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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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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뱅씨를 따라가는 지구 행복여행

제목은 저자의 꾸뻬씨 시리즈보다 훨씬 근사하다. 사실 꾸뻬씨 시리즈도 듬성듬성 보고 그나마도 시간 순서도 안 맞았지만, 말랑말랑하게 즐길 수 있는 책이었고 이 책도 그렇다. 지구인의 지구여행(분명히 지구여행인데 판타지세계같은 건 기분탓일까..)에서, 화성에 살던 지구인이 문명이 퇴화한 지구별 여행으로 이동하고, sf니까 인공지능도 좀 나오고.엑또르가 배움을 메모했듯이 '젊고 아름다운 주인공'(읽다보면 저자가 굳이 언급한 이 수식어들이 무용하게 느껴진다...)은 성찰 메모를 남기고 나중에 연인에게 코멘트를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의 출생 이야기는 딱히 놀라운 부분이 없었고, 아무리 지구가 핵 때문에 한 번 작살이 나서 인프라가 제로에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문명이 굳이 거의 원시시대로 돌아가고 그게 펼쳐지는 게 폴리네시아 언저리라는 게 언짢기도 하다. 그 동네 사람들이 지금도 전통을 중요시한다는 사실은 기회 생기면 기꺼이 원시인이 될 거라는 가능성이랑 손톱의 때만큼도 연결되지 않으니까. 차라리 백인 원시인이 라스코나 알타미라에 살고 주인공이 프랑스어를 말하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 책의 메인은 성찰메모고 나머지는 다 그걸 위한 배경이니, 작가나 출판사가 딱히 신경 썼을 것 같지 않다. 아니, 그냥 나 말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지도 모른다...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 이 정도로 끝내고 싶다. "내가 확신하는 거라고는 소외되는 사람, 용도 불명, 잉여 인간이 없는 세상을 원한다는 사실이다." 읽는 사람들 대부분은 같은 생각이 아니겠는가. 흐르듯이 읽어야하는 책은 그냥 그렇게 덮기로 한다. 어쨌든 사랑과 자유의지는 위대했다고...

푸른 행성이 있었다
푸른 행성이 있었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했던 한 사람과 그 유산의 이야기

표지에는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라고 적혀있지만, 읽고 나면 이게 맞는 수식어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꾸준히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데에는 참을성과 가끔 깨달음이 있을 뿐이고, 미스테리가 끼어들 곳은 없으니...

시작부터 좀 슬프다. 일단 유명한 과학 작가가 한 권을 한 사람에게 할애한 책인데도, "그 자취가 너무나 희미해 영영 그럴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대로 자료가 없어서인지 엄청 얇다 (주석 빼면 200쪽이 안 된다). 그나마도 헨리에타 리비트 본인의 이야기보다 그걸 자료로 활용했던 사람들 이야기가 더 많다. 어떻게든 없는 자료로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려 한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 정도다. 책이 나온 지 20년이 다 되어가니 책 안에 있는 연구 자료들은 업데이트가 되었겠지만, 헨리에타 본인에 대한 이야기들은 더 없는 것 같다.

너저분한 작업실에서 사진 건판을 들여다보면서, 칼라도 아니고 흑백 사진에 찍힌 수많은 점들을 식별하면서 기록하는 것의 무한 반복...점들이 커지고 작아지는 걸 적고 또 적고, 그 가운데 별들의 밝기와 주기의 관계를 발견하고...작가 말대로 이보다 못한 일에도 박사학위가 수여되던 시기, 아는 사람은 다 알았다고는 해도 좀 더 많은 명예를 얻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하다못해 조금만 더 오래 살았으면, 노벨상을 꼭 못받아도 후보로서 더 많이 언급될 수도 있었을텐데. 달 구덩이에 이름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살아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접 받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작가의 또 다른 말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간이 흐르면 다른 누군가가 헨리에타의 법칙을 발견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발견이지 발견자가 아니다." 스타 과학자들은 존재하지만, 그 사람들의 발견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쌓아올린 연구 결과가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성과들도 많다. 그나마 헨리에타는 누군가 책이라도 써줬지만 그 정도 언급도 없는,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일을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결국 우리에게 혜택을 주는 모든 과학의 성과는, 이렇게 매일 매일 답답한 환경에서 반복 작업을 성실하게 하며 견디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적이겠지. 성과가 있어도 뽐내지 않고, 그저 신중히 묵묵히 일하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들, 헨리에타와 그 자취를 따라가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리비트의 별 - 우주 크기의 실마리를 푼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리비트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리비트의 별 - 우주 크기의 실마리를 푼 여성 천문학자 헨리에타 리비트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
슬픔과 활기가 넘치는 이집트에서 펼쳐지는 부부의 이야기

