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재미있다. 마지막 나가는 말까지도 좋았다. 이지환 선생님의 책이 더 없다니 너무나 유감이다. 의학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 그렇다고 여기 나온 용어들을 외울 능력은 없다만 - 설명뿐 아니라, 질병의 고통이 천재들의 삶의 행보에 미친 영향을 짚어준다는 점에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섞어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질병의 고통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 사람들이 평생을 그 고통과 씨름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슬픈 책이기도 하다. 세종이 이정도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일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에서 존경이 샘솟는다. 로트렉의 아버지가 쓰레기라는 건 알았지만, 사실상 자식 아픈 원인 제공자 주제에 아들내미 작품까지 태워먹는 적이 있는 인간말종인줄은 몰랐다. 모네가 백내장에 시달리던 기간 그렇게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렸는지도 몰랐고, 밥 말리가 조금만 더 늦게 암에 걸렸다면 더 나은 치료를 받았으리란 것도 몰랐다.
고통과 천재성이 맞물려 돌아가는 인생을 살고, 각 분야에서 세상이 더 나아지는 데 기여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저 고통이 필요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재능 있는 사람은 어쨌든 두각을 드러내고, 안 아팠으면 더 대단한 일을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삶에 만약이란 것은 없고 이들이 남긴 혜택을 조금씩 향유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저 좀 더 존경의 마음을 담아 기억하는 것이 다라는 게 안타깝다.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 작가분의 마지막 문장도 적어두려 한다. "우리는 기억을 공유한다. 치매가 특히 악독한 질병인 이유는 쌍방의 기억을 일방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같은 글을 읽고 기억한다면 그만큼 은근한 결속이 있다고 믿는다."


방 상태가 머릿속 상태랑 비슷하다고 어디선가 말하던데, 진짜라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서재를 둘 형편도 아닌데 책이 아까워서 처분도 못하니 창고가 따로 없다. 일단 좀 처분은 해야겠다 마음은 먹었으나, 아쉬움에 한 번은 더 읽고 정리하기로 해서 방에 숨통 트일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최근 메모리맨 시리즈가 한국에서도 잘 나간 듯 하고, 원래도 잘 나가는 액션 소설 작가인 발다치. 읽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원서는 알라딘 매장에도 많고 도서관에도 있다. (재고가 많은지 팔기는 어렵다...) 그 중에서 이제 꽤 묵은 시리즈 중 하나인 카멜클럽의 마지막 권 Hell's corner를 드디어 정리한다. 안녕...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 시리즈 중에서 당시 제일 팔렸는가 3권인 스톤콜드만 번역이 되었다. 미쿡 액션 소설이야 어느 권을 집어보더라도 이해가 되도록 항상 어느 정도 설명은 있지만, 3권만 보고 이해가 다 갈지 좀 의심스럽긴 하다. 특히 2권에서, 주역 중 한 명인 애너벨의 역할을 모르면 별로 와닿을 게 없지 않을까.
과거를 숨기고 살아가는 묘지 관리인 올리버 스톤과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친구들의 모임 카멜 클럽이 우연히 사건에 말려들면서, 해결 과정에서 스톤의 과거가 드러나고, 과거 때문에 사건이 꼬이지만 결국 해결하고, 시원한 액션도 보여주고, 조금 쓴 맛도 보지만 적에겐 더 쓴 맛을 보여주면서 진행되는 카멜 클럽 시리즈. 아무래도 액션 스릴러가 메인인 오락 소설이니, 가끔 진짜 놀랄 정도로 감정처리가 가벼운 부분도 있지만 - 1권 마지막에 나오는 정말 중요한 죽음이, 시리즈 마지막까지 다시 언급이 안 된다거나 - 발다치에게서 톨스토이를 바라고 읽는 사람은 없을테니 신경쓰지 말고 넘어간다.
5권 내내 별일을 다 겪다가, 마지막 권인 헬스 코너는 작가가 작정하고 시즌 파이널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관계되는 나라 숫자부터 다르고 나올 수 있는 관계자들은 다 나오고. 전혀 안 그럴 것 같다가 갑자기 캐릭터를 훅 보내는 경우도 있는 발다치라 한 두어명은 보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았음. 이 책이 나온지가 십 년이 넘었는데 이미 그때 나노머신 기술을 구사한다는 소재가 나온 걸 보면, 역시 국가 보안 쪽에서는 이런 쪽 운용하려는 시도가 빠르구나 느껴지기도 하고. (톰 클랜시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료 조사할 때 아예 언급이 안 된 걸 소재로 써먹지는 않겠지 싶다) 잠시나마 스톤의 왓슨 역할을 자처한 챕먼의 액션이 시원해서 스트레스도 좀 풀리는 느낌이고...카멜 클럽이 국가의 위기를 구했고, 나도 속이 좀 풀렸으니 이제 책과 작별할 시간이 왔다. 잘가 카멜 클럽...바이바이.


