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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꼬모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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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무대 속 이국 용자들의 '호수성'

일단 제목이 끝내준다. 표지에 인류학 문구가 있으니까 '엇?' 소리는 나오지만, 홍콩 느와르가 아닐지라도 반드시 내용을 확인해야겠다는 마음 뿜뿜 솟아남. 그리고 내용은 예상하지 못한 골때리는 방향으로 굴러갔다. 각종 도시 전설의 진원지 청킹맨션 내 탄자니아 커뮤니티라니 이 무슨 묘한 단어의 조합인가. 처음엔 '이런 분야도 연구하는 사람이 있구나' 했는데, 다 읽고 나니 '이게 뭔지 알고 싶어서 연구를 하는 거구나' 생각이 든다. 이 미묘함을 책으로 정리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에 감사하는 한편, 만일 무슨 일이 생겨서 탄자니아에 가야 한다면 극동의 쫄보는 살아남을 수 없으리란 걸 알게 된다. 평생 살고 있는 이 사회 안의 인간 관계도 어려운데, 배짱과 더불어 유연하게 거리 조절하는 감각이 필수인 나라에선 방법 없음.

"하지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동료에게 의지하기'는 독립독행의 정신이 강한 이들에게 '자력으로 살아가기'와의 균형 위에서 모색되는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정말로 어려울 때에는 서로 돕는 관계가 성립한다. 하지만 그 균형을 잡기란 매우 어렵다." 설명만 봐도 놀라움과 땀이 숭숭...

사기당할 가능성도 숙지하고, 저 사람 수상쩍은 것 알면서도 도와주는 데 그 바탕이 무한 긍정이나 보살같은 자비심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백퍼 신뢰하는 일이 없다는 것에 '이게 가능한가' 끊임없이 놀란다. 세상에 내가 모르는 문화와 관습이 많다는 깨달음이야 항시 오긴 하는데, 오랜만에 제대로 벙찜. "타자를 쉽게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지라도, 그럼에도 누군가를 믿어보겠다고 결심하지 않으면 비즈니스는 개척되지 않는다." 그렇군, 탄자니아는 강한 멘탈의 용자들의 나라군. 그리고 자각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평생 비즈니스 개척은 글러먹었네 ●□...

일반적인 자본주의 세계에선 생각하기 힘든 방향의 부지런함을 가지고, "성실히 일하기 위해 홍콩에 온 게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홍콩에 왔다"(순간 비속어 튀어나올 정도로 멋있는 말이었다 진짜...)고 말하는 카리마에게 박수를. 저렇게 살 수는 없다 해도, 호수성과 인간 관계에 대한 각오에 대해 생각은 해봐야겠다. 아무리 내향인이고 관계 범위가 좁아도, 당장 내일 어떤 인간 관계가 생길지 모르는 것이 인생이니...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저항'에 대한 맞고도 힘든 말들

작년에 입에서 '오메오메' 소리 나오게 했던 책의 공동 저자 중 한 분의 책을 뒤늦게 집는다. 그렇게 관심 있으면 나오자마자 봐야 마땅하나, 독서 계획은 언제나 생각대로 굴러가는 법이 없어서...두꺼운 책도 아니고 읽어서 분명 좋은데, 마음이 어지럽다. 이런 책들 읽으면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참여한 일에 편승하는 일이 아니라, 대다수가 참여하지 않더라도, 혼자라서도 옳은 일을 위해 내 얼굴이 팔리는 일이나 육체적인 고통을 감수하며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내 안에 과연 존재할까. "팔짱 끼고 지켜보는 사람", "할 말을 잃은 다수"라는 말들에 고개 숙이다, '체념도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라는 대목에선 답답해서 잠깐 쉬었다. 온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식사를 잘 하고 싶은 나는 뭔가를 바꾸려 얼마나 노력하는 걸까? 뭔가를 지지할 때, '옳으니까'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것이 어떠한 해악을 끼치고, 그걸 방지하면 어떤 이득이 있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일까? 누군가가 함께할 때의 효과에 대해 카릭 씨가 적어놓긴 했지만, 오로지 스스로의 생각과 용기를 바탕으로 행동함이 마땅한 연령에도 저자의 질문조차 버거운 자신에게 실망한다. 하지만 당장 하루아침에 바닥에 본드로 내 몸 붙이고 1인 시위할 배짱이 생길 리도 없으니 어떻게 해야좋은가...

