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나온 지가 꽤 된 책이라, 언급되는 광고 중에 '이런 게 있었지...'부터 '이런 게 있었나?' 싶은 광고들이 많다. 사실, 첫 단락부터 영화 E.T를 모르는 학생들에 저자분이 경악하는 것이라(...) 지금 학생들이 읽으면 심리적 거리가 크겠다만...그래도 읽으면서 즐거웠다. 아는 그림들은 아는 그림대로 광고에서 쓰이는 예시나 맥락이 신기하고, 몰랐던 그림들은 모르는 대로 신기하니까. 도판 인쇄가 알아보기 좀 어렵긴 하다만 검색하면 다 나오니까 큰 일은 아니다.
최근에 이집트 관련 강의나 책에 있던 말들이 그대로 나와서 놀라기도 하고, 맨유 뮤지엄에 있다는 예수 칸토나(...)에 폭소하고, 현대미술관의 당시 위치에 대한 격노에 약간 당황하기도 한다. 제프 쿤스의 2013년 작품이 5천 5백만 달러에 팔린 것을 두고 예술의 불편한 진실이 논해지는데 이 책이 출간된 뒤에는 9천만 달러 넘는 작품을 팔았으니 참 놀라운 일은 끝이 없다.
미술을 알아야 사는 시대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아도, 우리들이 광고와 옛 그림들의 연결을 통해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신기한 체험을 한다는 건 즐거운 일이고, 이 시대니까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내일은 길가의 간판들을 한 번 더 눈여겨 봐야겠다.


종이가 싸지도 않던 시기에 14만 여 통의 서신을 남긴 이가 있다니 그 자체로 꽤 놀랍다. 한 상인이 남긴 유산 덕에 일단 제일 기뻐한 건 이탈리아 역사가들이겠지만, 시간도 공간도 다른 곳의 사람들의 희노애락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기술도 가치관도 너무 달라서 같은 지구 위에 있었다는 것 외에는 뭐가 같냐 싶다만, 프란체스코와 그 가족친지들의 이야기를 보면 참 사람이란 다 똑같구나 싶기도 하고...
당시의 길드나 도시문화도 그렇다만(재미로 보기엔 좀 심각한 부분도 많다...), 거의 딸 뻘이고 식재료 하나도 남편 지시가 없으면 구매하지 못하는 지경에도 당차게 할 말 다 하고, 성질은 내지만 또 할 일은 다 하는 부인 마르게리타나, 과일 배불리 못 먹어서 죽은 사람 얘기 들어봤냐고 편중된 식생활을 팍팍 까대는 의사 로렌초, 읊어대는 모든 게 철학인 친구 마체이...살아서 서로를 칭찬하고 꾸짖고 돈 때문에 난리를 떨고 하는 모습을 보다보면 책장이 금방 넘어간다. 이 많은 서신을 굳이 유언으로 고스란히 남겼다는 것은, 언제 읽히더라도 자신의 삶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겠지. 아직 조야한 감상문을 남기는 데도 망설임이 있는 입장에서는 그 마음가짐이 좀 부럽기도 하다. 라포의 서신이나 본문에 명문장이 많지만, 읽다가 남의 이야기같지 않아서(...) 의사의 서신을 메모해둔다.
당신 나이에 음식을 조금도 자제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당신이 생각해도 건강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수치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은 싼 것"라고 변명하지 마세요. 신학자들과 도덕철학자들은 세속적인 문제들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큰 죄라고 생각합니다. 탐욕의 노예로 불리게 되는 것이 노년에 어울리는 훌륭한 명예인지를 이제 생각해 보세요!


인간이 소비하는 모든 물질에는 이야기가 있으며, 그것이 과학 분야든 역사 분야든 다루는 책들이 많다. 그런 와중에도 이 책에 특별함이 있다면, 인간이 어떻게 다방면으로 지구를 갉아먹고 한 자원에서 다른 자원으로 발을 옮기는가가 좀 더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고, 알기 쉬운 만큼 쓴 맛도 더하다는 점이겠지. 환경 문제만 전문적으로 다룬 책들보다 마음이 더 무겁다.
지구를 갉아먹는 행태가, 지금만큼 엄청난 수준이 아니어서 그렇지 이미 고대 로마부터 존재했고, 모피를 얻으려고 동물뿐 아니라 소수 민족들까지 씨를 말리던 행태나 정치적 변화를 읽다보면 옛날 일이라도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진행형인 금과 석유, 러시아병 문제도 울적하고(저자의 이 부문에 대한 언급은 유튜브에도 있었다) 맺음말 전체가 묵직한 한 방처럼 다가온다.
사족이지만 캉디드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경 지식이 그냥그냥 있던 상태에서 별 생각도 없이 읽었던 것이, 저자의 시작부터 맺음말까지 꾸준한 인용과 해설을 접하니 내 감상에는 엄청난 구멍이 있었구나 싶어서...소개라기 보다 내가 중간중간 다시 보면서 기억해야 할 것 같아 메모해둔다.
캉디드는 우리가 엉망으로 만들어놓은 세상을 돌아보면서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수세기 동안 인간은 시종 선량함과 평화에 대한 설교를 되풀이하면서 서로에게 고통을 가해왔다. 그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일부 사람들은 탐욕스럽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탐욕과 어리석음은 자연이 우리 안에 심어준 연대의 토대를 시시각각 갉아먹는다. 그 때문에 인류는 마치 아름다운 자연의 몸에 자라는 악성 종양처럼 자연의 즙을 게걸스레 빨아먹고 유독물질로 자연을 더럽힌다.
캉디드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원은 우리가 가꾸어야만 합니다." (463쪽. 마지막 페이지)


