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위시 리스트에 넣은 뒤 제대로 한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용케 무사해서 늦게나마 읽게 된 것이 감사할 일. 읽는 내내 내가 웃는 건지 우는 건지 헷갈린다. 풍자소설이니 주인공이 문제 요소들의 집합체 인 것은 당연하지만, 무능력하면서도 정신승리 능력만은 투뿔 등급인 쵤너에겐 학을 뗄 지경. 아직 50페이지 정도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이미 머리가 얼얼해 남은 분량 어떻게 참고 볼지 걱정이 밀려온다. 그러나 과연 켈만 슨생님, 버디 무비로 바뀌면서부터는 대체 이 어이없는 여정 어떻게 될지 궁금해져서 계속 책장 넘길 수밖에 없다. 똑같이 대단(?)하지만 결이 제대로 다른 카민스키의 이기주의에 풍자 소설이나 컨셉 같은 것들은 잠시 기억의 저편으로. 이 무슨 지옥의 파티인가 싶은 갤러리 방문 장면은 뭐라고 감상을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나 소프트하게 마무리되는 모습이야말로 거짓말 같은 켈만 표 매직. 기본은 예술 시장의 풍자지만(당분간 관련 책들 마음 편히 못 집을 듯), 이기주의나 자기합리화, 자신의 행동과는 관계 없이 '나에겐 좋은 일만 생겨야 해'라는 사고 등등은 소심한 독자에게도 슬픈 반성거리다. 일부러 저렇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잘 안 되어서 그런 거지...그래도 노력은 해야겠죠. 하아...


팔랑귀에 툭하면 감동하는 체질이라, 지식을 너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여러모로 반작용이 많고 위험할 수 있다는 걸 나름 신경 쓰며 읽는 편이다. 그렇다고 조절이 그리 잘 되는 것은 아니고, 특히 이 책에선 많이 힘들었다. 일단 마음이 가벼워지는 대목이 없고, 후반 아프리카 챕터에서는 순간적으로 울컥해서 별 생각들(반 이상은 삼천포)을 다 하다 보니 진정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소름 끼치는 현재진행형 제국주의, 당장 식민지 신세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한국, 나 자신의 몰이해, 어릴 적 아무렇지도 않게 방송되던 부끄러운 소재의 프로그램들 등...
흥분이 가라앉은 뒤 다시 보아도, GDP 해설, 레반시즘, 경제 손실과 외교 마찰을 동시에 불러오는 일대일로 등의 이야기에서 긍정적인 미래를 전망하기 어려운 것은 변함없다. 인류가 명백한 경제적 손해를 불사하고 환상을 추구하는 모양새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현재의 그 규모와 속도는 우리가 조절할 수 있는 범위를 완전히 넘어선 것이 아닐까. 이런 상황을 연구하면서 절망하는 게 아니라, 각성해서 현실을 개선하자고 말할 수 있는 태도는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 취지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독자가 되고 싶으나, 한 표의 힘은 미미하고 거대한 힘을 가진 이들은 이런 책을 보지 않는 현실이 두렵다. 그래도 소심한 독자 1도 반성하고 괴로워하면서 1mm라도 나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내용이 너무 써서 눈물이 나더라도 계속 읽어야겠지...
"어떤 것이든 간에 신화를 부정하려면
확실한 근거에 따라 익숙한 모든 것에
매몰차게 등을 돌려야 한다.
그 순간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은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다시 시작한다."


간만에 믿고 보는 세계문학전집에서 하나 골랐는데, 읽고 나니 마음이 복잡하다. 원래 이 카테고리에 읽고 나서 룰루랄라 행복한 책이 거의 없고, 평소 하지 않던 생각을 해보는 것도 독서의 의미 중 하나지만...이 정도로 에너지가 소진될 줄 몰랐다.
