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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추적자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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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노란 책 리뷰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바움가트너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고 자신 또한 노년에 이르러 울적하다가 오랜 시간의 사유를 통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


노년의 인생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심정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 쇠약해지는 몸과 정신에 갇혀 점점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져가는 주인공.


그 때 주인공은 한참동안 가만히 앉아, 주인공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과 조상님의 인생까지 돌이켜 보면서 모두의 가능성이 얽혀 나 자신이 만들어지고, 나도 누군가와 얽혀서 서로의 기억 속에서 모두 함께 긴 생명의 흐름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어떤 깨달음을 얻고 다시금 고장난 몸을 움직일 힘을 내는데….음, 큰 주제는 알겠지만 분위기나 감정선이 중간중간 크게 달라져서 살짝 전체 이야기가 통일되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 (노화된 주인공의 고통 ㅡ 갑자기 어느날 밤 주인공이 겪는 신묘한 경험 남량특집!!ㅡ 그러다 갑자기 정원에 앉아 가슴따뜻한 추억타임☆ㅡ 그러다 급 사랑에 빠짐♡ㅡ 마지막으로 갑자기 멋있게 주제 어필?)


대부분은 잘 포장된 넋두리 같긴 하지만 어쨌든 삶의 끝자락에 다다른 주인공의 심경 묘사 만큼은 두고두고 참고할 만 하다.

바움가트너
바움가트너
안노란 책 리뷰 <친애하는 개자식에게>비르지니 데팡트

저 제목 그대로 배송알람 문자가 오는 바람에 깜짝 놀랐던 책. 


페미니즘의 최전선을 달려 산전수전 다 겪고 해탈을 36번쯤 겪은 대선배 활동가인 작가의 관록으로, 담백하고 은은하게 요점만 담아서 두 명(혹은 세 명?)의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메일 형식으로 쓴 이야기.


두 사람이 메일로 주고받은 대화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는데, 기묘하게도 꾸역꾸역 메일을 계속 주고 받으며 서로를 어느정도 이해하는 경지까지 다다르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현실에서 이렇게 대화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분명 작중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데, 사이다같은 결말은 아니고 애매모호하고 착잡하게 끝난다. 피해자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흐지부지되는 현실을 생생하게 반영한 것일까?


어쨌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두 진영간의 전쟁, 작가는 과연 우리가 이 주제에 대하여 여태까지 진정 올바른 소통 채널로 대화를 하였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작중에서는 SNS와 중독치료응원모임 의 두 가지 채널을 소개하며 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최고로 멋지고 고결한 모습만을 보여주며 그에 적합하지 못한 존재를 먹잇감으로서 공격하고 그 과정을 소비할 뿐인 SNS 공간, 그리고 자신의 가장 밑바닥의 모습부터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며 묵묵히 들어주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중독치료모임.


작가는 SNS매체가 순간적인 반응이야 끝내주겠지만, 이미 그 공간 자체가 소비자의 체류시간과 트래픽을 유발하기위해 치밀하게 계획된, 거대자본과 권력의 게임판이 아닌지 몹시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러다 다 죽어!! 라고 외치는 깐부 느낌으로다가..)


반면 등장인물들이 다니게 된 중독자치료모임은,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차분하고 안정된 공간에서 서로의 내밀한 어려움과 고민을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는 공간이고, 등장인물들이 중독에서 극복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걸 보면, 작가는 긍정적인 소통의 방법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


중독치료 라는 것도 상징적인 것 같은데, 좋든 싫든 우리 모두 각자의 성역할에 오랜 시간 스며들어 있거나 절여져 있고, 그 역할 개념에서 벗어나기까지 수많은 유혹과 좌절이 있을 것이며, 그때까지 차분하게 모여서 서로의 어려움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야 극복을 할똥말똥 하다는 점이 묘하게 비슷한 것 같다.


