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98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
전체보기(455)
2025년 만난 당혹스런 이상

제목만 보고 집었다가 생각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3부작의 마지막 권이라는 것을 모르고 집어들었기도 하고, 화폐 제도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나 반정체성주의를 2025년 만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사회주의든 반자본이든 당연히 연구가 계속 이루어지는 분야니까 잘 아시는 분들이 보면 초짜의 당황에 헛웃음 지으실 수도 있겠지. 그러나 자본론은 출간된 지 백 년이 넘은 고전이고 이 책은 신간이니, '지금' 이런 꿈을 꾼다는 것에 대해 뭐라고 생각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게다가, 저자 본인이 희망은 수동적인 '희망' 이 아니라 '희망에 대해 생각하기'가 필요하다고 계속 말해서 읽는 사람 끙끙대게 해놓고, 마지막에 '답은 없고 나는 모름' 이러면 아오....! 된소리를 목 안에서 삭히며 생각해보니 자본론도 화폐가 없을 때 경제를 굴리는 방법 얘기는 없었던 것 같으니 똑같은가. 아닌가, 읽은지 너무 오래 되어서 내가 기억을 다시 쓰고 있는 건가. 그렇다고 지금 자본론을 다시 읽고 확인할 기력과 의욕은 없고요...

드높은 이상을 가지고 등장한 비트코인조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테크 수단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이 현실에, 대안 없는 '나빠요'가 정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인가? 화폐 없는 세상보다 환경오염이 없어지는 세상이 더 빨리 올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너무 꼬인 탓일까. 당장 예시로 든 사빠띠스타나 로자바도 현재 경제 면이든 사회 분위기 면이든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개개인이 그냥 마음을 여는 게 아니라 집단으로 반정체성을 노래하는 세상이 올 거라는 생각은 아예 안 든다. 인간처럼 정체성에 목을 매는 동물이 그걸 포기할 수 있을까? 국가나 인종을 초월하는 것도 힘든데, 성 정체성이나 직업 등 수많은 요소들을 다 버린다라...좋은 정체성은 없다고 말하지만, 애초에 정체성이 좋고 나쁘고로 평가할 수 있는 그런 것인가? 모르겠다. 한없이 갑갑해지고 질문만 나오는 것은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일까. 이런 문제들은 분명 생각해볼 가치들이 있지만, 하다못해 작은 실마리라도 주어져야지, 화폐 경제가 붕괴되면서 극단적으로 나빠지는 사례만 넘쳐나는 가운데 '알아서 생각하라'는 말은 어딘가 가혹하게 느껴진다. 나중에라도 앞의 두 권을 읽으면, 약간이라도 정리된 답을 생각할 수 있을까.


+ 본편 다 끝나고 약간 가라앉은 마음으로 옮긴이 후기를 읽다가, 2002년도의 붉은악마가 '세계인과의 연대'라는 얘기에 놀라서 눈 돌아갈 뻔. 짧은 시간이지만 단군 이래 한반도를 증오하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제일 많았던 시기라고 알고 있는데, 축구 게시물만 들여다봐서 내가 왜곡된 현실관을 갖고 있던 것인가? 모르겠다 모르겠어...

폭풍 다음에 불 - 희망 없는 시대의 희망
폭풍 다음에 불 - 희망 없는 시대의 희망
의외의 이야기가 가득한 고서 너머 풍경

대단히 눈에 띄는 제본과 더불어, 추리소설 시리즈를 방불케 하는 제목에 혹해서 집었다. 쉽게 쓰인 고서의 이모저모에 추리소설에 버금가는 재미가 있어, 멋진 선택이었다고 혼자 뿌듯하다.

고서라고 하면 박물관이나 연구기관만 떠올렸는데, 역시 세상은 넓고 오덕이 없는 분야는 없다는 것부터, 학술서적을 넘어 공문서, 일기, 하다못해 찢겨 나간 한 페이지까지 다루어지는 것이 놀랍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사이트에 물건 뜨면 구매하려는 쪽이 실록이나 역대인물정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내용을 검증하는 것이 묘하게 웃음이 난다. 모든 문화재 혹은 골동품의 조사나 보존에 최신 기술이 이용되는 건 당연하지만, 극단적인 아날로그 서적들이 세상을 돌기 위해 디지털 기술이 필수가 되다니...

