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분명히 타국의 시대극이고 사회적인 제도도 다른데, 읽다보면 한 청년의 불행과 반항심, 성장이 그런 벽들을 뛰어넘어 다가온다. 사부의 눈물겨운 우정에 속이 터질 때도 있지만(이런 소리를 들으면 죽빵을 좀 날려도 되지않나 싶은 장면이 있으니까...) 주인공은 에이지인데 왜 제목이 사부인가 읽고 나니 훅 마음에 다가온다. 사실 마지막 단락이 반전인가 싶어서 순간 마음이 급속도로 식었다가, 바로 해명이 나와서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독서의 여운은 시간이 지나면 가시겠지. 그래도 이 책을 읽은 것을 언젠가 떠올리면서, 나도 고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나중에 에이지처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도 멋질 것이다.


엄연히 따지면 느린 것은 아닌가? 숨막히게 빨리 가는 추리 작품들이 많다보니, 간만에 홈즈 풍의 작품을 보니 속도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답답하기보다는 한가로운 느낌이다. 추격신에다 총 쏘는 장면까지 나오는데 긴박하지 않다니, 읽는 내가 이상해진 것인가 의심도 들지만;; 추리를 이끄는 주인공의 이런저런 설정들에 처음에는 좀 웃었는데, 다 읽고 나니 이런 요소도 맛이 있다 싶다. 중간에 과거의 사건 이름들을 굳이 언급해놓아서, 나중에 이거 다 책으로 써서 보여주려고 보여주는 거지? 꼭 토해내셔요 하고 벼르게(?) 되기도.


소재에서 ABC 살인사건 류인가 하고 좀 두근거렸는데 아니었고, 남자가 의심스러워질 때는 나를 찾아줘인가 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그냥 내가, 분류가 미스터리나 스릴러일 때는 로맨스가 거추장스러운 사람이라 생동감 넘치는 반응을 못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필로그에서 주인공의 양심 없음이 느껴져서 더 식은 감도 있고...어쨌든 납량특집 시즌에 빠른 전개의 이야기와 함께 잠시 더위를 달래보았다.


인간이 장미라는 꽃에 대체 얼마나 많은 의미를 두고 있는지 참 어질어질하다. 찬양했다가 경멸했다가, 이런 의미네 저런 의미네 했다가...한편으로 사람에 대한 미의 기준은 변해도 꽃 에 대한 기준은 불변인지, 농작물도 아닌 꽃을 고대부터 정원에서 애지중지 길들였다는 데서 놀라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장미가 지능이 있고 번식을 위해 인간을 조종한다는 상상 어떠냐고 작가가 말할 때는 sf의 냄새까지 풍겨주는 책이었다. 장미 판매를 둘러싼 환경 문제도 짤막하지만 언급되고, 추모와 장미의 관계라던가, 심심할 틈이 없다.
꽃에 대해 무지하다보니, 찔레꽃과 해당화가 실은 장미라는 데서 깜짝. 책에 언급되는 종류가 엄청나게 많아서 일부밖에 검색해보지 못했지만, 다른 장미들도 사진만 보면 '이게 장미라고?' 싶은 형태가 꽤 많다. 추상적인 부분부터 과학적인 부분까지, 장미라는 식물의 팬이라면 소장하기 정말 흐뭇한 책이 아닐까.


외진 곳에서 개최되는 파티라면 줄초상이 나겠지 했는데 빗나갔고, 현란한 추리도 없었 다. 하지만 천천히 인물들의 이야기가 드러나는 과정도, 주변에 오만가지 불행을 뿌린 이가 천벌을 받는 것도 만족스럽다. 행적에 비하면 너무 자애로운 결말이다만...단독 주연은 아니더라도 해나가 좋았기 때문에 좀 더 밝은 결말이길 바랐다만, 원인이 없어졌다고 고통이 싹 지워지지 않는 것도 인생 이야기니...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매우매우 궁금하다.


