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감상
2026-01-02 00:59:56
어떤 소설을 읽고 화가 난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의 무엇이 나의 마음을 그렇게 답답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들인 싱클레어와 데미안과 에바 부인은 이 소설 속에서 ‘아벨을 죽인 카인의 이마의 표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이들은 기존의 당연시되는 관념 속이 아니라 의심을 바탕으로 쌓은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끊임없이 깨어지고 새로 만들어지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내용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 아마도 이 소설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아래의 문구일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이 메타포를 이어 나가자면, 알이라는 세계는 오직 한 마리의 새가 있을 뿐이다. 즉 알 속의 새는 다른 알 속의 새와는 철저히 차단돼 있다는 데 그 개념적 한계가 있다. 세계라고 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 자아가 놓인 공간이며, 그것은 ‘나’가 아닌 대상과 특히 다른 주체, 즉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 것이다. 비유컨대 자신만의 방에서 나왔을 때 여전히 자기 혼자만 있다면, 좀 더 큰 자신만의 방으로 옮겼을 뿐이라 세계로서의 의미는 무색해진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식의 자기 자각과 그 초월은 스스로 ‘나’라고 하는 틀 안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물론 이러한 삶의 방식에 스스로 만족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내가 이 소설에서 마음이 답답했던 것은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으면서, 마치 그 안에서도 외부 세계를 꿰뚫어 보고 심지어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과대망상이다.
내가 다소 과격하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나 스스로 카인의 표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난 20여 년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주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은 필요하다. 특히 정체성도 구매하여 장착하는 이 시대에서는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나는 늙어서 자기 고집만 피우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가 되고 싶지는 않다. 알을 깨고 나온 아기 새는 이제 자라나 다른 새와 함께 놀고 또 다른 어린 새들도 돌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