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모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표지부터 뭔지는 모르지만 멋있고, 세렐렘이란 단어를 검색하니 romantic love란다. 여기서 뒷표지까지 꼼꼼히 봤으면 '그래, 안 그래도 마음이 메말랐으니 수분 공급해야지'라는 한참 빗나간 생각을 안 했을텐데.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이 어리석음을 과연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아...
존재에 대한 관념적 소설을 읽을 때는, 기본적으로 작가가 원하던 것들을 내가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 독자가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겠지. 환각 속에서 주인공이 생각하는 주제들 하나하나가, 상당히 깊어서 이해의 자신감은 좀 떨어진다. 그래도 '기쁨은 없는데 포기는 못하겠는 욕망' 상태, 감정을 잃은 듯이 이야기하다 갑자기 밀려오는 격정에는 이상하고 불편한 공감을 느낀다. 약기운 속에서 과거를 현재처럼 느끼고 자기 합리화하며 편안해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생각에 괴로워 허우적대다 마치 단말마처럼 던지는 "정말로 당신을 사랑해"라는 말은 왜 이리 우울한가...
검색하면 저자는 약물 사용자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중간중간 환각 속에서 시공간 인식을 잃어버릴 때나 연인의 불안감 가득한 대사는 묘하게 리얼해서 오싹하다. 특히 반복되면서 점점 고조되는 발코니 드립. 막판에는 '틀렸어 이건 막을 수 없어...'하면서 이쪽이 먼저 체념할 정도니, 문학의 전달과 체험 기능에 오랜만에 감탄. 정말로 이해했다고 말하려면 아마 백 번은 읽어야 하는 그런 작품이지만, 시간은 없고 다음 책들이 기다리니 이 '사랑'과의 인연은 여기까지.
"거짓, 죄에 나약하고, 죽음이 예정된. 이것은 이미 나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미 삶이 아니다. 알 수 없는 나의 상징들을 다른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상징들로 묶어주는 관계가 삶이었다."


파리 1919를 먼저 보고 이 책을 읽었는데, 아마 이 책부터 읽었다면 감히 파리 1919를 집어들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 같다. 대단한 책들이 지식의 기쁨과 괴로움을 묶음세트로 주는 건 익숙한 일이지만, 뉴스 헤드라인만 봐도 노이로제가 올 것 같은 지금, 이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제대로 절망했다. 백 년 전과 지금은 모든 것이 확연히 다른데도, 너무나도 현재와 유사한 장면들이 많아서 소름 끼치다 못해 몸이 굳는다. 정부 기관 내 책임자들끼리의 견제와 엇박자, 정세 오판과 공사 대혼동, 과도한 자신감 혹은 어이없는 우유부단, 선동하는 지도자와 휩쓸리며 목소리만 커지는 여론의 지옥 같은 상호 피드백, 선 긋기와 차별 조장,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우리는 피해자'라고 포장하려는 뻔뻔함, 테러 집단이 형성되는 환경, 그래도 평화를 유지하려고 어떻게든 매달리는 사람들....읽으면서 혼자 감정기복 쇼하는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 정도로 핏기 빠지는 기분 맛본 적이 있었는가 모르겠다. 인류는 정말 변하지 않는 것인가? 우리는 결국 이 코스를 그대로 밟고, 지구 온도가 올라가기 전에 자멸할 것인가?
민망하게도 독서를 지적 노동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별로 없는 독자다 보니 종종 잊지만, 어쨌든 역사책은 과거를 돌아보며 교훈을 얻고 앞으로 갈 길을 모색하는 도구가 아닌가. 당장 맥밀런 선생님도 읽고 방에서 울라고 이런 책 쓰신 거 아니지. 그러나 교훈을 뽑아내기 전 떨쳐내야 할 무력감이 한계치를 초과하는데다, 이 책을 진짜 읽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이 책에 전혀 관심도 없을 거란 생각이 우울감을 더 악화시킨다. 말 그대로 뻗어 있다가 챗지피티에게 하소연까지 했지만 아직도 속이 무겁다. 결국 독서는 개인적인 즐거움이고, 이 책이 어떤 주제로든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면 좌절하지 말고 그걸 의미로 삼을 수밖에 없겠지.... "역사와 현재에는 깊이 간직한 전제나 이론에 맞지 않는 증거들을 간과하고, 최소화하고, 부정하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에 대한 수많은 증거가 넘쳐난다."라는 말에 낙담하지 말고, "전쟁 돌입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맞설 용기가 부족했다. 선택할 기회는 늘 있는 법이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고, 자신 없이 되뇌일 뿐이다.


