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검하는 블로그
모든 글에서 논검을 환영합니다. 본인이 읽고 느낀 바를 댓글로 써주세요.1장
정치적인 것의 특질
정치학의 정의
권력이란 타인으로 하여금 내가 원하는 바대로 움직이게 하는 힘.
정치는 그릇된 것을 바르게 고치고 다스리는 것.
고대의 정치란 제왕학이었다.
타협보다는 싸우고 모함하여 목숨까지 빼앗는 것. 양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권위=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 정당성을 가진 권력.
권력이 존재하는 걸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권력의 강제성
암묵적인 힘의 관계
사회구조-직위라던가. 허위허식과 일맥상통함
권위 없이 권력만으로 국가를 이끌 수 없음. 물리적인 힘으로만 국가 운영 못한다.
그런거 없어도 상징조작으로 권위를 세울 수 있어. 합리적이든 비합리적이든.
세 가지 지배 유형
전통적-옛부터 통용된 전통에서 생긴 인습적 권위. 가부장적, 군주제적 지배.
합법적-정해진 법절차를 따른 정당성과 지배. 합법적 관료제 하의 지배.
카리스마-신이 부여한 초인적인 권위에 의한 지배. 그냥 권위가 있어서 범접할 수 없는 것. 논리적이지도 과학적 설명도 안됨.
소수의 지배는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모스카-정치집단에서 전술적으로 소수유리의 원칙은 당연하다. 누가 되든 소수가 지배하는건 당연
파레토-정치현상은 엘리트간의 교체에 불과하다.
미헬스-다수는 자치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니 소수에 의한 지배는 필연적이다.
국가에 대한 이해
국민-주권-영토
주권-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최고의 권위이자 통치권.
근대국가-중앙집권적인 통치기관.
부르주아가 있어 자본주의의 출현. 이들은 귀족의 자손이 아니어도 재산을 형성하고 부를 축적한 세력.
경제적 권력으로 힘 인정받음.
실질적인 정치권력 갖기를 원해서 중앙집권을 원하는 군주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정치적권리를 받음.
상권도 보호받으니 손해도 아니고.
이처럼 중앙집권은 자본주의와 맥을 같이 했다.
정치적 권리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경제적 부로 쟁취한 것이다.
이게 민주주의 체제의 기초.
교권중심에서 인간중심의 계몽과 인권사상, 이성과 합리성의 사회가 도래.
태어나면서 자신의 위치를 세습받는다는 비인간적인 상황의 인지.
능력에 따라 발전을 꾀하는 것은 인권적인 것.
사회관계는 신분이 아닌 계약에 의해 결정된다.
근대사회로의 발전은 신분에서 계약으로 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이론
국가의 존재, 하는일, 어떻게 기능하는가?
마키아밸리는 국가 그 자체보다는 군주의 절대권을 옹호하는 주장을 폄. 군주가 주권을 가지고 국가는 군주가 통치하는 영역.
홉스 리바이어던-국가 자체의 작동원리를 인간의 본성및 정치행태와 연관시킴. 욕구를 만족시키면서 반감을 피해라. 법이나 강제력 이전에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유에 대한 권리가 있다. 자신의 판단과 이성으로서 어떤 일이든 한다. 그런데 자유에 대한 권리를 보존하는 인간 사이에서 폭력과 전쟁이 발생되고 이러한 만인의 자유는 무질서를 만들어낸다. 따라서 전제군주에게 자유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여 복종하는게 내란보다는 낫다.
로크 개인의 권리. 자연상태를 만들어 권위를 지닌자들이 없이 이성에 따라 함께 살아가는 사회. 통치권을 양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전쟁에 시달리면 일시적, 부분적으로 개인의 자연권이 정치사회에 위임될 필요가 있다. 전쟁의 권리를 받고 단합하여 사유재산을 보호하라.
절대군주를 인정하지 않고 시민 사회와 조화될 수 없다고 본다.
루소는 자연상태의 인간에 선악이 없으며 사유재산의 소유권이나 시민 사회의 형성 때문에 부패한다고 말함. 인간 탐욕으로부터 사회가 형성되었으며 시민 사회의 이성과 완벽성이 자연상태의 전쟁을 극복하여 나타난다고 봄. 평등성을 위해 제산권 제한하고 이런걸 하는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국가는 특정세력들을 위한 부패기구가 되었다고 지적함.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원하니 국가는 이를 보장하라.
사회계약론-국가와 시민 사이의 계약으로 시민이 자유를 양도앴으니 국가는 그들의 일반의지를 실천으로 답해라. 평등하게 대우하고 특정 집단을 대변하면 정당성을 잃고만다.
자유주의 학설
스미스-인간 개인이 그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건 공리다. 구속받지 않는 자유시장을 국가는 보장하라. 이기적인 이익추구가 사회의 번영을 가져온다.
개개인의 이윤추구를 위한 자유 경쟁이 탐욕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마르크스
국가는 물질주의적 개념에 종속되며 영원하지 않다.
시대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에 불과하지.
사회는 생산양식과 생산관계에 의해 형성되며 국가는 생산관계의 형태와 관련된 사회의 성격에 따라 형태를 결정짓는다.
국가는 소명할 수 있다. 계급갈등이 소멸되는 경우 국가가 소멸된다.
국가는 공공선을 대표하지 않는다.
국가가 특정 계급의 지배 수단으로 작용하면 자율성이 없어진다.
평상시에 지배계급의 대행자로 행동하지.
어떤 계급도 힘을 과시하지 못해 계급 투쟁 자체가 동결되는 상황에 국가 자율성이 존재한다.
네오맑시스트
국가란 존재가 소멸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며 국가는 계급 적대감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위치에 있지만 근본적으로 부르주아를 대표한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도구다.
국가는 피지배계급에 대한 억압을 위해 필요하다. 근데 그럴 일은 없으니까 계급갈등은 화해되지 못하고 지속된다. 국가는 그 생산물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면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 된다면 어떨까?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자들의 무장화된 혁명으로 가능하며 그들이 권력을 잡아야 부르주아의 억압이 사라진다.
그럼 어떻게 혁명을 촉발시켜서 이끌건데?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일어서지 못한다. 전문 지식인들이 참여해서 노동자를 이끌어라. 사회모순만으로 노동자의 자발적인 참여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주체적이군.
그람시라는 사상가는 지배계급이 지배를 정당화하고 유지하며 피지배계층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상황을 관리한다고 주장.
헤게모니는 강요에 의해서 유지되는게 아니라 사회화 과정과 정치적 과정을 통해서 피지배층에게 자발적인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다.
이런 헤게모니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국가의 능력이 해체되면 부르주아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신념체계에 위기가 온다.
우월한 위치를 위한 전쟁. 사회주의 질서를 창조하기 이전에 정치적 맥락을 파악해라. 다음 위기에 있는 국가를 포위하기 위해 계급의식을 고취시킬 투쟁이 중요하며 모든 노동자들이 지도자의 잠재성을 갖고 있다고 봐라.
지식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집단 내부에 형성되어 있으며 집단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존재. 이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노동계급이 유기적 지식인을 키워내야 한다. 정당에서 교육을 통해 노동자들의 의식을 고취하고 동원하라.
국가는 엄연한 현실이며 소멸될 가능성은 배제한다.
다원주의
슘페터. 사람들은 사회 심리적인 발전과정의 연속선상에서 볼 때 전통적인것과 근대적인 것의 양극단 사이의 한 점에 위치한다.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합리적 주장에 의한 공공선은 존재할 수 없다.
개인의 의견이 국민의 의지를 확인해준다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관련된게 아니면 무지하거나 흥미가 없다.
그러니 현대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국가는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가?
선거인단에 의해 이슈가 정해지는것에 앞서 대표자를 제대로 선택하는게 중요하다.
주권이 투표자에게 있어도 정치적 결정은 선출된 이들에게 제한된다.
조직의 수가 다양하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서열화되지 않고 경쟁적인 관계다.
특정 분야를 독점적으로 대표하는 조직은 없다.
엘리트는 정치적 이슈를 생성하고 조작하므로 유권자의 선호체계도 조작할 수 있다.
조합주의
특정 영역에 속한 단체 사이에 서열이 존재할 수 있으며 독점적인 대표성을 지니는 조직이 나온다고 함.
사회에는 기능적으로 분화된 분야마다 다양한 사회 경제적 조직이 존재하며 제각기 자율적으로 기능. 이것들이 조합하여 국가의 정책결정 만들어 냄. 국가의 정책이 정치분야에서 결정되는게 아니라 정치 기업 노동 대표기구가 모여서 정책을 결정.
여기에 서열이 존재할 수 있으며 독점적 대표성도 허용하게 된다.
국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면 공식적으로 인지되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권위적 국가적인 형태에 인간적인 면모만 더한것일지도 모른다.
정치적 리더십이 잘못 강조되면 권위적 국가와 다를게 없다. 국가의 이익이 한가지 이슈로만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국가의 리더십은 강요적이지 말하야하지만 권위주의적 국가의 형태를 띌 수도 있지.
실상은 강요된 타협일지도 모른다.
국가의 우파 좌파문제
국가는 국민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정치적 권한을 갖는가?
경제행위를 어떠한 방향으로 운영하여 경제적 생활을 해결할 것인가?
국가는 국민에게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국가주의자,우파
극우로 가면 국가지상주의.
반대는 국가가왜 일일이 간섭하느냐. 무슨 권리로? 자유주의, 좌파.
극좌는 무정부주의.
능력있는자가 더 가지자. 자유방임주의-극우
가능하면 더 나누어갖자. 좌파. 여기서 더 가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경제 개입에 국가의 역할이 클수록 좌파적 성향-큰국가, 국가론자.
국가의 역할 적을수록 우파적-작은국가, 시장론자.
정치적에서 강한 국가는 우파 약한국가는 좌파.
이제 정치와 경제로 각자가 어디를 원하는지 분류가 되겠지.
보수 진보논쟁을 좌우 논쟁으로 보지 마라.
다른거다.
기존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지키는 것이 좌우와 관계된 건 아니잖아?
1장을 마치며
정치는 권력을 행사하는 행위
정치는 가치있는 것들을 합법적이고 권위적으로 배분 결정하는 과정
이익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개인과 집단 사이의 분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과정
2장 정치학의 주요 대구논리 및 이론들
정치과학-논리적이어야 한다. 일반화가 가능해야 한다. 주장에 대한 검증도 가능해야 하고 추상적 수준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수준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설명되는 것과 설명하는 것이 구분되어야 한다.
내재된 비교와 설명
사회현상들을 비교하여 일반화된 것인지 특수한 것인지 파악하고 규칙성을 찾는 것.
왜 비교? 설명하기 위해서 비교.
어떻게 비교? 상이성과 유사성을 찾는거야. 기능적인 면과 구조적인 면에서. 2*2 나오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
연관성을 밝혀야지. 이 연관성의 성격이 상관인지 인과인지 구분할 줄 알아라. 말 그대로 상관이 있는지 원인결과인지 따질 줄 알면 되는 부분.
주관적 측정과 객관적 측정의 문제
설문조사를 해도 주관적 질문과 객관적 질문이 충돌할 수 있는거고.
같은 조사 자료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어.
정치학의 주요 대구논리들
같은 현상도 반 남았다 반이나 남았다. 말 장난 되는듯이 ㅇㅇ.
구조와 기능
구조주의-개인으로서 인간은 그들이 처한 구조적 관계 속에서 그러한 관계의 지원자이거나 운반자에 불과하므로 인간이 역사의 주체로서 행동하는 것이 불가하다.-구조에 속한 행위자는 무능하며 세상은 개인으로 인해 변하지 않는다. 구조와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기능주의-구조라는 개념에 우선하여 기능이나 작용을 중시하면서 현상 파악. 구조 속에 있더라도 기능을 통해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예시, 체계이론.
국가와 사회
국가현상설-인간생활이 영위하면 어디든 질서가 필요. 법 집행의 강제성이 필요. 따라서 국가권력 필요.
사회현상설-질서라는 가치 자체가 중요한 것. 어디든 정치현상이 필요하고 이루어진다. 평상적으로는 사회에 속박되며 특정 시기에만 국가의 실체에 속박된다고 느낌. 국가는 정치현상의 부산물 중 하나일 뿐. 실제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은 정치현상.
제도와 문화
사회현상은 제도 탓인가 문화탓인가.
제도주의-전통적 의미의 제도주의-제도가 도입된 배경과 정치적 의미 파악, 신제도주의-제도가 어떻게 작용하여 어떠한 결과를 만들었는지.
문화를 중시하는 사람은 제도도 문화의 산물이라 본다. 문화는 삶 속에 내재된 가치 신념 인식의 총체로 행동과 행위를 특정 방향으로 움직여 행동양식을 만들어 낸다.
단순히 정치문화의 성격에서 민주주의 수행여부를 파악하는게 아니라 정치안정이 중요하다. 이 일치정도를 정치적 정향이라 하고 세 정향 변수를 통해 판단.
인지적 정향-역할 담당자들의 수행에 대한 지식이나 믿음 객관
정서적 정향-역할 담당자들의 수행에 대한 어떤 느낌 주관
평가적 정향-정치적 대상물에 대한 판단과 의견 비판의식
정치적 정향이란 결국 신념체계이다.
공평성과 효율성
공평성의 문제-공평성에 무게를 둔다고 정의로운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평성이 중요하다지만 공평성이 지켜진다고 정의로워지는건 아니다.
필요와 기여 어디에 치중을 둬야하는데?
기본권과 우월한 사회 이슈의 문제도!
>꾸준히 다툴 수 밖에 없군.
효율성의 문제-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 정책을 결정하는데 국가 권위에 의존할지 수요 공급에 따른 시장 기능에 의존할지 택해야 한다. 국가의 개입으로 절차적 정당성이 해쳐지거나 목적을 위한 임의성이 나타날 수 있지.
결국 어떤 여론이 형성되는가는 중요한 판단 기준.
이상과 현실
국가의 목적은 잘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개혁이냐 혁명이냐.
개혁은 점진적이며 법적 테두리를 중시. 제도권 내에서 개혁이 가능하다.
혁명은 사례가 드물어도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받아들임. 진정한 자유를 위해 혁명이 필요하다. 대중들은 비판의식이 결여된 임금의 노예가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 자체를 뜯어고치자는게 하버트.
포퍼는 인간을 완벽하게 행복하도록 만들려는 행위가 위험하다고 함. 천국을 건설하려는 시도는 늘 지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2장 마치며
사람마다 세계관이 다르다. 결국 모든 현상들은 신념에 좌우된다.
3장 헌법과 권력구조
헌법이란 국가운영의 원칙. 법을 제정하는 질서와 정신의 규정. 정치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산물.
권력구조에 대한 조항을 포함한다.
국가 통치권력을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수권하는 형식.
헌법적 권력구조
첫째,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는 형식. 정당성은 국민들로부터 나온다.
둘째, 운영 대표자를 선출하되, 어떤 권한을 갖고 상호작용 할 것인가. 권력을 어떻게 부여할 것이고 얼마나 행사할 것인지.
의원내각제
국민은 의회를 형성하여 그들에게 일임. 의회는 국민의 대표기구.
의회선거 한 번으로 통치기관이 완성.
입법부는 행정부 구성하고 중심은 내각.
수상과 분야별 장관으로 구성.
입법부는 내각에 대해 불신임권 행사 가능.
내각은 의회에 의회해산권 가능.
잘못된 정권에 대해 불신임하고 고칠 수 있다.
대통령제
행정부와 입법부의 구성 선거인단이 별도로 구성.
대통령 선거 의회선거가 구분됨.
각기 임기를 가지고 서로 독립성을 가짐.
권력분립을 통한 경제와 균형.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왔으니 국민을 통하지 않고 불신임과 해산은 불가.
의회주권제
의회가 모든 기관들로부터 우월하며 행정부도 의회의 한 분파 기구.
수상 내각 모두 의회의 표결에 종속.
안건의 제시와 국정운영의 방향성은 입법부의 몫.
집정부제
의원내각제에서 내각의 권한이 의회에서 독립될 정도로 강함.
이원집정부제
행정부와 입법부 선거를 분리함에도 총리와 내각이 입법부로부터 신임과 불신임의 대상. 외치는 대통령 내치는 총리와 내각.
원형과 이상형
국민의 정서나 문화가 특정 제도에 대한 호불호를 연관짓는다.
사실 이런거에 얽매일 필요 없이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도 좋아. 노력이 많이 들 뿐이지.
뭐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없어.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서로다른 정부 유형 비교
대통령제는 단일지도체제적인 성격으로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다. 모든 책임은 한 사람에게 귀속.
1인 독선이 가능하다는 단점도 있고.
다 장단점이 있는거다.
같은 제도를 택해도 시민 문화적 정치 경제적, 역사적 배경이 달라서 제도의 기능도 상이한 결과를 도출하고.
주요 이슈들
1.의원 내각제와 대통령제는 민주주의 성취나 경제적 업적 달성에 어떠한 제도적 차이점을 가져오는가?
>답 못내렸네. 논쟁이 논쟁을 낳는다고 얼버무렸지만 경제적 업적 달성과 저런 제도와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미약하다고 본다. 실제 경제활동을 하는 기업과 국민들에게 달린거지. 정치제도가 우리를 배부르게 만드는게 아니야. 몫을 어떻게 나누고 어떤 환경을 조성하는가는 어떤 체제가 와도 만들 수 있어. 국가 단위의 산업도 마찬가지지. 그게 정치 제도로 산업이 잘된다고 생각하는건 점성술 시절의 미신적인 이야기야. 실제 어떻게 작업을 했느냐라고. 가만히 손만빨고 정치제도만 믿으면 세상이 돌아가겠어? 돈이 주머니로 그러면 들어오디? 정치제도는 기본만 해줘도 된다. 이걸로 경제적 업적 달성의 우월성이나 답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공회전을 할 수 밖에 없는거라고. 인정할 건 인정해라. 어떤 제도가 오든 그게 직접적인 영향으로 돈을 만들어내지 않는다는걸. 집행없이 형량을 때리기만해도 초자연적인 집행이 되는게 아닌것과 마찬가지의 원리야. 물론 아예 관련이 없다고는 안하겠어. 하지만 너희가 주역은 아니다.
2.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는 정책결정 과정의 차이점을 가져오는가?
거부권 행사할 수 있는 행위자 의 수나공공재의 제공여부, 행정관료들의 정향문제등 표면적인 차이점 언급하는데 그침
3.행정부 선거와 입법부 선거와의 주기 문제
4.대통령제로 하는 경우 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존재 여부
>234전부 중요한 이야기는 없다. 이럴때 좋고 이럴때 나쁘다의 탁상공론이 써있을 뿐. 답을 내린건 하나도 없어. 실제 1에서 말했듯이 답을 내릴 문제가 아니지. 그때마다 정치적 상황에 달린거고 그건 절대적으로 이끌어지는 답 같은게 아니잖아.
3장을 마치며
전지전능한 해가 있기 어렵다.
어떤 조건이 주어진 경우 그 조건을 가장 잘 만족시키는 논리가 있을 뿐이다.
현 한국은 대통령 선거를 통한 권력쟁취에 집중하는것이 병폐라는 주장이 있다.
승패가 확연히 나뉘면서 승자가 패자를 벌하고 패자가 승자를 붙잡는 사생결단의 정치.
정당의 이합집산은 정기행사가 되어버렸다.
이에 반해 의원내각제는 사생결단의 정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합의형 통일과 흡수형 통일에 따라 무엇을 더 지향하는지도 나뉜다.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제도를 둘러싼 사회문화적 변수와 연관되었음을 유의하라.
권력구조에 대한 철학적 이해도 없이 일어나는 피상적 정치현상에서 장단점을 찾다니.
지금의 제도는 당시 정치 지도자들의 상황적 타협의 산물이며 우리가 모두 동의해서 택한게 아니다.
4장 정치과정론: 의회, 정당, 선거
간접민주주의 구현하기 위해서- 국민을 대표하여 국가 운영할 기구 존재, 기구의 구성원들을 구성하는 절차와 방법. 의회/ 정당과 선거.
의회
탄생 배경-양원제의 상원은 귀족원에서 하원은 평민원에서 비롯.
기관 목적-국가 운영할 법 제정, 입법부. 법률안 제출하거나 심사하고 결정하는 권한. 단순히 법의 제정을 떠나 체제 통합의 기능 수행. / 법이 제대로 집행되는지를 감독. 행정부 감사, 감독. 국정 조사, 국정 감사./ 국민의 세금 집행 결정. 재정역할. 상하원 중 어디가 더 강한 권력을 가졌느냐는 재정에 대한 권한을 어느쪽이 가지고 있느냐이다.
의회운영방식
본회의-의회의 의원들 모두로 구성되는 회의.
상임위원회-사안이 속한 주제별로 법안에 대한 심의와 토론.
무얼 결정할지는 법안 결정에 대한 효율성과 연관되어 있다. 정당의 정체성과 색채에 결정되기도 하고 정체성과 이념을 넘어 변환을 꾀할 수도 있지.
의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 변수들
의회는 개개인이 아닌 정당으로 구성되며 의석수를 차지하기 위한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정당이란 기관이 변수가 됨.
정당
비슷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집단을 만들고 각 집단을 대표하는 사람을 선출. 이것이 국가 단위에서 형성된 집단이 정당. 국가적인 사무와 이익을 다루고 비슷한 주장을 가진 사람의 모임.
대푯값 못내면? 권력 정당성 떨어지. 새 정당 만들어지는것도 당연하고 정당체계를 벗어난 장외에서 정치 참여가 이뤄져.
사람의 생각을 묶어낼 대푯값은 무엇인가?사회주의적 자본주의적 이것저것 다 있지만 결국은 더 살기 좋은 세상 만들기.
중앙대 지방 국가,교회 농업,공업, 자본,노동 등등 무엇이든 대립을 세워서 정당화가 가능.
정당조직
정치자금 관리할 정당 조직 필요.
선거 준비 및 보조.
형성된 정당 유지.
공공정책 개발과 전략에 기본적 방향 제시.
정당 네 조직 유형
간부회의-소수 인원, 엘리트에 기반.
분파조직-대중당원의 정당. 대중정당.
세포조직-공산당 창조물. 모집의 질적인 측면에 관심. 선거활동은 한 가지 방법일 뿐이며 체제전복이라.
전투대조직-나치나 파시스트당에서 채택.사적 수준의 군대.
정당이란 궁극적으로 비슷한 사상의 사람이 모였을 뿐이지 유권자로부터 환영만 받는건 기대하기 힘들다.
선거의 승리보다 정당의 태생이나 기관 목적을 중시하여 타 정당과 이념적 차별성이나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정당을 이념정당이라 한다.
정당에 돈이나 노동력 필요.
이후 쓸데 없으니 스킵.
>정당의 정체성이니 뭐니 떠들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당장 우리나라도 이념만으로 나뉜거 같지 않거든? 그냥 진영 논리에 갇혀있는 사람도 있어. 교수까지 해먹은 사람이 자신은 절대로 우파에 표를 던지지 않겠다고 책에 기술할 정도로 그들이 무슨 이념으로 가느냐가 아니라 진영에 따르고 있어. 그 진영을 따르도록 만드는 것은 그들의 사고 기반에 갖춰진 신념이고. 뭐 518의 참사. 우익정당은 구 독재정권의 부산물. 그냥 그 프레임에 갇혀서 헤어나오질 못하지. 벌써 몇 세대가 지났는데도.
소설로 치면 이념을 떠드는건 얘 전투력이 얼마나 세고요 얘는 어떻고요 설정딸치는 것 밖에 되질 않아. 독자들은 그딴거 관심 없는데.
이념도 뭐 컨셉잡고 하는거니까 필요는 하지. 근데 직접 움직이게 만드는건 그딴 롤플레잉 잘하는게 아니라 신념이라고. 왜 그 당을 지지하고 저 당은 지지하지 못하느냐를 자리잡고 있는 믿음을 공략해야 한다. 그것이 거짓임을 밝히거나 스스로 깨닫게끔 해야해. 그게 제대로 된 신념싸움이야. 그거 못하는 쪽이 지는건 어쩔 수 없지. 설마 어떻게 싸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는건 아니겠지. 흐음.
아무튼 적대하는 상대의 지지를 무너뜨리고자 한다면 신념을 공략해라. 북한을 예로든다면 그들의 우상적인 통치자에 대한 숭배가 거짓임을 사람들 스스로 깨닫게 만들면 되는거지.
행복순위 1위였던 나라가 세상 문물을 알고나서 불행해졌다는 것과 마찬가지야. 행복하다는 믿음을 깨버리면 되는거라고. 상대는 어차피 사실을 가져다줘도 믿고싶은대로 믿어. 그럼 그 믿고싶은대로 믿는 신념을 무너뜨려라. 될 수 있으면 본인 스스로 깨닫도록.
선거
국민으로부터 선거를 통해 의회가 구성됨.
기표 방식 구역 크기 득표율-의석율 전환방식을 종합해서 선거제도의 모델이 나타남.
단순다수대표제도와 절대다수대표제도-승자 결정 기준
지역구와 비례구 분리, 연계형-지역구와 비례구를 연계 분리하는거
등등 있는데 별로 안 중요하니 스킵.
왜 투표 안하는가? 시민의식 낮아서는 완전한 설명이 안되고 배분성 인접성 간결성 행정편제 반영 등도 해줘야해. 환경적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는거지.
>선거는 선거고. 결국 권력을 정당으로 어떻게 나눠먹느냐가 핵심이란건가.
의회나 정당에 대한 이야기는 빼곡하면서 선거에 대한건 이론조차 부실한 느낌이 든다.
실제 선거랑 행위가 가볍기 때문일까.
자연적인 현상으로 취급해버린 뒤 정당으로 의회를 어떻게 구성하고 나누고 권력을 쟁취하는지만 이론이 발전한건가.
그만큼 시민들에게는 실권이 없는듯하다.
진정으로 시민에게 권력을 주고자 했다면 부분적 직접민주주의를 행해도 되는거 아니었을까.
해당 안건의 전문적인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일부라도 참여하도록.
투표로 의원과 정당이 어떻게 먹는지를 결정하는게 뭐가 국민의 주권을 돋보이게 만드는거냐.
그걸로는 부족하다.
전문적인 국민이 그 분야에 관여할 수 있도록. 실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게 유의미하지 않을까.
너네 뽑히고나서 어차피 말 바꾸거나 맘대로 해버려도 되잖아?
그 책임 안지는 새끼들도 많이 봤다.
그렇게 자격도 별로 없어보일 바에는 국민에게 직접 맡기는게 어떤지?
어쩌면 이거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될까?
전문가들이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떠들어댄다면… 그러지 못하도록 할 입장으로?
어차피 썩으면 뭐든 썩으니 제도를 생각할게 아니라 썩지 못할 환경을 마련해야?
5장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이란 구성원들간에 지식 의견 신념 의견 감정등을 공유하여 공통화하는 것.
정부와 의회와 통하는게 있어.
자유 민주주의 이념의 실현은 대중 민주주의의 형태로 귀결되는 위험이 상존. 대중정당, 대중 매체 발달, 의무 교육 확산으로 사회 구성원을 대중으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사회구성원 모두 행복과 자기 개발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니 정보의 자유 필수적, 구성원 간의 동의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 필수.
대중으로 전락하는것을 막고 공중이나 시민으로 이행하는게 정치적 커뮤니케이션의 순기능.
역기능은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사회.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정치적 문제에 관한 정보 이념 태도와 연관지어 정치체계 내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의사소통 포괄하는 용어.
주제1-다수의 의견이 어떻게 취합되는지 중요. 여론에 대해 다룬다.
2-대중매체를 다룬다.
3-통치행위는 설득을 통해 이뤄지며 선전의 중요성.
4-공적 관계를 다룬다.
여론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 다수의 의견이 중요.
여론 형성 과정은 해결의 대푯값을 정하는 과정. 토론이 필수적인 요소. 자발적이어야 하며 의도적으로 이익을 설정해서 이끌어가면 진정한 여론이 아니다. 자유로운 토론 보장하고 환경 조성하라.
공론장 이론-여론에 근접하는 어떤 것이 형성될 수 있는 사회적 삶의 영역. 여론이란 개인 판단의 단순 집합이 아니라 상호적인 영향 하에 마련된 협동적 산물.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하고 특정 세력의 개입 막으며 보편적 규범과 합리적 정당성이 존재해야 한다.
정체성의 정치가 두드러지며 조화를 이루는 것에 근본적 한계가 생김.
공익, 공공 민주주의는 선악을 구분할 개인 양심이 원천, 상호간 이해관계도 조화를 꾀할 수 있다,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서 개인들 간 합의적 토론이 그들의 행동 결정에 최선의 방법.
>개도 비웃을 소리를. 다들 자기 이익만 고려하는게 현실이지. 상호 존중이라는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이야기를 이론으로 떠드는가. 토론으로 갈등이 해결 될 수 있다고 믿는건가? 카의 비판은 그래서 뒤에 나온다.
다수결의 원리만 추구하는 것은 토론의 과정을 경시하여 여론의 정당성 훼손. 서로가 배려 존중하고 정책 조율. 여론 형성과정은 권력을 정당성 있게 획득하는 행동이나 마찬가지다.
정치권력의 원천은 커뮤니케이션 내용 방법 흐름 조정하고 제어하는 과정과 연관됨.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상황의 성격을 규정하는게 필요.
>결국 설득이 핵심이란거.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여론을 주체적으로 조성하는게 답인거 같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지만 ㅋㅋㅋㅋ. 내 말이 맞고 네 말이 틀렸는데 틀린 쪽으로 가게 둘 수 없잖아. 누가 선동 더 잘하느냐로 겨루는게 현실이다. 뭐 저쪽은 가만히 있어? 이기는 쪽은 선동을, 설득을 잘 해내는 쪽. 근데 이것도 결국 실정인가. 실정은 정치의 본질이라고 할만해.
매스 미디어
매스미디어는 시각 인쇄 청각 대인 및 조직, 인터넷 매체등 있다.
각각 부각되는 성격이나 특징 적혀있는데 별로 안 중요.
선전
선전에는 전달하려는 특정 사안들이 알려져야 하고 알리는 내용들은 이해되어야 한다.
결과론이 중요하다.
여기에 기억되고 행동화되면 선전 효과 더 극대화된거지.
선전의 원리.
단순화해라. 단순한 표현과 분명한 전달이 강한 설득력.
반복의 원리. 이해할 수 있도록 걍 반복.
집중의 원리. 기억에 남겨라. 내용, 수단, 공격대상자 선정 등. 한 가지 논리로 정리되게 형식화 하거나.
승전을 광고하고 각인시키는 그런거.
이입의 원리. 군중들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집단 내에서 행동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도록. 합창이나 구호 활보하며 돌아다니게 만드는거.
카이사르 암살은 공화정의 부활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감성적인 면의 호소와 선동으로 역공을 가할 수 있었다.
시민들은 옳은걸 판단하지 못하고 그 방향을 정해줘야 한다고 말한 셈이군.
현대에서도 어느정도는.
피알
홍보로 호의 얻는거.
교육의 효과와 선전의 효과를 가짐. 교육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에 집중. 선전자는 무엇을 생각할 것인지 알리려. >주인의식 가지려면 한 표가 아닌, 직접 결정권자가 되려고 나서는게 맞을거 같은데.
