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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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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마음도 냉동시키는 수용소 이야기

러시아 수용소 소설인데 꿈과 희망 따위 있을 리가 없지. 그러나 이 정도 마음의 준비로는 택도 없는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장 짤막한 첫 챕터에서 흠칫함. 아니 이거 뭐야. 오늘 아침 메뉴 얘기 마냥 담담한 말투로 이런 이야기 해도 되는 겁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읽으면서도 눈을 못 믿겠다. '1분 1초가 독이 되지 않는 시간이 없는' 생활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풀어가는 것에, 오랜만에 전율이란 단어를 생각했음. 혹한 속 배고픔은 또 어찌나 실감나는지. 당분간은 뭘 먹어도 불평할 일 없을 것 같다. 입에 뭐 들어가면 감지덕지다.

키 180cm인 남성이 48킬로그램이 되어도, 툭하면 두들겨맞고 다리가 상해가면서도 살아있으면서 '인간은 육체적으로 그 어떤 동물보다도 인내력이 강하다'라고 하니 설득력도 엄청나면서 공포스럽다. 이런 내용들만 쭉 나오다가 갑자기 무슨 시처럼 누운잣나무 이야기하니, 엄청난 내용도 아닌데 갑자기 눈물날 것 같음. 아직도 어딘가에 이런 곳들이 있을 거라 추측하지만, 그저 80억 인구의 대부분은 그 존재를 용납하고 싶지 않을 거라 믿고 싶다. 인간의 악이야 소멸 불가능하지만, 작가가 십 년 넘게 버티고 살아남아서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한 의미가 있다고.


"어쩌면 인간은 희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인간에겐 어떤 희망도 없지 않은가. 인간이 바보가 아니라면 어떤 희망으로도 살아갈 수 없다. 때문에 그토록 많은 자살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위본능, 삶에 대한 집착, 의식마저 종속되는 바로 그 육체적 집착으로 인간은 구원받는다. 인간은 돌, 나무, 새, 개가 살듯 그렇게 산다. 하지만 인간은 그들보다 강하게 생명에 집착한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동물보다 인내력이 강하다."

콜리마 이야기
콜리마 이야기
식중독 걸릴 듯한 께름칙한 뒷맛

제목이 참 매력적인데, 아쉽게도 유럽발 연쇄살인마 소설이 아닌데다 이름만 봐도 두려움을 주는 저자니 읽을까 말까 한동안 고민은 했다. 결국 어차피 볼 거면 그냥 빨리 보라는 매번 하는 생각만 다시 하게 되었음.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것도 재확인...

평범한 사람들의 기분 나쁨을 어쩜 이렇게 꼼꼼하고 실감나고 다양하게 눌러담았는지 초반에서 이미 속병이 날 것 같다. 그나마 약간이나마 진정되는 건 에쓰코 파트인데, 그 대신 에쓰코의 독백들은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의욕을 꺼뜨린다. 작가님 대체 무슨 흉한 꼴을 얼마나 보셨길래 이런 글 쓰시나요? 가쓰키도 양심 캐릭터이긴 하지만, 중간에 회상하는 미와코의 묘한 대사 때문에 '어이고, 이 양반은 독을 차곡차곡 모았다가 뒤에 한 번에 터뜨리겠구나!' 하고 불안해져서 속 졸이느라 편하게 보질 못함...

좋게 생각하면 온갖 증오, 혐오, 남탓 속에서도 사랑이 있어 사람들은 버틴다고 생각하고 싶은데...당장은 '인간은 애정에도 불구하고 남탓하고 끌어내리려고 발버둥치는 불행한 존재', '그런 감정을 좀 벗은 인간도 불행한 건 마찬가지'로 해석이 기울어지는 건 읽으면서 너무 지친 탓인가. 세상에는 이유 없는 나쁜 일 많고, 정의 구현도 잘 안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그래도 에츠코 말처럼 '자신이 한 행동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고 생각하고 좀 노력은 하고 살고 싶다. 24시간 미움의 아우라를 뿜고 다닐 만큼 에너지 넘치는 사람도 지구에 많지 않으리라 믿고 싶고...다 읽었는데도 샤워 한 두 번으로는 떨구지도 못할 찜찜함에 죽을 맛이나, 어느 정도 예상했으면서 읽어버린 내 잘못이지 어쩌리. 하이고...