별로 두껍지도 않은 소설인데 여러모로 당혹스럽다. 일단 개인적으로 이름 전혀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이 주연 중 한 명에, 실존 인물들이나 문화적 요소를 등장시키는 데 비해서는 각종 설명이 뻥에 가까운 수준. '재구성한 또 다른 현실'이라고 표지에 써 있으니 속은 것은 아니지만. 등장하는 모든 것들이 회색 크레파스를 짓뭉갠 듯한 이 허무한 분위기를 만드는 장치일 뿐인 작품이니 정확한 지식이 필요가 없는 것도 맞고. 절반 가까이 읽을 때쯤 겨우 분위기에 적응했는데, 문제의 저주 능력(내용에 기 빨리느라 잠시 잊었던)이 발동하며 다시 당황하기 시작한다. 이게 스위스식 매지컬 리얼리즘인가요. '이 분위기면 아무래도...'라고 몰살을 예감할 때, 네겔리가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로 결심하고 살아있는 풍경을 찍기 시작하는 모습에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보통 주인공이 이런 경험을 하면 마지막에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한 것에 경악 2연타. 영화는 완성했으나 조용히 주변에 묻어가는 태도는 그대로인데다, '저주는 했지만 결과를 내가 모르면 책임 없다'는 대단한 마음가짐이 마지막 페이지 이다의 모습과 맞물려 거의 공포소설급으로 섬뜩하다. 머릿속에 담배 연기가 꽉 찬 듯한 이 기분 어쩌면 좋노.
그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과 관련 지식들이 담긴 상세 해설에 감탄하며 기분이 좀 풀렸다. '그들은 현실 세계에 발을 반쯤만 걸치고 있다'라는 말이 너무 찰떡같이 맞는 표현이라 마음속으로 밑줄 쫙. 일단 질식할 것 같은 세계문학의 파워를 맛봤으니 당분간은 좀 쉬어갈 수 있는 책을 찾아야겠다. 사유도 중요하지만 마음에도 환기할 시간이 필요하니까유...


혼백과 조숙한 아동의 합동수사라...독서에도 운이란 게 있는가, 아니면 그냥 특이 설정이 유행인 것인가. 무작위로 집었는데도 계속 이런 분위기의 작품들을 읽게 되니 헷갈린다. 어쨌든 '기상천 외한 복수극', '복수와 파멸의 칼날'이라는 문구들에 혹하기도 하고, 외양도 아주 푸짐해서 기대를 품고 열심히 읽었다.
이야기 속도도 빠르고, 인물들도 개성이 있고, 추리 논리들도 분명하니 분명 재미는 있는데...'반전의 반전'은 이제 꽤 흔하지만, '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패턴이 계속되니 좀 피곤했다. 간만에 등산 가서, 다음 지점이 정상이라고 믿고 어떻게든 올라갔는데 도착하니까 그 다음 지점이 정상일 때의 피로와 유사하달까. 이게 작품의 문제인가, 아니면 세월과 함께 인내력과 이해도가 저하되며 생기는 문제인가. 설마 나, 새로운 스타일 못 받아들이는 독서 꼰대...? 게다가 구로하랑 가라쓰가 사랑과 영혼을 찍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빗나간 것도 머쓱하고. 추리소설 읽다 자기의심에 빠지다니 이게 무슨...
어쨌든 반전을 배가 터질 만큼 실컷 보았고, 악도 처단했으니 오케이. 일단은 형사가 평범하게(?) 수사하는 신작은 요새 없는가 체크해 봐야겠다. 특수 설정도 좋지만, 역시 익숙한 맛이 그리워지는 게 사람 마음인 듯...