읽을 때마다 갈피를 못 잡고 끙끙대도, 용기 있는 사람들의 글을 읽는 걸 그만둘 수도 없다. 상황에 대한 자각마저 사라지면 그땐 진짜 끝일테니. "짐승도 신도 아닌 자신"을 과연 발견할 수 있을까. 고민은 끝이 없다.


"변화는 일어나야만 한다. 바로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모든 저항의 시작이자 끝이나 다름없는 다음 물음의 답을 찾아야 한다. 당신은 어디서 있는가?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더 간단히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만 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우리의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 멈춰버린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법
우리의 싸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 멈춰버린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법
신난다 재미난다 청춘 게임 매치 쇼

폭탄마 이야기가 아니라 리얼 게임 이야기라 시작하자마자 살짝 김이 새긴 했다. 그러나 빌딩이나 다리가 마이클 베이 영화마냥 터지지 않더라도, 천재 소녀의 활약과 산뜻한 고교생활 이야기는 사람 신나게 하기 충분. 단지...지뢰 글리코 게임도 계단 그림 보면서 계산하느라 시간이 걸렸지만, 뒤로 갈수록 스토리 보는 시간들보다 메모하면서 게임 이해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니 결국 마지막 포 룸 포커는 이해를 포기하고 읽었다...게임도 안 하고 패배한 셈이니, 도박에 손대지 않고 살아 진짜 다행이다.

마토와 에소라 사이에 대체 뭐가 있었는지 궁금하면서도, 학생의 영역을 넘는 뭔가가 나올까 불안했는데 그럭저럭 받아들일만한 선이라 안도. 물론 상당히 문제가 있는 사건이긴 한데, 아직 어렸던 '친구를 위한 마음'이 학생들 나오는 이야기다워 납득은 간다. 마토처럼 화려한 인물은 아니지만, 읽는 어른이도 고다가 좋기도 하고. 게임 승부 작품들에 빠져있던 소싯적도 생각나고, 실패는 했으나 간만에 두뇌도 굴려보았고 뒷맛도 상쾌한 여름 독서였다. 그나저나 책에 나온 게임 한 번 해보자고 지인을 불렀다간 정신 상태를 의심받겠지. 만의 하나 승낙을 받아도 이 더위에 계단 45단 오르다 서로 호흡 곤란 올지도 모른다. 게임 앱이 나오면 반복학습 해보고 싶은데 기대하면 안 되려나 쩝...

지뢰 글리코
지뢰 글리코
두통을 선사하는 미성년 해결사의 분투

나름 발랄한 톤인데도 읽으면서 한숨이 멈추질 않는다. 실제로 리벤지 포르노의 피해자와 가해자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이 세상이 우울하고, 주인공 스스로도 자각이 있는 성격 문제도 갑갑하다. 연령상 경험 부족은 어쩔 수 없긴 하나, 마고도 피해자들도 안전 대책이란 개념이 너무 없어서 보는 어른 속을 있는대로 태우고...중간중간 삽입되는 문자들 보고 예상은 했지만, 베스한테 전화오는 장면에선 오랜만에 머리 싸매고 '아 제발!' 소리 뱉게 됨. 이런 일 현실에서 많기도 하고, 청소년인 마고가 성장하는 장치인 건 알지만 고장난 진공청소기처럼 한숨이 나온다...그래도 그 끝에서 '당사자가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니 다행이지만...한바탕 속 썩은 뒤 "세상 모든 것이 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마고의 대사가 짠하다.

꼭 미성년이 아니더라도, '나 혼자', '우리끼리' 해결하려는 건 대체적으로 잘 되지 않고 마음도 무거워지는 일이란 것도 새삼 생각해본다. 도움을 구할 수 없는 경우도 매우 많은 것이 삶이지만, 그래도 도움을 청할 용기 있는 사람들이 마고와 단톡방 학생들처럼 전진할 수 있다고 믿고 싶네유...

