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로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안녕하세요,
현재 한국사회의 상황에 대해서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상황을 볼 때 처음에는 직접적인 상황에 대한 관심만 많았지만, 지금은 좀 더 세밀하게 인물들과 그들의 심리, 그리고 마음들이 부딪히는 좀 더 세밀한 생각을 하게 하는 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아직 우려감은 있을 수 있으나, 일단 급박한 게엄은 무산되었으니...
처음 든 키워드는 폭력이었습니다.
1. 두번째 삶-정용준님이 생각났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우지운을 악마라고 불렀다. 그렇게 부르니까 정말 그렇게 보였다. 걷는 모습과 웃는 얼굴, 눈빛과 표정 모두 다 악마처럼 보였다.
나쁜 놈들 사이에서도 나는 악마였다. 진짜 나쁜 짓을 저지르고 들어온 쓰레기 같은 놈들이 나를 욕했다. 뉴스에서, 다큐멘터리에서 지속적으로 나오는 나는 그들에게마저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인지됐다. 그들은 나와 사건을 영화를 보듯 감상하고 피해자의 고통에 동감했다. (...) 그렇게 악마들 속에서 악마 취급을 받아가며 살았다.
그런데요. 제가 저지른 나쁜 짓 말고....나쁜 짓을 저지르도록 만든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도 될까요? 나쁜 놈이 되게 만드는 나쁜 놈이요.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사람을 악마나 마녀가 되게 만드는 사람
그는 나쁜 행동을 하도록 시키지 않았지만 나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합리화했고 정당화할 수 있는 지식을 줬다. 나는 그에게 본성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난 궁금했어. 네가 끝까지 개 친구로 남을지. 그런데 역시, 너는 친구를 버리고 괴롭히더라. 하도 괴로워하길래 인간은 원래 그런 존재라고 말해줬더니 또 그 말을 믿고 편하게 마음껏 괴롭혔잖아.
널 친구라 생각했으니까. 배신당한 아픔이 주먹으로 맞는 것보다 더 아팠던거야.>
마지막 대목은 정말 쓰고 싶은 명대사인데 못쓰겠다. 너무 강렬해서...
이 작품이 강렬했던 것은 우리가 '악마'를 규정하고 그 규정하고 나서는 '조리돌림'을 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대화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아닐까? 평범한 사람들마저 이렇게 가는 세상. 어쩌면 이미 '조선시대 후기의 양당,노론중심주의'로 우리는 가고 있고, '실학'이라 했던 것이 교수 강명관님의 글 '과거, 귀족, 개혁'에 나오듯 실학도 '간절함'이 상실된 처방이었다면, 현재의 실학과 같은 현실에 기반을 되자는 정당인들도 ' 자기의 승리만을 목표' 로 하는 것이라면...이미 조선시대후기의 부정적인 측면이 강화되는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지...
악마를 규정하고, 조리돌림을 하고, 죄의식이 없어지는 메커니즘...
2. 그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정아은님이 생각났습니다.
<여성의 육체에 멋대로 손대고 제 것처럼 구는 것은 분명 범죄고 폭력이다. 폭력으로 처벌받아야 한다. (...) 그러나 과거의 행위에 대해서는, 그렇게 간단하게 말 할 수가 없다. (...) 사회의 상식이 급변했다면 그 변화 속도를 따라갈 기회를 조금이라도 마련해주어야 하지 않는가? 범죄가 아니라 범죄로 인식하고 갱생할 기간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 예전에는 터프함 또는 과격함으로 축소되고 용납되었던 크고 작은 범죄행위를 모두 잃고 낙인찍혀 남은 평생을 쓰레기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면, 어느 누가 성범죄자임을 인정하고 속죄하려 들겠는가?>
3. 정지아님의 인터뷰글입니다.
<< 우리는 보통 상처에 지는 사람이 있으면 왜 저러니, 하고 이야기하지만,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으면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이를 테면, 아버지에게 맨날 맞고 자라던 아이가 커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됐다면, 이 친구를 나쁜 사람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이 세상에는 많다. 사회의 책임도 일부 있는 것이다. 이런 정도의 마음이 드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려, 마흔이 돼서야 깨달았다. 미운 사람도 있지만, 왜 저렇게 됐을까, 하고 보려 노력한다.”>>
4.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신연식님의 인터뷰
"진정한 약자는 타인의 폭력에 아프다는 소리도 낼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제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약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5. 신형철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 문학이 귀한 것은 가장 끝까지 듣고 가장 나중에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수도 폭력이 될 수 있다.>
6. 단요님 인버스
< 진정성에 대한 숭배를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누면 서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쌍방이 대등한 관계일때에만 성립한다. (...) 따라서 그들의 소통은 허위와 폭력의 게임이어야만 했다. 진정성과 정직의 힘을 동경하는 이들이 그 역학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악질적이었다.
