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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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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를 빙자한 눈물의 임종기 성장담

핍 시리즈에서 은근한 무자비를 보여준 작가의 작품이니 예상은 했지만...설정부터 이미 자비라곤 없고, '한 줄기 희망이 남은' 결말이 아니라 '희망할 수 있는 건 이거 하나'라 기분을 업시킬 내용이 아니다. 그렇다고 읽은 걸 후회하는 건 아니고, 다음 작품도 필독 예정!

초단기 시한부 설정 빼도 젯을 짓누르는 문제 너무 많아서 이렇게 가여울 수가 없다. 그나마 아버지랑 빌리가 있어 다행이지, 뭔 동네가 이런 사람들로 꽉 차 있대. 발굴되는 문제들이 점입가경이라, 편지 쓰는 장면 전후로는 보다가 홧병나는 줄 알았음. 이제 다 끝난 줄 알았을 때, 지옥에 떨어져도 할 말 없는 인물들이 양심 있는 마냥 대사 치는 데선 할 말을 잃었다. 이왕 사필귀정이면 읽는 사람 속 좀 시원하게 해주시지 그랬어요 작가님. 하긴, 대부분의 세상사가 그렇게 굴러가지 않고, 홀리 잭슨은 리 차일드가 아니니 어쩔 수 없나...

수사 과정 전체가 흥미롭지만,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젯이 성장하는 모습에 빨려 들어간다. 급 해탈하지도 않고 평소처럼 화도 내고, 비꼬기도 하고 실망도 하지만, 멈추거나 상황을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고, 마지막엔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하게 되는 여정이 참 서럽고 눈부시다. 빌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완전히 넉다운. 정신적인 성장 기간은 사고 기능이나 호흡이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라는, 당연하지만 자주 잊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본다. '마지막 순간까지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고, 더 나아진 자신에게 만족하며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원대한 목표를 자기계발서에서 봤으면 바로 포기하고 싶겠지. 하지만 만들어진 이야기라도, 완벽하지 않은 청년의 변화를 보니 조금이라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결과가 1미터가 아니고 1센티미터가 될지라도, 전진은 가능하다고.

라스트 신의 모래 씹는 기분 때문에 감동이 좀 사그라들긴 했으나, 젯이 전하고자 했던 것들은 확실히 빌리의 안에 남아있었으니 만족한다. 문제는 이 메세지를 내 안에도 오래 새겨 둘 수 있는가인데 과연...


"나는 엄마가 평생 다른 사람을 원망하며 살았다고 생각해요. 삶이 힘들거나 불공평할 때면 다른 사람에게서 책임을 돌렸죠. 기분은 나아졌을 거예요. 나도 시간이 충분하다고, '나중에' 하면 된다고 말할 때 기분이 나아졌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건 그런 믿음일 때도 있더라고요."

아직은 죽을 수 없다
아직은 죽을 수 없다
1권은 1권이라고 제발 표시 좀...흑...

분명 재미있게 읽었지만, 덮고 나니 속이 갑갑하다. 흑막 얘기 나오는 타이밍에 "잉?"하다가, 아무리 봐도 마지막일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시리즈물이라고 깨닫기는 했지만...역시 이런 얘기는 한 방에 보고 싶다고! 개인 취향 문제지만, 숨겨진 흑막이 더 있다던가 하는 소재는 좀 기다릴 만하다. 그러나 이런 괴이하고 궁금한 장면을 투척해놓고, 중간 에피소드로 마무리하다니. 성질 급한 독자는 그저 울지요.

한편으로 미오의 성격이 소화가 잘 안 된다. 감성과 무모함이 설정이니 어쩔 수 없지만, 본인이 생각했던 추리를 류자키한테 떠들면서 펄펄 뛸 때는 어처구니가 없음. 그 추리가 다 맞으면, 대사 끝나는 순간 메스로 썰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산에 묻히는 신세 되었을텐데...속편에서는 성장해서 이런 장면들 안 보여줬으면 하지만, 이성은 류자키 담당이니 그런 기대는 버려야겠지.

간호조무사 이야기는 거의 접한 적이 없다보니, 소설로나마 짧게 보는 이 직업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기도 한다. 힘들기는 간호사 못지않고, 소명의식도 필요한데 재수 없으면 치료 능력이 없다고 무시를 당하니...애초에 의료랑 밀착 케어는 각각 다른 전문 분야고, 2025년에 아직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현장에 있을까. 그러나 현역 의사가 쓴 작품이란 걸 생각하면 이거보다 더할 수도 있겠다 싶어 읽는 사람까지 풀이 죽는다. 걸어갈 때마다 존경의 시선을 받아도 될 만한 직업인데도 참...어쨌든 재미있었고, 수술장면 때문에 궁금 지수는 이미 MAX이니 속편도 필독해야지!