마고 머츠가 치워드립니다
마고 머츠가 치워드립니다
긁어 부스럼이란 이런 것이리

표지도 강렬하고, 부제도 좀 세게 다가오는 단어라 무슨 얘기려나 궁금해져 읽었다. 예상과는 꽤 분위기가 다르고,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별로 안 되긴 했는데(반전에서 그닥 놀라지 않은 이유 중 하나. 아마 감정 이입을 크게 했으면 꽤 놀라지 않았을까...) 나름 재미있었다. 소설 속에서 기업이 저지른 범죄도, 비슷한 일들이 현실에서 현재진행형이니 공정무역 브랜드를 자주 확인하자 오랜만에 생각하고...

  저자가 잘 나가는 법률가라 그런지(전문 분야서 성공한 사람이 영문학 박사 학위 따고 소설까지 쓰다니, 역시 재능이란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여...), 주인공이 이런저런 법 이야기를 하는 장면들이 법률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실감난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법이나 계약이라는 것에 피로함도 느껴짐. 분명 이런 제도들의 목적은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것인데, 이야기 속에선 사람 목을 죄는 단어 게임이니까...

다른 건 몰라도 근래에 본 작품들 중 빌런을 제일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인 건 확실하다. 그냥 놔뒀으면 우울증 의심하며 끝났을 걸, 굳이 이상한 쪽으로 해결하려고 해서 폭망하는 컨셉이라니...나서야할 때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갈 때를 구분 못하면 인생 한 방에 간다는 교훈이 확실한 한 권이었다. 

더 케이지 : 짐승의 집
더 케이지 : 짐승의 집
희망도 부작용도 넘치는 스테로이드의 세계

스테로이드가 통증 치료 말고도 쓰이는 치료가 많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뭐가 어떻게 되길래 근육 만드는 약으로 다른 치료를 하는가 궁금하던 차에 딱 책과 마주쳤으니 인생은 역시 타이밍. 좀 어렵겠지 각오하고 봤는데 굉장히 편한 어투인데다 재미있는 일화가 워낙 많아 책장 넘어가는 거 순식간이다. 그러나 역시 화학식의 이해는 무리였음. 분명 쉽게 이해시키려는 목적으로 들어있는 분자 구조 그림을 보는데도 무슨 숨은 그림 찾기 하는 마냥 시간을 들여야 하니 슬퍼진다. 과학도 못하는데 이젠 관찰력과 시력도 저하되는구나...

 일단 스테로이드가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범위가 매우 넓은 단어이고, 여성 호르몬 조절과 피임약들도 포함하고 있다는 데서 뒤늦은 끄덕임. 그렇구나...발음도 한 번에 하기 힘든 ‘단백동화 안드로겐 스테로이드’와 그 일당들의 역할만 뉴스에서 잔뜩 보고 이게 다라고 생각한 것이 민망하다. 각 물질들의 발견과 합성에 성공한 과학자들 이야기도 참 신기하고. 뭐 이런 사람이 있는가 잠시 어안이 벙벙해지는 괴인 러셀 마커도 놀랍고(요새라면 회사 측 고소는 물론이고, 같이 연구하던 사람들도 가만히 안 있겠지. 보통 범죄 미드 보면 이런 사람이 칼 맞으면서 시작하지 않나?) ‘세상을 바꾼 약’ 개발자 명단에 두 번이나 이름 올린 유동원 교수님을 몰랐다는 것에 내가 뉴스를 얼마나 안 보는 건가 반성하게 됨. 이 분 이야기가 더 많이 홍보되면,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의 과학 교육에 좀 더 적극적이 되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다 관둔다. 어느 분야라도 떼돈 벌 목적으로 공부한다면 끝이 편안할 리가 없지. 차라리 95세까지 계속 논문 발표하면서, 자신의 연구를 다른 이들이 이어주기를 소망한 스토크 박사 쪽이 위인전에 넣기에는 훨씬 적절해 보인다. 평생 공부하고 건강 관리를 해야하니 이 방향도 엄청나게 빡세지만...

