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98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꼬모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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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 특집은 아니었지만 오케이

요코미조 세이시의 팬은 아니지만 또 나오면 꼬박꼬박 본다. 읽은 후 찝찝한 여운이 남고, 시기가 시기다보니 참기 힘든 관념들도 많은데(아예 수백 년 전이면 심드렁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데, 어정쩡한 옛날이라 그런가 힘들다...), 궁금함을 있는대로 유발하는 초반 설정들, 마지막 와다다다 진상 터질 때의 '우와~'하는 느낌에 꾸준히 낚이는 듯. 뭐, 세상에 요코미조 세이시 팬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팬이냐 아니냐가 대수겠어...

이름부터 보통이 아닌 미소년 + 살인마라니, 비에른 안드레센 같은 악역이 세뇌 플레이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내용 아니었다 쩝. 화려한 두뇌가 아니라 특이한 먹성부터 소개된다는 데서 예측했어야 하는데...물론 식성과 행각엔 연관이 없지만, ‘존엄하리만치 우월한 미모’라고 하니까 괜히 모 박사처럼 클래식 틀어놓고 코스 요리 만들어 먹을 것 같잖아...그리고 게다가 독자 시점을 대변해주는 일반인인 줄 알았던 주인공도 중간중간 돌발행동으로 '이건 뭐여' 타임 선사한다. 그 와중에 살인사건 목격한 사람한테 ‘독신이니 그런 곳에 냉큼 갔다가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한 거다’는 형수의 대사에서 비틀. 애초에 등장인물이 적으니까 소거법 쓰면 이유까진 몰라도 범인은 짐작이 가지만, 진상이 밝혀졌을 때는 역시 씁쓸. 본인은 엄청 애절한 줄 알지만 따져보면 나와 님만 중요하고 다른 이들은 소모품인 영 기분 별로인 사랑...

개인적으로는 추리물도 아니며 분량도 적지만 병풍 얘기가 더 재미있었다. 시대도 변했고 내 마음도 메마른 탓인가, 마지막으로 언제 봤는지도 모르겠는 '운명이 점지한 짝' 이야기가 신선. ‘옛날 옛적에’ 스타일이야말로 생명력 발군이고 가끔은 그 약발도 필요한 것 아닌가 홀로 중얼중얼. 등골은 그렇게 써늘하지 않았으나, 90년 전의 사랑 이야기들도 여름에 읽는 맛이 괜찮았다.

신주로
신주로
우아하지 않아도 웃으면 장땡

제목을 보자마자 뭣 모르던 시절의 생각이 떠올라(나이만 들면 간달프 되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정말 어이없는 생각이다. 심지어 영화판 간달프는 체력도 어마무시했는데...) 집었다. 원서가 발매된 2014년에서 또 강산이 변할만큼 시간이 지났으나, 중년의 고민들 카테고리는 그닥 변한 게 없어보이며 개그 코드도 맞는 편이라 쿡쿡대며 감상.

초장부터 "이제는 빌어먹을 아랫도리까지 영원히 스물두살처럼 보여야 하는 거냐고? 도대체 끝이 어디야?"라는 진실한 외침에 웃픔이 밀려온다. 사투에 가까운 머리 손질, '나이에 맞는 패션'(나이 들었으니 익숙하던 옷들 입으면 안 되고, 추해서 남에게 보이면 안 되는 부분을 다 가려야 한다면 저자 말마따나 부르카를 입던지, 의료방호복 장만해야지 뭐 ○●□. 아니 아예 밖에 나가면 안 되는 것 아님?), 심금을 울리는 11번째 챕터 제목 '비상금이고 뭐고, 내 장례식 비용이나 댈 수 있었으면', 수면 문제 등등 뭔 소린지 알겠어서 웃다가 탄식하는 내용들 넘친다. 미경험 고민도 있지만, 이것들도 주변에서 언급된 적은 있는 것들이라 '그렇구나, 이런 상황인가...'하고 고개 끄덕끄덕. 조금이라도 기억해두면 입 잘못 놀렸다가 분위기 작살 내는 일은 피할 수 있으리.

