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읽으면서 안 그래도 별로 없는 활기가 쪽쪽 빨리는 기분이 든다. 자세히 몰라도 별로 즐겁지 않은 되팔기라는 주제를, 운이 이렇게 없을 수도 있는가 싶은 주인공의 이야기로 뜯어보니 이리 우울할 수가 없다. 여기에 화제거리의 스트리밍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SNS 문화의 어두운 부분을 세트로 투척하니, 오랜만에 책 읽다가 다른 의미로 울고 싶다...그리고 되팔기와 상관없이, 니시다가 지금 사회 구조에서 모두가 빠질 수 있는 건조한 절망을 간간히 내뱉을 때는 뱃속에 날씨처럼 도는 냉기에 울적함은 그저 증가일로.
그리고 이렇게 힘들여 읽는데, 이럴 수가, 추리도 수사도 없다는 게 제일 충격. 물론 제목에 '살인'이나 '사건'이 들어갔다고 반드시 추리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추리나 미스터리로 분류해 파는 책들 중에 트릭이나 수사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 작품들도 많으니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데...'여기까지 왔는데 범인 찾을 기미가 없으니 포기하자'고 생각할 때, "살인마가 잡히지 않는 한 진척도 없다."는 대사를 던지니 희망(?)에 갑자기 불 붙은 탓에 충격이 더 컸다.
클라이막스의 지옥도를 지나, 이게 마지막 펀치인가 싶은 일장연설까지 오면 니시다만 피곤한 게 아니고 이쪽도 넉다운이다. 그러나 드러누울 틈도 없이, 마지막까지의 그 몇 장 안 되는 분량에 확인 사살공격을 가득 채우는 이 자비없음이란...포켓몬 시나리오 담당이란 거 진짭니까? 애들이 봐도 되는 내용 쓰시는 거 맞냐구요. 꿈과 희망이 어른들에게도 많이 필요합니다 선생님. 무력감에 사로잡혀 '치트키'를 찾는 이들의 숫자가 줄어들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을지, 한숨 지으며 여기서 마무리.


카르타고야 영원한 아이돌 한니발 덕에 어떻게든 조금은 알게 되지만, 그 이전의 페니키아에 대해서는 민망하게도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어쩌다 역사서를 봐도 대부분 로마나 그리스 중심으로 서술되니, 페니키아에 대한 막연한 머릿속 이미지는 '고래 사이 새우', '동네북'(...). 이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이제라도 읽고 나서 반성 또 반성한다. 물론 역사가 천 년 단위를 넘어가는 국가나 민족에 대해, 책 한 권 보고 뭘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엄청난 착각이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흥미로운 점들이 책 속에 넘쳐난다. 살짝 충격적일 정도로 역사가 길고, 중심이 처음 페니키아 지역에서 카르타고로 이동할 때까지 기간만 해도 이천 년이 넘으니, 어째서 세계사 교과서에 비중이 별로 없는지가 의문. 역사란 승자가 쓰기 때문인가...큰 감흥 없이 기억하던 아이네이아스 이야기를 해설과 함께 보니, 이 익숙한 흐름에 약간 화가 난다. "로마의 기초를 세운 남자가 무려 여왕의 위치에 있는 여자를 버렸다는 우월감과 엘리사의 '분신'에서 암시하듯 포에니 세계의 '소신공양'에 대한 경멸이 포함되어 있는 정치적 선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누미디아 남자와 카르타고 여자의 '염문'은 포에니 전쟁의 한 고비를 이루는 실화를 아득한 과거로 돌려 '연출'한 것에 지나지 않다." 시간은 아득히 지났으나, 그 연출을 생각 없이 받아들인 관객 여기 있으니 죄송합니다...하아...
