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로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읽어볼 책 고를때 와닿았던 책중 하나입니다.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이 책의 목차중에 <<잘 살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서>> 라는 부문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로컬출판사 5개 작품중의 하나네요.
소수자의 목소리에 한정해서 생각했는데,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 아닐까,
싸움, 이름의 의미, 일에대하여, 모임에 대하여
특히 나의 경우 싸움, 모임, 일, 이름이 다 하나로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모임을 가져야 할 지, 어떤 일을 해야 할 지가 싸움과 이름과 맞물리면서...
<< 여기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 한국에 오면 이름을 정하잖아요. 이름이 중요해요. 이름은 누군가 부르기 위해서 있는게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봐요. 한국에 사주팔자가 있다고 하던데 난 그것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좋은 이름을 버리려 하고, 자기들이 좋다는 이름으로 바꾸려 하는데, 그들이 내 인생을 대신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 일하는 것 힘들어요. (...) 나 일 힘들다고 말할 때 집안 일 함께 하자는 거지, 일 그만두고 싶다는 것 아니예요. >>
<<저희끼리 모임을 했어요. 그냥 밥먹고 즐거운 것 보고 했는데도 마음이 답답했어요. (...) 이건 의미없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운이 좋아서 여기 모인다. (...)정말 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


안녕하세요,
지난주 장강명씨의 댓글부대와 현수동사람들을 읽고 그믐에 대한 기대감이 들어 가입을 했습니다.
그의 온라인에 대한 이해도 및 로컬에 대한 애정을 믿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일단 그믐에서 먼저 팔로워로 참여자로
수림재단이 하는 쇼는 없다부터 참여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제가 어느 날 그믐에서 내 모임을 연다면 처음 열고 싶은 것이
정아은작가와 잠실을 걷고 싶은 것이었는데...
이미 그믐밤에서 정아은작가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었다.
미리 그믐을 알았더라면 그날 한번에 2명을 다 볼 수 있었는데...
정아은님과 장강명님.
https://www.gmeum.com/meet/1049?talkId=59910
더욱 놀라운 것은 오늘 정아은님의 부고소식이었다.
<<현실의 응시자, 정아은 작가 별세…향년 49
‘모던하트’ ‘잠실동 사람들’ 등 리얼리즘 소설과 최근작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등 논픽션까지 종횡무진 현실문학 세계를 파헤쳐 온 정아은 작가가 별세했다. 향년 49. 유가족에게 소식을 들은 출판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 작가가 지난 17일 저녁 세상을 떠났다. >>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73952.html
안타깝다. 정아은님을 통해 현대한국소설의 매력에 더 빠져들었는데..
peace with you !


한겨례문학상 작품들을 쭉 읽으면서 작가 장강명님의 글은 좋아했습니다. 댓글부대를 보면서 아 온라인문화에 대해서도 깊이가 있구나. 그런면에서 아내의 퇴직만으로 이 일을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 결국 온라인과 오프라인 로컬 도서관, 자영업등의 연결고리등에 대한 꿈도 이곳에서 한번 해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
저의 댓글부대관련 블로그글의 일부입니다.
인상깊은 구절이 이렇게 많다니..
1장의 사례만 봐도 이 책의 놀라움에 빠져든다. 나도 그냥 지나치다가...
<<
저희가 어떤 사람 신상을 털때, 제일 먼저 해보는 방법이 그냥 그 사람 이름을 구글에 돌려보는 거거든요. 예를 들어 기자님의 신상을 털고 싶다고 처요. 그러면, <임상진>이라는 키워드랑 <010-> 이라는 문자열을 함께 구글에 넣고 돌려요. 그러면 검색결과가 우르르 뜨죠.
그들이 저격했던 대상 중에는 한창 떠오르는 유명 토익강사가 있었다. (...) 여성강사였다. 실력도 뛰어났고 무엇보다 가슴이 커서 남자 수강생들 사이에서 인가가 많았다. 팀 알렙은 그녀의 가슴이 비대칭이라고 공격했다. (...) 결국 여성강사는 악플을 견디지 못하고 가슴성형 수술을 받으러 활동을 중단했다. 의뢰인은 반색하며 팀-알렙에 보너스를 챙겨주었다.그들은 아예 근거 없는 중상모략도 꽤나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순무식한 물량공세도 효과적이었다. (...) 결국 문제의 교사가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하고 말았다. 그런 댓글을 사회여론이라고 여긴 학교와 동료 교사들이 그에게 압박을 가한듯했다.
'2세대 댓글부대 시대'는 그렇게 막을 올렸다.
책읽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이 보이는군요. 강연 문화는 책 읽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 때 흥합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미국처럼 강연회가 많아질 모양입니다.
