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범죄 논픽션이 다 그렇긴 하지만, 컬트 이야기들은 수위가 상당하니 정신 건강을 생각하면 건드리지 말아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벌써 표지부터 어두움이 뭉게뭉게. 그러나 조금이나마 집단 내 기묘한 신뢰에 대한 힌트나, 타겟을 설정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싶어 결국 손을 댔다. 이유는 아직도 모르지만 한때 종교 권유하는 이들에게 거의 매일 쫓겨 다니고 집에서 거울 보며 '이게 호구의 상인가 ●○...' 자괴하던 기억들이, 어느새 머릿속에서 '피하고 싶은데 또 알고 싶은' 모순된 생각과 한 세트가 되어 있으니 이런 부분들을 좀 정리하고 싶다는 기대도 있었고...분명 느끼는 바가 있으니 읽은 보람은 있는데, 뒷맛 참으로 찝찝하다. 어쩌냐, 읽은 걸 도로 무를 수도 없고, 읽은 데서 최대한 교훈을 찾아야지.
"그들은 상심한 상태였다. 그들은 가족을 잃었다. 그들은 대학이나 직업, 인간관계에 잘 맞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것을 두고 떠났다. 그들은 친절했다. 그들은 괴짜였다. 그들은 멀게 느껴졌다." 착잡하다. 다양한 컬트 집단의 확대 과정과 참가자들을 살펴보니, 표적이 될 여지가 살면서 한 번도 없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들겠다는 생각만 든다. 게다가 뭔가 좋지 않은 요소로 인해 자존감이 결여되어 행복하지 못한데, 그 때문에 컬트에 회유되어 더 불행해지는 이 악순환...그리고 짐 존스가 한국인 고아들을 입양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아서 눈 튀어나올 뻔. 사람은 대체 얼마나 불행할 수 있는가! 가난한 조국의 고아라는 것도 모자라, 나라가 보내버린 곳이 이런 곳이라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지만, 이런 면이 정녕 개선되긴 했을까. 다방면으로 울적한 이야기들로 읽는 멘탈은 계속 흔들린다.
마음에 어두운 손길이 들어올 틈을 만들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 끄적이기야 쉽지. 미련과 열등감을 떨치고, 나르시즘을 가진 사람을 경계하고, 권위 있는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지 않으면서 내 실패는 온전히 내가 껴안고 가는 것. 그러나 이게 머리로 안다고 되고 원한다고 되는 거면 이런 책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을. 아무리 절실해도 용기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은 쿠팡에서 살 수 없으니, 삼일마다 자기계발서를 읽든 실컷 덕질하며 어두운 생각할 시간을 없애든 멘탈 다잡으려 용쓰는 수밖에...하아...


시신 찾기 버전 레디 플레이어 원인가 했는데 그런 얘기 아니었다. 시신의 존엄을 생각하면 아니어서 다행인가 싶기는 하고...어쨌든, 도입부 지나친지 얼마 되지 않아 왜 죽었는지보다 대체 결혼을 왜 했는지가 최대의 의문으로 다가온다. 액자소설을 보면서 혹시 이게 남편과의 연결고리인가 빈곤한 상상력 겁내 굴리다가, 마지막에 진상을 보고 나니 맥이 탁 풀림. 블로그 글 속 어린 우정이나 선배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찜찜함만 더할 뿐이다. 계획대로 다 되긴 했지만, 오래오래 스스로의 삶도 갉아먹으면서 하는 복수는 정녕 달성감이나 기쁨이 있는 것인지...해결사가 빌런을 족치는 카테고리의 작품이 아니니 어쩔 수 없지만, '의도적으로 나쁜 놈을 더 나쁜 놈으로 만들기'라는 소재는 마주칠 때마다 매우 피곤하다. 생각은 많아지는데 깨끗하게 답도 안 나오다보니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서...항상 뒷맛 씨원한 얘기만 읽을 수도 없긴 허나, 독자1은 주먹과 총알로 정면에서 악을 아작내는 픽션이 훨씬 마음 편하다. (실제로 일어난다고 가정하면 이쪽이 훨씬 비윤리적일지도 모르지만...에잇 몰러)
드라마도 있다길래 검색했는데, 고교 시절 연기하는 배우들이 참 풋풋하고 이뻐서 오히려 볼 엄두가 안 난다. 이런 아가들이 소설 내용 재현하는 거 봤다간 심약한 어른 심장에 안 좋으니, 얌전히 총질하는 영화나 찾아보면서 멘탈 냉방이나 해야지 후으...