개인적으로는 고대 페니키아 파트가 훨씬 많았으면 좋았겠지만,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포에니 전쟁 파트도 다시 읽어 새롭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이렇게 아득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책마다 계속 조금이라도 새로운 해석이나 정보가 나온다는 게 대규모 전쟁의 무서운 점이기도 한 듯...인간이 집단으로 서로를 죽이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게 얽히는 것인지...) 참고문헌 목록을 봐도 페니키아 단독 주제로 쓰인 책이 별로 없다는 것과, 관련 유물들과 정보가 잔뜩 있는 토지는 현재 진행형으로 사람들이 희생되는 중이라 고대의 일을 따질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아쉽고 씁쓸하지만...역사는 사라지지 않고 연구되길 기다리고 있으니, 평화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이 발견되고 알려지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고 싶다.


제목을 보자마자 '그러게요 선생님' 하면서 집었다. 굉장히 얇은 책이지만 생각할 거리는 책 두께의 열 배 이상이다. 계급과 차별 정당화를 위해 툭하면 자연이 어쩌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런 거 따지면 동굴에서 수렵채집이나 하셔야지?'라는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자신을 돌아보니 이제라도 이 책을 읽어서 매우 다행이다. 비난으로 기분은 풀릴지 모르지만, 설득에도 논파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되니까.
크게 세 의미로 나눠서 언급되는 '자연'이, 논리상 의미가 없는 동시에 인간의 심리 때문에 아직도 의미가 있다는 것은 씁쓸하다. 불확실성이란 게 참 무섭고, 아무리 논리왕들의 주옥같은 책을 봐도 그 불안을 없앨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견고한 질서에 매달리고 싶은 마음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개미나 원숭이들이 자기들을 위해 만든 법칙을 들먹이지 말고, 대지진이나 운석 낙하가 인간의 행실 때문에 일어난다는 생각은 공상과학 작품에만 쓰고, 우리가 현재 가진 걸 기준으로 우리의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건 잊지 말아야지. 대스턴 선생님 말처럼 '정신적으로 칸트를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건 좀 - 이 아니고 많이 - 어렵겠지만...
"자연은 어느 모로 보나 문화만큼이나 다양성이 풍부하다. 따라서 자연으로부터 얻은 규범이 인간에 의해 자유롭게 발명된 규범들보다 더욱 설득력 있게 수렴될 것이라는 희망은 환상에 불과하다. 즉 상대주의와 싸우고자 하는 자연주의 전략은 망하게 되어 있다."


표지부터 뭔지는 모르지만 멋있고, 세렐렘이란 단어를 검색하니 romantic love란다. 여기서 뒷표지까지 꼼꼼히 봤으면 '그래, 안 그래도 마음이 메말랐으니 수분 공급해야지'라는 한참 빗나간 생각을 안 했을텐데.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 어리석음을 과연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아...
존재에 대한 관념적 소설을 읽을 때는, 기본적으로 작가가 원하던 것들을 내가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 독자가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겠지. 환각 속에서 주인공이 생각하는 주제들 하나하나가, 상당히 깊어서 이해의 자신감은 좀 떨어진다. 그래도 '기쁨은 없는데 포기는 못하겠는 욕망' 상태, 감정을 잃은 듯이 이야기하다 갑자기 밀려오는 격정에는 이상하고 불편한 공감을 느낀다. 약기운 속에서 과거를 현재처럼 느끼고 자기 합리화하며 편안해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생각에 괴로워 허우적대다 마치 단말마처럼 던지는 "정말로 당신을 사랑해"라는 말은 왜 이리 우울한가...
검색하면 저자는 약물 사용자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중간중간 환각 속에서 시공간 인식을 잃어버릴 때나 연인의 불안감 가득한 대사는 묘하게 리얼해서 오싹하다. 특히 반복되면서 점점 고조되는 발코니 드립. 막판에는 '틀렸어 이건 막을 수 없어...'하면서 이쪽이 먼저 체념할 정도니, 문학의 전달과 체험 기능에 오랜만에 감탄. 정말로 이해했다고 말하려면 아마 백 번은 읽어야 하는 그런 작품이지만, 시간은 없고 다음 책들이 기다리니 이 '사랑'과의 인연은 여기까지.
