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감상
2024-12-18 23:06:44
언뜻 생각했던 것과 달리,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이 소설의 주요 사건이 아니었다. 이 소설의 주요사건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인해 주요인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다. 여섯명의 주요인물들, 동호, 정대, 은숙, 진수, 선주, 동호 어머니가 각각 어떤 고통을 겪는지를 주인공 또는 관찰자 시점으로 드러내고 있는데 그 심리적 묘사가 두드러진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감정이입 돼 함께 아파하는 사람, 고통을 없애고자 도움을 주려는 사람, 그 인과관계를 밝히려는 사람, 아무 관심 없는 사람, 똑같은 고통을 겪지 않아 안도하는 사람, 그 외에도 다양한 반응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 여섯명의 인물들이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며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감정적으로 행동한—표현을 빌리자면, 양심에 따라 행동한 그들이 안타까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동하는 양심'은 그 결과로 올 수 있는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순간적인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것과는 종류가 다르다. 범인凡人에게 그것은 너무나 어려운 것이고 강요되어서는 더더욱 안되는 것이다.
전두환—개인 전두환이 아닌 시대로서의 전두환—은 살인마다. 살인마가 나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피해자가 내 친구나 가족이 죽임을 당한 상황에서 참지 못하는 심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살인마를 직접적으로 막거나 제압하려고 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현명하지 못했고 그래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이고 그래서 아름답다.
이 소설의 훌륭한 점은 바로 그러한 측면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얄팍한 현명함으로 가득차 있는 이 시대에 정면으로 맞서, AI와는 구별되는 우리의 '인간성'은 무엇인지 그 아름다움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묻고 있는 듯하다.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그 물음에 스스로 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