경성 백화점에 이어 경성 주택 이야기가 나왔으니 안 볼 도리가 없다. 한옥과 양옥 사이 어딘가에 있는 그 시절의 집들 이야기도 재미있는데다 사진도 잔뜩이라 지루할 틈이 없음. 시작부의 여성지 좌담회 내용부터 열기 엄청나다. 기존 가옥 생활의 각종 불편함을 토로하는 말들에서 거의 한(혹은 빡)이 느껴지는 데다, 열심히 설계해 제시해도 돈 내는 집주인이 "내돈주고 내집 짓는데 내 맘대루 하지 무슨 소리냐" 라고 하면 끝이라는 건축가의 한탄까지, 실소가 나오면서도 폭풍 같은 변화의 원동력은 역시 '이렇게는 못 살겠다'구나 새삼 생각함.
갑작스럽게 서양식 건축이 들어오고, 일본식 방 구조도 끼어들어 바쁜데 온돌은 포기 못하겠고(한반도의 겨울 생각하면 두 손 모아 공감할 수 밖에 읎지) 세대 차이와 식민지의 현실이 골고루 끼어드니 재미있었다가 서글프다가 정신없다. 『신혼일기』의 뒤주 치우기를 둔 고부 갈등 왜 이리 웃픈지...생각 외로 심오한 안방의 기능 변천도 놀랍지만, 깜짝 놀란 건 장롱 플렉스. 번쩍거리며 늘어선 사진들을 보니 과연 그랬겠다 한 방에 이해가 간다. 그렇구나, 어르신들 쓰시던 육중한 그 장롱들(이사 따윈 하지 않는다는 의지가 풀풀 풍기는)은, '쌍스럽다', '더럽다'는 비난을 받아도(선비 문화가 남아있던 시절의 단어 구사가 훨씬 원색적인 걸 보니, 오늘날 날선 댓글들도 뿌리가 없는 게 아니다) 포기할 수 없던 명품들이었구나...
가족용 식탁이 가져온 집안 내 위계질서 혁명, 의외로 종류가 엄청난 마룻바닥 디자인에 느닷없는 일본산 마욜리카 타일, 한반도 유리 생산의 슬픔 등등 흥미진진하지 않은 페이지가 없다. 새롭고 사치스러웠던 것들이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민들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게 되는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 괜히 감동.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금방 더운물이 콸콸 쏟아지는 오늘을 사는 것"이 축복이라는 본문의 언급처럼, 사진 속의 널찍한 대형 주택에 살지 않더라도 냉장고뿐 아니라 전자렌지까지 두고 집에서 냉온수 쓸 수 있으니 부러울 것이 없다. 서재는 솔직히 좀 부럽지만, 휴일에 바닥에 뻗어 가끔 호떡처럼 몸 뒤집으며 책 보는 재미는 서재 없는 서민의 것이니 뭘 더 바라리.
그나저나 다음엔 경성의 무슨 얘기가 나오려나. 책 나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기대 뿜뿜이다. 뭐가 되든 재미있겠지, 음음!


표지와 크기가 깜찍해서 넘어갔다. 나 너무 쉬운 독자인가 자괴감은 들지만, 이런 생각하고 집어든 사람들이 있..겠지. 있을 거야...단순한 우연이지만 읽는 동안 비가 오기도 하여, 탁월한 선택 했다고 혼자 흐뭇했다 흐흐흐.