읽으려고 리스트에 올려놓고 잊었다가(...) 좀 늦게 읽게 되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그렇다만, 자기가 정의라고 믿는 사람들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도 비판하는 주인공도 비판과 고뇌를 피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또 이어진다. 한 번은 반드시 나오리라 생각했던 요코의 과거가 나오고, 미코시바가 생각보다 더 흔들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만 재미를 느끼기에는 참으로 어둡다. 사적 제재라는 것이 지금 시류와 맞물리기도 하니 마음이 더 어두워진다. 순식간에 책장이 넘어가는데 앞 페이지의 씁쓸함이 계속 입 안에 남는다. 검사나 형사들, 기자들은 시치리 월드에 등장한 이상 반드시 어딘가에 나왔거나 나오겠지만, 그런 재미를 즐기기엔 지금 내가 너무 지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옮긴이의 말에 언급된 속편이 슬슬 번역이 나올 때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하며 기다린다. 요코의 말처럼, 사람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믿고, 나도 바뀌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무함마드 빈 살만 책을 번역한 분의 사우디 이야기라 흥미가 생겼다. 중동 정세를 다루는 컨텐츠들은 매우 많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인이 사우디에서 살아보고 그 분위기가 어땠는가 하는 이야기는 귀중하지 않나 싶다.
구체적인 제약이 많으면서 한편으로는 주먹구구식의 일처리가 돌아가는 모습과, 예상은 가능하지만 매우 낯선 일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사막에 안 가도 도시에 알아서 찾아오는 모래폭풍, 개수까지 정해서 통제하는 성지순례 비자, 이해불가한 운전문화와 출국비자, 부르카 차림으로도 얼마든지 서로를 알아보는 현지인들의 투시능력, 현재 일어나는 변화들과 당연히 그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왕세자 이야기까지. 그냥 먼 나라 신비한 이야기라고 넘기기엔 지금 중동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파장이 너무 크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마지막 페이지에 던져진 질문의 해답을 알려면 강산이 몇 번 더 바뀌어야 할 것 같다만, 운이 좋으면(...물론 안 봤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다만) 그 답을 목격할 수도 있겠지.


일본에서 60만 부가 넘게 팔린 작품이고 제목도 특이하니 이사카 고타로 스타일일까 상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나루세는 분명히 평범한 스타일은 아니다만, 응원해주는 친구들도 스쳐가는 사람들도 모두 우리 주변에서 있을 법한 이들이다. 흔하다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그래서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들. 뭐든지 잘 한다는 결과를 빼고 보면, 나루세가 도전해보는 일들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도전이고. 편안하게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막 쓰려고 꺼내든 보송보송한 스포츠 타올같은 이 책을 왜 많은 사람들이 찾았을까 머리를 굴려본다. 너무 빠르고 실패나 재도전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에서, 나루세의 말처럼 잔뜩 씨를 뿌려 하나라도 꽃이 피면 된다고, 꽃이 피지 않았더라도 도전한 경험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일까. 복잡한 시기에 담백한 이야기를 맛보고 싶어서일까. 어느 쪽이든 읽는 데는 큰 상관이 없겠지만.


