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먼지님의 블로그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다드라마보다 더 허무한 결말.. 윌리엄의 추리가 사실은 우연히 맞아떨어졌던거고, 세상의 질서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진리는 쓴 뒤에 걷어차는 사다리와 같아야한다는 것. 호르헤처럼 영원함과 무한한 신뢰는 곧 집착과 은폐를 부르고..
절대자가 무와 같다면 세상의 기준은 어떻게 찾아야할까? 지붕에 올라간 뒤 사다리를 걷어차라는데 그곳이 지붕인 줄은 어떻게 알까? 자연 앞에서 길을 잃고 무의미해지는 사람의 논리와 이성이 허무해서 슬프다


가끔 가장 부끄럽고 어렸던 때의 나(주로 고등학생 시절)를 떠올리면서 몸서리치고 앓던 때가 있었다. 이 책도 스스로를 감추던 주인공이 부족함과 마주하기로 결심하게 되는 소설. 소설 배경인 대구가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때 나도 대구 수성구를 탈출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죽어라 공부했었는데… 대구에 있으면 그 특유의 답답함에 숨막힐 때가 있다. 탈출한 뒤로 느끼는 공허함도 만만치 않다. 이 두 가지 감정 자체가 20대 초반 내 삶의 테마를 결정해버린 듯할 정도로.


근시의 사랑 모음집
...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것이 바로 인터내셔널이오.


로고진의 집에는 죽은 그리스도의 그림이 있다. 그리고 그 그림에 오버랩되듯 ‘러시아의 그리스도’는 정신적 죽음을 맞이한다. 삶을 향한 정열도, 사회를 향한 순수함도 모두 빨아들이는 한여름의 어둠은 섬뜩하다. 그의 집은 곧 무덤과도 같다.
우리 사회가 합리성과 이성을 바탕으로 발달해온 것은 자연의 법칙인가, 그리고 그 끝은 초월적인 사랑과 연민도 무마시킬 정도로 어두울뿐인가? 책을 덮고난 뒤면 질문들만 남는다


18년 전 유괴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추리물. 등장인물들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할 때마다 눈동자가 붉게 변하며 서스펜스를 조성한다. ‘나만이 없는 거리’는 키요에겐 가정폭력에서 멀어진 상태를, 주인공 사토루에겐 스스로의 희생이 만들어낸 친구들의 안위를 뜻한다. 범인의 서사가 좀더 촘촘하게 설계됐다면 완성도가 한층 더 높아졌을 듯…


홍보 대비 생각보다 실망했다. 영화 중 강동원과 박정민의 관계성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랑말랑하는데, 흘리면 자존심 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특히 박정민, 강동원, 정성일 셋이서 칼춤 추는 장면은.... 뭘까...? 솔직히 좀 웃겼다. 전과 란이 한 곳에 모여 휘말린다는 의미인가...? 계급 사회의 부조리함에 화를 내야 할지, 두 사내 간 계급을 뛰어넘는 브로맨스에 감동을 느껴야 할지, 영화의 정체성도 묘하다. 감동 속에서 화도 잠깐 났다가 황당함에 가벼운 웃음이 새어나오는 느낌...


소설만큼 재밌다. 그치만 아무래도 소설이 더 재밌다. 찰진 말맛이 더 살아있음.


땅 속 깊은 곳. 지상의 어둠보다도 더 어두운 탄광 속에서 사는 검은 사슴. 구석진 화전마을 연골에서 도망친 의선과 닮았다. 검은 사슴의 꿈은 햇빛을 보는 거지만, 이를 위해 끊임없이 도망쳐야 한다. 빛나는 뿔과 이빨이 뽑히기 전에, 햇빛에 붉은 물로 녹아버리기 전에, 족제비나 사냥꾼에게 잡히기 전에. 어둠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빛을 보면 녹아버리는 검은사슴의 운명을 닮은 사람의 이야기다. 역시나 너무나도 처절하고 필사적이라 아프다.


정말 아프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슬픈적은 오랜만이다. 눈이 내리면 산속 어딘가에서 두런두런 세상 가장 어두운 곳으로 하강하는 경하와 인선의 말소리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쓰러진 인선 위로 경하가 촛불을 들고 눈을 닦아내며 바라본다. 그 위로 소리없이 눈만이 내리는 그 마지막 장면이 소설을 다 읽은 머릿속에 남는다.


거짓말 맞추기 게임은 나도 해본 적 있다. 물론 소설과 같이 어릴 때 자기소개 시간때였다. 하지만 암묵적 약속에 따라 어느 누구도 무거운 얘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우와 아저씨는 눈오는날 트럭에 탄 채 거짓말 게임으로 진실을 말하고, 지우 엄마의 얘기를 하며 가까워진다. 감동 포인트. 오랜만에 나온 김애란 작가의 신작이지만 마무리는 다소 아쉽다. '제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성장해 있다'는 메시지의 마감처리가 난데없이 직관적이고, 성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