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회차 독서 기록

[n회차 독서기록]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by 엠마네오빠2025-08-23 20:17:05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n회차 독서기록] 마루야마 겐지,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이 책을 보면서 시작됐다.

마루야마 겐지는 지금쯤 80대 중후반일 것이다. 

아직 생존해 계신지는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마음에 드는 일본 영감님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큰 주제는 이렇다.



 

1. 부모는 아무 생각 없는 존재다. 떠나라.


그는 부모를 신성시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부모는 별 생각 없이 결혼해 

자식을 낳는다고 단언한다. 

생각 없이 낳아놓고, 

제대로 사랑은 주지 않으면서 

간섭만 오지게 하는 존재가 부모라는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다른 자전적 에세이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고루하고 나약한 자신의 모습을 

자식에게 강요한 인물이라고.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 

정서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완전히 선을 긋고 멀리했다.


다시 이 책으로 돌아와, 그는 말한다.


“자식은 언젠가 반드시 부모를 떠나야 한다.”


첫 번째 탄생은 부모로부터 했지만, 

부모를 떠나는 순간이야말로 제2의 탄생이자 

성인의 진짜 의식이라는 것이다.


말투는 독설에 가깝지만, 

부모를 신성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배울 점이 있다. 


무엇보다 부모와 자식 사이,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서부터는 집착일까.


부모 대다수가 자식을 잡아먹고, 

자식 대다수도 부모를 잡아먹는다. 

이런 기이한 한국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은 어느 선에서 멈춰야 할까. 


모두가 생각해 볼 일이다.


마루야마는 가족을 “일시적 결속”이라 말한다. 

너무 오래 매달리면 서로 성장하지 못한 채 

증오로 흐른다는 것이다.



 

2. 직장인은 노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까?


직장에 대해서도 그는 가차 없다.

“직장인은 노예다.”

그의 직장 비판은 나 역시 체험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직장생활은 노사 상호평등한 주체가 

계약으로 등가교환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남이 시키는 온갖 일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도둑맞는다. 

월급과 연금에 자유를 맞바꾸는 순간, 

인생의 9할을 남에게 내준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게 자유를 잃은 채 생존을 연명하다가, 

어느 날 남이 나를 자른다. 

왜 내 생명줄을 남에게 맡기는가. 

자립하라! 

이게 마루야마 겐지의 비판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약간의 반론을 달고 싶다.

그는 다른 에세이에서도 ‘자립’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하지만 그 역시 출판계라는 생태계 속에서 살았다. 

편집자, 독자, 시장이 있었기에 그의 자립이 가능했다.

자립은 외딴 섬에서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다.

믿을 만한 타자와의 연결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직장인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직장인이 노예 같은 삶을 사는 건 맞다. 

하지만 사회 구조상 모두가 

직장을 거부하고 살 수는 없다. 

마루야마 본인도 3년 정도 직장 생활을 했고, 

그 사이에 아쿠타가와 상을 받아 전업 작가로 도약했다.

게다가 같은 회사에서 

자신을 도와준 여직원과 결혼까지 했다.

결국 그의 “탈출”에는 운과 계기,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쉽게 빠져나올 수 있는 건 아니다.



3. 국가는 국민의 적이다


국가에 대해서 그는 단호하다. 

국가는 결코 국민의 것이었던 적이 없으며, 

오히려 개인을 사지로 내모는 적이라고 본다.


일본은 “대동아 공영”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국민을 거대한 전쟁에 동원했다. 

원폭을 두 방 맞고 패배할 때까지 

“결사항전, 1억 국민 전원 옥쇄”를 외쳤던 역사가 있다. 마루야마가 일본 정부를 불신하는 건 당연하다. 

현지 당사자의 불신은 우리 상상 이상일 것이다.



 4. 종교는 악이다


그는 종교에 대해서도 신랄하다. 

“신은 없다. 종교는 악이다.” 