뒤늦게 읽은 책이지만, 습기차고 더운 시기 셀프 납량특집으로 괜찮은 선택이었다. 시작부터 개점 목적이 평화롭지 못한 서점이고, 예상하는 VIP뿐 아니라 다른 손님들도 하나같이 상태가 안 좋 으니 아무리 소설 속 장소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나 상상은 일어나지 않는다만...쫓고 쫓기는 사이에 유일하게 공유하는 것이 책 사랑이라는 게 신박하기도 하고, 간간히 등장하는 한국 옛 잡지나 책이야기들이 신기하기도 하여 스르륵 다 읽었다. 다 끝나갈 때 뜬금없이 중요해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찾아보니 다른 작품 주인공의 까메오 출연인듯. 긴 여름 끝나기 전에 찾아봐야겠다.


메데인이나 시카리오는 여러모로 악명이 높고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졌다만, 나에게는 이 책에서의 묘사가 이때까지 본 것 중에 제일 충격적이다. 마약 카르텔과 형사들은 직업상 폭력을 많이 보고 접할 수밖에 없지만, 그냥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 1이 매일 보는 풍경이 이랬을 거라고는 진심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경력이나 이름으로 봐서 작가 본인이 모델인 화자의 말이 독한 편이라 처음엔 그냥 독설가 캐릭터인가 했는데 (당장 새벽에 축구 보고 기력이 쇠한 와중에, '인류가 텔레비전 앞에 오래도록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 스물 두 명의 유치한 어른들이 공을 차는 걸 지켜본다면, 희망은 없는 거야' 같은 소리 읽으면 이빨 사이로 소리가 샌다...) 그렇게 한 마디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지내다 귀국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희망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니까 끔찍함이 더하다. 설정상 양심적인 주인공도 아니다만(이게 귀국해서 너무 절망한 나머지 이렇게 바뀐 건지 원래부터 이런 성격인 것인지는 언급이 없지만, 후자의 설정이 아니길 바란다...) 이 정도까지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신랄하다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가다가...
젊은, 아니 어린 알렉시스나 윌마르의 삶은 대체 뭐라고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비극이라고 쓰면 이상하게 드라마틱하고 얄팍하게 느껴지고, 이 얇은 책 속의 인생들에 대해 표현할 어휘력이 모자란 것이 한스럽다. 내일이 무언지도 모르고, 대단한 이유도 없이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안 가리고 총을 쏴대고, 그러면서도 개 한 마리를 쏘지 못하며 오래살기는 커녕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마당에도 멋진 옷을 입고 가전제품을 사고 싶어하는 살인마들. 그 와중에 무슨 무속이나 고대 신앙마냥, 시카리오들이 용서와 보호를 구하면서 성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에 감상을 표현할 단어를 다시 찾지 못한다. 화자도 솔직히 다른 소설이었으면 어디 문제 있는 악당으로 나올 법한 정신상태인데 성모에게 자신을 의지하라고 하질 않나(그 아들과 카톨릭을 그렇게 깠으면서...) 읽으면서 목이 탄다. 해설에 의하면 주제가 비슷해보이는 작가의 나머지 작품들이 지금까지 번역이 안 된 걸 보면 너무 절망적인 내용은 역시 판매가 잘 안 되는가 싶다. 영화화도 되었다길래 검색해서 트레일러를 보았다. 영화의 평가가 좋은 걸 보니 오히려 더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절망스런 이미지들을 시각적으로까지 접하면 내 멘탈을 확인사살하게 될 것 같아서...


