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론적 J
2025-09-03 11:20:07국민 심리검사 MBTI에 따르면, 나는 P유형인데 심지어 만점자다. 상당한 세월에 걸쳐 서너 번, 그것도 전문가 입회 하에 각 잡힌 검사지로 검사를 해보았는데, 결과에는 별반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런(또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인간임이 그럭저럭 맞는 것 같은데, 그중에 유독 확고한 것이 바로 P이다. 쉽게 말해 되는 대로 사는 인간이라는 거다. 초딩때부터 지금까지를 거칠게 반추해 봐도 나는 늘 쫓기듯 살았고,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 식으로 하루하루를 넘겼던 듯하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나마 그 결과물이 어느 정도 유효했기에 생긴대로(?)를 유지하며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생긴대로 사는 것이 옳은가?' 하는 회의를 품게 하는 상황들에 맞딱드리기 시작했다. 하룻밤을 꼴딱 새워 뿜어낼 수 있는 에너지가 그 한계를 드러내고, 믿었던 기억력이 나를 배신하기 시작하면서, 쉽게 말해 '노화'라는 현실이 내 삶의 태도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보내오는 것이다. 붓다가 말한 '괴'의 단계가 시작되었음을 깨달으며, 와르르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던 시간이 지난 봄부터 여름까지이다.
그리고 이제 내린 결론은, 생긴대로 살아온 방식을 일정 정도 수정해야 한다는 것, 기질은 P일지언정 붕괴하지 않기 위해 J가 되야 한다는 것, 즉 '방법론적 J'를 채택하는 것이다.
글쓰기의 귀찮음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여기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의사-J형 인간이 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 글에도 전자서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