인간이 신에 기대는 순간, 

자기 자신을 잃는다고 단언한다.


이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실이긴 하지만, 너무 몰아세우지는 말자. 

사람들이 종교 안에 있든 아니든, 

자신과 가족, 사회에 최소한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간다면 내버려두자. 

다만 종교 조직 내부의 광기와 

사회적 폐해는 엄단해야 한다. 

우리 사회만 해도 사이비 컬트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5. 연애, 성욕을 포장한 놀이일 뿐인가?


연애에 대해서도 그는 독하다. 

“패배자는 사랑을 하지 않고 연애 놀이만 할 뿐이다.”


마루야마 본인은 연애담 없이 곧장 결혼했다. 

그가 같은 회사의 여직원과 결혼한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돕는 협력자를 

어떻게 외면할 수 있었겠는가.


방향성 없이 감정에 휘둘려 

의식의 흐름대로 휩쓸린 삶은 

인생의 자산이 되기 어렵다. 


사랑이 성숙하려면 

결국 협력과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마루야마는 자기 방식으로 말해준 셈이다.




 6. 젊음은 평생 바칠 일을 찾아내야 한다


노년의 그는 청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젊음의 특권은 도전이다. 

평생 바칠 만한 일을 찾아 투신하라.”


시대불변으로 옳은 말이지만, 

오늘의 청년들은 상황이 다르다. 

머릿속이 온갖 추상 개념으로 가득해 

몸이 잘 움직이지 못하고, 

자기 손익과 생존에 급급해 도전을 주저한다.


사회와 타인의 온갖 평가와 관점과,

또래들끼리 공유하는 

온갖 엉터리 추상 개념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도전은 사치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청년들은 머릿속을 비울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온갖 쓸데없는 추상 개념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한, 

눈앞의 손익 계산에만 매달릴 뿐 

감히 도전하지 못한다. 


이건 청년만이 아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7.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책의 마지막엔 그의 대표적 메시지가 나온다.


“동물로 태어났지만, 인간으로 죽어라.”


태어나는 건 숙명이지만, 

죽음 앞에서는 

자기 정신을 고양시킨 인간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곱씹어볼 질문들


마루야마 겐지의 독설은 

다분히 남성적이고, 공격적이며, 

치부를 찌른다. 

그래서 어떤 독자는 시원하다 하고(나 같은 부류), 

다른 독자는 기겁하며 반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화된 껍질을 다 벗겨내고 본질로 승부한다.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된다.


- 부모와 자식 관계, 어디까지 독립해야 할까?


- 직장은 생존의 울타리인가, 

아니면 자유를 빼앗는 노예제인가?


- 자립은 개인의 힘만으로 가능한가, 

아니면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가?


-“동물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는다”는 말, 

나는 어떻게 살다 떠날 수 있을까?



마루야마 겐지가 이 책을 관통하며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남에게 기대지 말고, 네 인생을 살아라.”


 그러나 나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다.

사람은 서로 기댈 수 있는 타자가 곁에 있을 때, 

자립은 더 단단해진다. 

직장에서 탈출하려면 우연이든 선택이든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나 같은 방식으로 걸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책은 정답을 주기보다,

“그대는 어떻게 살래?” 하고 다그쳐 묻는다.


그대와 나, 우리 모두의 삶에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불편한 독설이 

결국은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PS.

다음 n회차 독서 기록은 

고 박민영 저자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고병권 저자의『철학자와 하녀』를 다룰 예정이다.

이 두 저자는 내가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사고에는 배울 점이 많다.

가끔 이 생각도 한다.

이 분이 애초의 전공인 화학 분야에 투신했으면,

뭔가는 크게 해냈을 거라고 본다.

근데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엉뚱한 선택을 한다.

아니 대체 왜?

어쨌든 덕분에, 

순수 문과 출신인 

고 박민영 저자와 다른 결로,

그의 집요한 사유의 디테일은

배울 점이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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