그리고 만에하나 유전적으로 보자면, 인간의 기나긴 역사동안 고정된 성역할에 적합하지 못한 인간은 그 동안 높은 확률로 사회에서 제거되었기에, 이 사회에서 살아남은 현 세대들은 이미 조금이라도 유전자에 각인되었을테니, 극복 과정은 중독 이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몇천몇만년간의 역사를 가진만큼, 고정된 성역할로 인한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는 계속 생길것이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될지는 이 책에는 자세히 쓰여있지 않으나. 작가는 조금씩 진전이 되어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방법에 있어서 SNS는 하튼 절대 아님! 이라고 못 박고 있는 듯 하다.


거의처음 읽은 페미니즘 타이틀 소설이라 잔뜩 긴장하며 책을 펼쳤지만, 생각보다 훨씬 여유롭고 관대하게 다 내려놓고 해탈한 모습으로 작가가 반겨주어서 감사했던 책.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친애하는 개자식에게
안노란책 리뷰 <폴란드인> J M 쿳시

삶이 무료해진 스페인 중년 부인이 70대 피아니스트 폴란드 노인의 어쩌면 노망난 주책에 묘한 의문을 가지고 집요하게 탐구하는? 이야기.


사랑하는 것, 사랑받는 것 이 이루어지기에는 이미 서로 국적도 언어도 신분도 살아온 시간선도 한참 달랐기에 애초부터 뭘 성대히 이룬다는 목표는 두 사람 다 없었고. 대신 정확히 왜,뭘 사랑하는것인지, 반대로 사랑받는것이 대체 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늘 소설이 그렇듯 열린 결말.


둘 사이에는 심각한 소통의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이 불가능했고, 만난 시간도 짧았다. 그런데 폴란드 노인은 사랑에 빠졌다고 주인공에게 주장을 하고 있고, 주인공은 나를 다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에 빠졌다고 하는 그 노인이 대체 뭘 믿고 자신의 무엇을 사랑한다는 것 인지, 나의 외모인지? 성격인지? 영혼이나 뭐 그런 것 인지? 순전히 그 점이 궁금해서 노인과 띄엄띄엄 연락을 한다.


두 사람이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어도 서로간의 정보전달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뭔진 모르겠지만 사랑하고, 사랑을 받긴 받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그와중에 심지어 노인은 중간에 늙어서 죽어버리고. 주인공은 노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의 감정을 막연하게 유추할 수 밖에 없다. 그 모습을 읽어나가자니, 주인공도 점점 노인의 진짜 모습이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해서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모두는 철학적, 물리적, 생물학적 등등으로 대상의 진실에 절대 도달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내 감각기관이 받아들이고 나의 뇌가 해석하여 만들어낸, 비슷하지만 또 다른 이미지로 대상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연인도 친구도 가족도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포함해서 재해석된 이미지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의 참된 모습이 뭔들, 내가 해석한 이미지가 좋으면 사랑에 빠지는 거고, 내 참된 모습이 뭔들, 내가 해석한 내 모습대로 살게 되는 것이고, 그 이미지는 절대 남들이 알 수 없다..라는 것 인가? (그런데 나 자신에 대해 인식하는 경우엔 진짜 나와 인식한 나 사이의 무한한 상호 피드백이 이루어질것이라 예상된다.) 뭐 그런 이야기 같다. 주인공도 결국 죽어버린 노인의 정보를 긁어모아 자신만의 상상의 노인을 만들어 그에게 편지까지 쓰고있으니…


작품속에서 나온 단테 이야기, 쇼팽의 명성, 역사, 비밀, 번역, 언어 등등의 소재가, 가깝지만 영원히 닿을 수 없는 진실, 진실보다 더 진짜같고 찬란한 이미지에 대한 주제를 받쳐주는 듯 하다.

