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할 때 흔히 빠지는 함정을 벗어나자.. 남의 생각과 내 생각, 독서와 사유 사이에서
2025-08-15 21:14:12
독서할 때 흔히 빠지는 함정을 벗어나자
남의 생각과 내 생각, 독서와 사유 사이에서
여름 잘 보내시고 계신가요.
제 경우엔 지난 주에 마루야마 겐지 에세이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n회차 독서 기록으로 예고해놓고,
주중의 일상으로 인해 읽지 못했습니다.
이게 핑계라면 핑계이고요,
그러다 보니 할 게 없습니다.
주중에 읽고 있는 다른 책은 있지만,
흐름에 맞지 않고요.
그래서 이번엔 그믐 동호회에 맞는 주제를
개인 경험을 곁들인 이야기로 하여 대신할까 합니다.
이번 글의 주제는 간단합니다.
독서할 때 흔히 빠지는 함정을 피하고,
사유의 독립성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독서는 남의 생각을 읽는 과정이기에,
독서할 때 우리는 흔히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이런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가 읽는 이 책 저자의 말은 대단하고 훌륭한 거야.'
저 역시 어렸을 적에 경험했습니다.
저 자신도 특정 저자에 매료된 적이 있었지만,
남들의 모습을 통해 그런 모습을 일찍 졸업할 수 있었어요.
대학 시절엔 온갖 철학이나 이념에 빠져서(심지어 다단계도)
그것을 대단한 것처럼 말하는 선후배들도 여럿 봤고요.
문학소녀 기질인 후배 여대생이 읽는 책 내용에 대해
단 한 줄 수준으로 반론을 제시했다가
그쪽이 급발진하는 모습도 보면서,
독서로 인한 '사유 없는 생각의 병리'를 보게 됩니다.
(이 경험으로 인해, 저는 문학소녀 기질이라고 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죠. 일단 거리를 둡니다.)
바로, 자기 생각 없이 저자를 추종하는 모습인 거죠.
자기가 읽은 책 저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그 저자 책 내용을 비판하면 적으로 여기는
컬트적이고 파시즘적인 사고와 태도는
그 시절부터 이미 있었습니다.
그런 체험을 하고 나서 느낌표를 찍은 게
"저자를 팬처럼 좋아하더라도,
꼬붕은 되지 말라."는 거였어요.
독서는 결국 남의 생각을 따라 읽는 일,
즉 1회차에서는 소비에 그치는 행위입니다.
소비가 된 글들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자기 생각으로 충분한 되새김질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저자의 꼬붕이 되면,
저자의 사고 스케일을 졸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유 자체가 날개를 펴지 못합니다.
박민영 저자의『즐거움의 가치 사전』에서는
스피노자의 책꽂이에 60권 정도만 꽂혀 있었다는
언급이 나옵니다.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 않았어도,
스피노자가 거짓의 폭압 앞에
진실을 말하고 선택하는,
당시 유럽 유일의 양심 지성인이자,
지행합일을 이룬 영성가였다는 사실은
중요한 뭔가를 알려줍니다.
일생의 책은 그리 많지 않아도 되고,
양서의 글들은 수차례 곱씹으며
자신의 사유를 잘 성장시킬 필요가 있다는 거죠.
물론, 처음 읽든 몇 번을 반복해 읽든,
책을 읽는 동안에는 제자의 태도를 취하는 게 좋습니다.
겸손히 배우고, 온전히 스승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거죠.
그 태도가 있어야 왜 배웠는지,
무엇을 가져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배움이 끝나면 졸업해야 합니다.
제자처럼 배웠다가,
어느 순간에는 독립해 자기 길을 가는 거죠.
좋은 책일수록, 좋은 스승일수록,
그 ‘떠남’을 기꺼이 축복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맹목적인 컬트 추종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지성인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더위에 이런저런 생각나는 대로
대화체로 이야기를 건네봤습니다.
다들 건강한 나날 되시길 바라며 이만 마칩니다.
- 2025년 8월 15일, 엠마네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