시간이 더 지나도 간달프가 되는 것은 무리일 것이고, 나이 들어 생긴 고민들 중 상당 부분은 파워업할 일밖에 없으니 나중에 분명 "그땐 지금의 10분의 1도 심각하지 않았는데 난리를 떨었구만." 소리를 하겠지. 그렇다면 쪼까 서글프지만 최대한 웃으면서 늙어가는 자신과 딜하고, 내 발로 정류장에 걸어가서 버스 탈 수 있는 상황에 감사하고, 좋아하는 일에나 집중하는 게 최고일 것이다. 기력이 넘쳐본 일도 없으며 툭하면 우는 소리 하는 물 건너 독자에게, 체념이 좀 섞이긴 했지만 웃는 시간 선사해준 제니 매카시 선생에게 감사 감사 대감사. 


"그리고 생각해보면 인생은 원래 웃긴 것이다.

상황이 끔찍하고 비참할 때조차도 말이다.

사실 인생은 상황이 끔찍하고

비참하게 흘러가기 때문에 웃길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삶의 재미를 느끼려면

끔찍한 상황 앞에서

너털웃음을 터뜨릴 수 있어야 한다."

우아하게 나이들 줄 알았더니 -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작가의 유쾌한 고백
우아하게 나이들 줄 알았더니 -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작가의 유쾌한 고백
생긴 대로 편히 살기 힘든 세상의 슬픔

표지가 근사하고, 거울 속 외딴 성 생각도 나서 바로 낚였으나 시작부터 움찔. 등장인물 중에 '엄청난 재능의 시인이나 소설가'가 있고, 그 인물의 작품이 길게 직접 본문에 제시되는 소설이 드물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때마다 당혹스럽다. 결국 작가가 쓴 글인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음. 하물며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추앙받는다는 설정의 무로미 쿄코의 글이 몇 페이지가 아니고 이 책 거의 대부분이니까...책 속 책의 일러두기에 아마추어 시절의 글이라고 해명이 있긴 하고, 답도 없는 주제로 고민해도 시간만 지나가니 싸게싸게 책장 넘김.

진상을 찾아가는 길에 쭉 깔려있는 외모 관련 문제들은 하나도 새삼스럽지가 않다. 왜 좋은 일들은 만국 공통이 별로 없는데 암울한 문제들은 국경이 없을까. 왜 들이대서 서로 비참해지기만 하는 잣대를 모두가 내려놓지 못하고 살아가는지. 게다가 신체이형장애는 말 그대로 질환인데, 치료받는 걸 숨겨야하는 분위기 속에서 커밍아웃 고민도 해야하고 세상 참...하지만 나도 이 문제를 극복한 사람이 아니라 시원하게 비판할 수가 없다. 컴플렉스는 그대로인데, 나이 들고 에너지가 모자라게 되니 시급한 문제 순위에서 외모가 점점 밀려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시간이 줄었을 뿐. 그래도 이 정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오다의 대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언젠가는 잃게 되는 것, 언젠가는 잃게 되리라는 사실을 아는 것에 결코 자신의 가장 큰 가치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솔직히 "독후감이 180도 바뀌는 감동"을 대단원에서 얻지는 못했으나,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에 후련함이 있었다. 2063년까지는 무리라고 느껴지지만, 히비키 말처럼 루키즘의 시대는 떠나보내야 하며 언젠가 그날이 올거라 믿고싶음. 그 이전에 지구가 열사의 지옥 되면 외모 따질 여유도 없겠지만 쩝...

거울 나라
거울 나라
막장과 군데군데 감동의 난리법석

닐스의 모험를 쓴 작가의 작품이란 말에도 마음이 동하고, 뒷표지의 현란한 설명에 홀랑 낚여서 책을 펼쳤는데 초장부터 깜놀. 반지의 제왕이 아니라 판타지 버전 페르 귄트인가요? 놀라서 정신 못차리는 와중 이어지는 기사들과 동네 사람들의 일 년 이야기가 참....읽다가 드러눕고 싶은 장면이 한 둘이 아니다. 일단 예스타 베를링 너무나 마음에 안 들고요. 로맨스물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연애 이야기라 할 때 떠오르는 주인공의 모습보다는 주인공 커플을 괴롭히는 찌질한 역할에 가까운 성질머리 무엇. 게다가 상대 여인네들도 황당해해야 하는지 신기해해야 하는지 모를 분들. 질투와 집착을 참 신박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안나도 그렇고, 현대 소설이라면 매우 드라마틱한 정신과 상담을 거쳤을 백작부인도 그렇고...살짝 정신적인 문제가 있던 빗자루 장수 아가씨에 대한 예스타 베를링의 생각에는 된소리가 확 튀어나올 정도로 화가 났는데(아직 절반도 안 읽었는데, 이런 인간이 나오는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게 맞는가 잠깐 고민하는 순간...), 그에 대해 백작부인이 갑자기 너무 맞는 소리해서 또 왜 이리 멀쩡한가 놀라고, 바로 이어지는 심리 묘사와 행적에 '이거는 이해하려고 하면 읽을 수 없다'고 깨닫고...정신 차릴 틈 왜 이리 안 주는 거야 아악.