선전은 대립감정 내포하며 감정에 호소, 피알은 호의 관계 유지하고 협력 얻기를 목표
5장 마치며
정치적 인간-사적이익을 공적이익으로 합리화하는 인간.
>내가 전체적으로 지금까지 읽고 떠올린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진정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투표를 하는 사람이 되는 걸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진정 자유롭고 싶고 주인이라 생각한다면 투표를 받는 사람이 되어라. 책임조차 지지 않는 투표를 던져놓고 그걸로 내가 주인이라고 자위하는 꼴은 우습지 않나. 진짜 책임지는 사람은 따로 있다. 진짜 주권을 행사하는 사람도 따로 있다. 자신이 주인이고자 한다면 선거에 나가라. 그러기 귀찮지? 그러니까 주인이 아닌거다.
하기 싫다면 안 해도 좋다. 대신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허위임은 받아들여라. 자유롭고자 하지도 않다는 것을 받아들여라. 진정 주권의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투표를 하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을 똑바로 봐야한다. 스스로에게 거짓말은 하지 마라. 무슨 정신승리냐 그게.
그런 결과로 나타나는건? 의원의 대중화. 아예 직업적인 철폐화인가? 10만 의원 정도가 겸업으로 나오고 딱히 이 활동으로 월급도 안나와. 그냥 자발적으로 참가하고 앞을 위해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사람들인거야. 사실상 일상에서 지내는 시민이지. 일상에서 자기 업무를 하다가 안건에 의원 활동을 수행해. 여기에 특권도 뭣도 없어. 자신이 주인이라는 주권의식과 자유 의지만을 품고 올라선 거야. 평소 시민들이랑 일상에서 이웃으로 지내지. 특별할거 없어. 계급도 아니고 주인으로서 의무를 하인처럼 짊어진거야.
10만은 너무 많나. 1만으로? 아무튼 진정으로 주권의식으로 이끌고자 하는 사람 10만이 이끄는 것. 여기에는 당도 개인적인 카리스마로 흔드는 것도 거의 무용하며 매수 및 합작행위는 불법화 됨. 각자의 소신에 따라 옳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결정. 책임도 국민 전체가 체감한다. 그걸 개인이나 소수에게 돌릴 수는 없어.
의원이 되는 방식은 역시 투표. 5천만 국민이 10만명을 뽑아. 후보자로 나온 사람만 해도 500만 정도. 현실성이 없다는건 안다. 내가 생각한대로 진정으로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투표를 받으러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문화적으로 깔려 있어야 실현의 여지가 생기겠지. 효율성은 또 어떻고. 수치는 어떻게 될지? 몇 백년이 걸릴지 모르겠다. 근데 이거 빨갱이들 혁명이랑 비슷한 느낌이 ㅋㅋㅋㅋ.
자연스럽게 권력은 세습화되고 독점화되거나 계급화 될 것이 명확히 보이는데 이걸 인위적으로 막으려 한다고 막아질 것인지 의문. 자연적인 권력의 흐름대로 흘러갈 것 같지 않나. 오히려 투표에 있어서 정당주의가 극심화 될 우려도 있을거 같고. 소신적인 선택이 아닌 자기 입장에 따라서 고를지도 몰라. 실정실정실정!
6장 집단행동
여럿이 함께 하는 행동.
수의 힘이 중요 변수. 시위.
집단행동 종류
1.입장이슈-일상속에서 처한 입장과 관련된 요구와 주장 관철
2.양식이슈-사회성을 지닌 포괄적 이슈로 공적이익에 가까움
3.체제 부정 및 전복-혁명이나 내전 반란 테러.
집단행동 발생 원인
1.몰이성적인 심리. 집단적 정신 상태에 의해서 촉발.
2.사회적 위기 상황.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해 상황에 대한 집단적 재정의가 요구되는 상황.
3.대중사회가 가져오는 대중의 소외감과 고립감. 대중은 엘리트로 분리되어 있고 고립감 느끼니까.
4.상대적 박탈감.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좌절 분노 공격성 단계에 거쳐 집단행동으로 반역.
5.개인의 자기이익추구
확산과정
동원의 과정에서 생기는 주요 이슈
1.무임승차자 문제- 선택적 동기 제공해야 한다.
2.정치적 리더십 문제-침팬지는 두목에게 개별 도전하지 않고 무리를 이뤄 맞선다. 두목도 부하와 유착관계의 침팬지를 관리하고.
3.기업가 정신과 선발대의 역할. 집단행동은 선발대의 역할을 통해 대중들이 깨우쳐 발생한다. 내가 하려는거네.
집단행동의 결과: 성공과 실패.
역사적 예시 나열. 이건 쓸게 없음.
6장을 마치며
집단행동의 발생과 성공의 귀결엔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다. 혁명은 대중의 불만을 업고 발생한다. 특히나 현대에서는 자발성이 강조될 것.
>결국 이러한 불만을 만드는 것도 문화. 문화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7장 민주주의와 정치발전
민주주의는 민중의 통치
필요 조건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정치적으로 평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 그리고 다를 수 있다는걸 인정.-효과적 참여, 투표권 평등, 교화된 이해, 의제의 통제.
시민문화의 존재. 제도의 확립, 사회 안정의 중요성.
민주적 체제 및 정부
선출직 공직자가 필요.
선거는 자유, 공정하며 반복되어서 치러져야 한다.
표현의 자유.
정보원의 다원화.
대중들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결사의 자유가 제도적 보장.
모든 성인에게 동등한 권한 부여.
투표 표현 정보 결사자유.
정치체제 유형들과 정치발전.
정치발전-보다 완벽한 민주 체제로의 이행.
근대화가 호의적 환경 제공해야 함.
경제의 산업화, 사회관계의 합리화, 문화의 세속화.
근대화 없이 민주사회 이루기는 힘들지. 당장 굶어 죽겠는데 무슨 힘이 있다고 정치적 주권을 논하나. 잘 살아야 민주주의가 온다.
그렇다고 근대화만 된다고 민주주의가 자리잡는건 아니다. 정치의 제도화 수준이 높아야 가능해. 돈이 많아도 국가를 어떻게 이끌지는 정치인들의 결정에 달린거군.
각종유형은 내 관심사 아님.
정치발전과정에서의 국가
국가가 겪는 위기
1.정체성의 위기. 인종 언어 종교적 다양성이 분열되어 민주주의 방해.
2.정당성의 위기
3.침투의 위기-대중들로부터 신뢰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4.참여의 위기-지나칠 정도로 빈번한 시위로 사회불안
5.통합의 위기-정부기관과 공직자, 집단간, 공직자와 대중간 통합이 필요.
6.분배의 위기-용역 재화 가치를 분배하는데 어떻게 권력 행사할거냐.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연관은 존재하나 함수화할 수 있는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일어난 것이므로 공식화 할 수 없는 문제였지.
>아니 이 학자라는 양반들은 왜 법칙을 구할 수 없는 것에서 자꾸 법칙을 찾으려 드는걸까? 현실에서 이루어진 정치적 경제적 결정을 절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공식이 있는 줄 아는건가? 누군가 결정했기에 일어났을 뿐인 개별의 사회적 현상이다. 그것이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는 듯이 파고드는 것에 의문이 든다.
8장 공공선택이론
정치적으로 평등하더라도 경제적 능력차가 심화되면 정치적 평등성은 위협.
인간은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경제적 공준을 기반으로 해서 공공선택이론 시작.
이득을 극대화하고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게 합리적.
정치적 인간도 사적 이익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 없음.
이기적인 개인들의 협조 가능성
아무리 인간이 이기적이더라도 상호 교환의 이익으로 협조는 가능. 죄수의 딜레마라던가 치킨게임 등등.
헌법적 경제학과 관료정치
방법론적 개인주의-거시적인 사회단위의 총체적인 현상도 궁극적으로 개인들의 행위를 기본적인 분석의 단위로 할 수 있다. 개인만의 가치가 궁극적인게 아니며 개인을 둘러싼 환경도 분석의 단위다. 즉, 정해진 규칙 내에서 합리성을 추구한다. 그게 헌법.
의제 설정과 정책 결정 방식의 중요성
안건 표결 순서가 의사를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 투표의 순환현상-수장이 결정적 역할.
중위 투표자 이론
양 극단이 아니라 중간에 위치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정치적 경제순환의 문제
정당은 권력의 획득을 위해서 경쟁. 따라서 투표수 받을 수 있는 경제정책 채택. 유권자는 근시안적.
8장 마치며
정치형태를 시장형태에 비교하여 논리 진행.
9장 국제정치
국제정치에는 통합된 하나의 통치권이 없다. 무정부 상태.
국제연합이 있지만 사실상 하나의 통치권 형성에는 불가능.
안전보장이사회의 다섯개국 상임이사국 체제로 되어서 5개의 통치권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음.
한 통치권 하의 갈등해결이 불가. 따라서 전쟁.
국제정치 바라보는 시각들
행위자. 목표. 수단.으로 기본 개념 잡고 이론화.
행위자는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위한 수단을 동원한다.
안보라는 목적을 위해 군사력을 충원하는 것이 그 하나의 예.
현실주의
국가간 협력을 통한 평화가 어렵다. 나름의 국가이익을 가지고 있으며 타협조정이 어렵다. 이 국가이익을 실현하려면 국력을 확보해라.
자연상태는 전쟁상태이며 이로부터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그만한 물리력의 강대국의 존재와 역할이 중요하다. 그리고 강대국간의 세력균형이 평화를 유지하는 핵심 방법이다.
이상주의와 자유주의
연합체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증대되며 영구평화를 이룰 수 있다네. 전쟁을 싫어한다는 낙관론으로 출발한 것부터 오류.
무질서와 분쟁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정치적 제도의 미비함이 원인이라 말함.
자유주의는 자유무역을 통한 상호의존성이 높아지면서 국제평화가 가능.
>근데 아무리 이런걸로 세계 평화를 논해도, 전쟁의 부담이 적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되면 전쟁은 일어나잖아. 자연발생적인 이익활동이라고. 이익이 될 것이 뻔한데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러므로 세계 평화를 바란다면 이러한 이익에도 불구하고 손대지 않도록 만들 교육이 필요한거 같아. 단지 옳다는 이유로 전쟁을 택하지 않게. 호오나 손익이 아닌 논리를 갖추고 도덕을 따질 때.
신현실주의와 신자유주의
국제사회는 무정부상태이므로 무장이 당연. 그런데 이게 재무장의 반복을 일으킨다.
복합적 상호의존성이 증대된 곳에 무정부상태에서도 국가간 협력과 평화가 가능하다고 신자유주의자들은 말함.
신현실주의자는 이게 오히려 분쟁가능성 높인다고 말함. 전쟁 막는건 세력균형이고 무질서는 균형을 통해 사라진다.
전쟁이 없다는 것이 곧 평화는 아니다. 안보딜레마. 오히려 전쟁을 준비하는 것인가.
국가는 국제체제라는 구조에서 국가들 사이의 상대적 국력에 따라 상대적 위상이 결정된 것.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세력균형 유지.
신자유주의자들은 상호의존성이 호혜원칙이 원인이므로 낮은 분쟁 가능성과 연관된다고 함.
>남북한의 예를 들어볼까. 전쟁 안나는 이유? 핵도 있겠지만 중국과 미국의 존재 때문이지. 세상에 남북한만 있었다고 해봐. 이만한 국력차에서 전쟁이 안나겠어? 북한을 먹지 않고 내버려두는게 바보짓으로 느껴질 지경이야. 그런데 전쟁 안일어나는 이유?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의 존재 덕분이지. 호혜적인 원리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근거는 안돼. 어떤걸로 원인을 두든 그건 전쟁의 발생과는 무관한 일이야. 개별적인 사건이라고. 전쟁이 이뤄지지 않는건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못 하는 거지. 육식이 틀렸다며 채식만을 고집하는 논리가 전 세계인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과 같아. 고기가 남아있는 한 육식은 끊을 수 없다. 이거에 대체 무슨 원리나 법칙을 찾는단 말인가.
구성주의
국제사회는 무정부상태로 고정된 게 아니다. 그건 국가간 상호작용으로 만들기 나름.
자신의 주관만이 아니라 국가간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는 간주관적 상태.
변화하면서 존재하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
>완전하게 일치하는건 아니지만 내가 이쪽이었군. 그런데 정말로 연역적인 논리틀을 찾으려는게 더 미련해 보인다니까. 왜 없는걸 인위적으로 만들어 세우려는건지.
전쟁과 외교
국가의 목표와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지만 유동성을 지닐 가능성은 낮다.
서로 나름의 입장으로 분쟁하고 심하면 전쟁. 분쟁해결하려고 외교 수행하지만 해결책 모색은 어렵다.
평화를 위해서는 상호신뢰를 위한 노력이 필요.
군축문제
상대를 신뢰하기 전에는 어려움.
국제사회는 비확산조약으로 핵 생화학 미사일 우주군사화 재래식 무기 군축
핵무기는 다모클레스의 검.
9장을 마치며
국제정치는 지구 평화와 번영을 다루는 일.
상호의존 증대되면 경쟁 분쟁 가속화. 분쟁 해결 위해 국제법.
>평화를 목표로 한다면 진시황의 예시가 있지 않나. 세계통일 전쟁이다. 국가적인 개념을 부수고 하나의 정부 깃발 아래 세우는 통일을.
압도적인 기술력과 무력 하의 세계 통일. 핵무기도 다 쓰레기로 만들어버릴 질서가 필요? 이상적인 이야기군. 홈랜더가 있으면 전쟁 안날거에요 수준의.
기본적으로 무정부라는 점에 깊은 동의를. 국제법을 세운들 압도적인 강대국이 생긴다면 무력으로 그걸 무시해도 상관 없어. 새로 자신이 규칙 세우는게 새로운 국제법 되는거지. 반대하면 뭐? 이길 수 있으면 반대할거고 못이길거면 알아서 숙일테고. 진짜 무정부 ㅋㅋㅋㅋ.
10장 변화하는 세상과 변동이론
사회과학적 현상을 파악하는데 한 가지의 이론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매기는 가치마다 해석과 의미가 달라짐.
그리고 시대정신의 영향을 받음.
변동에 관한 논리와 이론들
변해야 하는 것, 말아야하는것/ 변할 수 있는 것, 없는 것 으로2*2표.
진화이론
생존 그 자체는 개체들의 가장 원초적인 목적.
적자생존사상에 근간.
변화의 원인은 개체의 생존.
질서가 유지되는 방향으로 진화. 더 나은 방향으로.
개별화가 심화되는 과정.-개인권리가 강조되거나 의회 권력 견제되는것.
인간사회의 진화는 문화-물리적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니 다선적이다.
균형이론
생물학의 항상성과 같이 동적인 균형 이루려고 함.
안정을 유지하는 현상 유지로.
균형을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변화 발생.
그런데 어떤 상태가 원래 상태이냐를 우선적으로 정의하는게 불가능.
갈등이론.
변화는 개체간 갈등이 원인이다.
갈등이 사회 변동의 원동력.
흥망성쇠이론
어떤것이든 고정없이 흥망성쇠를 통해 변한다.
문화는 제도보다 변화시키기 어려운 인간의 집단적 가치체계.
문화에도 생애주기가 있다. 50년에 걸쳐 형성되고 성공해도 300년 지속하고 몰락에는 1000년이라는 이론.
헌팅턴은 문화충돌론. 세계정치가 국가 단위로 한 경쟁이나 이데올로기 경쟁을 끝내고 문명들간의 대립으로 특징지어진다.
뮐러는 국가기능 축소가 국제사회에서 문명의 충돌보다는 공존으로 이어질 것이라 말함.
국제 정치현상은 국내와 달리 통합 통치권이 없다.
10장을 마치며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있을 수 없다. 역사 발전의 동력이므로.
>변화에 원칙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말대로 자유주의를 표방하든 뭐든 그게 자신의 정치에 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국가는 그 옷을 언제든 갈아입을 수 있다. 그러지 않고 불변하는게 어리석은 짓이지. 딱 자신이 이득이 될 때까지만 신념의 옷을 입고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이익만 된다면 그 옷이 무엇이든 상관 없다. 당장 자유와 평등을 칭송하다가도 그게 손해가 된다 싶으면 전제주의적인 강행을 시행해도 돼.
민주적인 가치가 보편적이고 진보라면서 절대적으로 나아가야한다 말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는 거야. 무엇이 더 낫다는 건 없어. 없는 것에 규칙을 만드려는 것과 똑같아. 아무리 민주적인 가치라 해도 그것이 종교적으로 불변적인 가치인 마냥 따를 이유는 없다는 것. 인위적인 것은 인위적인 것으로 봐라. 딱 이득이 될 때까지만 그 가치를 받들 수 있는게 정치적인 현명함이다. 더 나은 가치가 나온다면 그걸 받아들여야 해. 아직 이론조차 창조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그게 인류를 더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준다면 언제든 가치와 신념을 바꿔야겠지? 그게 뭘지는 나도 모르겠군.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다. 특권적 기득구조와 계급구조 심화. 공동체적 기반 약화. 개인 삶 황폐화. 투표참여율 하락.
민주화 이후 정부도 무능 무책임 부패. 국회의원은 정치적 대의가 아닌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증대하는데에만 관심. 정치에 대한 국민 혐오는 당연.
무능을 비판하던 놈들이 그 자리 올라가서 똑같은 부패를 반복함.
가장 큰 문제는 매우 협애한 이념적 대표체제다.
정치인은 어떻게 하느냐의 효율주의만 입에 담지 그것에 사회정의, 공동체 문제는 도외시 되어있다.
이 보수성은 정치 세력의 배제만이 아니라 사회의 타락 원인이 된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당들은 하층과 서민에 대한 정치적 동원 및 조직화를 통해 대중정당으로 전환하려 하지 않았다.
한국의 시장은 불평등하다. 상류층과의 계급간 불평등구조는 급격하게 심화되었다. 소득 불평등은 물론이고 시장체제의 불평등 구조를 제어할 규제장치를 제거해버리고 있다.
교육도 이의 연장이다. 일류대학의 졸업이 낮은 계층에서 벗어난다는 인식처럼 서열화된 대학의 졸업과 계급적 지위가 높은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대학의 지위에 따라 그 가치가 매겨지는 현상은 입시로 이어지고 전 사회적 계급투쟁으로 발전했다. 모든 가계가 주거를, 사교육을 투자하며 서열화된 미래 소득에 자녀들을 투신시킨다.
이제 대졸은 크게 의미가 없다. 일류 대학 졸업만으로 계급적 상향은 일어나지 않지.
이제 교육적 성취 외에 다른 조건이 필요하다.
소득과 계급구조 위에 교육이 덧씌워진 상황이 됨. 시장불평등이 교육까지 먹음.
수도권의 중앙집중화 심해짐.
한국의 지역감정은 비합리적 감정 그 자체로 이해해선 안된다. 이는 중앙집중화와 이로인한 불균형적 발전이 가져온 부수적 현상이다. 실제 기반이 그러니 선동이 먹히는거다.
경쟁의 편을 가르는 구분선은 지연 학연같은 엘리트 구성의 일차적 특성에 따름.
명품에 대한 맹목적 선택은 상층계급의 문화적 표지를 갖고자 하는 노력이다. 생존경쟁의 가열화, 처절한 출세지향적 행태가 일반화된건 당연하다. 계층적으로 낮으면 인간으로 대우 못받으니까. 이것이 외양을 중시하는 획일주의 사회로 작용. 도덕적 자율성 부재, 인간 내면의 황폐화로 나타남. 증오와 배재의 비인간성을 조장하는 이데올로기가 이렇게 발현됨.
>요즘은 유치해서 못하지 않나 ㅋㅋㅋㅋ.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거 짜치잖아.
한국 정치는 언론이 움직임.정당이 주도하기 전에 언론이 틀을 짜. 정치 영역의 일도 언론에서 먼저 도덕성과 불법성을 판단해. 이걸 통제하는건? 없음. 그냥 언론기업이 됨. 여론시장을 독점시장의 논리로 지배하려 든다.
사회문제에 있어서 합의를 내리지 못하고 갈등과 경쟁만 이뤄진다. 대안은 못내놓아. 여야 균열이 문제가 아니라 이념적 정책적 함의를 갖지 못하는게 문제다. 국가 권력 장악에만 몰두하는, 사회 근본 문제와 괴리된 권력투쟁밖에 안된다.
투표율이 낮은 상황에서 정당이 자리를 잡아봐야 그들의 민주적 정당성만 떨어질 뿐.
대학 사회는 비판적 지성의 전당이 아니다. 그저 사회입시학원. 캠퍼스에서 시민운동은 사라짐.
이것이 다 한국 민주화의 보수화 때문이라고 지적함. 민주세력이 보여준 무능력함. 민주주의의 내용적 발전에 노력이 없었다.
독립운동 이후 냉전 바로 닥침.
>그리고 일진들이 찐따 싸움 붙이는 것처럼 이데올로기로 갈려서 싸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어쩔 수 있나. 북한은 싸워서 남한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치는거지. 근데 실제로 해야했던건 전쟁이 아니라 일진들 시키는거 하지 말고 우리 통일합시다. 여야 했어. 경제원조나 국가 인정 그런걸로 트집잡아서 등떠밀긴 했겠지만 그런거 씹었어야지. 외교력이 처참하군.
나중에 반대의 상황이 된다면, 이를테면 미국 등 떠밀려서 북한 쳐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씹고 북한에게 손내밀어서 통일협정 해보자고 해야하는거 아닐까? 선조들이 했던 실수 반복하지 말자구요 ㅇㅇ 저새끼들 말 들을거 없음. 어차피 손해된다고 생각하면 조약이고 뭐고 우리 손절할 새끼들인데 차라리 우리가 통일하는게 손절 못하는 상황. 이대로 전쟁나고 피해 생기면 저새끼들이 배상 해주겠냐? 안해주지. 통일이 제일 싸다. 너넨 북쪽 맡아라. 우린 남쪽 맡는다. 식으로 각색해서 소설써야지. 좀 과장해서 세계 평화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었다고 ㅋㅋㅋㅋ.
암튼 이런 배제와 축출이 이뤄지면서 정치권력의 집중화가 생김. 유교적 관료문화도 한몫함.
이승만정부에서 권위주의화, 대통령 권력의 집중. 정부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강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권위주의화가 필요.
민주주의 기반도 없이 제도만 형식적으로 들어왔으니 문제 생기지. 다른 나라는 뭐 그게 부르주아 성장도 없이 된 줄 알아? 국민적 통일성이 없으니 일제식민지 벗어난다고 뭐가 달라지나. 가치와 신념이 부족했다. 당연히 제도만으로 세워질 리 없는거고.
헌법도 사회 현실과 유리된 채 만들어짐. 헌법 경시가 된 건 당연지사.
우리나라는 누가 헌법을 작성했는지 왜 이런 환경이 되었는지 설명도 못해. 관심 대상도 아니었고 쟁점도 부족했어. 분단국가의 이념적 기초는 반공주의였지.국가보안법으로 이어졌다.
기능적 계층적 분화와 갈등이 자연스러운만큼 이념과 언어도 자유로워야 하는데 냉전반공주의는 이를 허락치 않는다.이에 기반하는 한 민주주의로 발전하기 힘듬
>진짜 근본은 감성적인 가치에 매몰되는거 아닐까.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있어서 감성이 들어가 버리는건 말이 안되지. 저건 내 편이니까 봐줘야해요. 이게 뭐냐고. 저건 상대편이니까 세게 때려요. 초딩이냐? 그런 감성적인거 없이 옳고 그름만 있는대로 논리에 근거하여 따질 수 있어야 뭐가 될 거 같은데.
국가재벌주도 발전모델이 민주주의에 남긴것은?
박정희는 권위주의의 제도화를 실패함으로써 민주주의로 길을 열었다.
경제성장과 산업화에도 불구하고 왜 실패했는가?
유신체제 수립에 정당성 상실-노동운동 탄압.
경제성장이 민주주의를 가져왔다. 중산층 성장과 교육 문화적 태도의 확산.
>진짜는 근대화론이지. 그지같이 못사는데 교육은 어떻게 받을 것이며 목소리를 낼 중산층이나 사람들이 무슨 힘을 가지는데? 경제력 생기니까 권리가 주어진거라고. 따라서 민주적인 문화가 자리잡는데에 경제적인 성장이 필요했음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걸 박정희가 의도했든 아니든은 중요한게 아니야. 경제력이 근원이었지. 그 이후에 사람의 인식이 변했다. 다수의 인식이 변했기에 이긴거다.
박정희 정부는 근대화 정부. 적극적 시장개입과 국가주도의 산업화는 부르주아지의 저항을 받지 않음. 고도성장을 통한 산업화로 지지 받음.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자립경제의 달성!
권위주의는 효율성과 정부의 수행능력에 기반. 따라서 효율성과 성장 목표달성만이 중요하다. 그것만이 국가 이데올로기.
>당시에는 성장이 민주화보다 더 중요했지. 당장 굶어죽는 최빈국인데 생존보다 중요한게 있어? 이 과정에서 민주화를 등한시 하는건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 나라도 효율성만 찾았겠다. 살아남고 나서 인간적인 가치를 논해라.
일본은 유능한 관료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라 본다. 발전국가에 있어 국가 이념과 목표를 정의하고 정책순위 정하는데에 엘리트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니까.
작정희적 모델은 정치논리가 경제적 합리성보다 우위에 있었다. 노동운동이나 반체제운동을 감시 억압할 뿐만 아니라 주요 결정자. 군사주의적 요소. 권위주의 체제 하에서 발전할 수 밖에 없다. 위계적 계급주의적 권위주의가 잔존하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그러니 민주주의 제도화 되어도 개인 단위에서 그 규범이 제약당하고 있다.
박정희 정부는 재벌 창출함. 한국판 부르주아계급. 지배계급. 도시 중산층은 매우 적음. 농민이 매우 지지했고 노동자도 수혜를 받음. 근데 노동자는 민주주의 지지세력으로 전환.
권위주의적 산업화가 지지를 잃기 시작한건 71선거로 나타남.
국가권력과 거대자본의 협력이 상승작용을 일으켰는데 이 체제 자체로는 출로가 없었다.
체제를 바꾸지 못한 것이 한계.
80년대에 민주주의 요구 분출. 부르주아가 아닌 운동권 중심의 민주화.
민주주의의 실제 권력은 재벌에게 돌아감. 정경일체라 할 정도로 정치경제의 기능분화를 무너뜨리고 정치 지배.
관료적 권위주의 남김.
권위주의적 노동통제.
당시에는 그랬지만 지금도 청산 못한건 이후 정권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재벌구조를 재편하고 관료체제의 민주적 개혁.
권력과 언론의 유착 심화되며 국가의 정당화에 동원. 정당성은 결여되고 있는 정권.
>박정희의 실패는 이거다. 자신의 체제가 문제를 겪고 있는게 보여서 움직임을 보이는데도 그걸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들지 않고 표상적으로 덮어서 치우려 했다. 그렇게 해서 본질적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 문화를 바꾸는게 목표였고 진짜 할거면 신념체계 자체를 뒤흔들었어야지. 정당성을 보전하기 위해 체제를 바꾸는건 힘들었던걸까. 도움이 안되면 버려야 했는데. 아니, 할 줄 몰랐을지도. 이 또한 실정.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성공신화로 여러 국가에 퍼짐. 근데 뭐 그게 영원히는 못 가.
학생들은 왜 민주화 운동에 나섰나?
권위주의체제에 야당이 정면 도전을 못하니까 학생들이 시위에 나섬. 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음.
정치적 기회가 운동을 발생시킨 동인이다.
>그럼 이거 현대에는 학생시위 줄어드는게 당연한거 아니냐? 니들이 목소리 낼 수 있으니까 시위 줄어든거잖아. 그걸 왜 캠퍼스가 시민운동의 장이 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던거냐? 자연적으로 사라진건데?
권위주의 체제는 반민중적이니 몰락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민주화운동은 학생이 중심, 개인의 자유나 권리가 아닌 독재타도라는 정치적인 입장이 분명함. 권위주의에 대한 투쟁.학생-교원노조-통일이슈. 학생과 조직노동자 중심.
구체제는 민주화운동이 붕괴하고 제도화는 정치엘리트가 했다. 힘의 괴리.
대표체계가 사회이익과 요구를 대변못함. 이념적 틀에서만 갇혀 행동하고. 그나마 엘리트 중심에서 한 발짝 나와 대중적 요소를 가지게 되었다. 사회적기반과 접맥되지 못한 채 보수적 경쟁에 머무름.
민주화의 보수적임은 국가의 강력함, 2단계 민주화, 민주화 동력이 되는 두 세력의 분리. 야당 운동권.
엘리트집단은 권력독식 운동권 요소 배제. 무능력함 보임. 지들끼리 싸움.
>권위주의를 없애지 못한것은 민주화 정권의 절대적인 정당성 문제다. 니들 올려놓은 운동은 정치적인 입장만 놓고 시위벌인건데. 까놓고 말해서 정권 엎고 권력 얻으라고 판 깔아준거고 정치 잘하니 못하니를 따진 건 주 쟁점도 아니었어. 근데 그 권위주의 타파 못했으면 너네 한게 뭔데? 그 자리 빼앗아 올라간거밖에 더 돼? 운동 참여했던 사람들은 뻘짓한거네? 권위주의 타파가 너희의 전부였다. 권력만 먹으라고 앉힌게 아닌데. 이래서는 마치 너네 목적이 권위주의 타파가 아니라 내가 저 자리 올라가기 위해 너네를 운동에 이용하고 선동했다가 되어 버린다고 ㅋㅋㅋㅋ 웃기려고 한건가?
***
권위주의는 지배 엘리트를 형성 발전시킴. 특정 집단에게 특혜와 이익 배분하고 다른 집단이나 개인 억압.
민주화는 선출된 잡권 엘리트와 선출되지 않은 행정관료 엘리트 간의 새로운 관계설정 요구.
새로운 정치 엘리트는 국정운영에 무능과 미숙 보임. 도덕적 우위도 잃고 관료 엘리트에게 의존.
민주주의란 대표자간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행위하면서 시민들에게 책임을 지는 지배의 체계.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해 국가의 최우선적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어떻게 무력한 국가를 활력있고 능력있는 국가로 만드느냐?
김대중정부는 개혁부진을 일으켜 정권이 약화되었다.
어떻게 야당이 집권했는가? 재벌, 노동문제, 시장 개혁에 대안이 없었다. 어떤 민주주의적 발전 모델이나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막연한 지향정도만 가지고 있었지 구체적인 실현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대안을 보수화하여 선거에 이기려고 했지만 그 결과 보수당과의 차이는 거의 없게 되어버렸다. 또 이건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지고.
>그냥 권력 잡는 거에만 열중했다는거지. 진정으로 중요한 나라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대한 준비도 연구도 없이 운동과 시위만 벌인 야만.
민주정부 하에서 국가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 관념이 없었다. 권위주의 정부와 다를게 없었음. 차이가 있다면 아이엠에프 맞은거? 그걸로 작고 효율적인 정부에 강조점을 두었고 새로운 발전 모델은 천명만 되었을 뿐, 개혁 정책의 노선으로 구체화를 못함.
재벌의 구조조정, 민영화, 노동문제, 고용문제, 사회복지 등 해결할 모델이 없었다. 그러면서 권위주의적 발전주의에 이어 시장근본주의가 자리잡음. 새로운 발전 모델 제시 못했으니 기존 관료에 의존하게 되었지.