"거짓, 죄에 나약하고, 죽음이 예정된. 이것은 이미 나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삶이 아니다. 알 수 없는 나의 상징들을 다른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상징들로 묶어주는 관계가 삶이었다."


파리 1919를 먼저 보고 이 책을 읽었는데, 아마 이 책부터 읽었다면 감히 파리 1919를 집어들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 같다. 대단한 책들이 지식의 기쁨과 괴로움을 묶음세트로 주는 건 익숙한 일이지만, 뉴스 헤드라인만 봐도 노이로제가 올 것 같은 지금, 이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제대로 절망했다. 백 년 전과 지금은 모든 것이 확연히 다른데도, 너무나도 현재와 유사한 장면들이 많아서 소름 끼치다 못해 몸이 굳는다. 정부 기관 내 책임자들끼리의 견제와 엇박자, 정세 오판과 공사 대혼동, 과도한 자신감 혹은 어이없는 우유부단, 선동하는 지도자와 휩쓸리며 목소리만 커지는 여론의 지옥 같은 상호 피드백, 선 긋기와 차별 조장,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우리는 피해자'라고 포장하려는 뻔뻔함, 테러 집단이 형성되는 환경, 그래도 평화를 유지하려고 어떻게든 매달리는 사람들....읽으면서 혼자 감정기복 쇼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 정도로 핏기 빠지는 기분 맛본 적이 있었는가 모르겠다. 인류는 정말 변하지 않는 것인가? 우리는 결국 이 코스를 그대로 밟고, 지구 온도가 올라가기 전에 자멸할 것인가?
민망하게도 독서를 지적 노동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별로 없는 독자다 보니 종종 잊지만, 어쨌든 역사책은 과거를 돌아보며 교훈을 얻고 앞으로 갈 길을 모색하는 도구가 아닌가. 당장 맥밀런 선생님도 읽고 방에서 울라고 이런 책 쓰신 거 아니지. 그러나 교훈을 뽑아내기 전 떨쳐내야 할 무력감이 한계치를 초과하는데다, 이 책을 진짜 읽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이 책에 전혀 관심도 없을 거란 생각이 우울감을 더 악화시킨다. 말 그대로 뻗어 있다가 챗지피티에게 하소연까지 했지만 아직도 속이 무겁다. 결국 독서는 개인적인 즐거움이고, 이 책이 어떤 주제로든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면 좌절하지 말고 그걸 의미로 삼을 수밖에 없겠지.... "역사와 현재에는 깊이 간직한 전제나 이론에 맞지 않는 증거들을 간과하고, 최소화하고, 부정하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수많은 증거가 넘쳐난다."라는 말에 낙담하지 말고, "전쟁 돌입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맞설 용기가 부족했다. 선택할 기회는 늘 있는 법이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고, 자신 없이 되뇌일 뿐이다.


어차피 읽을 거면서, 괜히 읽기 전에 작가 이름 보고 고민한다. 마지막에 안도하는 한 순간을 위해, 마음을 꼬집고 비틀고 쿡쿡 찌르는 과 정을 감수할 것인가...으으. 그러나 계속 궁금해하며 애태우면 나만 손해이니, 읽어야지 어쩌겠는가.
권두의 무차별 살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 쉽지 않으리라 각오는 했지만, 그렇다고 챕터 1부터 고춧가루를 이렇게 된통 뿌릴 줄은 몰라서 질식할 뻔. 겨우 몇 페이지 숨 돌리자마자 이건 뭔 시시리바의 집인가 머리가 띵해진다. 그나마 다행인건 죽을맛 그래프가 중반부터 좀 꺾인다는 거. 굴곡 상한선이 더 상승하지 않은 것만 해도 '선생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하니 이 그림 대체 무엇인고. 나 지금 조교 당하고 있는 건가? 선생님 그런 건가요?) 마지막 챕터도 살벌한 반전은 없었고, 설마 설명 안 해주는 건가 사람 초조하게 했던 부분도 무사히 나오니 만족. 얼어붙은 손을 따뜻한 물에 담글 때의 안도감이 온몸에 밀려온다.