=> 다른 시각으로 보았다. 무척 강한 표현이다.>
7. 말을 확정하는 것에 대한 주저함의 이유
<<안 돼, 성수야. 말하지 마. 그동안 서로 말하지 않았던 건 다 이유가 있어서야. 제발 그러지 마. -정용준의 사라지는 것들>>
8. 필립 짐바르도 자서전
< 맡은 역할이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겁니다. 그것이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에 담긴 가장 큰 메시지입니다.
강한 교도관이 되달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교도관들은 고압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실험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2명의 죄수가 교도관 전원에게 반발하면서 언어적.물리적으로 저항했기 때문이다.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 교도관은 '죄수들이 위험하다'라고 판단했다. 상황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몇몇 교도관도 이전과 달리 강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파괴적인 지도자가 가진 영향력은 막강하다. 한가지 예로 리더가 특정집단이나 사람을 '나쁘다' '악하다' 라고 묘사하거나 결함을 가진 외부인으로 표현하는 경우 구성원들은 그들에 대해 기존에 없던 편견과 차별의식을 갖게 된다. 노골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많은 국가의 정부 형태가 민주주의에서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독재정권으로 바뀌고 있다. 폭군과 독재자는 인간의 본성을 비하하고 유대감을 손상시킨다. 이처럼 일부 엘리트 계급이 지배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영웅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영웅은 불의에 기꺼이 저항하고 행동하는 평범한 사람을 말한다.
죄수역할을 맡은 학생들은 스스로 교도소 생활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었어요. 심리적으로 말이예요. 부정적인 현재를 살고 있었던거죠. 공상 같은 걸 할 수 있는 시간이 분명 있었거든요. (...) 하지만 현재 상황에 대한 부정적 대화밖에 오가지 않았어요. 그들이 암묵적으로 현재라는 시간대를 살기로 선택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
9. 기억의 장례: 문화대혁명이라는 폭력의 끝판왕
강자가 아닌 사람에게 폭력은 반드시 저항, 되치기와 연계해서 생각해야 한다.
< 문화대혁명은 낯선 사람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바로 가까운 사람이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더 이상 신뢰가 아니라 의심의 핵심이었다.
무엇보다 정치 기구들의 의지를 무너뜨리기위해 대중들을 동원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우리는 우리자신이 가장 양심적이라고 믿을 때조차도 스스로를 속일 수 있다.
사건은 또한 거리를 두고, 흐릿하게 만들고 회피하는 용어다. 그것은 무언가 중요한 일이 일어났음을 말해주지만,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 부끄러워도 써야하고(아니면 독한놈들만 행동하고 평가받고...대부분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은 물러나서...) 그 부끄러움에 또 욕먹는 비평을 해주는 또다른 필자가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좋은데...
"이런 운동에서는 무슨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이런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녀는 이미 죽었다. 그것은 과거다...걱정하거나 무서워하지마라. 학교로 돌아가라. 비밀을 지켜 이 일의 여파가 확산되지 않게하라고 대답했다고 회상했다.
=> 고위지도자가 사건을 저지른 아이에게 한말이라고 한다.
이것을 부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이 방향성보다 일단 문제를 맞이할 때 바로 직면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요즘 시대에 책임과 문제를 직면하겠다는 어른을 만나는 느낌이다. 어른의 나이에도 선동가만 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문제를 보고 자기일처럼 해결하기보다 이것의 문제에 대해서 남의 일 보듯이 선동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선동이 오히려 선으로 오해되는 세상. 가장 가벼운 선의가 자기 노력과 돈이 아닌 남의 노력과 돈을 활용해서 생색내는 것이라면...요즘 그런 선동이 너무 많은 것은 아닌지...
나쁜 일들이 너무 많고, 나는 그것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것을 기록할 수 있다
=> 아주 공감
그녀는 더 많은 명단을 모으고, 더 많은 살인과 더 많은 자살을 모았다. 2000년에 중국인추모관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해 죽은이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그래 사람들의 사연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
그녀의 남편인 왕징야오는 역사가였다. 그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항의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기록했다.
=>기록....
어린시절 우리는 우리가 주도했던 노예무역보다 노예제 폐지에 대해 더 많이 배웠고, 노예 소유자에게 막대한 보상을 주었다는 것은 전혀 배우지 않았다.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나라의 부가 노예들의 뼈위에 세워졌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 p125는 역자가 아닌 저자의 영국인임의 시각에서 자국의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유일한 페이지이다. >>
10. 대체된 폭력
< 폭력, 특히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가하는 육체적 폭력이 법적으로 금기된 지금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대체된 폭력을 찾는다. 뉴스, 소설, 영화>한국작가가 읽은 세계문학
학생때 너무 드문드문 봤던 고재열의 글
<행동하거나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약자에 대한 감수성 게임에만 열심이다.
