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저자의 말처럼, 생각하면 속이 불편한 문제들이 잔뜩 나온다. 그러나 매우 솔직하게 '정답은 없고 저도 몰라요'라고, 함께 생각해 보자고 하면 불만을 말할 수도 없지 않나. 요 근래 읽은 의사분들의 책들을 떠올리면, 어느 정도 달관하거나 '이런 깨우침을 얻었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같이 끙끙대는 분위기가 색다르기도 하다. 특히, 시신을 되도록 가족에게 안 보여주려고 하거나, 조금 비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절차나 의료 표현 문제를 비판하기보다 '집단적 실패'라고 설명할 때는 찌릿. "어떤 의사나 간호사도 이런 뒤숭숭한 감정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걸어 잠그는 것이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가 경험을 탐구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고의로 피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판데믹 시기의 뉴스들, 지금도 과로 중이신 헌신적 의료인들을 떠올리면 '의도적으로 환자의 경험을 단절시킨다' 같은 건 상상할 수 없다. 죽음을 접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 멘탈이 자동으로 강해지고 해탈한다는 의미일 리 없다. 오히려 주변이 그에 대한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할 터인데,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경외감이 너무 커서 그런 점들을 잊는 것 같다. 그분들은 의료적 기술이 뛰어난 '한 사람'이라는 걸.
연명 의료, 환경적 개선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다람쥐 쳇바퀴식 의료 등등 많은 문제들에 머리가 아파오지만, 이 답을 당장 개개인이 다 내야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생각하자는 방향이니 마냥 속이 무거운 건 아니다. 한편으로는, 천조국의 소름 돋는 의료 민영화가 제발 한반도에 상륙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감기 진료 받을 돈이 없어 물고기 항생제 사 먹고 응급실 행이라니, 잔병치레 많은 사람에겐 이게 지옥...어쨌든, 뒤돌아서면 까먹는 성향의 내향 독자 1도, 많은 분들의 의견을 읽고 들으면서 생각하도록 꾸준히 노력해야겠다. 특히나, 지금 살아있는 이 순간이 로또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나는 우리의 이상하고 불편한 경험이 무엇인지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고
우리의 세계를 더 의미 있는 방식으로 이해하려면
이 불편함을 인정하는 방법밖에 없다.
불편함을 인정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반추하고
그 안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려할 수 있다. 그리고 불편함을 인정함으로써
세상일이란 원래 그렇다는 관념을 거부할 수 있다."


교양과학서인 것은 분명한데, 읽다 보면 진한 사람 냄새도 그렇고 기나 차크라 이야기도 그렇고 (절묘하게 마지노선은 안 넘어가는 수준) 장르가 꽤 헷갈리는 책이다. 어쨌든 재미있으니 장땡이긴 한데...일단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 - 트라우마가 피에도 화학적인 흔적을 남긴다거나, 심장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피가 자율적인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던가 등등 - 도 신기하기 그지없고, 의식하지 못하고 지냈던 당연한 사실들을 보면서 감탄. 혈액 순환과 뇌 활동, 생각이나 감정 표현은 한 세트인데도, 그런 연결 고리들을 평소 잘 생각하지 못하는 건 지식 부족의 탓이리라. 과학 책 진짜 많이 봐야해...아흑.
재닛 마리아 본 선생의 업적에 감동해 이것저것 검색했다가 나오는 게 너무 없어서 다른 의미로 충격받기도 하고, 하미트의 인생 너무 기구해서 차라리 다 뻥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면서 잘 읽었다. 내 몸, 사람들의 몸에 이런 경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존경심을 좀 가져야 할 텐데 과연...뭐, 어려운 생각은 제쳐 두고, 일단은 하미트가 제발 더는 의학책에 나올 일 없는 평화로운 생활을 하기를 기원한다.
"심장의 피가 내적 에너지를 불어넣어줄 때만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심장의 피에는,
잘못된 목표를 버리는 용기와
고정된 세계관과
삶의 방향에 집착하지 않는 용기도 들어 있다."