대부분의 주역들이 기사들과 귀족들인데도, 멋짐보다는 무능함 자랑하는 파트가 더 많음. 공산주의적 해석을 누가 달아주면 꽤 재미날 것 같은데...당장 소령 부인이 영지 주민들한테 확인할 때도, 생각없고 사치스러운 기사들을 모든 이들이 '극악무도하다'고 생각하고, 에케뷔 산 철 챕터에서는 정말 주민들에게 곡괭이로 맞아도 할 말 없는 직무태만 + '나름 반성은 하나 제대로 된 계획도 없는 상태의 대찬 실패'까지 읽다가 질린다. 에케뷔 시민혁명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으면 참 속이 시원했겠지.  그러나 등장인물 수도 엄청 많은 이 책에서, 확실한 악역 포지션인 신트람 외 모두가 좋은 면과 나쁜 면이 골고루 갖고 있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들마저 감탄하게 되거나 측은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 하다못해 브루뷔의 목사까지도(생각해보면 두 성직자가 모두 엉망이니, 성직자 비판까지 포함하는 작품인가?), 갑자기 톨스토이가 강림한 듯한 짧은 드라마를 선사할 때 급 숙연. 이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해야 하는지, 늦게나마 스스로를 바꾸려 해야하는지는 나름 세간에 모범 답안이 있다고 해도 찾아올 때마다 언짢고 고통스런 선택이니 목사만 끙끙대는 게 아니라 나도 힘드네...

모두가 나름의 깨달음과 심판을 얻는 결말에서, 끝나버린 플렉스 타임과 '고독 속에서 시들어갈' 운명도 받아들이는 '온갖 산전수전에 단련된 천하태평의 기사들'을 보니 중간중간 빡치던 기억도 누그러진다. 예스타 베를링이 말한 수수께끼도, 해답을 찾은 건 주인공들인데 괜히 나까지 뭘 찾은 기분.(어디까지나 '기분만'인게 문제지만...살면서 답안 작성 못한 질문은 이것 말고도 많으니 넘어가자...)


"인생은 고되고 자연은 가차 없다.

그러나 둘 다 혹독함의 대가로

기쁨과 용기를 선사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누가 그 둘을 견딜 수 있으랴."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
예스타 베를링 이야기
책방의 일상에서 전해지는 일의 기쁨

귀욤귀욤한 표지에 헌책방 이야기라니 읽기 전부터 호감도 급상승. 창업부터 스쳐가는 사람들과 책들, 아마추어 이끼 연구자 경력과 서점의 문화 살롱화 등등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조용하고 따뜻하니 만족도는 MAX를 찍었다. 편안하게 써서 그렇지, 저자 본인이 나중에 일기를 다시 읽으며 놀랄 정도로 맨땅에 헤딩이 많아서 내향인이 이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함. 게다가 별의별 고객들을 상대하면서(뭘 생각해야 애를 봐달라고 서점에 올 수 있는지 모르겠다...) 각종 관리 문제를 걱정하면서도 20년이 넘게 사랑받는 서점(검색하니 현재도 운영 중이라, 30주년이 넘었다) 운영에 성공까지 하니 오오 소리 절로 난다.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손 닿는 대로 해보았을 뿐’이라고 쓰여있지만, 운이나 인연만으로 가능한 결과가 아니니까.

