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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11
2025-10-10 21:57:07모델은 단순했다. 모든 것을 성실하게 회계장부에 기입하고 분명하게 계산해야 했다. 그리고 항상 걱정하고 긴장해야 했다.
『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 르네상스부터 리먼사태까지 회계로 본 번영과 몰락의 세계사』 p.52, 제이컵 솔 지음, 정해영 옮김, 전성호 부록
회계부정이 근절되지 않으며, 오늘날 그 규모가 더 광범위해지고 복잡성이 커지는 이유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과거의 토스카나 상인들은 복식부기와 회계 기장을 본인들이 직접 작성할 줄 알아야 했고, 나중에 사업의 규모가 확대되어 본인이 손을 댈 수 없더라도 최소한 장부를 감사하고 감독할 줄 알아야 했다.
더구나 과거의 상인들에게 회계장부란 단순히 상업의 이익과 재산관리를 넘어, 탐욕과 재물에 대한 욕심이라는 죄에 빠지지 않게끔 스스로의 상태를 끊임없이 객관화하고 되돌아보는 자아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다. 인간적 가치나 도덕과 가장 관련이 없을 법한 숫자와 회계의 영역은 중세까지만 해도 종교와 더불어 내세에까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그 결과 상인들은 비밀장부를 따로 둘지언정 자신들의 수입과 지출, 개인적 욕망에 의한 소비와 타인에 대한 기부를 언제나 정산하고 자신의 죄와 덕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하며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회계는 이제 전문직과 자격증, 객관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정신에서 가장 멀어졌고 그 결과 역설적으로 더더욱 재물에 가까워져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