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글귀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09
2025-09-30 23:38:26“다티니 장부의 범위와 수량은 어마어마했다. 그런 규모의 장부를 기록하는 것은 개인적인 자제력과 관리상의 기강이 필요한, 엄청나게 힘든 노동이었다. 다티니는 고급 와인과 옷, 자고새와 보석, 소녀 노예를 즐기는 사람이었지만, 또한 꼼꼼하게 일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사업 관리인에게 편지를 써서, 밤낮으로 주어진 업무에 몰두하고 항상 필기를 하고 늘 장부를 이용해 상황을 상기하라고 주문했다.”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 르네상스부터 리먼사태까지 회계로 본 번영과 몰락의 세계사』 p.51, 제이컵 솔 지음, 정해영 옮김, 전성호 부록
품질관리라는 과목을 대학에서 들은 적 있다. 교수는 두꺼운 책을 단 하나도 설명하지 않고 대신 늘 품질관리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단 몇가지의 언어로만 설명했다. 꾸준함, 항상성, 기록, 재평가들이 그것이다.
그 교수는 기말고사 시험 겸 과제로 학생들 자신의 결점이나 습관 중 고치고 싶은 것을 하나 골라 한 학기동안 그 단점을 고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레포트로 내라고 했다.
나는 팔자걸음이 심했기 때문에 팔자걸음을 의식적으로 고쳐서 걷도록 노력하는 과정을 보고서 형태로 담아냈다. 하루에 얼마나 걸었는지, 어디를 걸었는지, 몇 분이 걸렸는지, 그 중 머리 속으로 의식해서 걸은 시간이 몇 분인지 등등.
어떻게 기록하고 데이터화 하는지 부터가 문제였다. 시간을 어떻게 잴 것인지, 어디서부터 잴 것인지 등등 사소한 영역부터 고민이 시작된다. 설령 측정방식과 기록을 시작하더라도 말 그대로 이걸 '꾸준히 한 학기 내내' 옮겨 적고 정리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결국 팔자걸음을 고쳤나? 아직도 고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때의 패턴이 남아 지금도 걸을 때마다 중간중간 의식하는 습관은 갖고 있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꾸준하게 간다는 것은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집중하고 관측하며 기록하여 훗날에도 돌아볼 여지를 남기는 것. 피렌체의 사업가였던 다티니는 이미 그걸 알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