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란책 리뷰 <데이지 밀러> 헨리 제임스
2025-04-06 09:58:50
유우럽의 사교계에 들어가고싶은 꿈만 갖고있는 19세기 미쿡MZ 여인 데이지 밀러의 고군분투기! 2020년대에 태어났으면 카디비 뺨을 쳤을 데이지의 자유분방함이 돋보인다.
미국 신흥졸부들의 깽판에 고급지게 빡쳐하는 사교계 안주인분들의 리액션들이 너무 재미있다. 심지어 가끔 저자도 전지적 시점으로 등장해서 상황을 설명해 주는데 위트가 넘친다.
내 기준으로는 막연하게 프랑스나 독일, 영국, 오스트리아 등지가 유럽 사교계의 중심지로 느껴지지만, 소설에서는 사교계의 무대가 이탈리아 로마이다. 로마의 올드머니들이 실제로 얼마나 영향력이 있고, 알아주는지는 내가 서양인도,올드머니도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소설에서는 좀 굉장해보이게 그려졌다. 일반인들도, 다른 지역의 올드머니들도 함부로 접할 수 없는 그런 느낌? 심지어 작중에 데이지 밀러가 난입하며 갈등이 빚어진 '사교계'모임 마저도, 로마 사교계에 끼고싶어 유럽에 이주하며 조심스럽게 빌드업하고 있는 미국 부인의 파티였지, 찐 이탈리아 사교계는 등장도 안했다. 정말 존재는 하는 것인지?
크게 보면 결국 같은 미국인들끼리 '막연하게 상상하고 있는 귀족에 대한 환상'의 입장 차이로 소란을 피운 것.
오랜 역사와 영광을 가진 로마에 대한 서양인들의 묘한 자부심이나,'로마에선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 등, 로마라는 도시가 가진 상징들이 소설 속의 '사교계'가 가지는 역사, 품격, 엄격함 등의 속성들과 묘하게 겹치는 게 흥미롭다.
사교계는 돈과 시간과 명예가 남아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탐미하기 위해 만든 장소같다. 주어진 인생은 한정되어 있으니, 재력을 이용해 좋은 사람들을 거르고 또 거르는 것. 그런데 막상 그러한 사교계 사람들과 만나면 진짜 피곤할것같기도 하고, 그사람들한테 굳이 인정받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근데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좋은사람들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나저나 데이지는 '사교계의 품격'과는 정 반대의 인물. 편견없이 모두와 어울리는 아가페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는 골칫거리처럼 묘사되지만, 뒤로 갈수록 사교계 사람들이 음침하게 소문을 나누거나, 몇 페이지에 걸쳐 사람의 평가를 내리고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되면서 오히려 데이지가 더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 처럼 느껴진다. 끝까지 자유를 잃지 않은 데이지의 뚝심에 리스펙트. 이렇게 당당하고 한계 없는 데이지가 그 고리타분한 '사교계'를 동경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의문이었지만. 책을 덮고 생각해 보니, 데이지가 상상했던 사교계는 정말 열린 마음으로 사교를 나누는 공간이었나 싶다.
그리고 <위대한 개츠비>에서 미국 올드머니 집안으로 시집가서 조용히 지내고 있는 데이지 캐릭터와 이름은 같지만, 성격이나 입장이 서로 너무나 정반대 라는 점도 흥미 포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