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98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꼬모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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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멀고 먼 이상과 현실 사이

도입부의 올림픽 헌장 볼 때부터 내 마음에 때가 너무 묻었는가 한숨이 나온다. 무대 위에 올랐으면 공정한 판정 아래 성실히 겨루려 애써야 하는 것이 스포츠라고 생각하지만(그렇지 못한 경기들이 매우 많겠지...), 무대에 올라가는 과정과 정치는 당연히 한 세트라고만 여겼으니. 세월 지나며 뉴스나 경기 해설의 어투는 많이 달라졌지만, 특정 국가를 못 이기면 목이라도 칠 기세로 핏대 세우던 과거의 모습들도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덕분에 중간중간 제시되는 질문들에 긍정적인 답안은 생각하지 못했고, 다 읽으니 제시된 답안도 역시나였음. 하아...

살짝 주워들었던 일부터 처음 듣는 일들까지 여러모로 어지러운 내용 한가득이다. 일단 아시아 전체가 서구권에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같이 애쓰면서도, 각자 세계 무대 합류하랴, 경쟁 국가 견제하랴, 대회 새로 만들랴 보이콧하랴, 국내 여론도 살피랴 박터지는 모습에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옴. 이런 사태들이 활약할 무대가 반드시 필요한 선수들에게는 힘든 일이고, 안 일어나면 여러모로 좋겠지. 그러나 이걸 가지고 IOC가 아시아 국가들에게 비협조가 어쩌네 떠드는 건 매우 마음에 안 든다. ●□ 느이 조상들이 이 동네를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은 게 지금 문제들의 근원이라니께! 그리고 일본 정부가 골머리 앓는 장면들에서는,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울 때는 어차피 뭘 해도 욕먹으니 빨리 한 쪽을 선택해야 하고, 시간 끌수록 양쪽에서 욕먹는다는 교훈 제대로 되새김질.

이제까지 크게 생각해본 적 없는 아시안게임에도 살짝 존경심이 생겼다. 줄줄이 난리통이 이어지는데도 대회가 안 없어지고 계속 진행된다는 사실이,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평화와 교류를 원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책에 나왔던 답답한 상황들은 계속 재현되겠지만, 스포츠의 이상을 향해 세상은 거북이 걸음 중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를 회피하는 방식은 효과가 없으며 결국 정치적 수단을 동원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포츠로 보는 동아시아사 - 분단과 연대의 20세기
스포츠로 보는 동아시아사 - 분단과 연대의 20세기
기쁨과 해악을 두루 선사하는 싸구려 물건들

'멋진 쓰레기들'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너무 많아서 그걸로 블로그를 만들어도 될 지경이다. (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물욕을 버리지 못하는 슬픈 중생은 제목 보자마자 집을 수 밖에 없고요. 당장 시작 챕터 제목부터 사람 울린다. "우리가 사는 것이 곧 우리다". 책에 대해서는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할 기억은 없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의 의미를 각인시켜 주고 사라져간 소지품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림. 작가님 이런 슬픈 말은 권말에 쓰셔야죠.

  사기성 광고나 차별 의식, 소비자 세뇌나 노동자 문제 등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들에 기분이 가라앉지만, 중간중간 삽화나 에피소드들에 폭소가 절로 터지기도 한다. 아무리 백 년도 더 전이라지만 99센트에 장난감 144개 한 팩이라니 장난감 부스러기만 포장한 건가? 할아버지 홈쇼핑 대실패의 추억엔 국경을 뛰어넘어 대공감. 그리고 어느 방면이든 오직 매니아에게만 귀하고 비싼 물건이 있기 마련이지만, 태생이 저렴한 물건을 사면서 그게 비싸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좀 놀라웠다. 과시를 하거나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려면 클래식카나 금괴를 사야되는 것 아닌가...이런 흐름을 이해 못해서 돈을 못 버는 건가 쩝.

  "공짜는 현재의 소비를 자극했을 뿐 아니라 미래의 소비를 유도하는 관문으로도 기능함으로써, 어린 세대에게 자신들이 탐내야 할 것뿐만 아니라 어른으로서 탐내야 할 것을 훈련시켰다" 아, 씁쓸하다. 이제는 기억도 희미하지만, 그 시절 과자 속 쪼그만 부록들로 얻은 기쁨은 느껴서는 안 되는 감정이었을까. 빵 안에 든 스티커들을 가지고 소소하게 즐거워하는 애들에게 크랩의 악영향을 가르치고 그런 거 사면 안 된다고 막아야 하는 것인가...관련된 사회적인 문제들은 알릴 필요가 있지만, 저가품을 사는 우리의 인생이 크랩이라고 생각하면 많이 슬퍼진다. 물론 그런 거 일절 사지 말라는 말은 본문에 없지만...재미있으면서 마음 매우 복잡해지는 가을 독서였다.