폴란드인
폴란드인
안노란책 리뷰 <뱅크하임 남작의 귀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한 페이지도 다른 책들의 2.5배 느낌으로 읽히는데 그게 765페이지… 꾸역꾸역 읽어나간 끝에, 드디어 다 읽고 말았다 ㅂㄷㅂㄷ. 그야말로 주술회전 영역전개 무량공처, 이 책을 펼쳐버린 독자는 작가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쏟아내는 압도적인 정보량을 처리해내지 못하고 영원히 정지하게 된다. 흘러가는 스토리에 연관된 등장인물들의 생각, 행동, 묘사를 가능한한 모두 담아냈는데, 그 덕분에 독자는 단 몇 줄 전의 상황도 잊어버리게 된다. 모든 것이 보여지는 바람에 오히려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저 한 줄 한 줄의 순간만에 집중할 뿐이다.


작가는 첫 소개글 <경고> 부분에서 충분히 의도를 전달하고 있다. 쉬지않고 바글바글 쏟아지는 인생 모든 요소들의 덧없음을, 다만 <경고>에서 지휘자 같이 철저하게 모든것을 알고 명령하는 사람과, 그의 의도에 정해진대로 그대로 연주하게 되는 악사들의 구도로, 약간 모호하게 소개되는데, 지휘자 같은 사람이 작가 자신인지, 아니면 신인지, 둘 다 인지 약간의 해석차이가 있을 것 같다.


절대신 운명론에 대해 ”이딴게..정해진 운명?“이라고 굉장히 비꼬아서 작가가 화가 나서 쓴 글일 수도 있고, 끊임없이 독자들이 대체 당신이 책을 쓰는 의도가 뭐냐고 자기에게 시도때도없이 물어봐대는 통에 "어디, 그렇게 의도가 필요 하다면, 그래, 알려 주지!" 하고, 흑화해버린 작가의 복수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무지막지한 서술과 스토리의 기묘한 전개에 남는 것, 혹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지막지한 허무함. 그에 대한 작가의 분노? 반항? 그리고 이걸, 765페이지의 만연체로 가득한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독자의 분노도 더해서…번역가분도 번역을 마치고 승천하신건지, 작가의 철저한 의도에 감히 자신의 페이지를 더할 수 없었던 것인지.

보통 뒤에 나오는 옮긴이의 말 같은 후기가…없다….ㄷㄷ 살아계시죠?..


그런데 문득 예전에 읽었던 너무 멋진 노란 책 <계속되는 무>가 생각 낸다. 비슷하게 허무함, "정말 의미 없음"을 주제로 쓴 책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신나고 자유롭게, 그러나 너무 나도 멋지게 '막'썼는데, 내가 읽었던 책 중 3대천왕에 들어가는데, 똑같은 허무함을 바라보았음에도 이렇게 반응이 다른 것은 무엇일까…J와 P의 차이?

안노란책 리뷰 <베리에이션 루트> 마쓰나가 k 산조

평범한 회사원이 등산고인물의 세계에 잠시 발을 들인 이야기. 


산을 오르고, 내려간다. 등산과 인생. 등산로를 벗어나 새로운 길,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등산 고인물 메가 씨의 기묘한 행동. 주제가 아주 쉽고 명확하게 쓰여진 스토리.


고인물을 따라 등산(이라기보다는 탐험)을 체험한 주인공이 산 속을 묘사하는데, 글만 읽고 있는데도 피톤치드향이 술술 난다. 하루만에 술술 읽어버린 것은 순전히 작가의 필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마치 고인물 신선 처럼 보였던 메가 씨는 정말로 산에서 답을 찾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가족과 직장을 피해 산 속으로 도피를 하는것일까? 주인공은 끝끝내 알 수 없었다. 


어차피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사는 것, 어떤 삶이 맞는지 틀린지는 누구도 평가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일이다.

베리에이션 루트 - 2024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베리에이션 루트 - 2024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안노란책 리뷰 <초대받은 여자> 시몬 드 보부아르

평범한 삼각관계물에

최고지성의 프랑스 철학자를 끼얹은…


1000페이지나 되지만 세 사람의 염병 대환장쇼가 끊김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철저하게 이상을 꿈꾸는 프랑수아즈와 피에르 커플.