고서 자체의 내용들도 쓴맛 단맛 다양하다. 당장 오프닝 에피소드는 저자분 말씀대로 "가슴이 텁텁"하다. 아무리 실시간 뉴스 피드가 없던 시대라도,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인물들이 옆 나라 소식도 몰랐을 리가 없는데 그런 내용이 동인 시집에 한 구절도 없다니. 그리고 현실 인식이나 돈 버는 감각은 제로인데 책 제본 기술만 일류인 건 대체 뭔가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른 진기한 내용들이 재미있어서 텁텁함이 상쇄되고도 남는다. 다른 의미로 무서워지는 성적표(만의 하나라도 내 성적표가 후대에 고서상 사이트에 올라온다고 생각하면...어우 소름...), 의외의 사실들을 알려주는 족보들과 이혼 문서, 풍류인지 그냥 엉덩이가 무거운 걸 포장한 건지 모르겠는 와유에 국뽕에 합격 기원용 개명에...개인적으로 제일 놀란 것은 퇴계선생 파트. 언해 작업도 그렇지만, 교육용 동요를 만든 사실이야말로 교과서에 실려 마땅한 업적이 아닌가? 교과서나 지갑에서 만날 때마다 감흥 제로였던 자신을 급반성. 선생님 몰라뵈어 죄송했네유 흑.

  앞으로도 고서는 박물관에서나 접할 것 같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이 숨어있다 생각하니 이 책의 속편이 간절히 읽고 싶다. 1판이 2019년이면 슬슬 보물탐뎡 2를 내실 때가 된 것 아닌가요 작가님. 개정증보판이라도 제발...

보물탐뎡 : 어느 고서수집가의 비밀노트
보물탐뎡 : 어느 고서수집가의 비밀노트
기적에 가까운 한 어머니의 기록

읽은 이를 압도하는 내용에,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 생각이 정리되질 않는다. 미리암이 약 4년간 해낸 일들이 보면서도 믿겨지지 않는다. 부당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기고, 시신을 거두는 것만으로 남겨진 가족들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미리암처럼 움직인다는 건 쉬운 일도 아니고, 솔직히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슬픔에 압도당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유족들이나, 침묵 외엔 남은 가족들을 지킬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묘지 관리인의 선택도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말이 쉽지, 범인의 추적이라는 건 인맥도 기술도 없는 일반인이 도전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니 미리암이 어떻게 이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는지, 투지를 잃지 않을 수 있었는지 더더욱 모르겠다. 

  감정을 자극하는 문장들이 없는데도 괜히 눈물이 난다. 본인에게는 눈물 한 방울 흘릴 시간도 허용하지 않고 범인들을 쫓고, 법률을 공부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심지어는 범인의 가족들까지 도울 때는 '이렇게 많은 일을 하면서, 왜 본인에게는 한 치의 여유를 주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죽을만큼 아플텐데 대체 언제 울려고 이렇게 버티고 또 버틴 것인가. 범인들을 다 잡을 때까지 눌러뒀던 것이겠지만, 결국 그런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마음이 괴롭다.

살인 사건의 약 98퍼센트가 미결이라는 공포의 인용은 2019년 기준이지만, 1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 문제들이 극적으로 개선되었으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결과를 확인하는 게 무서워서 검색도 포기했다. 그래도 미리암과 파이사, 투서를 보냈던 익명의 주민 같은 사람들의 행동이 계속 변화를 만드는 중이기를, 평범한 사람들이 이유 따윈 없이 끌려가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느끼지 않고 출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맞서 싸운다고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두려움이란 말 따위 - 딸을 빼앗긴 엄마의 마약 카르텔 추적기
추리를 빙자한 눈물의 임종기 성장담

핍 시리즈에서 은근한 무자비를 보여준 작가의 작품이니 예상은 했지만...설정부터 이미 자비라곤 없고, '한 줄기 희망이 남은' 결말이 아니라 '희망할 수 있는 건 이거 하나'라 기분을 업시킬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고 읽은 걸 후회하는 건 아니고, 다음 작품도 필독 예정!

