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감정론 - 애덤 스미스
2025-10-12 12:38:24
인간은 자율적으로 도덕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인간은 동감, 즉 공감을 통하여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인간은 자기 내면에 공정한 관찰자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객관적으로 자신을 평가하고 타인이 어떻게 평가할지를 예상한다.
어쩌면, 양심에 따라 나쁜 행동을 하지 않고 좋은 행동을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즉, 우리는 우리의 양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우리 안의 공정한 관찰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도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본성에서 공감하고 싶어하고 공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으로 가정한다.
그곳에서 출발하여 어떤 감정이 다른 감정보다 그럴듯하게 여겨지는지(시인이 더 수월한지)라던가
어떤 감정이 우연에 의해 그 효용이 감소하는지. 증가하는지에 대해 논하는 것 같다.
이 책은 너무 어렵다.
그 당시에도 정리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갔었던 책.
그러나, 도덕은 동감에서 비롯하며 사람이 도덕적으로 살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동감에서 비롯한다는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다.
이것의 예를 들어보자.
십계명 중
부모를 공경하여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을 하지말라.
네 이웃의 것을 탐하지말라.
이러한 계명이 존재하는 이유는 이를 어길 때 즉각적인 분노의 감정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비애로 인한 격정의 감정이 꽤 사람에게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불효자에게 드는 격정의 감정,
내 눈 앞에서의 살인자에게 드는 격정의 감정, 간통자에 대한 감정과 도둑에 대한 감정은
그 자체로 격정일 수 밖에 없다.
그 격정은 보통 상호간의 상해 혹은 죽음에 이르는 감정이기에 미리 법으로 정해놓은 것으로
이를 보아 법은 그 시대의 도덕에서 비롯되었고, 도덕은 사람의 감정에서 비롯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의 법에서는 사람의 격정을 짐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경제체제에서는 또한 사람의 자혜가 반드시 필수적이지 않음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 이타심을 강요할 수 없으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시장은 저절로 옳은 방향을 찾을 것이라 생각하였고
마찬가지로 도덕심을 강요할 수 없으나 보이지 않는 공정한 관찰자에 의하여 개인은 도덕적인 생활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다시 훑어보고 하나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현대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범람하는 시대로 특히 격정에 불타는 사람들이 많아보인다.
우리 안에 있는 공정한 관찰자는 사라지고, 이미 화가 난 관찰자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화가 나고 분노하고 괴로운 것, 즉 비감과 격정의 감정이 기쁘고 좋은 감정보다 훨씬 더 강렬하다는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이유로 십계명도 괴로움의 감정을 우선하여 언급하였던 것으로 본다.
미디어의 발달로 화난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감정에서 비롯한 도덕은 서로를 겨누는 칼이 되었다.
즉, 이 시대를 정상화시킬 윤리규범이 다시 필요해진게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다시 읽으면서 하게 되었다.
이 고전을 읽으면서 우리가 생각해야할 질문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
질문)
1. 현 시대의 법은 인간의 어떠한 감정을 고려하여 지어진 것인가?
2. 현 시대의 사람은 동감으로 인한 도덕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가?
3. 분노에 찬 이 시대에 필요한 윤리규범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