싸구려의 힘 - 현대 세계를 만든 값싼 것들의 문화사
싸구려의 힘 - 현대 세계를 만든 값싼 것들의 문화사
잘근잘근 인습을 씹는 트릴로지 1권

제목도 과격하고 시작도 과격하다. 전쟁 수용소나 테러 얘기도 아닌데 희생자 단위가 수십 명이니. 범죄가 초대형인 데 비해서는 수사 관련자도 적고 범인의 동기 진짜 찌질하지만, 재미있게 잘 보았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미 별 하나 깔고 시작하기도 했고, 홍콩섬을 살짝 벗어난 배경도 신선하고, '□● 세상엔 믿을 놈 하나도 없어...'라고 주역들뿐 아니라 나도 지쳐갈 때쯤 '그정도는 아냐' 기습공격 들어오는 것에 하트 뿅.

일단 시대를 역행하고 구성원에게 스트레스를 주며, 집단의 존속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집단 전체의 질을 다방면으로 떨어뜨리는 악습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악행을 저질렀으면 회개하던가 쥐죽은 듯 지내야지, 덮으려고 더 큰 폭탄 터뜨리는 건 단서를 세상에 흩뿌리는 자폭쇼일 뿐. 그러나 악당이 얌전히 로펌에만 돈 부으면 소설 장르가 바뀌니까 안 되겠지. 알기는 아는데 참...후속편에선 또 세상의 어떤 모습을 깔지 기대하며 종료.


"가족은 그저 어쩌다보니 한 가정에 태어난 것일 뿐, 사실 사람은 누구나 독립적인 개체이며 생각도 감정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서로 다르면서도 함께할 수 있다면 한 지붕 아래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저 낯선 사람이 될 뿐이다. 다른 생각을 억누르고 모 두 똑같은 생각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건 보통 비극의 시작점이 되곤 한다."


사족이지만, 홍콩 작품이 번역되면 인물들 이름이 북경어 발음인게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작가 이름도 책 속 지명도 광동어 발음인데 우째서. 북경어 더빙된 홍콩 영화 보는 마냥 기분 묘한 건 내가 프로 불편러이기 때문인가....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 - 2024년 타이베이국제도서전대상 소설상 수상작
쓰우 씨는 다 죽어야 한다 - 2024년 타이베이국제도서전대상 소설상 수상작
"잘 죽어가는 일"에 대한 따뜻한 가이드

응급실, 가정방문에 행려병동 간호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신 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죽음을 다루는 다른 책들과 통하는 면이 있으면서도 새로웠다. 환자들의 숨이 멎어 있을까봐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야간 병동을 도는 신입 시절의 묘사를 보니 약간 죄책감이 든다. 누군가는 저런 공포를 감당해가며 수많은 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병원 신세 질 때는 마치 나만 아픈 마냥 다른 생각을 못했었으니..."간호사는 희생하는 직업이 아니다"라는 매우 당연한 구절에 마음 속으로 빨간 밑줄을 긋고 또 긋는다.

미리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남의 사별의 순간에는 정말 입조심해야 한다는 것(호상이네 사람은 다 죽네 하는 소리는 금구라고 계몽 포스터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도 재차 생각해보고, 아픈 무릎을 끌고 언덕 위의 산소에서 죽음을 생각한 이를 보며 탄식도 하면서, 이것저것 또 배웠다. 늘 하는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지만...서류, 물건, 정신적인 문제까지, 나와 주변의 고생을 덜기 위한 꾸준한 준비가 말처럼 잘 되질 않으니까. 아무리 관련 도서를 보고 마음을 다잡는다 해도, 발등에 불 떨어지면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또렷한 의식을 가지고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을지도 불안하고...그래도 최대한 오래, 읽은 것들을 기억하고 실천할 수 있기를.