일반적으로는 분명 가혹한 형벌인데도, 결국 재력과 운빨이 있으면 말 그대로 여행이 될 수도 있으니 설명이 세세해질수록 기분이 묘하다. 책 속에서 대표 사례로 나온 두 사람의 행적도, ‘그냥 옛날엔 이랬어’라고 넘어가기 힘든 부분들이 많아 읽는 마음도 혼란스럽다. 이미 있는 전과 이력도 부족한지, 그냥 궁궐 물품도 아니고 왕의 도장을 훔쳐 쓰면서 안 걸릴 거라 생각한 사람과, 하고 싶은 말 다 해서 유배되었는데 돌아와서 또 하고 싶은 말 다하고 또 유배를 가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인지 쓸 데 없는 고민도 잠깐 하고...하아...
유배 간 이들보다, 보조금 한 푼 못 받았던 보수주인들 이야기에 짠해지는 면도 있다. 얻을 게 없는 평범한 죄인까지 재워주겠다는 부자들이 그 당시 지방에 넘치지도 않았을 것이니, 자기들도 겨우 먹고 사는데 안도환을 거둬야했던 집주인 같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겠지. 폭력은 물론 좋지 않지만, 본문 언급만 보면 집주인이 안도환에게 입으로만 뭐라고 하고 넘어가는 것이 참 용하다. 여유라곤 없는 삶에 갑자기 맡겨진 생판 남, 그것도 죄인이 허구헌날 내가 도성에서 얼마나 호강했나 타령하면서 집안일도 안 도와주면 얼마나 미울까. 게다가 나랏님 마음이 바뀔 때까지 동거 기간도 무기한. 다른 의미로 애민정신을 발견하기 힘든 형벌이었더라. 그래도 “백성들의 궁핍한 삶과 착취에 대해 가슴 아파했고, 나아가 지역 사회를 교화하고 지역 문화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은 물론이고 의술이나 측량, 법률 상담 등 다방면에서 지역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일을 기꺼이 감당”한 선비들도 많았다는 설명이 약간의 구원이다.
기혼에다 쉰이 넘는 사람이 18~19세 기생에 홀랑 빠져 정신 못차리는 것을 '남아의 천고사업'이라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은...따지면 끝도 없는 시대의 한계이니 패스. 어쨌든, 가혹하면서도 빠져나갈 구멍도 무궁무진한 이 형벌이 지방에 학문과 기술을 보급하는 데도 일조했고, 지역 문화의 기록을 남기는 데도 기여했으니 정말 세상 모든 일들은 어디로 굴러가 무엇을 남길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매사에 정성을 들여야한다고 머리로는 생각하는데...평범한 독자 1에게는 허들이 좀 높...쿨럭...


드론 조작과 안내 과정이 이렇게 사람 손에 땀 나게 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해야 한다'와 '할 수 없다' 사이의 방황, 장애와 비장애의 이야기까지, 300쪽도 안 되는 책에 얼마나 농축이 잘 되었는지 읽는 내내 감탄. 아직 끝까지 읽지도 않은 시점에서도 영상화를 기대하게 될 정도로, 사람 쪽 빨아들이는 재미가 넘쳤다. 오우~
후반으로 갈수록, 구원하는 이와 구원받는 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이미 감동할 각오(?)는 마쳤다. 하지만 결말의 히로미의 모습이 주는 임팩트는 예상을 넘어섰으니, 잠깐 사레 들린 뒤에 속으로 함성 또 함성. 이렇게 온기 넘치는 대충격이라면 얼마든지 날려 주세요 어흑흑...
세상도 나를 포함한 개개인도, 조금만 어긋나면 한없이 차가워질 수 있다는 걸 알지만...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보고 나면, 타인을 돕는 것이 자신을 구원하는 행동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믿어 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갈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 한 권의 약발은 조금은 길게 갈 듯.
"진실은 더 아날로그적이고
흙냄새와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이었다."


예전 임금들보다 지금 서민들 쪽이 다양하게 먹는 즐거움을 누린다 생각하지만, 그래도 통치자가 하늘이던 시기 그들이 얼마나 잘 먹었는지 좀 보려고 집어 들었다. 그리고 예상 외의 정치적 신경전과 끝도 없이 나오는 부정부패에 매우 당황. 뭐지, 이 알차지만 밥맛 떨어지는 지식들...
