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출간된 지가 상당히 오래되고(원서가 2008년 출간), 제목도 꽤 공격적이라 사실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는 넣었지만 오랫동안 손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전에 이 책의 후속편이 나왔고 아마도 조만간 번역이 나오지 않겠나 싶어 늦게나마 읽어보았다.
기본적으로 날 때부터 디지털 미디어에 익숙한 어린 세대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이 문제들이 발전될 때 어떤 큰 문제가 생겨날지를 논하는 책이다. 하지만 최근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여기서 논하는 청소년들의 문제가 한 세대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당장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내가 제대로 하고있는지부터 봐야하는데, 솔직히 이 문제에서 가슴펴고 말할 수 있는지 확신이 없어서 착잡하다.
기술이란 게 운용만 잘 하면 뭐든지 가능하지만, 편한 방향으로만 쓰다보면 명암이 없을 수는 없다. 인터넷이 있어 재빠른 정보수집과 편리한 멀티태스킹이 가능하지만, 길게 생각할 필요가 줄고 내가 관심없는 분야는 완전히 차단하면서 살 수가 있다. 이런 장단점을 고스란히 수용하고 자라난 세대에게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문제점이 있고, 이것이 세대차이같은 게 아니라 더 발전되면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념적 도전의 기회, 상식에 어긋나는 생각을 타파하고 반대 의견에 귀기울이는 태도의 뿌리인 박식한 호전성이 사라져가는 지금, 해결을 위해 가정과 학교, 마을과 시장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고.
독서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되기도 하는데, 단순히 읽어서 즐거워하는 게 아니라 얻은 지식을 가지고 숙고하며 책임을 자각하는 시민의 모습을 말하기 때문에 또 한 번 무겁게 생각하게 된다. 나는 한국의 전통과 현재 모습에 대해 정말 깊은 이해를 갖추고 있는가?
여러모로 착잡한 책이지만, 국내 출간되리라 믿는 후속작에서는 좀 더 밝은 부분들도 기대하고 싶다. 무한한 기술 환경 속에서, 개선과 성장도 그만큼 빠를 것이라고...


책 뒷표지에 따르면 전세계 40억 명이 안경을 쓴다고 한다. 나도 어릴 적부터 쓰고 있고, 주변 사람들도 길에서 지나치는 사람들도 절반은 쓰고 있다. 너무 흔하니까 여기에서 뭔가 찾아보려 한 적이 없다. 애니메이션 신데렐라에 나오는 줄 달린 외알 안경이나, 김구 선생의 안경 정도에서 안경의 역사를 조금 생각해본 정도다.
세상은 넓고 모르는 것 천지니, 벌써 시작부터 놀란다. 그리스 로마인들도 돋보기를 썼으며, 광학 연구서가 나온지 천 년이 넘었고 안경 쓴 초상화는 엘 그레코도 그렸으며 안경 판매를 둘러싼 경쟁이 시작된 지는 몇 백년이 넘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참 신기한 내용들로 가득하다. 물론 읽으면서 한숨 나오는 부분도 많다. 안경 쓴 사람에 대한 각종 편견부터 말도 안 되는 분석에, 현대에 들어서며 안경의 이미지가 당시에 어떻게 팔아먹느냐에 따라 변하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닥 좋지 않은 안경 착용에 대한 이미지...안경에 시력 교정 외에 어떤 마법 효과가 있다고 성격이 어쩌고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는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중요하다 싶은 구절을 메모하며 글을 마친다. "윌리엄 골딩 소설 『파리 대왕』에서 무인도에 고립된 소년들이 과체중에 근시인 피기의 안경으로 불을 피우는 대목을 읽기는 했지만, 어느 화창한 오후 따분한 두 시간짜리 수학 수업 내내 아무 일 없는 척하며 내 안경으로 휴지통에 불을 붙이려 시도해 본 결과, 그건 말도 안 되는 소설 속 허구일 뿐이었다. 발산 렌즈는 화경으로 전혀 쓸 수 없다. 초점이 아예 맞지 않으니 말이다. 방화광이 필요하다면 수렴 렌즈인 원시용 안경을 써야한다."


