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몸, 케이크와 맥주
2025-10-08 14:29:25
아름다움은 막다른 골목이고, 한번 도달하면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산봉우리다. 그것이 우리가 타치아노보다 엘 그레코에, 라신의 완전한 대작보다 셰익스피어의 불완전한 업적에 도취하는 이유다. 아름다움에 대한 글들이 너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나도 조금 끼적여 보았다. 아름다움은 심미적 본능을 만족시킨다. 하지만 대체 누가 만족하기를 원하는가? 배부른 것이 진수성찬 못지않게 좋다는 말은 어리석은 자에게나 해당된다. 아름다움은 지루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142쪽)
"그럼 된 거야. 안달하고 질투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지금 얻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면 안 돼? 기회가 있을 때 인생을 즐겨야지. 어차피 100년 후엔 우리 모두 죽을 텐데 뭐가 그리 심각해? 할 수 있을 때 우리 좋은 시간 보내자."(224쪽)
: 맞아, 니 말이. 근데, 니가 즐기는 동안 너 때문에 즐겨야 할 시간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있어. 왜 너는 되고 너 때문에 그는 그럴 수 없어야 하는 거지? 이 위선자.
나는 한숨을 삼켰다, 내가 진지하게 나가면 꼭 사람들은 나를 비웃는 경향이 있고, 나 역시 감정이 격앙되었을 때 쓴 내 글을 시간이 흐른 뒤에 읽고는 곧잘 자조적인 심정이 되곤한다. 진지한 감정이란 본디 부로리를 내포하는 게 분명하다. 나로서는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지만, 다만 영원불멸한 지성이 보기에는 하찮은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처지에 온갖 고통에 시달리며 아등바등하는 인간이 그저 농담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276쪽)
하늘은 높고 그 앞에 아파트 한 동이 위엄있게 서 있다. 우리집 앞에 서 있는 얼마 되지 않은 저 아파트. 우리 집과 비교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도 저기서 살고 싶다.
닭장 같은 상자 속에 바글바글 살다보니 사는 모습도 그 안에서 하는 생각도 비슷비슷해지는가 보다. 손바닥 만한, 그것도 같은 공간에 층층이 겹쳐 살고 있으면서 저 공간 하나씩 늘려보겠다고 아웅거리며 살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가. 그런 주제에 삶의 의미를 들먹이다니, 삶의 실상에 비해 희망이 너무 거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