레드 클로버
레드 클로버
활명수의 역사 + 이모저모 둘러보기

한동안 입에 대지 않았지만 어쨌든 꼭 한 병은 쟁여두는 활명수의 역사를 간략히 보았다. 읽기 쉽고, 당시 정서나 잡학이 다양하게 섟여 있는 것이 재미있는데....국제시장 이후 동화약품의 행보의 분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2프로 덜한 느낌. 한국전쟁 이전의 역대 사장들의 독립운동이나 사회 참여 이야기가 많은데 비해, 그 뒤의 회사 경영과 굴곡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고 '활명수가 낀' 생활상에 집중하는 느낌이 살짝 의아함. 예를 들면 새마을운동 챕터에서 동화약품이 새마을운동에서 어떤 모습이었느냐는 한 마디도 없고, 어머니회 회원들이 활명수병까지 수집해서 기금 모았다는 이야기만 나오니...시대가 시대니 뭔가 뒷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 나의 지나친 추측인가.

활명수에 불어넣을 다양한 전략이나 가치를 내가 생각해야 하는가 의문이 드는 마지막 챕터도 이게 뭔가 잘 모르겠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내 글인데도 '...불만인가?' 의문이 들긴 하나, 딱히 그렇지는 않음. 내 집에 상비된 제품이 살아있는 역사라고 실감하게 하는 이야기들 잘 들었으니 OK.

책이 2015년 발매라, 동화약품 홈페이지서 다시 점검하니 활명수의 현재 나이 128살, 누적 판매 85억 병이다. 본문에서 나온 것처럼 우리들은 '맵고 짠 음식 중독에다가 급하게 많이 먹고 술도 좋아하던' 조상님들의 자손이자 그 성향을 강력한 의지(담백하게 덜 먹자는 방향으로는 절대 가지 않는 의지...) ㅡ로 이어가는 중이니, 한반도가 증발하지 않는 한 100억 병 혹은 그 이상도 얼마든지 팔리겠지. 만일 지구 온난화로 인한 식량 부족 때문에 배 부르게 먹는다는 개념이 사라진다면 활명수도 위기를 맞겠지만, 그땐 인류 전체가 망할 테니까 별 일 아닌 걸로...

대한민국, 활명수에 살다
대한민국, 활명수에 살다
마음은 벌써 일본 식당 순회 중

살면서 매우 드물게, 주변에서 추천뿐 아니라 같이 읽자는 제안을 받았기 때문에 이미 책 들기 전부터 기본 호감도 왕창 높은 상태에서 시작. 에어컨 바람 쐬며 읽고 있으니 마음만은 나도 물 건너 식도락 여행 중이다. 아, 재미있고 상쾌하여라.

각 메뉴의 이름의 유래, 역사 뿐 아니라 주문 팁 등 실용적인 정보들에 엄지 척이다. 개인적으로는 입력하느라 골치 꽤 썩은 기억이 있는 생선 한자들 보니까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 생각해본 적 없는 프렌치 레스토랑까지 훑어보았으니 이제 여행만 가면 되는데...으으음. 어쨌든 마음 속에 좋아요 도장 꾹꾹. 그리고 한결같이 음식에 진심인 작가분의 태도가 존경스럽다.

'부드러운 식감의 히레, 육즙 풍부하고 고소한 로스, 둘 중 어떤 메뉴를 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저는 한 번도 안 해봤습니다. 둘 다 주문하니까요.'

이것이 어른의 플렉스, 어른의 패기! 이 외에도 미식의 추구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명언들이 곳곳에 박혀있다. 할 수 있다면 선생님처럼 살고 싶습니다. 이 성격으로는 다시 태어나기 전엔 무리겠지만...크흑.

개인적으로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중화요리 편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전작이 2018년 출간이었으니 설마 2032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걸까? 왕좌의 게임 마냥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신났다가 갑자기 김새기는 하는데...아쉬운 놈이 기다려야지 어쩌노. 그때 무사히 읽으려면 눈 건강 관리나 열심히 해야지...


"부먹/찍먹은 사장님 마음이니 주는 대로 먹든지, 미리 정중하게 요청하면 좋겠습니다."