옮긴이의 말까지 넣어도 삼백 쪽이 되지 않으며, 큼직큼직한 글자에 표지는 진한 핑크색이다. 그렇지만 어지간히 두꺼운 책보다, 읽으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만들고 아마 일생 생각해도 답을 찾기 힘든 화두를 던져주는 대단히 무거운 책이다.
원래도 파격적인 정책이 많이 시행되는 네덜란드는 안락사의 집행에 의해서도 상당히 파격적이고, 책에도 언급이 되긴 했지만 관련 기사들이 별의별 선정적인 제목 - 제목들만 슥 보면 네덜란드가 무슨 악마들이 사는 지옥불의 나라같다 - 을 달고 인터넷을 떠돈다. 책 121쪽 의사의 언급을 보면 안락사를 거치는 이들 90퍼센트는 말기암 환자들이니 스위스나 캐나다보다 딱히 비인간적인 것도 아니지만, 문제는 나머지 10퍼센트다. '정신적 문제나 중독을 가진 사람'.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예전에 스테파니 그린의 책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환자가 그래도 맨정신이 남아있을 때 죽고싶어 상담을 신청했다가 심사대상에 들어가지 못하는 대목을 읽었을 때 정말 착잡했던 기억이 있다. 삶의 질은 개판인데도 확연한 육체적 고통을 증명할 수 없고, 정신이상이 어느 수준을 넘어가면 어차피 본인 희망을 재확인하는 것도 무리고, 어쨌든 당장 죽음이 가깝지 않은 병. 치료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시도하고 버텨야겠지만,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고 회복이나 그나마 현상 유지할 가능성이 없다면? 내 스스로 고통을 덜려면 고통을 피할 수도 없고 마지막 모습도 상당히 끔찍한 방법밖에 없다면? 그렇다고 존엄 유지를 위해 기준을 대폭 완화한다면, 정말 악용되거나 오용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오히려 더 복잡한 심정으로, 하지만 약간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동생은 마흔 한 살에 안락사를 택했다. 중증 알콜중독으로, 권두의 동생이 남긴 메모를 보면 밖에 걸어나가기도 힘들 정도로 몸이 망가져있었다. 그래도 한때 잘나가던 사회생활을 했었고, 가족들은 중독에서 동생이 벗어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동생이 가족들을 만나 한 이야기는 한 달 뒤에 안락사한다는 폭탄선언이었다.
저자와 가족들은 동생의 죽음 이전도 이후도 안락사 옹호론자가 되지 않았고, 어떻게든 멈추고 싶어했으며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절차가 시작될 때까지 의사를 철회하지 않았고, 주사를 맞고 침대에서 잠자듯이 죽었다. 가족들은 동생을 잃은 고통과 더불어, 국내뿐 아니라 해외 언론에서까지 온갖 악의적 기사와 연락에 시달리며 지내야했다. 읽으면서 슬프고 골치가 아프다. 이게 다 무슨 일인가.
동생을 탓할 수도 없다. 술로 도피를 했지만 행복해지지 못했고, 두려움도 극복하지 못했으며 가정은 파탄났고, 혼자서는 씻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 마지막 날까지 아버지가 샤워를 도와줘야했다. 평온하게 휴식하고 싶다고, 오랫동안 죽음을 생각해왔다고, 죽음이 목전에 다가오자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동생의 메모가 애처롭다. 이 사람은 죽음을 장난처럼 선택하지 않았다. 약 1년 6개월의 조정기간을 기다리며 버텼다. 경찰이나 병원 연락으로 끝나는 마지막이 아니라, 깔끔하게 씻고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조용한 모습을 기억에 남기고 갔다. 내 안에도 안락사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완전히 찬성하는가도 말하기 어렵지만, 저자의 동생은 이미 세상을 떴고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마지막 순간의 존엄을 지키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남겨진 아픔과 마주하는 법을 생각하고 싶다.
"애도는 밤늦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릴 때 여전히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다시는, 결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애도는 자식을, 동생을 잃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며, 그러니 그것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인생은 짧고 시계는 계속 째깍거리고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애도는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삶이 꽤 아름답다는 것을 다시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것, 삶을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더라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애도는 계속해서, 계속,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다 가끔 가만히 있는 것이다.
내가 그를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깨닫기 위해서다.
그에게 바로 그 말을 하기 위해서다.
그가 그 말을 더는 들을 수 없을지라도.
어이, 형씨, 보고 싶다. "
(본문 226~227페이지 중에서)