번역판의 부제 - 본문에서 잠깐 언급되는 - 가 참으로 근사하다. 영어판의 밋밋한 제목(The Photographer's Wife) 보다 멋지다. 책 소개만 보면 사실 긍정적 전개를 기대하기 어려운데, (식민지 시대의 피지배층 + 여성 인권 바닥인 시대 직업에 도전하는 여성 + 마누라의 재능을 시기하는 남편이면 완전 삼진 아웃...) 그렇게 끔찍하지 않고 술술 넘어가서 놀랍기도 하다.

나폴레옹 때부터 신물이 나게 유럽 애들 샌드백 신세던 이집트의 1890년대부터 약 십 여년의 시간을 배경으로, 시리아계 기독교도 이집트인 부부는 만나고. 멀어지고, 성장하고 퇴화하고, 처음 그 자리로 돌아온다. 시작부터 흔하게 생각하는 식민지의 궁핍과는 거리가 있고, 주인공 도리스가 사진가로 성공하면서부터는 거의 벼락부자인데다 중간중간 묘사되는 이집트의 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읽으면서 영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의 태도에 욕이 저도 모르게 입에서 샌다만, (그 잘난 백인의 부담 드립 여기서도 나온다. 하긴, 지금도 나오는 드립인데 쓰여진 당시에는 얼마나 유행했을지...) '근동제국민들' 씹다가도 도리스 당신은 예외라고 허둥대는 식으로 주인공은 차별도 피한다. 기실 불행의 씨앗은 남편 하나...

이렇게 써놓으니 무슨 엄청 가벼운 소설처럼 보이는데 그렇지 않다. 내 문장력이 모자란 것뿐...역자 후기에 미셸 투르니에도 강추했다고 나오며, 작가의 영문판이나 한국어 번역 작품이 적어서 그렇지 아랍어와 프랑스어로 나온 다른 작품들이 많고 평가도 좋다. 일단은 이집트 사람이 직접 쓴 이집트 소설이라는 데서, 르포가 아니고 소설이다만 좀 믿음이 가기도 하다. 사람이 이민을 가면 자연스럽게 ○○계 ○○인이 된다만, 이민이 흔하지도 않은 시절 시리아계 이집트인이란 개념도 생소하고 그 안의 대가족들의 모습도 신기하다. 사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첨단 기술에 눈뜨고 더 다가가려고 공부하고 매혹되는 모습은 분야와 상관없이 마음에 와닿는 부분이 있고...마지막에 남편이 아주 비참하게 페이드아웃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속터지는 시대(중간에 파쇼다 사건을 놓고 이집트에 살던 영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의 태도가 좀 다뤄지는데, 아무리 소설이라도 죄다 비오는 날 먼지나게 맞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지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나아갈 길을 찾으며 방황하는 것은 시대와 상관없는 사람의 태도인가 싶고. 도리스에게 화가 나는 부분도 있고, 담장을 넘어간 맘루크와는 다른 결정을 했다는 게 아쉽지만, "사로잡힌 사람"의 결말은 이런 것일지도.

사로잡힌 영혼 맘루카
사로잡힌 영혼 맘루카
독자를 전력질주시키는 이라크발 군상극

개인적인 견해지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지옥같은 이야기가 동화처럼 흘러가면 좀 각오를 해야한다. 대놓고 건조한 책들보다, 느닷없이 끔찍한 전개가 융단폭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그래도 이번엔 그정도는 아니었다. 아니지, 한 대목 한 대목 곰씹으면 비극이 가득한데 너무 꽉차서 수용감각이 마비되었는지도 모른다. 재미있게 읽었는데도 책 속의 상황들, 아마도 지금도 계속되는 이라크의 모습들을 생각하면 재미있다고 말하는데 죄책감이 든다.