어릴 적부터 알던 서점 주인분과 업계 선후배이자 동네 친구로 계속 지내고, 정든 손님이 생기는 장면들이 참 훈훈하고 부럽다. '가게를 마음껏 열어 둘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마음과 배려심이 어울려 생기는 일이니 부러워하기만 하지말고 시도를 해야하는데 그게 참...겸손하면서도 “잘하든 못하든 제가 하는 이 일이 다른 누구도 똑같이 흉내 낼 수 없는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완전히 체념하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하는 것도 있습니다.”라는 말이 참으로 근사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언젠가 저런 말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내가 내 몫을 할 수 있는 일이면서 그만두고 싶지 않은 일'이란 건 참 유혹적이고 사람 절망시키기 좋은 주제다. 현재의 내가, 지금이라도 그런 일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정신 나간 소리겠지. 그래도 누군가 오래 버티고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흐뭇했다. 도쿄도 아니고 오카야마니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나, 정성과 애정이 가득한 작은 서점이 오래오래 번창하기를.


"잘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잘 못하니까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나의 작은 헌책방 -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에 관하여
나의 작은 헌책방 -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에 관하여
산을 향한 애정 뿜뿜 연애 편지

더위를 버티려면 냉방을 쐬어야지 빙산 방문하는 글 백날 읽어야 소용없긴 하다. 그래도 시원한 데서 자연을 노래하는 글을 보면 기분 전환하면서 죽어가는 감수성을 좀 살려볼 수 있지 않을까, 헛된 기대를 못 버리고 픽. 그냥도 늘씬한 책이고 해설이랑 연보 빼면 더 얇으니 부담도 없다.

기본 톤이 진지하고 웃을 건덕지가 없으나, 기대와 다른 의미로 대단했다. 물론 풍광 묘사부터 한 편의 시 같고, 문학과 과학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람은 이렇구나 생각하게 되는 내용들도 멋있는데...조용한 문장들 아래 시종일관 "난 이 풍경들을 사랑해! 사랑한다고!" 가 깔려있어서 놀람. 영화나 여행 클립들 속 풍경에 감탄은 하지만 미쿡의 대자연을 직접 보고싶다는 마음은 별로 없었는데, 대체 이정도로 상사병 나게 하는 풍경이란 뭘까 한 번 보고싶다. 그렇다고 저자처럼 일기예보도 남의 주의도 무시하고 나홀로 산을 탈 생각은 없지만. 굉장한 경험과 스킬이 있다해도, 아무리 봐도 종이 한 장 차이로 죽음의 위기를 넘긴 순간들이 누적되며 이 분의 간을 배밖에 내보낸 것 같다. 보통 사람이면 사망했을 일화들을 별 일 아니라는 듯 몇 줄 적고 바로 넘어가는 모습에 황당...막판에는 감기 걸렸는데 약 먹고 쉬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들은 이런 데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빙하로 등산 가고 냉수 목욕하는 것을 보니 이 분이 사고사 하지 않고 칠순 넘기신 게 아메리칸 미라클이다.

  이력에서 독서량이 상당하지 않았을까 추측되는데도, 책을 경시하는 편이라는 말과 더불어 '산에서 보낸 하루가 몇 수레의 책보다 낫다'는 호언장담은 좀 착잡하다. 대자연을 목격한다는 것이 물론 대단하지만...아름다운 산들은 굳이 사람이 드나들지 않을 때 더 무사할 것이고, 아무리 보통 사람도 세계일주 하는 시대라도 모든 걸 다 가서 경험할 순 없잖아유. 당장 본문에도 '등산객들이 늘어나면 산 표면이 캔과 병으로 뒤덮일 것'이라 쓰지 않으셨습니까 선생님? 책상에서 간접체험하는 것이 어쨌든 죄도 아니고...

오래된 흑백 사진에서도 꽤 박력있는 시에라돔의 모습과 더불어, 깊은 건지 무모한 건지 모르겠는 뮤어 씨의 사랑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나중에 세부사항은 다 까먹고 '산맥 상사병' 만 생각나지는..않겠지...?


"시에라. 시나이 산처럼 거룩한 산.

난 이보다 매혹적인 산을 알지 못한다.

이처럼 넉넉하고 친절하고

부드럽고 감격적인 산은 없다.

모든 사람이 시에라의 부름에 응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

시에라는 복음처럼 우리에게 주어졌다.

아무런 대가도, 돈도 요구하지 않은 채,

'이는 우리가 값없이 받은 천국이리니.......'"