극단을 운영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던 어느 날. 두 사람은 이상을 쫓는 삶과는 거리가 먼, 오늘만 사는 실존 그 자체 그자비에르 양에게 동시에 사랑에 빠진다.


세상 쿨했던 두 사람은, 삼자연애라는 색다른 시도를 해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프랑수아즈는 이성적인줄만 알았던 자신에게서 끓어오르는 질투와 사랑 속에서 극심한 갈등을 겪는다.


프랑수아즈에게 더 심각하게 다가왔던 문제는.

이상을 쫓던 삶, 철저하게 실존하는 삶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진정한 삶의 방향을 찾지 못했다는 것, 프랑수아즈는 자기자신을 찾아 선택을 내릴 수 있을까?…


저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는게…몹시 놀라웠고, 이런 철학자도 1000페이지의 소설을 쓸 정도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제3자가 보기에는 뭣도 아닌 고민을 가지고 백날천날 고민하는 자신의 분신 프랑수아즈의 심리적 갈등이 참으로 답답하게 그려졌지만, 그걸 다 알고 썼다는 점에서 보부아르의 자조적인 모습이 더 멋지게 보인다. 중2병 시절 싸이월드 게시물을 전부 공개한 느낌?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그때도 범상찮고 지금도 범상찮은 소재의 이야기라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화제성 하나만큼은 최고?..

초대받은 여자 1
초대받은 여자 1
안노란책 리뷰 <time shelter>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주인공이 치매환자를 돕기 위해 특정 년도의 공간을 완벽하게 재현해서 환자의 기억을 불러내고 안정감을 준다는 요법이 세간에서 화제를 모으면서 결국 전 유럽 국가들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마침내 유럽연합이 현재시간을 버리고 각자 번영했었던 어떤 시대로 고정되겠다는 결정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시간이 흐른다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각을 해체해보는 재미있는 시도였다.


조금 아날로그적이긴 하지만, 인류가 힘을 합쳐 미래 말고 과거로 떠나는 SF 소설같기도 하다. 미래의 혼돈에 지친 우리는 찬란한 인공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주인공이 과거, 정확히는 과거의 기억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하면서 중간중간 메모한 짧은 글들이 인상적. 특히 냄새와 물건, 음악에 대한 감상적인 묘사가 흥미롭다.


유럽 각국이 좋아했던 시절이 다르기에, 기존의 국경마저도 시공간 국경으로 결정되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국가규모로 시대에 맞게 단체 코스프레를 하는 모습도 인상적.


그리고 장장 100여페이지에 걸쳐서 동서유럽의 각 핫했던 시대들을 나열하고 과연 어느 시대로 결정할지 토론하는 부분이 있는데, 심지어 동유럽은 과거 공산주의 시대였고… 세계사에 약한 나는 몹시 읽어나가기 힘들었던 부분.


어쨌든 유럽 각국은 각자의 시간대를 지정했고, 현재와 미래를 버린 유럽은 어째선지 파멸로 치닫는다. 그와 동시에 주인공도 치매비슷한 증상을 겪으며 횡설수설 서술하고 있는 통에, 왜 결말이 부정적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결론적으로 저자는 과거로의 회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시간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기에 뭐, 과거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모두 약속하면 안될 건 없겠지만, 결국 인공 과거이기 때문에 대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좋은 부분만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보다.


확실히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는 그닥 희망차보이지 않는다.

경쟁적인 성장, 뛰어나고 혁명적인 기술로 바뀌는 건 내 행복이 아니라, 집에서 직장까지의 원활한 접근성 뿐이다. 잠시 기술혁명의 폭주를 멈추고 과거시대에서 차근차근 되짚어나가며 정신적 혁명을 이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같긴 한데, 이 소설에서는 인류가 집단적 치매에 빠져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결론으로 끝나는 것 같다.