메뉴판 해석학 : 일본 편 - 낭만닥터SJ의 美친 味식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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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늑대를 둘러싼 인간들의 이야기

시작부에 나오는, 레트리버를 소형견처럼 보이게 하는 검은 늑대 사진에 감탄한다. 이 늠름한 뽀대 보소....세상에 이런 일이 수준의 로미오의 친화성과 군데군데 늑대 트리비아에 감탄하면서도, 꾸준하게 나오는 인간들의 공포에 결말에 대한 불안이 더한다. 언급되는 위협들 속에서 7년이나 버틴 로미오가 너무 용함. 굳이 어린애까지 데리고 늑대 사진 찍으러 접근하는 사람들이, 무슨 일 생기면 늑대 죽이겠다고 펄펄 뛰는 심리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반대로 늑대와 친해지고 싶어서, 우정을 얻으려고 애쓰는 경우도 착잡하기는 매한가지.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야생동물과 접촉하지 않을 의학적 이유가 한 다스는 될텐데. 이유는 천차만별일지언정, 어쨌든 인간이란 자연을 그대로 두는 법을 모르는 존재구나...

계속되는 불길한 예고들은 결국 현실이 되었고, 천조국의 법률도 야생동물 파트에선 그닥 우수하지 않다는 걸(다른 나라들의 사정은 비슷하거나 더 나쁘겠지...) 보여주는 마지막 파트 굉장히 씁쓸하다. 반려동물은 분명히 아니지만, 동네의 공동 반려동물에 준하는 포지션인데다 허가받지 않은 계획 밀렵의 희생자였는데도 야생동물은 그저 야생동물일 뿐. 범인이 사실상 법정 출두만 했고 휴지조각 수준인 판결만 받고 끝났다는 것에 화가 나지만, 사람도 정의를 대접받기 힘든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인가. 그래도 로미오가 만들어준 동네 사람들 간의 우정은 남았고, 지역 센터에 로미오에 대한 전시 코너도 있는 모양이니 한 늑대가 남긴 유산이 꽤나 크다. 인간이 잠식한 면적이 너무 크다보니 어떤 종과 어떤 조우를 할지 알 수 없는 세상, 로미오가 안타깝지만 남의 나라 얘기라고 넘길 게 아니라 혹시라도 생활권에서 이런 만남이 생긴다면 어떨지 생각해야겠다. 비록 저자 말처럼, 법정에서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은 별로 존재감이 없'더라도...


"나는 아무도 깨우고 싶지 않아서 소리 죽여 울려고 애쓴다. 나를 위해 우는 것도 아니고, 그 검은 늑대를 위해 우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점점 공허해지는 세상을 표류하는 우리를 위해서다. 어떤 희망을 품어야 이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또 다른 면이 있다. 희미하게 명멸하는 불빛 같은, 어두는 하늘에서 고동치며 넘실대는 오로라 같은 다른 면이. 그 무엇도 로미오라는 기적을, 녀석과 함께 보낸 우리의 시간은 앗아가지 못한다. 우리가 짊어질 짐은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다."

이것은 어느 늑대 이야기다 - 마을로 찾아온 야생 늑대에 관한 7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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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가 짠해지는 험난한 시절의 광고들

광고라는 개념이 생긴지도 얼마 되지 않던 시절이니 이런저런 해프닝과 웃음을 기대하며 펼쳤는데 예상과 좀 다르다. 물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고, 사기나 과장 광고가 없던 시기는 없다는 사실도 재확인했지만...꿈을 직접 제공하던 공간인 경성 백화점 이야기와는 또 다른 광고 뒤 생활상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그 시절의 도덕적 엄격함이란 게 체감온도로 치면 지금의 100배는 될 것이고, 당장 본문에 나오는 각종 모던 걸들과 여배우들 까는 얘기만 봐도 머리가 아픈데 광고들은 그렇지 않으니 대체 그 잣대란 건 뭐였던가. 여성 나체 일러스트를 마구잡이로 광고에 넣고, 유흥업소, 포르노 서적, 성 기능 증진제와 성병 약을 아무렇지도 않게 광고하고 사람들이 구매하는 세상에서 카페 웨이트리스를 비판하는 논리는 평생 생각해도 모를 듯. 그 와중에 서비스료를 광고로 투명하게 공개하는 기생 권번조합 여성들의 상도덕에 에 박수. 그러나 바로 뒷 페이지가 추노 마냥 도망간 기생 잡는 현상금 광고라 밀려오는 안타까움이 두 배...