초단기 시한부 설정 빼도 젯을 짓누르는 문제 너무 많아서 이렇게 가여울 수가 없다. 그나마 아버지랑 빌리가 있어 다행이지, 뭔 동네가 이런 사람들로 꽉 차 있대. 발굴되는 문제들이 점입가경이라, 편지 쓰는 장면 전후로는 보다가 홧병나는 줄 알았음. 이제 다 끝난 줄 알았을 때, 지옥에 떨어져도 할 말 없는 인물들이 양심 있는 마냥 대사 치는 데선 할 말을 잃었다. 이왕 사필귀정이면 읽는 사람 속 좀 시원하게 해주시지 그랬어요 작가님. 하긴, 대부분의 세상사가 그렇게 굴러가지 않고, 홀리 잭슨은 리 차일드가 아니니 어쩔 수 없나...

수사 과정 전체가 흥미롭지만,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젯이 성장하는 모습에 빨려 들어간다. 급 해탈하지도 않고 평소처럼 화도 내고, 비꼬기도 하고 실망도 하지만, 멈추거나 상황을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고, 마지막엔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하게 되는 여정이 참 서럽고 눈부시다. 빌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완전히 넉다운. 정신적인 성장 기간은 사고 기능이나 호흡이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라는, 당연하지만 자주 잊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본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고, 더 나아진 자신에게 만족하며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자기계발서에서 봤으면 바로 포기하고 싶겠지. 하지만 만들어진 이야기라도, 완벽하지 않은 청년의 변화를 보니 조금이라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결과가 1미터가 아니고 1센티미터가 될지라도, 전진은 가능하다고.

라스트 신의 모래 씹는 기분 때문에 감동이 좀 사그라들긴 했으나, 젯이 전하고자 했던 것들은 확실히 빌리의 안에 남아있었으니 만족한다. 문제는 이 메세지를 내 안에도 오래 새겨 둘 수 있는가인데 과연...


"나는 엄마가 평생 다른 사람을 원망하며 살았다고 생각해요. 삶이 힘들거나 불공평할 때면 다른 사람에게서 책임을 돌렸죠. 기분은 나아졌을 거예요. 나도 시간이 충분하다고, '나중에' 하면 된다고 말할 때 기분이 나아졌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건 그런 믿음일 때도 있더라고요."

아직은 죽을 수 없다
아직은 죽을 수 없다
1권은 1권이라고 제발 표시 좀...흑...

분명 재미있게 읽었지만, 덮고 나니 속이 갑갑하다. 흑막 얘기 나오는 타이밍에 "잉?"하다가, 아무리 봐도 마지막일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시리즈물이라고 깨닫기는 했지만...역시 이런 얘기는 한 방에 보고 싶다고! 개인 취향 문제지만, 숨겨진 흑막이 더 있다던가 하는 소재는 좀 기다릴 만하다. 그러나 이런 괴이하고 궁금한 장면을 투척해놓고, 중간 에피소드로 마무리하다니. 성질 급한 독자는 그저 울지요.

한편으로 미오의 성격이 소화가 잘 안 된다. 감성과 무모함이 설정이니 어쩔 수 없지만, 본인이 생각했던 추리를 류자키한테 떠들면서 펄펄 뛸 때는 어처구니가 없음. 그 추리가 다 맞으면, 대사 끝나는 순간 메스로 썰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산에 묻히는 신세 되었을텐데...속편에서는 성장해서 이런 장면들 안 보여줬으면 하지만, 이성은 류자키 담당이니 그런 기대는 버려야겠지.

간호조무사 이야기는 거의 접한 적이 없다보니, 소설로나마 짧게 보는 이 직업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기도 한다. 힘들기는 간호사 못지않고, 소명의식도 필요한데 재수 없으면 치료 능력이 없다고 무시를 당하니...애초에 의료랑 밀착 케어는 각각 다른 전문 분야고, 2025년에 아직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현장에 있을까. 그러나 현역 의사가 쓴 작품이란 걸 생각하면 이거보다 더할 수도 있겠다 싶어 읽는 사람까지 풀이 죽는다. 걸어갈 때마다 존경의 시선을 받아도 될 만한 직업인데도 참...어쨌든 재미있었고, 수술장면 때문에 궁금 지수는 이미 MAX이니 속편도 필독해야지!

이웃집 너스에이드
이웃집 너스에이드
막판인지 알려면 뭐라도 찔러볼 것

이 책이 신간이었을 때 '나중에 봐야지'하고 지나갔다가 이제야 다시 마주했다. 출판 날짜 보고 흘러간 세월을 확인하니 소오오름. 게다가, 그 사이 뭔 일 있었으면 못 읽었을 뻔 했잖아! 오싹하다 오싹해.

