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별로 두껍지 않은 소설이 예상외의 포인트로 가득하다. 책 열자마자 머리말 대신 작가의 경고문과 자살 예방 핫라인 기재된 책은 처음이며, 스릴러가 아니라 기댈 곳 없는 청년들의 방황과 사랑 이야기였고 그 와중에 다루는 죽음의 종류도 참 다양하기도 함. 책 날개의 짧으면서도 파란만장한 저자의 경험이 반영된 것일까, 중간중간 다프네의 대사가 참 실감나게 슬프다. 좋은 일이 줄이을 때 그게 다 자기 능력 때문이라 믿는 사람은 극소수인데, 나쁜 일이 계속 터지면 다 자기 탓이라고 믿는 사람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새삼 생각하며 울적해짐. 우울증이 정녕 "퇴마 의식을 치를 수조차 없는 악령"이기 때문인가...
그 와중에 다프네의 플레이리스트 무엇임. 멘탈 나갈 때 멀리해야 할 노래들은 여기 다 있네. 분위기 잠깐 평화로울 때 훅 던져지는 카프카 감상에도 사레들릴 뻔. 책에도 공감 버튼이 있으면 백만 연타 하고 싶습니다.
어쨌든 꾸준히 인용되는 시구들과 두 청춘의 변화, 상당히 긍정적인 결말에 읽는 마음에도 좀 평화가 찾아온다. 모나와 마르탱의 이야기엔 아쉬움이 있지만...특히 모나와 말리아, 부모님의 서사가 더 있거나 최소한 편지 내용이라도 나왔으면 했다. 모나의 선택이 모나에게 만족스러웠을지라도, 다른 선택도 오답이 아니라는 점까지 논했으면 하는 건 나뿐이려나. 이 분량과 이 설정에서 다루기엔 너무 큰 주제라 어쩔 수 없었나 생각도 하지만, 역시 아쉽다.
뭐, 시작의 경고문부터 권말 후기까지 꾸준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느꼈으니 오케이. 주어진 오늘 하루를 감사하며 또 지내보자!
"죽음은 영원하지만 문제는 영원하지 않아요."


표지가 상당히 의미심장해 보여서 읽었는데, 간만에 수험생 시절 생각날 정도로 빡셌다. 재미가 있긴 한데, 얼굴이란 부위를 설명하는데 이렇게 많은 지식이 필요한 줄 몰랐다. 현재 얼굴이 가진 기능을 알기 위해 세포와 유전자, 태아의 신체 형성, 생명의 발생부터 호모 사피엔스 발생까지의 과정, 뇌, 인류 이주의 역사까지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서 눈이 빠질 듯. 이 기회에 거의 다 까먹은 용어들(정확한 뜻과 기능이 아니라 '이거 봤는데'가 기억나니 참담하다...)을 일부 점검한 건 좋은 일이지만, 과장 빼고 신경능선세포나 상측두 이랑 같은 용어를 내년 이맘 때 기억할 확률은 한없이 제로에 가깝다. 무리! 게다가 가설들(상당수는 정설이라고 생각했던)은 왜 이리 많은지. "이 시나리오를 직접 입증할 방법은 없다." 과학에서조차 '가능성은 높은데 아직 증거는 없구요'라는 뜨뜻미지근한 기분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착잡하다. 세상 참 편하게 가는 일이 없어..."인간은 본능적으로 원인을 설명하는 하나의 간단한 답을 바란다." 프로펙서 엑스 수준의 독심술 구사하는 선생님...무섭습니다.
이런 궁시렁들을 다 감안해도 읽어 좋은 점들이 차고 넘친다. 사람 신체가 다 그렇긴 하지만, 이렇게 얽히는 요소가 많은데 대부분의 사람이 무사히 얼굴이 형성되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게 기적이라 경탄을 금할 수가 없음. 게다가 뇌가 커지면서 풍부한 감정 표현과 사회성이 생겨난 게 아니라, 이 모든 게 얽혀 지금에 이르렀다는 데서 벼락 같은 충격. 사람에 비할 수준은 아니라해도, 벌이나 양의 얼굴 식별 능력에 또 놀라고, 인류의 자기 길들이기 가능성(고려해볼 가치가 있으나 현재 입증할 수는 없는)에 헉 소리 내고...어렵다고 우는 소리 냈다가 신기해서 오메오메 하기를 반복하느라 피곤했으나, 지금의 과학 기술로도 다 증명할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얼굴의 이모저모를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었으니 보람차다. 분석 기술도 계속 발전하고, 새로운 화석들이 발굴될 가능성이 있으니 운이 좋으면 시간이 지나 가설이 입증되거나 폐기되는 과정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오늘 감상 종료.
"진화는 오직 미래에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속성들을 계통들에 제공하는 선견지명을 가지고 작동하지 않는다."