약자에 대한 지나친 감수성의 발로로 그들은 당사자가 문제 삼을 필요 없다는 사안에도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그런 태도가 당사자를 ‘이런 침해에 문제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으로 전락시킬 수 있음에도 거기에는 무심하다. 단지 자신의 문제의식을 뽐내려는 그들의 태도는 ‘내가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라는 전제를 달며 충고하는 꼰대들의 변명과 다를 바가 없다. 약자에 대한 감수성을 겨루기 위해 그들은 매번 다른 신상 PC논쟁을 들고와서 우쭐거린다. ‘나는 이런 것에도 민감하게 느낀다’고 과시한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대접받으려 하는 것이 꼰대의 역학이다. 더 문제의식을 느낀다고 해서 우월감을 느낀다면 그것 역시 꼰대다.">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2090300065
"프랑스 언론도 상당히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7일부터 TV 뉴스와 토론 프로그램마다 “왜 Z세대(1990년 이후 출생 세대)는 제무르를 지지하는가”를 묻고 답하는 내용이 쏟아졌다. 이 중 두 가지 이야기가 바로 한국을 연상케 했다. 하나는 기성세대보다 가혹한 취업 환경과 소득 감소로 인한 불안감. 또 하나는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기성세대가 정의한 ‘약자’에 대해 무조건적 관용을 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피로감이다. 이 두 가지가 젊은이들을 분노케 하고, 결국 이민자와 EU에 화살을 돌리며 “단칼에 해결하겠다”고 외치는 포퓰리스트의 지지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https://www.chosun.com/opinion/correspondent_column/2021/12/09/2RJWV4RJTFHGFGCD4PKW4VPHDE/
우리는 이 SNS, 가상의 공간의 나를 PC(정치적 올바름)으로 치장하고 실제 삶이 아닌 SNS상의 사건에 대한 평가(소위 입)만으로 자기를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가상의 공간의 나가 진짜 나인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방의 버스 시스템 관련 글이 올라왔길래 댓글로 ‘지방은 환승 안 되지 않나요?’라고 썼다가 무안을 당했다. “네, 지방은 인력거 타고 다녀요”, “네, 부산은 자갈치 타고 다닙니다”, “저 지방 사는데 말 타고 다녀요”. 지방의 교통이 낙후됐다고 비웃는 글로 오해한 사람들이 내 글 하나를 이리저리 공유하며 조롱하고 있었다. 아니, 저기요. 저도 지방 사람이라고요! 수도권 중심 발전으로 인한 지역 소멸을 누구보다 걱정하는 1인이라고요! 이런 말을 해봤자 이미 내 글은 지방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서울 사람의 무식한 글로 치부되고 있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22924.html
단지 서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답답하지 않으냐” 물으셨다면
11. 폭력의 시대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는다
영화는 모르겠는데 드라마를 안 본다는 것은 대단한 힘이다.
사람잡는 폭력의 시대라는 말도 와닿는다.
"영화와 드라마를 보지 않은 지 좀 됐다. 화제의 영화는 개봉 전에 예약까지 하며 기다릴 정도로 극성스러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젠 전설의 한순간처럼 느껴질 정도다. 최근 10여 년 동안 영화관에 간 게 서너 번은 될까. 아마도 오래전 영화관에서 당시 꽤 화제가 됐던 한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나와 버린 후부터일 거다.
무감각한 폭력, 무심한 살인이 도처에서 일어나는 사회. 이 글의 시작이 영화와 드라마였다고, 이런 현상들이 영화·드라마·게임 등을 모방해서 일어났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성공한 상업적 대중문화 상품들은 시대의 숨겨진 욕망을 읽어 그 욕망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고 관객의 감각에 아부하는 것들이 많다. 폭력과 음모가 난무하는 대중문화 상품은 그저 이 시대의 산물이고, 최고의 부가 가치를 올리며 승승장구한다.
폭력의 미학이 칭송받고, 게다가 대중들이 살인이나 물리적 폭력을 휘두르지 않아도 폭력을 즐길 수 있는 ‘폭력 놀이’가 흔하디흔한 시대다. 몇몇 스타급 빅마우스와 일부 언론은 주기적으로 한 사람을 정해 ‘표적 이지메’를 하며 명성을 쌓고, 대중들은 ‘그자를 처단하라’고 부추기는 각종 혐오 댓글로 이 폭력적 시대의 ‘유지와 발전’에 힘쓴다. 이런 폭력적 감성에 충만한 선동글을 보고 있자면 죽을 때까지 때려 놓고 죽을 줄 몰랐다고 하는 자들이 오버랩된다.