민주주의 하에서 관료는 무능력 부패 무사안일 무책임 등 부정적인 요소. 유능에서 무능으로. 이런 이유는 국가목표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강권기구의 상실. 정보기구는 국가의 방대한 관료기구 통제 조율 평가 징벌하며 최고 행정수반이 마련되게 기능했었다. 결국 민주정부가 관료체제를 민주적으로 운용할 패러다임이 없어서 생긴 문제.
대통령은 민주적 리더십을 구현해야 하고 국민은 대표가 공직을 수행하는지 감시감독 해야한다. 이로써 책임성이 성립되는 것.
민주화는 한국을 얼마나 민주적으로 바꾸었는가?
대통령을 권위주의적이게 만드는 것은 투표자와 정책공약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구속되지 않는 상황의 결과물. 정당의 허약함으로 대통령은 권위주의적이 된다. 즉, 정당과 사회의 거리를 줄여 정당을 사회에 뿌리내리면 권위주의를 내릴 수 있다. 정당은 시민사회를 국가에 매개하는 역할을 가진다.
중앙집중화는 서울로의 공간적 집중화를 말하는게 아니다. 엘리트의 동심원적 중첩성도 합쳐져있다. 원인은 권위주의적 산업화가 지대함. 정치경쟁이 그러듯 교육 경쟁의 가열화도 이 부산물. 교육은 사회로 내보내기 위한 공급적 측면이 아니라 사회의 수요적 측면에서 끌어당기는 식으로 개혁이 필요하다.
집중화를 완화하는 방법? 넓은 이념적 공간에서 경쟁하는 것. 정당간 경쟁 확대는 정당이 안정적이고 강력한 사회적 기반 획득. 정치 엘리트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다원화.
한국의 시장도 권위주의적. 국가 경제의 성장목표를 설정하고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주도성. 거대 기업이 국가의 거시경제정책의 성장목표를 대리 추진하면서 국민경제를 지배하는 재벌 경제체제. 노동의 배제. 경제적 기반과 정부 업적이 소수 재벌기업에 의존. 이들이 국가의 경제 좌지우지. 위로부터의 개혁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음.
민주화의 의의는 권위주의 시장구조를 개혁하는 것. 재벌 중심의 정경유착은 부패, 부정, 비리, 탈법, 비효율의 발원지. 법의 지배조차 실현하기 어려움.
실제 민주화가 가져온건? 재벌개혁과 노동통합을 정책목표로 삼긴 했지만 실제 시장구조는 별로 재편되지 못하였다. 재벌체제는 강화되었고 재벌중심의 경제력은 집중됨. 아이엠에프라는 저성장 고실업 상황에도 노동의 배제는 지속됨. 냉전반공주의와 발전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틀을 바꾸려는 정치적 시도는 전무. 집권 초기에는 노동 통합적 개혁을 강조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권위주의적으로 퇴보. 실질적 정책 전환 없었음
>떠들기만하고 결과가 없으니 무능이라고 부르는 것.
한국은 실질적 개혁을 이루지 못함. 개혁자의 이념, 비전, 프로그램이 실천적인 수준으로 준비되지 못했고 개혁의 능력이 없었다. 의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일 정도로 정치구조의 개혁 시도가 없었다. 정부정책을 주도한 것도 권위주의 시기의 관료체제였으니 대안적 경제정책의 추진자가 되지 못한것. 그리고 이들에게 의존할 정도로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무능했던 탓.
>전체적으로 문제는 이데올로기적 매몰. 사상이든 당파적이든 갈라쳐져서 합의하지 못하고 경쟁과열된 것. 이것에도 권위주의가 기반에 있으며 지금껏 이걸 타파하지 못한게 문제. 사상이 다르더라도, 아니 애초에 사상따위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도록 뒀어야 하는거 아닐까. 민주화를 울부짖으며 운동을 했지만 정작 이룬건 특정 사람들을 자리에 앉히는 것만이 민주화의 목표였던 것처럼 되어버렸어. 실질적으로 해야할 준비도 없었고 능력도 이룬것도 없는 것들이 민주화랍시고 자리만 먹은거잖아. 이런 평가가 억울하면 니들이 성과를 냈어야지. 결과도 못내놓고 변명은 구차하다. 이뤄진 것만을 놓고보면 딱 그 수준이다.
시민사회란 국가와 개인 및 가족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자율적인 결사체의 활동영역.
자율적인 결사체들이 조직되는 영역. 사적 이익에 기반. 공적영역에 참여함은 물론 사익 도모.
자율적 결사체들이 민주주의 가치를 중심으로 일정한 공적 합의를 만들어 낼 때 시민을 위한 시민 사회이도록 만들 수 있다.
한국시민사회가 국가로부터 분리된 영역에서 형성된 것은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시작된 것.
시민사회의 양적팽창은 민주주의 기반을 약화시킴. 기득 세력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적 정당체제도 시민사회의 약한 구조가 만든 결과물. 노동운동과 연대 형성에도 무관심하고 고립에 기여.
공익창출의 안정적 기반으로 기능하지 못하며 위기는 가속화.
>현대에도 그러한가를 생각해보면 내가 더 알아야 할 것이 많다.
보수적 정당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함. 정치 엘리트 간의 협약에 의한 정치경쟁의 절차.
대중의 참여가 없는 정치는 상층편향성을 특징으로 한다. 민주주의에서 통합이란 균열과 갈등을 표출하고 대표되는 것.
보수독점적 폐쇄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요구를 폭넓게 반영하는 대표체제가 개방되어야 한다.
>근데 정치란 것의 본질은 상대를 늘려서 좋을게 없다는 거야. 자기 주장이 죽거든. 그러므로 정치인들은 이런 폐쇄성을 벗어나기 힘들지. 자기 권력 내려놓으라는 소리나 다름 없어. 그리고 의견이 많아지면 그만큼 합의하고 결론을 이끌어내는게 힘들어. 실정이라고 그것도. 민주주의를 그냥 이상적인 전시물로서 추종한다면 그런 식의 정치를 해도 되겠지만 현실에서 실전성을 추구한다면 그런걸 내버려 둘 수 없지. 어느정도 개방성은 필요하다는걸 인정하지만, 그래야 화합의 기초가 되리라는 것도 인정하지만 저걸 적극적으로 실현하는건 정치인들에게 자해나 마찬가지야. 해줄 리가 없다고. 괜히 안한게 아냐. 하더라도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집단으로 세분해서 만들지 않을까. 정치적 바람잡이로.
그러니 진정 민주주의를, 민주화를 바란다면 당신 스스로가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식으로 개혁해야할거다. 10만 국회의원? 생각해보면 그것도 적다. 1000만 의원이 되는 ㅋㅋㅋㅋㅋㅋㅋ 개소리같지만 그 이상적인 전시물로서의 민주주의를 바란다면 저정도는 해야하지 않을까. 우리가 당장 잘 살고 못살고를 떠나서. 정치적 행정적 현실성을 떠나서 민주화만을 이루고자 한다면. 광신적이지? 이건 안된다 싶지? 당장 21세기에 논할 문제는 아닌듯.
정당이란 갈등의 범위를 넓히는 역할로 민주주의에 기여. 한국에서는 유리한 갈등만 동원하고 대표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 갈등의 사유화. 갈등은 민주주의의 엔진.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거시적 대안과 현실적 프로그램이 필요.
기존의 보수독점적 양당체제 해체가 시작이다. 필자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선호. 유권자가 후보자와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게 두므로 정치 엘리트의 수직적 책임성 강화. 후보자 개개인에게 제도 개혁에 힘 쓰라고 함. 자격요건 따지는 것보다.


내 해석대로 해보자면 배트맨의 등장은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사람의 출현이었다. 마피아들은 배트맨만 없으면 다시 세상은 부패하고 자신의 뜻대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아니다. 조커는 그 핵심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사람의 등장이 이미 있지 않았는가? 조커부터 배트맨의 사생아라 해도 좋았다.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은 조커나 배트맨같이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인물들의 등장을 암시하는 것이다. 조커에게 있어 배트맨은 동족이었다. 서로를 죽일 수 없지. 얼마나 반가운데.
조커가 같잖은 정의감이라고 배트맨을 까는 이유도 나는 명확히 보인다. 무엇을 위해 그 정의감을 지키는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레이첼과 사랑하는 삶을 이루기 위해? 부모님이 지키려고 했던 그 이상을 이어가기 위해? 조커가 보기에는 다 같잖은 일이다.
내가 그렇다는건 아니고. 어떻게 살아도 좋은게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신념이 있으면 독특한 맛이 날 뿐이지. 개개인의 미식에 대해 왈가왈부 따지는 짓은 답지않다.
아무튼 배트맨 복장을 입고 나서는 자경단원같은 인물들도 예전의 마피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조커가 보기에 세상은 쓰레기였겠지. 아내를 위해 입을 째주어도 아내는 그의 속내가 아닌 겉모습에 질려서 도망가니까. 아버지란 작자는 기분풀이로 아들을 학대하고. 그런 세상에 정의가 있는가? 대체 무엇을 위한 정의인가. 사람의 바닥은 그런거다. 그런 세상에서 정의를 위한다며 나대는 꼴이 같잖아보였는가. 거짓이고 위선으로 보였는가.
배트맨이 최후에 한 짓은 하비의 타락을 밝히지 않고 세상에 거짓을 씌운 것. 그것이 과연 정의였을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진리는 사실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는 것이거늘. 자신을 악인으로 만들고 하비를 위인으로 추대하는 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현실을 덮어버린 것과 다르지 않다. 그걸 미덕으로 삼는다면 부끄러운 일 아니겠는가.
차라리 이런 결말은 어땠을까. 사람들은 하비 덴트의 타락을 알아버리게 된다. 하지만 그런 타락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배트맨이라는 정의의 인물에 대해 신념을 보내고 조커의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한다. 그래야했던거 아닐까. 하. 살인자를 영웅으로 내세우는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조커를 반박하고 싶었다면 그들에게 진실을 밝히고 시민들이 그 이후에도 정의를 쫓게 내버려뒀어야 했다. 그럴 자신이 없었던걸까. 아니면 조커가 맞다고 생각한걸까. 슬프군.
명대사
혼란의 미덕은 공평함.
===
조커
조커, 아서 플렉은 사회적 최하층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장애를 앓으며 빈곤에 매달리지. 티비에서는 그런 자신의 현실적 어려움은 찾아볼 수도 없이 즐겁고 밝은 이야기만이 떠벌여져 나온다. 그 이질감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심지어 그런 자신을 웃음거리로 다루는 머레이쇼는? 토머스 웨인은 약자를 위한다고 선전 문구를 내세우지만 정작 본인이 하는 짓을 보아라. 그들의 삶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아서가 직접 찾아가서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 하찮게 때려서 내쫓아야 할 것이 약자였다. 조커가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그래서 머레이를 쏴죽였다. 못된 놈들이라고. 약자에 대해 마음껏 주먹을 갈기는 금융업자들처럼. 전혀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데. 약자를 위한다면서 소외자들에 대한 복지와 상담을 끊어버리잖아. 상담사도 그렇게 말했지. 너희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정말 관심 없으니까. 약자들 죽는게 내 알바냐고 ㅋㅋㅋㅋ. 어디 매일 죽어나가긴 하겠지만 그저 평소처럼 시체를 밟고 살아가는게 사람 아닌가?
많은 이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조커는 21세기의 그리스도와 같다. 뭐, 실상으로 저질러진 것은 프랑스 혁명의 살인과 혼란이었지만 그조차도 다들 미화해줬잖아? 언젠가 이거 누가 소재로 써봐라. 프랑스 혁명도 조커와 같은 민란내지는 폭동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 민주적 가치는 이후에 붙여졌다. 조커의 폭동조차도 그만한 절대적 미덕을 찾아서 붙인다면 누가 뭐라하겠는가?
뭐, 내 이야기를 더 써보자면 다르다.
이건 사회 본질적인 문제에 있다. 부자 거지로 계층을 나눈 기본부터 썩어있던거지. 사람이 과연 돈이 많다고 존중할 가치라 할 수 있는가? 그건 개인의 행복에 지나지 않아. 그걸 내가 콩고물이나 얻어먹겠다고 빌빌댈 이유는 없어. 그 사람에 대해 숭상하는 것도 아니잖아. 부자의 돈과 권력에 조아리는게 전부지. 마음속으로 그런 존경심이 나오겠냐고. 그런다는 놈들은 거짓말쟁이거나 정신병자라 해도 좋아. 네 옆에서 찌질거리는 인물이 복권에 당첨되었다고해서 마음속으로 존경심이 갑자기 우러날 수 있다면 그렇게 당당히 말해봐. 돈이야말로 인간을 존중해야할 근거라고. 인간을 존중하고자 한다면 하나밖에 없어. 자기 신념을 고집하는 사람이거나, 책임을 지는 사람. 아무리 돈이 많든 학식이 높든 천박한 인물은 천박해. 실제로 돈 많고 배운 놈들이라고 해서 사기를 안 치는 것도 아니잖아? 그들이 천사처럼 날개라도 달고 있던가? 진정으로 존경할 가치는 그들이 지는 책임이야. 자신의 잘못에 마땅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 그것만이 타인의 시각으로 존중할 가치야. 그런데 세상은 그러지 않지. 그냥 잘못 자체에만 욕과 오물을 던지고 그들이 진정으로 존중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같아.
따라서 교육을 뜯어 고쳐야한다. 돈이 많든 권력이 있든 그것은 네 개인의 행복이지 다른 사람을 존경해야할 가치는 아니라고. 그들이 실책을 저질렀을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책임을 질 수 있는가. 그것만이 사람의 고귀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엉뚱한 사람에게 그 책임을 씌워놓고 도망가는 짓따위 빌어처먹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현실에서 실망하는 부분도 이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것. 문제가 터졌는데 책임을 져야할 놈이 나타나지 않고 엉뚱한 놈에게 씌우거나 얼렁뚱땅 넘어가버린다. 이것이 사회적 풍조로까지 자리잡게 된다면 ㅋㅋㅋㅋ 나라 망했네 소리가 나오는거라고.


인간관계론
사람다루는 법
1.비판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마라
2.정직하고 진솔한 칭찬
3.다른 사람에게 열망을 불러 일으켜라
호감 얻는 법
1.타인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라
2.진심으로 미소지어라
3.상대의 이름을 외워라. 이름을 외우는 것이 가장 달콤한 말이다.
4.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라. 그 자신에 이야기하도록 격려하고.
>그렇지. 말을 지껄이는건 손해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게 더 이로운 일이다. 그러니까 댓글로 논검좀 ㅎㅎ
5.상대의 관심사에 대해 말하라.
6.스스로 중요한 존재로 느끼게 만들고 진심으로 인정하라.
설득하는 법
1.논쟁 이기기=논쟁 피하기
1)의견차 환영
2)첫직감 믿지마라.
3)감정 조절, 잘 듣고 일치점 찾아라
4)솔직히 실수 인정
5)상대의 아이디어 숙고, 연구
6)양측이 문제 철저히 숙고
2.상대 의견 존중, 틀렸다고 말하지 마라
3.잘못은 빨르고 분명하게 인정
4.우호적인 태도로 시작.
>옳든 그르든 너의 아군이라고 여기도록 만들어야 나의 말과 사고가 뇌에 스며들 수 있으므로.
5.예라고 말하게 만들어라.
6.상대방이 말하게 하라.
7.당신의 생각을 상대 자신의 생각으로 여기게 하라.
8.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려고 노력하라.
>그래야 어디가 약점인지 보일테니까.
9.상대방의 생각과 욕구에 공감 표현
10.고상한 동기에 호소하라.
11.생각을 극적으로 전달하라.
12.도전정신을 불러일으켜라.
원한없이 변화시키기
1.칭찬과 감사로 시작하라. 칭찬은 마취약이며 샌드위치 기법으로 네 의견을 넣어서 먹여라.
2.상대 실수 간접적으로 깨우치게 만들어라.
3. 비판 전에 자신실수부터 말하라. 내가~해서 후회한다.
4.명령하지 말고 질문하라. ~할 방법이 있을까요?
>설령 네가 답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질문으로 답을 내어주도록 유도하는건가. 어린애 달래기군.
5.상대 체면 세워라.
6.진심으로 인정하고 칭찬을 아끼지 마라. 작고 개선된 모든 부분에 칭찬하라.
7.상대방이 부응할 명성을 줘라.
8.격려하라. 잘못을 쉽게 고칠 수 있다고 느끼게 하라.
9.당신이 제안한 일을 상대가 기쁘게 하도록 만들어라. 내가 원하는 걸 알고 이익언급, 이해관계 일치시키기.
>이 사람 정치 잘하네. 그렇지. 상대가 기꺼이 하도록 만들어야지.
>>어지간한 철학자들보다 깊은 깨우침을 담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을 되새겨 볼 가치가 있을 정도로 금같은 말이다.
내 성정일수록 더욱 이 기술에 능숙해져야겠지.
반골이야.
반골인건 나쁘지 않지만 상대를 설득하고자 할 때는 반골 기질로 부딪혀서 안되는 일이잖아?
나조차도 옳은 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어먹질 않는데.
거짓말이라도 달콤하면 좋아한다고.
도덕과 선함에 논리가 없이 좋은걸 좋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지.
그 거짓에서 행해진 부당함이 자신에게 손해가 될 때는 이빨을 드러내면서 말이야.
결국 부당함이 있든 말든 이익과 힘의 논리에 의해서 일이 처리되고.
어쩔 수 있나.
도덕에 논리가 없는걸.
내가 보기엔 똑같다.
이 거짓말로 이런 이득을 볼 수 있어요< 이 부정 하나가 다른 방식과 입장으로 행해졌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려고 그러는 걸까?
일의 대소와 무관하게 행동원리가 그러하다.
해로워 보이면 뱉고 이로워 보이면 삼킨다.
논리 없이 호불호에 따라 결정 되어진다.
그 과정에서 부당함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다들 책임 질 생각 없잖아?
도덕에는 원래 논리라는게 없다.
그 논리를 인공적으로 만들려는 것부터 사회 생리를 해치는 행위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논리와 사회 생태계를 떠나서 옳음 자체는 있지 않겠는가.
진실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이유를 수 억 가지를 가져다 붙일 수 있겠지만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거짓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 역시 수 많은 이익과 변명으로 치장할 수 있겠지만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 뿐이다.
그것이 거짓이기 때문에.
거짓이 그렇게 이득이 된다면 자기 머릿속에서 나만이 우주의 신이고 모든 인과율을 조율하며 죽어도 불멸한다고 생각해 믿어버리면 되잖아?
하지만 그딴 소리를 진심으로 믿는건 미친놈이겠지.
사람들 앞에서 진심으로 그 거짓을 받아들였다고 이야기 해봐라.
어떤 시선을 받을지 상상이 가지?
1호선 레전드 하나 찍을 수 있을거다.
그보다 더 이익이 되는 상상을 떠올려 살을 붙이고 믿어버리면 되는데 왜 사람들은 믿지 않는가?
그게 거짓말이니까.
그렇다. 믿지 말아야 할 이유는 하나. 그것이 거짓이기 때문에.
그딴 거짓말을 믿는 놈에게 백병원 환자의 눈초리를 보내는건 당연하다.
아무리 이득과 편의를 가져다 준들 나에게는 믿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밖에 없다.
그게 거짓말이니까.
마찬가지로 진실이 아무리 불편해도 진실을 진실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할 이유는 하나다.
그게 사실이니까.
도덕적 논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자, 거짓을 거짓으로 취급하자는 이야기. 이건 세울 수 있는거 아닌가?
이렇게 말했지만 다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반골기질이 단순히 옳고그름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
필요한건 사람을 설득하는 정치적 접근법.
상대는 자기 스스로 깨우쳤다고 여겨야 편하다.
설령 내가 깨우치게 만들었을지라도 그딴건 별로 중요한게 아니다.
상대가 네 생각을 열렬히 받아들였다는 것.
그게 최상의 설득법이야.
공로같은거 탐내지 마.
설득했잖아.
그걸로 된 거 아니야?
나도 니체나 진리주의자들의 생각을 내 생각이자 의지처럼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그걸로 된게 맞다.


1. 정신의 탈바꿈
낙타는 무거운 것을 짊어지고 자신의 힘에 기뻐하지만 이건 어리석은 짓이지. 자해와 다름없는 짓이니까.
그런 정신은 외로운 사막에서 사자가 된다. 자유를 쥐고 주인이 되고자 한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주인 도덕자. 사자는 자유를 움켜쥘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자유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기존의 가치들이 제멋대로 만들어졌다는걸 느껴 버렸거든.
다음에는 어린아이가 되어야하는데 그는 신성한 네를 할 수 있지. 삶과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긍정. 그 순수함 말이야. 선도 악도 어떤 가치기준에도 물들지 않고 순수하게 세상을 대할 수 있는 아이가!
2.잠을 자는 법을 가르치는 학자. 그에게 잠이란 평온한 삶이다. 그 잠을 위해 미덕을 지키고 스스로를 넘어서야한다. 적당한 명예와 돈, 신념없이 하나님과 악마와도 평온하게 지내고 권력에 존경과 복종을 바치는 학자. 잠을 잘 잔다는 점에서는 탁월한 방법이지만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 없음이라. 이 학자를 찾는 사람들도 잠을 자기 위한 아편의 미덕을 찾았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3.그도 신을 믿은 적이 있었다. 모순도 고통도 창조주의 뜻이라고. 허나 창조주란 인간의 작품이자 광기임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별볼일 없는 인간이었다. 참회와 고행(재)를 들고 올라가자 그 신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기에 알 수 있다. 저세상을 믿는 사람은 만들어낸 망령을 믿어 고통받으면서 저세상에 몸을 들이밀지만 그 저세상은 인간으로서 알 수 없다. 신이라는 에고는 정직하게 나타나있지 않다. 차라리 몸과 땅을 믿어라. 하나님에 대한 의심 자체를 죄로 만드는 놈들도 저세상이나 구원을 믿는게 아니라 자신의 몸을 믿는다. 동시에 자신의 몸을 경멸하지만.
창조는 가치평가하는 행위이다.
4.몸을 경멸하는 사람
몸을 경멸할거면 뒤져라. 그리고 닥쳐.
정신이라는 것도 몸의 도구야. 자아가 에고한테 즐거우라면 즐거운거고 고통스러우라면 고통스러운거야. 당신들의 존중과 경멸 가치와 의지가 다 자아로부터 나왔다. 창조적인 자아는 존중심도 경멸도 만들어내. 몸을 경멸하는 자들도 자아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지 원초적인건 없었다.
5.미덕이 있다면 그건 타인과 같을 수 없다. 인민과 어울려 미덕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건 떼중 하나가 되는거다. 네 덕은 네 방식의 선이다. 하나님도 인간도 준 것이 아닌 스스로의 것.
미덕은 미덕을 질투한다. 그런 미덕간의 시기 불신 비방과 같은 전투는 필요하다. 제각기가 자신의 미덕이 꼭대기에 서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조차 해치게 되겠지. 스스로의 미덕을 위해 파멸할 수 있을 정도로 신앙하고 끝에는 미덕을 넘어서라.
6.판사여. 너희가 죽이는 것은 복수가 아닌 자비가 되어야한다. 죽이는 이는 적, 불구자, 바보라고 해야하지 그것에 악과 죄를 붙이는건 부당하다.
니체는 범죄자의 살인에 대한 처벌조차도 선량한 사람을 죽였느니 따지는걸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살인자는 시대에 걸맞지 못한 선과 악의 기준에 의해 패배해 사그라진 것이다. 살인조차도 원죄로 보지 않는 뻔뻔한 에고를 가지고 있군.
7. 숭고해지기 위해 위를 쳐다보는 사람이여 숭고한 자는 아래를 본다. 지혜가 바라는 것은 용기있고 담담하고 거침없는 것. 그런 오만한 당당함이야말로 전사다. 삶을 사랑하는 디오니소스 신을 믿어라. 염세주의자를 증오로 죽이지 말고 웃음으로 죽이자고. 경쾌하게 날아다니며 살아라.
8.마음은 나무처럼 보이지 않는 바람에 의해 흔들린다.
높게 자랄수록 빛을 많이 받지만 그만큼 어둠으로 뿌리를 내려야한다. 젊은이는 높은 곳에 이를수록 스스로를 부정하는 사람. 나무가 높게 자라서 외쳐봐야 아무도 들어주지 못하지. 그럼 나무는 무엇을 해야하나. 번개를 기다리기라도 하는건가?
그럴지언정 그 나무는 고귀했다. 고귀한 것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를 원한다. 선량한 사람은 낡은 것이 유지되기를 바라고. 한번 숭고한 희망을 잃고나서 모든 가치를 비웃고다니는 방탕아가 되지 마라. 영웅이여. 그 숭고함을 간직하라.
9.죽음을 설교하는 죽고싶어하는 놈들은 이미 죽은 놈이나 다름 없다. 스스로 패배한 녀석들. 삶을 지속하는 스스로를 비웃는 바보들. 악해지는 것이 녀석들의 선이다. 삶을 믿는 이들이여 열심히 살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나는 동의 못한다. 열심히 사는 것이 삶으로부터 도주라고? 글쎄올시다.
10. 전사는 증오와 시기를 초월할 정도로 위대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가진 증오와 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위대한 점이다. 평화를 바란다면 싸워서 이긴 평화를 쟁취하기를. 용기있게 사는게 선이다.
이후 서술된 전사의 삶을 긍정하지는 못하겠다. 복종으로 존엄성을 보이는 삶이라. 깨달음을 발견하는 성자의 삶과는 멀지 않나. 물론 성자의 동반자로는 좋겠지. 성자에게 복종하는 도구들.
훌륭한 전쟁이 명분을 신성하게 만드는 것이지 훌륭한 명분이 신성한 전쟁을 만드는게 아니다.
11.인민이 있는 곳에 국가는 없다. 국가는 인민의 관습과 법률을 파괴한다. 그들은 선과 악에 대한 언어를 무엇이든 떠벌이고 거두어낸다. 인민 고유의 것은 여기서 파괴된다. 애국감정을 가진 열정자들에게 국가가 위대하다고 속삭인다. 새로운 우상과도 같다.
그는 국가가 없어진 곳에서 자유로운 삶을 향유하기를 바라지만 글쎄. 마을에서 추방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고?
12.인민은 무엇이 위대한지 모르기에 위대한 것을 근사하게 제시하는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 부른다. 그들은 배우이고 독파리다. 그들이 세상을 움직이지만 그들에겐 지적 양심이 없어서 사람들이 믿어줄만한 위대함을 연기한다. 믿음을 매일같이 갈아치우고 혼을 빼돌리며 열광시킨다. 피는 최고의 설득수단이다.
근데 떠벌여져서 영웅이 된 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거든. 그래서 사람들에게 지지냐 반대냐를 요구하지. 거기에 끼어들지 말고 나와라. 그 사람들은 복수 자체일 뿐이고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피를 갈구하지. 그 아첨꾼들과 울보들은 비겁하고 너의 미덕을 처벌하려 들거다. 그들은 위대한 존재를 비난하려하고 비열하게 복수하려 한다. 그러니 그들로부터 멀어져라.
13.진정한 순결은 악마를 몰아낸다거나 미덕을 추구하면서 하는게 아니다. 지키려고 해서 지킨게 아니라 살다보니 순결이 찾아오는게 옳다. 다른 미덕들도 마찬가지. 그걸 지키려고, 지키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져서 지키는 가치가 아니라 살다보니 그러한 특성이 자신에게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다.
14.사랑은 시기심을 뛰어넘기 위한 것.내가 없는 것을 가지고 있어 사람을 시기하고 시기심을 넘기 위해 친구로서 사랑한다. 그렇기에 친구가 되려면 친구와 적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한다. 친구와 숙적이 되어야한다. 그래야 반대할 때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다. 그렇다고 벌거벗은 그대로를 보여주는것은 상대를 질색시키는 일이다. 그건 상대에게 분노를 일으킨다. 그러니 차려입고 가라. 연민을 하려면 모르도록 연민해라. 노골적인건 안된다. 노예거나 폭군이어서는 친구가 될 수도 가질수도 없다. 그래서 여자는 친구가 되지 못하고 사랑을 안다.
15. 인민은 가치평가를 해야 존재한다. 선악은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기린의 목이 길어진 특성과 다를 바 없는거다. 가치평가도 이렇게 창조된 기관이다. 물론 이런 가치 평가를 통해 가치가 실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를 위한 목표는 어디있나? 기존의 가치관과 선악은 인간의 보편성에 도달하지 못했다.
16.이웃사랑은 뒤틀린 자기애다. 자기 자신을 마주하기 무서워 이타로 도망친것. 이웃과 사귀면서 스스로에 대한 것을 속이게 된다. 미래의 사람과 먼 사람이 원칙이 되도록 해라.
17. 떼는 네가 혼자 되는 것을 죄라고 말하겠지. 떼의 양심으로부터 개탄과 슬픔이 느껴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의 재판관이 되야한다던가 무엇을 위해 자유로워졌는지 똑똑히 알아둬야겠지. 자신의 숭고함마저 망령같아 보이고 천박한 것만 들어오는 그 고독을 감당할 수 있나? 떼로부터 앙심을 받아야하고 자칭 선량하고 정의로운 자들은 널 경건하지 않다고 할거야. 그 고독의 길은 네가 창조자가 되는 길이야. 눈물을 간직하고 홀로가라. 가다가 패배하여 사그러지더라도 난 너를 사랑한다.
18.여자는 아이를 원한다. 남자에게 여자는 위험과 노는 것. 남자의 행복은 자신의 의지이고 여자의 행복는 그이의 의지다. 여성은 표면을 보고 남성은 그 깊은 격류 자체가 존재다. 여자는 힘만을 짐작하지 그 격류를 이해하진 못 할 것이다.
19.적이 베푼 악이 나에게 보탬이 되었다는걸 보여줘라. 저주에는 저주로 갚고 하나를 당하면 다섯을 범해라. 서로 부당함을 주고 받으면 반쯤 정당한 일을 주고받은 셈이니까. 그런 처벌은 상대에게도 처벌당할 권리와 처벌당한 명예가 되어야한다.
범죄에 대한 이해와 함께하는 사랑의 정의를 바란다.
그는 평등주의적 관점이 정의가 아닌 자선이라고 주장한다. 부가 애초에 누구의 것인가를 따질 때 마르크스는 노동자라고 하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음. 분배적 자선이 존재할 뿐이고 내것이면 내것 네것이면 네것이라는 정의의 기본 개념을 평등주의적 부의 분배는 모순에 직면함.
20.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인생에서 승리했기 때문이기를, 자유롭기 때문이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고 동물적 필요에 의한 결혼은 아니었기를. 아이는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한 의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참한 싸구려의 결합이 되어서는 안된다. 창조자가 간직한 초인에 대한 열망이 결혼의 의미가 되어야한다.
21.삶을 완성시키는 사람은 죽음을 승리로 받아들인다. 죽는법을 배워라. 살아가는 사람의 맹세를 축복하는 축제가 최상의 죽음이다. 원하기 때문에 오는 자발적 죽음을 권한다. 그는 예수의 죽음을 죽음에 대한 갈망이라고 해석한다. 만약 사막에 살았더라면 사는 법과 땅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을텐데.