 이 많은 약들이 기억에 다 저장될 것 같지는 않으나(점점 포기가 빨라진다...) 어디서 스테로이드 언급되거나 처방받을 경우 생겨도 놀라지는 않을 듯. 저자분 말씀대로 아플 때는 꼭 약 먹고, 복약은 꼭 지도받은 대로 하면서 건강을 보전하자! 


“지금껏 인류가 개발한 약 중에 부작용이 없는 약은 하나도 없다. 스테로이드 의약품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독성을 개선하고 용법을 찾아냈을 뿐이다. 제대로 사용하면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약이지만, 방심하는 순간 건강을 갉아먹는 독으로 돌변하는 위험한 물질이니 전문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사용하길 바란다. 그게 어렵다면 스테로이드 의약품이 위험한 약이라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기억했으면 싶다. 그것이 한때나마 신의 물질이었던, 속절없이 타락했다가 보란 듯이 부활한 이 경이로운 약을 길들이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스테로이드 인류 - 기적과 죽음의 연대기
스테로이드 인류 - 기적과 죽음의 연대기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표지도 멋지구리하고 메리 데이질의 설정은 매력있지만, 읽기 전 기대가 너무 컸는가 살짝 허무하다. 등장인물들이 너도 나도 메리의 카리스마를 논하는데도, 그 박력이 별로 와닿지 않는 탓이 큰데 그냥 내가 둔해서 그런가. 오히려 등장인물들 중에서 제일 서툴고 외로워 보이는 건 어설픈 독자의 생각일까...애초에 추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분위기를 먹어야 하는 류의 이야기니, 이 더운 여름보다 늦가을에 봤으면 더 좋았을 책이었다.

아버지나 아들이나 가족애나 책임감은 엿바꿔 먹었고, 존은 초장부터 쓰레기인 거 대놓고 나오니 귀족의 양념을 친 막장이 부족함 없이 나온다. 설정만 절친이지 온도가 꽤 낮은 루시와 린디 관계의 미묘함, 귀족 간 결혼에 얽히는 편안하지 못한 관념들까지 다른 씁쓰무리한 볼거리(?)도 많고...개인적으로는 린디랑 애런이 투톱이고 나머지 인물들이 적당히 양념인 버전이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내용은 살아남아 한국까지 번역되지 못했겠지 쩝. 어쨌든 긴 시간, 자매가 솔직하지 못하면서도 서로를 위해 살았다는 것에 예상 외의 놀라움이 있었고, 메리의 인생이 참 무상하기도 하고...아무리 격하게 사랑하고 미워해도, 긴 시간 지나고 마지막이 다가올 땐 결국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는 걸, 더운 날 땀 흘리며 생각해 본다.

죽음을 걷는 여자
죽음을 걷는 여자
이런 분이셨군요 메리메 씨

얆고 작아도 임팩트는 강했다. 역시 뭐든 겉보기로 판단할 수 없어...이름도 발음하기 힘든 작가의 작품 중, 아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카르멘 하나인 상태에서 오픈. 정말 세상은 넓고 격한 작품은 많구나. 카르멘도 주인공들 다 뭘 먹고 이렇게 기운이 넘치는가 생각했는데 이번에 만나는 인물들도 비슷했다. 시대의 탓인가 작가의 성격 때문인가. 당장 30페이지도 안 되는 표제작에서 머리 띵. 코르시카인들의 심성을 날카롭게 표현했다고 해설에 나와있기도 하고, 대부 시리즈도 생각나니 그 동네의 논리가 뭔지는 알겠지만 수용은 불가하다. 자식을 용서할 수 없는 상황 물론 세상에 많은데, 열 살 짜리가 실수했다고 조직의 논리를 들이대면 세계 인구가 지금 80억이 아니라 8만도 안 될 걸...

