지 시기, 선택의 여지가 있어서 기생이 되었을까. 젊은 시절 내내 손님에게 억지 웃음 건네면서 차별은 있는 대로 받았던 사람들 중, 그래도 넉넉히 번 사람이 있다면 다행 아닌가. 당시의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았던 직업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할 때 이게 과연 부끄러운 과거인가 개인적으론 모르겠다.

어쨌든, 한숨도 쉬고 감탄도 하며 조선 투기의 희비를 잘 보았다. 이러고 끝내는 게 아니라 동서고금이 없는 인류의 대과제, '돈을 적절히 잘 쓰면서 돈에 끌려가지 않기'를 달성하려 노력해야 하겠지만...자본도 없고 그릇은 작으니 어쩌리오...크흑.


"투기시장에서

기십만 원 기백만 원의 자금이 없이

큰 성공을 거두려거든

먼저 사람 노릇을 포기해야 한다."

럭키경성 -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럭키경성 -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함께 끙끙대 보아요 쿨럭...

저자의 말처럼, 생각하면 속이 불편한 문제들이 잔뜩 나온다. 그러나 매우 솔직하게 '정답은 없고 저도 몰라요'라고, 함께 생각해 보자고 하면 불만을 말할 수도 없지 않나. 요 근래 읽은 의사분들의 책들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달관하거나 '이런 깨우침을 얻었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같이 끙끙대는 분위기가 색다르기도 하다. 특히, 시신을 되도록 가족에게 안 보여주려고 하거나, 조금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절차나 의료 표현 문제를 비판하기보다 '집단적 실패'라고 설명할 때는 찌릿. "어떤 의사나 간호사도 이런 뒤숭숭한 감정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걸어 잠그는 것이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경험을 탐구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고의로 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판데믹 시기의 뉴스들, 지금도 과로 중이신 헌신적 의료인들을 떠올리면 '의도적으로 환자의 경험을 단절시킨다' 같은 건 상상할 수 없다. 죽음을 접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 멘탈이 자동으로 강해지고 해탈한다는 의미일 리 없다. 오히려 주변이 그에 대한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할 터인데,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경외감이 너무 커서 그런 점들을 잊는 것 같다. 그분들은 의료적 기술이 뛰어난 '한 사람'이라는 걸.

연명 의료, 환경적 개선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다람쥐 쳇바퀴식 의료 등등 많은 문제들에 머리가 아파오지만, 이 답을 당장 개개인이 다 내야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생각하자는 방향이니 마냥 속이 무거운 건 아니다. 한편으로는, 천조국의 소름 돋는 의료 민영화가 제발 한반도에 상륙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감기 진료 받을 돈이 없어 물고기 항생제 사 먹고 응급실 행이라니, 잔병치레 많은 사람에겐 이게 지옥...어쨌든, 뒤돌아서면 까먹는 성향의 내향 독자 1도, 많은 분들의 의견을 읽고 들으면서 생각하도록 꾸준히 노력해야겠다. 특히나,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이 로또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나는 우리의 이상하고 불편한 경험이 무엇인지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고

우리의 세계를 더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이해하려면

이 불편함을 인정하는 방법밖에 없다.

불편함을 인정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그 안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불편함을 인정함으로써

세상일이란 원래 그렇다는 관념을 거부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죽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 어느 응급실 의사의 삶에 관한 기록
나는 어떤 죽음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 어느 응급실 의사의 삶에 관한 기록
인간사와 과학이 꽉꽉 찬 피의 세계

교양과학서인 것은 분명한데, 읽다 보면 진한 사람 냄새도 그렇고 기나 차크라 이야기도 그렇고 (절묘하게 마지노선은 안 넘어가는 수준) 장르가 꽤 헷갈리는 책이다. 어쨌든 재미있으니 장땡이긴 한데...일단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 - 트라우마가 피에도 화학적인 흔적을 남긴다거나, 심장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피가 자율적인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던가 등등 - 도 신기하기 그지없고, 의식하지 못하고 지냈던 당연한 사실들을 보면서 감탄. 혈액 순환과 뇌 활동, 생각이나 감정 표현은 한 세트인데도, 그런 연결 고리들을 평소 잘 생각하지 못하는 건 지식 부족의 탓이리라. 과학 책 진짜 많이 봐야해...아흑.

재닛 마리아 본 선생의 업적에 감동해 이것저것 검색했다가 나오는 게 너무 없어서 다른 의미로 충격받기도 하고, 하미트의 인생 너무 기구해서 차라리 다 뻥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잘 읽었다. 내 몸, 사람들의 몸에 이런 경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존경심을 좀 가져야 할 텐데 과연...뭐, 어려운 생각은 제쳐 두고, 일단은 하미트가 제발 더는 의학책에 나올 일 없는 평화로운 생활을 하기를 기원한다.