나 개인적으로는 과거가 몹시 싫다. 불행하진않았지만 학생때부터 입시때문에 바빴고, 20대부터는 더 정신없이 살았고, 좀 정신차렸더니 34살쯤 되었다. 막 따뜻하거나 즐거운 추억이 쌓일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었다. 건강 빼면 지금이 그나마 전보다는 낫기 때문에 나라면 별로 과거로 돌아갈 것 같진 않다. 낭만도 희망도 없는 나..어뜨케…


어쨌든 인공 과거의 미래로 향하는 소재 자체로 참 재미있었다는 결론….

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타임 셸터 - 2023 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
안노란책 리뷰 <개구리> 모옌

중국의 엄격한 산아제한정책 과정에서 벌어졌던 마을사람들의 일대기.


국가의 변화, 급격한 경제,사회변화, 사람들의 대를 잇겠다는 의지. 전통과 혁신, 미신과 과학 등이 죄다 충돌하는 바람에 온갖 갈등을 빚어내었던 당시 분위기를 마을사람들간의 수십년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의 고모인 의사는 인간의 감정을 초월하여 국가의 정책에 따라 마을의 아이를 받았다가, 지옥끝까지 따라가서라도 죽이는 모습을 보인다. 마을사람들의 온갖 저항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살리고, 죽이고 마는, 마치 아이의 생과 사를 관리하는 삼신할머니의 화신이라도 된 듯한 포스가 인상적.


그 혼란의 시기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첫째 아이들과 숨겨진 아이들이 자라나서 또다시 주인공들과 얽히는 운명까지. 그리고 그 운명은 또 다음 세대로, 중국 속에서 돌아가는 거대한 인생의 수레바퀴를 느낄 수 있었다.


중국의 사회변화 속도 만큼이나 급격하고 정신없게 전개되는 복잡한 이야기들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번식하고 죽는, 인간들의 처절한 생의 의지 하나로 묶였다. 대부분 무언가 불합리하고 비극의 연속이었지만, 너무 얽히고 터지는 일들이 많아서 이걸 어떻게 판단할 새도 없이 그저 바라보면서 읽어 내려 갈 수 밖에 없었던 책.


그 징그럽고 질긴 생의 흐름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친구가 재미있게 읽었다고해서 읽었는데, 950페이지 내내 식은땀흘리고 눈물글썽이며 초조하게 읽은 책, 정신없이 술술 읽어버려서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언제 날 잡아서 서로가 생각하는 재미있음에 대한 논의를 해 봐야 겠다!

개구리
개구리
안노란책 리뷰 <이방인> 알베르 카뮈

극ISTP가 살인사건을 저지르고 사형을 선고받는 이야기.


오…의미는 어려운 소설이었지만 내용의 스펙타클함 덕분에 생각보다는 빠르게 읽혔다.


주인공 뫼르소는 기묘할정도로 남의 속마음에 관심이 없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이해 받으려 하지도 않은 채 철저히 남의 인생과 분리된 상태로 살아간다. '슬픔'이니 '사랑' 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뫼르소는 철저히 쌩깐다. 각자의 인생에서 느끼는 것들에 이렇다 저렇다 판단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건지, 철학적으로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 행동 덕분에 주변에서는 뫼르소를 점점 이상한 취급을 하기 시작한다.


그와중에 뫼르소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는 굉장한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말았고, 주변 사회는 경악한다. 희생자는 뫼르소의 친구와 시비가 붙었던 사람이었기에, 친구를 위해, 혹은 위험해서 방어를 하려다 총을 쏘게 된 것이라 스스로를 변호할 수도 있었겠지만, 뫼르소에겐 사실 친구나 우정 같은 것에도 별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를 위해서 라는 건 뫼르소에겐 거짓말이었고, 뫼르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뫼르소는 마치 고요하다 한순간에 누군가의 목숨을 덧없이 앗아가는 천재지변 같은 인물인 것일까. 이 세상, 자연은 뫼르소를 어떤 인물이라고 단정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두고 있다. 뫼르소 또한 자연처럼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정의하지 않고,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 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 같다.