뭔가 전설의 고향 삘도 느끼고, 짤막한 이야기 속에서 대체 몇 명이 죽는 것인가 놀라서 다시 세어보고 경악도 하고, 급반전으로 순간 벙 찌고 여튼 모두 대단했다. 사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소설이니 이렇게 가벼운 말투로 감상도 쓰지, 코르시카 스타일의 응징도, 관련된 모든 것이 악마적인 노예 무역의 현실도, 명예를 잃는 의미가 지금의 백 배는 되던 상황도 깊게 파고 들면 생각하는 사람의 영혼을 잠식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오래 살아 남고 전세계 번역도 되는 거겠지만...뭐, 잘 읽었고 유튜브에 영화 버전도 좀 있으니, 당분간 뒷맛 즐기면서 메리메 선생에게 마음속 손공수를 올리자. 끝.

마테오 팔코네
마테오 팔코네
신기함 가득한 우즈벡 영웅담

태평양 건너 미국 사정보다 가까운 중앙아시아의 사정이 낯선 것이 좀 뭐하긴 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라고 변명하며 읽어보았다. 영웅 서사시라는 게 굵은 흐름은 어디나 비슷하니 큰 기대는 없었는데, 세부사항에 신기한 것이 많아 즐거웠다. 유목민족이라고 해도 중국이나 몽골 쪽이랑은 다른 맛이 있고, 생각보다 주인공도 완벽한 성격이 아니라 실수도 하고 욕도 먹고...

당장 몇 페이지 넘기지도 않았는데, 돈 문제 걸리면 형제 사이도 별 수 없다는 큰 교훈이 등장하며(7살 아이의 말을 자기 마음대로 곡해한 결론을 바탕으로 동생한테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어떻게 우두머리가 되었는지가 수수께끼...), 1만 가구나 되는 부족들을 다스리는 부족장도 함부로 명령을 내릴 수는 없으며 밑의 사람들도 하고 싶은 말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들이 신선. 해설을 보니 학자들마다 쓰여진 시기를 10세기부터 16세기까지 다양하게 추측하는 모양인데, 어느 시기로 놓고 봐도 대단하다. 대단한 모양새는 주종관계만으로 끝나지 않았음. 동서고금 관계 없이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자식들을 사랑하지만, 현대 소설들까지 다 돌이켜봐도 이렇게 부모가 애정을 열심히 노래하는 책 별로 기억 안 난다. 당장 딸이 노래를 한 장 반이라 부르며 반항하는데 (조선이었으면 그날로 무당을 부르거나 다리를 분질렀겠지) 엄마는 뭐든 필요한 건 다 말하라는 둥 세상 모든 가축을 다 가져와도 우리 딸 데려갈 지참금으로 모자란다는 둥 달래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작별할 때 아가야 슬퍼마라, 네가 내 눈의 눈동자다 줄줄 노래하는 걸 보며 수백 년 전의 자식 사랑에 예기치 못한 감동. 그 와중에 자기 엄마한테 대놓고 '이제 죽음도 목전인데 나쁜 짓 좀 하지 마라'고 퉁퉁거리는 카라잔도 있다만. 한 장면 뿐이지만 장정도 메다꽂는 히로인의 액션, 어머니들 사이 주먹질(....), 대포와 소총의 존재, 주인공의 영웅답지 못한 고민에 대한 누나의 욕설, 갑자기 튀어나왔다 아웃하는 대마초 중독자 등등 헐 소리 절로 나오는 얘기들 다양했다. 이상적인 무기로 후반 짧게 등장하는 다이아몬드 칼에 잠시 상상력도 불탐. 분명 게임 아이템들 중에 있을 것 같아서 검색했더니, 멋지구리한 일러스트도 없진 않으나 제일 많이 나오는 건 마인크래프트의 퍼런 픽셀 칼(...). 부풀던 기대감에 바로 큰 구멍이...

사실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는 알파미시가 아니라 카이쿠바트였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현실의 출세란 건 이런 거지. 어쨌든 영웅의 결혼과 가족 구출 모험기는 흥미진진했다. 유튜브에 한 30년 정도 묵어보이는 실사랑 애니메이션 올라온 걸 찾았으나 둘 다 자막이 없네 이런 ○●□....


"칠 년 동안 낯선 땅을 헤맨 사람은

가족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아네.

그들의 모든 울분이 연기처럼 녹아 사라졌네."