제국주의 이야기에 기분이 확 상하기도 하지만, 우산이 영국에서 초창기 받았던 모욕이나 여러 소설에 언급된 우산 장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려 채식주의자 인용 보고 깜놀. 논픽션 책에 '사람들이 충분히 접할 수 있을 예시'로 디킨스와 나란히 인용될 정도의 이 위상, 우왕 굿~!
의외인 내용은 우산과 성적 요소의 연결. 사람이 말만 잘 하면야 의미를 연결시킬 수 없는 일이 없지만, 우산과 성이라니 왜 이리 어색한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 챕터를 할애할 분량이 나오는 것이고, 읽어보니 그럴 듯 하긴 한데...그럼 전자렌지나 에어컨은? 책이나 책장은? 어렵다 어려워. 비 피하기도 바쁜데 우산 쓰고 이런 생각까지 할 수 있다니 이것이 인간의 위대한 상상력이로다.
비싼 우산을 만들며 중노동에 허덕였던 이들의 이야기나, 내면을 드러내는 장치 역할 같은 것들을 주의 깊게 곰씹어야 하겠으나...사르코지 우산에 하트를 강타당한 탓에 어찌될지 모르겠다. 탁자를 부술 수도 있다는 설명에서 이미 홀랑 넘어간데다, 검색하니까 와 뭐냐 이 환상적인 성능! 칼도 막고 불도 막고 몽둥이질도 할 수 있는, 존 윅네 현관에 있을 듯한 이런 멋진 우산을 사르코지가 가지고 있었다니 갑자기 질투심이 활활 타오른다. 그리고 고가이긴 하지만 집이나 차보다는 싸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면서 머릿속 나홀로 전투 시작. "야 정신차려, 킹스맨이야 뭐야 천 유로짜리 우산이 웬말이야! 그럴 돈 있음 건강검진 유료 추가 옵션이나 받지?" "요새 저 가격 이하 가전제품은 있는 줄 알아? 하나 있으면 화염도 뚫고 나갈 수 있어. 이건 엄연히 보안 투자야!" 답은 안 나오고 고뇌는 계속된다. 물욕에 사로잡히지 말고 다른 내용들이나 잘 기억해야 할텐데, 당분간은 이 번뇌 떨치기 어려울 듯. 아아 케블라 우산, 아아...


많은 범죄 영화들과 소설들이 약점은 한 번 잡히면 끝이라고, 거짓말은 하나 숨기려다 수습 불가능한 핵폭탄이 된다고 계속 말하지만 그 교훈이 먹혔으면 애초에 이런 작품들이 존재하지도 않겠지. 집들이 장면부터 뭔가 불안하더라니, 일이 딱 터지니 앓는 소리만 절로 나온다. 이제 클라이막스까지 기분 나쁜 땀 흘릴 일밖에 없구나 아오! 감찰관인데도 악역이 아니라 상식인 포지션인데다 훈훈한 남매의 모습까지 보여준 카타세에게 남은 기대를 걸었으나, 어설픈 기대와 한숨의 양은 비례한다는 것만 다시 확인...아이고야.
결말이 살짝 의외긴 했는데, 대놓고 배드엔딩보다 슬쩍 돌린 배드엔딩이 더 찝찝하다. 잠시 정신 돌아왔던 아버지의 말도 정확한데다, '누가 봐도 유죄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감도도 좀 떨어지고...법 잘 모르는데다 물 건너 이야기라고는 해도, 누가 봐도 정당방위로 위기를 벗어난 사람이 '앞으로 취직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평생 손가락질 받으면서 살고~' 라는 생각을 해야만 하는 것이 SNS 여론 재판의 시대인건가? 너무 간 설정이라고, 소설이라 다행이고 현실은 안 이럴 거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은데, 실제로는 어떤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공포로 다가온다. 그런 생각 안 하고 집었는데 이게 진짜 납량 특집이었구만 ○●□. 마무리를 봤을 때 속편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단죄가 된다고 기분 시원해질 내용이 전혀 아니니까 속터짐 지수만 더 올라갈텐데도 안 볼 생각은 없는 스스로가 어이없음. 이러다 안 나오면 어쩔라고 김칫국을 마신대냐. 그냥 다른 책 보고 입가심이나 하셔...