이웃집 너스에이드
이웃집 너스에이드
막판인지 알려면 뭐라도 찔러볼 것

이 책이 신간이었을 때 '나중에 봐야지'하고 지나갔다가 이제야 다시 마주했다. 출판 날짜 보고 흘러간 세월을 확인하니 소오오름. 게다가, 그 사이 뭔 일 있었으면 못 읽었을 뻔 했잖아! 오싹하다 오싹해.

좌절한 사람이 희망을 찾아가는 성인 동화의 공식을 어느 정도 따라가지만, 뒤로 갈수록 예상을 벗어나는 부분들이 있어서 살짝 감탄했다. 실비의 무모한 도전에 큭큭대기도 하고,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대사들을 보며 한숨도 짓고...실비와 베로니카의 '없으면 안 되는데 만나도 힘든' 관계도 소싯적엔 알지 못한 것들이지, 크흐...병원에서의 대화로 거듭나는 중년의 우정에 마음 속 좋아요 백 연타!

이야기가 따숩게 끝나서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실비의 정신을 뒤흔든 노숙자 파트의 여운이 마음을 어지럽힌다. '못나고 더럽고 슬프고 지독한' 고독의 냄새라...스스로의 모습을 생각하니 룰루랄라 책 덮기가 어렵다. 그래도 시간이 주어졌을 때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메세지에는 공감하니, 어떻게든 멋진 책들을 한 글자라도 더 읽을 수 있도록 용을 써야지. 마지막에 내 손을 잡아주리라 믿을 수 있는 이를 만날 수 없다 해도, 지금 읽는 기쁨을 누린다는 건 충분히 멋진 일이리라.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규칙 너머의 판단을 위한 규칙의 변천사

이게 21세기 단어계의 쓰리 테너 콘서트인가 싶은 제목에 일단 놀란다. 게다가 누가 툭 치면서 설명해보라고 하면 기침부터 나올 단어들이니 깨우침이 많이 필요한 독자가 안 읽을 도리가 없다. 생각과 내용이 좀 다르지만, 개념의 변화도 그렇고 우리가 대체 무엇을 어떻게 따져야 하는지 생각할 게 많았으니 굿. 초반에 제시된 의미를 생각하면 규칙과 패러다임의 관계 설명이 모호하게 느껴지긴 하는데...워낙 의미의 범위가 넓은 단어이기도 하고, 그냥 내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으니 넘어가자.

초창기 인간 컴퓨터나, 철자법을 둘러싼 소동 이야기는 꽤 재미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밝은 마음으로 읽기 어렵다."실패한 규칙에 대한 대응책이 왜 기존의 규칙을 반복하고 그에 더해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것이어야 할까?" 몇 세기 이전의 파리에 던져진 질문이 왜 이렇게 가깝고 쓰리게 느껴지나 모르겠다. 세상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바뀌어가고 있는데 어떤 부분은 정말 변하지를 않고...그러니까 생각을 열심히 하라고 이런 책도 나오는 것인데, 알고리즘과 규칙을 조금 더 이해한다고 해서 제시된 여러 질문들에 답하기가 수월해지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게 문제다. 당장 눈 앞의 사회 문제를 보면서, '음, 열심히 생각해서 판단 능력을 갈고 닦을 기회로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폴리아나급 마인드 가진 사람은 또 몇이나 되겠는가.

기본 유리멘탈인 탓에 책 마지막 문장이 마치 '포기해 그럼 편해'처럼 느껴지지만, 역자 후기가 있어 책상에 엎어져 '이제 난 모르겠소' 타령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들...현재 만들어지는 규칙들이 유토피아의 꿈을 포함하지는 않을 것 같지만(...아닌가? 사람들의 평균 희망 지수는 더 높은가?), 가지치기와 개선 작업은 확실히 진행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불편한 고민의 시간들이 분명 의미가 있고, 시간이 걸려도 인류는 제대로 길을 만들어 갈 거라고.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 - 규칙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알고리즘, 패러다임, 법 - 규칙은 어떻게 세계를 만드는가
깨알 재미 가득한 서양화 기초 전과

미술 기초 지식 책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재미를 깔고 가는데다, 제목까지 근사하니 절로 손이 간다. 왕초보 혹은 일자무식이 아니라 여행자라는 매우 친절하고 낭만적인 표현에 뿅. DK표 도감들과 구성이 비슷해서 보기도 쉽다. 이미 유명세가 엄청난 그림들도 있지만, 유명한 화가 작품인데도 개인 소장이거나 많이 언급되지 않는 미술관에 있는 그림들이 실려 있으니 엄청 감사하면서 보게 됨. 이런 기회 아니면 언제 구경하리.