이 친구들이 자기개발과 배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 템버린 댄스같은 걸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이 있을 거라곤 저는 어제까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고집불통인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순진하고 사회경험이 없어서 남의 애기를 스펀지처럼 빨이들이는 아이들이란 말입니다. (...) '얼렁뚱땅 인문학 강좌'는 정말이지 강사의 용기를 칭찬해야 할 수준이더군요. '워킹홀리데이에서 내 꿈을 찾은 이야기'는 꼰대도 이런 꼰대는 없겠다 싶을 정도로 고리타분했습니다. 그런데 듣는 학생들은 아주 열심이더란 말입니다. 왜 그랬던 것 같습니까?
강사가 자기들의 언어를 썼기 때문이죠. 여기 강사들 중에 제일 나이 많은 사람도 기껏해야 삼십대 중반인 거 눈치채셨습니까? 기성세대가 말하는 건 일단 불신하고 보는 세대입니다. 인터넷에는 말도 안되는 음모론이 판쳐요. 그런데 자기들끼리 서로 가르쳐준다 싶은 건 팥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믿는 아이들이예요. 우리는 이 점을 이용해야 합니다.
=>그세대라는 점, 그들의 언어, 그들의 용어
메시지가 마음에 안드니까 메신저를 공격하는거죠. 그런데 이 영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젊은이들이 악평을 해댄다는 점이 아닙니다. 아예 안본다는 점입니다. 저희가 저 평을 찾느라 굉장히 힘들었어요. 인터넷에서는요. 올라오는 글이나 그림, 영상의 99.9%는 그냥 묻힙니다. 돈을 들이든지, 팬들이 도와주든지, 그도 저도 아니면 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든지 해서 처음에 어느정도 궤도까지 끌어올려야합니다.
=>99.9% 라....
사회성있는 영화들은 사실 보고 나면 기분도 찜찜하고 보는 동안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나 이거 봤다.' 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자랑하려는 마음으로 보는 거예요. 그런데 임금체불논란이 그런 움직임을 완벽하게 막았죠.
미네르바사례가 있잖아요.
거대언론이 외면하는 문제를 작은 인터넷 신문들이 취재하고 인터넷신문조차 미처 못보고 넘어간 어두운 틈새를 전문 지식과 양식을 갖춘 블로거들이 파고들어갈 줄 알았어. (...) 인터넷 신문이나 블로거들이 과연 그런 역할을 하냐고. 아니지. 그냥 거대 언론이 하던 나쁜 짓을 아마추어들도 소자본으로 하게 됐을 뿐이야. 거대언론이 점잖게 기업에 겁을 주며 광고를 따냈다면 인터넷신문들은 대놓고 삥을 뜯지. 블로거들은 동네 식당을 상대로 협찬을 요구하고. 이것도 민주화라면 민주화지. 협박, 공갈, 갈취의 민주화. 누구나 더럽고 야비한 짓을 할 수 있게 되는 민주화. 그런 대신에 인터넷 신문들과 블로거가 기존 언론이 쓰지 않던 무슨 좋은 기사를 내놓느냐하면. 누구누구 아찔한 뒤태, 남녀 생각차이 열네가지...>


이 책과 작가의 <댓글부대>를 읽고 제가 그믐에 가입을 하게되었습니다.
아 작가 장강명님도 로컬과 온라인에 대하여 깊이있는 고민을 하고 있어서 이런 것을 만들었구나. 월급사실주의부터 시작해서 이런 움직임은 70년대생으로 회사에서 얼마남지 않는 수명을 가진 입장에서는 더더욱이 와닿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오프라인인 로컬과 온라인에서 한쪽의 입장에 서기가 쉬운데, 이 무계중심을 잡으려는 것. 공공도서관을 언급한 것도 사실 작가로서 쉬운 언급은 아닐텐데, 언급했다는 점. 코로나 기간 공공도서관에서 한국소설을 읽게 된 계기가 큰 점에서...
아래는 책 내용중 와닿는 글입니다.
<< 빅테크가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의 대가도 있지만, 한 생태계를 무너뜨리면서 기존 공급업체들을 파산시켜 얻어내는 이익도 있다. 그렇게 해외생산과 물류자동화, 온라인 거래가 소매업을 분해했고, 소매업자들이 벌던 돈은 그 영역들에 흩어졌다. (...) 현수동 주민들은 아마존이나 쿠팡을 이용하지 않는가, 그곳 사람들이 최저가 집착하지 않는단 말인가, 현수동에서 살고 싶다면 가계에 걸어가서 물건을 사오는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는 애기인가? 마음에 드는 술집이 없어도 참아야 하고?
왜?
(....)
우리가 지어내야 할 것은 오프라인 매장의 바이럴마케팅용 스토리가 아니라고, 소매업의 역할을 새로이 창시해야 한다고. 소매상점은 지역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이며, 지역상권은 지역공동체의 중요한 기둥이 될 수 있다고.
본 적은 없지만, 그런 가능성을 믿어보고 싶다.
그렇다면 나부터 어떤 가계의 단골이 되고, 가계 주인과 가볍게 안부를 묻고, 지역 행사에 참여하는 일을 배워야 할 테지. 타인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잘 어울리는 요령을 익혀야 할테고.