기운을 내고 싶어도 그게 참 안 되는 시간도 있다. 위로에 오히려 더 괴로울 수도 있어서 입을 다물게 되고,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게 보통이다. 그 와중에 전혀 뜻밖의 무언가가 머리를 확 흔들어주는 일도 있는데, 이번에는 이 책이었다.
뇌과학 서적이 한창 유행 중인 가운데 뒤늦게 좀 읽어보자 싶어서, 추천사도 많고 얇고 글자도 큰 이 책을 선택했는데 참 뿌듯하다. 뇌의 진화라는 기존 통념의 오류, 네트워크, 성장과 세부조정 등을 큼지막한 각주까지 동원해서 설명해주니 처음 접하는데도 흥미진진하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 소개된 모든 용어를 한 번에 다 외우기는 무리겠지만, 다른 뇌과학 책들까지 보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이 책이 단순히 재미가 있어서 스트레스를 낮춰준 것은 아니다. 4강에서 나오는 말들은, 어디선가 비슷한 말을 들어봤으면서도 과학을 통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와닿는 느낌이 정말 다르다. 자신의 뇌가 가진 학습을 통한 예측 기능을 이용해서 스스로의 행동을 이끌 수 있고, 어른이 된 후 나의 뇌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이기 때문에,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책임을 가진다는 것...저자의 질문을 나도 계속 곰씹게 된다. 조금씩이라도 내가 뇌의 예측을 내가 원하는 식으로 바꿀 수 있다면 내 삶이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까? 다른 뇌과학 책들도 보면서, 오랫동안 생각해보고 싶다.


저자는 각종 자가면역질환에 아파하고, 치료받고 싶어하고, 의학과 사회와 마음을 연구하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정말 존경스럽다. 아무리 혼자 쓰는 감상문이라도 너무 짧고 단순한 감상이 아니냐 싶으나, 정말 그런 걸 어쩌랴.
자가면역질환 환자들도 드물지 않고, 그정도는 아니어도 통증은 엄청난데 당장 죽네사네 하는 병은 아니라 병원서 푸대접받는 경험을 한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다. 치료 끝나면 나으니까 참지만, 신체적 고통을 무시당하면 정말 힘들다. 그런 경험을 거의 평생 하면서, 이 고통이 잠시 멈출 때는 있어도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한다면 나는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냥 하루 버티기도 힘들텐데 이런 유익한 책을 내다니,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진료와 관련된 사회 시스템, 플라시보 효과라는 게 세상에 있다고는 해도 무슨 아픈 게 내가 긍정적이지 못해서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 가족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 아픔을 통해 지혜로워졌으니 좋은 거 아니요 드립(개인적으로 진짜 싫어하는 말. 난 아무 것도 몰라도 좋으니 고통 필요없다) 등 각종 관련 이슈에 더해 어떻게든 아픈 게 일상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하루를 꾸려나가는 저자의 모습이 상당히 묵직하게 와닿는다. 노래 가사처럼, 정말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저자도 나도.