어차피 읽을 거면서, 괜히 읽기 전에 작가 이름 보고 고민한다. 마지막에 안도하는 한 순간을 위해, 마음을 꼬집고 비틀고 쿡쿡 찌르는 과 정을 감수할 것인가...으으. 그러나 계속 궁금해하며 애태우면 나만 손해이니, 읽어야지 어쩌겠는가.
권두의 무차별 살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 쉽지 않으리라 각오는 했지만, 그렇다고 챕터 1부터 고춧가루를 이렇게 된통 뿌릴 줄은 몰라서 질식할 뻔. 겨우 몇 페이지 숨 돌리자마자 이건 뭔 시시리바의 집인가 머리가 띵해진다. 그나마 다행인건 죽을맛 그래프가 중반부터 좀 꺾인다는 거. 굴곡 상한선이 더 상승하지 않은 것만 해도 '선생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다 읽고 나서 생각하니 이 그림 대체 무엇인고. 나 지금 조교 당하고 있는 건가? 선생님 그런 건가요?) 마지막 챕터도 살벌한 반전은 없었고, 설마 설명 안 해주는 건가 사람 초조하게 했던 부분도 무사히 나오니 만족. 얼어붙은 손을 따뜻한 물에 담글 때의 안도감이 온몸에 밀려온다.
정말 이런 이야기가 필요한 이들 중 다수는 책장을 넘길 힘도 없이 괴로워하고 있지 않을까. 그래도, 이런 이야기들이 돌고 돌아, 다른 형태로라도 그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의사이자 코미디언이라는 저자 이력에 처음엔 '흐음...' 하고 넘어갔는데, 뒤로 갈수록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내용에 유머 감각이 없을 경우 읽는 멘탈도 박살날 수도 있으니까...환자들 각각의 상황, 의료 재정 적자가 치료와 의사들에게 미치는 악영향, 저자의 유년의 기억에 진땀이 절로 난다. 중간중간 환자들의 돌발 행동에는, '저자는 당연히 살아 있으니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이 어찌 굴러갈지 불안초조 급상승. 쏘겠다고 해 놓고 계산할 때 금액에 놀라 각자 계산하자는 상사는 보통 책이라면 혀를 찰 소재다만, 환자들 이야기 속에서 이 정도는 애교다.
외부의 충격이 원인이 아닌 정신 질환들도 있고, 본인이 예수라는 믿음은 누구한테 맞아서 생기는 것도 아니겠지. 더군다나 벤지 씨 말처럼 지금은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문제조차 질환이라 판단하는 일들도 일어나니 간단하게 '세상은 각박해 아이고!'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전문가가 봐도 입원해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매일같이 병원에 밀려오고, 힘들어도 병원을 피하는 환자들도 많다는 사실은 역시 울적하다. 그래도 어둡게 보면 한도 끝도 없는 풍경에도 빛과 온기는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으니 읽어서 다행이다. 구멍 뚫린 시스템을 어떻게든 활용하면서 환자를 돌보는 저자와 동료들, 삐뚤빼뚤 조금씩 나아가는 환자들과 워터하우스 가족, 불가사리와 소년의 이야기가 말해준다. 흐린 하늘에 절망할 수도 있지만, 천천히 보면 구름 뒤 은빛 햇살이 다시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고...
"우리 가족의 DNA에 조현병, 폭력, 알코올중독,
대머리 유전자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랑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름 믿고 보는 작가의 작품은 이번에도 대단하긴 했다. 간략하게만 표현하면 참신한 설정, 약하면서도 강한 주인공, 예측 불가능한 흐름과 안도의 한숨이 폭풍처럼 나오는 결말까지 있을 것 다 있었으니까. 그러나...초반부부터 답답함이 스물스물 올라오다가, 리넷의 수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면서는 정말 이게 죽을 맛이구나 느낀다. 물론 주인공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모든 소설에는 어느 정도 다 이런 면이 있지. 하지만 리넷의 과거 행적이나, 개릿이 어떤 인간인지 구구절절 나올 때는 이걸 참고 봐야하나 말아야하나 잠깐 고민까지 하게 되며 크리시 방문 편에서는 '이 정도까지 참신하지 않아도 돼...'라는 신음이 절로 난다. 참신해서 미소가 나왔던 건 최후의 방어 수단(?)뿐, 새로운 발상이 주는 쫄깃함이 이렇게 피로할 수도 있다는 걸 아주 뼈가 저리게 체험했다.