미술관 구조나 복원 과정, 비슷한 주제를 다루거나 동시대 작품인데도 꽤 대조되는 작품들의 비교 코너도 꽤 재미있다. 중간중간 너무나도 짧게 언급되는 타 대륙 미술사는 읽으면서 마음이 좀 복잡해지긴 하지만. 무슨 잊었던 양심 고백도 아니고 이 분량이면 뭐하러 넣냐고 궁시렁대다가, 거의 막판에 참 쪼그맣게 실린 뉴왈라 동굴 벽화에 동공이 강제확장되고 보니(이런 장렬한 임팩트의 벽화가 교과서에 없다는 것도 충격) 역시 한마디라도 있는 게 나은가 생각도 든다. 내한을 몇 번이나 하신 셰리 삼바 선생님을 이제야 알아서 너무 안타깝고(한 번만 더, 플리즈...), 여튼 이런저런 생각하며 즐겁게 그림들을 감상했다. 이런 책이면 분명 몇 년에 한 번 뭘 추가해서 나올 것 같으니, 종종 검색해서 업데이트를 놓치지 말아야지. 음음.

미술관 여행자를 위한 도슨트 북 - 모든 걸작에는 다 계획이 있다
미술관 여행자를 위한 도슨트 북 - 모든 걸작에는 다 계획이 있다
깊은 땅속에서 던져지는 물음들

분명 과학책이고 주제가 사람이 아닌데도, 지상의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돌아보게 만드는 희한한(좋은 의미로) 책이다. 당장 초장의 '지하에 대한 혐오' 설명을 보며,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개념을 처음 점검해본다. 닿지 않는 하늘에는 환상이 있고, 생명이 자라는 땅 아래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는 것이 생각할수록 미묘. 이어지는 우주와 우드 와이드 웹을 보며 체질도 아닌 상념에 잠기다, 몸이 끼일 정도로 좁고 위험한 통로에 거리낌 없이 도전하는 이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놀라면서 한숨 짓는다. 각종 사고 설명을 보니 왕년의 생매장 호러물들이 주던 공포가 스물스물 올라옴. 역자분이 스릴러물 같다고 쓰셨는데 정말 공감한다...

우주를 알기 위해 지하에 내려가야 하는 상황, 경이로운 고대 벽화와 너무나 대조되는 포이베 대학살, 안 녹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얼음 밑에 파묻은 폐기물들의 컴백 feat 지구 온난화 등, 이미 놀라운 언더랜드의 풍경과 오랫동안 인류가 벌여 놓은 변화들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마냥 감탄할 수도 울적해할 수도 없는 이 상황에, '우리는 좋은 조상인가'라는 거듭된 질문이 겹치니 혼란만 몰아침. 이 마음이 친절하게 언급된 '두꺼운 언어'의 현상인지, 단순히 자신의 어휘력 부족의 문제인지 혼자서는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이해를 포기하는 것도 옵션이 될 수 없으니, 깊은 곳에서 벌어지는 이 모든 일들에서 인간이 도망갈 방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손들이 플라스틱괴의 지층을 연구하며 과연 지금의 인류를 어떤 조상이라 생각할지, 가라앉은 마음으로 우울하게 아름다운 책을 덮는다.


"인류세에 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 심지어 인류세에 살면서 말하는 것이 어렵다. 아마도 인류세는 상실의 시대로 가장 잘 표현될 것이다. 종의 상실, 장소의 상실, 사람의 상실. 우리는 이 시대를 위해 슬픔의 언어, 그리고 더욱더 찾기 어려운 희망의 언어를 찾는다."

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사레 들릴 뻔한 반전 결말 트릴로지

그믐에서 책 소식 보았을 때부터 흥미는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연말에 와서야 읽게 되었다. 시리즈물 몰아서 보는 오랜만의 이 짜릿함이여. 1작품 당 무려 3권 분할 출판은...편하게 들고 다니라는 출판사의 배려라고 생각하고 싶다. 1권만 해도 '조금 신선한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3권 마지막 장 넘기고 나니 너무나 놀라운 거. '반전'이란 게 이제는 거의 필수다보니 웬만해서는 크게 기억에 남지 않는데, 세월 지나 '이런 결말은 그땐 새로웠지만 지금 흔해유' 분위기가 될 때까지는 꽤 오래 기억하게 될 듯.