폐품업자의 미친 짓 - 나중에 짤막하게 나름의 이유는 언급되지만 - 으로, 안 그래도 폭력이 난무하는 바그다드에 태어난 복수의 킬링머신이 어느 순간 명분도 잃어버리며 살기 위해 꿈틀이고, 그 와중에 거하게 캐릭터성 터지는 인물들이 - 강렬한 캐릭터가 강렬한 호감으로 이어지지 않기는 하다 - 얽혀들어가면서 정말 페이지가 어떻게 넘어가나 모르겠다. 폭탄 터지고 사람도 죽고 정신이 없는 마당에 무명씨의 추종자들이 선거 참여할 고민하는 대목에서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샌다(그냥 나에게 경건함이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막판에 죽을까봐 걱정되던 유일한 인물이 안 죽었기 때문에 책을 덮으면서 안도의 한숨이 절로 흐르기도 했고. 이정도 작가의 책 번역이 한 권뿐이란 게 참 아쉽다. 영미권에 번역이 된 책 위주로 국내에 출판이 되니 어쩔 수 없겠지...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바그다드의 프랑켄슈타인
사람과 과일이 함께 써내려간 이야기들

작가의 표현대로 공장이나 마찬가지인 환경에서 자란 과일들이 소비되는 시대에, 과일의 역사를 논한다고 하면 그냥 농업 노동의 역사를 좀 낭만과 섞어서 - 대개는 낭만의 대가로 더 빡센 노동을 하며 - 풀어주는 책이려나 지레짐작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편견과 지식 부족을 반성하면서 즐겁게 잘 읽었다. 과일 길들이기의 역사라고는 하지만, 과일을 먹고 과수원을 발전시키려던 인간의 노력을 생각하면 과일의 인간 길들이기 역사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무가 씨앗을 퍼트리려 단 맛의 과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주 언급되지만, 그걸 먹으려고 머리를 굴리면서 영장류의 지적 능력과 뇌가 발달했다는 이야기는 시작부터 놀랍다. 당분 들어간 식량을 먹겠다는 절박함이, 지금의 뇌와 더불어 식탐, 뱃살로 계승된 것일까...약간 낯선 야자나무 농업, 고대의 정원들(높은 수준만큼 정원사들 노동 강도도 빡셌던...), 아르간나무가 그냥 모로코 특산이 아니라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것, 루이 15세는 프랑스에서 키운 파인애플을 먹었다는 것 등등, 관련된 재미난 정보들이 빼곡하다. 그리고 과일에 대한 작가들의 글, 미술작품도 많이 실려서 시각적인 재미도 쏠쏠하다. 명말의 과일 목판화에 나온 불수귤의 모습을 믿을 수가 없어서 검색해보고 더 놀랐다. (그림이 좀 필터링이 되고 훨씬 운치가 있다) 그리고 참 슬픈 서바이버, 코르비니안 아이그너의 이름을 안 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에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다.

먹거리, 문화적 자산, 자연과 함께 사는 미래에의 투자...저자가 말한 것들을 기억속에 얼마나 오래 간직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진열된 과일들을 볼 때마다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과일 길들이기의 역사 - 인류를 사로잡은 놀라운 과일 이야기
과일 길들이기의 역사 - 인류를 사로잡은 놀라운 과일 이야기
애도의 여정을 시작하는 모든 여행자들을 위한 가이드북

감사하게도 '느려터진달팽이'님이 댓글에서 안내해주신 책이다. 이제라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인 책이고, 분명 많은 이들을 도왔을 책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반복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좋은 책이다. (쓸쓸한 일이지만, 평균 수명까지 산다면 아는 사람 중에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책은 모두 어딘가에 큰 절실함이 있고, 읽는 이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면서 자신들의 길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정말 구체적으로 많은 예시를 들어주고, 상당히 실용적인 대응도 제시한다. 짧지만, 언론에서 주목하는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어떤 면에서 주의해야 하는지까지 다뤄졌으니 어지간한 경우의 수는 다 들어있다. 그러면서도 대답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고, 왜곡될 수 있는 감정들에 대해서 해설해준다. 함께 애도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도 생각하게 한다. 남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변할 수 밖에 없지만, 우정에 기회를 주라는 말도 인상적이다. 고통을 표현하는 것은 권리이지만, 한편으로 다른 이가 공감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들도...