좌절한 사람이 희망을 찾아가는 성인 동화의 공식을 어느 정도 따라가지만, 뒤로 갈수록 예상을 벗어나는 부분들이 있어서 살짝 감탄했다. 실비의 무모한 도전에 큭큭대기도 하고,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대사들을 보며 한숨도 짓고...실비와 베로니카의 '없으면 안 되는데 만나도 힘든' 관계도 소싯적엔 알지 못한 것들이지, 크흐...병원에서의 대화로 거듭나는 중년의 우정에 마음 속 좋아요 백 연타!

이야기가 따숩게 끝나서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비의 정신을 뒤흔든 노숙자 파트의 여운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못나고 더럽고 슬프고 지독한' 고독의 냄새라...스스로의 모습을 생각하니 룰루랄라 책 덮기가 어렵다. 그래도 시간이 주어졌을 때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메세지에는 공감하니, 어떻게든 멋진 책들을 한 글자라도 더 읽을 수 있도록 용을 써야지. 마지막에 내 손을 잡아주리라 믿을 수 있는 이를 만날 수 없다 해도, 지금 읽는 기쁨을 누린다는 건 충분히 멋진 일이리라.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규칙 너머의 판단을 위한 규칙의 변천사

이게 21세기 단어계의 쓰리 테너 콘서트인가 싶은 제목에 일단 놀란다. 게다가 누가 툭 치면서 설명해보라고 하면 기침부터 나올 단어들이니 깨우침이 많이 필요한 독자가 안 읽을 도리가 없다. 생각과 내용이 좀 다르지만, 개념의 변화도 그렇고 우리가 대체 무엇을 어떻게 따져야 하는지 생각할 게 많았으니 굿. 초반에 제시된 의미를 생각하면 규칙과 패러다임의 관계 설명이 모호하게 느껴지긴 하는데...워낙 의미의 범위가 넓은 단어이기도 하고, 그냥 내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으니 넘어가자.

초창기 인간 컴퓨터나, 철자법을 둘러싼 소동 이야기는 꽤 재미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밝은 마음으로 읽기 어렵다."실패한 규칙에 대한 대응책이 왜 기존의 규칙을 반복하고 그에 더해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이어야 할까?" 몇 세기 이전의 파리에 던져진 질문이 왜 이렇게 가깝고 쓰리게 느껴지나 모르겠다. 세상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바뀌어가고 있는데 어떤 부분은 정말 변하지를 않고...그러니까 생각을 열심히 하라고 이런 책도 나오는 것인데, 알고리즘과 규칙을 조금 더 이해한다고 해서 제시된 여러 질문들에 답하기가 수월해지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당장 눈 앞의 사회 문제를 보면서, '음, 열심히 생각해서 판단 능력을 갈고 닦을 기회로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폴리아나급 마인드 가진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기본 유리멘탈인 탓에 책 마지막 문장이 마치 '포기해 그럼 편해'처럼 느껴지지만, 역자 후기가 있어 책상에 엎어져 '이제 난 모르겠소' 타령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들...현재 만들어지는 규칙들이 유토피아의 꿈을 포함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아닌가? 사람들의 평균 희망 지수는 더 높은가?), 가지치기와 개선 작업은 확실히 진행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불편한 고민의 시간들이 분명 의미가 있고, 시간이 걸려도 인류는 제대로 길을 만들어 갈 거라고.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 - 규칙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 - 규칙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깨알 재미 가득한 서양화 기초 전과

미술 기초 지식 책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재미를 깔고 가는데다, 제목까지 근사하니 절로 손이 간다. 왕초보 혹은 일자무식이 아니라 여행자라는 매우 친절하고 낭만적인 표현에 뿅. DK표 도감들과 구성이 비슷해서 보기도 쉽다. 이미 유명세가 엄청난 그림들도 있지만, 유명한 화가 작품인데도 개인 소장이거나 많이 언급되지 않는 미술관에 있는 그림들이 실려 있으니 엄청 감사하면서 보게 됨.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구경하리.