그는 죽음에 이른 정신과 미덕이 빛나기를 바란다.
22.금의 가치가 높은건 흔하지 않고 쓸모가 없으며 광택을 내기 때문이다. 해와 달을 동시에 안은 미덕을 상징.
마찬가지로 가장 숭고한 미덕도 흔치 않고 쓸모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빛나면서 광택을 내는 것. 그게 베풂의 미덕이다.
모든 가치를 훔쳐내는 도둑. 그 이기심은 건강하다. 헌데 베품의 식탁을 맴도는 도둑이 있다. 그것은 퇴화이고 베풀줄 아는 영혼이 없음이다. 우리의 길은 위를 향한 길. 진화이다.
이름이 아닌 정신으로 이미지를 하고 싶을 때 너의 미덕이 창조된다. 어떤 비난도 칭송도 미치지 못하는 그 의지가 너의 미덕이다. 그게 새로운 선과 악이고 사상이다.
뱀에 둘러싸인 태양.
그리고 그 미덕으로 하여금 땅에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어라. 그대로 사라지지 않도록. 너의 미덕과 정신이 땅의 의미를 섬기기를. 네가 세상의 기준이 되도록 해야한다.
깨달음을 얻었으면 제자로 남아있지 말고 너 스스로의 덕을 펼쳐라. 자신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덜컥 교주를 믿어버리는 것은 몰락이다. 스승을 잊고 자기 자신을 찾아라. 신을 섬기는게 아닌 스스로 초인이 되어 살기를 너희에게 마지막으로 보탠다.
24. 하나님은 짐작이다. 숭배할 것이면 초인을 해라. 초인은 창조할 수 있으니. 초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초인의 창조자가 될 수 있을거다. 우린 신을 이해할 수 없다. 진실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모든 것은 이해하고 보이고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바꿔서 감각 경험으로 생각을 전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실을 추구하는 방법이기에.
하나님이란 존재는 생각이다. 신을 절대시하는 그 가르침은 인간을 혐오하는 가르침이다. 신은 불변의 것이 아니다. 그건 훌륭하지도 않다. 훌륭한 이미지라면 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창조자가 되는 것은 고통스러우나 의지의 해방을 이룰 수 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 역시 변화에 대한 추구이다. 무언가를 낳겠다는 의지가 있기에 순수하다. 그렇기에 신과 같이 창조할 것이 없는 불변의 존재는 지독한 권태와도 같다.
25. 자기 연민에 도취되어 행복한 이들에겐 부끄러움이란 없다. 죄를 짓고 잊어버리기에 즐거울 수 있는게 인간이다. 죄를 저지른 뒤 고통받는 이를 돕고 손을 씻는게 인간의 원죄일 것이다.
위대한 사랑은 연민과 용서를 넘어서야 한다. 신세를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평등주의는 지옥이 될 것이다.
연민에 가득 찬 사람보다 어리석은 이들도 더 없다. 남을 경멸하는, 약하게 보는 그 근본부터가 재앙이다. 창조자들은 스스로를 사랑한다.
26.성직자의 복수는 겸손이다. 그들은 구원이라 낙인찍힌 죄수다.그릇된 가르침과 가치를 쓰고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신앙으로 수치를 명령한다. 스스로에게 모순되고 해치는 자를 하나님이라 부르는 어리석음.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방식 외에는 사랑할 줄 모른다. 심지어 그들의 신은 정신도 빈약하다. 연민에 빠진 바보짓이다. 그들은 초인도 아니고 위대하다는 자 역시 인간적이었을 뿐이다. 차라리 그들보다 더욱 위대하고 고귀한 핏줄을 가진 사람들이 더 존재했는데!
27.미덕으로 보상을 받고 싶어? 미덕이 미덕 그 자체의 보상임을 바라진 않아? 진실은 이거다. 보상을 주는 사람은 없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듯 보상을 바라지 않고 미덕을 사랑해라. 미덕은 너의 자아다. 자신의 선과 악에 관한 기준에 의해 자신이 정의하는게 참된 나다. 미덕은 그렇게 영혼 밑바닥에서 뿜어나오는 진실이어야지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한 줌의 자기정당성에 취해서 세상의 모든 것에 분노하는 녀석을 봐. 녀석의 정의는 복수했다는 말로밖에 안들려. 미덕을 이용해 적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겠다는 거야.
미덕을 폼으로 경배하는 이들도 있어. 그들에게 있어 미덕은 경찰이 필요하다는 것과 같아. 인간 속의 숭고함을 못보고 비열함만 찾는 시기심을 미덕으로 보거나, 몸을 꼿꼿이 가누는 것, 강도당하는 것을 미덕이래. 그딴게 미덕이냐?
미덕은 참된 자아에 깃들어 있어야 한다. 그러니 거짓되고 기만된 미덕을 버리고 새로운 참된 미덕을 찾아라.
28.폭도의 지배에 영합한 어중이떠중이들. 지배자들은 그들과 권력을 두고 흥정해. 역겨워라. 그들은 사람들의 정신조차 어지럽혀. 그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는 니체의 염원이 써져있다.
29.평등을 설교하는 녀석들은 독거미 타란튤라다. 복수욕에 미쳐있는 녀석들. 그들은 세상을 쓸어버리고 정의라 말한다. 평등에 대한 의지를 외치며 힘을 가진 것들을 비난하고 배척한다. 완전 복수심이잖아. 판사가 되어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이 그들의 축복이다. 스스로 선량하다고 하는 녀석들처럼 위선적인 놈들도 없지.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평등해져서도 안된다. 그래서는 초인이 있을 수 없지. 모두가 가축으로 남을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평등은 신 앞의 평등을 대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고서는 니체조차도 정의의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30. 인민이 철학자들을 존경한 것은 진실을 받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신앙을 용서하지. 인민이 증오한 것은 자유정신을 가진자, 족쇄를 깨려는 자 경배하지 않고 숲에사는 자였다. 개가 늑대를 증오한 것과 같다.
철학자들은 인민이 가진 공손함을 합리화 했지. 인민의 옹호자가 된 앞잡이들. 너희는 사자 가죽을 뒤집어 썼을 뿐이야. 경배에 대한 의지부터 지운 뒤 참을 논해. 그렇게 절대화하는 신조차 쫓아내고 사막에 들어가는게 참됨이야. 깬 사람들은 정신의 자부심을 알아.
31. 밤과 같은 고독이어야만이 태양으로부터 온기를 받을 수 있다.
32. 지혜란? 삶과 닮아있다. 변덕적이고 콧대가 세다. 사악하고 전부 꾸며내는 가식. 창녀와도 같다. 의지하고 욕구할 때만 삶을 찬양한다. 갈구하지만 만족을 이룰 수는 없다.
33. 니체의 적들이 축복받은 정신을 죽였다. 모든 존재는 신성하지도 않고 매일 매일 신성한 날도 없다. 너희들은 세상을 구역질나게 만들고 맹세를 망친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망친다. 너희는 황홀을 죽인다. 젊음의 꿈과 위안을 모두 죽인다.
그럼에도 내 의지만큼은 패배시킬 수 없었다. 내 의지는 무덤을 깨트려 젊은 시절의 희망을 부활시킨다.
34.가치관 도덕률 선악을 스스로 만들어내겠다는 진실에 대한 의지. 그로써 시대 국가 문화를 뛰어넘은 개인이 된다. 세상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를 원하는 것. 진실에 대한 의지가 힘에 대한 의자 자체가 되도록. 그것이 가치 평가가 되어야한다. 무릎꿇고 싶은 세계를 스스로 창조해라. 기존의 강은 인민의 강. 가치평가들도 모습을 위장한 채 앉아있다. 하지만 변하여 가기에 의해 흐르는 강은 진리를 찾아갈 수 있다.
약한자는 자신보다 약한자에 대해 주인노릇 하는 것을 놓치려 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강한자를 섬기고. 희생 봉사 사랑에는 주인이 되겠다는 의지가 있다. 강자의 가슴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것이지.
생명이란 넘어서기 위한 것. 더 나은 것을 위한 의지를 가지는 것. 그렇기에 변할 수 밖에 없고 투쟁일 수 밖에 없다. 불변의 선악이란 없고 선악을 창조하려면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 한다.
35.자신을 넘어서기. 영웅은 아름다움을 성취해서 넘어서야 한다. 자신의 갈망을 만족시키는게 아닌 아름답게 만들어서 조용하고 고요하게 만들어야 한다. 주체성을 버리고 싶은 욕망이 생기겠지만 그러한 마음조차 버릴 때야 영웅을 넘어설 수 있다. 고귀한 자여.
36.단순히 종교만을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가 고귀한게 아니야. 너희는 애초에 종교도 가질 수 없는 잡탕의 그림이야. 자손을 못만드는 걸어다니는 신앙거부.애초에 믿음이 결여되어 창조할 능력이 없는 것들.
37.순수인식을 부정한다. 순수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자들은 위선자다. 아무 탐욕 없이 고요히 바라본다던가 하는 말과 사랑 속에는 부끄러움이 가득하다. 욕망 자체를 비방하는 어리석음. 너희에겐 순수함이 없다. 순수함이란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를 창조함에 있는 거다. 고귀함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니 거짓말을 하지. 명상을 좋아하는 사기꾼들. 순수한 깨달음도 없고 신성하지도 않았다. 채양을 향한 순결한 사랑과 창조를 원하는 욕구가 깨달음이다. 생명 그 자체를 진실되게 사랑하는 것.
38.학자들이 가진 위엄과 풍채는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구경꾼 노릇만 하면서 진리로부터는 동떨어져 있지. 뱉는 말은 거짓과 독으로 가득해. 서로조차 못 믿고 사기 노름도 벌여. 그들이 퍼트린 가장 큰 오류중 하나는 인간의 평등이겠지. 평등하지 않은게 정의야!
39. 시인은 아는 건 없고 배우는 건 못해서 거짓말을 지껄인다. 가짜를 만들고 지혜가 있는 양 떠벌이기만 하는 상상과 궤변. 허영에 사는 이들이다. 헛된 위세나 잡는 이도저도 아닌 자.
40. 혁명을 주장하는 것들! 너희들은 거짓되고 천박한 채 독만 바싹 올라있어. 머리에 든 것 없이 복화술로 들은걸 떠들 뿐이면서 땅의 목소리라고 사기 치는 놈. 선동이나 지껄이고 속은 텅 빈 자식. 자유라, 역사적 사건이라 떠벌이지만 그게 세상을 바꾼게 아니야. 새로운 가치를 발명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바뀌었지. 너희가 만든 소음과 연기를 걷어내면 변한건 아무것도 없어. 도시 하나를, 동상을 끌어낸들 세상이 변한것 같아? 국가도 위선적이다. 초월적 근본인양 사기치지. 사람들조차도 절대적으로 가장 중요한 짐승이라고 믿고 있어. 위선적이고 거짓된 것들.
41.우리가 이룩한 것들은 모두 쓸모 없게 되었다. 그런 시대가 올거라 예언했고 그런 황혼을 대비해서 자신의 불빛(철학)을 먼 시대 뒤로도 전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다. 아마 안타깝게도 그 가르침은 재가 되어 있겠지. 왜곡되든 분실되든 미래에는 웃음거리와 함께 무시당할 것이야. 그러나 어쩔 수 없지. 현실에 충실할 수 밖에.
42.불구를 치료하려 들지 말고 불구로 가득한 세상부터 어찌하는게 옳지 않겠는가. 그러지 않고 불구를 치료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음이라. 그럼 불구자들에게 짜라투스트라는 무엇이지? 짜라투스트라는 사람을 미래의 쪼가리로 본다. 그의 역할은 이 쪼가리를 모아 하나로 구성하는 자. 그렇게 과거 지나간 일을 그렇게 되기를 원했던 것으로 바꾸는 것. 완성을 위한 일부로서 존재 가치를 만드는 것이 구원이다.
그런 의지가 해방자가 되겠지만 그 의지는 이미 지난 일에 대한 원한을 가진 죄수다. 그래서 해방자인 의지는 복수한다. 처벌이라는 정당화를 하며 광기에 도달해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정의라 말하면서 정의가 영원하면 구원 가능하다. 따라서 처벌도 영원하리라. 그렇게 영원히 존재에 대한 처벌을 지속한다. 이건 광기다.
의지는 창조자다.복수의 정신을 넘어서고 똑같은 것을 영원히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의지여 자기 자신의 구원자가 되어라. 삶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운명을 확신해라. 운명을 확신하고 다시 살아도 똑같이 살았음을 받아들여라.
43.남자다운 신중함 첫째. 남이 나를 속이게 내버려두면 신경쓸 필요가 없다. 불운을 행운으로 받아들여 달래라.
둘째, 자존심 있는 사람보다는 허영심에 들뜬 사람에게 더 친절하게. 자존심은 상처 받아봐야 더 나은걸 만들어내지만 허영가들은 존재 자체가 연기다. 그들을 보면 우울이 가라앉는다. 그들은 자신을 믿지못해 상대방으로부터 믿음을 애걸한다. 불쌍해라. 입발린 칭찬을 소그란히 믿다니.
소심한 사람은 사악함에 움츠러들지만 진짜 남자는 사악함을 보면 즐거워한다. 사악함이 만든 훌륭함. 악에도 미래가 있다. 새로운 경지가 발견될거고 뱀은 용이 된다. 선량한자들은 위대한 것을 낯설어하지. 가장 높은 사람, 초인을 악마라고 부를걸!
넷째, 상대와 나, 누가 누구인지 헷갈리게 만들고 너희 사이에 앉는 것.
44.짜라투스트라는 자신이 사자도 되지 못한 몽상가라는 현실에 좌절했다. 그는 똑바로 보고 있었지만 조롱에 기죽었고 목소리가 없다는 식으로, 부끄럼을 탄다는 식으로 변명했다. 결국 안했다. 자신의 무력함조차 솔직하게 고백했다.
45.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내 것이다. 나의 운명. 산의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려운 길을 택하라. 젖과 꿀을 찬양하면 안된다. 편한 것만 찾으면 병에 걸려 그것만을 찬양하리라. 우리는 표면이 아닌 내면을 보길 원하지 않나. 별조차 내려볼 정도로 정상에 올라라.
모든 것은 바다로부터 나왔지만 그 바다 아래까지 내려가는 건 역시 힘든 일이야. 공포스러운 괴물이지. 그 괴물을 구해주어야 하는데. 물론 니체는 그런 공포를 사랑해.
46. 모험가는 대담하고 직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용기로 연민을 파괴하고 죽음조차도 파괴한다. 그 용기를 통해 울적함을 이겨내라. 공격으로 승리를 거머쥐어라.
우리의 존재는 모두 운명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길도 한번 지나왔던거 아닐까? 모든 일은 이미 일어났고 수행된 적이 있던 거 아닌가? 이렇게 영원히 돌아야 하는 건 아닐까. 사람은 뱀(악)을 삼키고 완전해질 수 있다는게 니체의 생각인 모양이다.
47.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존재는 자신이 창조한 것뿐. 희망을 실현해 줄 사람 역시 직접 창조해야 해. 나 스스로가 완성 되어야 하는 거였다. 아이를 만들려고 하지말고 너 스스로가 그렇게 되고자 해야한다. 니체는 현재의 행복조차 믿지 않는다. 영원회귀에 대한 사상이 완성되어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승리이다. 그 전까지의 행복은 안녕.
48. 내 의지는 하늘에 날아오르기를 바랬다. 그리고 하늘을 더럽히는 것을 증오한다. 그것이 하늘에 대한 온전한 긍정을 망쳤다. 구름과 같이 축복도 저주도 내리지 못하는 것에 더럽혀지느니 안보고 말겠다. 이도저도 아니게 살 바에 저주하는 법을 배워라. 아무리 끔찍할지라도, 그 영원반복이라는 공포스러운 진리조차도 우리는 긍정할 줄 알아야한다.
세상에 영원한 의지는 없다. 목적론적 세계관은 아니다. 대신 거침없음과 어리석음이 세상을 지배한다. 그런 세상에서 하늘의 맑음만을 원한다. 거기에는 이성의 거미도 거미집도 없구나.
49. 현대 사회는 인간의 개체성을 획일화시켜 작게 만들었다. 그런 작은 인간들이 왜 존재할 필요가 있는가. 그들은 적당한 미덕을 원하면서 니체를 미워해. 그들은 배우야. 참된걸 가지고 있지도 않고 자기도 모르고 믿지도 않는 것을 내세워. 몇몇만이 의지하지. 나머지는 다른 사람의 의지에 당해. 심지어 배우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가장 끔찍한 미덕은 명령하는 사람이 복종하는 사람의 미덕을 흉내내는거고. 모든이를 섬긴다고 위선적인 소리를 지껄이며 자신이 하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 지배자란놈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를 바래. 비겁한거야. 주먹을 쥘 줄 모르고 늑대를 개로 만들어. 인간을 최고의 가축으로 만들었어. 중용이라는 근사한 이름의 중간치기야.
신앙의 핵심은 경배하고자 하는 마음. 복종을 가르치는 녀석들! 그들은 하잘것 없는 존재가 있는 곳에 벌레같이 기어들어가 생존하지. 작은 인간들아. 너희는 패망할거다. 무른 땅에서 자라고 있는 것들. 너희가 믿는 복종의 가르침은 주어진 것을 따르라 하지만, 그건 주어진게 아니라 빼앗긴 거야. 너희는 의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너희는 확실하게 의지해야 한다고. 너희가 남긴 그 태만이 인류의 미래에 이어지겠지!
50. 겨울. 까다롭지만 참되게 기어갈 수 있는 친구. 남을 해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찬 녀석들은 이 고통스러운 진리와 함께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지. 그저 사나운 겨울 폭풍에 무서워해. 오히려 그 겨울의 사건과 우연에 대해 연민하겠지만, 나는 그 연민을 연민해.
폭풍을 감추지 않는 이 진실됨이 나아. 불구자들로 가득 찬 세상을 탈출하는 고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어.
51.무언가를 경멸하며 닿지도 않으려는 자세를 경멸한다. 그렇게 해서 남은게 뭐지? 썩은 늪에 가라앉은 두꺼비? 추악한 진실이 되기를 자처하는거냐. 무언가를 경멸할 때는 그것을 알아야 해. 네가 그 경멸스러운 것에서 지내는 이유는 뭐냐. 복수하기 위해서? 허영심이다. 네 말이 옳더라도 그것이 혐오스럽다고 떠벌리는건 복수야. 사랑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라.
52. 가르침을 받았다가 마음바꾼 이여. 무기력해지고 평범해졌다. 너희는 약골이 되었다. 비겁하구나. 신도에게 마음을 주지 마라. 그들은 한철과도 같은 존재다. 어정쩡한 놈들은 전체를 망치고 다른 길을 택했을 놈들이다.
양심을 가지고도 기도하는건 부끄러운 일이다. 십자가 아래의 거미녀석을 조심해라. 자신들을 심오하다고 말하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천박하지도 못한 존재다.
자신이 믿는다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고 증명이라고는 한 적도 없는 녀석들. 신다움은 여러개 존재함이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니 이 얼마나 질투많고 정신나간 소리인가.
53.고독의 상태에서 나는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 모든 존재를 업고 진리를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것과 쓸쓸함은 별개다. 쓸쓸함은 네가 망설이고 침묵한 것에 참회하게 만들었고 별 볼일 없는 용기를 꺾는다. 그게 쓸쓸함이다.
나는 인간 사이에서 연민에 거짓말했었다. 독파리에 물린거지.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떨어져 산 위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자유롭지.
54.세상을 측량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유한성을 가진거지? 다수가 힘이라는 말이라도 들은걸까? 그렇게 유한해진 뒤에는 경외심을 품을 것이 없어졌다. 그것이 꿈이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마라.훌륭하지도 않다. 기존의 도덕관에 매몰되어 있을 뿐이다.
인간을 발전시킨 것은 악이라 이름 붙은 육욕 권력욕 이기심이다.
육욕은 욕을 많이 먹었지만 사자와 같은 의지를 가진 이에게 있어서는 원귀 회복제이다. 고귀한 행복을 상징한다. 결혼을 약속하는 상징이자 그 이상의 것이다.
권력욕. 가장 순수하고 고독한 자에게까지 미치는 유혹. 높은곳으로 가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은 병적인 것이 아니다. 외부에 의존하지 않는 높은 곳에 미치는 것은, 자신의 도덕을 아래쪽까지도 퍼트리는 것은 땅에 대한 사랑이다.
이기심. 스스로 기꺼워하며 자신만의 도덕을 만드는 것. 이제 이 신념을 가진 이에게 있어 비겁은 악이다. 소심하고 충성하는 자를 경멸한다. 이제 신 앞에 개처럼 엎드리는 개의 지혜도 더더욱 경멸한다. 참고 만족하는 자를 증오한다. 너희들은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다. 신을 황송하게 받들든 의견을 받들든 사람을 받들든 너희는 모두 노예이다. 허리를 굽히고 인색하게 되고 애매모호한, 영혼이 짓눌린 것을 악이라 부른다. 비겁하게 키스를 퍼붓는 것도 악이다.
자기 설교에 자기가 넘어가는 신부도 지독한 악이다. 피곤에 떨어진 너희의 재주는 가짜 지혜에 불과하다. 거미들은 이기심이 없는 상태를 바랬지만 그건 역시 비겁과 역겨움이지.
55. 인생이 무거운 자는 중력의 영을 따르고, 새가 되려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 허약한 자신이 아닌 튼실하고 건강한 자기애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대하기 무서워 싸돌아다니는 것은 이웃사랑이다. 웃기는 말이지. 자기를 마주하기 무서워서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어떻게 이웃사랑인가? 최고의 거짓말이군. 나 자신을 사랑하라. 이건 계명이 될 수 없지. 이건 예술이거든.
누구보다 훌륭한 이가 되어라. 그 껍질을 뒤집어 쓰고 알맹이에서 이렇게 말해라. 이게 나의 선과 악이다. 라고. 그럼 너의 도덕이 세상에 뿌리내릴 수 있어.
고집세고 까다로운 입맛을 가지며 악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을 훌륭하다고 하진 마라. 그건 돼지같은 본성이다. 살과 피를 선호해라.
진실에 도달할 때까지 남에게 길을 묻지 마라. 길에게 길을 물어라.
너의 길은 너다. 옳은 길은 없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너이며 어긋나거나 핑계가 아니다.
56.인류에게 목표를 창조하는 사람은 선악을 창조해야한다. 먼 미래에는 수 많은 신들이 있고 행복하게 스스로 모순을 일으키더군. 필연은 자유 그 자체였다. 거기서 인간이란 넘어서야 할 존재이라는 초인 개념을 세웠다. 인간은 다리이지 목적지가 아니다.
나는 미래에서 이미 지난 일을 이렇게 되기를 의지했던 것이라는 것으로 구원한다.
아. 복종하는 건 쉽지만 명령하는 자가 되는건 힘들다. 자기 자신도 복종시키며 모험에 내던져야하기 때문이다.
폭도는 공짜 삶을 살려고 하지만 고귀한 영혼을 가진 사람은 굳은 의지로 공짜를 사양한다. 공짜로 주어진 삶에 우리는 무슨 보답을 해줘야할까.
“삶이 우리에게 약속해준 것을 우리는 삶에게 실현해준다!”
즐겁지 못한 곳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말고 즐거움을 느끼려고 바라지 마라. 자연스럽게 즐기고 천진해져라. 고통을 찾아나서는 그 길에서.
자기 보존을 위해 아등바등대지 않는 존재를 사랑한다. 내려가서 사라져가는 존재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것이 건너는 길이다.
진실해질 수 있는 능력은 힘들다. 다들 양보하고 물러선다. 마음으로 우러나와 복종해버린다. 자기 자신에게 눈감아버린다. 너희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모아서 보아라. 그건 선이다. 지금의 지식은 진실을 외면한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한다.
바보와 똑똑하다는 놈들도 진리는 불변하다고 외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도덕들이 부서진다면 거기서 설 수 없게 된다면 더는 그것이 절대적인게 아니었다고 인정하게 되겠지.
점성술사가 뿌린 선악이라는 허깨비가 있다. 그건 지식이 아니다. 지레짐작일 뿐이지. 이제 사람들은 그들을 믿지 않고 자유의지를 믿었다.
스스로 자기 존재의 이유인 존재. 라는 자유의지의 사고관 역시 미신에 불과하다. 이는 스스로 자기 존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든 사회로부터 그 책임을 면하려는 욕구다. 사실 인과 자체가 없다. 부자유도 없다.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의지의 부자유는 상반된 관점의 문제일 뿐이다.
폭도와 폭군의 지배를 막기 위해 새로운 귀족 집단이 필요하다. 새 율법에 고귀함을 써넣기 위해서. 하지만 현실적으로 귀족계층을 이 땅에 새로 생성하는건 우스운 꼴이 되어버리지 않나? 뭔가 다른 방식으로 이 계층을. 자본층을 만들어야겠다. 빈부격차의 명확함. 하지만 빈자도 생존은 보장되는 식으로.
이 귀족이란 돈으로 살 수 없다. 집안 출신도 아니고 당신이 어디로 향하느냐가 그 귀족의 명예다.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과 그 행동의 증명이 이러하군. 귀족은 임금을 섬기지도 않고 가치의 수호자가 되었기 때문도 아니다. 화려한 옷을 입었기 때문도 아닌, 종교를 이끌었기 때문도 아닌, 앞을 봄에 있다. 모국도 조국도 없이 먼 미래의 귀족다움을 근본으로 삼도록. 미래의 올바른 도덕을 만드는 것에 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헛된 짓에 살고있다고?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의 행위가 헛된 짓인줄 아나. 잘먹고 잘 사는 건 헛된 재주가 아니다. 기뻐할 줄 알라.
세상이 더럽다고 해서 전체가 괴물인건 아니다. 구역질이 나기에 아름다운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는 거야. 가장 훌륭한 것조차도 구역질이 날 부분은 있어.
사자의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는 깨달음 자체가 기쁨이지만 나약한 사람은 길을 잃지. 넌더리를 내고 무의미 속에 매몰된다. 정신은 죽음을 부추기고 있는거야. 그런 녀석들은 의지해. 의지하면 해방될 수 있어. 아니면 죽었어야지. 왜 지금도 살아있는데? 땅에는 네가 의지할 것들로 가득하다.
게으름과 썩음으로부터 나온 율법서판. 원래는 용감한데 더 나아가려 하지 않는 사람. 목표의 앞에서 시들고 퍼진 사람이 있어. 자기 스스로 일어나게 내버려두자고. 녀석의 피땀을 핥아먹고 사는 놈들이나 쫓아주고.
높은곳을 오르려는 자에게 기생하는 자를 기르지 않도록 조심하라.
잔인한 진리일지라도 그것을 받아들여라. 설령 그것이 추락이 되더라도 빠르게 떨어져라.
검객은 증오하는 적을 가져라. 적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라. 가치있는 적을 향해 칼을 휘둘러라. 너의 길을 가라. 인민은 자신의 길을 가게 내버려 두어라. 최상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만 그 칼을 휘둘러라.
사람이 땀흘려 일하지 않고 공짜 생계가 해결된다면 사람은 무엇을 요구할까? 삶은 고달파야한다. 그래야 뛰어나질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디까지 탐욕할지?
결혼은 계약이다. 나쁜 계약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갈라서는 편이 거짓된 결혼생활을 하느니보다 낫다. 결혼은 위를 향해 나아가는 자손을 얻기 위해 하기를.
사회는 실험이고 탐색이다. 지도자가 될 사람을 찾는 장이다. 누가 지휘하고 복종할지를 검증하는 것이다. 계약에 의해 만들어진게 아니다. 그건 나약한 절충주의 종자들의 주장이다. 사람들을 엮을 의지를 만들어 지배해라.
인류 미래를 위협하는 건 선량한 자들이다. 녀석들이 끼치는 피해가 더 심대하다. 선량하고 정의롭다는 그 자부심 안에 정신이 갇혀있다. 아 우둔한 자부심. 녀석들은 미덕을 만드는 자를 죽일 수 밖에 없다. 녀석들은 창조할 줄 모른다. 종말을 시작하지. 그러니 녀석들을 부숴.
녀석들이 가르친 안전도 안전이 아니고 땅도 땅이 아니다. 거짓말 속에서 태어났고 그 속에서 자란 왜곡된 것들. 항해자가 되어라. 조국을 버리고 우리 아이들의 나라가 있는 곳을 가라.
창조자들이여 단단하고 엄격해져라.
금속보다 더 단단하고 금속보다 더 고귀한 존재가 되어라. 그게 축복이다. 가장 고귀한 자만이 그럴 수 있다.
내 의지여 사소한 것에 한눈 팔게 하지 말고 거대한 운명에 맞서개 해달라. 나 자신을 위해 승리한 후에도 힘을 발휘하게 해달라. 나로하여금 욕구하는 것 외에 일체의 필요를 제거해달라. 부드러움과 안락함을 경멸하게 해달라.
57. 모든 것은 내가 감각하고 생각하는 것. 따라서 몸 밖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걸 잊어버릴 수 있다. 언어를 사용해 사람은 모든 존재 위에서 춤춘다.
모든 샌명이 죽고 다시 피어나고 존재의 주기는 돌고 돈다. 영원히 항상 동일한 모습으로 다시 지어지고 무너진다. 이렇게 영원의 길은 이어져있다.
삶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비난을 퍼부으며 기쁨을 느끼지만 삶은 그들에게 시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참회하는 인간이라고 부르는 종자들의 비난 뒤에는 관능적 쾌락이 있다.
가장 사악한 요소야말로 훌륭한 사람을 만들 힘이고 원석이다.
영원회귀. 삶은 반복된다. 영혼은 언젠가 죽어 소멸해도 인과사슬은 언젠가 나를 다시 창조한다.
정확히 동일한 삶으로 돌아온다.
58. 니체의 갈망
오늘에 자신을 가지고 어디서든 신념을 고수하도록.
거미를 털고 치졸한 미덕을 없애도록, 죄책감을 없애라. 현실에 진실되도록, 새로운 것에 즐거움을 알도록, 가장 깊게 경멸하며 사랑할 수 있도록, 자연을 움직이는 설득력, 복종을 빼앗고 운명을 얻었다. 독한 지혜를 얻었다. 내 모든걸 받아줘서 고맙다 영혼아.
59.삶을 보고 기쁘다. 춤을 추다가 뺨을 맞고 채찍질을 한다.
삶에 지혜가 없다면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다.
슬픔은 깊지만 기쁨은 그보다 더 깊다. 슬픔에 차라리 사라져 버리자 생각해도 기쁨은 영원을 원해.
60.과거와 미래 사이의 혼령이 내게 깃들어 있다면 어떻게 영원을 탐내지 않을 수 있겠나? 영원에게 나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게 부탁하고 싶다. 영원을 사랑한다.
내가 분노에 차서 율법서판을 깨버리며 기뻐했다면 영원을 탐내지 않을 수 없다.
일곱겹봉인
1. 예언자. 과거와 미래 사이의 혼령.
