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 - 너새니얼 호손
2025-10-12 12:41:16
이 책은 마치 죄와 벌의 느낌이 있다.
그 죄를 남들에게 드러내며 버티는 자가 있고
그 죄를 숨기고 스스로 괴로운 마음의 병을 버티는 자가 있다.
그리고 그 죄를 찔러대어 고통스럽게 하는 자도 있다.
요즘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죄는 무엇인가?
죄는 누가 정하는가?
죄를 저질렀을 때 어느 정도로 속죄해야하는가?
죄를 저질렀을 때 그 죄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타인의 비난과 제재인가 자기 스스로의 괴로움인거?
이러한 것들을 질문하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작품은 니체다.
정말 신은 있는가. 정해진 규범을 의심없이 수용하는 것은 옳은 생인가?
그러므로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하였다.
그 모든 옳게보이는 규범들을, 모든 도덕들에 맞서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헤스턴이 그 주홍글씨로 인해 핍박받고 괴로워도
참고 견디며 옳다고 여기는 행실로 채워가는 그 모습에서 어쩌면 초인의 모습을 보았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세상의 모든 규범을 초월하진 못하였지만 그 시대 안에서 여성이며 명백히 죄였던 간통을 저질렀고 그 결과로 가진 아이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자.
그 시대 안에서 세상의 모든 규범을 초월할 수는 없으므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아서 딤스데일과 로저 칠링워스의 모습에서 느꼈던 것은, 부끄러움이다.
나는 의사의 모습에서 이강백의 작품 내마에서 실성의 대사가 생각났다. <내마 당신도 외로운가?>
즉, 로저 칠링워스는 명백히 악마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더없는 친구였다. 아니 정확히는 그와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
노인은 부끄러웠다. 그리하여 헤스턴에게 자신의 과거를 알리지 말라고 했었다.
그가 돌변한 것은 자신보다 더 부끄러운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목사여, 당신도 부끄러운가?>
그러한 친구가 필요했던거다.
내마는 자신도 외롭다는 것을 시인하며 죽었고
목사 또한 마지막은 부끄럽지 않음을 증명하며 죽었다.
실성이 슬퍼했던 것은 내마와 내가 같다는 것을 증명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친구가 떠나간 경험을 하였다.
의사가 상심했던 것은 너는 나와 같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죽었기 때문이다. 의사와 목사는 친구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죄를 그대로 감당하고 극복하는 인간과
부끄러움에 고통받는 두 사람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을 결국 극복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질문)
1. 죄는 무엇인가?
2. 죄를 저질렀을 때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가?
3. 죄에 대한 벌은 타인의 비난과 제재인가?
개인의 괴로움인가?
4. 죄에 대한 벌을 버티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