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란 책 리뷰 -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2025-10-12 16:32:21
범죄를 저지르고 작중내내 하루종일 지지부진 갈팡질팡 갈등하는 청년의 이야기.
3번 정도 도전했다가 항상 중간에 어디까지 읽었는지 까먹어서 실패했었는데, 연휴동안 드디어 성공. 무척 긴 러시아 이름들과, 3배는 길게 느껴지는 만연체와,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도시 배경의 음울하고 절망적인 묘사와, 작중내내 자수 할까말까할까말까말까할까말까 망설이는 주인공의 밀당들의 환상적인 콤비네이션으로 읽는이를 지치게 만든다.
반대로 말하면 그것이 작가의 의도이자 작품의 매력으로, 질척거리고 꿉꿉하고 희망따윈 없는데다가 그 가운데서 이끼나 곰팡이마냥 어떻게든 붙들어 살아남으려고 질질 끌어보다가 실패하고 마는 우리 인생사를 몹시 사실적으로 담아놓았다.
소설은 과연 정의나 신성이란게 있는지 의문을 갖도록 만드는 비참한 삶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 비참한 세계와 운명에 반항하기 위하여, 자신이 평범한 인간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지 시험해본다.
일은 벌어졌고, 그 사실은 범죄가 되었고, 좁혀오는 수사망과 주변인들에게서 들려오는 소문,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 혹은 소인배의 찌질함 등으로, 주인공의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과정을 전부 다 읽어야 하는 독자들도 스트레스.
주인공은 단 한 번의 범죄 외에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아낌없이 내어 주는 등 마치 성인군자 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범죄자다. 다른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지만, 극심한 가난 속에 서로가 서로를 얽매어 천천히 파멸시키고 결국 고통스럽게 말려죽인다. 어쩌면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죄를 단 한 순간으로 몰빵한 것일까? 모두 다 필연적으로 죄인인 것이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들 정도로 소설에서 묘사된 가난의 광경은 너무나 비참하다. 지금 시대에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던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과도 비교가 된다. 어쩌면 <죄와 벌>의 주인공은 자기가 이방인 같은 사람이었기를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반항하는 모습에서 둘이 정확히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죄와 벌>에서, 마침내, 혹은 천성적으로 비참한 인간의 굴레에서 초월한 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 사람들이야말로 운명과 욕망의 흐름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흘러가듯이 살아가는 텅 빈 자 들임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어째서인지 끝없는 허무함을 느낀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자유롭게 욕망에 몸을 맡기면서 오히려 인간의 자유의지를 잃어버렸다.
<죄와 벌>의 세계는 고통과 파멸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곳이다. 그 곳에서 역으로 아무 득도 희망도 없는 희생과 자비를 베푸는 것이 유일하게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할 수 있는 자유의지이자 반항처럼 보인다.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 아무이유없이 주인공의 모든것을 용서하고 공감하고 받아들여준 소냐의 모습이 괜히 빛나보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