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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lfish Gene』 감상

by 테오2026-01-02 08:35:31
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The Selfish Gene』를 읽으며 내가 도달한 핵심은, 이 책이 유전자를 최종 목적이나 주체로 세우는 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부분에서 도킨스는 진화를 유전자 관점에서 설명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그 유전자마저 일반화하며 진화의 핵심을 ‘복제’라는 과정으로 옮긴다. 유전자는 목적이 아니라 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기제이며, 복제·변이·존속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진화는 성립한다. 그래서 진화는 생명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의 언어, 관습, 기술, 사상 같은 문화까지 포함하는 더 넓은 원리가 된다.


이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개체 그 자체가 아니라, 개체의 활동이 남기는 반복 가능하고 변형 가능한 흔적이다. 인간은 어떤 계획의 산물이 아니라, 유전자와 문화가 오랜 시간 복제되며 이어져 온 흐름 위에 놓인 하나의 지점일 뿐이다. 삶의 의미는 미리 주어진 목적에서 나오지 않고, 그 흐름 속에서 무엇이 이어질 가능성을 남겼는가로 이동한다. 이는 자식을 남기지 않는 삶에도 충분한 의미의 자리를 열어 준다.


이러한 관점은 고통을 해석하는 방식도 근본적으로 바꾼다. 목적을 전제로 한 세계관에서는 고통이 실패나 잘못된 선택의 증거로 읽히기 쉽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묻게 된다. 그러나 진화를 목적 없는 복제의 과정으로 이해하면, 고통은 어떤 목표에서 벗어났다는 신호가 아니라 이 세계가 작동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마찰이 된다. 고통은 제거되어야 할 예외가 아니라, 세계와 실제로 접촉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표시가 된다.


또한 이 관점은 고통을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이동시킨다. 고통이 삶 전체의 실패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삶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채점할 필요가 줄어든다. 대신 시선은 “이 고통 속에서도 내가 반복하고 있는 태도와 행동은 무엇인가”로 옮겨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결과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이 세계의 흐름에 참여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고통은 삶을 부정하는 판결이 아니라, 무엇이 끝내 남고 반복될지를 드러내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볼 때 『The Selfish Gene』는 유전자에 관한 책을 넘어, 존재와 의미, 그리고 고통을 다루는 시선을 조용히 재배치하는 책이다. 삶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의 과정이 되고, 의미는 사전에 주어지지 않지만 그만큼 열려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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