두껍지도 않은 한 권에 사람 지치게 나오는 환관 - 유림 사이 파워 게임에는 밥 말고도 수많은 요소들이 얽혀있지만, '역시 사람은 자기 밥상 차려주는 이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교과서의 사진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종의 단식 이력이나(독일식 케이크를 즐겼다는 언급을 보면, 단식 후 요요가 어떻게 왔을지 알 것 같다), 유자광이 그냥 기이한 정치가가 아니라 왕실 음식과 임금의 매 끼니를 담당했었다는 것(역시 여러 의미로 위대한 밥상의 힘...), 부패의 유혹과 업무 외 잡무에 시달리는 요리사들 등등 신기하고 한숨 나는 이야기들에 페이지가 언제 다 넘어갔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머릿속의 성종 이미지가 좀 바뀌었다. 감선하는 태도도 그렇고, 아들내미가 이렇게 장기간 털어먹을 재화를 비축해 두다니, 법률만 전문인게 아니라 재정 관리 능력까지 톱클래스가 아닌가. 한국사 책들 좀 다시 보고 확인해야겠다는 의무감도 덩달아 샘솟는다.
예나 지금이나 구멍 난 시스템도 이런 저런 요소들이 맞아떨어지면 기막히게 오래 간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하기도 하면서, 궁궐 부엌 사정 잘 보았다. 그리고 다음엔 정말 궁중 음식 책을 보고파...


슬쩍 속표지의 작가 이력을 보며, '변호사인데 소설도 잘 쓰는 사람이 또 있다니...' 라고 조금 놀란다. 재능의 불공평한 분배 사례가 또 있군. 어쨌든 뭔가 있겠다는 마음에 집었는데, 진짜 뭔가 있었다. 주인공이 있는 시리즈물에서 클라이막스 파트까지 주인공 대사는 커녕 정보가 거의 없는 이 신박함...마지막까지 '양복을 잘 다려입는지, 승률이 얼마나 되는지' 등등의 정보는 하나도 없지만, '자신'이 아니라 사건을 논하는 문장들에 무쓰기의 성격이 잘 녹아나와 충분히 호감을 갖게 된다. 검찰의 주장과 변호사 주장이 설명될 때는, 간략하고 보기 쉬운 정리에 잠깐이지만 '소설로 보는 재판 진행' 특집기사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인 것도 개인적으로 굿.
그렇다고 마냥 즐거워하며 읽을 내용은 도저히 아닌 것이...초반의 진술들이 죄다 불쾌해서, 누구의 말이 진실이라도 속이 시원해질 길이 없다. 그렇다고 뒤에서 햇살이 비추는 것도 아니고. 무쓰기의 결론을 읽고 나면 아무리 가상의 인물이라도 연약한 아이가 너무 가여워서 범인에 대한 분노를 잊을 지경이니. '일단 뒤집어쓸 놈 찾아야 한다'라는 건 익숙한 범인의 기본 소양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도덕(?)이 이렇게 없다니! 하나씩 따져보면 무쓰기에게도 약간 성질이 나긴 하지만, 직업의 본분에 충실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이 변호사를 미워할 수는 없다. 어쨌든 분노가 정신을 갉아먹기 시작하면 복수 계획을 짜는 게 아니라 정신 상담을 받아야 한다는 것, '이러면 복수가 되겠지!'라고 머리 굴리고 일을 벌였는데도 상대방에겐 별 타격이 없고 이쪽만 남는 것 없는 뻘짓될 수 있다는 교훈도 잘 전달받았으니 오케이. 다음 이야기가 어떤 내용일지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쓰기의 상세정보가 공개될지 매우 궁금해서 속편들 꼭 봐야겠다.


부제를 보고 볼까 말까 좀 고민했다. 직업과 노동은 모두 귀한 것이지만, 이 분야에 대해 '가장 유용하고 공정하며 고귀한 사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 하지만, 자랑스럽게 그렇게 써놓은 이유가 궁금하기도 해서 읽기 시작했다.