오야마 표 범인 찍는(?) 재미는 여전히 쏠쏠하지만, '뭐여 이건!' 하는 순간이 꽤 많은 한 권이었다. (나만 그런가...) 세 번째 에피소드의 트릭을 맞힌 독자는 진짜 존재할까? 용의자 수가 적다 보니 사다리 타기로 골라도 맞출 확률이 높지만, 이 트릭을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인가? 약간 진정한 뒤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트릭을 봤다고 좀 흐뭇해지지만, 당장 해설이 나온 순간엔 누가 옆에서 옆구리 확 찌르면서 '놀랐지 메롱!' 하는 느낌. 마지막 에피소드 트릭도 그런 면이 좀 있지만, 앞에서 너무 놀란 탓에 그냥저냥 놀라고 끝났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른 장르의 요소가 섞이는 것에도 움찔. 특수설정 적용한 추리물이 넘치는 세상에, 추리랑 관련 없는 세부 설정에 약간 넣었다고 놀랄 일은 아니지만...설마 이 설정을 트릭에 넣는 건가, 그렇게 되면 기발한 게 아니고 그냥 반칙이 아닌가 조금 불안해지긴 했다. 걱정이 기우로 끝나 매우 안심하는 한편, 너무나 저조한 스스로의 범인 적중률에 한숨 쉬며 감상 끝.


한 상점가에 다자녀 가정이 왜 이리 많은가, 출산 장려금이 많이 나오는 설정인가 하며 보는데 그런 언급은 없었다. 마음에 세간의 때가 너무 묻은건가 이런...어쨌든 재미있게 보았다. 분명 '소소한 동네 사건 & 훈훈한 이웃사랑' 카테고리이긴 하지만, 절세미남 천재 요리사나 생각보다 고약한(?) 죽음, 집을 정기방문하는 스토커, 부모들 사이 치정 등이 나오는 걸 보니 '역시 사람은 버릇은 쉽게 버릴 수 없다' 생각이 절로 든다. 이런 컨셉이면 우에오로도 까메오로 나오려나 잠깐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조금 머쓱.
잔재미를 즐기면서도 개인적인 불만은 조금 있었다. 예전에 이런 교차서사 작품에서 한번 데인 뒤로는, "양쪽 다 보면 더 깊이 있는 내막을 알 수 있다"가 아니라 "양쪽 다 안 보면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가 되면 화가 훅 올라와서...모든 독자들이 표지에 홀랑 넘어가 가지런히 두 권을 늘어놓고 스타트를 끊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님. 한 권만 봤다가 사고라도 나서 다른 한 권을 읽지 못하는 사태라도 생기면, 범인을 영영 모를 수도 있다니까요. 궁시렁궁시렁.
그러나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준이고, 쓰쿠네와 조연인 마이카도 귀엽고, 오랜만에 소년 소녀 탐정물을 보니 조금 들뜨기도 했고 여러모로 즐거웠다. 구성상 후속작은 힘들 것 같지만, 혹시나 모르니 약간은 기대해보고 싶고. 형제자매들의 미래도 그렇지만, 라면집이 망하지 않고 버틸지가 궁금해서...오늘 책 잡담은 여기서 종료.
![[세트] 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 : 형제 편 + 자매 편 - 전2권](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26/39/cover150/k772039292_1.jpg)
![[세트] 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 : 형제 편 + 자매 편 - 전2권](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26/39/cover150/k772039292_1.jpg)
불가능 범죄라고 뒤표지에 적혀 있길래, 퀴즈쇼 중에 기상천외한 살인이 일어날 거라 기대했는데 전혀 그런 이야기 아니었다. 책장 넘기면서 슬럼독 밀리어네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것은 단순히 주제가 퀴즈라서인가. 하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두 작품의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화자가 최종 승자도 아니고, 폭력과 피칠갑이 없으며, 전국적인 재해도 다뤄지긴 하나 전체적으로 소박한(?) 분위기도 그렇고, 무엇보다 퀴즈를 푸는 목적이 너무나도 다르니까.
퀴즈 대회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으니, 묘사된 연습 과정이 실제와 얼마나 비슷한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뜯어보니 퀴즈를 푸는 과정 자체가 선문답을 방불케 해서 신기하기 그지없다. 답을 알기 때문에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틀리건 말건 일단 버튼 눌러서 풀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은 점점 불안으로 굳어가는 어른에게는 간만의 찬물 세례. 아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이거 참...이유 없이 사랑하고 열정을 부은 무언가가 내 인생을 긍정해주는 경우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 반대도 있기 때문에 레오의 말들에 착잡해지기도 한다. 아냐, 이 책에서까지 열정과 인생이 동시에 박살나는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어.