살찌는 약, 의친왕 마케팅, 총포상, 아편, 책 검열 등등 슬퍼지는 이야기들 가득하다. 배 가득 채우기도 힘들고, 지금은 고칠 수 있는 병들에 고통 받고, 파리 모기 때문에 목숨을 잃으면서 식민지인이란 서러움도 삼켜야 하는 시절. 광고 속 사람의 욕망에는 큰 변화가 없으나,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한들 지금 좋은 시절을 살고 있다는 데 감사해야겠다. 고난길을 버텨내셨던 서바이버인 조상님들께도...

모던 씨크 명랑 - 근대 광고로 읽는 조선인의 꿈과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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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시끌벅적 생활상

사실 남의 나라 역사니까 고대만 삼천 년인데도 부담 없이 즐기는 것이지, 시험이라도 친다면 입에 거품 물 이집트의 역사. 그 긴 기간 중에서 콕 집어 기원전 1400년 1년 간의 모습을 일상물 웹툰 보는 기분으로 신나게 감상했다.

아주 밥맛 없는 캐릭터로 설정된 투트모스 4세(선물 뭐 가져왔냐고 보채는 게 살아있는 신이라니 하이고...) 빼면, 농부부터 대신까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흐뭇하다. 술 원산지 위조나 양조장에서 술 슬쩍 훔쳐마시기 등(전혀 고대의 일이라 느껴지지 않는 단어들...)은 어디까지가 사료 근거인지는 알 수 없는데도 분명 건수가 많았으리란 확신이 솟구침. 의사 파트가 꽤 분량이 있는데도, 당시 의과 대학에서 뭘 가르쳤는지 설명이 별로 없는 것은 좀 아쉽다. 일단 이야기 속에 나오는 외과 시술, 대머리 치료(이때 만약 치료에 성공했으면, 이집트는 고대 문명보다 탈모 치료 종주국으로 더 유명했겠지. 그것도 나름 괜찮았을텐데...), 주문 외우기는 교과목에 있었으리라 추측하지만 나머지 과목들은 뭐였을까. 그나저나 맹수의 지방을 획득해서 머리에 바르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을텐데, 모발 획득을 위한 사람의 욕망이란 그토록 큰 것인가...

열심히 일하고, 욕하면서 세금 내고 부역도 하고, 축제 때는 열과 성을 다해 먹고 마시는 모습은 고대 이집트나 지금 세상이나 똑같으니, 사람의 기본적인 모습은 시공간과 관계없구나 재차 생각한 시간이었다. 다 읽고 나니 , 표지 아래 적힌 '내 평범한 하루도 역사가 될 수 있을까?'라는 글이 실감나면서 슬쩍 소름. 만의 하나라도 미래의 사람들이 나의 하루를 통해 2025년 일반인의 모습을 공부하리라 생각하면...노오오오오 어우 끔찍해! 제발 후대의 사람들이 참고하는 데이터는 나머지 인구 80억의 것이기를...

제국의 열두 달 - 고대 이집트에서 1년 살기
제국의 열두 달 - 고대 이집트에서 1년 살기
유행은 돌지만 사람 행동은 한결 같네유

백 년 전 백화점의 물품이나 유행이라는 게 당연히 지금과는 다른데, 카테고리와 선전 방식, 유행이 퍼져가는 모습, 그에 대한 반발 등등이 단어만 바꾸면 그냥 지금 얘기다. 평균적으로만 따지면야 백화점 드나들 형편이 안 될 사람들이 더 많았을 시절이지만, 일단 한 번 꽂히는 물건 생기면 다른 지출을 틀어막아서라도 그걸 사고야 마는 사람 심리도 그렇고. 온갖 유행, 특히 젊은이들의 패션에 대한 비평을 넘어선 막말들을 보면 웃긴데 피로하다. 니가 사줬냐...과시성 사치나, 자기 사정에 너무 안 맞는 소비를 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겠지. 그러나 지금보다 제약아 더 많았던 세상에서, 새로운 물건들을 접해보고 소소한 행복을 맛보았을 이들을 어찌 비난하리. 한편으론 이런 비난들에도 불구하고, 사고 싶은 거 사서 입고 먹고 인생의 즐거움을 찾았던 그이들의 강력한 멘탈(혹은 지름 욕구)에 입꼬리가 올라간다. 당시 의학 수준을 고려하면 쪼까 무서운 다리 지방 제거술 얘기도 있지만...시술 받으신 분들이 별로 없었기를 바랄 뿐이나, 인간 한 번 뭔가에 필사적이 되면 누가 무슨 말 해도 소용없으니 분명 누군가는 큰 낭패를 보았겠지.