재미있다. 마지막 나가는 말까지도 좋았다. 이지환 선생님의 책이 더 없다니 너무나 유감이다. 의학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 그렇다고 여기 나온 용어들을 외울 능력은 없다만 - 설명뿐 아니라, 질병의 고통이 천재들의 삶의 행보에 미친 영향을 짚어준다는 점에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섞어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질병의 고통이란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 사람들이 평생을 그 고통과 씨름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 슬픈 책이기도 하다. 세종이 이정도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일했다는 걸 생각하면 마음에서 존경이 샘솟는다. 로트렉의 아버지가 쓰레기라는 건 알았지만, 사실상 자식 아픈 원인 제공자 주제에 아들내미 작품까지 태워먹는 적이 있는 인간말종인줄은 몰랐다. 모네가 백내장에 시달리던 기간 그렇게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그렸는지도 몰랐고, 밥 말리가 조금만 더 늦게 암에 걸렸다면 더 나은 치료를 받았으리란 것도 몰랐다.
고통과 천재성이 맞물려 돌아가는 인생을 살고, 각 분야에서 세상이 더 나아지는 데 기여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저 고통이 필요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재능 있는 사람은 어쨌든 두각을 드러내고, 안 아팠으면 더 대단한 일을 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삶에 만약이란 것은 없고 이들이 남긴 혜택을 조금씩 향유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저 좀 더 존경의 마음을 담아 기억하는 것이 다라는 게 안타깝다.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어 작가분의 마지막 문장도 적어두려 한다. "우리는 기억을 공유한다. 치매가 특히 악독한 질병인 이유는 쌍방의 기억을 일방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가 같은 글을 읽고 기억한다면 그만큼 은근한 결속이 있다고 믿는다."


방 상태가 머릿속 상태랑 비슷하다고 어디선가 말하던데, 진짜라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서재를 둘 형편도 아닌데 책이 아까워서 처분도 못하니 창고가 따로 없다. 일단 좀 처분은 해야겠다 마음은 먹었으나, 아쉬움에 한 번은 더 읽고 정리하기로 해서 방에 숨통 트일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최근 메모리맨 시리즈가 한국에서도 잘 나간 듯 하고, 원래도 잘 나가는 액션 소설 작가인 발다치. 읽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원서는 알라딘 매장에도 많고 도서관에도 있다. (재고가 많은지 팔기는 어렵다...) 그 중에서 이제 꽤 묵은 시리즈 중 하나인 카멜클럽의 마지막 권 Hell's corner를 드디어 정리한다. 안녕...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 시리즈 중에서 당시 제일 팔렸는가 3권인 스톤콜드만 번역이 되었다. 미쿡 액션 소설이야 어느 권을 집어보더라도 이해가 되도록 항상 어느 정도 설명은 있지만, 3권만 보고 이해가 다 갈지 좀 의심스럽긴 하다. 특히 2권에서, 주역 중 한 명인 애너벨의 역할을 모르면 별로 와닿을 게 없지 않을까.
과거를 숨기고 살아가는 묘지 관리인 올리버 스톤과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친구들의 모임 카멜 클럽이 우연히 사건에 말려들면서, 해결 과정에서 스톤의 과거가 드러나고, 과거 때문에 사건이 꼬이지만 결국 해결하고, 시원한 액션도 보여주고, 조금 쓴 맛도 보지만 적에겐 더 쓴 맛을 보여주면서 진행되는 카멜 클럽 시리즈. 아무래도 액션 스릴러가 메인인 오락 소설이니, 가끔 진짜 놀랄 정도로 감정처리가 가벼운 부분도 있지만 - 1권 마지막에 나오는 정말 중요한 죽음이, 시리즈 마지막까지 다시 언급이 안 된다거나 - 발다치에게서 톨스토이를 바라고 읽는 사람은 없을테니 신경쓰지 말고 넘어간다.
5권 내내 별일을 다 겪다가, 마지막 권인 헬스 코너는 작가가 작정하고 시즌 파이널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관계되는 나라 숫자부터 다르고 나올 수 있는 관계자들은 다 나오고. 전혀 안 그럴 것 같다가 갑자기 캐릭터를 훅 보내는 경우도 있는 발다치라 한 두어명은 보낼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았음. 이 책이 나온지가 십 년이 넘었는데 이미 그때 나노머신 기술을 구사한다는 소재가 나온 걸 보면, 역시 국가 보안 쪽에서는 이런 쪽 운용하려는 시도가 빠르구나 느껴지기도 하고. (톰 클랜시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료 조사할 때 아예 언급이 안 된 걸 소재로 써먹지는 않겠지 싶다) 잠시나마 스톤의 왓슨 역할을 자처한 챕먼의 액션이 시원해서 스트레스도 좀 풀리는 느낌이고...카멜 클럽이 국가의 위기를 구했고, 나도 속이 좀 풀렸으니 이제 책과 작별할 시간이 왔다. 잘가 카멜 클럽...바이바이.