우리는 알지 않나. 삶이라는 게 얼마나 힘들고 팍팍한지, 똑 떨어지는 선행만 하며 살 수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중들도 남들을 비난하려고 곤두세웠던 손가락을 거두어들이고, 대중문화계도 언론도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이 사람 잡는 폭력의 시대를, 함께 사는 세상으로 바꾸는 ‘슬기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31262
12. 짧은 결론-폭력의 시대에 잊혀진 존재를 함께 할 방법은 없을까?
오늘 배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물리적인 것보다 사이버상의 폭력이 더 주목받는 폭력의 시대를 산다는 느낌과 그런 시대에 정치적 올바름이 연결되면서 실제 "삶"과 연결되지 않는 "글" 로 사람을 폭격하는 시대. 과연 서로 누가 더 "약자" 임을 강조해야한 반면에, 생색과 수혜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하고 실제 책임을 져야 하는 "잊혀진 존재" 들은 폭력의 시대가 무서워 말을 못하는 소수자. 진보인 고재열씨도 정치적 올바름의 불편함을 언급하는 상황. 그럼에도 현실세계에서 가상공간으로 권력의 이동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다. NFT, 메타버스, 블럭체인, 코인등 가상공간으로 이동하면서 불편함을 넘어 돈, 권력마저 가상공간의 "스피커(떠뜰어서 자기가 가진 것을 사 줄 투자자들이 늘어나는 것이 제일 중요한 부의 방식이기에..)" 들로 넘어가는 시대. 현실세계는 숱한 커피숖들이 무너지고 자영업, 상가소유주등이 무너지는 상황. 권력은 "잊혀진 존재" 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안될까?
잊혀진 존재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번 붙여놓는 것으로 글을 마감하고자 합니다.
"1883년 미국의 사회학자 윌리엄 섬너(William Sumner)는 C를 ‘잊혀진 사람’(The Forgotten Man)이라 불렀다. 그는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고자 했던 진보주의자들이 이념적 열정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평범한 시민들에게 사회적 프로젝트의 비용을 부담하도록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C는 열심히 일하고 투표하고 기도하면서 묵묵히 나라를 위해 세금을 내는 존재다. A와 B가 정부, 정당, 노조, 이익단체 등 조직화된 집단이라면 C는 이들 틈에 가려진 삶의 개별적 주체들이다. 섬너가 볼 때 C는 사실 잊혔다기보다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루스벨트식(式) 잊힌 사람이 아닌, 섬너의 원래 잊힌 사람들은 뉴딜로부터 혜택을 받기는커녕 대형 국책 사업과 복지 확대에 필요한 거대 예산만 세금으로 떠안았다. 이들 순진한 국민은 공공 구호에 의존하기보다 혼자 힘으로 살고자 노력하면서 경제 위기의 극복만 조용히 기다렸다. 사실상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감사합니다.


작가에게 여행 더 나아가 그 지역에 살아볼 기회를 준다면, 작품에 그 배경이 나오지 않을까? 이미 많은 로컬에서 하고 있지 않을까?
=>제 입장에서는 이글을 쓴 소설가 김이설님은 이미 유명한 분이고 매력적인 글쟁이입니다.
<내가 유명 작가가 아니어서 속상하다. 인기가 많은 소설가였다면 나를 초대해 주는 곳이 많았을 텐데. 멀리 제주도의 작은 도서관이나 부산의 바다가 보이는 책방에서, 혹은 제천의 산골 그림책 서점이나 남원의 헌책방에서 나를 불러 줘 소소한 북토크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초대만 해 준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당장이라도 달려갈 텐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일을 핑계로라도 여기를 떠날 수 있는, 지금과 멀어질 수 있는 시간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못 갈 것도 없다고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도 아니다. 나는 운전을 못 하는 장롱면허인 데다 수험생 부모로서 여행은 언감생심. 때가 때이니만큼 이동하는 일 자체도 부담이다. 그러니 눈치 안 보고 떠날 수 있는 방법은 먼(물론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곳에서 나를 불러 줘야만 가능한 것이다.>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10506030003&wlog_tag3=naver
안녕하세요,
이 책을 통해서 저자의 시각으로 현대 문화에 대해 한번 정리한 시간이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은 다를 수 있으나, 문화를 해석하고 하이라이트하는 힘은 많은 도움이 되네요.
이책을 읽고 한동안 어빙벌린의 노래를 계속 듣게되었다.
<<오늘날 가장 대담하고 혁신적이며 고무적이고 새로운 예술은 대부분 한때 소수집단 또는 소외 집단에 속했던 이들에 의해 창작되고 있다. >>
지금 소수집단과 소외집단은 무엇인가?
정말 이 책은 문화의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공부하게 하는 책이다.
팬픽션, 린노티지라는 인물을 알게되었습니다.