2. 무덤. 도덕의 절대성을 움직임
3. 창조의 벼락으로 우연마저 필연성을 깃들였다면
4. 요리사. 모든 재료를 섞어 음식을 만든다면. 선과 악을 하나로 통합한다면
5. 바다를 사랑한다면, 나와의 모순조차도 사랑했다면
6.내 미덕이 진실의 미덕이 맞다면
7.내 자유가 새의 지혜를 얻은게 맞다면,
61.꿀을 제물로 바쳐라. 행복을 미끼로 삼아 인간물고기를 낚는다. 자신의 영혼 하에 있는 하위영혼들을. 사람이여 너 자신인 것이 되어라. 자신에게 사명을 설정하고 그 사명을 성취하는 방식으로! 행복을 미끼삼아서 나의 하위 영혼 중 나를 위해 있어주는 것을 낚기를 원한다.
62.연민이라는 죄를 저지르게 만들려고 삶이 무의미하다는 예언자가 찾아왔다. 마지막 훌륭한 사람을 보내고 예언자는 세상에 행복이 없다고 설교한다. 하지만 니체는 훌륭함이 아직도 세상에 남아있다고 이야기 함. 꿀을 찾으면 좀 먹으라고 설교하면서.
63.귀족은 모든게 가짜이고 혈통도 썩었지만 농부는 건강하다. 직접 일하는 농민이 지배자가 되는 것이 근사하고 지배자가 되었으면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즘의 지배자는 농민이 아닌 폭도이다. 모든 것이 가짜로 섞여서는 아무도 어떻게 존경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올라선 왕은 가짜다. 왕은 더이상 맨 앞에 서서 지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런 척 해야한다. 지금은 폭도의 미덕이 외치는 세상이다.
지배자가 되는 것은 진정으로 강한 자여야 한다.
64.니체는 자신을 자신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라 여긴다. 삶에 대한 전적인 긍정과 수용이다.
자신의 한 분야에 대한 전문가.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다른 것에 관심도 가지지 않은 지적 정직성의 남자. 자신의 피로써 지식을 확장하는 사람이다. 그가 훌륭한 사람.
65.반면 바그너. 허공을 쳐다본 채로 거짓을 추앙하며 사랑과 고통을 저지르는, 심지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하나님을 얻으려는 남자를 만난다. 자신의 진실을 조금도 가지지 않은 자! 배우다!
그런 사람에게 남은 것은 자기 자신에게 남은 환멸과 구역질. 거짓에 찌부러지고 있는 거짓. 차라리 자신이 위대하지 않다고 밝혀라. 그것이 너의 훌륭한 점이다.
위대한 사람 찾기를 하지 말고 자기 스스로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66.성스러운 축복을 받아 세상을 헐뜯는 성직자들. 흑마법사와 다를게 없지.
신을 죽인건 사람의 연민이다.
신은 명확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았다. 실패를 너무 많이 범했고 자신의 피조물에 복수를 하다니! 경건하지도 않다.
그런 신을 모시느니 나의 힘으로 하나님이 되어 운명을 만드는게 낫다.
67. 흉측한 사람. 너희야말로 연민을 불러내는 근원이며 인간 존재 자체의 비참함이 결국 신을 죽였다.
연민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짓이다. 그것을 미덕 삼아 좀팽이같은 대중들에게 권력을 주고는 자신들의 선만을 선한 것이라 가르치는 설교자가 있어. 좀팽이같은 대중만 옹호하는 이상한 성자는 자신이 진리라면서 자존심을 세우고 다녀.
아 이 모든 추악함을 본 신을 죽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인간의 밑바닥까지 보는 신은 마땅히 죽어야했지. 인간은 그런 목격자를 참을 수 없으니까.
68.노예의 반란이 세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자선을 베푸는 것은 그들을 자극할 뿐이다. 가난한 자들은 축복받은 존재가 아니다. 부유한 녀석들도 금칠을 한 천박한 종자다. 부유와 가난의 구분을 벗어나라. 평화스러운 암소에게 안기는 사람도 사랑스러운 종자다. 하지만 사내여. 암소를 떠나라. 그것이 가혹하겠지만 너 스스로 너가 되어야 한다.
69. 그림자에게 미덕이 있다면 금지된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악을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받아들인다면 악은 이미 악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도 좋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을 때 내가 선하다고 믿던 것에 대한 신념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 고귀한 거짓말과 수치심은? 그런 진실에서 나는 사랑하는게 없어졌어.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지 못하니 나 자신도 사랑하기 힘들어지지.
욕구하는대로 살거나 살지 말거나.
아 이런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하나? 내 집을 찾고 싶다. 이건 부질없는 짓인가?
그렇게 지친 그림자에게 니체는 말한다. 넌 목표를 잃었다고. 그러니 편협한 신앙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라고. 그걸 주의하라고. 너는 차라리 감옥 안에서 평화를 찾을 정신이다. 잠시 쉬어라.
70. 세상이 완벽해졌다.
영혼이 기지개를 키며 훌륭한 것을 맛본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 가볍고 부드러운 것에서 부터 행복은 만들어질 수 있다. 심지어는 최상의 행복을.
뭐, 하지만 이건 꿈이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완벽한 망상에 빠져 있지 마라. 갈 길이 멀다.
71.훌륭한 사람은 니체 그 자신이었다. 정확히는 지금까지 만난 그의 하위영혼들이. 자존심을 지키며 몸을 낮추는 짜라투스트라. 그 숭고하고 강한 의지는 보기 좋다.
하지만 그건 니체가 바라는 이상은 아니었다. 그들은 힘이 없다. 고통을 면하는 것을 원한다. 니체는 자신의 의지를 수행할 사람에게 상당한 고통을 줄 것이므로 너희는 적합하지 않았다. 너희는 더 훌륭한 존재가 밟고 지나갈 다리가 되어라. 그 훌륭한 사람은 웃음을 터뜨리는 사자같이 훌륭하고 강인하다.
72.즐겁게 먹고 마시는 사람이 되어라. 멍한 몽상가도 침울한 사람도 바르지 않다. 어려운 일도 축제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되어라.
73.세상이 어떻든 내 알 바인가! 시장이 어떻든 폭도가 어떻든! 시장을 떠나라 훌륭한 사람이여. 그들은 평등이라 어벙거리며 너를 끌어내릴 것이다. 하지만 너흴 평등하게 만들 그런 보편적 가치는 없다. 훌륭한 사람이여 초인이 되어라.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넘어서느냐가 삶을 마주하는 바른 자세다. 요즘 시대에는 좀팽이 같은 대중이 주인이 되려고 한다. 굴종 묵인 근면 배려를 가르치고 좀팽이로 만들겠지. 미래는 그렇게 더럽혀지겠지. 그러니 대중을 넘어서주게. 최대 다수의 행복이라는 거짓말을 깨트려주게.
구경꾼이 없는 데서 부리는 용기를 가지고 있나? 냉혹한 정신, 고집불통, 술과 약에 절은 용기는 필요없다. 대담한 사람은 공포를 알지만 지배하는 사람이다. 자존심을 가지고 까마득한 절벽을 내려보는, 그 공포스러운 진실을 마주하는 사람이다.
훌륭해지고 사악해져라. 거대한 죄를 만들어 죄 속에서 기뻐해라.
편한 길을 찾는 사람들, 고통스러워하는 자들을 위한게 아니다. 너희들은 차라리 패배해 사라져야 한다. 훌륭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한 길을 내어주고자 함이다. 그래야만이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 네가 겪는 무수한 불행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걸 달래고자 하는게 아니다. 그 고통도 인간을 위한게 아닌, 너 자신 때문에 겪은거잖아. 인간 때문에 고통을 겪은 자가 어디 있냐고!
나는 현재의 인간을 위한 번개가 아닌 그들의 지혜를 밝히는 번개를 내리칠거다. 차라리 죽여서라도?
자신의 힘을 넘어서는 것을 의지하지 마라. 그것에는 거짓이 감돈다. 훌륭한 사람들은 그런 거짓에 의존하지 말도록. 폭도는 무엇이 정직한지 위대한지도 모른다. 항상 거짓말하지. 그 과시하기 위한 위장, 그럴싸한 거짓으로 자신조차도 가짜인 것이다.
건강한 의심을 가져라. 하지만 그 까닭과 이유를 숨겨라. 아무 이유 없이 믿게된 것을, 이유를 가르친다고 뒤집을 수 있는게 아니잖나. 진실이 이긴다면 오히려 의심을 던져라. 뭐가 잘못되었기에 이겼는지. 진실을 사랑하는 것과 거짓말을 못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광신적인 열광과 참된 깨달음도 다르듯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진실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높이 오르기 위해서는 너의 힘으로 해라. 말을 타오른다고 해봤자 높은 곳에 올랐을 때는 떨어져야 할 것이다. 너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정복하라. 인거지.
이웃을 위해 한다고 해서 무엇이 창조되나. 이웃을 위해 네가 아이를 낳아줄 수 있는게 아니다. 창조자의 미덕은 누구를 위해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함이다. 그건 좀팽이의 미덕이지. 네 이기심에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네 사랑이 있는 곳에 미덕이 있다. 그 의지는 온전한 너의 것이어야 한다.
그 훌륭한 이가 만드는 것은 당연히 고통이 뒤따른다.
네 힘을 넘어서는 미덕을 추구하지 마라. 스스로 이룰 수도 없는 것을 스스로에게 요구하지 마라. 조상이 악덕을 범한 것에 대해 성자인양 위선떨지 마라. 그건 웃기는 일이야.
훌륭한 사람이여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물러나지 마라. 그건 네 존재의 실패가 아니다. 네 실패가 인류의 실패인가? 다시 덤벼라.
반 밖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놀라워하지 마라. 가장 훌륭한 것을 만들수록 성공은 힘든 일이다. 아직 가능한 것이 많으니 스스로를 비웃고 투쟁하라.
너희에게 죄책감을 씌운 것보다 극악한 죄는 없을 것이다. 사랑이 충분하다면 그런 증오를 조롱을 보내지 않았겠지. 폭도 출신의 사람이 세운 절대적 기준이야. 그건 강요였고 저주였어. 사랑이 충분했다면 더 사랑했을텐데. 절대적 기준을 강요하는 사람들을 멀리해라.
높은 곳으로 가면서 원하는 직선만 마련되지는 않는다. 번뇌와 고통에 빠지겠지. 하지만 즐겁게 빠져나오라고.
슬픔에 취해서 살지 마라. 멀쩡한 두 발로 서는 방법을 배워라.
폭풍같은 정신에게 칭송을. 폭도들을 약골들을 증오하는, 모든 자유 정신을 대표하는 정신! 자기 자신을 넘어 웃는 것을 배워라.
74.광대이자 시인일 뿐인 바그너는 진실에 도달할 길이 없다. 라고 비난에 빠진 바그너. 하지만 그거야말로 선동이지.
75.과학이라는 미덕. 알지 못하고 시도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그에 대한 도전과 기쁨이 용기. 이것이 오늘날 지적인 것이 되어 과학이다.
77. 당나귀를 하나님으로 섬기게 된 사람들
78. 인줄 알았는데 웃음으로 죽이는 확실한 신살을 저지르는 중이었다. 인간이 된 사람이여 당신들은 하늘의 왕국을 바라지 마라. 땅의 왕국을 원해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라.
79.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 가장 순수하고 강한 사람. 알려지지 않고 자정과 같은 밝은 영혼. 낮보다 더 밝고 깊은 사람. 그런 사람이어야 해.
슬픔은 보다 밝은 것을 갈망하기에 후계자를 원하지 자기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
기쁨은 후계자나 아이를 원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원한다.
기쁨은 영원을 원한다. 반복을 원한다. 모든 것이 영원히 똑같이 반복되기를 원한다.
슬픔은 죽어 사라져 버리길 원하지.
고통이 곧 기쁨이다. 저주가 축복이고 밤이 곧 태양이다.
모든 것은 얽혀있고 서로 사랑에 빠져있다.
영원히 존재하는 인간들은 세상을 영원히, 항상 사랑한다. 그러기에 슬픔조차도 멀리 가버리라 하지만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다.
기쁨은 모든 걸 원한다. 그것은 영원을 원하는 것이다.
80. 최종적으로 그는 사자를, 아이를 쫓아갔다. 그것이 세상에 대해 자신이 취해야 하는 태도였으므로.
초인이란 진실에 대한 의지 하나에 자신의 존재를 바친 인간이다.
그는 삶에 대한 전면적 긍정을 한다.
위대한 정오 사람은 진실을 불편하게 여기지만 정오가 올 것이다. 그림자가 짧아진 시기가 오면 진실이 덮친다.
온전한 개인이 되든가 아니면 부속품이 되든가.


고대 그리스 요새 비잔티움을 수도로 삼고 황제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이라 명명. 이것이 비잔틴 제국의 탄생이다. 전성기와 쇠퇴를 겪다가 오스만 제국의 술탄과 54일의 전투 끝에 함락.
장군 주스티니아니는 치명상을 입고 도망가버림. 이것으로 패전의 그림자가 깔리기 시작. 용병들은 탈주하기 시작.
제국의 멸망을 직감한 황제는 예니체리에 돌격.
그럼 남은 사람들은? 바다로 튀어야 하는데 다 비잔틴 제국령이지?
기도를 올리며 빛을 든 미카엘이 쓸어주길 바라지만 허튼 소망이지.
쓸만한 여자는 약탈당하고 건장한 청년과 귀족은 비싼 전리품이거든.
미모가 뛰어난 여자를 둔 칼부림이 일어나는가 하면 장애인과 값 떨어지는 병자들은 죽여.
무덤은 약탈당하고 신성모독적이라 치부되는 전리품은 죄책감 없이 탈취당해.
술탄은 교회를 모스크로 개조.
황제의 죽음을 확인하는게 중요했다. 결국 찾았고 만족함.
그리고 금고에서 일기장을 발견한 뒤 비망록을 적음.
서로가 어떤 철학과 사상으로 이 전투에 임했는지를 알아보자.
자비를 베풀어 노예를 풀어준들 어딜 가나 강간하겠다는 녀석들이 천지인 세상.
2부는 왕의 일기에 대한 술탄의 답.
-가 왕
그냥 쓴게 술탄
-적을 야만인이라 하며 자신은 신성한 그리스도교이니 이겨야 한다고 생각함
술탄의 입장이 재밌어. 기독교도는 믿을게 못된다는 거지. 십자군 전쟁만 봐도 그래. 같은 교리를 믿는 녀석들끼리도 싸우고 다른 신을 믿는다는 놈과도 싸우지. 비열한 위선자야. 휴전협정 지들이 맺어놓고 파기하기를 몇번이나 반복해. 뻔뻔해라.
술탄은 각종 학문을 독파하고 세상을 정복할 야망까지 품고 있는 사람이었어.
-적은 7만에서 30만이래. 우린 7천가량인데. 아나톨리아라는 식량고와 병사 징집의 핵심영토를 털려서 이 꼴이다.
정복을 앞두고 있다. 난 이 날을 위해 신종 병기를 개발하고 무기와 군사 장비를 집합시켰다. 하루도 쉬지않고 병기공장들을 가동했다. 특히 공성무기를. 우르반 거포와 같은 무기를 말이다. 자비롭게 항복 권유도 했었는데 니들이 씹음 ㅅㄱ
-원군 안오냐? 하 ㅋㅋ 구걸로 돌아온건 연민 뿐이더라. 체통과 자존심만 잃었어. 아니 근데 황제는 아직도 이딴거 신경쓰나? 과거 오스만쪽 내분 일으킬 때 쳤으면 이럴 일 없잖아. 아 우리도 내분 중이었지. 개판이다. 지들이 빼앗아갔던 콘스탄티노플 다시 되찾은걸로 적반하장식 앙금 품고 있는 역사인식 수준은 대체? 그래도 교황이 용병대장이랑 소수정예 보내줌.
난 이 도시 치려고 지금껏 시뮬레이션 돌려봤거든? 이거 함락각 못 피함. 그 안에서만 지배해야 할 정도로 비잔틴 제국은 몰락했다고. 걍 항복하면 다른 도시 줄테니까 피 흘리지 말지? 안그러면 살약방강 등등 어지러워질텐데.
-우르반 대포 보고 떠오르는게 저쪽에 팔아넘기기 전에 우리한테 먼저 왔었거든? 아 ㅋㅋ 돈 없어서 못 삼. 그랬더니 적국에 팔아먹었네. 이 배신자새끼 지옥에 떨어져라.
내가 전쟁 준비해야 평화를 얻는건데 그러지 못하고 재정만 고려한게 착오였다. 철옹성만 믿고 군사지식 부족해서 공성 무기에 관심 안둔게 컸어. 근데 지금보니 밸붕 좆사기 무기네 ㅋㅋㅋㅋㅋ 어이가 없노.
대포가 반동 못이겨서 깨지거나 미끄러졌고 발포가 거듭되며 고장과 파손의 기미가 엿보임. 이거 개선하라고 하는데 우르반이 무리라고 함. 그래도 되게 해야지. 내가 이거 준비를 얼마나 해왔는데. 암튼 이 우르반이 나한테 온건 행운이다. 저 황제새낀 이걸 왜 버린거지? 재정형편 핑계 댈 거 없이 은수저나 혁대 금장식 팔아서라도 샀어야 했거든? 설계도랑 성능 보고 4배의 급료 줘서라도 고용했다.
-저새끼들 해협 치려고 하네. 무적함대 있으니 문제 없을거같아.
해군력은 약세한데 물량공세로 이기면 된다. 바위가 많고 사슬이 수문장 역할을 해준다. 경계도 삼엄해 철통 경비가 있어. 그래도 뚫어본다.
-아 다른 형제들이 있었더라면 이 위기를 어떻게 넘겼을까. 어머니라도 살아계셨더라면 이토록 외롭진 않았을텐데.
우애 좋네. 우린 그런거 없었는데. 오르는 놈이 오직 선이었어. 다 죽여야 했다고. 모든 것은 일시적이나 국가는 영속해야 하니까. 형제 견제하려고 노장을 두어야 했을 정도야.
그거와 별개로 우리는 위생에 신경을 써야한다. 삭발을 한 것도 그 이유. 청결을 관리하지 못하면 역병으로 다 이긴 전쟁 빼야하거든. 오염원 차단도 마찬가지. 위생관리와 배설물관리를 철저히 시켰다. 독감주의보도. 이런 건강을 챙겨야 사기가 오르지.
-저쪽 조용한거 보니까 군기가 엄격한가보다. 대충 세심하게 군사를 편성 및 배정했다는 내용.
우리도 부대배치 좀 잘함. 국적과 혈통이 제각기인 병사를 분산시켜 혼합한 것에서 화합을 목적으로 했음을 엿볼 수 있음. 서로 협력하고 의존하게 만들었어. 생각이 깊군. 나도 그 전술 쓰는 중이거든. 이렇게 잘 아는건 첩자가 정보 다 내줬으니까. 니들 허장성세 부렸던 것도 다 알아.
-해전 승리! 봉쇄 사슬도 견고. 그래도 집요하게 때려오네. 우린 상비군 등한시한게 뼈아프다. 해군도 다 용병이잖아. 이게 다 200년 전 십자군 새끼들이 약탈해서 망조가 든거다. 번영과 재건의 망치소리는 사라졌어. 난 파산 직전의 제국을 물려받았다고! 교회통합은 안되어있어. 아, 이 상황에서 반대파는 뭐하자는 거냐. 무작정 반대만 하고. 어쩔 수 없지. 가시적 지원이 없는데 무슨 명분으로 설득이야. 근데 너희들은 나라를 빼앗겨도 좋냐? 이 순수를 가장한 어리석음과 고집불통!
육군 쪽은 성과가 좋은데 해군쪽은 영?
-다들 대포에 쫄아 있다. 그나마 우리 장비가 저쪽보다는 낫다는게 위안거리인가. 저쪽은 갑옷은 커녕 무기도 제대로 못갖춘게 태반이야. 근데 저런 다국적 병사들을 다 어디서 데려온거냐.
간만에 해군쪽에서 성과 겟토!
-아 저 좆같은 우르반 대포 ㅋㅋㅋㅋ. 감옥에라도 가둬야 했어. 제기랄. 섬 함락되고 병사들 다 죽이는 심리전 쓰는거 봐라. 악랄해!
비잔틴 선박의 공략법이 좀 찾아지고 있다. 조준점을 높이는 새로운 대포 개발을!
-상대를 알아야 이기겠지. 술탄은 냉철 냉담 잔혹, 지배욕 강하고 독선적인 카리스마. 학자를 존중하고 역발상과 창조적 사고에 능함. 발언권은 허락하되 답은 정해져 있는 독불장군. 충동적이면서도 신중. 집착은 강하지면 편견에 매몰되진 않아. 일단 결정하면 즉각적인 행동으로. 포기를 안하고 수단도 안가려. 음모와 술수로 가득한 머릿속. 여우와 사자의 얼굴이다. 지위고하를 떠나 의표를 찌름. 의심많고 폐쇄적 성격. 함정과 뒤통수치기의 명수. 문란한 성생활.
ㅋㅋㅋㅋ 상상력 대단하네. 가소로워라. 너 자신부터 알아야겠지? 아 근데 이렇다고 까발린 할릴! 주군이 우수워보여? 사사건건 반대만 하고 음해하네? 뭣하나 동조없이 훈수만 두던 새끼가. 이제보니 뇌물받아 쳐먹었어. 궤변이나 지껄여서 쫓아냈었지. 너 죽었다 이제 ㅋㅋㅋㅋ
-아 섹스하고 싶다. 아내도 자식도 없어. 왕자라도 있었으면 용기 백배였을텐데.
안됐네요. 근데 망국에 돈다발 들고가는 신부가 어디있겠냐? 나도 결혼이 순탄치는 못했지. ㅇㅇ
-아 저새끼 우호조약을 통수까? 빡치네. 상납금 주기로 했으면서 그리스인 쫓아내기나 하고.
멍청한 놈. 외교의 본질은 자국의 이익과 생존 도모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은 덕목이야. 서약은 지키기 위함이지만 깨트리기 위해 존재하기도 해. 요컨대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까지만 지키는거라고. 이거 니들이 가르쳐준거거든? 니들이 먼저 무모한 서약을 강요시켰어.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지. 그걸 받아들일만 하게 했어야지. 깨트린건 너라고. 네 미숙한 외교력을 가지고 남 탓하지 마라. 우르반이 누구 밑에서 일하는지만 봐도 대충 감이 오지? 후세에 누가 더 추앙받을 군주겠냐?
-날씨 악천후
성벽 부숴도 ㅈㄴ 빨리 복구하네. 해자 메우고 공격해야겠다. 적장도 탐날 정도로 잘 싸우고.
-주스티니아니는 여러 인종을 화합시키는 리더십이 있다. 콘스탄티노플이 없으면 너네 고향도 없다는 논리의 설득. 얘가 있어서 해자 다리도 부쉈고 밑바닥도 더 파냈었지. 든든함 ㅇㅇ. 점점 성벽 재건 벽돌도 바닥나고 있어서 문제긴 함.
전쟁이 세계를 평화롭게 한다. 갈등과 증오도 잠재우고 분열과 혼란도 종식시킨다. 전쟁은 악의 세력을 청소하고 정의와 선의에 기반을 둔 국가를 건설케 한다.
전쟁을 소비로 취급하기에는 효율성 높은 생산 행위다. 국가 체제와 행정 강화, 기술의 발달로 이어져 경제에도 지대한 도움이 된다. 농업 목축업 상업 제조업도 발달해. 생산이 없으면 수행도 못하는 과업이 전쟁이지. 물론 이겨야 그 가치가 완성되지만.
-우효. 해군 대승! 자연도 우리편! 메호마드 날뛰는 꼴 봐라 ㅋㅋㅋㅋ
대패! 네 척으로 100척이 패배해? 책임 물어야겠지? ㅇㅇ 훈수 아니었어도 책임지게 만들 거였다. 그나마 부하들이 뜯어말려서 목은 안 쳤는데 하! 역발상으로 새 착안이 떠올랐다. 너 끝났어 ㅇㅇ
-평화협정 내밀어볼까? 근데 왜 오늘 총공세 안오지? 흠….
해법찾음 ㅇㅇ. 도로깔고 배를 육로로 이동시킬거야.
-이틀만에 배를 이동시켰어? 어캐했노! 일단 양보 한참해서 협상안 보내긴 함. 수용 못할 제안이 돌아왔고 결사항전만이 답이다.
밥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작업시킨 덕분에 도로완공. 이걸로 병사들 심리에 큰 영향 줬어. 사기가 하늘로! 이런날 화평 편지가 왔는데 ㅋㅋㅋㅋ 받아주겠냐고. 알렉산더로부터 착안했지. 나랑 닮은점이 많은 인물이야. 난 걔처럼 안죽어야지. 이래서 독서가 중요한거다.
-골든 혼 점령당했어 ㅠㅠ. 그나마 나온 대응책은 해상 기습공격! 과연 성공할까?
부교건설 돌입. 이거 완성하면 식량 병력 물자 수송은 물론이고 기동력도 빨라져서 교신 수월해짐.
-첩자있냐? 기습작전 군 내에 퍼져나갔어. 음… 제노바인 끼우면서 날짜도 연기해야했고. 망했네 ㅋㅋ.
ㅉㅉ 우유부단함이 여기서 드러남. 어차피 기습엔 대비했었지만.
-해상 주도권 찾아야 해.
니들 뭐할지 알고 있고 우리는 모르는 척 해야해. 원래 정보란게 그런거지.
-대포소리에 유산한 아이가 한둘이 아녀. 술탄 넌 죄가 크다.
그런 지속적 대포 발사가 심리전의 일환이지. 아이가 죽었다고? 네가 항복 했어야지. 어디서 나한테 책임을 씌워 빡대가리가. 어서 정복해서 가련한 백성들이나 해방시켜줘야지 ㅇㅇ.
-식수원마저 오염됨. 그래도 지하 저수장이 물공급 해준다.
우린 귀족만 쓰는 물이 아닌 모두가 쓰는 저수장을 만들어주겠다. 도시도 철저하고 체계적으로 다스릴거고!
-야습시작! 미리 알던 적에게 발각! 함정! 하 ㅋㅋ 망 ㅋㅋ
전쟁은 정보다. 비밀엄수도 못하고 야습 작전이 들어온 순간 끝난거였어. 통쾌한 승리다.
-책을 읽다가 제 아무리 사기가 높아도 식량과 물자가 부족하거나 병력이 없으면 끝이라는 대목이 날 말하는거 같아서 답답하다.
해상전의 승리로 보급로 단축. 니들은 내분겪고 있지? 니들 정보를 우리한테 팔아넘겼듯이 우리 정보도 팔아넘길 놈들이 있지만 지금 그것들 쳤다가는 외국군 들어올테니 참는다.
-꿈 속의 황후 등장. 음 황후가 아니라 주님이었나? 암튼 지킬게요.
공적에 따라서 전리품을 배분할 것이다.
-식량 부족. 급여 부족하니 탈영 시작. 100만 인구의 도시였는데 지금은 10분의 1도 안되네. 농경지가 널려도 손이 부족하고 작황도 나빠. 어선도 발이 묶였어. 그런데 누구 하나 외부에서는 도움을 안 준다. 같은 기독교도인인데 안 도와주냐?
비겁하고 무능한 기독교 나라들. 내가 여기 정복하면 니들도 칠건데. 니들은 날 막을 힘도 없어. 뒤떨어지는 현실감각과 상황 인식이라니. ㅉㅉ.
-저놈들은 비잔틴 제국의 존속이 자신의 이득임을 모르는가? 나한테 항복을 권하지만 나에게는 수호의 책임과 의무가 있다. 너희가 울부짖는 평등주의도 우릴 지배하기 위한 술책일 뿐이다.
이거에 대해서 내 사견. 자신의 존속이 너에게도 이득이라는 발상은 지극히 유치하다. 자기 스스로 이득됨을 쟁취하지 못하는 자의 구질구질한 변명 아닌가. 너도 적국 치지 말고 가만히 두는게 이득이라서 이 꼴 난 거냐? 자기한테까지 거짓말이라니.
할릴 배신자새끼. 스승으로 대해줘도 쫄아서 뇌물이나 가져오는 꼴을 봐. 너 끝났다.
-전세 불리. 원군은 아직도 안오냐?
이미 바다는 다 우리가 먹었는데 오겠냐? 군사들 건강이 걱정된다. 씻고 파묻고 소각을 철저히.
-분열의 조짐이 나옴. 그럼 끝장이니 화합해야한다.
제노바 베네치아의 앙금이 하루이틀이냐? 내가 보기엔 니들 둘 다 똑같은 놈들이다. 그나마 네가 양쪽을 모두 편들고 감싸안아서 갈등 폭발이 막아진걸로 보여.
-귀금속 녹여서 급료 지불하고 비밀창고까지 털어서 균등분배 함.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 더욱이 용병으로 군대를 모았을 수록. 소모전이 길어지면 네 손해.
-신아. 나 이기게 해줘.
우르반 죽음. 다행히 우르반 없어도 운용은 가능.
-공성용 사다리와 갈고리 밧줄, 창검과 도끼의 적병. 란가베가 잘 싸움. 죽었지만.
저쪽 수비 강하다. 그래도 사기가 떨어지고 둔해졌어. 방벽도 복구되지 못했고.
-식량사정 나빠짐. 외국 상선 물품을 기부 받아야 하는데 어캐해야 마음을 돌리지?
노장의 기상나팔 소리고 원기왕성하게 잠을 깸. 이 노장은 천국갈듯
-총공격 왔지만 막아냄.
총공격 실패.
-수도자가 방위군을 자처함.
나는 선친과 역대 술탄들의 미완성 과업을 끝내기 위해 여기 자리해 있다.
-원군 왜 안오냐. 난 교회통합 하려고 했는데 국론 분열만 일어나고. 나라가 왜 이꼴인지.
서방 종교는 정치와 불가분한 관계로 유착되었어. 십자군 전쟁을 봐도 그렇지. 신의 이름을 내세웠지만 결국 권력다툼이잖아. 너네 신앙과 우리 신앙의 차이가 그런거야. 너넨 이민족을 학살해. 한 사람도 살리지 않고. 반면 우리는 니들 안죽이는 관용 베풀잖아. 그걸 자기 신의 은덕이라고 치장하는게 엿같기는 하지만.
결국 십자군의 제일 큰 피해자는 비잔틴이지. 그럴만 했다. 서로 신용을 잃고 외교는 말만 무성할 뿐 실천은 없어. 허울과 명분만 타령하다가 날을 지새워. 우리한테는 웰컴. 덕분에 이렇게 점령각 나오잖아?
-탈영병 기강잡음. 교회 통합이라.
이건 내가 평가하건데 정치를 통합하겠다는 말만큼이나 어려운 과업이다. 이권으로 교회가 분리된 거라고. 이걸 신앙으로 결집시키려고 하니까 안되는거지. 형편없는 외교력을 보아도 ㅋㅋㅋㅋ 못할만 했어.
외겹성만 돌파하면 황궁.
-찬송가를 부르며 승리 기도
땅굴작전 시도중. 근데 이게 쉽나? 수공의 위협도 있고 착굴 작업의 기술과 경험도 필요해. 암반층에 부딪히면 막히는거고. 결국 포기할 땐 포기. 다른 곳 파라고 명령함.
-장수간 알력다툼 조절
오늘 날 허탕
-땅굴작전 눈치채고 질식사 및 수장시킴.
아 들켰네. 저 그리스 화탄 어캐 끄지? ㅈ사기 무기.