마지막의 혼조 파트가 생각보다 싱거워서 잠깐 실망하긴 했으나, 다시 생각하니 과도한 정열을 보여주거나 괜히 억지 감동을 쥐어짜지 않아 담백하게 잘 끝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깨알 지식들까지 포함해서 즐거운 한 권이었고, 적어도 오늘의 책 선택은 오답이 아니었음을 기뻐하며 감상 끝.
"퀴즈를 계속하는 한 평생 오답과 함께 해야 한다."


'비밀과 협박'을 소재로 하는 작품이 끝없이 나오는 건, 아무리 머리로는 대처법을 알아도 실제로 일이 닥치면 일단 숨기고 보는 게 사람이기 때문일까. 무슨 일 생기면 다른 생각 말고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낫다는 믿음이 굳어지는 것은, 도덕 정신 때문이 아니라 '탄로 나면 내 인생뿐 아니라 주변까지 가루가 된다'보다는 '인생이 많이 피곤해질 것이다'가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돈이나 연줄이 제대로 있거나, 로또 당첨에 버금가는 운이 있어 들키지 않고 잘 사는 사람들도 세상에 있지만, 난 그런 사람 아니니까...
어쨌든, 이런 내용이니 희망을 버리고, 중반부터는 어떤 불행한 얘기가 나와도 놀라지 않으리라 각오하며 읽었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는 원만한 결말에, '이러고도 평화가 올 수 있구나...' 하며 다른 의미로 놀람. 그리고 꾸준히 떡밥 나와서 놀라울 것은 없던 최종 보스의 정체보다, 인물들 간의 관계 변화가 개인적으로 흥미진진. 홀랑 믿던 이가 발등을 찍고, 못 믿을 것 같은 이와 신뢰 관계와 공감이 생기고, 회복이 안 될 것 같은 관계에 또 회복의 씨앗이 생기고...다 읽고 나니 인간관계 강의 영상 본 기분인 건 나뿐인가. 누가 배신을 때릴지 귀인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인 건 맞으니, 되도록 마주치는 모두와 온건한 관계를 맺으면 좋겠지만...생각만 해도 어려워서 한숨이 나온다. 일단은 없는 사교술은 생각 말고, 몸 사리고 지내는 게 최선인가. 하아...


제목이 너무 진리라 홀리듯이 픽. 고문이면 모를까, 설득에 정치적 견해가 바뀐 사람 만나기는 쉽지 않지..."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을 어떤 식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말에 희망에 부풀어 읽기 시작하는데, 읽고 나니 공익을 논하기 전에 당장 스스로를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 태산이다.
말을 많이 하고 듣는다는 것이 '참여도가 높다'는 말이 아니고, 시위나 SNS를 통한 정치 활동의 효과가 예상과는 꽤 다르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처음 알게 된 머스크와 슈퍼볼 트윗 사건(?)은 사건 자체보다 '정말 다른 세상이 되었다'는 쇼크도 크고. 정치 신념이란 것이 정체성과도 연결이 되어 있으니 남의 신념은 못 바꾸지만,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이런저런 말을 들어보며 벽의 높이를 어느 정도 낮춰갈 수 있다는 방향 제시는 확실히 현실에 맞는 듯 하고, 단순한 독자 1에게는 꽤 감동적이기도 했다.
문제는 사회적 고립을 다룬 파트. 고립이 가져오는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방지해야 한다는 성실한 고민이 가득한 파트인데도, 불행의 신탁을 받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가. 안 그래도 좁은 인간관계가 세월 지나며 더 좁아져 서글픈 이에겐, 처음 듣는 소리도 아니건만 '인지 부조화 심화, 편집증, 자살, 고혈압, 조기 사망, 치매 etc'라는 설명 아프다...그것도 모자라 혼자 아프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치 참여 저하로 이어지면서 사회적 인프라가 축소되고, 결국은 사회 전체의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게 된다는 데서 절망. 자발적으로 소위 아싸가 된 것도 아닌데, 후손에게 죄 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참...