삶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책들은 셀 수 없이 세상에 많다. 그걸 다 읽을 필요도 없고 개중 많은 책들은 너무 가벼워서 읽으면서 질린다. 그래도 이런 주제를 종종 찾아읽는 것은, 내가 종종 삶과 죽음을 상기해야하는 필요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큰 글자에 두께도 얇고, 본국에서만 250만부 이상 팔렸다는 점도 한 번 읽어보자는 욕구를 자극하기 충분했고. 사실 내가 찾던 방향보다는 소위 스피리추얼 분야에 속하지만, 어쨌든 하루 한 번은 아닐지라도 이걸 읽고 또 죽음을 생각했다.
여러가지 좌절감에 방황하다,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가 된 '나'의 정신적 여행은 뻔하다면 뻔하지만 절실하다. 가족들과 병원 직원들의 모든 대화를 들을 수 있는데도 한 마디도 전할 수 없는 상태에서, 대화 상대는 자기 머릿속에서 말을 거는 존재뿐이니 갑갑하기 그지없다. 자기를 둘러싼 상황들은 변해가는데 할 수 있는 일은 머릿속 대화가 전부. 사실 자기 자신과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주인공이 이미 다 알고는 있었다는 말이겠지. 나도 알고 수백만의 다른 독자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도 읽으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다. 실수를 만회하거나 수용하는 것은 자책감과는 별개여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내 책임이라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고 가능하지 않다는 것. 오늘 말하지 않은 것을 내일 말할 기회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주인공은 죽다 살아나는 위기에서 깨닫지만, 책이 있어 감사하게 나는 멀쩡한 상태로 곰씹을 수 있다. 이러다 또 지친 날들이 돌아오면 당연한 것들을 또 잊고 조금 방황할 수도 있다. 그러면 또 다른 책이 나에게 죽음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오늘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니, 열심히 움직이자. 내일 못 할 수도 있으니까.


신자가 아니어도, 국사책 보고 산 탈 때 절 좀 들러보면 불교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은 없는데 하도 친숙해서 뭘 아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막상 지식이 있나 점검하면 난 대체 뭘 아는가 절망에도 빠지고.
작년 이맘때 쯤인가, 강릉단오제 영상을 보면서 처음 범일국사 이름을 들었다. 그때까지는 단오제가 막연하게 전통 무속 의식이나 춤이라던가, 무형문화를 재현하는 행사겠지 했는데,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까지 등재된 강릉단오제는 주인공들이 있었다. 특히 제일 중심으로 모시는 신이, 승려다! 그것도 뒤에 국사까지 붙어있는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큰 행사의 주인공이면 보통 사람이 아닐텐데...그때 유튜브로 영상을 조금 챙겨보았다가 책이 나왔길래 일단 보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정말 학술적인 쪽에 집중된 책이라 - 고대사 기록에서 불분명하거나 다르게 표기된 부분들을 분석하고, 연대나 행적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맥락을 찾는 부분들이 크다 - 신기한 고대사 이야기랑은 거리가 꽤 멀고 전문적 불교용어들 - 내가 여기서 몇 개나 기억할지도 의문이다 - 도 많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다. 신격화가 되면서 집안 내력이 기록으로 있는데도 각종 영웅 설화들이 만들어지고(무려 무염수태까지 있음;), 그냥 산만 잘못 타고 죽을 수 있는 시대에 당나라 유학 가서(같이 입당한 사람들이 왕자 일행 헐...) 약 11년을 돌아다니며 공부하고, 법난 때문에 피난하면서 쌩고생을 하고, 당시 도독들과 관계를 맺으며 선불교를 전파하고...곁가지지만 강원도 영동지방 옛 이름이 하슬라였다는 것이 신기하다. 완전 rpg 게임 타이틀인데?
산악숭배 + 호환 + 교통 특수성으로 싹튼 대관령 수호신앙이, 초창기 자장율사의 신격화에서 강릉에서 나고 포교하던 토박이 범일국사 신앙으로 계속 섞이면서 변화했다는 게 초심자에겐 신기방기하다. 막판엔 민간신앙에서는 타당성 중요하지 않고 신앙 대상이 강한가가 논점이라는 쫄깃한 분석은 덤. 올해는 어찌될지 모르지만 책도 봤으니 강릉단오제 한 번은 꼭 보러가야겠다. 그때쯤은 읽은 걸 까먹었을 수도 있지만;


