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란책 리뷰 - <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2025-11-22 05:16:20
안노란 책 리뷰 <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퀴어 할아버지가 퀴어 청년에게 퀴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책의 형식은 무언가를 조사한듯한 보고서와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막상 전부 가물가물하고 모호하다. 그들이 남녀노소 퀴어에 대해 큰맘먹고 조사했던 프로젝트는 전부 검열되어 지워졌고,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이야기도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거의 안나거나, 자기만의 환상이나 새로운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둘이 나누는 대화 또한 퀴어 커뮤니티 내의 은어들과, 아직 내가 모르는 문학 구절들을 읊는 바람에 이해할 수 있는 정보들은 매우 적다.
그럼에도 그 그림자 사이로 남녀노소 퀴어들의 인생이 슬쩍슬쩍 희미하게 보인다. 성, 출신, 인종, 가난 그 모든 요소에서 소외받고 억압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작중에서 등장하는 프로젝트에서 알 수 있듯이, 퀴어들은 분명히 자신들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주려는 시도를 해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숨겨지고 가려졌다. 알 수 없는 사회의 힘이 그들의 인생을 모호하게 만들고 덮어버린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세상사람들 모두 어딘가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고, 소외되어 있으며 한마디로 괴상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 중심에는 '정상' 이라는 환상이 신처럼 지배하고 있다. 각자의 괴상함을 잘라내어 숨겨버리고, 보기 좋은 부분만을 바쳐서 만들어진 예쁘고 포동포동한 우상.
작중에서 의사의 책상 위에 있었던, 1만6천의 남녀들의 보기좋은 부분만을 모아 빚어낸 노먼과 노마 라는 '인간표준모형' 이 그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표준과 맞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많은 부분들이 가려져서 마치 자코메티의 조각상마냥 앙상하게 보여질 뿐이다. 그 점이 퀴어 할아버지 후안의 극도로 야위고 희미한 모습에 반영된 것 같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오히려 역으로 '정상'에 대해 생각해 보는게 더 재밌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