두 주인공과 모든 팀원들이 조금씩 계속 성장하는 모습도 꽤 흐뭇하다. 1권에서는 시작하자마자 끝날 때까지 비호감도 MAX에, 마지막에 모든 것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여전히 '꽤' 별로였던 빈센트마저도 그 몸부림이 꽤나 애처롭고...반대로 미나에게는 시작부터 끌려들어감. 이쪽도 종종 읽는 사람 복장 터지게 하는 요소들이 분명히 있지만, 필요할 때는 말 그대로 죽을 힘을 다 쓰는 모습에 주먹 불끈 쥐고 응원하게 됨. 자신이 다른 모습이었으면 하고 바라면서도, 도저히 그런 모습으로 변할 수 없어 슬퍼하는 모습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빈센트에게 정이 떨어지는 만큼 미나에게 더 정이 붙는 면도 분명 있다. 둘 사이가 진전될 때는 마치 부모라도 된 마냥 "왜 하필 이 인간이냐! 아냐, 그래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이에게 가는 게 행복이제..." 하면서 궁시렁대기도 하고...

짤막짤막 이어지지만 꽤 재미있는 조연들의 생활상도 매우 취향이었다. 엄청나게 편파적이고 개인적인 호감도 랭킹에서, 미나와 공동 1위인 크리스테르에게 좋아요 100개. 3권 말에 얘기 끝났다고 작가분들이 말뚝을 박아놓았으니 어쩔 수 없지만, 당신이 주인공인 외전이 있었으면 참 좋을텐데...주인공들끼리 웃는 장면은 있지만, 보는 이가 깔깔 웃을 장면은 거의 없다보니 크리스테르가 해리 보슈 오덕 레벨 피로할 때가 유난히 흐뭇하기도 했다. 배는 나오고 필드워크도 안 좋아하며 위스키도 못 마시지만, 수사 결과와 형사 정신만큼은 스웨디시 보슈!

이어지는 이야기가 더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결말을 생각하면 쫘라락 이어보길 잘 했다 느껴지는 3부작이었다. 미나와의 인연은 끝났지만, 라크베리 선생께서 또 새로운 만남을 이어주시길...

미라지 1
미라지 1
다르면서도 익숙한 사인 속 세상 풍경

법의학이 다루는 게 형사사건만이 아닌데도, 수사물에 너무 몰입한 탓인지 단어만 봐도 격한 비극, 정의 구현을 위해 이를 악무는 사람들을 상상하게 된다. 그런 편견을 다루기에도, 죽음에 대해 적당한 무게로 생각해보기에도 괜찮은 책이었다. 법의학은 슬픈 직업이 아니며, 죽음과 죽음을 둘러싼 상황은 때로는 웃길 수도 있다는 오프닝 멘트에 호감도 급상승하며 읽기 시작. 

생각과는 좀 다른 벨기에의 제도나 상황(총 얘기가 하도 나와서 천조국인 줄...), 사인 분석 과정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사람 사는 모양새나 복소 선생님의 사고방식을 보면서 우리가,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자포자기나 실수, 질투, 슬픔, 고독사에는 남녀노소나 국경도 없으니. "죽은 사람을 보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죽음은 조만간 우리 모두를 불시에 덮칠 것이다. 우리 중 일부가 겪고 있는 사회적 곤궁, 고독, 망각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힘든 일이다."는 말에는 새삼 두려움이 밀려오기도 하고...

고인을 존중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면서도 일과 사생활 사이에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장난기도 잃지 않는 강철 멘탈을 누구나 다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보다는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수시로 돌아보고, 선생님 말마따나 스스로와 주변을 존중하면서 삶을 즐기려는 시도는 할 수 있겠지. 당장 이 한 권에서 즐거움을 얻었기도 하니, 감사하며 또 다음 책을 읽자.


+ 초위험물체 플라스틱 포크를 멀리하자.

죽은 자들은 말한다
죽은 자들은 말한다
꿀잼 미스터리는 현실에 있었더라

아는 것이 적으니 책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보고 '세상에 이런 일이!' 타령하는 건 일상이다. 이번에 좀 다른 게 있었다면 표지 보는 순간부터 스스로의 무지에 놀랐다는 것. 아무리 기계치라도 이름을 아는, 이 기술 격변의 시대에 아직도 움직이는 디젤 엔진의 발명자에 대해 아는 것이 이름 뿐이라니. 그리고 책 펴자마자 투척되는 미스터리에 경악과 함께 홀랑 넘어감. 희생자와 용의자들이 죄다 초유명인인 이런 사건을 몰랐다니!

