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노란 책 리뷰 <헤르쉬트07769> -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2026-03-03 16:54:11
독일의 한 작은 마을 사람들이 각종 사건들로 인해 두려움에 떠는 이야기.
4-5일 빡시게 벼락치기 하면 읽을 수 있겠거니 싶었지만 역시 호르커이 아저씨의 소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뱅크하임 남작의 귀환> 보다는 편하게 읽혔으나 약간의 차이 일 뿐, 등장인물들의 모든 정보를 한꺼번에 쏟아내는 특유의 필체는 나를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작은 마을에서는, 주인공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수시로 불안해 한다. 동네의 낙서 테러부터 시작해서 늑대의 출몰이나 주유소의 폭발같은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나 규칙은 거의 아무도 모른다. 그저 자신들이 그동안 믿고 있었던 신념이나 규칙들로 어떻게든 그 사건들이 발생한 이유를 어림짐작하며 멋대로 해석하고 각자 결론들을 내리지만, 사실 사건이 일어난 특별한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마을 사람들이 자기 삶 앞에 펼쳐진 이상한 일들이 너무 불안해서 어찌 할 바를 몰라, 어떻게든 자기 나름대로 규칙을 만들어 불안감을 잠재우려고 발버둥 치는 것일 뿐이다.
마을의 문제아들, 과학자, 모범시민, 경찰 모두 각자의 논리로 가설을 세워 눈 앞에 벌어진 일들을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그들이 애써 머리를 굴려 만든 가설들은 전혀 들어맞지 않고, 세상은 여전히 혼돈과 미지의 가능성으로 남아있다.
주인공은 소설 초반부터 양자역학의 모호함에 자기 멋대로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총리에게 편지까지 보내는데, 주변 사람들은 주인공을 보며 한심하다거나, 가엾다거나 평가를 내리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 또한 막연하고 근거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해할 수 없는 인생의 모호함에 마을사람들이 느끼는 근거없고 막연한 불안과 공포를 엄청난 분량으로 빽빽하게 전부 적어 놓은 것이 바로 이 소설.
나 또한 어떻게 흘러갈 지 전혀 감도 안잡히는 인생을 마주할 때 엄청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으로, 참으로 답답하고 괴롭게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를 읽으며 거울치료를 받게 되었다.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온갖 고민 중에 분명 독자들의 고민 하나쯤은 겹칠 것 같다. 그러나 고민은 그걸로 끝, 우연과 우연에, 오해와 편견까지 겹친 사건들로 사람들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인생 앞에서 대책, 고민, 해석, 좌절, 공포, 분노 다 부질없구나… 답없는 인생 좀 더 막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모두 포기하고 해탈하면 참된 기쁨이 찾아온다던가 하는 아름다운 메세지는 전혀 없다. 세상은 종잡을 수 없고, 우리는 있었다가 없어질 뿐이고, 인생의 흐름은 대체로 비극이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독자들에게 넘긴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