과학으로 감정에 접근하는 책을 보면, 희망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꽤 고민이 된다. 결국 신체적 증상도 의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마음의 문제도 상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되니까. 체크할 것들만 배로 늘어나는 느낌에 피곤하지만, 작은 것들을 개선해보자고 이런 책들이 있으니 열심히 읽어야겠지. 프롤로그의 내담자처럼 될 수는 없더라도, 10개 항목의 가이드를 실행해서 최소 한두 개라도 기분을 약간이라도 안정시켜 주는 게 있다면 얼마나 수지 맞는 장사인가. 책 한 권으로 병원비를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
부위(?) 별로 돌아가면서 잘 챙겨주어야 한다는 것, 그냥 쉬는 게 아니라 온몸의 긴장을 싹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피부로 다가온다. 정신적으로 움츠러들거나 울컥해서 몸이 굳는 것은 확실히 스트레칭만으로 어떻게 안 되니...싱잉볼 명상은 개인적으로 조금 미묘하고, 핵심감정 표현하기도 설명만 볼 때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생각했지만, 실제로 해보니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다. 평소에 얼굴도 굳어있다보니 표정을 유지하는 2분이 영원같이 느껴지고, 지쳐서 그런가 약간 마음이 가벼워지는 느낌. 최종 목적인 ‘표현과 정화’까지 가려면 년 단위로 연습해야겠지만. 과연 작심삼일로 끝날 것인가, 득도할 것인가...어쨌든 나의 감정과 건강을 돌보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수단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안도하며, 감상 끝.
“감정은 인간을, 나를 이해하기 위한 신호다. 그것을 잘 헤아릴 때 우리는 과거에 사로잡히거나 미래의 기대에 짓눌려 삶을 갉아먹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작동하는 감정시계는 현재를 제대로 사는 힘이 된다.”


소설에서 연쇄살인마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파트는 대개 불쾌하고 그게 정상이겠지. 하지만 살인의 정당화뿐 아니라, 조용한 동네에 누적된 질척한 현실들을 같이 맛보고 있으니 꿉꿉함이 더한다. 그리고 선한 여성의 믿음이 무너져가는 모습이 왜 이리 갑갑한지. 게다가 아무리 바탕이 선의라도 스토킹은 범죄라니깐! 당사자는 바라지도 않는데 자신의 추억을 바탕으로 그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덧씌우고, '내가 널 도와줄 거야!'라며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생각해본다. 하지만 작정하고 그런 길을 가는 경우가 몇이나 되리. 대부분은 정신을 차려보니 늪지 한 복판에 있는 게 아니겠는가. 무섭다 무서워...
그래도 호적수가 등장하면서 꽤나 흥미로워지고, 클라이막스 삼파전에선 휘파람 나오는 재미가 있었으니 마냥 우울하기만 하진 않았다. 어둠이 없는 곳이 지구에 어디 있겠냐마는, 쏟아지는 햇살이 절로 떠오르는 뉴질랜드에도 범죄와 미스테리가 건재하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감상 종료.