민망하게도 나는 한국 근현대 문학가들과 그 작품에 좀 어둡다. 일단은 학생 시절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나, 독서감상문 과제로 주어진 작품들이 꽤나 갑갑해서 - 쓰여진 상황을 생각하면 지극당연하다 - 그 이후로는 기회가 되면 약간 들춰보는 수준이었고, 작가들에 대한 이미지도 그 시절에 희미하게 형성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우연히 이 책을 집어들고, 이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썼던 작품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절절한 충격으로 다가온, 아이의 죽음에 바치는 이광수의 '봉아의 추억' - 이런 감정에는 동서고금이 관계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 부터, 제반사정으로 부모의 친밀함도 느끼지 못하고 엄마까지 잃은 딸들에게 보내는 김동인의 고백같은 편지, 사랑따라 집 나간 동생에게 나는 언제라도 네 편이라고 전하는 이상의 편지, 힘든 시기에도 삶의 낙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는 박봉자의 오빠가 보내는 격려...
그렇다고 모든 편지가 다 개인적으로 절절한 것도 아니긴 하다. 뒷편에 가득 실린 춘성 노자영의 연애편지들은 이 시대의 세파에 찌든 독자랑은 좀 거리가 있다. 사실 더 민망하게도 노자영의 이름을 이번에 처음 접했다. 검색하니 그 시대에는 거의 90년대 마광수급의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고 작품도 꽤나 많은데, 나는 어찌하여 전혀 몰랐던가 싶다. 모르는 것이 참 많기도 하다...
마지막에는 계용묵 선생의 편지 쓰는 요령도 들어있어서, 글을 쓸 때 존경의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가르침도 있다. 글을 잘 쓰지도 못하고 툭하면 중요한 것들을 잊는 나에게는 감사한 글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책, 즐거운 독서였다.


재택 근무라는 것이 판데믹 이전에도 있었지만, 크게 그 주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냥 일하면 일하러 나가게 된다고 생각했고 그 이상 따져본 일이 있는지 전혀 떠올릴 수가 없다. 그런 나에게는 거의 모험 안내서에 가까운 즐거움을 준 것이 출퇴근의 역사다.
기본적으로는 출퇴근이라는 개념, 교통편의 발달, 계급인식의 변화 등 다양한 지식을 주는 역사책이고, 재미있다. 생각보다 후딱 읽힌다. 출퇴근이라는 것이 일반인도 매일 할 수 있는 일종의 모험이라는 걸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된다. 이 말이 비유가 아니라 백 프로 사실인 시대가 있었으며, 지금도 목숨 걸고 타야하는 뭄바이 철도도 존재하긴 하다만; 검색하니까 2023년 기준으로도 하루 평균 7명 사망한다니 모험이 아니라 도박이구만. 나오는 트리비아들이 하나같이 다 골때려서 옮겨쓰려면 수십 페이지 넘어갈 판이다. 얘기가 좀 샌다만, 어쨌든 이 모험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괴롭고 분노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시간이나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의미를 찾는 사람들도 많다는 점을 알게되니 괜히 나도 마음이 좀 편해진다.
재택 근무가 가능해졌어도 출근을 선택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출퇴근이 없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대목이 참 인상적이기도 했다. 번역이 2016년에 나왔으니 원전은 벌써 강산이 한 번 변할 시간 전에 나왔고, 코로나 사태가 출퇴근의 판도를 한 번 갈아엎은 지금 읽는 사람 마음으로는 개정증보판 출간이 참으로 절실한데 - 책은 읽었는데도 결론 못 읽은 기분이다 - 어찌될지는 봐야 알겠지. 일단은 매일 집을 나갈 때, 조금은 새로운 마음으로 나의 여정을 돌아보게 될 것 같다. 주어진 짧은 모험길을 어떻게 즐길지 좀 생각하면서.


