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네 정말로 자본주의의종말
2025-12-21 22:49:46
대학을 졸업하기 전 취업해 허리디스크까지 빼가며 일한 지 어언 20여 년, 자진해서 출근을 끊은 지 6개월이 지나간다. 나를 증명한다고 여겼던 연봉과 신성했던 월급이 사라짐에 따라 나름의 자부심 및 돈의 가치 기준이 흐려졌고, 치즈돈가스가 먹고 싶은데 오늘 먹을 자격이 있는지를 한 달 동안 고민하던 중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본주의의 미래가 궁금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선진국이라 불렀던 -제국과 식민을 토대로 자란- 나라의 민낯을 봤을 때였나, 노동소득보다 금융소득의 중요성이 유행처럼 번질 때부터였나, 아니면 시발비용으로 떠난 발리에서 전세계 디지털노마드와 현지 청년들과의 빈부격차를 체감했을 때였나.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떻게든 노력해서 적응하려고 했던 세상이 점점 더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끈덕지게 따라다녔다.
왜 더 이상 가난하지 않으면서 가난을 적대시할까?
왜 이만큼이나 성장했는데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나?
왜 대출금을 갚으면 바보 소리를 듣나?
왜 환경을 보호한다는 텀블러와 에코백이 환경을 망치나?
왜 과학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도 발전을 멈출 수 없나?
너무나 풍요롭고, 모든 게 빠르고 나를 포함해서 다들 뭔가에 홀린 채.
더는 싸구려라고 부를 수 없는, 테무에서 구매한 마우스를 잡고 이 가속의 끝을 상상하게 된다.
파산한 그리스, 늙어가는 북유럽 국가들, 미국에 경제와 주권이 묶여있는 일본을 보면서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이 미친 질주를 멈추기엔 부족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경제 질서의 등장이 녹색성장이 아니라 생존경제일 것이라는 주장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시간을 살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미국식 천박한 자본주의를 욕하지만 일어나자마자 미장 시세 체크하는 사람과 남은 백세시대의 겨울을 모기와 함께 보내기 싫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