언젠가 사라질 날들을 위하여 - 수만 가지 죽음에서 배운 삶의 가치
언젠가 사라질 날들을 위하여 - 수만 가지 죽음에서 배운 삶의 가치
매일 타인의 위기를 함께 하는 분들께 감사를

짧지만 묵직하게 가슴을 때리는 기록이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을 매일 접하면서, 아무리 상황이 잔인하거나 불결해도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으로 버티는 마음을 조야한 독후감에 다 정리하는 것은 무리. 가족들의 절규, 끔찍한 크리스마스는 읽기만 해도 탄식이 나오지만, 아슬아슬하게 구한 사람들, 마음 부자들이 사는 동네, 해로의 의미를 알려주는 노부부처럼 두 손 모아 감사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게다가 길고 고통스런 과정은 있었지만, 거의 180도 다른 방향으로의 전직과 이민에 모두 성공하셨다는 점도 엄청나고...도시락의 온기에 눈물 짓는 기억이나, 스스로를 친절하게 대하기 시작하는 부분에선 속이 찌릿찌릿하다. 나 자신이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보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나뿐 아니라 나와 함께 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대목에서 마음이 복잡해지기도 한다. 나에게는 아픈 일이라도 세상에는 참으로 보잘것 없는 일들, 부정적인 감정들을 주변에 나눠도 되는 것일까.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이런 거라고 깨달을 수 있을까.

사람을 구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의 글을 읽으면, 다들 선한 분들이기 때문인지 구하지 못한 경우를 괴로워하시는 경우가 많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구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기 보다, 대부분이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분들의 활약이 있어 삶을 연장할 수 있는 이들이 있었다는 걸 기뻐해주셨으면 하지만...생명이 꺼져가는 순간을 계속 보는 입장에서 생각하면 너무 얄팍한 말이려나. 어쨌든, 바쁜 구조 작업 와중에 글로 이런 마음들을 나눠주신 저자분께 감사한다. 그릇이 작다보니 상황 급해지면 이런 고마움을 홀랑 잊을 때도 있지만, 이런 책들이 있어 반성하고 기억할 수 있고 다시 생각하는 것이지...


"누군가 말하길 지금 있는 이곳 말고 다른 곳에 있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지금의 나는 행복한 편이라고 했다. 비록 그 행복이라는 녀석이 매번 다른 표정, 다른 모습으로 살그머니 다가와 아주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탓에, 항상 눈을 부릅뜨고 끊임 없이 행복을 찾지 않으면 그게 자신에게 찾아온 줄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는 지금 있는 이곳 말고는 다른 곳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행복한 셈이겠지. 더군다나 다른 곳을 기웃거릴 틈조차 없을 만큼 바쁘니까, 이제 쓸데 없는 잡념은 끝내고, 나는 오늘도 나만의 숲을 마주하며 그 안에서 나무를 베고, 땅을 고르고, 돌을 골라낼 것이다."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 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나는 캐나다의 한국인 응급구조사 - 나를 살리러 떠난 곳에서 환자를 살리며 깨달은 것들
폐활량 시험하는 초긴장 인질극

타이거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아직 생생하니, 작가 이름에 군침 삼키며 집어 들었다. 표지만 봤을 땐 엘리트 학교 소년 테러리스트 이야기인가 했는데 비슷하지도 않았음. 도입부의 식당 분위기가 훈훈한 데서 이미 불안이 작렬한다. 애초에 환경이 이렇게 개판이지 않았으면 쓰카사가 좋은 사람의 역할을 할 이유가 없으니...그나마 잡생각할 여유가 있었던 건 1장까지고, 사건 터지고 나니 숨은 어떻게 쉬었고, 책장은 어떻게 넘겼는지 모르겠음. 악이라는 게 한 번 발현되기 시작하면 나이 따위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이렇게 실감 나게 보여주는 것에 대해 찬사를 보내야 하는지, 수명 줄어들었다고 원망해야 할지 헷갈린다. 특히나 실패한 총질 장면에서는 오랜만에 입에 거품 물뻔. 이런 미친! 우왁!