"친구들과 그 책을 읽던 무렵 사티라는 음악가가 있었다는 것도, 물론 그의 작품에 대해서도, 그리고 무엇보다 인생이 그토록 많은 그늘과 그와 같은 정도의 풍요로운 빛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도 우리는 상상하지 못했다."
느리면서 분명한, 그러나 크지 않은 목소리로 누군가 읽어주는 느낌. 햇볕 드는 조용한 창가에서 혼자 하얀 탁자 위에 놓인 약간 낡은 하드커버 책을 보는 느낌. 스가 아쓰코의 책은 항상 그런 맛이 있어서 책이 끝나는 것이 아쉽고 저작이 많지 않다는 것이 또 아쉽다.
책을 읽으면서 그 내용으로 인한 기쁨과 슬픔을 알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읽으며 연결되고, 그 추억을 꺼내며 다시 읽는 책에서 새로운 발견을 하고...그 내용을 따라가면서, 마치 작가에게 초대라도 받은 마냥 그래 그런 책이었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어 그랬었나? 하면서 기억을 더듬는다. 함께 책을 읽었던 어린 시절의 친구 시이베의 이야기에서, 책으로 연결되었으나 이제는 없는 이들을 생각한다. 파데트가 되고 싶던 소녀가 상상하지 못했던 인생길을 지나 돌아보는 모든 것들이 따뜻하고, 가끔 가슴이 시리다. 재주없는 한 독자에게도 언젠가 이렇게 돌아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전설이나 괴담을 이야기하고 거기에 얽힌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건 흔한 패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더 찾아보게 되는 매력이 저자에게 있다. 모토로이 시리즈 는 당시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고달픔이 더 녹아있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다른 시리즈보다 더 재미있게 보고 있기도 하고. 단지, 후반 '팍'이 아니라 '스르르륵...'하고 김빠지는 것이 정해져있으니 그냥 그 흐름을 따라갈 뿐이다.
예전에 거미의 땅이란 다큐멘터리를 봤었는데(얼마나 힘든 내용인지, 중간에 상영관을 나가는 관객한테 할 말이 없었다...) 읽다보니 간만에 생각나기도 하고...내가 민감해서 그런가 결말에 유달리 씁쓸함도 느낀다. 갑자기 등장하는 캐릭터는 너무 '저는 다음 권에도 등장 예정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순간 이마도 한 번 쓸었고. 소설 전개도 그렇지만 관련 사실들만 찾고 토론해도 오래 곰씹게 되겠다만, 정신없이 주인공과 미로를 돌다보니 피로하다. 그 와중에 옮긴이의 말 보고 다음 권 벌써 기다리는 나는 아마 세간에서 좋게 보는 독서인의 카테고리에는 못 들어가겠지;


손편지라는 게 사실상 사라져가는 시대에, 옛날 엽서를 보면 그것만으로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지역이 인천에 국한된 것이 살짝 아쉽지만, 찍힌 지역을 일일히 찾고 변화하는 모습까 지 설명하려면 전국을 망라하는 건 어려웠겠다 싶고...
엽서 트리비아로 시작한 뒤 등장하는 인천의 풍경이 정말 충격적이다. 자극적인 내용이어서가 아니고, 얼마 없는 향교나 한복입은 이들의 모습을 빼면 시가지는 인천이라는 설명이 없으면 일본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외국인 조계지들이 들어오며 개발이 되고 식민지 시대가 된 후는 매립지까지 만들어 일본인들이 거주했으니 따져보면 놀랄 일이 아닌데도, 이 모습은 예상을 좀 많이 넘어간다.
엽서에 나온 장소를 지금의 지도와도 비교하며 볼 수 있고, 학교와 쓰레기 소각장, 항구를 끼고 벌어지던 각종 상업의 흥망 등 재미있거나 씁쓸한 이야기들이 있다. 전혀 몰랐는데 2020년에 우크라이나 건축가 사비틴을 러시아 청년이라고 소개했다는 이야기도 뒷맛이 쓰다. 백여 년 전의 마스크 이야기, 대불호텔, 외국인 저택과 공화춘...건물은 사라졌어도, 사람이 사는 곳은 이렇게 무궁무진하게 이야기를 남기는가 싶다. 나중에 인천 마실을 갈 때, 다시 곰씹어보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건축 설계도 퍼즐도 잘 모르지만, 설명을 들으면 재미있다. 저자의 전작도 각종 가설들이 신기했고(재미있지만 그 인기가 신기하기는 하다. 명쾌한 추리극이나 스케일이 큰 이야기가 아니라 짧으면서 으슬으슬 안 좋은 예감을 계속 뿜는 책이니까. 시대가 스산해서일까...) 일단 페이지 넘어가는 게 빠르니, 짬짬이 고단함을 달래려 집어들었다.
일단 1장에서 불길함을 엄청나게 뿜어서 이거 그냥 호러인가 했는데 아니었고...4개의 짧은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아아 그렇구나 싶다. 역시 귀신보다 인간의 악의나 집착이 더 기분 나쁘고, 이야기가 맞물리고 앞장을 다시 들추니 기분이 더 다운된다(...). 하지만 마지막에 갑자기 희망도 던져주니, 꿉꿉한 면도 밝은 면도 모두 포함하는 게 세상이다 싶다. 좀 호흡이 긴 내용이었다면 젊은 기자 지망생의 결말이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하다만, 틈새 시간 재미있게 읽었으니 지금은 족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