알파미시
알파미시
섬뜩하게 문 열고 짠하게 문 닫는 책

추천사에 '무시무시한 상상력'이라 적혀있는데 정말 그랬다. 읽으면서 다 주워섬길 수도 없을 만큼 섬뜩한 부분들이 많은데, 어디 르포에 갖다 붙여도 어색할 일 없는 현실의 미친 고단함들이 그 안에 있어 슬퍼진다. 그리고 '강-강!-강!!'으로 쭉 가다가 갑자기 한 두 페이지 '...약' 되면 괜히 감수성 과다 분비되는 성격상, 별로 감정 이입도 안 되던 인물들의 결말에 혼자 아흐흐. 무서워하다가 씨익 웃었다가 홀로 난리 부르스인 나를, 전철 속에서 쳐다본 사람이 없었기를 바랄 뿐이다.

분위기 차이는 있지만 결국 랩에 묶인 대학원생과 농장 노예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데서는 웃픔도 소름도 맥스. 마지막 작품' 제니의 역'이 개인적으로는 표제작보다 더 피부로도 다가오고 속상하기도 하고 안쓰러움. 언어의 문제가 원활하게 해결되더라도, 이주 여성들의 곤란은 끝나지 않을 거라는 상상은 전혀 상상이라 생각할 수 없어 뒷맛 쓰다. 그러나 분명 이야기 속 제니2뿐 아니라 곧 등장할 미래의 비슷한 존재들도, 만든 사람의 의도대로만은 돌아갈 일은 없으리.

읽은 뒤 저자분 이력을 다시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제약으로 인해 기사로 전달할 수 없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소설의 방식으로 전달한다는 것은 세상을 상당히 사랑하지 않으면 힘들겠지. 납량특집에 가까운 내용이면서도, 닫을 때 소금기 밴 따스함을 느끼는 건 그런 연유려나. 써놓고도 뭔 소린지 모르겠네. 어쨌든 좋았다는 것은 분명!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이윽고 언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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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에서 단테의 <신곡> 연극을 봅니다.
[그믐연뮤클럽] 8. 우리 지난한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여정, 단테의 "신곡"
같이 읽고 싶은 이야기_텍스티의 네버엔딩 스토리
김준녕, 오컬트도 잘합니다. [다문화 혐오]를 다루는 오컬트 호러『제』같이 읽어요🌽[텍스티] 텍스티의 히든카드🔥 『당신의 잘린, 손』같이 읽어요🫴[텍스티] 소름 돋게 생생한 오피스 스릴러 『난기류』 같이 읽어요✈️[책증정] 텍스티의 첫 코믹 추적 활극 『추리의 민족』 함께 읽어요🏍️
10월 20일, 극단 '족연'이 돌아옵니다~
[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모두를 위한 그림책 🎨
[도서 증정] 《조선 궁궐 일본 요괴》읽고 책 속에 수록되지 않은 그림 함께 감상하기![그믐밤] 27. 2025년은 그림책의 해, 그림책 추천하고 이야기해요. [책증정]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는 그림책 세계. 에세이 『다정하게, 토닥토닥』 편집자와함께"이동" 이사 와타나베 / 글없는 그림책, 혼자읽기 시작합니다. (참여가능)
각양각색! 앤솔로지의 매력!
[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책나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시간을 걷는 도시 《소설 목포》 함께 읽어요. [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그믐앤솔러지클럽] 2. [책증정] 6인 6색 신개념 고전 호러 『귀신새 우는 소리』
사랑은 증명할 수 없지만, 증명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다
[밀리의 서재로 📙 읽기] 29. 구의 증명최진영 작가의 <단 한 사람> 읽기[부국모독서모임] 최진영의<구의 증명>, 폴 블룸의<최선의 고통>을 읽고 책대화 해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레슨!
[도서 증정] 『안정감 수업』 함께 읽으며 마음을 나눠요!🥰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될 가능성을 믿은 인류의 역사, 《자기계발 수업》 온라인 독서모임
한국의 마키아벨리, 그의 서평 모음!
AI의 역사한국의 미래릴케의 로댕최소한의 지리도둑 신부 1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일본의 탐미주의 작품들
[그믐클래식 2025] 10월, 금각사 [북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년』 함께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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