논을 벼의 재매지가 아니라 인공습지로 바라볼때 비로소 논의 홍수조절기능이나 지하수 수질정하 기능(...)을 깨닫게 된다. 소매업에 대해서도 그런 인식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논리위에서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보다 먼저, 지역 소매업에 대한 대규모 지원 정책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구성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이 책 전체를 통틀어 이것이 가장 설익고 허점 많은 제안일지 모른다. 하지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 이 엄청난 중요한 것...소매업의 몰락, 지역상권의 몰락.
그런 제안을 따를 때 오소노 아주머니는 더 이상 제빵장인이 아니며 마케터이자 스토리텔러가 되는 셈이다.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표현도 있다.), 강연자 혹은 방송인으로 나서야 하는 소설가의 처지와 비슷하다. 동네주민을 상대하던 제빵장인이 전국에 있는 잠재 고객층의 욕구를 헤아리는 명민한 마케터 겸 스토리텔러로 변신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 비즈니스 자체가 도박에 가깝고 설사 성공하더라도 당사자에게 제빵 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은 별로 남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p107 부터 재미있었다.
그도 뜻맞는 지인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 지인이 나에게도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
즉, 지인=?이다.
다른 면도 있지만, 우리세대의 작가의 시선은 참 닮은 것이 많은 느낌이다.
감사합니다.
제 네이버 블로그에 이미 올린 글중 일부 발췌했습니다.


첫 블로그입니다.
오늘은 제가 최근 읽었던 책중 와닿던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새로운 하늘 // 에드위지 당티카
주님,
바라건데 이 기도가 제 마지막 기도가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제가 주님께 더이상 그 무엇도 바라지 않도록, 또 이 어수선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에
더이상 그무엇도 바라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이 시간이 주님을 생각하는 마지막이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제가 주님의 얼굴을 마주하는, 또는 빛, 바람, 하늘, 그 무엇이 되어 주님을 만나는 날이 오기전까지 말입니다.
저는 기다릴수가 없습니다. 제가 어떤 색깔, 어떤 그림자, 어떤 빛의 기둥
어떤 무지개, 어떤 달 무지개, 어떤 해 무지개, 어떤 영광,
어떤 새로운 하늘이 될지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제가 이 세상과 저의 과거,
현재를 받아들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바라건대 세상이 계속되게 해주십시오. 태양이 계속해서 뜨고 지도록 해주십시오.
때로는 조용하고 부드럽게, 때로는 세차게 비가 내리도록 해주십시오. 바다가 언제나처럼 잔잔하게,
또 거센 파도가 일게 해주십시오. 세상이 계속되게 해주십시오. 저의 작은 불꽃이 사그라진 것일뿐, 세상이 끝
난것이 아님을 제 자녀들이 알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제 자녀들이 저를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제 어미의 좋았던 것
싫었던 것 모두를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제 딸 한명과 아들 세명이 보다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제가 가르쳤던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십시오.
바라건데 제 육신을 괴롭히는 고통을 멈추어 주십시오. 지금
당장 멈추어 주십시오. 더 이상 폐가 아프지 않게 해주십시오.
쉼쉬는 소리가 망치소리처럼 들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얼마남지 않은 마지막, 그 어떤 증오의 말도 내뱉지 않게 해주십시오.
제 딸이 눈물을 거둘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들이 저를 묻는 날 화창하게 해가 뜨도록 해주십시오.
또한 바라건데, 제 자녀들이 냉동실 깡통에 들어있는 500달러를 찾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거기 돈이 들어있다고 제가 진작 말해줬어야 했습니다.
또 그들이 멀쩡한 블렌더를 버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날만 갈아주면 얼마든지 괜찮은 물건입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자녀들에게 회초리를 들었던 일은 그만 잊게 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기억해서 별로 좋을 게 없을 것 같네요.
자녀들이 장례식에서 저에 대해 좋은 말을 하게 해주십시오.
그들로부터 제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 저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상상도 못했던 말을 듣고 싶습니다.
제가 회초리를 들었던 일과는 아무 관련없는 일로요.
하지만 그들이 너무 길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시간이 다되면 말을 멈추게 해주세요.
제가 늘 지금처럼 마음속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을 제 자녀들이 깨닫게 해주십시오.
가능하다면, 저는 이곳을 떠난 뒤에도 어디에선가 지금처럼 늘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제 자녀들이 어수선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이 세상에서 영원한 시간을 누릴 수 없음을 자각하게 해주십시오.
그들이 제게 이상한 옷을 입히고 묻지 않게 해주십시오.
그들에게 좋은 가발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십시오.(그 가발이 어디 있는지 딸에게 진작 말해줄 걸 그랬습니다.)
그들이 관 뚜껑을 열고 장례식을 보여 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바라건대, 간절히 바라건대 제 자녀들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들이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저는 이제 그들의 엄마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빛의 기둥, 그들의 무지개, 그들의 달 무지개, 그들의 해 무지개, 그들의 영광, 그들의 새로운 하늘이기 때문입니다.
이글은 이미
제 네이버 블로그에 개제한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