그래도 잠깐 함께 뭉쳐서 미셸을 보내는 여정은 꽤 뭉클했으며, 에필로그의 '굳이 왜...'라는 생각을 단숨에 날린 마지막 페이지 대사들에 모든 고생 다 잊고 박수.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연쇄 살인 발생시 다들 범인의 정신이 얼마나 이상한가에 집중하고 희생자들을 잊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소설을 보니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분야가 어디까지인지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는가 싶어 마음이 좀 복잡해지긴 한다. 이미 충분한 상처를 가진 모든 범죄의 생존자들이, 타인의 흥미에 더 상처받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라지만...과연...어쨌든 잘 읽었습니다 헨드릭스 선생님...
"인생은 살아남는 것, 그 이상이었다."


표지가 대단히 매력적인데도, 부끄럽게도 에티오피아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으니 읽어도 이해가 잘 될까 걱정되어 좀 미뤄 두었다 집은 책이다. 사전지식이 더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것이 없어도 이 강렬한 이야기를 읽는 데는 별 문제 없었으며 읽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분풀이용 독서로는 절대 추천할 수 없는 책이나, 세상에 말랑한 행복 말고도 중요한 게 많다는 걸 상기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
프롤로그에서 히루트가 죽은 이들을 생각할 때부터 웃음기 따윈 없으리라 예상 가능하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홀린 듯이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은, 히루트와 아스테르, 피피 등 초강렬한 여성들의 에너지 때문. 일단 모든 인물들이 선악이 마블링되어 구별하기 힘든 면을 가졌다는 점도 어느 정도는 매력이기는 하지만...왜 하필 그 어두운 면 중 하나가 상습 성폭행이어야만 하는지, 반복될 때마다 빡이 치니 매력이면서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라고 하는 게 맞겠지.
같은 시기 식민지였던 땅의 후손이니 이런 주제에 기본적인 공감이 있기도 하지만, 이 역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먼 나라의 아픔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막판에 아스테르가 던지는 격려는 그 자체로 꽤 무게가 있지만, 마지막에 히루트가 편지 돌려주는 장면에서 다시 생각하면 코가 시큰하다. '일반적'인 흐름을 생각하면 여기서 밀려오는 여러 감정에 히루트가 눈물을 흘려야할 것 같은데, 단지 마음이 강해서만이 아니라 눈물을 흘릴 방법을 잊은 것 같은 모습이 왜 이리 쓰린지. 많은 이름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수밖에 없으나, 에티오피아에 수많은 히루트와 아스테르들이 있었다는 것, 모든 핍박받은 나라들에 각각의 히루트들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해보며 책을 덮는다.
"과거는 없고, '일어난 일'도 없고,
한순간이 모든 것을 끌고서
끝없이 새로워지며
다음 순간으로 이어질 뿐이라는 사실을.
모든 것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읽고 기분 좋아지는 범죄 기록 같은 건 세상에 없긴 하지. 그래도 옛적 이야기이기도 하고, 초반에는 생각 이상으로 정리된 조선의 법률이나, 백성들의 기록을 직접 열람하는 군주들의 모습에 재미도 느꼈는데...후반으로 갈수록 정신이 혼미해지며, 어느 순간부터 조상님들에 대한 가여움이 존경으로 바뀐다. 대체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으셨나요? 갱스 오브 뉴욕도 저리 갈 한성부의 지옥도에는 더 붙일 말이 없다. 무리 지은 범죄자들이 검경을 우습게 여기며 날뛰는 것만 해도 충분히 안 좋은 환경인데, 공무원들끼리 패싸움하고 주민들 상대로 살인에 강도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지내기까지 하면 대체 무슨 수로 버텨야 하는가.
그리고 나이 들수록 느끼는 거지만, '옛날이 좋았다' 드립만큼 못 믿을 말이 없다. 기술 수준만 지금과 다를 뿐이지, 문서 위조부터 폭행 살인 불륜까지 지금이랑 카테고리가 다를 것이 하나 없는 일들 그 시대에도 다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테니까. 과거 낙방 후 그냥 귀향하지 못하고 위조 합격증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엔 헛웃음이 나온다. 비뚤어진 학구열과 그로 인한 범죄의 내력을 알고 싶으면 한반도의 역사를 보라...하하...
상당히 속이 무거워지는 내용이었지만, 그런 상황들에서도 버티며 사신 분들 덕에 이렇게 후손은 뒹굴대며 책을 읽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일이다. 유난히 힘든 겨울이지만, 좀 더 힘을 내야지.