책에서는 상담가나 자조 모임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한국은 아직 이런 모임들이 없지는 않지만 드물기 때문에 그런 부분의 아쉬움은 있다. 그리고 내가 종교적이지 않아서 신앙 회복이란 주제는 약간 미묘하지만, 정신적으로 몰려있는 사람이 안정을 찾는 길에는 정답이란 게 없으니...저자들 말대로 상실의 이야기가 지문만큼이나 다양한 만큼, 어떻게 마주할지 사람들의 선택도 다르지 않겠는가.

 '애도에 대한 질문들이 자신을 변화시켰다'고, 고통을 겪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일어설 수 있기를,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책을 덮는 이 순간 다만 바랄 뿐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 -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 -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신비하지 않아서 더 신비한 고대 이집트

표지에 세상에서 가장 쉬운 고대 이집트 강의라고 써있다. 나를 위한 책이구나 싶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건 있지만 그 토막지식들은 인터넷도 없던 시절 부정확한 지식과 사람들의 상상이 뒤섞인 오락 작품들에서 온 것이니 기실 초등학생들보다 더 안다고 자신감을 가질 수가 없으니...일단 역사가 너무 방대해서 그런가(항상 궁금하다. 이집트 사람이 국사 시험에서 100점 받으려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지...) 이집트 통사 책은 찾기도 힘들고, 쉽게 좀 시작해보기로 했다.

일단 지도가 있는 게 엄청 고맙다. 시작할 때 도시를 상징하는 상형문자들도 소개되어서, 도저히 다 외울 수는 없지만 밑의 해설을 보면서 보면 이런 것들이 지금의 로고들로 이어지나 싶어 신기하다. 하트셉투트 여왕 이름도 처음 보는데, 업적으로 보면 이 사람이 클레오파트라보다 유명해야할텐데 그렇지 않으니...역시 아무리 잘나도 미디어가 다뤄주지 않으면 안 되는가...그리고 고대사가 이미 수천 년이니 당연히 미술 양식이 변할텐데도 자세한 건 하나도 모르고 아마르나 양식이란 단어도 생전 처음이다. 피라미드나 신전도 하나만 꼴랑 세우는 게 아니고 아파트 단지와 상가들마냥 다 계획적으로 연결되고, 전문직이 우대받고 보드게임도 유행했으며 위생적이고 잘 먹고 날씬한 시민들이 열심히 사는 사회였다.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였다고 다 정체불명의 신비로 덮여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노동이나 지혜에 놀라게 된다.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였지만 인간사에서 그게 특이할 것도 없고, 생각해보면 우리들은 조상님들의 지적 수준을 너무 의심하는 실례를 범하는 게 아닐까.

지도나 도면 지식들은 당연히 한 번에 외울 수는 없어도, 여행 떠나기 전에 복습하고 가면 감동이 더 크지 않을까. 역사를 감동하자고 배우는 건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천천히라도 고대가 아닌 이집트도 알아가고 싶고...

별 관련없는 지식이지만, 만화 왕가의 문장이 아직도 안 끝났고(!) 얼마 전에 뮤지컬까지 공연한 걸 알고 정말 놀랐다. 시간이 흘러도 이집트의 꿈은 계속되누나...