"심장의 피가 내적 에너지를 불어넣어줄 때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심장의 피에는,

잘못된 목표를 버리는 용기와

고정된 세계관과

삶의 방향에 집착하지 않는 용기도 들어 있다."

피, 생명의 지문 - 생명, 존재의 시원, 그리고 역사에 감춰진 피 이야기
피, 생명의 지문 - 생명, 존재의 시원, 그리고 역사에 감춰진 피 이야기
복합적인지 엉망인지 헷갈리는 형벌과 그 유산

일반적으로는 분명 가혹한 형벌인데도, 결국 재력과 운빨이 있으면 말 그대로 여행이 될 수도 있으니 설명이 세세해질수록 기분이 묘하다. 책 속에서 대표 사례로 나온 두 사람의 행적도, ‘그냥 옛날엔 이랬어’라고 넘어가기 힘든 부분들이 많아 읽는 마음도 혼란스럽다. 이미 있는 전과 이력도 부족한지, 그냥 궁궐 물품도 아니고 왕의 도장을 훔쳐 쓰면서 안 걸릴 거라 생각한 사람과, 하고 싶은 말 다 해서 유배되었는데 돌아와서 또 하고 싶은 말 다하고 또 유배를 가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인지 쓸 데 없는 고민도 잠깐 하고...하아...   

 유배 간 이들보다, 보조금 한 푼 못 받았던 보수주인들 이야기에 짠해지는 면도 있다. 얻을 게 없는 평범한 죄인까지 재워주겠다는 부자들이 그 당시 지방에 넘치지도 않았을 것이니, 자기들도 겨우 먹고 사는데 안도환을 거둬야했던 집주인 같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겠지. 폭력은 물론 좋지 않지만, 본문 언급만 보면 집주인이 안도환에게 입으로만 뭐라고 하고 넘어가는 것이 참 용하다. 여유라곤 없는 삶에 갑자기 맡겨진 생판 남, 그것도 죄인이 허구헌날 내가 도성에서 얼마나 호강했나 타령하면서 집안일도 안 도와주면 얼마나 미울까. 게다가 나랏님 마음이 바뀔 때까지 동거 기간도 무기한. 다른 의미로 애민정신을 발견하기 힘든 형벌이었더라. 그래도 “백성들의 궁핍한 삶과 착취에 대해 가슴 아파했고, 나아가 지역 사회를 교화하고 지역 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은 물론이고 의술이나 측량, 법률 상담 등 다방면에서 지역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일을 기꺼이 감당”한 선비들도 많았다는 설명이 약간의 구원이다.

 기혼에다 쉰이 넘는 사람이 18~19세 기생에 홀랑 빠져 정신 못차리는 것을 '남아의 천고사업'이라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따지면 끝도 없는 시대의 한계이니 패스. 어쨌든, 가혹하면서도 빠져나갈 구멍도 무궁무진한 이 형벌이 지방에 학문과 기술을 보급하는 데도 일조했고, 지역 문화의 기록을 남기는 데도 기여했으니 정말 세상 모든 일들은 어디로 굴러가 무엇을 남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매사에 정성을 들여야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는데...평범한 독자 1에게는 허들이 좀 높...쿨럭...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 - 낯선 장소로 떠남을 명받다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 - 낯선 장소로 떠남을 명받다
긴장 뒤 날아오는 훈훈함의 KO 펀치

드론 조작과 안내 과정이 이렇게 사람 손에 땀 나게 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해야 한다'와 '할 수 없다' 사이의 방황, 장애와 비장애의 이야기까지, 300쪽도 안 되는 책에 얼마나 농축이 잘 되었는지 읽는 내내 감탄. 아직 끝까지 읽지도 않은 시점에서도 영상화를 기대하게 될 정도로, 사람 쪽 빨아들이는 재미가 넘쳤다. 오우~

후반으로 갈수록, 구원하는 이와 구원받는 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이미 감동할 각오(?)는 마쳤다. 하지만 결말의 히로미의 모습이 주는 임팩트는 예상을 넘어섰으니, 잠깐 사레 들린 뒤에 속으로 함성 또 함성. 이렇게 온기 넘치는 대충격이라면 얼마든지 날려 주세요 어흑흑...

세상도 나를 포함한 개개인도, 조금만 어긋나면 한없이 차가워질 수 있다는 걸 알지만...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보고 나면, 타인을 돕는 것이 자신을 구원하는 행동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믿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 한 권의 약발은 조금은 길게 갈 듯.