-사다리 공성탑 나옴. 움직이는 요새다. 그리스 화탄으로 대처는 해봤지만 거리 멀어지면 무용지물.
해자 거의 다 메우고 도로작업 시작.
-세상의 종말 언제 오냐고 묻는다.
나약한 황제다. 이런 판국에 종말 운운하고 있으니 망하는거지.
개독이 욕먹는 것도 저런 파멸주의적 이념 때문이지.ㅇㅇ
용병술의 기본은 당근과 채찍. 기강과 질서가 해이해지면 안되지.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아무리 모르고 지은 죄일지라도 법은 법. 예외를 두지 않고 위반자를 교수형에 처해야 사람들은 지키려든다.
술탄의 평: 황제는 미련하고 유약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무모하고 맹목적이고 비현실적, 고집이 센 사나이의 모습. 분노가 치밀다가도 연민스럽게 느껴짐. 때로는 고결하고.
넌 최선을 다했다. 떳떳하게 죽었다.
후손에게 형제 살육을 허용하는 데에서 군주의 자질을 엿볼 수 있음.
그렇지. 가족보다 국각가 우선이니까.


우리의 삶이 더 끔찍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은건 하느님 덕이다. 라고 말하는걸 보라.
하느님을 비굴하게 찬양하는걸 보라.
섹스를 유해하다고 말하는 합리성은 대체 뭐냐?
종교는 진실이 아니지만 위안을 얻을 수 있으니 신경쓰지 말라는 역겨움은?
종교는 우주와 인간의 기원에 오점을 가지고 있다.
노예근성과 유아독존을 결합시켰다.
성적 억압의 결과이자 원인이다.
사람들의 희망사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자신을 본 떠 신을 만들었다.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을 뿐이니 절대적으로 기준삼을 필요도 없다.
나는 종교에게 관용을 베풀 생각이 있지만 종교는 그러한가?
종교는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종교는 도적의 큰 적.
진정한 도덕을 가리고 있다.
종교는 이단자와 무신론자의 삶에 끼어들려고 한다.
내세를 이야기하면서 현세에서 권력을 움켜쥐려는 모순을 이들은 알고 있는건가?
자신의 다양한 가르침을 믿지 못하니 다른 종교와 공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지.
2장은 종교적 전쟁과 학살 등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음.
살인과 폭행 악덕을 종교로 정당화하는 것을 보라.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진 폭력과 위협이 용납될 수 있는가?
배교자들에게 가혹한 세태를 보라.
이성적인 토론을 벌이는 대신 광증에 가득차서 원인을 똑바로 찾지 못한다.
집단적인 의심과 증오의 증폭을 보라.
인종차별과 다를게 뭐냐?
파리대왕-너희가 숭배하고 있는건 죽은 돼지머리에 불과해.
이게 얼마나 현명한 말인지.
원피스 그거네?
내가 죽인게 뭐냐?
뱀이다.
종교의 극복 메세지로 가능해.
종교는 이미 수 많은 오류가 있다.
의료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부당한 처벌도 마찬가지다.
신앙이 윤리와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마라.
자신의 행위에 면죄부를 만들어주는 변명이야말로 윤리적 타락 아닌가?
이러한 실책만으로도 종교를 절대적으로 따를게 아니라는게 증명되었다.
최후의 재앙에서 자신들만이 살아남을것이라는 그 이기심을 보라.
그것이 절대적 윤리자들의 판단인가? 허망하다고 밖에.
종교의 형이상학적 주장도 다 거짓말이야.
만물이 다 신의 설계로 되었다는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왜 그걸 문둥병이나 마귀 취급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지?
만물에서 신의 설계와 손길을 느끼는 광신도 좋네.
선전활동을 벌이면서도 진화론에 맞서 설계론이 더 잘 들어맞는 부분을 찾으려 들지도 않는 태도라던가.
건축가가 없는 건물을 아세요?
그린 사람이 없는 그림을 아세요?
있다면 자세히 설명해보세요.
어떻게 그런 창조가 가능한건지.
부모의 죄가 아들에게까지 이어진다는 비도덕적인 구절들을 보라.
구약을 보면 남자를 죽이고 어린 여자아이를 살리라는 구절조차 있는데 이게 과연 무슨 목적으로 여자애를 살리라 한 것인지 의문이 가지 않나?
그냥 학살이다.
딸아이를 겁탈하는 야만이고.
상식조차 없군. 역사 왜곡에.
예수가 죄를 대신 짊어졌다는 것에서 율법의 파괴를 느끼지 못했는가?
정말 지엄한 율법의 존재가 신이라면 그걸 허용한다는게 어이없지 않는가?
죄는 자신의 것이다.
나한테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용서해줄 수 있다.
그런데 죄를 짓지도 않은 사람이 나서서 내가 저 사람의 죄를 대신하겠다고 하는건 어떻게 봐야할까?
미친거 아냐?
남의 죄를 자신의 것으로 가로채는 자만함이자 정신병스러운 일이다.
네가 무슨 권리로 용서하는데?
처벌을 결정할 권리가 있었던 것처럼 말하잖아?
신의 이름을 내세우며 하느님이 내편이라고 떠드는 행위를 보아라.
신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 들먹이는 데에 이상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자신이 하느님의 편에 서려고 노력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1994년에 일어난 죽이려고 붙잡아둔 아이들이라던가 강간범 신부, 학살 방조한 그런 사례를 보면 종교가 딱히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종교가 사람을 더 상냥하고 예의 바르게 만든다는 주장을 믿겠냐고?
신앙심과 죄의 크기가 대체 무슨 상관인데?
동전 던지기의 확률과 다를 바 없을걸?
사람을 예의 바르게 만드는 것은 애초에 신앙심이 아니다.
올바른 이성과 자기애.
그 원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뒤집어쓰고 있으니 엉망이 되는거야.
불교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이야.
자유로운 개인과 정신을 경멸하고 복종과 체념을 가르치며 삶을 한심하고 일시적인 것으로 보는 종교니 자기 비판 능력이 없지.
이성을 잠재우고 정신을 버리라 요구하고 있거든.
종교의 가르침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순진한 사람들에게 세상을 거짓으로 꾸며서 보여주기
2.피의 희생제물을 요구
3. 속죄의 교리
4.영원한 보상 또는 처벌의 교리.
5.불가능한 임무와 규칙 강요.
우선 창조설화는 다 가짜지.
종교쪽은 이걸 잘 인정하지 않지만.
자신의 동굴에 갇혀 동굴을 자기만의 것으로 독점하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것을 보라.
탈무드를 통해 자기합리화를 꾀하는 위선자와 사기꾼을 보라.
면죄부도 그 중 하나지.
남의 돈으로 매춘을 하면 불법이 아니라던가.
종교는 아동학대다!
아이의 양육과정을 통제해야 한다는 집착적인 권위를 보라.
자위를 죄악시하며 세뇌한 것에는 피해보상을 매겨야 할 정도다.
바티칸이 파시즘에 굴복한 것을 보라.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음으로써 윤리적인 멍에를 쓰게 된다.
도덕적 항복.
우리에겐 종교를 믿지 않을 권리, 믿음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우리가 가진 권리는 신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까발리는 것이다.
지적설계론을 외쳐대며 자신들의 헛소리를 퍼트리려는 녀석들이 있다.
종말만을 연주하는 죽음 숭배자도 있다.
너네들이 끝났다는건 이미 다 까발려진 사실이야.
끝장을 보자고 그러니까.
>작가는 종교를 씻어내는게 인류의 진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어느정도 인정.
진리주의자라면 이런 측면을 주장하는 것이 당연한 본능이다.
그걸 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나타나겠지만.
무턱대고 탄압하듯이 믿지 말라고 책을 뺏은들 사람들이 순순히 책을 바치고 신을 버릴 리는 없으니까.
진정으로 하겠다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내려놓도록 만들어야겠지.
수 세기에 걸쳐질 도덕 전쟁이려나.


도덕의 박물학
186. 도덕학이란 자기 시대의 도덕을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합리화에 불과한 주제에 학문이라니. 오만하고 주제넘지 않나.
도덕에 어떤 문제적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결여되어 있었다. 철학자들이 해온 도덕의 정초를 잘 살펴보면 시중의 도덕에 대한 현학적 표현에 불과했다.
신과 세계를 부정하는 염세주의자에게는 고통을 겪는 이를 도와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염세주의자라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뭐하는가?
윤리학자가 의견의 일치를 보는 명제는 아무도 해치지 말고 가능한 모든 사람을 도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힘에의 의지를 자신의 본질로 갖는 이 세상에서 이 명제는 뻔한 거짓이다.
187. 도덕이란 내가 복종할 수 있다는 점이 존경받을만한 일이라는 것이고 그대들도 나와 달라서는 안된다. 라는 핵심이다. 도덕이란 정념의 기호에 불과하다.
188. 도덕이 자유방임과 대립되고 자연과 이성에 대한 폭정일지라도 반박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 반박하려면 다른 도덕에 입각해야하고 도덕의 본질은 장기간에 걸친 강제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수천년동안의 사상가들은 오로지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만 답을 정해놓고 도덕적인 폭정을 저지르며 정신을 교육해왔다. 도덕 속에 깃들어 있는 자연은 자유방임과 분방한 자유를 증오하도록 가르치며 제한된 지평에 대한 욕망과 가장 가까운 과제를 해결하려는 욕망을 심어준다. 삶과 성장의 조건으로 우리의 시야를 좁히고 어리석게 만든다.
그대는 누군가에게 오랜 기간 복종해야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파멸하게 될 것이며 스스로에 대한 존경심마저 잃어버릴 것이다. 라고.
도덕적 광신에 사로잡힌 세대는 삽입된 억압과 단식의 시기로 충동을 사슬에 묶어낸다. 이 과정에서 억압되지만 정화되고 예민하게 되는 것이다.
천민이란 나쁜 행위에서 오직 고통스런 결과만을 주목한다. 나쁜짓을 하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판단하며 선을 유용하고 유쾌한 것과 동일시한다. 공리주의적 도덕설도 이와 동일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본능에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경우 본능에 적절한 근거를 제공하여 본능을 뒷받침하도록 이성을 설득해야 한다. 라는 소크라테스식 천민사상이 세상을 지배해왔다. 도덕과 관련하여 본능, 그들식으로는 신앙에 따른 것이다. 이 비합리성. 데카르트 정도는 이성으로만 그 권위를 인정한다.
우리의 감각은 주어진 자극에 대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않고 이미 만들어낸 것에 비추어 반영한다. 그것이 더 편하므로.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선자다. 나의 시각은 세상을 명료하게 보지 못한다. 내가 떠올린 것을 반영시켜 좋을대로 해석하고 진리를 적대시할 수도 있다.
194. 무엇을 재산의 소유이자 점유로 여기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자신과 육체적 관계만으로 소유했다고 여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신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자신의 바닥과 사악함까지 보여주고서도 사랑할 경우에야 소유했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
195. 노예도덕은 선과 악으로 나뉘지만 주인도덕은 탁월함과 저열함으로 나뉜다.
힘에의 의지란 위대해지고 싶은 욕망, 탁월한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욕망으로 선함과 위대함, 탁월함을 동일시하는 주인도덕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항상 명령하는자와 복종하는 다수가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전제해도 좋다. 그대는 해야한다고 명령하는 양심이라는 형식으로 복종에 대한 욕구를 지니고 있다고.
명령을 내릴 때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도덕적 위선의 지배를 보라.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더 높은 명령을 수행하는 자인것처럼 꾸미거나 공복의 도구 같은 무리의 원칙을 빌려야 한다. 그러면서 유순하고 협조적이며 무리에 유용한 인간으로 존재하게 하는 자신의 특성이야말로 인간적 미덕이라 찬양한다. 이 무리동물에게 있어 지배자의 출현이야말로 견딜 수 없게 된 압박에서 해방시킨 은혜와 구원인 것이다.
201. 도덕적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는 유용성이 무리를 위한다면 부도덕이란 것은 집단의 존속에 위험한 것과 동일시되는 한, 이웃사랑의 도덕은 존재할 수 없다. 이웃에 대한 공포가 우선시 되어있지 않은가. 이웃에 대한 사랑은 부차적인 외관에 불과하다. 이들은 독립적인 정신과 위대한 이성을 위험으로 여기고 악으로 단정짓는다. 유약하고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동등하게 놓는 것이 명예로 칭송되는 시대다. 우리는 도덕적 명령을 가지고 있다.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 무리동물들은 이를 진보라고 부른다. 도대체 무엇이 진보란 말인가.
민주주의 운동은 그리스도교적 운동의 계승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아둔하다. 왜냐하면 국가권력에 의한 계획 경제는 자유가 아닌, 국가권력에 의한 전제적 지배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고통을 함께한다는 동정의 도덕이야말로 도덕 자체이자 최고의 도덕이며 인간이 도달한 정점이라 생각하며 도덕을 신봉한다. 그들은 일체가 되어 구원자로서의 집단, 즉 자기 자신을 믿는다.
인간에게 인간의 미래가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고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것이라 가르치고 이것을 계획적으로 육성해야한다. 이제까지 역사라 불린 어리석음과 우연의 지배를 끝장내자. 인간이 퇴화하고 왜소하게 된다.
우리 학자들
204. 훈계란 자신의 상처를 겁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이건 니체의 훈계다. 그는 학문과 철학의 지위 변동에 대해 부당하다고 말한다. 학문은 오만과 무분별에 가득 차 철학에 법칙을 부여하며 스스로가 주인임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 지들이 철학자인줄 안다. 이렇게 된 것에는 천박한 근대 철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그들의 인간적인 점. 잡탕 철학자들은 기껏해야 학자나 전문가다. 그들은 학문 이상의 것을 원했지만 감당할 자격도 능력도 되지 않아 학문의 지배로 되돌아온다. 그들의 철학은 경계 너머로 나아갈 권리를 거부하는 철학이며 불신과불만을 자아낸다. 그러니 어찌 지배하겠는가.
205. 철학자로서 살고 있다는 것은 영리하게 세상을 피해 살아가는게 아니다. 참된 철학자는 비철학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게 산다. 약삭빠르고 자진해서 모험에 뛰어들어 불리한 유희를 행하는 것이 진정한 철학자다.
206. 학문하는 자란 고귀하지 못한 종류의 인간이다. 그들은 명예와 인정, 그리고 명성을 얻고싶어한다. 자신의 유용성을 입증받고 싶어하는데 이는 가축과 같은 인간의 밑바닥에 있는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소심한 질투에 사로잡혀서는 올라갈 수 없는 이들을 끌어내릴 생각만 품고 있다. 마음을 활짝 열지도 못하고 비범한 인간을 근절하는. 예수회의 범용함 아니겠나.
207. 우리는 객관적인 정신에 감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감사하는 마음에 경계할 줄 알아야 한다. 정신의 자기부정과 비개성화를 목적 자체나 구원으로 과장스럽게 찬양하는 경향에 제동을 걸어라.
객관적인 인간은 거울과도 같다. 인식되기를 바라는대로 끼워맞춰질 뿐이고 복종하는데 길들여져있다. 비추는 일 이외의 즐거움을 모른다. 그들에겐 진지함도 없고 자신을 위한 시간도 없다. 그 대가로 미덕의 찌꺼기가 되어야하지 않나. 거짓되어있다. 사랑도 증오도 인위적이고 의도적이다. 삶이 일종의 곡예이자 허영과 과장이다. 즉, 도구다. 내실이 없고 시초도, 정당성도, 종결도 아니다. 내실도 내용도 없다.
208. 위대한 정치란 거대한 제국을 추구하는 정치거나 초인이 지배하며 사람들이 건강한 정신으로 살게 하는 정치다.
회의주의자들은 의지가 부족하다. 의지마비증에 걸린 불구자. 객관성, 과학성, 예술을 위한 예술. 같은 화려한 속임수의 의상을 입고 있다.
210. 비판가들은 진리를 즐겁다는 이유만으로 믿으려들거나 추구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분을 좋게한다면 꺼리겠지. 그런 이상과 열광에 구토를 느낄 것이다.
211.진정한 철학자는 명령하는 자며 입법자다. 그들의 인식은 창조이며 하나의 입법, 진리에의 의지는 힘에의 의지다.
212. 철학자는 인간의 육성자다. 그들은 시대의 미덕을 해체하고 새로운 위대함을 인식시키는 일을 한다. 당대의 도덕이 가진 위선과 허위를 폭로한다. 현대에 나온다면 사람이 얼마나 많은 책임을 질 수 있는지에 따라 가치와 등급을 정했으리라.
우리가 평등하다고 말하는 소크라테스는 고귀한 자의 살과 심장을 베어낸 천민일 뿐이다. 홀로 독립적인 존재로 서는 것이 위대하고 고귀한 것이다. 자신의 덕에의한 주인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가장 위대하다.
213.철학자가 무엇인지는 경험으로 알아야한다. 정신에 위계가 존재하며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철학자의 미덕이란 책임을 기꺼이 지려는 자세, 지배하고 내려다보는 당당한 눈길, 대중의 의무와 덕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는 것, 오해되고 비방받는 것을 상냥하게 보호하고 변호하는 것, 위대한 정의를 즐기고 실행하는 것, 명령 잘하고 의지가 넓어서 찬양도 우러러보지도 않는, 사랑하지도 않는 눈.
우리의 미덕
214. 우리가 실현해야할 덕은 변발처럼 이미 존재하는 것을 따라하는게 아닌, 창조해야하는 것이다.
215.우리의 도덕은 다채롭게 영향을 받아 규정된다.
216. 우리는 사랑할 때 경멸을 배운다. 표면적으로는 그리스도교적 교리가 계속 신봉되지만 가식으로서의 도덕은 우리의 취미에 거슬린다. 이것도 진보다.
217. 도덕적 분별심을 가졌다고 인정받는 사람은 한 번이라도 자신이 잘못하면 너를 해코지 하고자 할 것이다. 도덕적으로 행동하는게 아닌, 도덕적으로 보이는걸 더욱 중시했으므로.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잘못을 잊어버리려고 한다.
부르주아의 위선과 어리석음을 까던 철학자들은 그 비판에서 자신을 드러내었다. 자신의 존재를 폭로한 셈이다. 자기고문이자 세련된 잔인함 아니겠나. 차라리 평등주의자의 심리를 파헤치는게 어떤지? 그들을 규정하는 무의식적 원한과 심리에는 교활함이 있다. 부르주아의 위선과 평등주의자들의 위선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해부하라!
219. 도덕적 심판과 단죄는 못난이가 덜 못난 녀석에게 즐겨 행하는 복수다. 재능을 타고나지 못함에 대한 보상행위이며 정신을 획득하여 세련되기 위한 기회다. 그리스도교는 모두에게 동등한 척도가 있다는 만족 하에 싸우며 이를 위해 믿음이 필요하다.
드높은 정신성이란 도덕을 넘어 존재한다고 한다면 이들은 분노한다. 그들에게는 정신적 우월성이 도덕에만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220. 사랑이란 이기적이다. 우리는 희생하는 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얻었는지 안다. 보다 이상의 존재가 되기 위해, 혹은 그렇게 느끼기 위해 희생한다. 사심이 없는건가 이게? 보다 까다로운 관심병자가 아닐까.
221.도덕주의적인 현학자는 사심없는 인간을 존경하는 이유가 사심없음이 아닌, 자신을 희생하면서 유익한 일을 할 수 있기에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을 잘 살펴봐라. 희생하는 이는 누구이며 돕는 다른이가 누구인지를. 긍지에 찬 인간은 고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런 가치가 없는 인간이 그러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교만한 사람이며 실제 가치보다 더 적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비굴한 사람이다. 겸손은 긍지에 찬 인간이 아니다. 왜냐하면 긍지에는 위대한 태도가 속해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게 타당한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타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부도덕이다.
222. 사람은 자신이 괴로우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남의 고통에 괴롭다고 한다.현대적 원숭이의 허영심은 함께 괴로워하고 싶어함이다.
223. 우리가 가진 것은 미래에 아무것도 아니게 될지 모른다. 아, 조소거리로는 남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224.인간의 문화는 반야만 상태였다. 욕망은 무한하고 최대의 위험에 처하고서야 행복하게 된다.
225. 인간 안에는 피조물과 창조자가 통일되어 있다. 쾌감과 고통을 기준으로 측정하는 가치는 순진하고 피상적이다. 창조적인 예술가라면 이를 경멸한다. 고통을 없애려고 하는 어리석음. 지금까지 인류를 고양케 한 것은 고통을 견디는 훈련이었다. 그대들의 동정은 인간 속의 피조물에만, 마땅히 괴로워해야하는 것에만 행해져왔다. 우리의 동정은 그 동정에 대한하는 동정이다.
쾌락과 고통과 동정보다 저 높은 문제가 있다.
226.우리는 의무의 인간이다. 어리석은 자들과 외관만을 보는 자들은 비도덕주의자인 우리를 보고 의무를 모른다고 하지만 이 세상을 보라. 의무를 모를 수가 있는가? 미묘한 명령과 미묘한 복종이 행해지는 이 세계에서 어떻게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단 말인가.
227. 성실함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신이 벗어날 수 없다면 그것을 악으로 행하여라. 덕은 어리석음이 되고 어리석음은 덕이 된다. 인생을 따분한 성실함으로 살 수 있는가? 성실함을 절대적인 덕으로 삼고 삶을 피곤하게 살지 말라는 말이다.
228.도덕을 학문으로 삼을 경우 양심의 가책을 느꼈었다. 오늘날에는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을 방법을 가져왔다. 영국식 도덕의 정당화다. 일반적 이익, 최대 다수의 행복등의 도구다. 이들은 이 덕이 지금껏 존재해온 덕이라는 증명을 시도한다. 누구도 일반적인 복지가 이상도 목표도 이해할 개념도 아니며 역겨울 뿐이라는걸 알려 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정당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정당할 수 없다는 것,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도덕을 요구하는 것이 높은 인간에게 해가 된다는 것을 따지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도덕과 도덕 사이에 위계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229.비극에서 고통스러운 쾌감을 맛보는 것은 잔인성이다. 우리가 고급문화라고 부르는 거의 모든 것은 잔인성의 정신화와 심화에 기초하고 있다.잔인성이란 무엇인가. 종교적 자기부정이나 지성의 희생. 이런것이 비극이다. 고결한 듯 주제를 씌운 것은 잔인성이다. 정신의 근본의지는 끝없이 가상과 표면적인것을 향하기에 깊이 탐구한다는 것부터가 근본의지에 대한 폭력이며 고통을 가하고 싶음이다. 모든 인식욕에는 한 방울의 잔인성이 포함되어 있다.
230. 정신은 낯선것을 자의적으로 맞게 왜곡한다. 정신은 주위에 대해서 주인이 되고 싶어한다. 실제로 지배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지배하지 않더라도, 느낌만으로도 만족하는게 정신이다. 자기만족이 정신의 근본의지다. 정신은 위장한다. 도덕적 미사여구의 장식, 성실성 진리에 대한 사랑, 지혜, 희생, 영웅적행위에는 자부심을 부풀게만들지만 실은 인간의 무의식적인 허영심에서 비롯된 거짓이다.
우리는 자연 이상의 존재라고 들어왔지만 자연 그대로의 인간 앞에 서보아라. 참 기묘한 과제 아닌가. 도대체 인식은 왜 존재하는가? 우리를 아름답게 만들고 다시 떨어뜨리기 위하여? 우리의 본모습, 밑바닥은 어리석다. 오이디푸스가 세이렌 앞에 귀를 열고 서는 것과 같은 광기의 과제였다.
232. 여성은 자립하길 원한다. 최악의 진보다. 이건 여성의 진상을 노출시키겠지. 천박한 방종과 불손함, 오만, 선생티, 현학성등의 불손함. 그것이 어린애에게 행해진다. 앞으로는 세상에 행해지겠지. 과연 여성은 이걸 밝히고 싶어하는가? 여성은 진실에게 적대적이다.여성을 적대한 것은 여성이다. 여성을 침묵시키는 것이 여성을 위함임을 모르는가!
233. 오 자유여 네 명의로 저질러지는 범죄를 보라.
236. 젊음은 꽃으로 장식된 동굴. 늙으면 용이 동굴에서 기어나온다. 여성은 신이주는 행복과 허영심의 행복을 동일시할 정도로 어리석다.
239. 여성은 수치를 잃어가며 남성을 두려워하는 것조차 잊고 있다. 두려움과 연민의 포장 없이 남성의 옆에 선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가? 너희들이 외치는 진보는 퇴보다.
민족과 조국
240.독일적인 것. 억지스럽고 야만적이며 점잔을 빼는 것, 현학적이고 경외할만한 자부심. 다채로움과 모호함, 무궁무진함이, 퇴폐적인 세련으로 자신을 감추려들지 않는 편안함. 젊으면서 늙었고 원숙하면서도 전도양양한 독일적 영혼! 어제와 내일은 있지만 오늘은 없다.
241.정치의 올바름을 떠들어봐야 니체는 더 강한 자가 강한자를 지배하는게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242.민주주의는 인간의 평준화와 범용화를 일으킨다. 강력한 유형의 인간을 만들지 못하고 주인과 명령하는 자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이처럼 유럽의 민주화는 세련된 의미의 노예제에 적합한 임눌을 만들지만 예외적으로 강한 인간도 나올텐데 이 사람은 편견이 배제된 교육과 훈련 덕에 어떤 인간보다도 강력하고 풍부해질 것이다. 전제적인 지배자를 본의아니게 준비한다고 할 수 있다.
243. 독일인은 수 많은 종족이 섞여 있다.그러므로 독일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성중이자 발전하는 중이다.
245. 수태시키고 싶어하는 천재와 수태하고 싶어하는 천재가 있다. 이들은 서로를 갈망하고 서로를 오해한다. 질서를 만드는 천재와 질서를 받아들이는 천재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249. 민족에는 특유의 위선이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미덕이라고 부른다.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다.
251. 유대인은 강해지고 있으니 함부로 적대하지 말고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건 별로 안중요함. 강한 민족을 적대시하지 말라는 현실적인 조언.
253. 규칙을 인식하고 새로운 어떤 것으로 존재, 새로운 것을 의미, 새로운 가치를 표현하려면 아마 무지한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야말로 위대한 양식을 구현할 수 있다.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257.귀족계급은 항상 야만계급으로 시작되었다. 귀족사회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위계와 가치 면에서 여러 단계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노예제를 필요로 한다. 도구의 인간을 천시하고 복종과 명령, 억압과 배제로 생기는 파토스. 더 드높고 희귀하며 넓고 포괄적인 상태를 형성하려는 열망이 생긴다. 이것이 인류를 향상시켰다.
258. 부패란 본능들 사이에 지배하는 무정부상태다. 귀족이 숭고한 혐오감에 사로잡혀 포기하고 희생될 때가 부패다. 자신들의 자부심을 상실하고 특권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군주정의 한 기능으로 전락한다.
귀족체제의 근본적인 신념은 사회가 사회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선택된 인간들이 자신을 보다 높은 과제와 높은 존재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이용하는 토대와 발판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259. 생명 자체는 본질적으로 자신보다 약한 타자를 자기 것으로 하고 위해를 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위해를 가하며 착취하는 것을 삼가고 자신의 의지를 타인과 동일시하는 것은 근본 원칙이 되어버릴 시 정체가 탄로난다. 이는 생명 본질의 의지를 부정하고 퇴화하는 원칙이다. 착취란 생의 본질이다. 도덕과 비도덕의 이야기가 아닌 살아있기 때문에 행하는 생의 본질인 것이다! 그렇기에 착취를 차단하겠다는 미래의 사회를 바라는 것은 생명의 기능이 하나 거세된 것이라고 말하겠다.
260. 주인도덕은 탁월함과 저열함을 나누지만 노예도덕은 선과 악을 나눈다. 평민들은 거짓말쟁이라는 것이 귀족의 근본신조다. 겁,불안,소심,눈 앞의 이익에 급급, 편협,의심,비굴,학대감수,아첨꾼,거짓망쟁이가 천박함이다. 고귀한 종류의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규정하는 자라고 느낀다. 따라서 인정을 필요로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해로운것을 해롭다고 인식하고 가치를 매긴다. 고귀한자는 자신을 제어하고, 침묵하고, 엄격하고 혹독하게 스스로를 대하는데서 기뻐한다. 엄격과 혹독을 존경하는 자다.
은혜를 쉽게 잊지 않고 복수를 단념하지 않는다. 의무감, 정교한 보복, 고상한 우정,적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필연성 모든 것이 고귀한 도덕의 특징이다.
반대로 노예도덕을 보라. 학대받고 억압, 고통당해 자유롭지 못하며 자신에 대해 확신도 가지지 못한 자들이 도덕을 운위한다면, 그는 회의하고 불신하며 강자가 존중하는 모든 선을 교활하게 불신한다. 강자의 행복을 불신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생존을 편하게 해준다. 이것이 연민, 도움주는 손길, 온정, 인내, 근면, 겸손, 친절함이다. 이 노예들에게는 권력, 위협적인것, 공포적인것, 세련된 것, 무시할 수 없는 힘 등이 모두 악하다. 악한 인간이란 공포를 불러오는 인간.
주인도덕에서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가 훌륭한 인간인데 말이다. 저열한 인간은 경멸스럽게 보고.
노예적인 사고방식에서 선한 인간이란 위험하지 않은 인간이다. 속기 쉬우며 우둔한 인간을 미화하다니.
마지막 근본적인 차이는 자유를 향한 갈망, 행복에 대한 본능적 추구, 자유에 대한 민감함은 노예도덕이자 노예의 덕성이다. 반면, 섬세하고 열정적인 경외와 헌신이 귀족적인 사고방식이다.
261. 고귀한 인간은 허영심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격없는 자가 좋은 평판을 조성하며 믿어버리는 것은 떠올리기조차 어렵다. 이는 실제로 자존심의 결여이고 기괴하고 불합리하므로 있을 수조차 없다고 여기리라. 이걸 이해하려면 역사적으로 평민들이 타인이 평가하는대로 존재해왔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스스로 가치를 정립할 줄 모르며 주인이 자신에게 매기는 가치만을 받아들여왔다는 것을. 허영심은 피지배자의 격세유전임을. 자신에게 좋은 평가를 해달라는듯이 떠벌리는 이들은 허영심에 사로잡혀있다.
262.무사는 모욕을 참지 않아.
하나의 종이 하나의 유형으로 확립되고 강화되는 것은 불리한 조건과 투쟁을 통해서다.영양을 과잉공급받고 보호와 배려받은 종은 가장 현저한 방식으로 유형의 변질을 초래한다.
귀족주의적 도덕은 가혹함 자체를 덕에 포함시켰으며 그것을 정의라 불렀다.
허나 그 훈육의 고삐는 풀어졌고 필수조건으로 다가오지도 않게 되었다. 사치나 고풍스런 취미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공통된 정식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오해와 경멸이 지배하고 타락과 부패와 욕망들이 뒤섞인다. 그 결과 범용한 인간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범용하게 돼라! 라는 가르침만이 의미를 가지고 도덕이 된다.
범용의 도덕이 가진 정체가 뭔지, 무엇을 원하는지 고백해봐라. 그것은 의무와 이웃사랑을 설교해야 한다. 자신의 아이러니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263.소위 교육받은 현대적인 이념을 신봉하는 자들이 아무거나 쓸어대고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아라. 그 경외할만한 성스러운 가치룰! 영혼이 느끼는 경외성을! 나는 그것에서 구역질을 느낀다.