지금 봐도 그럴듯한 광고 문구들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맛있게 먹는 것은 사치가 아닙니다. 건강의 열쇠입니다.', '충치가 되면 공부를 잘 못한다'(어머니들이 정말 사력을 다해 치약을 구매하셨을 듯...), '머리치장은 사치가 아니라 예의' 등등. 핸드백 파트의 김기림 작가 수필 인용에서 진짜 빵 터져서, 이거 원문 꼭 봐야 된다 다짐. 그리고 바로 다음 문단의, 소설가 이태준의 '핸드백보다 좋은 책을 든 분이 더 빛나보인다'는 말엔 참 묘한 기분이 든다. 손에 책 들고 있다가 들어본 소리는 '유난 떤다' 밖에 없는 입장에선, 저런 발상하는 사람도 있구나 생각할 뿐. 하긴, 나도 누가 손에 책 들고 있으면 '들고 다닐 정도니 겁내 재미있는 책일 것이다' 생각하면서 제목 훔쳐볼 생각만 하지 들고 있는 사람 얼굴 보지 않으니 이래저래 빛나는 모습이랑 거리 너무 멀다.

어쨌든 ●빡센 식민지 치하에서, 소화제를 먹어가면서 전통주와 서양주를 공평하게 많이 들이붓고, 쪼코레트도 씹고, 이도 열심히 닦으시면서 수많은 조상님들은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쓰셨더라. 흥미진진한 이야기들 뒤에 어떻게든 재미있게 살아야겠다는 욕구도 올라오니, 여러모로 읽어 뿌듯하다.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 백 년 전 「데파-트」 각 층별 물품 내력과 근대의 풍경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 백 년 전 「데파-트」 각 층별 물품 내력과 근대의 풍경
'쓸모 있는' 인생이라...

와이너 선생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멋진 책을 써서 수많은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가들의 글에서 자신을 의심하거나 우울해한다는 대목을 가끔 접하게 될 때는 눈 앞이 깜깜하다. 대단한 사람들도 이런 생각하는데 나는...자기 비하하면서 시간 보내봤자 책 살 돈 한 푼 생기지 않으니, 어떻게든 생각을 돌려보지만...벤자민 프랭클린의 인생을 와이너 선생과 들여다보고, 선생의 고민을 같이 생각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즐거우면서도 굉장히 괴로웠다.

이 여정에서 선생은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지만, 난 잘 모르겠다. 무서운 일도 일어날지언정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고, 좋은 일들이 존재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쓸모'다. 프랭클린이 말하는 '실용적인 쓸모'를 살면서 성취해본 적이 없고, 남은 인생에서 그런 일이 있을지도 자신할 수가 없으니까.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마음이라도 넓어 무재칠시하고 사는 것도 아니니 프랭클린의 눈으로 보면 이게 사람인가 싶겠지. 망할. 손발 다 묶인 기분이다. '내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바쁜 상황'은 노력만으로 만날 수 없잖은가. 설상가상, 벤자민의 독서 스타일을 평가하는 대목에선 벼락맞은 기분이다. 나는 독서를 멈춰야 할 때를 아는가? 책으로 도피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책을 안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런 두려움을 털어버리자는 의도가 책 속에 있는데도, 방향이 반대가 되니 몸에 한기 든다. 어쨌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뭐라도 읽으면서 마음 가라앉히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좋은 말들도 많이 보았으니, 어떻게든 힘이 나는 부분만 기억하자.


"우리는 상처의 총합이 아니다. 모든 오자는 교정할 수 있다. 그저 실력 있는 인쇄공만 만나면 된다. 아니, 직접 수정해서 인쇄하면 된다. 저자는 실수를 바로 잡아 신판을 낸다. 결국 우리는 자기 삶의 저자이며 우리 모두가 1인 출판사다."

