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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꼬모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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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연결되는 새콤달콤 연작집

추워서 몸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때에, 마음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전기장판에서 이불 덮고 손만 내민 채 한도 없이 귤을 까먹던 옛적의 기분이 오랜만에 되살아남. 하나씩 놓고 보면 그냥 즐거운 이야기들이지만, 장르도 주인공들의 성격도 엄청나게 다른 이야기들이 한 세계 안에서 연결되어 움직인다는 게 신기하고, 이런 표현이 소설 감상에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지만 참 깜찍하달까. 홋홋홋홋. 개인적으로는 청춘소설과 판타지소설의 결말이 연결될 때 살짝 감동하기도. 세상이 너무 넓고 인구는 언제 백억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니 종종 잊지만, 6단계 법칙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란 언제 어디서 이어질지 모른다는 걸 환기시키는 이야기에 새삼 흐뭇해진다.

 초반에 ‘그닥 비중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이름까지...’라고 여겼던 인물들이 이야기의 바톤이 넘어가면서 재등장하니, 어느 순간부터는 사냥감을 쫓는 매의 심정으로 등장을 기다리게 된다. 재등장하는 순간 ‘심봤다!’는 심정이 되는 스스로에게 헛웃음이 나오지만, 에잇, 뭐 어때. 가끔 이런 재미도 있는 거지.



당신만이 알고 있다
당신만이 알고 있다
의미만큼의 고민을 남기는 '시간'의 이해

시간의 측정이란 것을 당연하게만 여기고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들여다보니 충격이 꽤 크다. 시간과 임금의 환산 속 '효율성' 속에서 사람이란 존재가 통제하는 이와 통제당하는 이로 나뉜다는 것, 시간에 대한 감각과 효율 문제가 각종 차별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심지어 느림과 마음의 여유마저도 자본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등등 한숨을 안 쉬고 넘어가는 대목이 별로 없다. 우린 망했다고 하는 책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이런 문제들을 의식할 때 사람과 자연에 대한 또 다른 관계가 열린다는 좋은 책인데도...왜 자꾸 망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이 너무 찌든 탓일지도.

효율성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면서 하는 과도한 집중이 얼마나 정신을 갉아먹는지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에, 본문에서 처음 접하는 테일러와 레어드의 주장이 경악을 넘어 공포로 다가온다. 소위 차이트게버를 내가 조절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샤워할 때조차 경쟁자들에 대한 걱정을 해야하고, 버스 안에서의 짧은 독서나 상상조차 허락하지 않으며 초효율을 이뤄내지 못하는 이들을 인간 이하로 여기는 그런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그 과정에 포함되지 않는 자연의 질서까지 무시해야 한다면 더더욱.

최근 개인적인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 고민 중인데, 짧게라도 그런 부분을 건드리는 대목에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다. "모든 글은 일종의 타임캡슐이다. 글쓰기는 자신의 세계에서 온 조각들을 모아,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독자에게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기장에 개인적인 글을 쓰는 것조차 미래의 나를 전제하며, 더 나아가 미래 자체를 가정한다." 골치 아픈 사색을 미래의 나에게 미루는 것 아닌가 생각도 잠깐 스치지만, 이 두서없는 독후감들이 미래의 나에게 뭔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의 감상은 이렇게 마무리.

세이빙 타임
세이빙 타임
머릿속까지 씻어내고 싶은 초 찝찝한 뒷맛

드라마 포스터를 본 적이 있어서, 영상화까지 된 작품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픽업. 좀 늦은 감은 있지만...어쨌든, 영상화까지 될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그 무언가가 이 정도로 찜찜할 줄은 몰랐던 게 문제지. 분명 페이크 반전과 반전에서 놀라고, 마지막 한 문장까지 긴장하면서 읽었고, 교육이나 계급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니 잘 읽은 건 맞다. 자극적인 기사를 제조하는 이들의 적나라한 욕망도 이런 식으로 들여다보니 새롭기도 하고. 문제는 소위 이야미스의 ‘이야’ 지수가 너무 높아서 소화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간다는 것. 이 기분을 씻어내려면 상당한 양의 개그 영화와 다른 책들이 필요할 듯...끄으으으으.

 개인적으로는 이런 내용에서는 메인 커플 모두, 혹은 둘 중 한 명이라도 어떤 종류의 오오라를 뿜어내는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장면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읽기 더 힘들었다. 환상을 키우는 장면은 없는데 있는 대로 깨는 장면만 보이는 건 읽으면서 기분이 저조해진 탓인가...그냥 얼굴만 가지고 상대들을 미치게 만들었다는 설정이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외모가 많은 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세상이긴 하지.