 모든 일들의 근원인 아동 문제도, 예측 불가능한 소년의 행동만큼이나 공포스럽다. 평균 생활 수준이 올라갈수록, 복지 수준이 보다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들 ‘설마 그런 일이 있겠어’라고 방심하면서 그늘이 더 어두워지는 걸 모르는 게 되는 것일까. 이렇게 지역 전체에 만연한 케이스야 설마 없겠지만, 아동 빈곤 문제는 절대 물 건너 사정이 아니니 생각할수록 입안이 쓰다. 오사코의 푸념에 대한 이쿠야의 조용한 대답에 싸다구 맞은 듯 잠시 정신 차리고 반성. 뉴스를 보고 ‘사람이 어떻게 저런 짓을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행복이라는 것을 어느새 잊고, 툭하면 우는 소리 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부끄럽다. 중요한 일들을 왜 이리 자주 잊게 되는지. 이야기 속 인질극은 끝이 났지만, 들리지 않는 아이들의 외침은 현재진행형이라는 걸 잊지 말고 미미하나마 뭔가를 하자...

 

“세상 사람들은 죽은 아이에게만 관심을 주죠.

살아 있는 동안은 ‘자기책임’이라고

차갑게 대하면서요. 죽고 나서야

‘불쌍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 건 싫어요.

동정받아 봤자 죽으면 아무 의미도 없잖아요.

저는 살아 있는 동안에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어요.” 

소년 농성
소년 농성
읽다 현기증 나는 한 스파이 이야기 

살짝 두툼한 책의 크게 박힌 제목만 보고(슬프게도 이제 한눈에 작은 글자까지 읽을 수가 없다...) '스파이 도감인가?' 하고 집었는데 웬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중 스파이' 한 명에 대한 책이었다. 시작하기 전부터 이 책의 두께가 이 사람을 끝장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 명단 두께랑 비슷하리라는 예감이...

매우 당연히 조마조마한 스파이의 생활과 더불어, 갑자기 독자에게 개똥철학 타임 선사하는 챕터나, 한때는 잊을 틈을 안 주고 TV에 나왔으나 이젠 언제 마지막으로 들었는지도 기억에 없는 'KAL007'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 등 오래 생각하면 머릿속 깜깜해지는 이야기들 가득했다. 무능 + 게으름 + 부정직 3콤보도 모자라, 직장에서 잘리느니 상사 비위에 맞는 정보를 날조하기를 선택하는 무리, 그리고 그 위의 편집증 환자 때문에 핵 퍼붓기 대전이 터지기 직전까지 갔었다는 게 읽으면서도 믿고 싶지가 않음. 이때 전쟁 터졌으면 일단 한반도부터 가루가 되고 시작했을 것이고, 이렇게 여유 있게 책 읽고 잡생각하는 독자1도 존재하지 않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현재의 삶을 이 스파이에게 빚지고 있음에도, 쉽게 땡큐라는 말이 안 나오는 것은 읽을수록 스파이라는 존재나 고르디옙스키라는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모르겠는 까닭이다. 

나라에서 임무를 부여받은 경우나 돈 욕심에 정보를 파는 경우야 그런가 보다 생각하지만, 마이클 베터니(아무리 봐도 이 에피소드는 '냉전 논픽션'이 아니라 '서프라이즈' 카테고리...)도 그렇고 고르디옙스키도 그렇고 "모든 스파이에게는 사랑받는 느낌이 필요하다"는 데서 책 읽다 꿈꾸는 줄 알았음. 뭐지 이 부부 테라피 입문서 같은 문장..."애정과 인정에 대한 이런 갈망을 이용하고 조작하는 것은 정보원 관리자에게 가장 중요한 기술 중 하나다. 담당관과 자신의 관계가 정략결혼을 한 부부 사이보다 더 심오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스파이는 지금껏 누구도 성공적인 실적을 거두지 못했다." ...부부 테라피 맞네. 한 국가의 안보가 누군가의 애정결핍에 달렸다고 생각하니 안보 이전에 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기준이 흔들거린다. 정작 마누라는 있는대로 고생시켜놓고 뭔일이여 이게.

신념을 가지고 대참사를 막았다는 점은 분명 평가할 일이지만, 가족친지들에게 후폭풍을 남긴 것을 크게 미안해하는 모습이 없고(막판 레일라의 열변에 완전 동감), 에임스에 대해 논평만 하는 게 아니라 굳이 메시지까지 전달시켜 '난 도덕적으로 OK'라는 오오라를 뿜뿜하는 데서는 뭐라고 해야할지 .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사람들이 죽었을 가능성과 비교하면 작은 일이긴 하지만...생각할수록 갑갑한데 정답 노트도 없으니 그만 생각해야지. 그저 일반인들이 모르는 곳에서, 세계대전이 한 사람의 신념 덕에 겨우 멈추는 상황이 다시 일어나는 일이 없기를 불안한 마음으로 바랄 뿐이다.

