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지가 노란 책 리뷰 <미안하지만 싫습니다> 정준화
2026-07-12 08:11:47
사회생활 속 소소한 싫은 점들을 묵묵히 참아왔던 한 지식인이 마침내 흑화하여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마술적 사고에 기반한 저주의식을 행하는 이야기. SNS 판옵티콘 시대 최초의 금서가 될 예정.
…의 컨셉을 갖고 있지만, 그동안 자신이 싫어했던 것을 조목조목 씹고 뜯어먹는 과정에서 사회성의 껍데기에 감춰졌던 진정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도리어 싫지 않았던 것들을 소중하게 되돌아보는 계기를 독자에게 마련해준다. 하지만 싫은것들을 이 참에 제대로 씹어보자는 취지도 진심이기에, 한글자 한글자 진정성이 넘쳐 흐르는 문장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처음으로 진정성이 담긴 글의 힘을 알게 된 책.
나는 '싫다'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고, 도덕, 눈치, 겸손 등의 이유로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 이전에 얼른 묻어두고 넘어갔었기에 그 동안 감정을 처리하는 능력이 둔화되었는지 어느샌가 내 기분들은 정확히 뭐라 지칭할 수 없는 '그거'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이 '그거'에 대해 몹시 자세하면서도 품위와 균형을 잃지 않은 문장으로 명쾌하게 답해주어서 내 기분의 정리를 도와주게 되었다. 이래서 뭐든 선생님이 필요해.
저번에 읽은 책 <자기만의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길,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으로 빚어진 모순적인 자기 모습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한 작가는 무엇을 쓰더라도 어딘가에 울분과 화가 담겨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처음부터 작정하고 미리 울분과 화를 훌훌 털어버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방법이 전략적으로 훌륭한 것 같다. 맹렬한 주술적 의식으로 모든 부정을 쏟아내 날려버리고 산뜻하게 정화되는 과정이랄까.
그런데 정말 작가의 가방 안에 저주인형이 있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