갑자기 교류를 왕창 늘리고 관용을 마구 뿜어내며 사는 것은 무리지만, 어쨌든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니 드러누울 일은 아니다. 남의 정치적 견해에 불평하기보다, 일단 들어보면서 내 마음 안의 극단적인 생각을 조금씩 줄여가도록(...쓰고 보니 이것도 허들이 충분히 높구나...아윽) 용쓰다 보면, 지금보단 나을 거야...낫겠...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의 대부분은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 내고 유지하기 위해
한결 같이 노력할 때 일어난다.
물론 이는 힘든 일이고,
다른 대단한 행동에 비하면 지루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다."


좀 웃으려고 봤는데 도저히 웃을 내용이 아니다. 목적을 이룬 사람들도, 목적을 못 이룬 사람들도 흥망성쇠 왜 이리 격한가. "그들이 투기에 열을 올린 것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와 제도가 그들을 투기판으로 내몰았기 때문이었다." 현실에서 탈출할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투기에 뛰어드는 이들은 지금도 있지만, 그 시절 식민지에서 빈곤과 불안에 시달리던 사람들의 절박함에는 비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면 그저 슬퍼진다.
벼락처럼 돈을 벌고 잃는 모습들이 허망하기도 하지만,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고민되는 장면들이 많다. 당장 김기진 파트에서는 이 사람은 운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판단 불가. 일단 큰돈 벌려고 신념도 계속 바꾸고 민족도 버리면서 용을 썼는데도(이렇게 돈 생각에 여념이 없는 사람이 사회주의 타령을 그렇게 오래했다는 게 제일 미스터리...) 꿈꾸던 거대한 부는 일생 손에 넣지 못했으니 본인 입장에서는 한탄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식민지에서 박정희 정권에 이르기까지, 끌려간 적은 있어도 어쨌든 요리조리 잘 살아남아서 메이저 언론사 주필로 천수를 다했으면 어마무시한 행운아가 맞기도 하고...이하영 부분도 생각한 게 좀 있었는데, 중간에 고종의 정신 나간 꿈에 너무 놀라서 뭔 생각을 했는지 잊어버렸다. 대체 어디서 뭘 어떻게 주워듣고 이런 발상을 했는지 어처구니가 없고, 주변에 정말 말린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가 생각하니 소름 돋는다. 호러 소설도 아닌데 이 무슨 공포!
감사히 읽는 와중에도, 저자분의 의견에 살짝 갸웃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이종만은 '30년 동안 28번 실패'했다고 평가되지만, 자금이 모자라서 중단된 적은 있더라도 본인이 원하던 교육과 복지 사업에서 눈을 돌린 적이 없으니까. '기생 혹은 탐관오리의 작부'였던 최송설당에 대한 '그런 부끄러운 과거를 가졌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는 말은 생선 잔가시처럼 걸린다.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직업도 별로 없었고 계급의 잔재는 여전한 상황의 빈곤한 식민지 시기, 선택의 여지가 있어서 기생이 되었을까. 젊은 시절 내내 손님에게 억지 웃음 건네면서 차별은 있는 대로 받았던 사람들 중, 그래도 넉넉히 번 사람이 있다면 다행 아닌가. 당시의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았던 직업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할 때 이게 과연 부끄러운 과거인가 개인적으론 모르겠다.
어쨌든, 한숨도 쉬고 감탄도 하며 조선 투기의 희비를 잘 보았다. 이러고 끝내는 게 아니라 동서고금이 없는 인류의 대과제, '돈을 적절히 잘 쓰면서 돈에 끌려가지 않기'를 달성하려 노력해야 하겠지만...자본도 없고 그릇은 작으니 어쩌리오...크흑.
"투기시장에서
기십만 원 기백만 원의 자금이 없이
큰 성공을 거두려거든
먼저 사람 노릇을 포기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