작은 선물 포장을 방불케하는 외관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 뒷표지에 '이 프로젝트는 예상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고 적혀있는데 과연 그랬습니다. 내가 웃는데 웃는 게 아닌 것 같고, 이거 웃어도 되나 판단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미코 부인 파트가 진행될수록 진짜 다큐 보는 마냥 마음이 무거워져서 장르를 잊을 지경. 장르가 부조리극이 아니고 이 세상이 부조리네...할머님 캐릭터가 LOL 동접자 마냥 지금도 온 세상에 존재하리란 상상이 드는 것은, 부정적 편견이 부르는 망상인가.
마지막 촬영만 남기 시작하니 다시 알딸딸한 풍자가 시작되어 안심 아닌 안심을 했지만...초반의 능구렁이 인상으론 예상 불가능한 방향으로 가는 J. 넛지의 선택에 어안이 벙벙해진다. 설마설마하는 사이 얇은 책 다 끝나버렸음. 그리고 나서 맨 앞의 아론의 편지와 마지막 페이지를 다시 보니 정말 골때리는 여운이 밀려온다. 이게 헝가리 발 펀치의 맛인가. 지금 봐도 일품(?)인 이 쿡쿡 찌르는 센스를, 70년대 사회주의 국가에서 선보이셨다니 슬쩍 무섭다. 소개글에 언급된 작가분의 고난 설명이 짧아 괜히 더 상상하게 되는데, 그래도 어디 골방 끌려가신 적은 없는 듯 하니 그나마 다행인가.
여러 의미에서 감탄도 하고, 최근 읽었던 "좋은 죽음"에 대한 책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죽음의 순간이란 무얼까'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니 오늘의 픽업은 틀리지 않았다. 짝짝짝.
"네가 보고 있는 그놈의 예술과 학문을 찍어봐.
정직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라고.
마치 다리를 건설할 때 스킨스쿠버들이
수면 아래에서 벌이는 일들을 보여주듯,
그런 자세로 임하라고.
문제는, 여기서는
스킨스쿠버들이 익사를 한다는 거지."


상도 많이 받았다는 작품이 두께도 상당하니 기대감이 샘솟는다. 그러나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신발 속에 겨울비 스미는 듯한 느낌에 착잡해지기 시작. 번뜩이는 추리나 신나는 반격 따위는 없으리란 슬픈 예감은 이럴 때만 맞아떨어지고...주요 화자들은 정해져 있지만, 등장인물 전체 수가 대하사극 수준이라 간만에 러시아 고전 볼 때처럼 메모하며 봐야하고 여러모로 빡세다. 그래도 책장 넘길수록 뒤가 궁금해지는 파워와 더불어, 화자들 시점 전환 속도가 빠른 덕에 완독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으니 OK. 이런 내용이 한 마디 한 마디 음미하는 분위기로 서술되었다간, 다 읽기 전에 내과 가서 위장약 처방 받는 사태가 생겼으리...
그들만의 질서로 노는 상류 계급 이야기는 무슨 장르의 책에 나와도 기분 나쁘지만, 이 책에선 어이없음도 두 배다. 조금만 신경 쓰면 온동네에서 자기들 평판이 바닥치는 걸 알고도 남을 상황에서, 마치 평소에는 평판이 대단히 높고 좋았다는 듯 남의 입방아에 오르지 않겠다는 모양새 뭡니까. 결국은 아랫것들의 의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이 태도까지, 현실이나 픽션 속이나 별 차이 없는 것 같아 두통이 온다. 한편으로는 결국 어느 쪽으로 굴렀어도 구원 받을 길이 없는 앨리스를 보며, 책에 입냄새 배었을까 걱정할 정도로 줄한숨. 불행한 청춘들은 또 왜 이리 많아 멘탈 약한 어른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70년대 닫힌 사회 이야기 참 녹록찮다.
그래도 결말에선 어느 정도 구원이 있어 다행이다. 일말의 자비를 베풀어주셔서 감사하네유, 작가님. 일 터지면 이상한 짓 말고 로펌에 돈 부어야 한다는 진리와, 지역 유지가 버티는 산촌 혹은 어촌 방문은 극력 피해야 한다는 믿음을 재확인하며 오늘의 잡상 종료.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거대한 거짓은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는 그가 길을 안내하는 법을 배울 때,
아버지가 철저하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숲속에서는 한번 결정을 내리면 뒤집을 수 없으며,
때로는 비극을 부르기도 한다고."