이 책의 감상문을 써도 되는가 고민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며 '그래 이거 중요했는데 까먹었네' 하고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니 일단 적기로 했다. 진땀 흘리며 읽었는데도, 분량이 꽤 있는 함수 파트를 이해할 수가 없는데다 후반부 함수 파트는 이해하려는 노력마저 포기하고 펄렁펄렁 넘겼기 때문에 '이 책 읽었습니다'라는 말을 당당하게 할 수는 없음. 코딩도 잘 모르니 어떤 페이지는 검색을 하고 하고 또 하는데도 긴가민가고, 독서 메모에' ○○페이지 : 중요한데 이해하지 못함'을 쓰고 앉았고 ●□...게다가 휴대성 제로인 책이라(어깨와 가방을 위협하는 외관) 책상에서만 읽느라 시간도 오래 걸렸고, 이거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 오랜만에 해봤다. 쓰고보니 뭔 독후감이 하소연이 반이여. 그래도 본문에서 강조하는 '검증'에는 미치지 못할지언정, 내 지식 수준이 '비트코인은 기초적인 지식만 알아요'가 아니라 '비트코인 완전히 잘못 알고 있었네요'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으니 안 봤음 어쩔 뻔.
투자라는 단어와는 백만 광년 떨어진 삶을 살고 있음에도, 비트코인이란 실험적인 화폐가 가져올 미래가 약간 무섭기도 하면서 기대된다. 역사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통화량 고정의 시대의 도래...비트코인이 지향하는 이상은 굉장히 대단하다고, 억압받지 않고 안전하며 모든 이를 위한 화폐, 전쟁까지도 방지할 수 있는 화폐를 모두가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공감도 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 세상을 생각했을 때, 투기나 사기를 모두가 포기하는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믿을 수가 없고, 법정 화폐 규모가 축소는 될 수 있어도 없어지는 사태를 정부들이 손 놓고 보고 있으리란 생각도 안 든다(비트코인 체제를 공격할 수 없으면 보유자 마녀사냥을 할 것이고, 이런 방면에선 온세계가 선진국이니깐...). 그래도 요 몇 년간 세상에 일어난 혼란들 속에서, 비트코인이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 걸 보니 조금 찡해짐. 부분적으로나마 이상은 구현될 수 있구나...개인키의 보관 문제는 고민이 필요하지만, 당장 비트코인으로 바꿀 여유자산도 없으니(규제 때문에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비트코인 구매 가격이 비싸다는 충격적인 언급을 떠올리면 더 그렇다. "자유에 대해 무관심한 우리들의 잘못도 있다"는 해설을 보니 남의 탓도 할 수 없고 참...) 천천히 생각하면 되겠지. 지각 수용자가 되면 기회 날린다고도 서술되어 있으나, 이미 충분히 늦었고 환율 보면 1코인도 가까이 하기 너무 먼 당신이라서...
비트코인의 시스템과 더불어, 금융과 보안의 역사도 들여다볼 수 있고, 코인으로 사기치려는 기업들을 어느 정도 걸러낼 수 있는 기준도 알았고(이 기준도 뛰어넘는 궤변을 준비하는 사기꾼들도 생겨나겠지만...), 돈을 돌같이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돈을 통해서 세상에 평등을 구현하려는 이들에 대해 조금이라마 알게 되어 기쁘다. 설마 그런 세상이 올까 생각하면서도, 설마가 사람 잡을 수도 있지. 나중에 이 글을 다시 읽어볼 때 과연 어떤 메모를 하게 될지,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슬쩍 떨린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처음 만들었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비트코인을 만들어간다.
모든 사람이 사토시이다.