 당장 욕탕에 들어가 온몸을 씻고 싶을 정도의 뒷맛은 남았지만, 욕망과 집착에 대해 재차 생각할 기회를 준 책인 것은 틀림없으니 좋은 부분만 생각하며 끝내야겠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서평 찾아서 이 작품보다 강도가 세다고 하면 건드리지 말아야지. 서평이 괜히 중요한 것이 아니여.

언덕 위의 빨간 지붕
언덕 위의 빨간 지붕
세월 따라 진화된(?) 능력 수사물

이런 소재의 이야기를 보는 게 꽤 오랜만이다. 한때 흔했던 설정이 언제부터 보기 힘들어졌나 생각하다, 시간의 흐름에 잠시 한숨. 디지털 시대에 새로 보는 사이코메트리 수사에는 나름 특수 설정이 붙어 있어, 만능인데 만능이 아닌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자키의 능력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코우키의 인맥 활용도 있으니, 리얼한 하드보일드 찾는 독자들에겐 소화가 안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개인적으로는 재미가 있고 범인만 잡으면야 뭐든 관계없으니 오케이.

 이런 능력이 다뤄지는 만큼 수사 과정도 좀 가벼운 느낌일까 했는데, 나름 나올 수 있는 건 다 나오니 ‘오호~’ 소리도 종종 나온다. 초능력이랑은 거리가 먼 막판 육탄전도 재미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인간 병기가 시원하게 펼치는 액션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이런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어떻게 이길까 조마조마해하는 것도 맛이다. 어디까지나 ‘이런 설정에서 주인공이 죽을 리가 없다’고 믿으니 즐길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3인방의 확연한 개성이 마음에 들기도 하고, 이 전개를 봤을 때 당연히 후속작이 있겠거니 했는데 없어서 당황. 전작에서 3년이면 슬슬 나올 때가 되었으니, 기대를 버리지 말고 기다려야겠다.

나에게만 보이는 살인
나에게만 보이는 살인
구구절절 마음을 울리는 특별한 여행기

추상적인 내용이 잔뜩 나올 것 같은 제목에, 여행 팁을 얻기에는 출간된 지 너무 오래 지났다. 게다가 최근의 여행기들의 일부도 그렇기는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갈수록 현지인들을 깔보거나 비난하는 경향이 강한 책들이 많으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어 ‘읽어는 봐야지’라고 생각만 하고 꽤 시간이 지났는데...지금이라도 읽어봐서 정말 다행이다. 간만에 잠시 필사를 고려해볼 정도로 한 마디 한 마디가 기가 막힌 데다, 낭만을 찾으려는 경향은 분명히 있지만, 동네마다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마음을 열고 이해하면서 따라가는 태도 완전 심쿵이다. ‘이 국적과 이 성격의 작가’와 ‘이 시기’가 맞물리지 않았으면 불가능했을 여행 코스와 사람들과의 대화도 흥미진진. 이후 이 동네들에 더 큰 시련이 찾아오고, 일부 지역엔 아직도 피와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허무하기도 하다. 고난 속에서도 노래하며, 시를 좋아하고 당당한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현재 휘둘러지는 폭력 아래서, 이 문화적 유산은 과연 이어지고 있을까. 한편으로는 예상 못한 폭소 포인트들, 위험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고들도 다양하게 포함되니 걸러낼 문장이 하나도 없다.

 시간이 상당히 흘렀는데도, 이란에서 만난 미국 청년과의 대화를 보면 기시감이 엄청나다. 이해가 부족한 ‘구원자’의 입장이란 지금도 너무 흔하니까...“자기 나라에서 좋은 것이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낯선 곳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기억하고 있었는가 반성도 해 본다. 그리고 아무리 적응력이 강하고 낙관적이어도 꺾일 만한 몇몇 대형 사고의 기록(특히 원고 분실. 읽는 사람 입에서도 신음이 흐른다...)에서도 슬쩍슬쩍 감동. 쌩고생한 과정이나 갑갑한 마음은 솔직하게 쓰면서도, 낯선 곳에서 문제가 생길 때 흔히 보이는 ‘현지인들과 그 문화에 대한 저주’ 따윈 없으니 잭 런던 같은 작자와는 천지 차이다. 정확한 시각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으나(대부분의 그림들로는 동네 식별 불가능), 두 사람이 겪은 일화에 강렬한 이미지를 더해주는 그림들에도 뒤로 갈수록 정이 붙는 여러모로 멋진 한 권이다. 이 넓은 세상을 내 입맛대로 판단하고 떠들며 끝내지 않고, 몰랐던 것들을 알아가며 모자람을 채워가기 위해서라도 이 여운을 최대한 오래 마음 속에 간직하고 싶다.