존 뮤어의 마운틴 에세이 - 눌와의 창 5
존 뮤어의 마운틴 에세이 - 눌와의 창 5
후련함이 있는 글쓰기 명상

이번에 참여했던 그믐 모임에서 편집자님이 추천해주신 책이다. 평소에 속풀이 용으로 비슷한 행동을 하기는 하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데스노스처럼 마구 쓰던 터라 이렇게 방향이 제시되는 책을 보니 기대감 상승. 노래 가사마냥 내 마음 내가 모르겠는 상황이 허다하며, 가끔 명상에 도전하면 잠이 오는 사람도 쓰면서 뭔가 발견할 수 있을까.

솔직히 '쓰고 있는 자신을 신뢰하라'는 건 무리인데(아무리 읽을 사람이 없다 해도, 이런 막글이 완벽한 글이라 말하기엔 나도 양심이 있다...) '논리적 사고는 쓰레기통에 처박고'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쓰고 쓰고 또 썼다. 버리려고 뜯어내는데 글자는 또 어찌나 엉망인지, 못볼 것 본 기분으로 후딱 처분. 자기 내면을 알아차린다는 글쓰기 명상의 목적 달성은 아직 멀지만, 며칠 간 쉽게 떨치지 못한 꿉꿉한 기분은 확실히 많이 가셨다. 애초에 명상은 다이어트 마냥 꾸준히 하는 거고, 며칠 글 써봤다고 자아발견 가능할 정도로 나의 사유 레벨이 높지도 않으니 첫 시도에 이 정도면 선방이라고 혼자 끄덕끄덕.

이 글쓰기가 지속될 거라고 가정했을 때, 답변 다 쓰는 데 몇 년 걸릴 질문은 "자신이 내린 좋은 결정 100가지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기". 시간 들여 생각했는데도 다섯 개를 쓰지 못했다. 누가 검열하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점심 메뉴라도 잘 골랐다고 쓰면 되는데 이게 왜 이리 안 되는지. 뭐, 일단 칼은 뽑았고, 단기 체험으로 끝날지 일과 중에 명상도 있다고 어디가서 말할 수 있게 될지는 내년 이맘 때쯤 보자.


"다섯째, 자신은 천하 최악의 글쓰기를 할 권리를 타고났음을 기억한다."

글쓰기 명상 - 알아차림과 치유의 글쓰기
글쓰기 명상 - 알아차림과 치유의 글쓰기
읽는 이 넋을 빼는 한 도시의 화려함과 잔인함

배낭여행기들이 막 출간되던 고리짝 시절에 읽은 부다페스트의 모습이 신비로워, 책 제목도 구체적인 묘사들도 잊은 지금도 어둠 속에 번쩍이는 아방궁 같은 상상 속 이미지가 뇌리에 남아있다. 멋지구리한 책 표지를 보니 그런 추억도 떠오르고 혹해서 봤는데 참 많은 의미로 대단했다. 한 나라와 수도의 역사를 한 권에 넣었으니 상당히 간결함에도 불구하고, 엑기스도 압축되었는지 던져지는 내용들의 묵직함에 움찔.

역사가 긴 국가가 흥망성쇠를 되풀이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사람이란 존재도 현명하기도 했다가 집단으로 미치기도 했다가 사랑이 넘쳤다가 오락가락한 존재인 것도 새삼스러울 일 없는데...마자르족도 본디 정주하던 민족이 아닌데다, 지금 봐도 엄청나게 열린 태도의 건국시조가 있던 나라가 상식을 뛰어넘는 민족주의에 점령당하고, 유대인들을 무슨 정기 행사마냥 도륙했다는 건 무슨 뒤틀린 흐름인지. 관용을 베풀다 갑자기 작살내기를 반복하는 격한 성정의 주체들도 그렇지만, 수틀리면 분풀이 대상이 되리란 걸 몰랐을 리 없는 소수 쪽이 헝가리를 대체 왜 이리 사랑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너무 꼬인 것인가, 책 안에 나름 설명이 있기는 해도, 이 사랑과 헌신이 환타지 소설이다. 대체 부다페스트 현지에 무슨 매력이 터지길래...마지막 장에 저자가, 지금 부다페스트의 유대인들은 다른 중동부 유럽보다 더 자유롭고 평등하게 지내고 있다는 말을 안 남겼으면 졸지에 책 읽다 마음에 스크래치만 남긴 독서가 될 뻔. 툭하면 외세에 터지고 도움은 못 받는 역사 속에서, 세금 한 푼 안 내는 귀족들과 평민 비율이 "16대 1, 외국인을 제외하면 8대 1"로 살고 있으면 대다수의 사람들 속에 분노가 엄청났으리라는 건 이해하지만...나치 이전부터 시작해 나치보다 더 비인간적인 학살들 뒤엔 오점과 세계 정상급 인재 대량 유출 말고 남은 것도 없으니 이게 다 뭐냐...