고대 이집트 해부도감
고대 이집트 해부도감
과학의 희망과 꿈을 나눠주는 거장의 에세이

기본지식 부족이라 학술책은 힘들어도, 제목부터 참 아름다운 책이고 에세이니까 평소처럼 낚여보기로 했다. 제목은 아름답지만 일단 현실의 참 아름답지 못한 문제들부터 이야기하고, 읽으면서 기가 꺾일 때쯤 이걸 해결하려면 어떤 기술이나 정책, 교육이 필요한가 이야기하면서 꿈을 좀 먹여준다. 과학하는 분이 썼으니 마냥 낙관적일리는 없고 이러이러하게 가면 가능하지만 세상 굴러가는 모양새를 생각할 때 어려울 것 같다는 말도 하고, 중간중간 읽는 사람 김이 빠지는 말도 계속 나온다만.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다 이성적일 것이라 여긴다면 말도 안 되는 기대라던가, 2020년에 처음으로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미국인 비율이 50퍼센트를 넘었다던가(...), 영국 정도의 나라도 교육 불평등 수준이 어마무시하다던가...

그래도 무시무시한 현실만 확 던지고 '이대로면 우리 멸망하는데 일반인들이 바꿀 수 있는 건 너무 미약해서 없는 거랑 비슷해요'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 어디냐 싶다. 속도가 느릴지라도 저자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과학자와 시민 모두가 노력하고 정치가 태클을 걸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정말 밝을 것 같다. 당장 기후변화도 안 믿는 사람이 최강대국에서 재선될지도 모르는 상황이 과학의 장미빛 꿈에 초를 치기는 하지만...어쨌든 일반 시민의 과학적 이해가 높아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면, 읽고 돌아서면 싹 잊고 다시 읽으면 또 새로울지언정 과학책을 열심히 보자 다짐하게 된다.

현재의 이슈를 설명하면서 또 여러 가지 새로운(많은 사람들에게는 안 그럴 수도 있겠다만) 것들도 알게 된다. 짧은 소개만 보아도 위대한 사람 조지프 로트블랫의 이야기라던가, GDP에서 연구에 할애되는 비중이 지금 한국이 영국의 두 배를 넘는다던가(!).

이런 책을 읽으면 좀 웅대한 부분이나 저자의 통찰력이 가장 빛나는 부분을 혼자 곰씹든 소개하든 해야한다만, (아마 에필로그 마지막 페이지 소개가 제일 적절하겠지만, 뭔가 스포일러같으니 패스한다) 내 통찰력이 모자라서 그런지 메모해놓고 싶은 문장은 다른 부분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썩 훌륭하지 못한 2류 과학(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을 연구하기보다는 1류 SF를 읽으라고 권한다. SF가 더 재미있을뿐더러 틀릴 가능성이 더 높지도 않다."


과학이 우리를 구원한다면 - 우리 시대의 구루, 마틴 리스의 과학 에세이
과학이 우리를 구원한다면 - 우리 시대의 구루, 마틴 리스의 과학 에세이
해석하기 두려운 혼란들과 결말

애초에 밝은 책을 바라면 확 줄인 이력만 봐도 가슴이 무거워지는 작가의 작품을 골라선 안 되겠지. 한 챕터는 커녕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죽음의 공포를 별로 즐겁지 못한 연상으로 좀 덜어가는 주인공을 보면 마음이 더 무겁다.

나름 악전고투하는 주인공인데도 그 성격과 행동에 감정이입이 어렵고, 비자를 둘러싼 미친 부조리에 - 정말 블랙 코메디같은 상황이지만, 사실 약간만 다르지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 그 상황에 울부짖는 인물들의 모습에 숨이 턱턱 막힌다. 나는 독자지 천만다행히도 이 지옥같은 상황 속 항구에 있는 게 아닌데도,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그냥 풀썩 앉는 내 모습을 떠올릴 정도로. 서류 발급의 미친 스파이럴이, 이걸 실제로 겪은 작가가 쓴 만큼 읽는 사람의 정신을 쏙 빼는 절절함이 넘친다.