그의 연극 스웨트를 보고 싶습니다.
재키 스블리 드러리라는 인물에 대해 한글로 된 소개글을 제가 못찾은 것인지..아쉽네요.
스탠드업 코미디는 한번 보고 싶습니다.
이 책의 매력은 결론보다 3장 새 밀레니엄의 문화처럼 요즘 미국에서 뉴욕타임즈 서평가가 바라보는 문화 아이콘을 언급해주는 것
그리고, 용어들.
그리고 궁금한 것은 저자가 미국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어떤 계기로 뉴욕타임즈의 서평가가 되었는지도...
정희진님을 좋아한다. 가끔 그의 정확하고 날카로운 논리적 도출도 좋아하지만, 좀 장황하고 동네카페에서 이야기하는 듯한 글도 좋아한다.
그가 좋아할만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미치코님의 이력이 매력적.


안녕하세요,
황여정님의 섬광편 은 강렬했다.
견고한 무기력과 어차피 떠날 곳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만났을때
그 폭발력이 사회와 만났을때 터진 현상에 대하여 너무 강렬했다.
황여정님 글을 더 읽어봐야겠다.
황여정님의 섬광
소재도 그렇지만, 농고였기에 더 신선했다. 그리고 감정선도 정말 세밀했다. 황여정님의 작품을 더 읽어봐야겠다.
견고한 무기력덩어리...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을 대할때 어떻게 해야지?
더 와닿았던 것은 바로 반대편에 있는 담임선생님 공수진의 입장이다. 올때부터 마음가짐은 <상관없다. 어차피, 잠시 머물다갈 곳> 이 3가지였다.
더욱이 구조는 더 황당한 것이 기간제인데 책임을 지는 담임을 맡는다는 것이다.
기간제인데 담임이라....
무기력 vs 수동성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라면, 치킨, 삼겹살
아마 몸에 좋지는 않지만, 우리가 가 장 많이 먹는 음식중의 하나
이것에 대한 매력적인 설명서를 하나씩 찾는 것도 의미
치킨-닭
삽겹살- 돼지
소위 업계의 전문가들이 작성했기에...
한승태님을 통해서 육가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많은 영감을 주는 책이다.
용인 자연농원에 대해서 특히...
삼겹살이 소울푸드라...
다음에는 닭에 대해서...정은정의 『대한민국 치킨전』, 김재민의 『닭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를 읽어봐야겠다.


안녕하세요,
신경숙씨 표절논란이후 첫 작품으로 아버지에게 갔었어를 볼 때 좋았음.
그러나, 표절논란때 창비와 문학동네의 카르텔 이야기가 있어서 사업보고서까지 보면서 한번 주주현황등을 봤었다.
그때 본 것으로 보면 서영채님도 주주이다.
2015년 기사인데 염현숙님은 1대주주가 안되었구나. 강병선(강태형 같은 사람이네)님은 계속 1대주주이네.
<< "문학동네(1993년 창간)는 강태형(58) 대표이사와 남진우·류보선·서영채·신수정·이문재·황종연 등 창간 원년 편집위원이 내달 주주총회를 통해 물러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강 대표는 보유 지분 중 20% 남짓을 대표 이사 ‘직위 지분 양도’ 형식으로 차기 대표에게 넘기는 방안도 고민 중이라고 한다. 새 대표이사로는 염현숙 현 편집이사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염 이사는 “이번 쇄신안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논의해 왔고, 결정된 것은 아직 없다”며 말을 아꼈다. 단행될 경우 현 대표와 편집위원들로 구성된 문학동네 주주 대부분이 일선에서 후퇴하는 모양새가 된다. 문학동네는 ‘강병선(강 대표 본명) 45.5%, 서영채 외 5인 44.5%의 지분율로 구성돼 있다.
문학동네가 인적쇄신이라는 초강수를 고민하는 배경에는 지분구조에서 보듯 출판사, 편집위원(비평가), 작가들이 ‘침묵의 삼각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현 출판구조에 대한 비판이 거센 탓으로 보인다. 편집위원 남진우씨는 신씨의 남편이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226058&code=13150000&cp=nv
서영채님의 우정의 정원중 이 편만 봤다.
<< 1990년대, 시민의 문학-『문학동네』 100호에 즈음하여>>
최종느낌
평론으로 한 시장을 잡았다는 점.


안녕하세요,
우연히 서평책을 보고 싶어서 뒤지다가 제목에 끌려서 보게 된 책.
그러나, 저자의 수고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이 책.
대단한 노작이고, 매력임.
아주 동감한다.
이 책은 술술 읽힌다. 비평서처럼 작품을 분해하는 작품이 아니다. 인물과 에피소드를 버무려서 아주 편안한 인상서라고나 할까?