정말 이런 이야기가 필요한 이들 중 다수는 책장을 넘길 힘도 없이 괴로워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이런 이야기들이 돌고 돌아, 다른 형태로라도 그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의사이자 코미디언이라는 저자 이력에 처음엔 '흐음...' 하고 넘어갔는데, 뒤로 갈수록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용에 유머 감각이 없을 경우 읽는 멘탈도 박살날 수도 있으니까...환자들 각각의 상황, 의료 재정 적자가 치료와 의사들에게 미치는 악영향, 저자의 유년의 기억에 진땀이 절로 난다. 중간중간 환자들의 돌발 행동에는, '저자는 당연히 살아 있으니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이 어찌 굴러갈지 불안초조 급상승. 쏘겠다고 해 놓고 계산할 때 금액에 놀라 각자 계산하자는 상사는 보통 책이라면 혀를 찰 소재다만, 환자들 이야기 속에서 이 정도는 애교다.
외부의 충격이 원인이 아닌 정신 질환들도 있고, 본인이 예수라는 믿음은 누구한테 맞아서 생기는 것도 아니겠지. 더군다나 벤지 씨 말처럼 지금은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문제조차 질환이라 판단하는 일들도 일어나니 간단하게 '세상은 각박해 아이고!'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전문가가 봐도 입원해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매일같이 병원에 밀려오고, 힘들어도 병원을 피하는 환자들도 많다는 사실은 역시 울적하다. 그래도 어둡게 보면 한도 끝도 없는 풍경에도 빛과 온기는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으니 읽어서 다행이다. 구멍 뚫린 시스템을 어떻게든 활용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저자와 동료들, 삐뚤빼뚤 조금씩 나아가는 환자들과 워터하우스 가족, 불가사리와 소년의 이야기가 말해준다. 흐린 하늘에 절망할 수도 있지만, 천천히 보면 구름 뒤 은빛 햇살이 다시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고...
"우리 가족의 DNA에 조현병, 폭력, 알코올중독,
대머리 유전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랑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름 믿고 보는 작가의 작품은 이번에도 대단하긴 했다. 간략하게만 표현하면 참신한 설정, 약하면서도 강한 주인공, 예측 불가능한 흐름과 안도의 한숨이 폭풍처럼 나오는 결말까지 있을 것 다 있었으니까. 그러나...초반부부터 답답함이 스물스물 올라오다가, 리넷의 수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서는 정말 이게 죽을 맛이구나 느낀다. 물론 주인공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모든 소설에는 어느 정도 다 이런 면이 있지. 하지만 리넷의 과거 행적이나, 개릿이 어떤 인간인지 구구절절 나올 때는 이걸 참고 봐야하나 말아야하나 잠깐 고민까지 하게 되며 크리시 방문 편에서는 '이 정도까지 참신하지 않아도 돼...'라는 신음이 절로 난다. 참신해서 미소가 나왔던 건 최후의 방어 수단(?)뿐, 새로운 발상이 주는 쫄깃함이 이렇게 피로할 수도 있다는 걸 아주 뼈가 저리게 체험했다.
그래도 잠깐 함께 뭉쳐서 미셸을 보내는 여정은 꽤 뭉클했으며, 에필로그의 '굳이 왜...'라는 생각을 단숨에 날린 마지막 페이지 대사들에 모든 고생 다 잊고 박수.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연쇄 살인 발생시 다들 범인의 정신이 얼마나 이상한가에 집중하고 희생자들을 잊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소설을 보니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분야가 어디까지인지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는가 싶어 마음이 좀 복잡해지긴 한다. 이미 충분한 상처를 가진 모든 범죄의 생존자들이, 타인의 흥미에 더 상처받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라지만...과연...어쨌든 잘 읽었습니다 헨드릭스 선생님...