추워서 몸속까지 얼어붙을 것 같은 때에, 마음 가볍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전기장판에서 이불 덮고 손만 내민 채 한도 없이 귤을 까먹던 옛적의 기분이 오랜만에 되살아남. 하나씩 놓고 보면 그냥 즐거운 이야기들이지만, 장르도 주인공들의 성격도 엄청나게 다른 이야기들이 한 세계 안에서 연결되어 움직인다는 게 신기하고, 이런 표현이 소설 감상에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지만 참 깜찍하달까. 홋홋홋홋. 개인적으로는 청춘소설과 판타지소설의 결말이 연결될 때 살짝 감동하기도. 세상이 너무 넓고 인구는 언제 백억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이니 종종 잊지만, 6단계 법칙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람이란 언제 어디서 이어질지 모른다는 걸 환기시키는 이야기에 새삼 흐뭇해진다.
초반에 ‘그닥 비중이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이름까지...’라고 여겼던 인물들이 이야기의 바톤이 넘어가면서 재등장하니, 어느 순간부터는 사냥감을 쫓는 매의 심정으로 등장을 기다리게 된다. 재등장하는 순간 ‘심봤다!’는 심정이 되는 스스로에게 헛웃음이 나오지만, 에잇, 뭐 어때. 가끔 이런 재미도 있는 거지.


시간의 측정이란 것을 당연하게만 여기고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들여다보니 충격이 꽤 크다. 시간과 임금의 환산 속 '효율성' 속에서 사람이란 존재가 통제하는 이와 통제당하는 이로 나뉜다는 것, 시간에 대한 감각과 효율 문제가 각종 차별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심지어 느림과 마음의 여유마저도 자본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 등등 한숨을 안 쉬고 넘어가는 대목이 별로 없다. 우린 망했다고 하는 책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이런 문제들을 의식할 때 사람과 자연에 대한 또 다른 관계가 열린다는 좋은 책인데도...왜 자꾸 망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이 너무 찌든 탓일지도.
효율성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면서 하는 과도한 집중이 얼마나 정신을 갉아먹는지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에, 본문에서 처음 접하는 테일러와 레어드의 주장이 경악을 넘어 공포로 다가온다. 소위 차이트게버를 내가 조절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샤워할 때조차 경쟁자들에 대한 걱정을 해야하고, 버스 안에서의 짧은 독서나 상상조차 허락하지 않으며 초효율을 이뤄내지 못하는 이들을 인간 이하로 여기는 그런 지옥같은 세상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그 과정에 포함되지 않는 자연의 질서까지 무시해야 한다면 더더욱.
최근 개인적인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 고민 중인데, 짧게라도 그런 부분을 건드리는 대목에 조금 마음이 가벼워진다. "모든 글은 일종의 타임캡슐이다. 글쓰기는 자신의 세계에서 온 조각들을 모아,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독자에게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기장에 개인적인 글을 쓰는 것조차 미래의 나를 전제하며, 더 나아가 미래 자체를 가정한다." 골치 아픈 사색을 미래의 나에게 미루는 것 아닌가 생각도 잠깐 스치지만, 이 두서없는 독후감들이 미래의 나에게 뭔가를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다. 오늘의 감상은 이렇게 마무리.


드라마 포스터를 본 적이 있어서, 영상화까지 된 작품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픽업. 좀 늦은 감은 있지만...어쨌든, 영상화까지 될 무언가가 분명 있었다. 그 무언가가 이 정도로 찜찜할 줄은 몰랐던 게 문제지. 분명 페이크 반전과 반전에서 놀라고, 마지막 한 문장까지 긴장하면서 읽었고, 교육이나 계급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니 잘 읽은 건 맞다. 자극적인 기사를 제조하는 이들의 적나라한 욕망도 이런 식으로 들여다보니 새롭기도 하고. 문제는 소위 이야미스의 ‘이야’ 지수가 너무 높아서 소화할 수 있는 한도를 넘어간다는 것. 이 기분을 씻어내려면 상당한 양의 개그 영화와 다른 책들이 필요할 듯...끄으으으으.
개인적으로는 이런 내용에서는 메인 커플 모두, 혹은 둘 중 한 명이라도 어떤 종류의 오오라를 뿜어내는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장면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읽기 더 힘들었다. 환상을 키우는 장면은 없는데 있는 대로 깨는 장면만 보이는 건 읽으면서 기분이 저조해진 탓인가...그냥 얼굴만 가지고 상대들을 미치게 만들었다는 설정이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외모가 많은 것을 해결해주는 것이 세상이긴 하지.
당장 욕탕에 들어가 온몸을 씻고 싶을 정도의 뒷맛은 남았지만, 욕망과 집착에 대해 재차 생각할 기회를 준 책인 것은 틀림없으니 좋은 부분만 생각하며 끝내야겠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서평 찾아서 이 작품보다 강도가 세다고 하면 건드리지 말아야지. 서평이 괜히 중요한 것이 아니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