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란책 리뷰 <time shelter>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2025-04-06 10:43:36
주인공이 치매환자를 돕기 위해 특정 년도의 공간을 완벽하게 재현해서 환자의 기억을 불러내고 안정감을 준다는 요법이 세간에서 화제를 모으면서 결국 전 유럽 국가들도 관심을 가지게 되고 마침내 유럽연합이 현재시간을 버리고 각자 번영했었던 어떤 시대로 고정되겠다는 결정을 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시간이 흐른다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각을 해체해보는 재미있는 시도였다.
조금 아날로그적이긴 하지만, 인류가 힘을 합쳐 미래 말고 과거로 떠나는 SF 소설같기도 하다. 미래의 혼돈에 지친 우리는 찬란한 인공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주인공이 과거, 정확히는 과거의 기억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하면서 중간중간 메모한 짧은 글들이 인상적. 특히 냄새와 물건, 음악에 대한 감상적인 묘사가 흥미롭다.
유럽 각국이 좋아했던 시절이 다르기에, 기존의 국경마저도 시공간 국경으로 결정되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국가규모로 시대에 맞게 단체 코스프레를 하는 모습도 인상적.
그리고 장장 100여페이지에 걸쳐서 동서유럽의 각 핫했던 시대들을 나열하고 과연 어느 시대로 결정할지 토론하는 부분이 있는데, 심지어 동유럽은 과거 공산주의 시대였고… 세계사에 약한 나는 몹시 읽어나가기 힘들었던 부분.
어쨌든 유럽 각국은 각자의 시간대를 지정했고, 현재와 미래를 버린 유럽은 어째선지 파멸로 치닫는다. 그와 동시에 주인공도 치매비슷한 증상을 겪으며 횡설수설 서술하고 있는 통에, 왜 결말이 부정적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결론적으로 저자는 과거로의 회귀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
시간은 인간이 만든 개념이기에 뭐, 과거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모두 약속하면 안될 건 없겠지만, 결국 인공 과거이기 때문에 대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좋은 부분만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저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보다.
확실히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미래는 그닥 희망차보이지 않는다.
경쟁적인 성장, 뛰어나고 혁명적인 기술로 바뀌는 건 내 행복이 아니라, 집에서 직장까지의 원활한 접근성 뿐이다. 잠시 기술혁명의 폭주를 멈추고 과거시대에서 차근차근 되짚어나가며 정신적 혁명을 이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같긴 한데, 이 소설에서는 인류가 집단적 치매에 빠져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결론으로 끝나는 것 같다.
나 개인적으로는 과거가 몹시 싫다. 불행하진않았지만 학생때부터 입시때문에 바빴고, 20대부터는 더 정신없이 살았고, 좀 정신차렸더니 34살쯤 되었다. 막 따뜻하거나 즐거운 추억이 쌓일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었다. 건강 빼면 지금이 그나마 전보다는 낫기 때문에 나라면 별로 과거로 돌아갈 것 같진 않다. 낭만도 희망도 없는 나..어뜨케…
어쨌든 인공 과거의 미래로 향하는 소재 자체로 참 재미있었다는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