기운을 내고 싶어도 그게 참 안 되는 시간도 있다. 위로에 오히려 더 괴로울 수도 있어서 입을 다물게 되고,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게 보통이다. 그 와중에 전혀 뜻밖의 무언가가 머리를 확 흔들어주는 일도 있는데, 이번에는 이 책이었다.
뇌과학 서적이 한창 유행 중인 가운데 뒤늦게 좀 읽어보자 싶어서, 추천사도 많고 얇고 글자도 큰 이 책을 선택했는데 참 뿌듯하다. 뇌의 진화라는 기존 통념의 오류, 네트워크, 성장과 세부조정 등을 큼지막한 각주까지 동원해서 설명해주니 처음 접하는데도 흥미진진하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 소개된 모든 용어를 한 번에 다 외우기는 무리겠지만, 다른 뇌과학 책들까지 보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이 책이 단순히 재미가 있어서 스트레스를 낮춰준 것은 아니다. 4강에서 나오는 말들은, 어디선가 비슷한 말을 들어봤으면서도 과학을 통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와닿는 느낌이 정말 다르다. 자신의 뇌가 가진 학습을 통한 예측 기능을 이용해서 스스로의 행동을 이끌 수 있고, 어른이 된 후 나의 뇌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이기 때문에,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책임을 가진다는 것...저자의 질문을 나도 계속 곰씹게 된다. 조금씩이라도 내가 뇌의 예측을 내가 원하는 식으로 바꿀 수 있다면 내 삶이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까? 다른 뇌과학 책들도 보면서, 오랫동안 생각해보고 싶다.


저자는 각종 자가면역질환에 아파하고, 치료받고 싶어하고, 의학과 사회와 마음을 연구하고 생각하며 글을 썼다. 정말 존경스럽다. 아무리 혼자 쓰는 감상문이라도 너무 짧고 단순한 감상이 아니냐 싶으나, 정말 그런 걸 어쩌랴.
자가면역질환 환자들도 드물지 않고, 그정도는 아니어도 통증은 엄청난데 당장 죽네사네 하는 병은 아니라 병원서 푸대접받는 경험을 한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다. 치료 끝나면 나으니까 참지만, 신체적 고통을 무시당하면 정말 힘들다. 그런 경험을 거의 평생 하면서, 이 고통이 잠시 멈출 때는 있어도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한다면 나는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냥 하루 버티기도 힘들텐데 이런 유익한 책을 내다니,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진료와 관련된 사회 시스템, 플라시보 효과라는 게 세상에 있다고는 해도 무슨 아픈 게 내가 긍정적이지 못해서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 가족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 아픔을 통해 지혜로워졌으니 좋은 거 아니요 드립(개인적으로 진짜 싫어하는 말. 난 아무 것도 몰라도 좋으니 고통 필요없다) 등 각종 관련 이슈에 더해 어떻게든 아픈 게 일상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하루를 꾸려나가는 저자의 모습이 상당히 묵직하게 와닿는다. 노래 가사처럼, 정말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저자도 나도.


삶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책들은 셀 수 없이 세상에 많다. 그걸 다 읽을 필요도 없고 개중 많은 책들은 너무 가벼워서 읽으면서 질린다. 그래도 이런 주제를 종종 찾아읽는 것은, 내가 종종 삶과 죽음을 상기해야하는 필요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큰 글자에 두께도 얇고, 본국에서만 250만부 이상 팔렸다는 점도 한 번 읽어보자는 욕구를 자극하기 충분했고. 사실 내가 찾던 방향보다는 소위 스피리추얼 분야에 속하지만, 어쨌든 하루 한 번은 아닐지라도 이걸 읽고 또 죽음을 생각했다.
여러가지 좌절감에 방황하다, 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가 된 '나'의 정신적 여행은 뻔하다면 뻔하지만 절실하다. 가족들과 병원 직원들의 모든 대화를 들을 수 있는데도 한 마디도 전할 수 없는 상태에서, 대화 상대는 자기 머릿속에서 말을 거는 존재뿐이니 갑갑하기 그지없다. 자기를 둘러싼 상황들은 변해가는데 할 수 있는 일은 머릿속 대화가 전부. 사실 자기 자신과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주인공이 이미 다 알고는 있었다는 말이겠지. 나도 알고 수백만의 다른 독자들도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래도 읽으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다. 실수를 만회하거나 수용하는 것은 자책감과는 별개여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내 책임이라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고 가능하지 않다는 것. 오늘 말하지 않은 것을 내일 말할 기회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주인공은 죽다 살아나는 위기에서 깨닫지만, 책이 있어 감사하게 나는 멀쩡한 상태로 곰씹을 수 있다. 이러다 또 지친 날들이 돌아오면 당연한 것들을 또 잊고 조금 방황할 수도 있다. 그러면 또 다른 책이 나에게 죽음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오늘도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으니, 열심히 움직이자. 내일 못 할 수도 있으니까.