<< 강설애 편집자가 생각한 이 책의 주요 타깃은 시, 소설을 쓰는 작가다. 글과 말을 빼앗긴 시대에 우리 작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지 헤아려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책을 만드는 내내 생각했던 지점이다.
“글과 말을 빼앗긴 시대에 우리 작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지 헤아려보는 시간을 한 번쯤 가져보면 좋겠어요. '친일'이라는 잣대로 비난하고 외면해버리기는 쉬워요. 애정을 갖고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이 어렵지요. 문학이란 부끄러움에서 시작하고 부끄러움을 알게 하는 예술이기도 하잖아요. 쓰는 사람들이 먼저 이전 세대의 작가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목이 묵직해서 그렇지, 일반 독자들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듯이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에요.” *>>


이 책을 한줄로 표현하면 저는 이렇습니다. 간접화법, 쉼, 그속의 마음의 여유.
소설을 읽을 때 마음이 편하면서도 덜 자극적인 이유는 아마도 이 직설적인 표현이 아닌 간접화법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쉼입니다. 글이라는 것이 멈추고 다시 읽고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이 마음의 여유까지 주는 것 같습니다.
이 책도 이태원참사를 비롯하여 많은 아픔과 폭력을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지만, 직접적인 접근보다는 배경으로 우리로 하여금 간접화법, 쉼,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글을 읽게 합니다.
하루만에 읽을 수 있고, 동네커피숖에서 음악을 들으며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와닿던 문구
<<
그의 경기는 재미없다는 평가가 꽤 많았다. 근거는 명확했다. 상대선수와 경기흐름을 밀고 당기는 리듬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 페이스대로만 경기를 풀어가니, 당연히, 함께 링위에서 활동했던 선수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을리도 없었다. 그의 전성기가 길지 않았던 이유였다.
혼자 전설이 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워리어는, 팬들이 만들어 준 전설이다.
그 경기는 워리어의 프로레슬링 인생을 통틀어 정점으로 기록됐다. 언젠까지나 찬란히 빛날 것만 갔았던 그 별은, 그 경기를 기점으로 빠르게 빛을 잃고 희미해져 갔다. 이때 활짝 열린, 영원할 것 같던 위리어의 전성기는 1년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했다.
=> 나는 내 페이스대로 가는 것을 좋아했고, 이것이 성공법칙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하는 일은, 시간이 흐른다고 노하우가 쌓이는 성격의 일은 아니었는데, 요령은 날이 갈수록 늘었다. 그래서 내 청소실력은 20여년전 처음 여기 왔을 때보다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내 업소라는 책임감, 주인의식같은 게 있을리 없었다. (...) 이곳을 잠시 스쳐 지나는 이방인이라는 건, 이곳에 묶는 백패커와 나의 공통점이었다. (...)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머물 이유가 분명하기에, 나는 이곳에 임시로 머물고 있을 뿐이었다.
한심도 내겐 친숙한 단어였다. 한심은 내가 세상을 사는 중요한 작동방식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이 '열심'보다는 '한심'쪽에 조금 더 가까워졌단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서늘한 눈빛을, 차가운 세상을, 아무렇지 않은 척 서늘하게, 때로는 차갑게, 비스듬히 스쳐 지나온 지 어언 33년이었다.
=> 이런 자세
나는 선배를 믿었고, 링위에서 늘 지켜지는 무언의 약속을 믿었다. 그건 큰 실수였다. 그때, 나는 몸을 움츠렸어야했다.
어쩌면 나는 승패가 기울어지기도 전에, 너무 이른 시점에 나도 모르게 탭아웃을 했는지 모르겠다.
=>실수도, 무지도, 재앙의 변명이 될 수 없다. 탭아웃 경기중 항복의사 표시의 하나.
엄마의 우려대로 "룰도 무시하고 잔인해지는 외국의 저질 스포츠문화'에 깊이 물들어있던 터라, 나는 그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그때 엄마 말을 들었어야 했다. (...) 내가 생각했던 훗날은 찾아오지 않았다. 어른과 훗날이 전혀 인과관계가 없는 단어라는 것을,
=> 엄마의 아들로서, 반면에 딸의 아버지로서 이 문장의 해석이 달라짐은...
할말이 없을 때 목소리를 높이는 건 꽤 괜찮은 문제 해결책이란 걸, 나는 삼촌에게 배웠다.
=>AI로 처음 없어질 직업을 기업들은 콜센터로 잡는 듯하다. 그런데 내가 우려했던 부문도 바로 이 불만을 과연 AI가 받아들이고, 고객은 수용할까? 아마 화만 더 돋우는 것이 아닐지..만약 그것을 알면서도 기업들이 하는 것은 불만의 문은 닫겠다는 이야기 아닐까?