다민족 국가가 민족주의 논하다 진짜 단일민족 국가 될 때까지의 과정도 속터지긴 마찬가지. 남의 나라 역사에 과몰입하는 것도 황당한 일이지만 갑갑함이 계속 차오른다.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전부 다 패전국 되고, 공산국가 되면서 어마무시한 숙청이 이뤄지고(인구의 7퍼센트가 비밀경찰 끄나풀이 되는 게 실제로 가능하다는 충격은 덤이다), 짧은 혁명 뒤엔 소련에 작살이 나고. 고난 파트가 하도 기니까 마지막 몇 장 속 회복이 정말 구원이다 크흑.

하지만 오래도록 화려함을 칭송받은 도시답게, 잘 나갔을 때의 모습은 참 놀라웠다. 지금은 사라진 전설의 도서관을 만든 마차시나 부다페스트에 다리를 놓은 '가장 위대한 헝가리인' 세체니 이슈트반, 양심을 지키고 유대인들을 구하려고 한 사람들처럼 읽다가 무릎치게 만드는 인물들도 있고, 생각보다 훨씬 헝가리 정치에 큰 의미였던 시시의 이야기 등등 순간적으로 읽는 사람 정신 흡입하는 이야기들이 보람차기도 하다. 당장 죽을 위기 겪고 탈출한 유대계 헝가리 이민자인 저자가 꽤 유연한 태도로 자기 가족 이야기나 죽다 살아난 유대인들이 하던 블랙 유머를 슬쩍 주석으로 넣는 것에서 느끼는 바도 있고...책을 덮으며, 후대의 물 건너 독자도 기억하고 싶은 헝가리 건국의 아버지의 말을 메모해둔다.


"이주자들은 크게 이롭다.

그들은 다른 언어와 풍습을,

다른 솜씨와 무기를 가지고 온다.

그 모든 것은 이 나라를 더욱 빛나게 하고,

우리의 적들을 놀라게 한다.

그러므로 아들아,

새로운 이주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친절하게 대우해라.

그러면 그들은 다른 곳이 아니라

너와 함께 있기를 좋아할 것이다.

단 하나의 언어와 단 하나의 풍습을 지닌 나라는

허약하고 연약하다."

부다페스트 - 화려한 영광과 찬란한 시련의 헝가리 역사
부다페스트 - 화려한 영광과 찬란한 시련의 헝가리 역사
때로는 계획대로 안 되는 것도 복

'피로한 삶에서 잠시 낯선 곳으로 떠나 인생의 의미를 찾는' 카테고리의 작품들이 두텁게 자리를 차지하는 건,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한 나 같은 이들이 세상에 많기 때문이겠지. 이 동네서 못 얻은 깨달음을 저 동네 간다고 얻을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런 책들은 '누가 어디로 떠났냐'에 따라 항상 다른 맛이 있으니 발견하면 반자동으로 손이 나간다. 번역이 2018년에 나왔으니 좀 늦은 발견이지만, 천 년 전에 쓰인 작품도 읽는 세상이니 뭐 이 정도야...