일단 책 표지가 개인적으로 백만 점. 그리고 시작의 영국 경찰 이야기부터, 소소한 웃음 주는 문장들이 가득하고 그림들은 어찌 이리 귀여운가. 글도 잘 쓰는데 그림 실력까지 출중하시니 정말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요...영국이란 동네에 대한 놀라움과 애정의 표현을 보니, 진짜 사랑이란 이런 것인가 체질에도 없는 생각을 해본다. 아름답다 생각이 드는 점은 아낌없이 칭찬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거나 완벽하지 않은 모습도 받아들이는 것, 그런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상대의 현재 상황이 나보다 얼마나 좋건 간에,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비굴해지지 않는 것. "영국에서 저는 거대함과 막강함, 부유함, 번영, 비할 데 없는 발전상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아직 작고 미완성의 상태라는 사실이 결코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작고 어수선하며 불완전한 것은 그 나름대로 용감한 사명이거든요." 감동의 기습 펀치 크윽! 선생님 사랑해도 됩니까?
중간에 스코틀랜드의 양 이야기에서 나오는 삽화를 보고 잠시 혼란에 빠진다. 뭐지 이거, 소여 몬스터여. 몇 페이지 지나 나오는 양들과 소 그림은 너무나 멀쩡하니 이것은 그리는 사람 기술 문제가 아님. 그리고 검색하니 나오는 Highland Cow의 모습 우오오오오오. 희한한 생김새에 놀라고 차펙 선생 묘사력에 놀라고, 저도 모르게 소의 외모에 대해 평가질을 한 나 자신을 반성하고...
체류 기간이 그리 긴 것도 아닌데 분석 어찌나 꼼꼼하신지, 차펙 선생님 금융업에 종사하셨으면 떼돈을 버시지 않았겠는가 망상도 해본다. 동전의 양면 같은 영국인의 절제심과 고립성 해설에선 혀를 내두르지 않을 도리가 없음. 백 년이 지난 글이지만, 책에 언급된 많은 문제들은 영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옛날 이야기라 넘어갈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차펙 선생의 열린 마음이 아직도 보편적인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 씁쓸. 마음이 열리기는 커녕 기본 사이즈부터 작은 독자 1이 할 말은 아닌가...그래도 노력은 할께유...어쨌든 멋진 책을 보아 뿌듯하다. 짝짝짝!
"영국의 정치가 세계를 아우른다면
대영제국이 세계를 아우르기 때문이지
영국의 마음가짐이 그래서가 아닙니다.
영국의 정치가 추구하는 이상들은
영국의 도덕률에 토대한 것이지
보편적인 도덕률에 토대한 것이 아닙니다."


「쓰는 인간」에서의 묘한 언급에 낚였다. 매력 있고 잘 된 여행기이면서, 언급된 이들의 불만을 샀고 뻥이 섞여 있다는 책의 내용은 과연 어떨지. 책을 펼치니 전기작가가 쓴 애정 넘치는 서문이 먼저 사람 속을 태운다. 30쪽이 넘게 '읽자마자 푹 빠지게 멋진데, 진실이 꽤 부풀려지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고 심지어 표절한 구절도 있음에도 어쨌든 훌륭하다'는 얘기를 하니, 궁금증은 더해가고 대체 이 서문은 언제 끝나나 싶고...
어쨌든 그렇게 들춰본 책은 과연 최신 무선 청소기마냥 조용하고 강한 흡입력이 있었다. 하지만 읽기 전 이미 알고 있던 문제점들 외에, 개인적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는 포인트도 꽤 많다. 작가 본인의 시선보다는 인터뷰 대상인 백인 이민자들의 시각 문제지만, 책 전반을 관통하는 토착민들의 고통은 도저히 낭만으로 덮을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떠도는 이들의 고독뿐 아니라 지옥의 매지컬 리얼리즘같은 이 이야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읽히고 있는 것이겠지...그렇다고 쓰린 맛이 가시는 건 아니지만.
부치 캐시디 전설이나 마지막의 경악스런 발굴 과정까지,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하며 잘 읽었다. 글 속에서도 파타고니아의 풍경들은 낭만적이고, 실제로 보면 더 아름답겠지. 하지만 사필귀정이 적용되지 않는 세상에서 흐른 피들 - 아마도 책에 언급된 일화들은 빙산의 일각 수준이리 - 을 생각하니, 방문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 책을 바이블 삼아 길을 떠나기엔 너무 약한 자신의 멘탈에 한숨 쉬며, 오늘의 감상 종료.