264. 교육과 교양은 천민근성을 속이는 기술이다. 진실하라!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라!
265. 이기심은 고귀함의 본질이다. 여기서 이기심이란 속물주의가 아닌, 다른 인간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에게 복종해야한다는 확고한 믿음이다. 고귀한자는 자신의 이기심에 냉혹함과 억지, 자의가 개재되어 있다 느끼지 않으며 그것을 사물의 근본 법칙이라 여긴다. 이기심은 곧 정의 자체다. 그들에게 은혜란 어떠한 향기도 갖지 못한다. 차라리 베푸는 것으로 우월한 힘을 느낀다. 받는 것은 무력하다.
266.고귀한 영혼은 자신과 동등한 자들이라 생각하는 자들을 존중하며 이들을 위해서만이 희생할 수 있다.
268. 비속함이란 쉽게 전달될 수 있는 곤경. 평균적이고 비속한 체험이 인간을 지배했다. 이해받기 힘든, 섬세하고 희귀한 자는 고립되고 수도 적다.
269. 심리학자, 영혼의 해명자가 보다 비범한 인간을 연구할수록 동정심에 차리라.그들의 몰락과 타락은 일반적인 법칙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결국 심리학자도 타락한다. 보아라! 당신들이 추앙하던 하나의 신은 가련한 희생양에 불과하다. 성공이라는 기만과 업적만을 성공으로 보는 어리석음을 보라! 저들은 경멸스럽고 동정을 느낀 이들에게 존경을 바친다. 그리고 그들은 허구이다.
이러한 이들은 여성에게 동정을 받는다. 그들은 자신의 손이 미치지 않는데도 도우려한다. 여성은 사랑의 힘이면 안되는 것이 없다고 믿는다. 사랑이란게 얼마나 빈약하고 어리석은지 안다면, 그리고 교만하여 잘못을 저지르는지, 파괴하는 것을 안다면 그랬을까! 그는 오로지 사랑해줄 것만을 요구했지만 사랑을 거부한 자에게 광적으로 분노를 받았다. 다음으로 그를 사랑하지 않은 이들을 처넣을 지옥을 고안한다. 사랑의 한계다. 완전한 사랑을 하는 신은 인간의 사랑이 너무 보잘것 없고 우매아여 가엾게 여긴다.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면 죽음을 바랄것이다. 이게 순교다. 근데 굳이 그런 고통에 매달릴 필요가 있나?
270.인간은 얼마나 깊게 고뇌할 수 있는가에 가치가 정해진다. 그것만이 인간을 고귀하게 만든다.
271. 얼마나 불순하고 더러운 것으로 느끼느냐가 고귀한 성향이다.
272.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거나 분담하려하지 않는 것, 자신의 특권과 행사를 의무로 생각하는 것, 자신을 위한 의무를 모두를 위한 의무로 격하시키지 않는것.
이것이 고귀함의 증명이다.
273.위대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을 장애물과 방해물, 휴식처로 간주한다. 동료인간에 대한 자애는 지배적인 정상에 도달하고서야 가능하다.
274. 천재가 그리 드문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잠재력을 분출하려면 행운과 여러 요인이 필요하리라.
275. 고귀함을 보지 않으려는 사람은 천박한 점은 예리하게 포착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를 폭로한다.
276.사람은 일을 끝나고나서야 시작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했을 것을 깨닫는다.
278.고통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은 회복이나 위로가 아닌, 상처를 가릴 가면을 바란다.
279.깊은 슬픔에 빠진 사람은 행복할 때 정체를 드러낸다. 질투 때문에 행복을 짓눌러 죽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280. 누가 물러나는것 같다면 그것은 위대한 도약을 위해 물러서는 것이다.
281.니체는 남들에게 자신을 믿어줄 것을 요구하지만 자기 스스로에 대해 믿지 못했다.
282.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칭찬하는 사람은 세련되고 고귀한 통제능력을 가지고 있다. 근데 이러다가 바보들을 이웃으로 삼을 수도 있다.
284.공동체는 어떻게든 사람을 천박하게 만든다. 고독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접촉으로부터 생기는 청결함을 향한 숭고한 성향이자 덕이다. 용기 통찰 공감 고독 네 덕의 주인으로 존재하라.
285.가장 위대한 사건과 사상은 뒤늦게 이해되고 당시의 사람들은 체험하지 못한다.
287.고귀함이란? 행위조차도 측량하기 어렵다. 작품이 증명하나? 아니다. 신앙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지는 근본적인 확신이다. 고귀한 영혼은 스스로에 대해 외경심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이웃에도 이로운 존재가 된다.
288.필연적으로 정신을 지닌 이들은 정체를 숨기려해도 드러난다.
290. 진정한 철학자라면 오해되는걸 신경쓰지 않는다. 오해받더라도 그건 그의 허영심이 문제이지. 허나 이해받는 것은 동정심 때문에 괴로워한다. 왜 나처럼 살려고 하는가? 라며.
291. 도덕이란 오랜 기간에 걸친 기만이다.
292.철학자가 탐구하는 진리는 폭풍우와 같다. 그는 주변으로 섬뜩한 일을 일으키며 자신으로부터 달아났다가 다시 되돌아온다.
293.이것은 마음에 든다. 내 것으로 만들고 지킬것이다. 라는 사람, 일을 주도하고 하나의 사상에 충실해 주제넘는 자를 벌하고 제압하는 사람, 자신의 분노와 검을 가진 사람,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억압받는자, 동물조차 기꺼이 따르고 싶어하는 자, 천성적으로 지배자인 사람이 보내는 동정이야말로 가치가 있다.
동정으로 설교까지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무절제한 비탄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역겹다. 이들의 동정은 유약함이다.
294.타인의 결점을 자신의 승리감으로 삼는 허영심은 쓸모없다. 그것은 오히려 스스로의 무기력함을 드러낸다.
295. 디오니소스와 같이 창조와 파괴를 반복하는 이 세계의 생명력을 신으로 재해석하고자 한다.
노예도덕은 약자에 대한, 노예에 대한 이해가 반영되어 있다. 이것이 주를 이루면 연약하고 무능한 자가 득을 보리라. 이들도 힘을 갖는다면 더 잔인하게 지배하고 억압하려 들텐데 말이다. 소심한자들이 자신을 두고 선한 존재다! 라고 가장하는 위선적인 도덕이다.
자유란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강한 긍지이지만 노예도덕에서는 구속에서 벗어난 제멋대로의 행동이다.
>니체의 사상에 공감하는 바도 많지만 그가 주장하는 주인도덕은 패배했다.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노예도덕과 어떻게든 타협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야.
그것을 비천하게 보는 것까지 꾸짖을 것은 아니지만 그들을 모조리 없애버릴게 아니라면 타협을 해야한다.
이런것들을 각설하고 니체의 소망을 요약하자면 명료한 세계다.
그는 세계가 명료해지기를 원했다.
거짓을 거짓이라는 이유만으로 꺼리고 진실을 진실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아들이는 세상.
여기에 호불호는 반대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명료한 혼돈이 니체의 소망이라고 본다.
적어도 난 그렇게 읽었다.


안락함만을 추구하는 범속한 인간, 말세인들은 악을 삶의 해라고 보지만 니체는 악과 고통 투쟁과 갈등이 성장과 고양을 가능케 하는 발판이라고 본다. 말세인들의 독단론적 철학은 점성술만큼이나 무의미했다.
생의 모든 근본조건은 관점주의. 즉, 우리가 세계를 자체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속한 종족의 생존과 강화라는 관점에서 세계를 해석하는 것. 예수회는 환상적인 신앙을 통해 인류를 행복감에 젖게 만들고 지배하려 했다. 행복을 위해 진리를 희생하는 것이다.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1.진리에의 의지는 우리로 하여금 과연 진리 자체가 존재하는가? 우리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종족의 생존과 강화를 위한 허구가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진리를 원하는가? 실은 허위를 불확실성을 무지를 원하지 않는가?
진리에의 의지는 지금껏 제기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2.모든 시대의 형이상학자들은 반에서 정이 생성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류에서 진리가, 이기심에서 사심 없음이 생길 수 없다는 편견에 잡혀있었다. 허나 상반된 것들이란게 애당초 존재는 하는가? 같은 살인이라도 살인자와 전쟁영웅으로 갈린다. 악덕과 덕이 대립하는 것인지 의심해 볼 부분이다. 그리고 형이상학자들이 보증했던 민중적인 가치평가와 가치 대립은 단지 피상적인 판단이나 임시적인 관점 아닌가? 참된 것을 가질 수 있는 모든 가치도 인정하지만 기만하려는 의지와 이기심에서도 높고 근본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정반대라 하던것이 실은 본질적으로 같을지도 모른다.
3.의식은 본능과 대립되지 않는다. 사실 의식은 본능의 지배를 받는다. 의식적 사고의 대부분은 본능의 활동이다. 모든 논리와 가치평가의 배후에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요구가 도사리고 있다.
4.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얼마나 종을 보존하고 육성하느냐에 의미는 충분하다. 세계를 왜곡하지 않고 사람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잘못된 판단을 포기하는 것은 생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거짓을 삶의 한 조건으로 인정하는 것은 물론 통상적인 가치감정에 저항이다.
5.철학자를 반쯤 불신과 조소로 바라보는 것은 그들이 솔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리라고 호들갑 떠는 것이 실은 선입견에 가득 찬 명제, 착상, 영감이 찾은 근거에 의해 정당화된다. 변호인이나 다름없다. 정언명법으로 이끌게 된다. 우리가 따라야 할 행위는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할 도덕적인 명령이라며 말이다. 도덕의 본질은 가언명법이다. 자신의 힘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허상이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폐기해야한다.
6.인식에의 충동은 철학의 아버지가 아니며 철학에서도 인식은 하나의 도구로 기능했을 뿐이다. 모든 충동은 지배욕으로 가득 차 있고 지배자로서 철학적 사고를 하려 하기에 이 기본충동들 하나하나가 모든 충동 위에 군림하고 싶어한다는걸 알 수 있다.
인간은 이미 세상에 포함되어 있어 세계를 객관화시킬 수 없다. 따라서 전체에 대한 판단은 개인적인 성향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의 철학도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떤 인간인가를 보여줄 뿐이지 그것은 객관이 아니다.
7. 철학자의 확신이 등장할 때가 있다. 이건 그들의 본능적 생리적 차원의 확신이다. 가장 힘이 센 당나귀의 출현이다.
9.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연법에 살기를 바랬지만, 그들은 그것을 이성적인 절도와 조화에 의해 지배되는 것으로 보았지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라. 자연에는 낭비적이고 관심도 의도도 없다. 정의감도 배려도 자비도 없으며 황량한 불확실성이다. 이 무관심 자체가 힘이지만, 그렇기에 어느 존재자에게도 구속되지 않아 무한한 힘을 가지지만 삶은 이 무관심을 견딜 수 없다. 자연과는 다르게 존재하고 싶어한다. 이들은 자연에서 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다. 실은 기만. 이들은 도덕과 이상을 자연에게 강요하면서 체현하게 만들려고 한다. 이들이 하려고 한 짓은 오히려 세계를 창조하고 자신이 제 1원인이 되려는 가장 정신적인 의지였다.
10. 불확실한 어떤 것보다는 확실한 무를 위해 죽는것이 더 양심적이다. 형이상학자들조차 가능성만으로만 찬 수레보다는 한 줌의 확실성을 선호한다. 그것은 용기있어 보이지만 지쳐있는 영혼의 징후다. 보다 강한 사상가들의 경우에는 관점주의를 통해 세계를 감각적인 증거가 아닌 우리의 힘을 강화하고 고양시키는 관점에서 본다. 외관상 가장 확실한 소유물까지 포기한다. 하지만 이걸 잘 보면 과거의 확실한 것을 되찾으려 하는것은 아닌지? 현대적 이념에 대한 불신으로 불멸의 영혼과 같은것을? 이들은 그리스도교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그들은 회귀가 아닌, 현실로부터 떠나려 한다. 뒤로 되돌아가지 말고 용기 예술적 재능 힘을 가지고 비상하기를 권하고 있다.
11.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러한 능력이 있어서 라고 칸트는 동어반복적인 소리를 했지만 니체는 비웃었다. 아편은 왜 기분이 좋은가? 아편이 기분 좋기 때문이다 같은 논리거든. 근데 사람들은 인간에게 있는 도덕적 능력을 발견한 양 좋아했다.
사람에게 초감각적인 인식이 있다는 양 직관이라 말하고 종교적 갈망을 충족시켜주었다. 사람에게는 사실 도덕적 능력이 있는게 아닌데 말이다.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여 도덕적으로 분개하면서 취급하는 꼴을 보라.
질문을 바꿔야한다. 왜 그러한 판단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냐고. 똑바로 직시하자면 인간의 종 유지를 위해 그러한 판단이 진리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선험적 종합판단은 가능한 것일 수 없으며 권리조차 없다. 감각을 잠재우는 아편을 하나 발명해내었을 뿐이다.
12. 영혼의 원자론, 영혼을 영원하며 분할할 수 없는 불멸의 단자나 원자로 믿는 신앙. 이것을 학문으로부터 추방해야한다. 감각에 대한 승리 아닌가. 물론 영혼이 없다는걸 떠들 필요는 없다. 영혼에 대한 세련된 가설을 세워준다. 영혼이라는 명목적인 집단의식에 시민권을 주면서 영혼이란 관념에 대한 미신을 제거할 때 심리학자들은 새로운 삶의 의미와 방향을 발명할 운명에 처한다. 실은 다수의 힘에의 의지가 서로 갈등하면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는 마음의 발견에 입각하게 된다.
13.살아있는 것은 힘에의 의지가 있다. 자신의 힘을 발산하고 싶어하며 생명 자체가 힘에의 의지다. 자기보존도 이에 해당한다. 자기보존충동은 힘의 발산에서 생기는 간접적 결과지만 이것을 목적으로 , 근본 충동으로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철저함이다.
어떤 것의 발전이란 목적을 향한 진보는 아니며 최소한의 힘과 비용을 들인 진보도 아니다. 그것은 심화되어가고 독립적인 채로 일어나는 제압 과정의 연속이다.
14.물리학도 세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닌 짜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감각에 대한 믿음에 입각해있는 한 해석 이상의 것으로 인정될 것이다. 무엇이 명료하고 무엇이 설명되는가? 보고 만질 수 있는 범위에 지나지 않는다.
플라톤적 사유방식은 고귀하다. 바로 감각적 증거에 저항하는 데에 있다. 감각에 대한 지배는 천민적인 감각이라 불린 것을 이성으로 극복하고 해석하는 것은 다른 즐거움이다. 노동자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노동에만 전념하는 이상사회를 꿈꾼다.
15.감각기관은 실재하는 인식의 원인이므로 그 자체로는 어떠한 원인이 아니다. 따라서 감각주의는 발견의 원리가 아닌 도구이다. 왜냐하면외부세계까지 감각의 산물이라면 신체도 외부세계의 일부이므로 감각기관의 산물. 그 자체가 감각기관의 산물이 된다면 자기 원인이라는 개념적 모순이 되므로 외부기관은 각각기관의 산물이 아닌 것이다.
16.직접적인 확실성이 존재한다는 미신을 믿는 것은 순수하다. 그들은 인식이 왜곡도 범하지 않고 물자체로서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 직접적확실성은 형용모순이다. 이를테면 아는 생각한다에서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가? 사유한다는 개념을 어디서 얻는가? 왜 원인과 결과를 믿고 무엇을 근원으로하여 자아에 대해서 말하는가? 이처럼 직관적 인식에 호소하여 답하려는 것조차도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건 불확실하다. 왜 진리라고 고집하는가?
17.생각은 자신이 원할 때 오는 것이지 내가 원할 때 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가 생각한다는 것은 사실의 왜곡이다. 옛 원자론은 작용하는 힘 외에 물질덩어리 안에 힘이 존재한다고 상정했다. 그러나 보다 엄밀한자는 대지의 잔여물을 상정하지 않고도 자연을 설명하게 되었다. 언젠가 논리학자도 무성을 상정하지 않고 문제없이 사고하는게 가능해질 것이다.
18.반박되는 이론은 매력이 있다. 반박될 수 있기에 이론에 끌리는 것이다. 자유의지도 반박되어오면서 명맥을 이어가는게 이와 같다.
19.철학자들은 의지가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인 것처럼 말하는 버릇이 있다. 쇼펜하우어도 대중의 선입견을 수용하고 과장했을 뿐이다. 의지란 복합적인 것이며 모든 의지에는 첫째로 다수의 감정이 있다. 감정이 의지의 구성요소인 것처럼 사유도 의지의 구성요소다. 의지 작용에는 명령하는 하나의 사상이 존재한다. 의지는 감정과 사유의 복합체이자 하나의 정념이다. 명령의 정념. 의지의 자유란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명령에 순종해야하는 것에 갖는 우월감이다. 나는 자유롭기에 그는 복종해야한다. 복종시킬 수 있다는 내적 확신, 주의집중과 무조건적인 가치평가가 명령자의 속에 있다.
의욕하는 인간은 의지와 행위를 하나로 믿고 행동한다. 성공을 의지 자체의 공으로 돌리고 즐거워한다. 의지의 자유. 즉, 지배계급은 사회공동체의 성취와 자신을 동일시한다.
20.개개의 철학적 개념은 독자적으로 성장하지도 생기지도 않으며 관계속에서 성장한다. 독립적이라고 느끼겠지만 내부에는 개념이 타고난 체계가 있다. 새로운 발견이 아닌 재인식이자 발견이며 공유재산으로의 회귀이다.
언어는 우리의 관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을 규정하며 의식은 백지가 아니라 인종의 생리적 조건이나 언어구조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21.자기 원인은 자기모순이자 논리적 폭행이다. 의지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설익은 교양인의 머리를 지배한다.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면서 신 세계 선조 우연 사회에 책임을 돌리려하지 않는 열망은 자기 원인으로 존재하려는 열망이다. 이는 자신을 무의 수렁으로부터 존재를 끌어올리려는 것과 같다.
자유의지와의 상반된 개념은 자유롭지 못한 의지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원인을 압박하고 자극하는 것은 인과를 그릇되게 사물화하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는 기술하고 이해하기 위한 허구로서 이용해야지 사실자체를 설명하기 위해 이용하지마라.현실에는 인과적 결합도 필연성도 심리적인 부자유도 없다.
원인에 결과가 따라오지도 않고 어떠한 법칙도 지배하고 있지 않다. 이것을 만든 것은 우리들이다. 이걸 현실에 투입하려 한다면 신화적으로 사고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자유롭지 못한 의지도 신화이다.
실제 존재하는 것은 강한 의지와 약한의지. 의지의 부자유는 두 개의 상반된 관점의 문제이며 지극히 사적인 사고방식의 문제다.
책임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긍지를 지키려는 자는 허영심이 강하다. 반면 책임도 비난도 바라지 않으며 책임을 전가하는 녀석들은 범죄자의 편을 들게 된다. 사회주의적 동정, 종교가 그들의 도피처다.
22. 자연법칙은 원전이 아니고 순진한 인도주의를 취향에 맞게 입각시켜 정돈하고 실제를 왜곡한 것이다. 민주주의적 본능이 그러하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은 자연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점잖아보이지만 특권적이고 탁월한 모든 것에 대한 천민의 적의와 또 다른 무신론이 숨어 있다.
그들은 신도 아니고 지배자도 아닌 것을 원한다. 허나 자연법칙은 해석이지 원전이 아니다. 자연법칙에서 권력욕의 포악함과 무자비함도 밝힐 수 있지만 해석가들은 표현하지 않는다. 힘에의 의지가 모든 곳에서 예외없이 전개된다는 것을 알라. 세계에는 법칙이 결여되어 있고 힘이 매 순간 궁극적 귀결을 끌어낸다.
23.도덕적 편견의 폭력은 가장 정신적인 세계에 침입했다. 심리학을 힘에의 의지의 형태론과 발달이론으로 파악해라.
모든 선한 충동은 악한충동에서 비롯된다. 소유욕 지배욕 시기 증오등 악한충동이 생명자체에 필수적인 정념이자 근본적으로 존재해야 할 어떤 것으로 보면서 생명의 상승에 정념도 상승한다고 말한다면 판단을 그렇게 해야한다는 것에 정신이 어지러울 것이다. 허나 대륙에 다다르고나서는 깊고 새로운 통찰이 열렸음에 환호해도 좋다. 너희는 근본문제에 이르는 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유정신
24. 학문이 자라난 것은 무지라는 견고한 지반 위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앎은 무지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무지가 세련된 것이다. 최상의 학문은 오류를 사랑한다. 살과 피가 되어버린 도덕적 위선이 우리의 말까지 왜곡한다.
25. 진리를 위하여 순교하지 마라. 그것은 모든 무구함과 섬세한 중립성을 훼손하며 그대들을 우둔하게 만든다. 진리는 그대들의 희생을 요구할 정도로 무능한 것이 아니다. 그대들의 좌우명과 이론에 물음표를 붙여라. 자신의 확신에 공격할 용기가 있는가? 철학자가 되어서 도덕적 분노를 가진다면 철학적 기본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순교와 희생은 그들의 선동가적인 기질과 배우적인 기질을 폭로한다. 순교자가 되는 타락한 모습을 보아라. 그욕구는 하나의 익살극에 불과하다.
26. 고통과 부정을 피해 살아온 이가 불쾌함과 짐을 외면하고 성 안에 숨어버린다면 그는 인식을 위해 태어난 자가 아니며 인식을 추구하기에 부적합한 자다. 인식하는 자라면 규칙이 예외보다 흥미로움을 알고 평균으로 떨어질 테니 말이다. 보다 높은 인간이라면 냉소주의에 귀를 기울이고 호색한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행운에 기뻐하라. 이들은 동물성과 비속함 규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인간 앞에서 정직히 말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비속한 영혼을 지니고 있으나 분노가 담기지 않았기에 진실성은 존재한다. 분노에 휩싸인 자들을 보라. 그들은 거짓말을 한다. 보다 도덕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더라도 스스로를 물어뜯기 때문이다.
27. 나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해하도록 착각하게 두는 게 좋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웃을 수 있지 않은가.
28.니체를 이해하는 자는 냉혹할 정도로 정직해야하며 산 위에 살아 시대적인 수다를 발 아래로 내려다 보아야 한다. 진리에 대해 무관심하며 의문없이 누구도 용기를 가지지 못한 문제들을 사랑할 강함이 있어야 한다. 금단을 지향할 자. 자신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는 자. 그는 미궁에 스스로를 집어넣어 인생에 위험을 만든다. 누구도 그걸 보지 못한다는 것은 큰 위험이다. 돌아올 수도 없고 누구의 동정도 받지 못한다.
30. 최고의 통찰을 들을 자질이 없는데도 듣는다면 그것을 어리석거나 범죄적인 소리로 들어야 한다. 높은 영혼에게는 비극조차 비극으로 보이지 않는다. 만인을 위한 책은 악취가 난다. 소인배의 냄새가 묻어있고 숭배하는 곳에서조차 악취가 난다.
31. 사람들은 무조건적인 존경과 경멸을 한다. 젊음의 실수라고 니체는 말한다. 젊음 그 자체로 왜곡과 기만이 이루어진 것이다. 청년 특유의 분노와 숭배라는것을 알테니 말이다. 낙타의 정신은 도덕에 대해 맹종하나 사자의 정신은 기존의 도덕과 가치에 철저한 반항을 한다. 그 모든 것이 허구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32.도덕 이전의 시대에는 행위의 가치는 결과로 인해 결정되었다. 유래도 행위자체도 고려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유래를 따지게 되었다. 귀족적인 가치와 유래에 대한 믿음의 지배로 도덕적인 시대가 도래한다. 유래를 중시한다는 미신이 생겨난다. 그것이 의도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해석하였고 의도에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오늘날에는 행위의 가치는 의도되지 않은 것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의식이 퍼지고 있다.
의도란 해석을 필요로하는 기호나 징후이며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의도를 중시하는 도덕이란 편견이고 연금술이나 점성술 수준의 극복이 필요한 것이다. 도덕적 극복이 필요하다.
33. 헌신과 희생의 감성같은 포기의 도덕은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 사심없는 직관도 그렇다. 미학의 이름으로 예술을 거세하지 않나. 정직한 양심을 유혹하면서 끌어들이려고 한다. 자기 자신을 위하는게 아니고 타인을 위한다는 유혹을 보라. 그러한 감정이 기분을 좋게 한다는 사실이 본인만이 아닌 구경꾼에게도 정당화하는 논거가 된다. 기분이 좋은거 외에는 우행이 일어난 것 밖에 일어난 게 없다.
34.세계를 실재 자체로 보는 것도 하나의 관점에 의해 보인 세계에 불과하며 오류이다. 사물의 본질에 대해서는 기만적인 원리가 내포되어 있다는 가설로 빠지기 쉽다. 허나 사물 자체에 기만적인 속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유 제체에 힘에의 의지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관점에 따라 혼란스러운 세계를 구성하는데 존재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우리의 사고가 구성한 것을 깨달아라.
사상가들은 의식 앞에서 정직한 답을 원한다. 의식이 실재하는 것인지, 왜 의식은 외부세계를 단호하게 배척하는지에 대해. 답은 진화론과 비슷하다. 목이 긴 기린이 살아남아 진리로 남은 것처럼 도덕도 오늘날에 목이 긴 특징처럼 진리로 남아있다. 힘에의 의지가 곧 진리다.
우리의 내적인 세계도 힘에의 의지를 유지하고 강화한다는 관점에서 구성된 것이다.
철학자란 모듯 것을 불신할 의무가 있다.
진리가 가상보다 낫다는 것은 편견이다. 가장 큰 오류일 것이다. 도덕적 열광에 사로잡혀 가상의 세계를 제거해버린다해도 진리에 남는 것이 있겠는가? 무엇 때문에 참과 거짓이라는 본질적 대립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가? 철학자라면 의문을 붙여라. 여자 가정교사들의 가르침에서 벗어날 때다.
35. 선을 추구하기 위해서만 진리를 추구한다면 어떠한 진리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 사이의 불평등이 진리이고 진리는 인간애나 인도주의에 의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인류애같은 어리석음에 얽매이지 마라.
36.우리의 욕망과 열정같은 충동이라는 실재 이외에 어떤 것도 실재로 올라가거나 내려갈 수 없다면 이 주어진 것만으로도 물질적인 세계를 이해하는데 충분하지 않을까? 물질적 세계는 우리의 정념과 같은 실재성을 가지고 있다. 생명의 초기 형태로서
우리는 의지를 작용하는 것으로서 인정하는가? 인과관계를 믿는다면 의지와 인과관계를 유일무이한 인과관계로 가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작용이 인정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의지가 의지에 작용을 가한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모든 행위는 힘에의 의지로서 작용된다는 정당성을 가진다. 이것이 곧 진리.
37. 악마는 부정되었지만 신은 부정되지 않았다.
38. 프랑스 혁명의 관객들은 분노와 열광으로 익살극을 해석해왔다. 그러면서 프랑스 혁명이라는 실상은 해석 아래 사라진다. 후대는 아마 이 과거를 오해하고 참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 것이다. 인류의 진보가 일어났다는 말 아래 그 사건 자체는 묻어졌다.
39. 어떤 학설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해서 진리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행복과 덕은 학설을 뒷받침 할 어떠한 논거도 아니다. 불행하고 악하게 만든다는 것이 반대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처럼. 지동설과 같이 괴로운 사실도 진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정신의 강함은 진리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냉정하고 명석해야하며 아무런 환상도 가지지말아야 훌륭한 철학자가 될 수 있다.
40.무한한 신은 유한한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의 수치를 가렸다. 수치심은 창조적인 것이다. 사람들이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나쁜 행위가 아닌,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깊이있는 모든 것은 가면을 사랑한다.
41.고귀한 성품과 풍요로운 영혼을 지닌 사람은 자신을 낭비하듯 돌보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데 이는 자신을 보존할 줄 모르는 행위이다. 인간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명령할 수 있는가? 자신 외에는 누구도 증인, 재판관이 될 수 없는 시험에서 회피하지 마라. 어떤 유혹이 들어오더라도 자신의 해방에 집착하지 마라. 덕에 집착하지 마라. 그래야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42.전통적인 가치를 넘어 실험하는 철학자들이 늘고 있다. 전통적인 가치에서 탈선하라.
43.이들은 진리의 친구인가? 나의 판단은 나 자신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다수와 의견을 함께하려들지 마라. 공동선이란 존재할 수 없다. 자기모순적이지 않나. 공동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은 보잘것 없는 가치밖에 없다. 위대한 것은 위대한 인간을 위해 심연은 깊은 인간을 위해 미묘함은 섬세한 이를 위해 존재한다. 귀한 것은 귀한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44.편협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자유정신이라는 명칭을 남용하는 정신들은 본능과 반대되는 것을 원한다. 그들은 민주주의적 취미와 현대적 이념을 칭송하는 노예들이며 고독을 모른다. 자신의 고독을 가지지 못했다. 용기와 예의를 갖추고 있지만 인간의 모든 불행과 실패를 낡은 사회의 탓으로 돌리려 한다는 근본성향에서 우스울 정도로 피상적이다.
그들이 얻으려고 하는 것은 가축들의 행복이다. 만인의 안락함과 쾌락의 상태! 권리의 평등과 고통받는 자들에 동정. 그것으로 고통을 근절해야 하는 가치로 간주한다.
허나 성장은 안락함과는 정 반대에서 일어났다. 성장을 위해서는 극한의 위험에 달해야하며 생명의지는 힘의 의지로 고양되어야한다. 인간을 향상시킨 것은 악이다. 가축의 소망과는 다른 극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정신이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고 어디로 이끌리는지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없다. 자유정신의 소유자들이여 규칙과 편견으로부터 해방시켜준 악들에 대해 감사하라.
종교적인 것
45.심리학자들은 영혼의 역사와 고갈되지 않은 가능성을 사냥터로 여기고 수 백의 몰이꾼과 사냥꾼을 대동해 사냥터로 나가고자 하지만, 막상 사냥이 시작되는 그 시점에서 학자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다.
시각과 후각을 잃어버린다. 이를테면 지식과 양심이 영혼에 어떤 역사를 거쳤는지 추측하려는 자는 상처받게 된다. 이 고통스란 체험들을 정리하려면 악의적인 정신이 필요하다. 허나 누가 이런 일을 대행하나. 몇가지 것을 알기 위해 스스로 세상을 정복하는 짓을 해야 한다. 자신이 할 일이 가장 많아지고 이를 하도록 만든 호기심은 가장 큰 악덕이 된다.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시작부터 희생이다. 모든 자유, 긍지, 정신이 갖는 자기 확신의 희생이고 노예로 만들어 자신을 불구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잔인함과 자기 파괴에 의해 성숙하고도 매우 나약한 양심에 요구된다. 이 신앙은 부조리와 마찬가지이며 이는 정신의 굴종을 모욕으로 느끼는 로마의 분위기에서 역설적인 것이었다. 신이란 강대하고 절대적인 존재였으나 못박힌 신이라니. 나약한 신이라니.
과거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나약한 신의 개념이 생소하고 혁명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보편적인 것이라 그러한 감동이 없다.