"진실은 더 아날로그적이고

흙냄새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었다."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아리아드네의 목소리
다른 의미로 놀라운 밥상머리 정치

예전 임금들보다 지금 서민들 쪽이 다양하게 먹는 즐거움을 누린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통치자가 하늘이던 시기 그들이 얼마나 잘 먹었는지 좀 보려고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예상 외의 정치적 신경전과 끝도 없이 나오는 부정부패에 매우 당황. 뭐지, 이 알차지만 밥맛 떨어지는 지식들...

두껍지도 않은 한 권에 사람 지치게 나오는 환관 - 유림 사이 파워 게임에는 밥 말고도 수많은 요소들이 얽혀있지만, '역시 사람은 자기 밥상 차려주는 이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교과서의 사진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종의 단식 이력이나(독일식 케이크를 즐겼다는 언급을 보면, 단식 후 요요가 어떻게 왔을지 알 것 같다), 유자광이 그냥 기이한 정치가가 아니라 왕실 음식과 임금의 매 끼니를 담당했었다는 것(역시 여러 의미로 위대한 밥상의 힘...), 부패의 유혹과 업무 외 잡무에 시달리는 요리사들 등등 신기하고 한숨 나는 이야기들에 페이지가 언제 다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머릿속의 성종 이미지가 좀 바뀌었다. 감선하는 태도도 그렇고, 아들내미가 이렇게 장기간 털어먹을 재화를 비축해 두다니, 법률만 전문인게 아니라 재정 관리 능력까지 톱클래스가 아닌가. 한국사 책들 좀 다시 보고 확인해야겠다는 의무감도 덩달아 샘솟는다. 

예나 지금이나 구멍 난 시스템도 이런 저런 요소들이 맞아떨어지면 기막히게 오래 간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하기도 하면서, 궁궐 부엌 사정 잘 보았다. 그리고 다음엔 정말 궁중 음식 책을 보고파...

왕의 밥상 - 수라와 궁궐 요리사 그리고 조선의 정치
왕의 밥상 - 수라와 궁궐 요리사 그리고 조선의 정치
보기 드문 신비주의(?) 주인공의 사건 정리

슬쩍 속표지의 작가 이력을 보며, '변호사인데 소설도 잘 쓰는 사람이 또 있다니...' 라고 조금 놀란다. 재능의 불공평한 분배 사례가 또 있군. 어쨌든 뭔가 있겠다는 마음에 집었는데, 진짜 뭔가 있었다. 주인공이 있는 시리즈물에서 클라이막스 파트까지 주인공 대사는 커녕 정보가 거의 없는 이 신박함...마지막까지 '양복을 잘 다려입는지, 승률이 얼마나 되는지' 등등의 정보는 하나도 없지만, '자신'이 아니라 사건을 논하는 문장들에 무쓰기의 성격이 잘 녹아나와 충분히 호감을 갖게 된다. 검찰의 주장과 변호사 주장이 설명될 때는, 간략하고 보기 쉬운 정리에 잠깐이지만 '소설로 보는 재판 진행' 특집기사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인 것도 개인적으로 굿.

그렇다고 마냥 즐거워하며 읽을 내용은 도저히 아닌 것이...초반의 진술들이 죄다 불쾌해서, 누구의 말이 진실이라도 속이 시원해질 길이 없다. 그렇다고 뒤에서 햇살이 비추는 것도 아니고. 무쓰기의 결론을 읽고 나면 아무리 가상의 인물이라도 연약한 아이가 너무 가여워서 범인에 대한 분노를 잊을 지경이니. '일단 뒤집어쓸 놈 찾아야 한다'라는 건 익숙한 범인의 기본 소양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도덕(?)이 이렇게 없다니! 하나씩 따져보면 무쓰기에게도 약간 성질이 나긴 하지만, 직업의 본분에 충실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이 변호사를 미워할 수는 없다. 어쨌든 분노가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하면 복수 계획을 짜는 게 아니라 정신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것, '이러면 복수가 되겠지!'라고 머리 굴리고 일을 벌였는데도 상대방에겐 별 타격이 없고 이쪽만 남는 것 없는 뻘짓될 수 있다는 교훈도 잘 전달받았으니 오케이. 다음 이야기가 어떤 내용일지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쓰기의 상세정보가 공개될지 매우 궁금해서 속편들 꼭 봐야겠다. 

패자의 고백
패자의 고백
읽을수록 심란한 초창기 주식거래

부제를 보고 볼까 말까 좀 고민했다. 직업과 노동은 모두 귀한 것이지만, 이 분야에 대해 '가장 유용하고 공정하며 고귀한 사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 하지만, 자랑스럽게 그렇게 써놓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해서 읽기 시작했다.