 본편의 흐름에선 좀 벗어나지만, 권두의 사진에 등장한 피아트 토폴리노에도 감동. 문제 생겨서 수리도 종종 하지만, 어떻게든 이 길고 험한 여로를 버팅기는 소형차의 성능 뭡니까. 스포츠카 나오는 영화들에서도 느끼지 못한 이태리 차에 대한 믿음이 갑자기 샘솟는다. 마지막에 트럭 타고 발굴팀들 만난 뒤 토폴리노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게 이 책의 유일한 아쉬움...

 

“그가 그들을 상냥하게 대하는 것은 반쯤은 진정한 인도주의적 정신에서였고, 또 나머지 반쯤은 그들의 가족으로부터 총을 맞을까봐 두려워서였다.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동기가 다 필요한 법이다.”


세상의 용도 (양장)
세상의 용도 (양장)
중요한만큼 울적한 그 회의의 상세

역사서는 어쨌든 엔딩으로 승부하는 장르가 아니니 - 스포일러 시작된지 너무 오래되었으니까 - 세부 사항에 대한 기대만 약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 깨달았다. 경악이나 실망으로 인한 탄식 없이 넘어가는 페이지를 세는 편이 더 빠를 정도니까. 맥밀런 선생의 강조처럼, 분명 이 결정자들이 책임은 있지만 모든 게 이 사람들 탓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이 복잡한 상황에 속병이 날 것 같다. 회의에 참가하지도 못했던 나라의 자손으로서는 제국주의의 탐욕을 실컷 비난하고 끝내고 싶지만, 세상 또 그렇지가 않아...일단 교과서에서는 마치 희망의 등불인 양 언급되었던 민족자결주의가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 너무나 우울하다. 아무리 담겨있는 의도 혹은 해석이 선하더라도, 그 정의부터 정확하지 않은 개념을 무작정 투척할 때의 부수적 피해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까. 모두가 고생했으나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고, 한 국가의 숨통이 트이면 다른 나라에서 피가 흐르는 모습에 질식할 것 같다. 분명 많은 요구들이 과한데도, 뜯어보면 다 사정이 있고 하다못해 독일조차 항변의 이유가 있으니...이런 자리에 낙관주의를 가지고 참석한 이들이 아직 있었다는 사실에는, 인간의 긍정성을 평가해야 하는지 현실감각이 떨어졌다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이게 다 민족자결주의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쉽게 말할 수 있는 게 정말 하나도 없다.

긴 드라마 속에 생각해야할 문제가 너무 많아, 하나하나 따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국가나 지도자의 도덕이란 대체 뭔지 답답해지고, 일단 한 표 가진 시민의 입장에서 스스로의 마음도 지금 잘 모르겠다. 일단 발언권을 밀어붙일 수 있는 국력이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여러 나라와 척을 지고 쌍욕을 먹더라도 최대한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물어오는 대표와, 다 같이 평화롭게 살아야하니 어느 정도 손해는 감수하자는 대표 중 한 사람을 지지해야 한다면 과연 나는 후자에 표를 던질 것인가...최근의 뉴스들을 보면 지금이야말로 나만의 답을 작성해야하는 시기인데, 참고할 사례들이 있어 오히려 너무 어렵다. 어쨌든, 봐서 행복하지는 않으나 엄청난 책을, 매우 잘 보았다...


+ 웃을 건덕지가 없는 이 책에서 딱 한 군데, 지금까지 본 빌헬름 2세에 대한 언급 중 가장 간결하고 직설적인 문장에는 잠시 모든 것을 잊고 대폭소. "그는 병리학적으로 보면 정신이 나간 상태였을 수도 있었다." 모든 인물이나 상황은 단식 판단하면 안 되지만, 이 짧은 답이 정답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음...

