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2024-11-16 00:01:57![[큰글자도서]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https://image.aladin.co.kr/product/28142/46/cover150/8932038929_1.jpg)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던 날, 마치 내 가족의 일인냥 들뜨는 나를 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인터넷 서점을 열고 '한강' 이름을 검색하고 내가 아는 작품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적어도 노벨문학상을 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작가 작품은 소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책 주문은 서둘러 했는데, 책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을테고 많은 사람들이 책을 찾고 있을테니 출판사, 인쇄소, 서점 등 관계자들은 얼마나 정신이 없었을까? 더구나 예상치 않고 다른 작가들과 계약을 맺었을테니 더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는 도중, 사랑하는 '책 먹는 사라'님이 훅~ 던지셨다.
"우리 한강 작가 작품 읽기 할까요?"
바로 받았다.
"네. 해요. 우리 해요."
한창 워크숍이 진행되는데, 죄송하게도 마음이 또 들뜨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강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소설책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처음 읽는 소설은 아니나 주로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는 읽어도 소설은 깊이 빠져들지 못하는 편이었다. 아마도 현실이 아닌 허구라는 나만의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한강 작가의 작품은 이해하기 어렵고 어둡다는 생각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았다. 역시 경험이 많은 사라님이 초창기의 작품부터 접근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선택된 작품 "여수의 사랑"
"여수의 사랑"은 한강 작가의 소설집이다.
내가 가진 책으로는 여섯 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었다.
'여수의 사랑',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질주', '진달래 능선', '붉은 닻'
각 작품들은 가족의 죽음이나 사고, 질병을 목도한 인물들이 겪는 외로움, 고단함, 죽음에 대한 고뇌 등의 모습이 펼쳐진다.
...... 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어요.
<여수의 사랑> 중에서
...... 바로 거기가 내 고향이었던 거예요.
그때까지 나한테는 모든 곳이 낯선 곳이었는데,
그 순간 갑자기 가깝고 먼 모든 산과 바다가
내 고향하고 살을 맞대고 있는거예요.
<여수의 사랑> 중에서
태어난 곳조차 정확히 모르는 자흔, 삶이 너무 외롭고 고단하여 고향을 찾으면 무언가 안정을 찾을 것 같은 자흔의 귀소 본능이 아닐까
어디로 가든, 난 그곳으로 가는거예요.
한강 작가의 작품에는 '밤', '어둠'이 배경인 경우가 많다. <어둠의 사육제> 역시 밤이 배경이고 암울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작가의 묘사로 주인공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6개의 작품 중 나를 가장 사로 잡은 인물은 <질주>에서의 인규와 진규의 어머니
동네 아이들에게 얻어 맞아 죽었다는 진규. 그 보상금만 챙긴 인규의 의붓아버지. 인규는 자신만이 동생을 잃은 아픔을 갖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식을 잃은 부모'일 것이다.
내 경험 탓인지, 박완서 작가가 25살의 아들을 잃고 고통속에서 쓴 <한 말씀만 하소서> 탓인지 인규 어머니의 절규가 뇌리에 박혔다.
다시 너를 낳고 싶다 진규야!
다시 너를 낳고 싶구나, 돌아오겠느냐?
나에게 돌아오겠느냐?
<질주> 중에서
한강 작가의 표현력, 어휘력에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대충 뉘앙스만 아는 단어들도 있었다.
- 박명: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 얼마동안 주위가 희미하게 밝은 상태
이 박명이란 단어는 한강 작가의 작품에서 자주 표현되는 단어임을 알게 되었다.
- 사위다: 불이 사그라들어 꺼지거나 삭다. 재가 되다.
<여수의 사랑>은 한강 작가가 25세때 쓴 초창기 작품이라고 한다. 20대의 필력이라는 사실에 입을 다물수 없을 정도로 놀랍다. 배경이나 감각에 대한 묘사나 너무나 섬세한 감정 표현을 보면서 '미쳤다'는 말이 나온다.
다들 한강 작가의 작품은 어둡다. 비극이다. 잔인하다고 한다. 왜 작가는 이렇게 어둡고 음침한 글을 썼을까 내내 생각하게 된다. 너무나 이기적인 요즘의 세태, 타인의 고통을 표현하면서 끝내 절망을 극복하고자 하는 작가의 소망을 얘기하고 싶은게 아닐까?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 많은 독자들의 격려 중 '앞으로 10년만 글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10년이면 3편 정도는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답을 했다. 그녀의 머리 속에는 어떤 생각들이 들어 있는지, 앞으로 나올 작품의 배경은 어떤 것일지도 사뭇 궁금해진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음으로써 드디어 노벨문학상을 원어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헤르만 헤세나 다른 노벨상 수상 작가들의 번역된 책을 읽으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끙끙대던 일이 한강 작가의 글로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한강 작가와 같은 한국인이어서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