미술관 구조나 복원 과정, 비슷한 주제를 다루거나 동시대 작품인데도 꽤 대조되는 작품들의 비교 코너도 꽤 재미있다. 중간중간 너무나도 짧게 언급되는 타 대륙 미술사는 읽으면서 마음이 좀 복잡해지긴 하지만. 무슨 잊었던 양심 고백도 아니고 이 분량이면 뭐하러 넣냐고 궁시렁대다가, 거의 막판에 참 쪼그맣게 실린 뉴왈라 동굴 벽화에 동공이 강제확장되고 보니(이런 장렬한 임팩트의 벽화가 교과서에 없다는 것도 충격) 역시 한마디라도 있는 게 나은가 생각도 든다. 내한을 몇 번이나 하신 셰리 삼바 선생님을 이제야 알아서 너무 안타깝고(한 번만 더, 플리즈...), 여튼 이런저런 생각하며 즐겁게 그림들을 감상했다. 이런 책이면 분명 몇 년에 한 번 뭘 추가해서 나올 것 같으니, 종종 검색해서 업데이트를 놓치지 말아야지. 음음.

미술관 여행자를 위한 도슨트 북 - 모든 걸작에는 다 계획이 있다
미술관 여행자를 위한 도슨트 북 - 모든 걸작에는 다 계획이 있다
깊은 땅속에서 던져지는 물음들

분명 과학책이고 주제가 사람이 아닌데도, 지상의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돌아보게 만드는 희한한(좋은 의미로) 책이다. 당장 초장의 '지하에 대한 혐오' 설명을 보며,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개념을 처음 점검해본다. 닿지 않는 하늘에는 환상이 있고, 생명이 자라는 땅 아래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미묘. 이어지는 우주와 우드 와이드 웹을 보며 체질도 아닌 상념에 잠기다, 몸이 끼일 정도로 좁고 위험한 통로에 거리낌 없이 도전하는 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놀라면서 한숨 짓는다. 각종 사고 설명을 보니 왕년의 생매장 호러물들이 주던 공포가 스물스물 올라옴. 역자분이 스릴러물 같다고 쓰셨는데 정말 공감한다...

우주를 알기 위해 지하에 내려가야 하는 상황, 경이로운 고대 벽화와 너무나 대조되는 포이베 대학살, 안 녹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얼음 밑에 파묻은 폐기물들의 컴백 feat 지구 온난화 등, 이미 놀라운 언더랜드의 풍경과 오랫동안 인류가 벌여 놓은 변화들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마냥 감탄할 수도 울적해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 '우리는 좋은 조상인가'라는 거듭된 질문이 겹치니 혼란만 몰아침. 이 마음이 친절하게 언급된 '두꺼운 언어'의 현상인지, 단순히 자신의 어휘력 부족의 문제인지 혼자서는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이해를 포기하는 것도 옵션이 될 수 없으니,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에서 인간이 도망갈 방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손들이 플라스틱괴의 지층을 연구하며 과연 지금의 인류를 어떤 조상이라 생각할지, 가라앉은 마음으로 우울하게 아름다운 책을 덮는다.


"인류세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 심지어 인류세에 살면서 말하는 것이 어렵다. 아마도 인류세는 상실의 시대로 가장 잘 표현될 것이다. 종의 상실, 장소의 상실, 사람의 상실.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해 슬픔의 언어, 그리고 더욱더 찾기 어려운 희망의 언어를 찾는다."

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사레 들릴 뻔한 반전 결말 트릴로지

그믐에서 책 소식 보았을 때부터 흥미는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연말에 와서야 읽게 되었다. 시리즈물 몰아서 보는 오랜만의 이 짜릿함이여. 1작품 당 무려 3권 분할 출판은...편하게 들고 다니라는 출판사의 배려라고 생각하고 싶다. 1권만 해도 '조금 신선한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3권 마지막 장 넘기고 나니 너무나 놀라운 거. '반전'이란 게 이제는 거의 필수다보니 웬만해서는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데, 세월 지나 '이런 결말은 그땐 새로웠지만 지금 흔해유' 분위기가 될 때까지는 꽤 오래 기억하게 될 듯.