파리 1919 - 새로운 세계 질서를 향한 6개월
파리 1919 - 새로운 세계 질서를 향한 6개월
재미난 와중 살짝 피로한 직장 애환 미스터리 속편

불곰국 소설을 읽은 뒤라 기분 전환이 필요하기도 하고, 전작을 즐겁게 본 기억이 있으니 집어 들었다. 속 편히 잘 읽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갑갑한 순간도 꽤 많다. 갑질하는 사람들이 죄다 시체로 발견되는 경우라면 모를까, 직장 내 갑질 정말 싫다고요. 어이구...전작의 진주인공(?)의 더욱 격해진 수난, 살려는 몸부림이 참 순탄하지 못한 린코, 안 볼 줄 알았는데 또 보는 루루(어느 정도 규모 넘어가는 일터엔 이런 스타일 꼭 있지...) 덕에 이게 기분전환 타임이 맞는가 잠깐 의심하기도. 그렇다고 이런 자잘한 요소들이 재미를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니 어쩌리. 그래도 마지막에 경쾌(?)하게 끝났으니 다행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은겨.

아무리 봐도 후쿠로코지 다음 권에 또 끌려나올 것 같음. 분명 회사를 그만 뒀는데도 상사나 후배들 등쌀에 결국 도로 돌아가는 그런 스타일이야...이것이 예상인지 망상인지는 다음 권에서 확인할 수 있겠지.

바스커빌관의 살인
바스커빌관의 살인
부조리 속에서 '인간'으로 버틴다는 것

너무 편견이 쌓였는가, 소련 시절의 소설은 집기 전부터 한기가 느껴지고 첫 페이지에서 이미 최악의 상황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그래도 '날 읽어야 해!'라고 부르짖는 듯한 제목에 상당히 각오하고 픽업. 일단은 예상보다 훨씬 마일드한(?) 분위기에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읽기만 해도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 묘사도 없고, 배고픔이나 복장 얘기는 수용소 소설들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 그러나 흐루시초프까지 나서서 깠던 작품에는 이유가 있으니, 구성이 4부인데 이미 2부 끝나기도 전에 부조리함이 소화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갔다. '새해 벽두부터 이런 속터짐에 몸을 맡겨야 하는가?' '어차피 읽을 거면 후딱 읽어!' 나 홀로 고뇌하다, 이대로 중단하면 오히려 없는 속터짐까지 상상할 수도 있어 더 위험하니 그냥 GO.

능력 있는 신인을 견제하거나 착취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이야 어느 나라나 존재하지만, 불곰국, 아니 쏘-련의 이 모양새는 역시 한 차원 다르다. 다른 나라 소설에서 이런 회의 장면 나오면 '이 책의 장르는 블랙 코메디구나!' 생각했을 텐데, 이 책에선 그게 아니니 죽을 맛. 그리고 뭔가를 바꾸고 싶다면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게 맞는데도, 힘내라고 주먹을 불끈 쥐는 게 아니라 '이렇게까지 버텨야 하는가' 라고 한숨 쉬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예전에 브레흐만 책에서 까던 비겁한 시민의 사고가 내 머리 속에 있는가...

로빠뜨낀의 성격과 권두 해설에 나온 작가가 겹쳐보이는 것도 착각이 아니리라. 예상보다 매우 긍정적인 결말에 박수가 절로 나오면서도, 차라리 배드엔딩으로 끝났으면 오히려 두딘체프 씨는 윗전의 노여움을 덜 샀을지도 모르겠다 싶어 울적해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는 어디서 배웠나 싶은 기득권의 바보짓을,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텨서 '멀쩡한' 주인공이 이겨낸 것에 '이것들이 우릴 이겨먹을 거라 생각하고 있네! 아주 꿈도 못 꾸게 해줘야지'라고 분노한 것이 아니려나.

어쨌든, 부조리 고발에 그치지 않고, 그걸 이길 미덕과 희망이 소시민들 속에 있다는 걸 새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읽은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인간다운 인간'으로 만들어가야 할텐데...자신도 없고 불안하지만, 조금은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믿음을 갖고 싶다. 새해니까...