마리와 의사와 나의 해괴한 삼각관계가,  그놈의 비자들을 둘러싼 상황 때문에 바짝 말라가는 과정이 다른 의미로 정말 속이 탄다.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주인공들이 술 마시는 장면 나올 때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술 한 병을 독자에게 주는 게 나았을 거라고 툴툴거렸다. 그리고 촐싹맞은 독자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마지막 페이지들...이거 희망인가? 이런 거 희망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머릿속이 하얘지는 독자를 진정시키려는지 거의 40 페이지 가까운 작품해설이 권말에 붙어있다. 결말에 놀란 사람이 많기는 했는가 그 부분을 혹평한 평론가들 말도 언급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렇게 사람 혼을 쫙 빼놓고 결말이라도 이렇게 안 갔으면...생각하기 그냥 싫다. 작품 속 대부분의 고생을 직접 했던 작가에게 정말 존경을 표한다. 일단 마음이 좀 진정되면, 제7의 십자가도 읽어보아야겠다. 진정되면...

통과비자
통과비자
폭소와 함께하는 학자의 고군분투, 그리고 모리타니의 슬픔

이 책도 왜, 언제 독서 목록에 추가했는지는 잊었다(메멘토냐....). 벌써 내용과 표지가 예고편 한 편이나 다름 없어서(한국판 출판사인 해나무에서 총력을 다해 선전 문구를 표지에 전부 기술해놓았다) 사람 취향에 따라서는 바로 넘기는 사람도 있겠다만 나같은 사람은 바로 낚이기 딱 좋다. 특히나 최근 읽은 책들이 다 좋은 책들임에도 기분이 축축 처지는데다, 현재 손 대던 책이 반도 안 읽었는데 페이지 넘길 때마다 찰싹찰싹 맞는 느낌이라 웃음이 정말 절실했다. 아프리카와 메뚜기와 모험이라...절대 그럴리가 없는데도 인디아나 존스가 벌레 떨궈가며 돌아다니던 모습이 둥둥 떠다니고...인디는 곤충도 모르고 메뚜기 분장 같은 거 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이미 프롤로그에서 학생들은 알지 못할 슬픔(...)이 밀려온다. [얼마 전만 해도, 아니 예전에는 "내 새끼, 이 다음에 커서 박사가 되려나, 장관이 되려나" 하며 귀한 대접을 받았는데, 요즘은 흔한 게 박사였다. 과잉 배출된 박사들은 문을 두드리는 직장마다 문전박대를 당하고 일자리를 찾아 방황하는 중이다.]

  그야말로 메뚜기 사랑을 살려가며 살 길을 찾기 위해 간 먼 나라 모리타니에서는, 우리가 해외 뉴스나 공포영화에서만 보는 미친 사막메뚜기떼의 공격이 일어난다. 정해진 주기도 없고, 집단행동하는 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멀쩡하게 따로 살던 것들이 아직까지 인간이 해명하지 못한 이유로 뭉치기 시작하면 갑자기 말 그대로 바닥의 흙만 남기고 다 먹어치우는 공포특급을 인간에게 선사한다. 아시아권도 메뚜기의 해악이 없는 것이 아니다만, 그냥 종이 다르거나 여기가 너무 대륙 끄트머리라 그런 일이 드문가 무지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읽고 많이 놀랐다. 마에노 울드 고타로 - 처음엔 희한한 필명이다 했는데, 읽다보면 저 울드라는 이름을 나도 존중하면서 기입하고 싶다. 모리타니 사람들이 애정을 담아서 선물해준 이름이고 작가도 그걸 뜻깊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 씨의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며 웃다 우는 에피소드들 뒤편에 이런 무서운 일들이 있다. 뉴스들을 조금 찾아보니 이 메뚜기떼 생지옥은 코로나 시기 더 심각해져서, 도저히 강 건너 일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내가 뭐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해악을 늘려가는 메뚜기떼가, 먹을 거 없고 시간이 걸리면 바다도 건너겠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아니라고 해도...그리고 저렇게 넓은 지역에서 기아 문제가 생기면, 어떠한 경로든 전세계에 직접적인 영향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저자가 써놓은 대로, 미리미리 돈과 자원 비축했다가 메뚜기떼가 뜨면 바로 대응해야 하는데 잠시라도 해악이 없으면 바로 지원도 끊기고, 미친 황해가 시작될 때 대응 시작하면 이미 늦고...읽는 사람도 속이 타는데 살고 있는 사람들 속이 어떨지는 상상불가다.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저자대로 대단하고 모리타니 사람들의 긍정성이 대단해서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이런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가운데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걸까? 여행하러 가는 사람하고는 당연히 차이가 있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일화들 10분의 1만 일어나도 그 나라에 대해 오만 욕을 다 하는 사람들이 널린 세상이니...특히나 주인공의 현지 운전사인 음속의 귀공자 티자니...이거 조금만 고지식한 사람이었으면 현지인이 안 그래도 가난한 연구자 등을 쳐먹는다고 펄펄 뛸 수도 있는 상황인데, 나름 티자니를 자기 대변자로도 쓰고, 같이 돌아다니면서 아랍어도 프랑스어도 아닌 둘만의 재활용 언어를 쓰면서 할 대화도 다 하고 현지 정보도 조달하는데 정말 계속 웃게 된다. 요 몇 년 간 읽다가 정말 어깨까지 들썩이면서 전철에서 웃었던 게 처음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옆에 있던 사람들은 좀 무서웠겠지. 죄송합니다...)