두 주인공과 모든 팀원들이 조금씩 계속 성장하는 모습도 꽤 흐뭇하다. 1권에서는 시작하자마자 끝날 때까지 비호감도 MAX에, 마지막에 모든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여전히 '꽤' 별로였던 빈센트마저도 그 몸부림이 꽤나 애처롭고...반대로 미나에게는 시작부터 끌려들어감. 이쪽도 종종 읽는 사람 복장 터지게 하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지만, 필요할 때는 말 그대로 죽을 힘을 다 쓰는 모습에 주먹 불끈 쥐고 응원하게 됨. 자신이 다른 모습이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도저히 그런 모습으로 변할 수 없어 슬퍼하는 모습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빈센트에게 정이 떨어지는 만큼 미나에게 더 정이 붙는 면도 분명 있다. 둘 사이가 진전될 때는 마치 부모라도 된 마냥 "왜 하필 이 인간이냐! 아냐, 그래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이에게 가는 게 행복이제..." 하면서 궁시렁대기도 하고...

짤막짤막 이어지지만 꽤 재미있는 조연들의 생활상도 매우 취향이었다. 엄청나게 편파적이고 개인적인 호감도 랭킹에서, 미나와 공동 1위인 크리스테르에게 좋아요 100개. 3권 말에 얘기 끝났다고 작가분들이 말뚝을 박아놓았으니 어쩔 수 없지만, 당신이 주인공인 외전이 있었으면 참 좋을텐데...주인공들끼리 웃는 장면은 있지만, 보는 이가 깔깔 웃을 장면은 거의 없다보니 크리스테르가 해리 보슈 오덕 레벨 피로할 때가 유난히 흐뭇하기도 했다. 배는 나오고 필드워크도 안 좋아하며 위스키도 못 마시지만, 수사 결과와 형사 정신만큼은 스웨디시 보슈!

이어지는 이야기가 더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결말을 생각하면 쫘라락 이어보길 잘 했다 느껴지는 3부작이었다. 미나와의 인연은 끝났지만, 라크베리 선생께서 또 새로운 만남을 이어주시길...

미라지 1
미라지 1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도서 증정] <문제적 여성들의 북클럽> 번역가와 함께 읽기잃어버린 나와 내 로맨스의 복원🛠️『사랑도 복원이 될까요?』함께 읽기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모임] 간편 독서 모임 만들기 매뉴얼 (출판사 용)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그믐에 처음 오셨나요?[메뉴]를 알려드릴게요. [그믐레터]로 그믐 소식 받으세요
송승환 시인과 함께 시를 읽습니다
[문학실험실/신간] 송승환 시집『파』(문학실험실, 2026) 출간 이벤트. 시집 완독회!송승환 시인. 문학평론가와 함께 보들레르의 『악의 꽃』 읽기.황현산 선생님의 <밤이 선생이다> 읽기 모임보들레르 산문 시집 <파리의 우울> 읽기 1
새벽엔 느낌 좋은 소설로 하루 시작해요
[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느낌 좋은 소설 읽기] 2. 오버스토리
버지니아 울프의 다섯 가지 빛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그믐연뮤클럽] 7. 시대와 성별을 뛰어넘은 진정한 성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아티초크/책증정]버지니아 울프의 가장 도발적인 에세이집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4월 16일, 체호프를 낭독합니다
[그믐밤] 46. 달밤에 낭독, 체호프 4탄 <벚꽃 동산>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그믐밤] 43. 달밤에 낭독, 체호프 2탄 <세 자매>[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
싱글챌린지로 읽었어요
아니 에르노-세월 혼자 읽기 챌린지숨결이 바람 될 때MT 법학 싱글 챌린지밀크맨 독파하기
스토리 탐험단이 시즌 2로 돌아왔어요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10번째 여정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스토리 탐험단 9번째 여정 <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스토리 탐험단 8번째 여정 <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
유디테의 자본주의 알아가기
지긋지긋한 자본주의왔다네 정말로 자본주의의종말
제발디언들 여기 주목! 제발트 같이 읽어요.
[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7) [제발트 읽기] 『토성의 고리』 같이 읽어요(6) [제발트 읽기] 『전원에서 머문 날들』 같이 읽어요[제발디언 참가자 모집] 이민자들부터 읽어 봅시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동구권 SF 읽어보신 적 있나요?
[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9.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8.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그믐의 흑백요리사, 김경순
브런치와 디저트 제대로 만들어보기ㅡ샌드위치와 수프디저트와 브런치 제대로 만들어보기솥밥 제대로 만들어보기
혼자 읽어서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
웰다잉 오디세이 1분기에 이 책들을 읽었어요
[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2. 죽음을 인터뷰하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독서모임에도 요령이 있나요?
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밤] 7. 북클럽 사용설명서 @시홍서가
모집중밤하늘
내 블로그
내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