이렇게 보면 뫼르소와 자연은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재판장에서 뫼르소를 판단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법, 이성, 윤리, 공감, 도덕 등의 온갖 인간적 가치관을 때려박아서 뫼르소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그건 지금 우리가 사는 자연, 인생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과도 같은 행동 일 지도 모른다.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사형을 선고 한들, 이 세상은 뭐 반응이 있을까? 바람이라도 살짝 더 불려나 모르겠다. 


역시나 자연과도 같은 뫼르소는 별 반응 없이 담담히 사형받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뫼르소는 그 때 자기와 이 세상과의 차이점을 딱 하나 발견한 것 같다. 자신은 죽는다는 것. 그렇지만 뫼르소는 자신이 곧 죽을 것임에도, 이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도 주지 않지만, 그래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뫼르소는 이성,법,도덕,사랑,윤리 등등의 개념덩어리 매트릭스 안에서 깨어나 밖으로 탈출하여 진짜 자연,인생과 최초로 1대1로 마주하게 된 인간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인생의 허무함으로 치자면 그게 그거 인 것 같긴 하지만. 인간 관념의 껍질을 하나 더 깨고 나갔다는 것에 의미가 있을지도..

(내가 벽을 뚫고 나가서 봤는데! 허무한 거 맞아요!..이런 느낌?)


기묘한 정신상태의 주인공이 저지른 기묘한 살인사건의 결과에 독자들이 계속 의문을 가지며 읽게 만들다가 철학적인 생각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이었다.

이방인
이방인
노란책 리뷰 <남아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굉장한 프로정신을 가진 저택 집사의 짧은 말년 휴가 이야기.


주인공인 집사 캐릭터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주인의 보필에 너무나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처음 읽기 시작 했을 때는 그의 과묵함과 한 발 떨어진 태도가 우수한 집사로서의 프로정신, 덕목으로 느껴졌지만, (어찌나 우수한지 375쪽이나 혼자 속으로 떠들어댔으면서도 겉으로는 내색도않는 모습을 꿋꿋이 유지한다) 시간이 지날 수록 눈과 귀와 입을 꾹 닫고 어떠한 판단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인간을 대표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당연히 고용된 집사이기에 뭐 어쩌겠냐마는, 소설 속에서는 시대가 지나며 집사 라는 개념이 서서히 잊혀져 가고, 감정조차 버리고 열심히 살아온 집사를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공허한 말년을 보여주면서, 이젠 사회의 변화에 스스로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 하다.


근데 시민의 노예화, 참된 민주주의 등을 꼬집는 듯한 이 소설의 원산지가 모든 악의 원흉 영국인 것이 몹시…신경쓰이지만… 넘어가기로 한다. 아님 혹시 저자의 고도의 돌려까기인걸까.


어쨌든, 집사가 집사일 수 있는 시대는 저 멀리 흘러가 버린 것이다.

남아 있는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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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돌책 같이 격파해요! (ft. YG)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3. <냉전>[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2. <어머니의 탄생>[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스토리탐험단의 5번째 모험지!
스토리탐험단 다섯 번째 여정 <시나리오 워크북>스토리탐험단 네 번째 여정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스토리 탐험단 세번째 여정 '히트 메이커스' 함께 읽어요!스토리 탐험단의 두 번째 여정 [스토리텔링의 비밀]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들 속으로!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셰익스피어 - 한여름 밤의 꿈, 2025년 6월 메인책[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그믐연뮤클럽] 3. "리어왕" 읽고 "더 드레서" 같이 관람해요[그믐밤] 35.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1탄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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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책과 함께 조용한 질문 하나씩[n회차 독서기록] 에리히 프롬 '건전한 사회'를 다시 펼치며, 두 번째 읽는 중간 단상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노예제가 궁금한 사람들, 주목!!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2.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1.노예선, 마커스 레디커[이 계절의 소설_가을]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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