선정위원회 회장을 비롯한 상임이사진들은 제주도의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장작업을 마친 뒤 모두 그 동네에서 가장 크고, 넓은 마당에 수영장까지 딸린 집으로 이사를 하고, 좋은 차도 뽑았다며, 그들이 늘 한국, 그리고 제주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 상이란 어떤 의미일까? 경쟁을 활용하는..
인디안
요즘 인디안모델은 임영웅이란 트로트 인기가수예요. 정우성, 임영웅 둘 다 잘 생겼고, 인기도 많은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위리어 당신과 더 닮은 사람은 정우성 같아요
=> 고객이 싫어하는 것을 움직이는 것은 고객이 좋아할만한..>>
한편, 관련 키워드 검색한 것중의 이 피터틸과 호건관련 기사는 좀 놀라웠습니다.
<< 호건이 고커닷컴을 무너뜨리도록 재정적 지원을 한 사람이 바로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 피터 틸이라는 사실도 연달아 밝혀졌다.
이 일련의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관련 다큐멘터리 <침묵을 거래하는 손>의 설명을 보면, 피터 틸이 고커닷컴을 망하게 한 이유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보도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언론과 자본의 관계에 대해 거대한 논란을 일으켰다. 페이스북의 초기 투자자이자 페이팔의 공동 창업자로 수억 달러를 주무르는 거물이 헐크 호건이라는 유명인을 조종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한 매체를 파산에 이르게 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이 헐크 호건 소송의 배후에 있다는 걸 인정한 피터 틸은 기자회견에서 “언론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 관여한 건 고커 뿐이다.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그러나) 고커는 대단히 악랄하고 반사회적인 깡패”라고 밝힌 바 있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820416.html


4~50대 직장인중 밀려나는 전우들이 같이 읽어봤으면 하는 책
4~50대 직장인으로
오늘 지인과 이야기한 것처럼
"성과"로 이기적인 성격을 초점에두고 살았던 삶에 "성과"에서는 세상의 기준이 바뀌거나 세상자체(나를 평가하는 사람,조직이 바뀌거나)가 바뀌어서 더이상 성과와 스스로 이기적인 삶에 당위를 달았던 것이 점점 사라지는 지점인 것 같습니다.
성과의 기준자체와 맞물려 1) Job description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하고(전투력이 필요하고 강한 성과를 내걸었던 곳에서 한발자국 뒤로 갔고 그 프론트에 여전히 또는 새롭게 들어간 후배들과 같이 일하면서 그들을 지원해야 하는 경우), 2) 회사내의 자기포지션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상사가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생기는 시간이 점점 길어질 때, 조직내 나는 어떻게 역할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좀 더 영감을 준 책입니다.
작가의 의도가 너무 들어간 측면으로 볼 수도 있지만, 작가가 우선 약자를 바라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와닿는 문구가 참 많아서 적어봤는데 일부만 적어봤습니다.
<<무리를 통솔한 강력한 리더를 확실히 정해 놓아야 내부 충돌을 통제하고 규칙을 강제할 수 있다. 이런 체제에서 약자의 자리로 밀려나버리면 무리안에서 낮은 위치를 감수하고 지내야 한다. 이른바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패자의 위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최약자라고 해도 무리의 일원으로서 인정만 받는다면 먹이를 나눠 받을 수 있다. (...)서열이 위인 개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지만 않으면 편안히 살아갈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은 무리에서 쫓겨나거나 낙오되는 것이다. 무리를 잃어버리면 생존 자체가 버거워지기 때문이다. 상위권에서는 1,2점을 놓고 열띤 싸움을 벌어지만 하위권에서는 꼴찌나 꼴찌 바로 앞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체감한느 것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존심을 버리고 철저히 실속을 따진다면 패자로서의 생활도 나쁘다고 할 수 많은 없다.>>
SMAP, 세상에 단 하나뿐인 꽃, << 넘버원이 되지 않아도 좋아. 오로지 특별한 온리원"
<<다른 견해도 있다. 어차피 세상이 경쟁사회라면 넘버원, 한마디로 1등을 쟁취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며 온리원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은 자기만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 사실 생물들이 살아가는 자연계의 법칙에 따르면 생존경쟁에서는 넘버원, 즉 1등밖에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을 표현한 것이 가우제의 법칙이라 불리는 것이다.(...) 1등만이 살아남는다. 자연의 엄격한 법칙이다. 자연계에 2등은 있을 수 없다. 2인자를 자처하는 것은 훗날 멸망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아무리 보잘것 없어 보이는 생물이라 할지라도 각자의 서식영역에서는 1등이다. 만약 같은 서식지에 사는 다른 생물이 있다면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 어느 한쪽은 멸망한다. 넘버원과 온리원 어느쪽이 더 중요한가? 이 대답은 이미 나와있다. 모든 생물은 자신이 1등이 될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장소를 갖고 있는 넘버원이자 온리원이다.
