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얼굴
핸드 투 마우스 02
2025-09-24 23:01:12“ 오하이오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나는 일주일에 약 스물다섯 시간을 일했다. 시간당 7달러 50센트의 임금을 받아 한 주에 187달러 50센트를 벌었다. 같은 일터에서 마흔 시간을 일하던 남편은 300달러를 집에 가져왔다. 1년 동안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일해서 우리 둘은 약 2만5000달러를 벌었다. 2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보다 9000달러가 더 많은 금액으로, 한 주에 200달러 정도를 초과한 액수다. 생계 유지는 가능했다. 빠듯하게 말이다. 안락함을 느끼거나 휴식을 취하거나 죄책감 없이 하루를 쉬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해 우리는 저소득층에 속하는 미국 가구 3분의 1의 제일 위에 위치했다.”
『핸드 투 마우스』 p.42, 린다 티라도
살아남을 만큼만 살아간다고 해서 살 수 있지는 않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가난에 대해 어떤 이유에서인지 머리 속에 박힌 이미지가 있었다. 넝마 수준으로 헤진 옷, 떨어진 음식이나 곡식을 주워먹는 모습, 부스스하다 못해 신체의 일부인지 헝클어진 무언가인지 구분 못할 머리카락 등.
누구도 그것이 가난이라고 정의 내리지 않았음에도 나는 어째서인지 '가난'이라는 단어에서 항상 그 광경을 떠올린다. 하지만 가난의 모습은 절대 그런 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가난은 극적인 모습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우리가 주목하고 싶지 않고, 주목하려 들지 않으며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치챌 수 없는 평범함의 언저리에서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부유함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개념임을 인지하며 살아간다. 나보다 좀 더 부유한 사람들, 훨씬 더 부유한 부호들, 그보다도 더 영향력 있는 세계적 거물들. 하지만 가난에 대해서는 왠지 절대적 개념으로 인지한다.
가난은 깊은 낭떠러지 속 어둠 의 형태가 아니라 굴곡이 있는 내리막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