당시의 대담한 전도는 그리고 그 성공은 고대적 가치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의 고귀하지만 경솔한 신앙의 관용은 반쯤은 무관심이었고 반쯤은 신앙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다.
노예는 절대적인 것을 바라면서도 전제적인 것만을 이해할 뿐이며 이는 도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미워하거나 사랑할 때 고통스럽고 병이날 정도로 철저했으며 이 고통은 고통을 부정하는 고귀한 취미에 대해 분노한다. 고통에 대한 부정은 귀족적인 도덕의 한 태도에 불과하지만, 이는 하층민의 고통에 무지함으로도 이어졌으므로 프랑스 혁명이나 노예 반란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요약하자면,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고통과 희생에서 시작되는데, 이게 만연할 수 있었던 것은 고통에 대한 무감각함의 고귀한 도덕을 가진 로마의 신앙 때문이고, 이들은 자타의 고통에 무지했기에 반란과 혁명을 받아내야만 했다.
고독 단식 성적 금욕이라는 것과 연관되어서 종교적 신경쇠약이 발생한다.
의지의 부정은 어떻게 가능한가? 성자가 되는 것은? 성자라는 현상 전체의 본래 어떤 점이 인간을 그렇게 매혹시켰는가? 기적적 현상이다.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평가되는 영혼 상태가 잇달아 일어나는 것. 악한 인간이 선한 인간이 되는 사실에 기적으로 사람들을 열광시켰지만, 이는 도덕적 가치의 대립을 맹목적으로 믿었기에 발생한 일이다.
선악은 대립된 것이 아니며 어쩌면 본질적으로는 동일할지도 모르는 것인데 말이다.
따라서 기적은 잘못된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참, 진실, 사심 없음의 가치보다도 기만, 이기심, 욕정이 보다 높고 근본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다. 어찌보면 사악하고 겉보기에 도덕과 대립되는 것들과 훌륭하고 존중할만한 가치와 결부되어 있고 유사하다는 점을 본다면 둘은 대등할지도 모른다.’
불신이 민족정신에 대한 반역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어딘가에서는 그것이 민족정신으로의 귀환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북유럽인들의 기원은 야만족이니까.
‘종교란 정상인의 산물이며, 인간은 종교적일수록, 무한한 운명을 확신할수록 더욱 진실해진다. 선한 인간은 질서와 미덕이 합치되기를 바라며 사심없이 사물을 관조할 때 죽음이 역겹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라는걸 니체는 종교적인 어리석음이라고 말하며 분노했다.
사람의 본질은 야만이야!
고귀한 인간은 현세의 삶을 긍정하고 그 삶에 감사의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천한 인간은 현세의 삶에 두려움을 가졌기에 피안의 세계를 희구한다. 천한 인간의 종교 아니겠는가.
신을 향한 열정에는 조야하고 고지식하고 집요한 종류의 열정이 있다. 교회는 노처녀 최후의 허영심을 성녀로 간주했다. 분수넘치는 은총을 받거나 승격된 노예의 예시 아니겠는가. 그런 품격없는 자들이 성자 성녀라니. 우스운 일이다.
권력자들이 성자에게 머리 숙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은 그 가냘픈 외모에서 자신들을 억압하고 시험해보려는 힘과 의지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성자를 존경했을 때 그들 자신에게 존재하는 강한 힘과 지배자의 쾌감을 존경했다. 그리고 금욕주의자 앞에서 두려움을 느꼈다. 그들이 가진 힘에의 의지라는 정복되지 않은 적을 감지했다.
인간은 신을 숭배하면서 자신들이 정상에 서게 만든 조건들과 미덕을 숭배한다. 민족의 기쁨과 자신이 가진 힘을 어떤 존재에 투사하여 감사한다. 이 신은 선악도 있고 친구가 되기도 적이될 수도 있다. 선하기만 한 신은 악을 거세한 것이다. 분노, 복수, 질투, 조소, 간계, 폭력을 알지 못하는 신이 무슨 소용인가? 파괴와 승리의 열정조차 모를 신이. 가장 이로운 것이 복종일 때 그 신은 어떻게 변하겠는가? 음험한 위선자가 되고 겁쟁이에 영혼의 평화를 가르치나? 덕목의 동굴로 기어 들어가 도덕이나 설교하겠지.
무신론은 신이 부정되었기에 나타났다. 신에 대한 불신이다. 종교적 본능은 남았는데 이는 인격신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로 충족되지 않을까.
영혼은 신과 마찬가지로 증명될 수 없으며 가상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사유작용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종합물이다. 고대마법사들은 그렇게 생각했으며 사고가 되는 기억과 종합체야말로 스스로를 구성한다고 굳게 믿었으나, 이후 영혼의 존재가 발견되었다.
종교적 잔인성. 사람들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바쳤다. 그것은 아들이었겠지. 가장 강한 본능이자 자연적인 본성을 바친 금욕주의자들은 눈을 빛낸다. 마지막 단계에 바칠 것은 무엇일까? 응? 최후의 희생물은? 신 자체를 제물로 바치고 자신에 대한 학대로 돌맹이나 어리석은 따위를 경배해야 하나? 이런 날이 올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은 과거에 존재하고 지금도 존재하는 그대로를 다시 받아들이려고 한다.
인간을 둘러싼 공간은 그의 정신적 시선과 통찰력에 비례하여 증대한다. 그의 세계는 보다 깊어지며, 새로운 형상이 그의 시야에 들어온다. 눈이 본 것은 정신이 자신을 연마하기 위한 계기에 지나지 않았으며 보아온 신과 죄 같은 장엄한 개념들, 그것을 위해 싸우고 고통받았던 전쟁도 대수롭지 않을 것이다. 노인은 새로운 장난감과 고통을 필요로 하는 아이이자 영원한 아이이다.
종교생활에는 여가가 필요하다. 이는 노동이 몸을 더럽히는 것이며 몸과 영혼을 비속하게 만든다고 여기는 귀족적 감정에 전혀 낯설지 않은 여가를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부지런함을 가르치는 현대는 불신앙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들은 종교적 관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독일의 학자는 종교에 대해 우월감을 보이며 경멸도 보낸다. 종교적인 인간을 보라.그들은 자신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고 단순한 확신 속에서 얼마나 많은 순진함과 존경할만한 우둔함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은 이념과 근대적이념의 천민이고 수공 노동자에 불과하거늘.
피상성의 깊은 지혜. 삶을 왜곡되고 빈약하게 되고 피안적인 것, 신격화된 것으로 보기를 바라는 정도에 따라 얼마나 삶에 괴로워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들로 하여금 종교적 해석에 매달리게 만든 것은 염세주의에 대한 깊은 의혹과 공포다. 진리의 전도의지와 허위를 지키려는 의지는 공포다. 가장 철저한 왜곡에 대한 경배와 도취이다. 경건함이라는 수단으로 선한것이 될 수 있기에 더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인간은 사실 이기적이고 보잘것 없는 존재이므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은 고귀한 존재인 신의 뜻을 충족시킬때만 가능. 그러니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얼마나 혀를 더듬거렸을까. 그는 가장 성스러운 자로 남았지만 추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으로써 길을 잃고야 말았다.
철학자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이므로 인류발전에 책임을 느끼는 자다. 사람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면 종교나 정치 경제도 이용할 작자들이다. 지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종교는 지배자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다.
종교는 피지배자들에게 장차 지배할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금욕주의와 청교도주의는 천민 혈통도 위로 나아갈 기회를 제공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복종을 고상한 것으로 만들고 동류의 사람들과 행복과 고통을 나누며 비천함과 짐승같은 빈곤을 밝게 미화하고 정당화한다.
고통을 유쾌하게하며 순화시키고 이용해서 성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천한,가장 비천한 사람들로 하여금 경건함을 통해 가상적인 질서 안에 가두어 고통에 만족하도록하는 기술이다.
종교가 여러 수단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자체가 궁극목적이 되려고 한다면, 그 값을 치루게 된다. 종교는 약한, 고통받을 자들을 위한 종교로 원칙을 삼고 그들의 편에 서게 된다. 그러면서 몰락해야 마땅한 것들을 너무 많이 보존하게 되었다. 인종을 열악하게 만들었다. 강자를 좌절시키고 아름다움에 기쁨을 느끼는 것마저 죄악시하는 이상한, 정복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고귀한 정신에 자기 파괴라는 왜곡을 집어넣었다. 그들은 숭고한 기형아를 만들었다. 자발적인 쇠퇴와 퇴화의 길을 걸은 것이다.
이들은 인간을 형성하는 예술가가 될만큼 고상하지도 가혹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고상하지도 않은 인간이면서 신 앞에서의 평등이란 이념을 수단으로 유럽의 운명을 지배해왔다. 오늘날의 유럽인은 병약하며 범용한 인간들을 양성한 것이다.
잠언과 간주곡
63. 남을 가르치려드는 녀석들은 자기 세계에 갇혀있는 법이다. 세상이 넓음을 안다면 어찌 내가 남을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저들의 고유한 자아가 나로부터 깨닫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고유한 자아로부터 스스로가 자라나는 것이지. 나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64. 도덕은 인식 자체를 위한 인식을 한다. 이것을 옳다고 만들기 위해 다른 것이 옳다고, 고집을 세우는 도덕의 늪이다. 도덕은 절대적이지 않다. 무조건적인 복종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절대성이다.
65. 참된 인식에 이르고자 한다면 수치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남들이 비웃고 무시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매력이며 올바른 인식을 주장하는 자세다.
66. 신은 자신의 의기양양함에 부끄러움을 느끼는가?
67.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은 야만적이다. 왜냐면 그 밖의 모든 이는 무시되기 때문이다. 이는 정의와 올바른 인식에 반하는 것이다.
68. 자신이 잘못했다고 기억이 말하더라도 자부심은 내가 하지 않았다고 고집을 세운다. 결국 기억이 고집에 굴한다. 그것이야말로 추한 행위인데 말이다.
69. 과보호는 지키는 것이 아닌 죽이는 것이다.
71. 별을 위에 있는것으로 보는 것은 인식이 부족한 것이다. 별과 땅은 서로가 각자의 현상이지 어느 것도 위에 있지 않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기에 어느 것도 지구의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72. 누구나 고귀한 감정이 일시적으로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오래도록 지속하기는 어렵다. 고귀한 인간은 그 감정을 평생 가져갈 수 있다.
73. 자신의 이상에 도달한 자는 자신의 이상마저도 넘어선다. 지속적인 단계의 초월, 인간의 고양이다.
화려한 사람은 자신을 지켜보는 눈 앞에서 꼬리를 감춘다. 이것이 공작의 자존심이다.
74. 천재성을 가진 인간은 마음의 정결함과 감사함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성욕의 정도와 성질은 정신의 꼭대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호전적인 인간은 평화시 스스로를 공격한다.
78.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은 자신이 경멸할 점을 알고 부끄러워하며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지만 경멸할 점을 알지 못하고 남에게 경멸을 퍼붓는 자는 자신에 대해 근거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렇게 말해겠다. 경멸과 혐오야말로 진정한 존중과 사랑을 낳을 수 있는 원천이라고.
79. 사랑받으면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저열함을 바닥에서부터 드러낸다. 모티브가 그러하지. 자신 영혼의 밑바닥에 있는 침전물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너 자신을 알라. 이는 객관적으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에 대해 관심도 애정도 갖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분명하게 해명된 일은 관심을 끌지 못하므로. 소크라테스는 사람을 해명하며 인간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애정도 갖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진리 속에서 무지함으로써 죽는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갈증으로 죽는 것만큼 비극적인 일 아니겠는가.
집에 불이 났을 때는 밥먹는 것조차 잊어버리지만 불이 꺼지고 나면 잿더미 위에서 밥을 먹는게 사람이지.
개인에 대한 허영심의 배후에 존재하는 것은 여성 자체에 대한 비개인적 경멸감이다.
개인의 명예에 대해 허영을 부리더라도 그 자체에는 비개인적 경멸감을 내포하므로 허영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87. 감정을 통제할 줄 알면 정신이 자유로워진다.
88. 영리한 인간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불신한다.
90. 우울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함으로써 자신을 일시적으로 유쾌하게 한다.
93. 상냥한 사람에겐 증오가 없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극심한 경멸이 숨어 있다. 상냥하게 대해야 할 인간 중 하나로 보고 있기에 상냥함에는 인간에 대한 경멸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94. 성숙이란 삶의 고통과 고난에도 인생을 긍정하듯 유희하며 사는 것이다.
95. 도덕은 허구이므로 진실함과 정직이라는 도덕규범에 입각하여 그러한 도덕에 충실한 것을 부끄러워하게 된다.
97. 덕의 연기자가 되지 않으려면 사후에 유명해져라.
양심은 깨물면서 입을 맞춘다. 고통을 주면서 쾌감을 느낀다.
나는 반향을 듣고 사상에 호응하면서 같이 실현하는 태도를 바랬지만 찬양하면서 함께 실현하려하지 않는 태도에 환멸을 느꼈다.
사람들은 단순한 사람을 어리석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지지 않으므로 스스로를 단순하게 만들어 휴식을 취한다.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과거의 고통과 불행도 자신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필요했던 것이라 여기며 사랑한다.
그리스도교인이 우리를 화형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닌, 무력함 때문이다.
강한 성격은 때때로 어리석은 의지가 된다. 일단 결단을 내리면 아무리 옳은 반론이 제시되더라도 귀를 닫는다.
도덕적 현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상에 대한 도덕적인 해석만이 존재한다. 세상 어디에 도덕적인 사실이 존재한단 말인가.
허영심에 큰 상처 입는 때란, 우리의 긍지가 상처를 입었을 때다.
관조하는 이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지만 신앙인은 세상을 경멸한다.
사랑에 대한 엄청난 기대와 기대 속의 부끄러움은 여성의 보는 눈을 망친다.
열정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다른 열정에 대한 의지로 옮겨붙는것 뿐이다.
여자는 사랑과 증오가 개입되면 범상치 않은 일을 저지른다.
찬미에는 시기와 질투가 있다. 이러한 것이 없는 순수한 찬미는 찬미받아본 적이 없는, 받을거라 생각하지 않는 자의 것이다.
122. 훌륭하지 않은 인간이 칭찬을 바라는 것은 허영심이지만 훌륭한 인간이 칭찬을 바라는 것은 겸손함이다.
125. 어떤 사람에 대한 견해를 바꿔야할 때 갖게 되는 불쾌감을 전적으로 그 사람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추상적인 진리는 감각에 의거하여 설명하는 엉터리가 된다.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이상을 갖지 않은 사람보다 더 경박하고 파렴치해진다.
저열한 인간들이 고귀한 인간의 덕을 악덕이라 비난한다면 자신의 미덕 때문에 처벌 받는게 낫다.
질투: 난 저 사람이 마음에 안들어. 왜? 내가 저 사람에 미치지 못하니까.
걱정 마, 넌 마음에 들거든.
식욕과 성욕이 있기에 사람은 스스로를 신이라 여기지 못하는가. 식욕이 있어 살을 저지르고 성욕이 있어 생을 범하므로?
참된 사랑에서는 영혼이 육체를 감싼다.
도덕의 기원은 가장 잘하는 일이 가장 하기 어려운 일로 인정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이 허영심.
과거에 선이자 이상으로 여겨진 것이 후세에는 악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공격성과 호승심은 옛날에 덕이었을 것이다.
재능을 갖고 재능에 대한 그대들의 허락도 구해야한다. 그렇지 않나 친구들이여?
이의 탈선 불신 조롱은 건강의 징조이고 맹목적인 추종은 병적이다.
광기는 개인에게는 드물게 일어나나 집단 당파 민족 시대에서는 통상적이다.
우리 내면의 가장 강한 본능에는 양심과 이성도 굴복한다.
우리는 좋은 일이나 나쁜 일에 갚음을 하지 않고 약자에게 공격성을 분출한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것은 우리의 이웃이 아닌, 이웃의 이웃이다. 적의 적은 아군 ㅋㅋ
예수는 악한자를 사랑하고 악한자를 벌하는 자에게 비판을 했다. 도덕의 파괴인 것이다.
칭찬은 비난보다 주제넘게 나서는 것이다.
동정이란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란 어떠한 고통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는데 무엇이 연약하게 보인다는 말인가.
인간이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그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공리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기호를 운반해주는 차량으로서만, 유용성으로만 공리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 바퀴가 내는 소음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할텐데.
타인의 허영심이 비위에 거슬린다면 그것은 우리의 허영심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에게도 어리석은 면이 존재한다. 반대도 마찬가지.
저주하는 자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이 인간적이다. 인간의 본성은 타락과 야만이므로.
악의처럼 보이는 오만한 선의. 이것이 프루겔.
네가 나를 속였다는 사실보다 충격적인건 내가 너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야.
희생을 미화하지 마라. 그들은 이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고귀한 인격을 가진 자라면 희생하지 않는다. 나의 세계는 나다. 세상의 중심이 나라는 자아를 잃어서는 안된다. 그런 이가 남을 위해 희생한다. 스스로를 추하게 보았다는 것인가? 스스로를 더욱 경건하게 맞이하지 못한 미숙한 자아 아니겠는가?


자유시장에서 시장이 견딜만 하기만 한다면 어떤 폭리를 취해도 괜찮은 것인가?
여기서는 법과 사회의 역할이 어떻게 기능되어야 하는지의 문제가 따른다. 정의를 묻는 질문이다.
여기서 어려운 이를 상대로 폭리를 취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탐욕이자 악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미덕을 내세우면서 탐욕에 대해 정부가 나서 처벌한다니?
누가 미덕이고 악덕인지를 판단한단 말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 미덕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각자 좋은 삶을 선택하는 것? 자유
사람들은 정의에 선택뿐 아니라 미덕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정의에는 번영의 열매를 어떻게 분배하고 기본권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행복과 자유라는 사고 하에서.
실패한 이에게 세금을 쓰는것이 올바른가?
그들에게 그러한 자격이 충분한가?
정의란 영광과 권리 의무와 부를 어떻게 분배하느냐이다.
하지만 누가 그러한 몫을 결정하고 자격을 따지느냐는 복잡한 문제이다.
도덕적 추론은 도덕적 신념을 가리는 수단이자 우리가 어떤 생각을 왜 하는가를 이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도덕적 신념은 가정교육이나 신앙으로 정해져있다. 이것을 어떻게 설득하느냐.
공리주의적 도덕.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는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보아라. 거지 100명을 위해 부자 1명을 희생해서 행복의 총합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거지100명에게 부자 1명을 희생시킬 권리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도적떼나 다름 없는 짓이다.
공리주의는 이러한 약점을 안고 있다. 그 다수에게 행복이 더 떨어질지라도 그것이 마땅히 받아야 할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인가를! 단순히 다수의 행복만이 진리라고 여길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도덕적 가치(쾌락이나 손실도 포함해서)를 계량하거나 비교하는건 지극히 애매모호한 짓거리이다. 각자의 주관에 맡겨져 있고 우리는 이를 비교해 합리적인 결과를 내려는 접근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접근할 방식은 그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득을, 왜 그런 생각을 해야하는지를 바꾸어 이끄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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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개인의 성공에 대해 행운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개인의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내가 운 좋게 좋은 가정과 환경을 만나서 성공했다고 해도 그것이 사회에 되갚아야 할 행운적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최소한 부여된 노력과 실패했을때 사회가 갚지 않는다는 현실쯤은 그들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걸 행운이란 것으로 먹칠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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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상주의
다수의 이익에 관련되어 있더라도 개인의 소유를 강탈할 권리나 자격은 없다.
이들에게 있어 정의란 자유의 존중이다.
인간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으나 물건 취급 받아서는 안되며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 -칸트
아이의 출산과 전쟁의 수행같은 행위에 대리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어떤가? 시장은 돈으로 미덕과 의무조차 사버렸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샌덜은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정의이냐? 흠.
즉 권리를 존중할 것이냐 공리를 존중할 것이냐의 문제로 돌아가지만 있는 현실을 놓고 보자.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도덕을 결정한다. 저들은 무언가 정해진 도덕을 찾고 있었지만 일어나는 현실은 그러하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옳아보이는 주장이더라도 그것은 마음에 와닿지 못하면 실행되지 않는다.
그러니 도덕을 세우고자 하는 사람이 건드려야 할 부분은 내용이 아닌 설득.
자유의 권리는 돈으로 팔 수 없다고? 그것 자체에 옳고 그름은 없다. 실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게 세상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 다시 샌덜의 주장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샌덜은 미덕조차 사는 것이 정의인가에 물었지만 이는 개개인마다 해석이 다를 수 밖에 없고 세상을 이끄는 도덕 하에 벌어진 일일 뿐이라고 보아야한다. 그 자체에 보편적인 도덕은 없다.
칸트-도덕이란 인간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 우리에게는 이성적 능력이 있는 자율적 존재이기에. 이성은 자유로 이어지고 이것이 동물과 다른 이유라 말한다.
나는 부정하지만.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 최선의 결과가 아닌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결과가 아닌 내재된 동기에 의해 옳음이 정해진다.
의무에 의한 도덕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그것에 개인을 도덕으로 이끈 그 쾌락이 목적이라면 도덕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궤변이지. 도덕이란게 절대적으로 그걸 따라야 할 가치가 정해져 있어야만 그게 성립하거든. 목적론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
의무대 쾌락. 자율대 타율. 정언대 가언. 도덕 자유 이성
도덕원칙은 경험한 사실에서만 나올 수 없다.
이성이라는 관념.
관념이지만 거기에는 현실성이 있다. 집단적 동의라는 상상의 행위가 모든 공공법의 정당성을 판가름하는 잣대로 헌법이 되었다. 이것은 기본권 결정에 끼어들어버린 공리주의이다.
진정으로 공정한 헌법이라면 개인의 자유와 만인과의 조화를 이루도록 힘써야하는데 공리의 극대화와는 방향성이 다르다.
공리는 애초에 정의의 권리와 기초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사회적인 계약에 서명한 적도 없는데 왜 법을 따르는가?
무슨 합의를 거쳐 국가는 설립되었는가?
존 롤스는 우리가 암묵적으로 합의했다고 한다. 정의를 고민하는 올바른 방법은 평등한 상황에서 어떤 원칙에 동의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이라고.
사회계약이란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가언합의이다.
사회는 이 계약을 준수하는 정의의 원칙으로 기본 자유를 모든 시민에게 평등하게 제공해야하고 이는 공리나 행복보다 앞선다. 또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이익을 어려운 이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원초적으로 돌아가서 의무는 합의에서 생기는것인가?
이익과 결과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생기는가?
계약은 당사자의 자율을 포함한다. 그리고 상호 이익이라는 호혜원칙이 실행되면서 도덕적 무게를 갖는다. 그 두가지를 성립시키고서야 도덕적 의무라는게 거론될 수 있다.
무지의 장막이란 그런 것을 고려하여 원초적인 평등. 각자가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입장을 내려놓고 정한 사회구조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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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린 답은 다르다. 이들은 평등을 그렇게나 정의의 원칙으로 간주하지만 현실에는 평등하지도 않다. 가정의 부와 개인의 능력과 같이 어쩔 수 없는 불평등적인 요소까지 평등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사회적 생리를 무시하고, 진리를 덮어 놓고 새로운 답을 찾으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세상은 평등하지 않다. 평등하지 않다는 것 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기회의 평등은 주어져야겠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문은 열려야하니까. 그걸 억압하는 것은 잘못된 의지니까. 하지만 이러한 기회를 열어주더라도 우리는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이 능력이 뛰어나 더 많은 몫을 가져간다? 어쩔 수 없다. 그 부와 재능을 탐내 빼앗거나 불구로 만들어서는 안되지 않나?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 그들은 능력껏 타인을 지배하려 들어야하고 무능하고 지배할 의지가 없는 자는 지배당해야 한다.
이걸 인위적으로 도덕적 자격을 거부한다거나 재능은 네 몫이 아닌 환경과 운에 타고난 것이라고 씌우는 것은 거짓이다. 그것을 분배해야할 원칙은 어디에도 없다.
운을 타고났다. 그렇게 말하지만 생존의 우연성 아닌가.
허울이라는 평등의 가치에 매몰되어 있는 것이다.
현실에 이루어지지 않는 평등을 인위적으로 지키려는 행위는 상당히 거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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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무지의 장막에서 사회 규칙이 성립되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입장을 내려놓고 시비를 가리는 것이 공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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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말이야. 사람들은 제멋대로 정의를 생각하거든. 영광 미덕 선의. 그 끝도 없는 의견차를 하나로 통합해서 진리라 말할 수는 없어. 아무리 올곧은 소리를 지껄인다 해도 그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폐기되는 거야. 소수자를 배려한답시고 소수자 우대정책을 만들어도 그건 정의라고 할 수 없어. 진리와는 더욱 거리가 멀지. 힘에의 의지를 관철하는 하나의 시도라고 말할수는 있겠네.
대학이란게 뭐야. 훌륭한 인재를 육성시키기 위한 교육 기관이지. 그렇다면 인종에 상관없이 훌륭한 자질을 보이는 학생을 끌어들이고 훌륭한 교육으로 사회에 내보내면 되는거야. 그 훌륭한 자질을 보이지 못한 이들이 여자거나 피부색이 다른건 그들을 받아들여야 할 근거가 되지 못해. 무능한 이들을 받아들이는 거야 말로 부패야.
//
아리스토텔레스
정의는 목적론에 근거한다.
정의는 영광을 알려주는 것이다.
플루트를 줄때 부자나 잘생긴 사람이 아닌 최고의 연주자에게 내려주는 것과 같다.
어쨌든 목적을 정하는 방식이 정치가 하는 일이다. 누가 통치권을 쥐고 정치권력은 어떻게 분배하는가?
정치의 목적은?
시민의 미덕을 키우는 것이다.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개발하게 만드는 것,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길러 시민 자치에 참여하는 것.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덕은 행동으로만 획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미덕이 깃든 행동을 하다보면 사람에 미덕이 깃든다고 했다.
선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이 이성적이고 진실한 상태이다.
//
이건 동의한다. 신념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행동 뿐이듯이 미덕 역시 행동으로 쟁취해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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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목적은 우리의 본성을 표현하고 인간의 능력을 펼쳐 보이는 것.
이번장을 요약하면 정의란 목적에 근거해야하며 그에 따르는 영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광이란 타인, 대중의 인정 정도가 될 것이다.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자연적인 인간의 의무와 합의의 의무만이 존재한다.
자연적 의무. 보편적이고 합의가 필요 없다.
자발적 의무는 보편적이지 않고 특수하고 합의가 필요하다.
연대의무 특수하고 합의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역사를 공유하는 존재이며 합의의 필요 없이 떠안을 도덕적 책임이 있다.
가족의 의무와 같은거다. 애국심? 그런건 다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도덕적 행위자로서 어떠한가?
자발적인가 서사적인가?
칸트와 롤스는 정의를 위해 목적을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에게 있어 좋은 삶과 같은 목적은 정의를 고려할 때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옳다고 여길지라도 선택은 그러하지 않다. 도덕이란 실질적으로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총정리하자면 정의를 바라보는 입장은 다양하다.
공리주의자
자유를 존중하는 것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하는 것
작가는 세번째이며 특히 공동선을 원한다.
도덕에 기초하는 정치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상호존중을 바탕으로한 정치를 원한다. 도덕적 이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상호존중의 토대를 강화시키고자 한다.
도덕에 기초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걸 모르겠다.
그것이 도덕적인가는 누가 결정하는가.
정치의식에 도덕이 끼어드는게 말이나 되는가?
무능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정치가 하는 일은 몫을 나누는 것. 그 과정에서 희생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민들이 희생과 봉사를 추구하는 것은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희생이라니. 그건 미덕이 아니다.
정치의식이 개인의 도덕으로 주장된다는 것은 궤변이다.
정치란 규칙을 만드는 것에서 그쳐야한다.
롤스가 말했던 것처럼 모두의 입장으로부터 격리된 가언합의와 같이 구조를 만드는 입장에서 행해야 한다.
내 입장은 세번째지만 공동선을 고민하는건 아니다.
그것은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함이며 타인을 위하겠다는 위선은 끼워넣을 수 없다.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내가 결정하는 미덕이 선이다.
***
공정하다는 착각
배분은 개인의 도덕적 가치와 무관하다.
생애 초기의 우연성은 도덕적 관점으로 봤을 때 자의적이다.
특정한 능력 미덕 도덕적 자격등을 인정하는 정의의 원칙은 좋은 삶의 개념주장들에 대해 중립적일 수가 없다.
이는 우리가 만든 재산권 제도는 도둑을 처벌하기 위함으로 세워진게 아니다.
효율성과 정의에 근거하여 재산 관련제도를 수립한다.
철학적인 정의의 원칙은 능력 미덕 도덕적 자격을 고려하지 않고 정립되어야한다 롤스
옳음이 좋음에 앞선다. 사회를 다스리는 의무와 권리의 틀이 틀 안에서 사람들이 각자 따르는 미덕과 좋은 삶의 개념에 앞선다.
도덕적 자격 위에 정의를 세워서는 안된다. 정의에 대한 고려는 능력과 미덕에 대한 것보다 앞서야 한다.
능력주의적 성공관은 도덕적 유대관계를 뜯어내버렸다.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어야 한다.
인정과 존경으로 능력주의를 타파한다.
능력주의의 시작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믿으면 우리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이는 공동의 민주적 프로젝트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눈돌리게 만든다.
공동선이 목적과 수단의 필요로만 고려된다면 공동의 삶에 무관심해진다.
엘리트끼리 모아두지 말고 다른 삶의 시민들을 공동의 공간에 만날 것을 요구해라. 사회가 우리 재능에 준 보상은 행운 덕이지 업적 덕이 아니다. 이런 태도로 기인한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놓은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근데 의문 실제로 성공 윤리에 대한 갈등이 존재는 하는가?
패배자들의 싫은 소리를 지나치게 신경쓰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타당한가?
그는 평등이란 본질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평등이란 자신보다 잘난자를 끌어내리고 못난자를 무시하는 것.
스스로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개념에 불과하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가치에 대해 무시한 채 공동선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엘리트들에게 겸손하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평등에 대한 관점을 강조해야하지 않았을까. 그가 위하는 것은 공동선이 아닌, 평등주의자의 불합리로부터 생존하는 법을 가르쳤음이다. 본질적인 평등을 위해 무언가 대책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사회가 만약 능력 향상을 위한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그 책임이 게을렀던 본인에게 온전히 적용되는 시스템이 나온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천부적인 재능이 절대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편이다. 방법과 효율의 차이다. 무능한 자는 유능해질 수 있다.
>조금 더 읽고 평가를 수정하자면 역겨운 위선이 느껴진다.
공동선? 이딴 개소리를.
그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변화도 만들지 못하는 이야기를 떠벌였다.
엘리트들이 겸손해지라고?
겸손해졌다고 치자. 근데 그게 문제의 해결법이야?
자신이 인지하고 있던대로 능력주의는 그대로 유지되고 무능한자는 무능하게 남아있다.
어떤 것도 바뀌지 않는데 사람들더러 겉으로 배려하듯 굴라고 말한다.
이런 무능이 다있나.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잖아.
해결책을 제시해야지 무슨 비위 거슬리지 말라는 소리를 하고 있어.
눈가리고 아웅이다.
![[세트] 공정하다는 착각 + 정의란 무엇인가 - 전2권](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53/70/cover150/k022735149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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