비키기전략은 강자를 피할 때뿐만 아니라 1등이 될 수 있는 자기만의 장소를 찾아낼 때 필요한 전략이기도하다. >>
<<경쟁을 피하는 전략(...)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어려운 일을 좀처럼 실천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계에서나 자연계에서나 외부적 조건이 좋은 장소에서는 경쟁이 심해진다. 경쟁을 피해 '비켜간다'는 것은 조건이 조금 더 나쁜 장소, 조금 더 나쁜 상황으로 옮겨가는 일이기도 하다. 약자에게 기회란 먹을 것이 풍성하고 편안한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건이 비교적 더 나쁜 곳에 약자으 기회가 있다. 무리짓기나 도망치기에 비하면 '비키기' 전략은 복잡하다. 자발적으로 생존조건이 나쁜 환경을 선택해야 한다는 난점도 있다. 적과 위험으로부터 가능한 완벽히 비켜 서기 위해서는 지혜와 연구, 실천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키기 전략이야말로 약자의 전략중 진수라 할만하다>>
=>약자의 전략중 진수라....아주 동감..
일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범주가 바로 이 비키기를 수행하고자 <어떤 범위에서 나의 생태적지위, 나의 자리>를 찾는 노력을 하고자 했고,지인의 말대로 혼자먼저 일어나라는 말이 맞는 것 같고, 그 지혜와 연구, 실천을 해야겠습니다.


이 책에서 글쓰기에 대하여...
존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에서 이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재미의 본질 451>의 마지막장 너무 인상깊었다. 이 글쓰기의 시점이 1998년 쓴 것이라니..
인상깊은 문구를 적다보니깐 너무 길어졌다. 이 책은 다 안 읽더라도 이 재미의 본질 챕터는 10페이지정도...한번 꼭 읽어보기를..특히 글쓰는자의 마음을 정말 제대로 짚지 않았는지..
역자도 이공계로..
신형철님이 추천사에서 너무 강하게 고마움을 표시해서 더 눈여겨봤다.
<< 당신이 픽션을 쓰기 시작할 때, 글쓰기는 전적으로 재미일뿐이다. 딴 사람이 그 글을 읽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당신은 거의 전적으로 자신을 떨쳐내기 위해서 쓴다. 당신의 환상과 괴상한 논리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자신의 면모로부터 벗어나거나 그것을 변형시키기 위해서 쓴다. 그런일은 정말 가능하고, 그것이 가능할때 글쓰기는 엄청나게 재미있다. (...) 그러나, 이제 상황이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 더구나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당신은 이제 남들을 위해서 글을 쓴다고 느낀다. (...) 순수한 개인적 재미라는 동기를 남들의 호감을 받고 싶다는 동기, 당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고 당신에게 감탄하고, 당신을 좋은 작가로 여겼으면 하는 동기로 교체되었다. (...) 자위가 아니라 이제 유혹의 시도가 동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 유혹의 시도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제 거절에 대한 끔찍한 두려움이 재미를 상쇄시킨다.
애초에 이일을 하려면 어느정도의 허영이 꼭 필요하지만 그 어느정도를 넘어선 허영은 치명적이라는 문제다. 이 시점에서 당신이 쓰는 글의 90%이상을 남들이 좋아해줬으면 좋겠다는 압도적인 욕구가 동기가 되어쓰이고, 그 욕구에 영향을 받은 글이다. 그 결과 글은 허섭스레기가 된다. 허섭스레기 작품은 쓰레기통으로 가야한다.(...) 이 대목에서 잘난척을 해보자면 이 구속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어떻게든 당신의 원래동기, 즉 재미로 돌아갈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 당신이 되찾는 재미는 허영과 두려움의 불쾌감을 거치면서 변형된 재미이고, (...) 이 재미는 말하자면 놀이로서의 일이다. 혹은 규율잡힌 재미가 충동적이거나 방종한 재미보다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 재미를 새롭게 다스리게 되었을 때 픽션쓰기는 이제 당신 자신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당신이 차마 보고 싶지 않은 것, 혹은 남들 어느 누구도 보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조명하는 일이 된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런 주제야말로 알고보면 모든 작가들과 독자들이 공유하고 반응하는 것, 느끼는 것이다. 픽션은 이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이 아니고, 남들이 가장 좋아해줄 것이라고 여기는 방식으로 자신을 선보이는 수단도 아니며, 그보다는 이상한 방식으로 자기자신을 인정하고 진실을 말하는 수단이 된다. (...)최고의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낯선 사람들의 애정이라는 보상은 한낱 먼지에 보투라기에 지나지 않는다.>>
<허섭스레기:좋은 것이 빠지고 난 뒤에 남은 허름한 물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