그러므로 비트코인은 사람들의,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을 위한 돈이다."


언제나처럼 제목에 낚였다. 과도한 욕구를 자제하고 현실에 눈을 맞춘다는 건 체중 감량처럼 평생 과제지만, 이젠 체중에 대한 관심은 떨어지는 반면(어디까지나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지 문제는 그대로) 이쪽은 우선순위가 점점 높아지니 좀 도움도 받고 싶고...
분명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의 말이고 고개도 끄덕거리며 읽었지만,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꽤 있었다. 원서가 2005년도에 나왔고 번역도 나온지 십 년이 넘었으니 세월 탓도 있지만, 썩어도 준치 레벨의 복지를 제공받을 수 있는 환경(+ 실직 상태인데 더 받을 수 있는 실업 급여를 자발적으로 중도포기할 수 있는 형편)에서만 가능한 게 아닌가 싶은 부분들도 있어서...애초에 현실 수용하면서 만족을 찾자는 얘기지 가난을 해결하자는 얘기가 아니니까 이런 거 따지면 안 되는 건 알지만, 가난 사파리에 나오는 사람들한테 이런 얘기 잘못 했다간 맥가이버 나이프가 날아올 것 같은데...그리고 내가 휴양지에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휴가를 휴양지로 떠나는 사람들을 무시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일 년 중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시간, 일상에서 벗어나 내가 주인공인 영화를 해변에서 자비로 촬영하겠다는 걸 뭐라고 할 것까지야...그 사람들도 여유가 더 있으면 저자가 권하는 '5~6주 이상 현지를 체험하는 멋진 여행'이 가고싶지 않을까. '물론 그런 여행을 1년에 네다섯 번씩 할 수는 없다'는 대목에서, '평생에 네다섯 번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라고 책에 대고 꿍시렁. 그리고 비디오게임에 대한 참 흔한 비난은 여기에도. 테네이셔스 디 말마따나 ●□ 인크레티블 져니가 될 수도 있는데, 열린 마음 중요시하는 분들도 왜 게임은 해보지도 않고 비난하는지 나이 들어도 모르겠다. 명작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고뇌에 찬 노동을 하는 게임 크리에이터들의 인생까지 매도하는 거 아닌가...
어쨌든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뿌리까지 거슬러 올라가 패배를 수용하는 자세를 말하거나(최근 독서에서 꽤 감동을 주었던 이슈트반 세체니가, 갑자기 저자 고조부로 소개되는 데서 기절초풍할 뻔...) 저자가 만난 희한한 인물들, 오리가르히 까는 농담 등등 좀 웃으면서 마음의 부담이 좀 덜어지는 이야기들 많았다. 그리고 맞는 얘기 같은데 괜히 혼자 슬퍼지는 이야기도..."친구들이 모여드는 집을 가진 사람은 부유하다. 그리고 가슴 답답한 비 오는 날에 찾아갈 수 있는 친구를 가진 사람도 부유하다." "아무리 통장이 적자 상태이고 집이 협소하더라도,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사람은 식사에 손님 초대하는 기회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물심 양면으로 부유해질 일이 없겠구만 쩝. 손님 앉을 공간에 책이나 더 쌓지 뭐.
곰곰이 따져보면 다들 마음 어딘가에서 알고 있는 팁들이 대부분이지만, 한 사람의 삶과 독일식 유머가 섞이니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이렇게 또 한 번 환기했으니, 약발이 더위 가실 때까진 들었으면 좋겠는데 과연?
"하지만 우리는 유일하게 유희와 농담을 즐기는 능력만이 우리에게 남아 있기 때문에, 오직 그것만이 구원임을 안다."


권두의 사건 현장 미니어처에서 이미 넋이 좀 나간 상태서 읽기 시작하는데, 내용에도 놀랄 포인트가 한 두개가 아니다. 일단 세간에 매우 드문, 부와 열정과 능력 발휘가 세트가 되는 경우를 보는 건 좋은 놀라움이고, 시대가 시대니 유명인들의 까메오 출연(?)이 상당한 것도 괜찮은 놀라움이다.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 당시 이집트의 법의학 수준 설명을 보며 '분명히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이집트 소설이 있을텐데!'라며 접근 방법이 없는 걸 억울해하기도 하고...
