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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책 리뷰 <이별의 김포공항> 박완서
2025-08-24 02:55:06이별의 김포공항

박완서 선생님의 4편의 단편이 담긴 책.
참 신기한게, 분명 미국가는 비행기를 타는 할머니,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조카를 찾아가는 고모, 일상이 권태로운 아줌마, 서울의 전셋집으로 이사 온 부인 등 주변에서 한 명 쯤은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슬쩍 꺼내는 이야기 처럼 쓰여졌음에도, 6.25 전쟁부터 성장기까지의 한국의 변화. 그리고 그 극심한 가치관의 변화속에서 헤메이는 한국인의 모습을 절묘한 지점에서 섬뜩하게 담아내었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한국인들의 사랑과 생존의 경계는 아주 희미하고 모호해 졌다. 미운 동생들이 사랑스런 아귀가 되고, 표독스런 어머니는 헌신하는 마녀가 된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고, 과거의 끈끈했던 가족애는 떼어낼 수 없는 염병할 귀신이 되어 서로를 괴롭힌다.
한국인들이 생존하느라 겪은 트라우마는 너무 지독해서, 이후에도 물질적인 안정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스스로 입에 풀칠을 해서 죽을때까지 나를 괴롭히지 않는것, 그렇게 만드는 게 한국인의 사랑이 되었고, 친구보다 내 곳간에 쌀 한 줌 더 있는 걸 기어코 확인하는 게 우정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우리 조상들은 짧은 기간 대기근, 침략, 전쟁 등의 온갖 난리에서 살아남은 독종 중의 독종들이다. 생존한 자 들 만이 유전자를 남기니, 우리 스스로를 괴롭히는 생존 본능 트라우마가 옅어지려면 한참 더 세대가 지나야 할 것 같다.
이 모든 걸 부끄러워 할 것도 없고 자랑스러워 할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