"인생은 살아남는 것, 그 이상이었다."


표지가 대단히 매력적인데도, 부끄럽게도 에티오피아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으니 읽어도 이해가 잘 될까 걱정되어 좀 미뤄 두었다 집은 책이다. 사전지식이 더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것이 없어도 이 강렬한 이야기를 읽는 데는 별 문제 없었으며 읽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분풀이용 독서로는 절대 추천할 수 없는 책이나, 세상에 말랑한 행복 말고도 중요한 게 많다는 걸 상기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
프롤로그에서 히루트가 죽은 이들을 생각할 때부터 웃음기 따윈 없으리라 예상 가능하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홀린 듯이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은, 히루트와 아스테르, 피피 등 초강렬한 여성들의 에너지 때문. 일단 모든 인물들이 선악이 마블링되어 구별하기 힘든 면을 가졌다는 점도 어느 정도는 매력이기는 하지만...왜 하필 그 어두운 면 중 하나가 상습 성폭행이어야만 하는지, 반복될 때마다 빡이 치니 매력이면서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라고 하는 게 맞겠지.
같은 시기 식민지였던 땅의 후손이니 이런 주제에 기본적인 공감이 있기도 하지만, 이 역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먼 나라의 아픔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막판에 아스테르가 던지는 격려는 그 자체로 꽤 무게가 있지만, 마지막에 히루트가 편지 돌려주는 장면에서 다시 생각하면 코가 시큰하다. '일반적'인 흐름을 생각하면 여기서 밀려오는 여러 감정에 히루트가 눈물을 흘려야할 것 같은데, 단지 마음이 강해서만이 아니라 눈물을 흘릴 방법을 잊은 것 같은 모습이 왜 이리 쓰린지. 많은 이름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밖에 없으나, 에티오피아에 수많은 히루트와 아스테르들이 있었다는 것, 모든 핍박받은 나라들에 각각의 히루트들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며 책을 덮는다.
"과거는 없고, '일어난 일'도 없고,
한순간이 모든 것을 끌고서
끝없이 새로워지며
다음 순간으로 이어질 뿐이라는 사실을.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읽고 기분 좋아지는 범죄 기록 같은 건 세상에 없긴 하지. 그래도 옛적 이야기이기도 하고, 초반에는 생각 이상으로 정리된 조선의 법률이나, 백성들의 기록을 직접 열람하는 군주들의 모습에 재미도 느꼈는데...후반으로 갈수록 정신이 혼미해지며, 어느 순간부터 조상님들에 대한 가여움이 존경으로 바뀐다. 대체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으셨나요? 갱스 오브 뉴욕도 저리 갈 한성부의 지옥도에는 더 붙일 말이 없다. 무리 지은 범죄자들이 검경을 우습게 여기며 날뛰는 것만 해도 충분히 안 좋은 환경인데, 공무원들끼리 패싸움하고 주민들 상대로 살인에 강도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지내기까지 하면 대체 무슨 수로 버텨야 하는가.
그리고 나이 들수록 느끼는 거지만, '옛날이 좋았다' 드립만큼 못 믿을 말이 없다. 기술 수준만 지금과 다를 뿐이지, 문서 위조부터 폭행 살인 불륜까지 지금이랑 카테고리가 다를 것이 하나 없는 일들 그 시대에도 다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테니까. 과거 낙방 후 그냥 귀향하지 못하고 위조 합격증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엔 헛웃음이 나온다. 비뚤어진 학구열과 그로 인한 범죄의 내력을 알고 싶으면 한반도의 역사를 보라...하하...
상당히 속이 무거워지는 내용이었지만, 그런 상황들에서도 버티며 사신 분들 덕에 이렇게 후손은 뒹굴대며 책을 읽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일이다. 유난히 힘든 겨울이지만, 좀 더 힘을 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