스파이와 배신자 -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중 스파이, 올레크 고르디옙스키
스파이와 배신자 -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이중 스파이, 올레크 고르디옙스키
사람의 결점과 매력엔 유통기한이 없음

비운 밥그릇 개수가 많다는 것과 사람의 성품은 무관하며, 신체적인 제약이 많아진다고 해서 갑자기 취미나 있던 성깔이 사라지고 단체 생활을 즐거워하게 될 리가 없다. 하지만 '노년의 활약'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계속 나오는 걸 보면, 노인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아진 지금도 고정관념은 죽지 않나보다. 제발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네. 시간 지나도 하는 짓 똑같을 거 뻔한데, 누가 나에게 '연륜이 주는' 지혜를 기대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정말 곤란하다.

대프니의 언동에 처음엔 아트처럼 궁시렁대다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가랑비에 옷 젖듯 홀리게 된다. 상대를 죽사발내는 것을 좋아한다는 데서 일단 백 점이고, 사교 요령이 부족하며 사과하는 걸 어려워하고, 목표는 분명히 세우고 주저 없이 행동하는 모습에 심쿵. 유아 앞에서 강의(?)하면서 흡연할 때는 식껍하긴 했지만, 한 장면이니 그냥 넘어간다. 클럽 멤버들의 명랑한 활약이 즐거웠고, 연령이랑 관계없이 고민할 일은 살면서 끊임없이 생기고, 그걸 해결하려는 시도도 계속 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는 픽션이라도 기분 좋다.(...말년에 경찰에게 쫓길 가능성도 잊으면 안 되겠지만) 누가 알리, 화이트보드에 '친구를 몇 명 사귀기'라고 적고, 한 발 나아가보는 미래가 나에게도 찾아올지...


"그들이 비열하게 굴 때는...복수해야 해요."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책방으로 향하는 눈물콧물 가득한 여정

사진 속 책방처럼 아기자기하고 따스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아웃. 중간중간 들어가는 손님들과의 일화는 참으로 훈훈하고, 소개되는 책들 중 몰랐던 것들은 꼭 읽어봐야겠다 설레기도 하지만...참 긴 시간 바람잘 날이 없었던 누군가의 인생과, 짤막하게 언급되는 시대의 그늘을 보면서 답답해서 책상에 잠깐 엎드리기도 하고, 한숨도 쉬고 욕도 좀 하고 바빴다. 시작에서 이미 현재의 훈내 나는 책방을 보았으니 안심하고 읽으면 되는데, 루스 선생님이 찌릿찌릿한 고통을 만날 때마다 대체 행복은 언제 오는 거냐고 발을 구르고 싶음...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하다못해 눈앞의 문제에서 도피를 하더라도 멍을 때리거나 은둔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살 수 있다는 것도, 그렇게 살던 사람이 거짓말처럼 한 인연과 한 장소에 만족하며 지낸다는 것도 놀랄 노자. 사람의 삶이란 정말 어디로 구르는지 모르겠다고, 매번 하는 놀라움의 돌림 노래를 또 되뇌일 뿐이다. 이야기 다 끝나고 마지막의 사진들, 특히 저자분의 잇몸 미소 보니 괜히 찡...책을 좋아하는 귀여운 손님들, 맛난 비스킷 선물, 너도밤나무와 함께 뉴질랜드의 따스한 책방이 오래오래 계속 되기를.


"상처를 입었을까? 그래서 두렵고 무서웠을까?

그렇다. 숱하게 상처받고 또 매번 두렵고 무서웠다.

후회되는 일이 있을까? 아니다.

그 모든 사건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단호하고, 한 가지 일에 모든 힘을 쏟아붓고,

같이 살기 힘들고, 감정이 깊고,

진정으로 충직하고,

사랑하기 쉽지 않은 사람을 빚어냈다고 믿는다."