하나의 지식을 발견하려면, 집단 혹은 개인의 끝없는 고통이 필요하다. 그 결과를 고맙 게도 일반인인 나는 앉아서 몇 번의 검색에 향유할 수 있는데도, 모르는 것이 참 많다.
일단 수많은 발견 이야기들이 즐겁다. 일반적으로 유명한 이야기들도 있지만, 심해 탐험처럼 전혀 모르던 이야기도 있다. 지금의 멕시코에서 조금만 더 바다 방향으로 운석이 떨어졌다면, 지구에 아직 공룡들이 있을 거라는 소설같은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와닿는 것은, 이 많은 사람들의 헤아릴 수 없는 고생의 양이다.
목적은 저마다 다르지만 - 돈, 인류애, 지식욕 등등 -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압력을 뜷고 가려하고, 폭발하는 우주선에서 삶을 마감하는 등 말 그대로 죽을 고생을,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물론이고 언급이 다 안 된 사람들까지 하고, 하고, 또 한다. 그냥도 놀라운데 그 고생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저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작은 일에 쉽게 짜증내고 우울해지는 최근, 지식과 함께 좀 더 버텨보자는 생각도 선사해준 책이다. 그리고, 집필 당시에 아직 결과를 모르고 기다리던 몇몇 연구들의 결과도 지금 알 수 있다는 것이 괜히 즐겁고 뿌듯하다. 역시 꿀꿀할 때는 책이다.


어느 분야건 너무 몰두하면, 상식을 넘어가는 걸 본인만 모르는 상태가 종종 생긴다. 책도 예외는 아니고, 시대를 아우르는 책덕들의 광기를 훌륭하게 다룬 젠틀 매드니스같은 책도 있다. 그리고 나만 뒤늦게 알았구나 싶은, 백 년도 더 전의 책덕들의 상황을 그 시대의 눈으로 쓴 바로 이 책, 애서광들이 있다. 어디까지가 실화인지는 읽으면서 애매하지만, 어느 이야기든 백 퍼센트 소설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으니 부분적으로는 저 광기가 뭔지 좀 감이 잡히기 때문(...).
나름 진지하게, 지금은 도저히 불가능한 서간을 통한 연애 이야기가 나오는 초반에는 '시대의 낭만이구만...' 하다가, 그 뒤부터 점점 웃어야할지 한숨을 쉬어야할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책을 갖겠다는 일념에 면식도 없는 이랑 결혼하려고 하지 않나, 뭔 관심법(...) 개발해서 헌책방 주인한테 써먹고, 겁내 비싼 사설 음서 도서관에 영혼을 바치고...
웃기는 부분들 빼고서라도, 미래의 도서 상황에 대해 책덕들이 모여 상상하는 챕터는 따로 빼서 많은 이들이 보면 즐겁겠다 싶다. 소리와 영상이 발달하면서 책 시장이 언젠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대목들은 크게 보면 꽤 적중한 부분이기도 하고. 단지, 책이 소멸할 거라는 슬픈 예상은 다행히도 아직 실행되지 않았으며, 책이 소멸하면 어리석은 주장이나 무가치한 정보를 접하지 않아도 될 거라는 긍정적인 예상은 전혀 일어날 일이 없을 듯 하다만.
즐거운 독서 뒤, 그래도 난 저지경은 아니라고 정말 자신있게 말하려면 올해는 정말 책들을 정리해야겠다. 이게 방인지 헌책방 뒤 창고인지 모를 마당에 내가 선현(...)들을 평가한다는 게 어불성설이지 하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