읽고 나서 이것저것 검색하니, 모리타니의 수난은 끝이 없다. 구호금을 들고 간 게 아닌, 그냥 취재하러 온 일본 기자에게 그래도 취재하러 와준 사람은 당신뿐이라고, 고맙다고 말하는 농부의 모습에 할 말을 잃는다. 모리타니 지원 사업 찾기도 어렵고 연구소 후원 모금은 홈페이지에도 없다. 자주 감동하고 자주 까먹고 별로 돈도 없는 내가 이러다 또 금방 잊을 지도 모르지만...일단 작가의 신간이 일본에서 곧 나오니, 그걸 읽으면서 모리타니를 기억하고 싶다. 제목부터 조금은 희망이 보인다. '메뚜기를 쓰러뜨릴 거야 아프리카에서'!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 - 젊은 괴짜 곤충학자의 유쾌한 자력갱생 인생 구출 대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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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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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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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에서 단테의 <신곡> 연극을 봅니다.
[그믐연뮤클럽] 8. 우리 지난한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여정, 단테의 "신곡"
같이 읽고 싶은 이야기_텍스티의 네버엔딩 스토리
김준녕, 오컬트도 잘합니다. [다문화 혐오]를 다루는 오컬트 호러『제』같이 읽어요🌽[텍스티] 텍스티의 히든카드🔥 『당신의 잘린, 손』같이 읽어요🫴[텍스티] 소름 돋게 생생한 오피스 스릴러 『난기류』 같이 읽어요✈️[책증정] 텍스티의 첫 코믹 추적 활극 『추리의 민족』 함께 읽어요🏍️
10월 20일, 극단 '족연'이 돌아옵니다~
[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모두를 위한 그림책 🎨
[도서 증정] 《조선 궁궐 일본 요괴》읽고 책 속에 수록되지 않은 그림 함께 감상하기![그믐밤] 27. 2025년은 그림책의 해, 그림책 추천하고 이야기해요. [책증정]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는 그림책 세계. 에세이 『다정하게, 토닥토닥』 편집자와함께"이동" 이사 와타나베 / 글없는 그림책, 혼자읽기 시작합니다. (참여가능)
각양각색! 앤솔로지의 매력!
[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책나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시간을 걷는 도시 《소설 목포》 함께 읽어요. [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그믐앤솔러지클럽] 2. [책증정] 6인 6색 신개념 고전 호러 『귀신새 우는 소리』
사랑은 증명할 수 없지만, 증명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다
[밀리의 서재로 📙 읽기] 29. 구의 증명최진영 작가의 <단 한 사람> 읽기[부국모독서모임] 최진영의<구의 증명>, 폴 블룸의<최선의 고통>을 읽고 책대화 해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레슨!
[도서 증정] 『안정감 수업』 함께 읽으며 마음을 나눠요!🥰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될 가능성을 믿은 인류의 역사, 《자기계발 수업》 온라인 독서모임
한국의 마키아벨리, 그의 서평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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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일본의 탐미주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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