"이제 전쟁은 끝나고 그는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자는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축배를 올린다. 그러나 전쟁은 또한 승리자에게 깊은 상처를 가져다 준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기대 이상의 재미가 있는 복고 미스터리

40년도 더 지난 작품에 제목부터 '용신 연못'이니, 요코미조 세이시 작품들 생각하면서 집었다. 그리고 예상과는 매우 좋은 의미로 달라서 깜짝. 분명히 지금 적용될 수 없는 개념들은 있고, 도모이치나 마키코가 보이는 안일함에 슬쩍 성질도 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입은 시대의 상처나 교육자의 자세 꼬집기부터, 스리슬쩍 튀어나오는 각종 명언들, 철학적 질문, 명탐정(?), 설마 이런 방향일 줄 몰랐던 결말까지 여러모로 볼거리 만점. 무려 미쓰다 신조 선생의 해설에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안 풀렸다'는데, 나는 눈치채지 못했으므로 이대로 오케이. (해설에서까지 독자에게 추리를 시키다니, 역시 사람 성격 어디 안 간다...)

개인적 최고의 장면은 주인공의 언동에 '아니 이 ●○ 뭐여'라고 생각할 무렵, 딱 맞춰서 미오가 팩폭 퍼부을 때. 그래! 그런 얘기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이걸 일침으로 여기지 않고 여자의 흥분이라 생각하는 시점에서 미래가 없는 기야...어쨌든 잘 보았고, 절판 당시 애호가들처럼 프리미엄 가격까지 감수하지 않고 이렇게 볼 수 있어 두 배로 만족.

어쩌다보니 이게 2025년 마지막 감상문이다. 일 년간 여러 일이 있었지만, 적어도 책들은 여전히 기쁨과 가르침을 나눠주었으니 감사할 일이다. 책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고 겨우 깨닫기 시작한 한 해이기도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의 모든 책들을 다 읽을 수는 없으니까. 욕심내기 보다는 한 권 한 권 새로운 책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소중히 생각하고, 보낼 책들은 떠나보내야지...예상보다 마음 다잡기가 힘들어 아직도 정리 중이지만, 일 년 뒤에는 책 정리가 다 끝났다고 메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초거대 행성 엔진의 신비와 위기

'머신'이라는 표현에 약간 의아해하면서 집었다. 보통 자연을 다룰 때는 '살아있는' '측정 불가능한' 느낌을 풍기는 단어를 많이 쓰니까. 서문을 읽으면서 이 비유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책을 읽고 나서는 '우리는 심해보다 달과 화성에 관해 아는 것이 더 많다'라는 개념에 대해 저자가 조용하지만 아주 확실한 분노를 보이는 이유도 약간이나마 피부에 와닿는다. 거대한 지층이나 고래들부터, 눈에도 보이지 않는 균과 플랑크톤이 촘촘하게 연결된 시스템의 설명이 여러모로 놀랍다. 그리고, 한두 군데에 문제가 생겼다고 멈추지 않을 정교한 엔진을 불과 두세기 정도의 시간 동안 작살내고 있는 우리들은 무엇인가 새삼스레 전율. 안 돼, 생각해도 답도 없고 남는 건 된소리뿐이야, 생각하지 마....그러나 토머스 미즐리 이야기를 읽으면 이런 생각을 도저히 떨굴 수가 없다. 지구를 작살내는 기술을 두 개나 만들어낸 건 미즐리 한 사람이지만, 그걸 이용한 상품들을 신나게 사용해 댄 건 지구 각지의 소비자들이니...

숫자를 잘못 읽었나 순간 눈을 의심하게 되는 거북이의 눈물이나, 하와이의 전통 양어장, 증기선 이후의 항해가 가지는 의미나 고래들과 재순환 시스템 전체의 위기 등 재미있지만 마냥 재미있게 볼 수 없는 이야기들 정말 많다. 그나마 전문가가 추려서 설명해준 게 이 정도니, '숨겨진 신비가 더 많을 거야!'라고 좋아해야 할지 '숨겨진 우리들의 악행이 더 많을 거야...'라고 눈물을 흘려야할지 모르겠음. 그래도 체르스키 선생은 참여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다고 격려해주시니 다행이긴 하다. 나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것들에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그리고 학창시절 이후 끊은 해수욕은 앞으로도 할 일 없을 것 같다. 아주 꽉 찬 플랑크톤 국물 속에 들어간다는 생각 너무나 안 즐겁고요. 아마 플랑크톤들도 내 몸에 붙은 것들 섭취하는 게 즐겁지 않기는 매한가지일테니, 천상 방에서 조용히 책이나 보는 걸로.

블루 머신 - 바다는 어떻게 세계를 만들고 생명과 에너지를 지배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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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오디세이 1분기에 이 책들을 읽었어요
[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2. 죽음을 인터뷰하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독서모임에도 요령이 있나요?
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밤] 7. 북클럽 사용설명서 @시홍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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