그러나 과학수사가 걸음마하던 시절, 경찰들의 개판 수사와 완전 합법적 엽기 범죄자들 집단이었던 코로너들 행각에는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고 몸이 움찔한다 ○●...제발 이런 또라이같은 작태가 천조국에만 있었다고 누가 얘기해줬으면 좋겠는데, 확인했다가 그게 아님 어떡하나. 괜히 안 좋은 쪽으로 불안해지기까지 하니 이미 세상에 없는 물건너 ■□들에 대한 원망은 더욱 커진다. 생각보다 은혜를 빠진 눈썹털마냥 하찮게 여기던 하버드 대학도 깝깝하기로는 비슷하니, 프랜시스가 그 많은 돈으로 킬러들을 고용하지 않고 꽤 유연하게 떡고물 뿌려가며 정치했다는 게 존경스럽기까지 함. 미니어처 사진 보며 왕년의 CSI 에피소드부터 떠올린 탓인가, 논픽션 읽으면서 '이놈도 제거하고 저놈도 제거하고...' 꿍얼꿍얼하는 황당한 독자가 여기 있다 쩝...
어쨌거나 프랜시스와 매그래스가 안 만났으면, 매그래스 걱정대로 법의학의 맥이 끊기고 이미 고전이 된 본즈나 스카페타 시리즈는 아직 출간도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사고를 당하면 진실 규명은 커녕 시신 담보로 담당자가 뭔 짓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떨어야했겠지. 명석함과 손재주와 상황 파악 능력, 미친 재력까지 골고루 가진 말도 안 되는 사람이지만 이정도로 후대에 남긴 게 많으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이야기 꺼낼 기분은 들지 않는다. 이제 없으면 큰일나는 법의학의 발전을 위해 할 만큼 했고, 직접 가서 보지는 못하더라도 유튜브로 엿볼 수 있는 끝내주는 디오라마들도 남긴 프랜시스 경감님에게 큰 박수 짝짝짝.
"내 목표는 사법 행정을 개선하고, 기법을 표준화하고, 기존의 도구를 벼리고, 경찰관들이 '제대로' 일을 해내며 대중에게 '공평한 대우'를 해주도록 돕는 것뿐입니다. ... 아무튼, 우리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부디 모든 것이 침체되고 사라지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표지의 선전문구에는 의구심이 좀 생긴다만, 근사한 표지에 홀려 일단 오픈. 단어들 설명 보며, 크게 생각하지 않고 매일 사용하는 말들이야말로 일종의 마법인가 새삼스럽게 생각해봤다. 의미들을 바꾸어가면서 천 년 이상, 짧아도 몇 백 년 이상 살아서 역할을 다 하는 무언가라니. 그렇게 따지면 한 마디 한 마디 경건하게 써야하는데, 잡생각 과다 보유자에겐 좀 무리...
정착된 단어이고 딱히 대체할 말도 없는데 괜히 어원을 보니 찝찝한 단어(때로는 몰라서 속편한 일들이 있지...), 생각보다 역사가 짧아서 놀라게 되는 단어들, 처음 생겼을 때는 꽤나 심오한 뜻이 있던 단어들 등등을 감탄했다가 정색했다가 하면서 잘 보았다. 사용해본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어쩌다 마주칠 때는 개화기 때 들어온 단어려나 추측했던 ‘젬병’이 ‘전병 망친 것’이라는 이야기가 개인적 깜놀 1위. 그리고 뭐 이런 엄청난 사람이 다 있는가 싶은 이선란 선생 오오. 검색하니 짧은 소개문만으로도 경력 참으로 화려하시다. 한 사람의 불타는 수학 사랑에 이 많은 용어들을 빚졌다니 놀라울 뿐. 학생 시절 종료되자마자 수학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면 아마 감사함이 더했겠으나, 일단 지금은 감탄만...