사건 이전에 디젤 이 양반의 매력도 대단하다. 물론, 어디 천 페이지 평전 읽은 것도 아니니 여기 다뤄진 내용만으로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은 알지만, 너무나 취향이라 어쩔 수가 없다. 역경을 딛고 성공한 천재에다, 미친 차별의 시대에 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인류 전체의 연대에 대한 책까지 냈으며, 직원들에게는 관대하고 '고임금 지급은 선하고 합리적인 처사'라는 사고방식을 가진데다, 미래 기술 예측은 거의 예언자급...이 정도만 해도 차고 넘치는데 심지어 역사가 외모를 공인하기까지 하니 놀랄 노자다. 그에 비해 이젠 이름만 봐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빌헬름 2세...무슨 책을 봐도 언급되면 죄다 까는 내용인데, 책마다 새로운 까임거리가 더 추가되기까지 하니 다른 의미로 정말 인물이다. 한 세기 후 이국 독자에게까지 두통을 안기는 이 판단력 뭡니까. 여기에 록펠러의 피도 눈물도 없는 행보까지 믹스되니, 이미 결말이 정해진 드라마인데도 책장 넘길 때마다 침이 넘어간다.

좀 과몰입하다 보니, '가능한 이론들' 챕터의 마지막 문장에선 놀라 넘어갈 뻔. 앞뒤정황이 들어맞는다 해도 증거가 없으면 그냥 가설이지만, 이게 또 입맛에 착착 맞아 읽으면서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한편으로는 이런 옛날 극비문서가 아직도 비공개인가 의아해서 검색하니, MI5 개인 파일은 그쪽 판단에 따라 무기한 비공개도 가능한 모양. 가설이 검증되는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아쉽지만 어쩌리. 아들이 썼다는 디젤 평전을 못 본다는 억울함은 남지만, 여러모로 즐거운 한 권이었다. 《연대》는 다행히 구텐베르크 페이지에 있으니, '그전에도 많았던' 내용이어도 관계 없고 구글 번역에 긁어서라도 꼭 봐야지. 디젤 오오 디젤...

루돌프 디젤 미스터리 - 전쟁 전야, 천재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의 운명 속으로
루돌프 디젤 미스터리 - 전쟁 전야, 천재 엔지니어이자 사업가의 운명 속으로
눈물나게 속 쓰린 탄소 식민주의 해설

읽어도 읽어도 새로운 좌절감과 죄책감이 생기는 것이 환경 서적이니, 가끔은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면서, 이런 고통을 사서 느껴야 하나?' 자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작살 나는 상황이니 읽기를 그만둘 수도 없다. 특히나 이번 책처럼, 기후 문제가 권력 문제라고, 기후 지식도 밑자본이 필요한 권력임을 지적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면 앓는 한이 있어도 중도 하차는 불가다. 비록 고통은 길고 희망은 한 줌이 될까 말까라도.

탄소 식민주의라는 게 참으로 오싹하다. 책임은 회피하며 착취는 계속되니 이 상태에 놓인 국가들이 과연 자유독립국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이걸 단순히 경제 발전 단계 차이로 착각하고 있던 것 아닌가 반성 또 반성. 개개인에게 불행은 확실히 오지만 아무도 책임질 일 없는 모양새에 얼이 빠지고, "나는 소비자의 힘이 글로벌 경제를 더욱 윤리적이거나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같은 대목에선 기력이 쫙 빠진다. 에필로그에 나오는 인용에서는 나도 모르게 입에서 된소리 분출. 아니, 아무리 인터넷이 없던 시대라지만, 세계은행 수석경제학자라는 인간이 이런 소리를 하고 무사했다고? 너무 빡쳐서 얼마나 잘 사나 보려고 검색했더니 엡스타인 절친. 그 인간성 알만하다...

강우도박이 없고, 부탄 사람들이 아니라 세계 은행이 부탄은 왜 숲 안 깎아 내느냐 ○●하지 않고, 기후 재난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이 모두에게 보장되는 세상을 만든다는 게 가능한지 생각하니 마음이 어두워진다. 분명 독자를 고무시키는 문장으로 끝나는데도, 용기와 희망이란 단어가 왜 이리 멀게 느껴지는지. 기업과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이 시민의 책임이라지만, 그 역할을 조금이라도 해낼 수 있을지 두렵고 또 두렵다.


"모든 사람이 촉구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면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이것은 기업의 선의에만 맡겨두기에는 너무나도 크고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변명하지 말라고 요구하자, 더 이상 질질 끌지 말라고 요구하자. 우리 경제 속에 무언가를 감추는 뻔뻔한 작태를 더 이상 용납하지 말라고 요구하자. 탄소 식민주의의 종식을 요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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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읽는 기후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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