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 단편선 1[에드워드 버나드의 몰락]
2025-09-13 23:39:56
"책은 항상 읽었잖아."
"시험 때문에 읽은 거지. 대화할 때 뒤처지지 않으려 읽기도 했고. 정보를 얻기 위해 읽었고. 여기서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게 되었네. 말 같은 말을 하게 되었어. 대화가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라는 걸 아나? 하지만 여유가 부족해. 과거에 나는 늘 너무 바빴어. 그간 너무나 중요하게 느껴졌던 모든 삶이 점차 사소하고 저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네. 애면글면 아등바등 살면 뭐 하나? 난 지금 시카고를 생각하면 돌투성이 칙칙한 잿빛 도시와(감옥과 뭐가 다른가?) 끊임없는 소동이 떠오르네. 그 모든 활동이 결국 무엇으로 귀결되지? 거기서 삶의 진수를 끌어낼 수 있을까? 허겁지겁 사무실로 출근해서 밤이 되도록 줄창 일하다가 허겁지겁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극장에나 가는 게 우리가 세상에 온 이유인가? 내 젊음을 그런 식으로 보내야 한다고? 큰 돈을 번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지. 젊음은 아주 잠깐 우리 곁을 머물다 가 버린다네. 베이트먼. 그러다 노인이 되면 나는 무얼 기대하며 살아야 하나? 아침에 서둘러 집에서 사무실로 출근하고, 밤이 되도록 줄기차게 일하다가 다시 서둘러 귀가해 밥을 먹고 극장에나 가라고? 큰돈을 번다면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지로 모르지만 난 모르겠네. 각자 천성에 따라 다르겠지. 하지만 큰돈을 벌지 못한다면 그래도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인가? 난 그보다는 제대로 살고 싶어, 베이트먼."
"그럼 자네는 인생의 어떤 것에 가치를 두나?"
"유감스럽게도 자네는 비웃을지 모르지만, 내게 인생의 가치란 아름다움, 참됨, 선함이야."
('에드워드 버나드의 몰락', 120~121쪽)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인생의 가치란 게 있을지 모르겠다만. 그런데 아름다움, 참됨, 선함은 어떻게 어디에서 찾을 수가 있는 거지? 여전히 내게 삶은 무겁고 힘들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