당연히 한 분야의 초창기와 몇 세기 후의 상황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당연히 최근에 생긴 상품들이겠지' 생각했던 대부분이 이미 그때 다 있었다는 데서 꽤 놀랐다. 지금도 위험한 대규모 투자가 그때는 더 위험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사람이 투자든 뭐든 한 번 꽂히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건 시절이 상관없는데다, 주변인들까지 똑같이 행동하면 위험에 대한 감각을 잃는 모습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투자하다 망한 조상님들 숫자가 더 많은 데도, 돈 번 조상들만 생각하며 꿈을 꾸게 되는 것도 사람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 와중에, 평균 수명이 50세 남짓하던 시절이라 가능한 기막힌 해결책에 충격. "여기서 이사들은 한 가닥의 희망을 또 찾아냈다. 소송에서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시간이라도 최대한 끌어보자는 것이었다. 재수 좋게 그 기간 안에 죽어버리면 돈을 물어줘야 할 필요가 없어진다." 대단하십니다. 법을 빠져나가려 할 때는 다들 천재가 되는 것도 동서고금이 없어...하아. 게다가 세상이 온정으로 돌아가지 않는 걸 알고도 남을 나이에도, "국민 열 명 중 한 명이 죽는다는 건 아주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뒤집어 얘기하면 나머지 90%는 역병이 돌기 전보다 더 부유해졌다는 뜻이다. 유산 상속 등으로 없던 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같은 조용한 팩트는 보면서 살짝 소름 돋는다.
세상에 자금줄을 회전시킨다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VOC와 투자자들의 분투와 희비를 보고 난 뒤에도 여전히 부제의 의미는 와닿지 않는다. 그래도 역자분의 글, 한국어판 부록인지 원서에도 있는지 확실치 않은 박연과 하멜 이야기(둘 다 VOC 소속인 줄은 몰라서 깜놀. 산재도 없는 마당에 이런 위험을 감수하고 취직해야 하다니, 역시 제일 좋은 시절은 현재...)까지 전체적으로 놀라운 이야기들을 보고, 툭하면 까먹는 금융 용어도 복기했으니 만족하며 종료.
"17세기 암스테르담의 주식 파동에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이 주식 거래의 위험성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금융 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안 그래도 별로 없는 활기가 쪽쪽 빨리는 기분이 든다. 자세히 몰라도 별로 즐겁지 않은 되팔기라는 주제를, 운이 이렇게 없을 수도 있는가 싶은 주인공의 이야기로 뜯어보니 이리 우울할 수가 없다. 여기에 화제거리의 스트리밍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SNS 문화의 어두운 부분을 세트로 투척하니, 오랜만에 책 읽다가 다른 의미로 울고 싶다...그리고 되팔기와 상관없이, 니시다가 지금 사회 구조에서 모두가 빠질 수 있는 건조한 절망을 간간히 내뱉을 때는 뱃속에 날씨처럼 도는 냉기에 울적함은 그저 증가일로.
그리고 이렇게 힘들여 읽는데, 이럴 수가, 추리도 수사도 없다는 게 제일 충격. 물론 제목에 '살인'이나 '사건'이 들어갔다고 반드시 추리를 해야하는 것은 아니고, 추리나 미스터리로 분류해 파는 책들 중에 트릭이나 수사 과정이 중요하지 않은 작품들도 많으니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데...'여기까지 왔는데 범인 찾을 기미가 없으니 포기하자'고 생각할 때, "살인마가 잡히지 않는 한 진척도 없다."는 대사를 던지니 희망(?)에 갑자기 불 붙은 탓에 충격이 더 컸다.
클라이막스의 지옥도를 지나, 이게 마지막 펀치인가 싶은 일장연설까지 오면 니시다만 피곤한 게 아니고 이쪽도 넉다운이다. 그러나 드러누울 틈도 없이, 마지막까지의 그 몇 장 안 되는 분량에 확인 사살공격을 가득 채우는 이 자비없음이란...포켓몬 시나리오 담당이란 거 진짭니까? 애들이 봐도 되는 내용 쓰시는 거 맞냐구요. 꿈과 희망이 어른들에게도 많이 필요합니다 선생님. 무력감에 사로잡혀 '치트키'를 찾는 이들의 숫자가 줄어들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을지, 한숨 지으며 여기서 마무리.