신자가 아니어도, 국사책 보고 산 탈 때 절 좀 들러보면 불교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은 없는데 하도 친숙해서 뭘 아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막상 지식이 있나 점검하면 난 대체 뭘 아는가 절망에도 빠지고.
작년 이맘때 쯤인가, 강릉단오제 영상을 보면서 처음 범일국사 이름을 들었다. 그때까지는 단오제가 막연하게 전통 무속 의식이나 춤이라던가, 무형문화를 재현하는 행사겠지 했는데,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까지 등재된 강릉단오제는 주인공들이 있었다. 특히 제일 중심으로 모시는 신이, 승려다! 그것도 뒤에 국사까지 붙어있는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큰 행사의 주인공이면 보통 사람이 아닐텐데...그때 유튜브로 영상을 조금 챙겨보았다가 책이 나왔길래 일단 보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정말 학술적인 쪽에 집중된 책이라 - 고대사 기록에서 불분명하거나 다르게 표기된 부분들을 분석하고, 연대나 행적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맥락을 찾는 부분들이 크다 - 신기한 고대사 이야기랑은 거리가 꽤 멀고 전문적 불교용어들 - 내가 여기서 몇 개나 기억할지도 의문이다 - 도 많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다. 신격화가 되면서 집안 내력이 기록으로 있는데도 각종 영웅 설화들이 만들어지고(무려 무염수태까지 있음;), 그냥 산만 잘못 타고 죽을 수 있는 시대에 당나라 유학 가서(같이 입당한 사람들이 왕자 일행 헐...) 약 11년을 돌아다니며 공부하고, 법난 때문에 피난하면서 쌩고생을 하고, 당시 도독들과 관계를 맺으며 선불교를 전파하고...곁가지지만 강원도 영동지방 옛 이름이 하슬라였다는 것이 신기하다. 완전 rpg 게임 타이틀인데?
산악숭배 + 호환 + 교통 특수성으로 싹튼 대관령 수호신앙이, 초창기 자장율사의 신격화에서 강릉에서 나고 포교하던 토박이 범일국사 신앙으로 계속 섞이면서 변화했다는 게 초심자에겐 신기방기하다. 막판엔 민간신앙에서는 타당성 중요하지 않고 신앙 대상이 강한가가 논점이라는 쫄깃한 분석은 덤. 올해는 어찌될지 모르지만 책도 봤으니 강릉단오제 한 번은 꼭 보러가야겠다. 그때쯤은 읽은 걸 까먹었을 수도 있지만;


민망하게도 나는 한국 근현대 문학가들과 그 작품에 좀 어둡다. 일단은 학생 시절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나, 독서감상문 과제로 주어진 작품들이 꽤나 갑갑해서 - 쓰여진 상황을 생각하면 지극당연하다 - 그 이후로는 기회가 되면 약간 들춰보는 수준이었고, 작가들에 대한 이미지도 그 시절에 희미하게 형성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우연히 이 책을 집어들고, 이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썼던 작품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절절한 충격으로 다가온, 아이의 죽음에 바치는 이광수의 '봉아의 추억' - 이런 감정에는 동서고금이 관계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 부터, 제반사정으로 부모의 친밀함도 느끼지 못하고 엄마까지 잃은 딸들에게 보내는 김동인의 고백같은 편지, 사랑따라 집 나간 동생에게 나는 언제라도 네 편이라고 전하는 이상의 편지, 힘든 시기에도 삶의 낙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는 박봉자의 오빠가 보내는 격려...
그렇다고 모든 편지가 다 개인적으로 절절한 것도 아니긴 하다. 뒷편에 가득 실린 춘성 노자영의 연애편지들은 이 시대의 세파에 찌든 독자랑은 좀 거리가 있다. 사실 더 민망하게도 노자영의 이름을 이번에 처음 접했다. 검색하니 그 시대에는 거의 90년대 마광수급의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고 작품도 꽤나 많은데, 나는 어찌하여 전혀 몰랐던가 싶다. 모르는 것이 참 많기도 하다...
마지막에는 계용묵 선생의 편지 쓰는 요령도 들어있어서, 글을 쓸 때 존경의 마음을 담아야 한다는 가르침도 있다. 글을 잘 쓰지도 못하고 툭하면 중요한 것들을 잊는 나에게는 감사한 글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책, 즐거운 독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