세상 끝 책방 이야기 - 모험과 사랑, 그리고 책으로 엮은 삶의 기록
세상 끝 책방 이야기 - 모험과 사랑, 그리고 책으로 엮은 삶의 기록
시간 순삭하는 헌터 의사의 괴수 재난 생존기

뒷표지 소개를 보고 링을 떠올렸는데, 작가가 작가다보니 역시 다르다. 불가사리랑 에일리언 섞어서 치넨 미키토 필터를 거치면 이런 이야기가 되는구나. 브레인 담당과 무력 담당 인물이 따로 나오는 게 아니라, 무력을 갖춘 의사가 주인공인 것이 왜 이리 반가우면서 웃긴지 모르겠다. 상상력을 부채질하기보다 실감 나는 강의가 펼쳐지는 것도 여전해서, 피 튀기는 장면에 섬뜩해 하면서도 오오 치넨 선생님 오오 이러고 있고...촉수 날아다닐 때 버컬 콘 설명하는 아마도 원 앤 온리 소설가가 아닐까. 마음 속 좋아요 백 연타!

결말에 깜짝 놀라면서도, 그런 이유면 중반의 습격도 일어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좀 알쏭달쏭한 면은 있다. 그러나 유전자 수평전달 개념도 간신히 이해하는 마당에 더 따져서 무엇하리. 괴수에 과학 해설에 육탄전, 총질에 다이너마이트까지 나오고 반전도 있는 치넨표 종합선물세트 제대로 맛보았다. 확장된 세계에서의 속편도 궁금하고, 영화보다는 드라마로 나왔으면 좋겠다, 시노미야는 마츠자카 토오리가 어떨까 생각하면서 김칫국을 혼자 아주 사발로 들이마시는 중. 뭐, 헛된 상상은 죄가 아니니까요...

이메르의 거미
이메르의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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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좋은 소설 읽기] 1. 모나의 눈[느낌 좋은 소설 읽기] 2. 오버스토리
버지니아 울프의 다섯 가지 빛깔
[그믐밤] 28. 달밤에 낭독, <우리는 언제나 희망하고 있지 않나요>[서울외계인] 버지니아 울프, 《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읽기<평론가의 인생책 > 전승민 평론가와 [댈러웨이 부인] 함께 읽기[그믐연뮤클럽] 7. 시대와 성별을 뛰어넘은 진정한 성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아티초크/책증정]버지니아 울프의 가장 도발적인 에세이집 『누가 제인 오스틴을 두려워하랴』
4월 16일, 체호프를 낭독합니다
[그믐밤] 46. 달밤에 낭독, 체호프 4탄 <벚꽃 동산> [그믐밤] 45. 달밤에 낭독, 체호프 3탄 <바냐 아저씨>[그믐밤] 43. 달밤에 낭독, 체호프 2탄 <세 자매>[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
싱글챌린지로 읽었어요
아니 에르노-세월 혼자 읽기 챌린지숨결이 바람 될 때MT 법학 싱글 챌린지밀크맨 독파하기
스토리 탐험단이 시즌 2로 돌아왔어요
스토리탐험단 시즌2 : 장르의 해부학 1. 호러스토리탐험단 10번째 여정 <내 안의 여신을 찾아서>스토리 탐험단 9번째 여정 <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스토리 탐험단 8번째 여정 <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
유디테의 자본주의 알아가기
지긋지긋한 자본주의왔다네 정말로 자본주의의종말
제발디언들 여기 주목! 제발트 같이 읽어요.
[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7) [제발트 읽기] 『토성의 고리』 같이 읽어요(6) [제발트 읽기] 『전원에서 머문 날들』 같이 읽어요[제발디언 참가자 모집] 이민자들부터 읽어 봅시다.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동구권 SF 읽어보신 적 있나요?
[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9.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08.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함께 읽는 SF소설] 11.노변의 피크닉 - 스트루가츠키 형제
그믐의 흑백요리사, 김경순
브런치와 디저트 제대로 만들어보기ㅡ샌드위치와 수프디저트와 브런치 제대로 만들어보기솥밥 제대로 만들어보기
혼자 읽어서 오히려 깊이 읽은 책들
<인간의 대지> 오랜만에 혼자 읽기 『에도로 가는 길』혼자 읽기천국의 열쇠 혼자 읽기
웰다잉 오디세이 1분기에 이 책들을 읽었어요
[웰다잉 오디세이 2026] 3. 이반 일리치의 죽음[웰다잉 오디세이 2026] 2. 죽음을 인터뷰하다 [웰다잉 오디세이 2026] 1. 죽음이란 무엇인가
독서모임에도 요령이 있나요?
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밤] 7. 북클럽 사용설명서 @시홍서가
모집중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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