한국어판 제목이나 표지는 뭔가 서정적인데, 책 목차에서 알콜 섭취에서 세계 정상급의 명성이 있는 아이리쉬의 기개가 느껴지니 아이리쉬 버전 부코스키의 회고록같은 건가 했는데 아니라서 다행이다. 84세에 한 자리서 저 술을 다 먹으면 급성 간염 오는 게 아닌가 싶다만, 인물들의 대화로 보건대 주인공은 항상 이 정도는 마시는 설정인 듯 하니 역시 아이리쉬다 생각은 했다만.
사랑도 상실도 죄책감도 정말 세피아색 사진들처럼 흘러간다. 보통 주인공이 투박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우직함과 깨끗한 양심, 세상과의 소통 창구가 되는 천사같은 부인이 한 세트인데 여기에 들어가면서도 또 벗어나는 부분이 있는 것도 매력이고...동전 하나를 둘러싼 드라마에서, 사실 모리스가 정말 죄를 지은 것인지 아닌지 솔직히 판단하지 못하겠다. 토마스의 행적이나 토니의 장례를 생각하면 동전 따위 문제도 아니지만, 그 집착에 관련도 없는 후손들이 괴로워하게 되었고...에밀리와 힐러리는 책망하지 않았지만, 용서를 받았으니 죄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당장 직전에 읽은 '내가 언제나 바보 늙은이였던 건 아니야'도 노년에 과거를 돌아보는 설정인데 박자도 온도도 너무 달라서 두 소설이 한층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래도, 소설 속 세계에서라도 우직히 살며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좋거나 싫거나 이게 나라고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따스하다. 좋은 시간이었다.


기분이 끈적끈적할 때는 악을 두들겨 부수는 책이나 왕년의 포카리스웨트 광고 같은 뒷맛을 주는 에세이의 약발이 좀 필요하다. 새하얀 표지와 짧고 편안한 글, 중간 중간 책 이야기. 우연히 매일 마주치던 이에게서 그 사람의 인생 책 이야기를 듣고, 식당에서 편지를 쓰는 여인과 친구가 되고, 평생 자신을 이끌어주는 친구같은 책이 있고...여름의 카페 테라스 그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기분을 이 더위 속에서 살짝 맛본다.


읽고 나서 작가의 나이를 다시 확인했다. 79년 생. 프랑스에서 2014년에 출간된 걸 생각하면, 늙음과 회한을 논하는 내공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공사 양면으로 노년층과 자주 접한 경험이 있다지만, 이 정도로 쓸 수 있다는 건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있어서일까? 노인이 주인공인 소설은 흔하지만, 언젠가부터 유쾌한 방향이 주류가 되고 가끔은 거의 판타지에 가까운 묘사들도 많아지는 것 같다. 고령화사회가 되고 의학의 도움으로 건강하게 지내는 노년층 인구가 많아서 그렇겠다만, 아직은 모두가 그렇게 지내기가 힘든 것이 현실 아닌가. 마음같아서야 나도 잭 리처처럼 환갑 넘어서도 주먹을 자랑하고 체력이 남아돌았으면 좋겠지.
육체적 고통, 사회의 구성원 자리에서 밀려나는 데서 오는 소외감, 노인들끼리 모인 환경에서 오는 불안과 우울, 나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는 존재의 부재...인생 막바지에 맞닥뜨려야할 피할 수 없는 과제들이 있고 첫 페이지부터 계속 흘러나온다. 그렇다고 이 책이 우울한 것은 아니다. 내용과 차이가 좀 있긴 하지만, 즐거운 대목이 없다면 한국어판 표지가 이렇게 깨발랄할 수는 없을테니까.(...그래도 오해를 부르는 표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유쾌한 분위기만 따진다면 투석기를 자기 내연녀라고 소개하는 로제가 주인공이어야하겠다만, 틈만 나면 독설에다 간호사 대상의 성희롱적 독백이 혐오스러운 독거노인이 주인공이어서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곰씹어볼 문장들이 많았고, 닥쳐올 미래도 그렇지만 지금의 고통이나 선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거친 삶을 경험하고 책이나 이론을 신봉하지 않는 레옹이, 책 오덕 잭과 벌이는 티키타카 부분들도 잠깐이지만 볼거리다.
- 책은 야만과 맞서는 마지막 성벽이야.
- 매우 훌륭한 얘기로군. 하지만 자네 말대로라면 국민을 고생시키는 비열한 정치가들은 자네가 애지중지하는 사상가들의 책을 읽지 않은 게 분명해. 과거의 황제도, 현대의 독재자도 틀림없이 형편없는 문맹일 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