큰 굴곡은 없으나 뻔해야할 장면이 뻔하지 않은 점이 굿. 당장 책 시작부에 나오는 여성의 정체도 그렇고, 주인공 성격도 그렇고...분명 극단적 생각을 할 만큼 우울한데 행동이 황당할 정도로 자연스럽고 담담해서, 이것이 복지로도 해결 안 된다는 노르딕 스타일의 우울인가 돌팔이 진단 같은 생각도 잠깐 해본다. 게다가 스바누르가 새벽에 갑자기 들이닥쳐 조용히 감성철학 펼친 뒤에 탄알 얘기 하니까 왜 이렇게 웃긴지...주인공도 어이없어 하거나 짜증내는 게 아니라 동요하지 않고 '아 그래' 식으로 받는 이 해괴한 상황 무엇인가. 먼 곳에서 가서도 큰 사건은 없는데 예상대로 되는 일도 없는 이 희한한 흐름이 생각보다 즐거웠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과는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슬쩍 불편한 부분은 있다. 주인공의 계획이 나름 가족에 대한 배려에서 나왔다는 설정이긴 하지만, 선진국의 여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는 발상이라는 걸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음. 국가 임무 수행 중에 순직하는 경우면 모를까, 일반인의 시신을 해외에서 운구하는 데 얼마나 돈과 시간과 서류가 많이 필요한데, 대체 아이슬란드 정부가 얼마나 이런 데 지원을 해주길래...가족들이 데려오는 것 포기하고 그냥 그 동네 매장하더라도 기력과 돈을 있는대로 잡아먹는 건 똑같으니, 그냥 깨달음 얻고 여행 잘 끝나는 이야기인 게 다행이다. 막판에 보철 의족 대량 외상도 솔직히...아이슬란드가 의족을 국영기업에서 생산해 헐값로 팔고 있다면 모를까, 졸지에 딸한테 폭탄을 던진 모양 아닌가. 픽션의 세계에 이런 거 따지는 내가 프로불편러인가...쩝...

어쨌든 보고 나니 여행이 간절하다. 요나스처럼 전쟁이 막 끝난 나라에 가서 노동하는 여정은 부처 레벨의 깨달음을 얻는다 해도 사양이지만, 한적한 이국 어딘가에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더듬더듬 이야기할 기회를 생각만 해도 싱숭생숭. 일단 여행기라도 한 편 집으며 마음을 달래봐야지...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심지어 우리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까지도."

호텔 사일런스
호텔 사일런스
형사가 주인공이라고 꼭 수사물은 아니다

제목만 보고 미제 사건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판타지 러브 스토리였다. 복잡한 심경으로 확인하니 원제에는 형사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음. 하아...그래도 샤오주와 톈닝의 상당한 매력에 꽤 즐거운 시간 보냈으니 많이 따지지 않기로 한다. (샤오주가 탐정이고 톈닝이 주변인물인 이야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사장이 부여한 미션 클리어 뒤 톈우가 얻은 답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음. 정녕 이게 다여라? 이렇게 행방 궁금하게 해놓고 이 답변은 방치 플레이 아닌교? 직업이 편집자인 사람이, 서점에서 책을 사지도 않고 모서리에 침을 발라가며 읽는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 지적은 좀 하더라도 - 는 설정이 사장의 존재보다 더 판타지로 다가오는 건 그냥 성질 탓. 서점에서 집은 책이 침 범벅이라는 상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으윽!

윤극영이 언급될 때는 내용과 관계없이 깜짝. 중문 작품에 한국 관련 언급이 그렇게 낯선 건 아니지만, 노래 가사라고는 해도 문학적 인용은 처음 보는데다가 그것이 최근의 유명한 작품들도 아닌 '반달'이라니. 좋은 글은 언제 국경을 넘어 누구 마음을 후려쳐도 이상할 게 없는데도, 이 시대에 이런 일에 놀라다니 나 너무 촌스러운가...

톈우의 선택이 끝나고 책을 덮은 뒤에는, 쉽게 잊는 것들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당장 한 시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 불안한 것이 인생이지만, 그 불확실함 때문에 기회가 주어진다는 걸. 더 나빠질 기회와 더 나아질 기회가 한 세트라는 것이 문제지만, 어쨌든 하루하루는 분명 기회의 날들이고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어둠이 내 몸에 스며든 적이 있다 할지라도, 그리고 내 손엔 손전등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나는 손바닥만 한 불빛이 비추는 곳을 따라가며 천천히 청소를 해서, 그 작은 불빛으로 나를 비추고, 또 앞길을 비춰야만 한다. 이게 바로 내 사명, 사람으로서 내가 가진 사명이다. 크고 거창한 도리 때문도 아니고, 다른 무엇 때문도 아니다. 그저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집이 내가 사는 곳이고, 나와 가까운 이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형사 톈우의 수기
형사 톈우의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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