어쨌든 오래 버팅긴 단어들은 유래만 재미있는 게 아니라 그 적절함이 세대를 아우른 다수에게 인정받은 것이니, 인류의 발명품이 인류 이상으로 대단한지도 모르겠다. 시간 지나 이 책을 봤다는 것도 까먹을지라도, 며칠 정도는 존경심을 담아 단어를 구사하려 애써봐야지. 그리고 젬병이란 단어를 언급해본 인생 첫 글이자 아마도 마지막 글일테니 나름 기념비적(?) 독후감이다 허허허.
“연극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연극이나 영화에서 쓰는 '주인공(主人公)'이라는 말도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불교에서는 '선을 수행하다가 득도를 한 사람'을 '주인공'이라 했다. 득도가 목적인 곳에서 하기 힘든 득도를 했으니 그 안에서 으뜸인 사람임이 분명하다. 모든 무대에서도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이 있으니 그이의 이야기가 바로 연극이나 영화 또는 소설에서 중심이 되어 서사가 진행된다. 우리도 인생이란 무대에서 내가 주인공인 삶을 살고 있다.”


표지나 권두에 사진 자료들을 보고, 폐허 속 회복하는 자연이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예상했고 저자도 ‘복원이 아닌 구원’을 얘기했는데...일이 그렇게 쉽고 행복하게 굴러갈 리는 없지. 이미 몰락하고 시간이 지난 지역들 이야기도 어두운데 현재진행형인 경우는 속에 고구마가 꽉 들어찬다. 게다가 인간이 얼마나 파괴적인 일을 다양한 방법으로 하는지, 이런 이야기들이 익숙하다 못해 심드렁해질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새로운 놀라움이 있어 황당함.
버려진 곳들에 자연 풍경이 돌아온다고는 해도, ‘어머 깨끗한 자연이 돌아왔네 박수!’가 아니라 사람들이 괴롭히지 않는 장소에서 생물들이 모여 각종 오염물질에 버팅기며 살아남으려고 기를 쓰는 것이니...자연의 위대한 적응력은 실감했지만, 여기에 모든 걸 맡기기엔 인간이 벌여놓은 게 너무 많으니 좋아할 기분이 안 든다.그리고 후반부에 언급된 옐로스톤국립공원 분화가 일어나는 날엔 이런 생각할 틈도 없이 동사 아님 아사하겠지. (쪄죽을 것만 걱정했지 이 경우는 몰랐네...) 이런 정보들을 보고 있자니 개인이 환경을 걱정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맥이 풀린다. 메리 셸리 작품들이 불안한 독서 경험을 안긴다고 플린 선생은 말하지만, 선생님, 이 책이 저에게 불안한 독서 경험을 안겨주는뎁쇼. “이 장소, 이 메데이아적 풍경을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한 장면이자 경고로, 그 전조로 바라보지 않기란 어렵다. 세상의 종말, 먼지의 시대가 시작될 조짐이다.” 아아...
그렇다고 ‘우린 다 망할 거야 예이!’하고 포기하고 다리 펴고 잘 수도 없는 노릇이고, 플린 선생 말대로 허무주의를 피하면서 자제하는 법을 찾아야하긴 하는데...(자다 소한테 밟혀죽을 수 있는 곳까지 혈혈단신 다녀온 이의 말이 가진 설득력은 장대허다) 일상 속 사소한 노력 말고, 정말 인류가 한 발 물러서는 데 내가 참여할 수 있는 방법 진짜 찾을 수 있으려나. 땅이라도 사서 자연 보호하려면 제프 베조스 결혼식 비용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니 또 허무해지려 한다. 안 돼, 안 돼...
“삼림 재성장이 우리에게 안기는 것은 빚을 갚고 과거의 죄를 속죄할 기회다. 사면이 아니라 유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