프랭클린 익스프레스 - 길고 쓸모 있는 인생의 비밀을 찾아 떠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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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살짜쿵 그리스 유적 구경

진지하고 차분한 안내서인데, 중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보통 학자분들이 이런 책 쓰시면 애정을 못 숨기고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고~' 가 되는데, '보존 상태 별로', '따로 찾아가기엔 빈약', '굳이 안 들어가도 됨' 이라는, 뭔가 인솔자의 피로가 느껴지는 문장이 아무렇지 않게 나옴. 큰 유적지 아니면 성에 차지 않는 고객들의 갖은 클레임들을 거쳐 나온 말들이라 추측되니, 웃으면 안 된다 생각은 하는데 참...헬레니즘 이후 유적은 본토에서도 큰 대접하지 않는다는 것도 괜히 웃긴다. 깊은 역사 가지면 이런 문제도 있구만.

도판 수가 그렇게 많지 않은데도, 소개되는 조각상들 수준 끝내준다. 수탈당해서 제국에서 전시하는 작품들은 남의 나라 교과서에도 실리는데, 비슷하게 혹은 더 대단한 것들의 본토 전시가 덜 유명한 현실에 갑자기 입맛 뚝. 외쿡인 생각도 이러니 그리스 사람들은 속이 속이 아닐 듯. 게다가 남의 나라 군대들이 와서 전쟁하는 통에 박살난 신전들까지...그러고도 이 정도로 남아있다는 게 그리스의 빠와인가. 카찬차키스에 관한 부분이나, 지금도 열리는 운동 경기들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유물 유적 중심이라 먹는 얘기는 없다는 게 살짝 아쉬우나, 티비고 유튜브고 외국 맛집 가는 영상들이 가득한 세상이니 정말 갈 일 있을 때 검색하면 그만이겠지.

그리스 여행을 갈 때 분명 도움이 되는 내용을 알고 나니 일정이 꽤 고민된다.(언제 갈 지도 모르는데 사서 걱정 뭐냐고...) 거의 모든 동네에 어느 정도의 유적들이 있고, 작은 나라도 아니니 바쁘게 버스 타고 며칠 안에 동네들 찍기도 무리가 있고. 다 포기하고 패키지로 가거나, 한 달 살기로 가서 하루 한 동네 천천히 마실 다니거나 둘 중 하나인데...뭐, 고민은 그때 가서 하고, 일단은 소개된 지식들을 쪼금이라도 애써서 기억하자. 언젠가는 갈 테니까!(제발...)

그랜드투어 그리스 : 고전학자와 함께 둘러보는 신화와 역사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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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극단 '족연'이 돌아옵니다~
[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모두를 위한 그림책 🎨
[도서 증정] 《조선 궁궐 일본 요괴》읽고 책 속에 수록되지 않은 그림 함께 감상하기![그믐밤] 27. 2025년은 그림책의 해, 그림책 추천하고 이야기해요. [책증정]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는 그림책 세계. 에세이 『다정하게, 토닥토닥』 편집자와함께"이동" 이사 와타나베 / 글없는 그림책, 혼자읽기 시작합니다. (참여가능)
각양각색! 앤솔로지의 매력!
[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책나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시간을 걷는 도시 《소설 목포》 함께 읽어요. [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그믐앤솔러지클럽] 2. [책증정] 6인 6색 신개념 고전 호러 『귀신새 우는 소리』
사랑은 증명할 수 없지만, 증명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다
[밀리의 서재로 📙 읽기] 29. 구의 증명최진영 작가의 <단 한 사람> 읽기[부국모독서모임] 최진영의<구의 증명>, 폴 블룸의<최선의 고통>을 읽고 책대화 해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레슨!
[도서 증정] 『안정감 수업』 함께 읽으며 마음을 나눠요!🥰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될 가능성을 믿은 인류의 역사, 《자기계발 수업》 온라인 독서모임
한국의 마키아벨리, 그의 서평 모음!
AI의 역사한국의 미래릴케의 로댕최소한의 지리도둑 신부 1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일본의 탐미주의 작품들
[그믐클래식 2025] 10월, 금각사 [북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년』 함께 읽어요!
공룡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로!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7. <경이로운 생존자들>[밀리의 서재로 📙 읽기] 10. 공룡의 이동경로💀《화석맨》 가제본 함께 읽기
추석 동안 읽을 만한 일본 추미스!
[책 증정] 호러✖️미스터리 <디스펠> 본격미스터리 작가 김영민과 함께 읽기 [박소해의 장르살롱] 7. 가을비 이야기 [박소해의 장르살롱] 10. 7인 1역 [박소해의 장르살롱] 2. 너의 퀴즈 [박소해의 장르살롱] 21. 모든 예측은 무의미하다! <엘리펀트 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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