표지만 봤을 때는 좀 관념적인 책일까 했는데, 예상외로 재미있었다. 개인적 기록과 휴대용 노트의 역사 도 흥미롭고, 새롭게 변화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미친 역할의 해설들도 놀랍고, 나 자신이 하는 기록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고 여러모로 굿. 한편으로는 그만큼 답답하기도 한 것이, 연구가 제대로 서유럽권에 한정이라는 점. 몰스킨 스타일의 노트를 이야기하려면 어쩔 수 없는가 생각도 들지만, 극동에 필기 매니아들이 얼마나 많은데...연구 힘드니까 당신네들 조상 이야기는 알아서 챙기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어쨌든, 모뎀도 없던 시절 해외토픽 뉴스 보던 기분에 즐겁다. 미술사의 변천에 종이와 스케치북이 미친 영향이나, 각종 여행 기록, 저명한 노트 매니아들, 기록과 정신 건강(읽고 나니 오히려 알쏭달쏭해지기도)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 한편으로, 경찰 수첩 파트처럼 약간 안 좋은 충격을 주는 이야기도 있지만. 깊게 생각하면 예전 흠모하였던 아날로그 수사물 형사들 이미지까지 깎여 나가니 넘어가고...개인적으로 풉풉 웃었던 건, 중세의 발췌문 노트들과 책 판매의 관계. 돌려보는 노트가 SNS로 변했다 뿐이지 결국 사람들 하는 일 똑같구나. 친구 노트에 쓰인 인용문에 낚여 서점 가서 책 주문하는 그 시절 사람들을 저도 모르게 상상하게 된다. 책이 지금보다 비싼 시절이니, 실제로 읽었더니 재미 없었으면 우정이 박살날 수도 있었겠지...
종이에 써내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습관적인 (조악한) 독후감도 내 회백질을 변화시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평소 종이에는 그날 보고 버리는 메모들만 쓰기 때문에 멋진 고급 노트와는 인연이 없지만, 간만에 문구점에 가서 하나 집어올까 생각도 들고. 좋은 노트에 악필로 뭘 적을지는 나중에 고민하기로. 어쨌든 흥미진진한 한 권에 대만족!
"충분히 사용하라. 그러면 노트가 뇌를 바꿀 것이다."


표지부터 이미 '좋은 일 없어...'라는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고, 몇 장 넘기지도 않았는데 주인공 성격을 보니 '좋은 일이 생길 수가 없다'는 확신이 든다. 그래도 최근의 인공지능 스릴러는 과연 어떤지, 궁금하고 아쉬운 건 이쪽이니 계속 볼 수밖에.
개인적으로는, 등장인물이 몇 명 되지도 않는데 전부 공감이 안 간다는 게 제일 무서웠다. 보통 쩔쩔매는 내향인을 보면 '그래 인간관계 힘들지...'하면서 공감하고,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의 약점을 자기가 계속 커버하려는 노력, 그런 모습을 애처롭게 여기는 배려, 실은 불안이나 실망을 극복하기 위한 경박함 등 각 인물마다의 매력에 잠시라도 이입하게 되는데, 그런 방향이 아니라 이야기의 온도가 더 낮아지는 듯. 읽을 수록 이런 내용을 쓰는 사람도 무서워지고, 다시 속표지를 보았을 때는 작가분의 미소마저 다르게 보인다. 윽...
이야기는 예상한 정도만큼 불길하게 흘러가는데, 분위기가 낯설지가 않다. 이거 어디서 많이 맡아본 냄새인데...하다가 확 떠오른 것이 프로테우스4. (세상에, 대체 언제적 얘기냐...) 최종 보스들의 의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장치를 이용한 살인이나 임산부의 존재에서 간만에 추억 소환. 한편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지금도, 이런 방향의 두려움을 왜 우리들이 버리지 못하는가 고민하게 된다. 왜 미션 임파서블의 엔티티가 아니라, 블레이크 르모인이 말하는 영혼 있는 AI를 여전히 걱정하는지...이것도 AI에 물어봐야 하는가?
어쨌든 이런저런 생각하며 반전까지 잘 보았다. 반전에 등장하는 상황은 최근 언급되기 시작한 문제이니, 십 년 정도 지나면 또 어떻게 달라질까. 우리들은 인공지능의 또 어떤 면을 두려워하고 있을까. 운이 좋아 그때 무사히 이 장르의 책을 보면 알 수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