카르타고야 영원한 아이돌 한니발 덕에 어떻게든 조금은 알게 되지만, 그 이전의 페니키아에 대해서는 민망하게도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어쩌다 역사서를 봐도 대부분 로마나 그리스 중심으로 서술되니, 페니키아에 대한 막연한 머릿속 이미지는 '고래 사이 새우', '동네북'(...). 이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이제라도 읽고 나서 반성 또 반성한다. 물론 역사가 천 년 단위를 넘어가는 국가나 민족에 대해, 책 한 권 보고 뭘 알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엄청난 착각이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흥미로운 점들이 책 속에 넘쳐난다. 살짝 충격적일 정도로 역사가 길고, 중심이 처음 페니키아 지역에서 카르타고로 이동할 때까지 기간만 해도 이천 년이 넘으니, 어째서 세계사 교과서에 비중이 별로 없는지가 의문. 역사란 승자가 쓰기 때문인가...큰 감흥 없이 기억하던 아이네이아스 이야기를 해설과 함께 보니, 이 익숙한 흐름에 약간 화가 난다. "로마의 기초를 세운 남자가 무려 여왕의 위치에 있는 여자를 버렸다는 우월감과 엘리사의 '분신'에서 암시하듯 포에니 세계의 '소신공양'에 대한 경멸이 포함되어 있는 정치적 선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누미디아 남자와 카르타고 여자의 '염문'은 포에니 전쟁의 한 고비를 이루는 실화를 아득한 과거로 돌려 '연출'한 것에 지나지 않다." 시간은 아득히 지났으나, 그 연출을 생각 없이 받아들인 관객 여기 있으니 죄송합니다...하아...
개인적으로는 고대 페니키아 파트가 훨씬 많았으면 좋았겠지만,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포에니 전쟁 파트도 다시 읽어 새롭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이렇게 아득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책마다 계속 조금이라도 새로운 해석이나 정보가 나온다는 게 대규모 전쟁의 무서운 점이기도 한 듯...인간이 집단으로 서로를 죽이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게 얽히는 것인지...) 참고문헌 목록을 봐도 페니키아 단독 주제로 쓰인 책이 별로 없다는 것과, 관련 유물들과 정보가 잔뜩 있는 토지는 현재 진행형으로 사람들이 희생되는 중이라 고대의 일을 따질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 아쉽고 씁쓸하지만...역사는 사라지지 않고 연구되길 기다리고 있으니, 평화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이 발견되고 알려지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고 싶다.


제목을 보자마자 '그러게요 선생님' 하면서 집었다. 굉장히 얇은 책이지만 생각할 거리는 책 두께의 열 배 이상이다. 계급과 차별 정당화를 위해 툭하면 자연이 어쩌고 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런 거 따지면 동굴에서 수렵채집이나 하셔야지?'라는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자신을 돌아보니 이제라도 이 책을 읽어서 매우 다행이다. 비난으로 기분은 풀릴지 모르지만, 설득에도 논파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되니까.
크게 세 의미로 나눠서 언급되는 '자연'이, 논리상 의미가 없는 동시에 인간의 심리 때문에 아직도 의미가 있다는 것은 씁쓸하다. 불확실성이란 게 참 무섭고, 아무리 논리왕들의 주옥같은 책을 봐도 그 불안을 없앨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견고한 질서에 매달리고 싶은 마음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개미나 원숭이들이 자기들을 위해 만든 법칙을 들먹이지 말고, 대지진이나 운석 낙하가 인간의 행실 때문에 일어난다는 생각은 공상과학 작품에만 쓰고, 우리가 현재 가진 걸 기준으로 우리의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건 잊지 말아야지. 대스턴 선생님 말처럼 '정신적으로 칸트를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되는 건 좀 - 이 아니고 많이 - 어렵겠지만...
"자연은 어느 모로 보나 문화만큼이나 다양성이 풍부하다. 따라서 자연으로부터 얻은 규범이 인간에 의해 자유롭게 발명된 규범들보다 더욱 설득력 있게 수렴될 것이라는 희망은 환상에 불과하다. 즉 상대주의와 싸우고자 하는 자연주의 전략은 망하게 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