당연히 한 분야의 초창기와 몇 세기 후의 상황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당연히 최근에 생긴 상품들이겠지' 생각했던 대부분이 이미 그때 다 있었다는 데서 꽤 놀랐다. 지금도 위험한 대규모 투자가 그때는 더 위험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사람이 투자든 뭐든 한 번 꽂히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건 시절이 상관없는데다, 주변인들까지 똑같이 행동하면 위험에 대한 감각을 잃는 모습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투자하다 망한 조상님들 숫자가 더 많은 데도, 돈 번 조상들만 생각하며 꿈을 꾸게 되는 것도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 와중에, 평균 수명이 50세 남짓하던 시절이라 가능한 기막힌 해결책에 충격. "여기서 이사들은 한 가닥의 희망을 또 찾아냈다. 소송에서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시간이라도 최대한 끌어보자는 것이었다. 재수 좋게 그 기간 안에 죽어버리면 돈을 물어줘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대단하십니다. 법을 빠져나가려 할 때는 다들 천재가 되는 것도 동서고금이 없어...하아. 게다가 세상이 온정으로 돌아가지 않는 걸 알고도 남을 나이에도,  "국민 열 명 중 한 명이 죽는다는 건 아주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나머지 90%는 역병이 돌기 전보다 더 부유해졌다는 뜻이다. 유산 상속 등으로 없던 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같은 조용한 팩트는 보면서 살짝 소름 돋는다.

세상에 자금줄을 회전시킨다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VOC와 투자자들의 분투와 희비를 보고 난 뒤에도 여전히 부제의 의미는 와닿지 않는다. 그래도 역자분의 글, 한국어판 부록인지 원서에도 있는지 확실치 않은 박연과 하멜 이야기(둘 다 VOC 소속인 줄은 몰라서 깜놀. 산재도 없는 마당에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취직해야 하다니, 역시 제일 좋은 시절은 현재...)까지 전체적으로 놀라운 이야기들을 보고, 툭하면 까먹는 금융 용어도 복기했으니 만족하며 종료.


"17세기 암스테르담의 주식 파동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이 주식 거래의 위험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금융 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 - 가장 유용하고 공정하며 고귀한 사업의 역사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 - 가장 유용하고 공정하며 고귀한 사업의 역사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도서 증정] <문제적 여성들의 북클럽> 번역가와 함께 읽기잃어버린 나와 내 로맨스의 복원🛠️『사랑도 복원이 될까요?』함께 읽기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송승환 시인과 함께 시를 읽습니다
[문학실험실/신간] 송승환 시집『파』(문학실험실, 2026) 출간 이벤트. 시집 완독회!송승환 시인. 문학평론가와 함께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읽기.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 읽기 모임보들레르 산문 시집 <파리의 우울> 읽기 1
새벽엔 느낌 좋은 소설로 하루 시작해요
[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느낌 좋은 소설 읽기] 2. 오버스토리
버지니아 울프의 다섯 가지 빛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그믐연뮤클럽] 7. 시대와 성별을 뛰어넘은 진정한 성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아티초크/책증정]버지니아 울프의 가장 도발적인 에세이집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4월 16일, 체호프를 낭독합니다
[그믐밤] 46. 달밤에 낭독, 체호프 4탄 <벚꽃 동산>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그믐밤] 43. 달밤에 낭독, 체호프 2탄 <세 자매>[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
싱글챌린지로 읽었어요
아니 에르노-세월 혼자 읽기 챌린지숨결이 바람 될 때MT 법학 싱글 챌린지밀크맨 독파하기
스토리 탐험단이 시즌 2로 돌아왔어요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10번째 여정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스토리 탐험단 9번째 여정 <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스토리 탐험단 8번째 여정 <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
유디테의 자본주의 알아가기
지긋지긋한 자본주의왔다네 정말로 자본주의의종말
제발디언들 여기 주목! 제발트 같이 읽어요.
[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7) [제발트 읽기] 『토성의 고리』 같이 읽어요(6) [제발트 읽기] 『전원에서 머문 날들』 같이 읽어요[제발디언 참가자 모집] 이민자들부터 읽어 봅시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동구권 SF 읽어보신 적 있나요?
[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9.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8.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그믐의 흑백요리사, 김경순
브런치와 디저트 제대로 만들어보기ㅡ샌드위치와 수프디저트와 브런치 제대로 만들어보기솥밥 제대로 만들어보기
혼자 읽어서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
웰다잉 오디세이 1분기에 이 책들을 읽었어요
[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2. 죽음을 인터뷰하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독서모임에도 요령이 있나요?
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밤] 7. 북클럽 사용설명서 @시홍서가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