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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08
2025-09-30 23:14:03“비밀 장부에는 각 회사 동업자들의 증서와 지분, 인출액에 대한 기록과 아울러, 아이들의 출산과 선조들의 삶, 일상적인 생각 등을 담은 다소 사적인 일기 형식의 기록이 포함되었다. 이익의 세계와 신과 결부된 일상적 삶의 세계를 망라하는, 이보다 더 개인적인 글은 없었다. 한 가지 주된 기입 항목은 화려하게 채색된 값비싼 기도서와 무척 후한 교회 기부금, 빈민 구호품을 나열한 목록이었다. 그는 이익의 일부를 교회로 보냈고, 언제든 자신을 위해 청어나 오렌지나 와인 같은 사치품을 샀으며, 일부는 구호소나 수도원에 기부했다.”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 르네상스부터 리먼사태까지 회계로 본 번영과 몰락의 세계사』 p.50~51, 제이컵 솔 지음, 정해영 옮김, 전성호 부록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이 이익 추구와 신앙의 사이에서 갈등할 수 밖에 없던 이유는 그 둘이 구분할 수 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온갖 지출이 일어나고, 비밀스런 회동 속에서 사업과 이익이 발생한다. 그들의 삶을 영위하게끔 해주는 재산은 근본적으로 물욕의 근원이지만 재산이 없이는 일상을 영위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직업과 삶을 허락한 신의 자비를 매순간 흠모해야 함에도 천상의 신과 지상의 때묻은 돈은 섞이기 어렵다. 이 불가분의 관계를 어떻게든 덜어보고자 보다 많은 헌금과 종교적 기부에 매달렸지만 회계장부에는 신에 대한 지출과 사업에서의 수입이 뒤섞여 기록된다. 이들의 삶도 장부와 마찬가지로 정리할 수 있되, 분리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