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란 책 리뷰 ㅡ <기쁨의 황제> 오션 브엉
2025-12-21 01:15:21
이스트 글래드니스 마을에서 엄청나게 방황하는 베트남계 미국인 청년과,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리투아니아 할머니가 잠깐동안 우정을 나눈 이야기.
가난과 실패로 더 이상 부서질 몸이 남아있지 않은 글래드니스마을의 사람들은 어느 새 영혼도 부서져 있다. 주인공 청년 하이 또한 그렇다. 겨우겨우 장학생으로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갔지만 방황끝에 하이의 장학금은 취소되고 막대한 빚과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하이의 엄마는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아들과 자신을 먹여살리기 위해 다시 네일 살롱으로 출근한다.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에 빠져있다.
꿈은 꿈일 뿐이었고, 삶은 절대 나아지지 않는다. 모두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아주 가끔 일어나는 평범한 일들이나 작은 연대가 발생하는데, 그 잠깐의 순간들이 엄청난 기적처럼 그려진다.
등장인물들의 거짓말들은 나약한 자신을 감추기 위한 마지막 껍질이다. 하이가 얼떨결에 돌보게 된 치매할머니의 오락가락하는 말들과 별 차이가 없다. 그렇지만 모두의 헛소리를 뚫고 서로를 돌보는 마음이 오고간다. 할머니의 치매가 진행되는 과정과 비슷한 타이밍으로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의미가 없어지고, 마음만 남게 된다.
서로 너무나 절망적이기에 그렇게라도 챙겨야 안정이 되었던걸까, 아니면 진짜 사랑과 호의였을까. 알 수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대와 출신을 뛰어넘어 각자 충분한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만약 서로가 조금씩 기댈 수 있다면 그때 우리 삶이 약간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