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저자의 아포리즘 발췌와 명심보감 그리고 양서 하나 발견한 이야기
2025-11-08 20:11:31
오랜만에 n회차 기록으로 돌아왔네요.
그동안 평어체였던 n회차 기록도
앞으로는 대화체를 기반으로 작성하고자 합니다.
대화체를 쓰니까 제가 좀 더 편하더군요.
진작 그러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김규항 저자의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4회차 기록 발췌와
명심보감의 킬러 문장 하나를
발췌하는 구성으로 진행하겠습니다.
1. 김규항 아포리즘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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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성장과 삶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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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
‘평범한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아지는가’에 달려 있다. (P. 17)
결핍은 흔히 생각하듯 지나치게 적은 상태뿐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상태에서도 나타난다. (P. 18)
삶의 격식은 언제나 삶의 내용보다 넘치지 않는 게 좋다. (P. 21)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확신할 때
우린 어지간히 고단한 삶속에도 행복하다. (P.23)
하지 않아야 할 일은
반드시 하지 않는 게 좋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때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역시 마음의 평화를 위해. (P. 24)
아이를 보며 종종 되새겨야 한다.
‘나는 이 사람을 잘 모른다.’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데서
부모의 비극이 시작된다. (P.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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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비판과 대안의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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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내!” 라고 쉽게 말하는 건,
남의 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P. 64)
나쁜 구조 덕에 안락을 얻는 사람은
그 구조와 분명히 마주서지 않는 한
나쁜 사람이 되게 되어 있다. (P. 67)
억압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억압은 존재한다.
불의한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더 근본적인 힘은
바로 인민의 비굴과 무기력이다. (P. 71)
현재에 대한 비판이 없다면 대안도 없다.
현재에 대한 비판은 대안의 첫걸음이다.
‘대안 없는 비판’이라는 비판은
실은 어느 누구도 대안의 첫걸음도
떼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살포되는
체제의 주문呪文이다. (P. 78)
대안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경험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마냥 밝고 진취적일 수 있겠는가.
대안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두렵고 불안하다.
그러나 더는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기에,
그 극단적 비현실성 너머로 발걸음을 떼는 것이다. (P. 101)
-> 예로, 저만 해도
리눅스 민트를 설치하기 전까지 엄청 고심했었어요.
2022년부터 고려만 했었지,
진짜 실행은 올해 10월 윈도우 10 종료가 되고 나서야 했거든요.
그렇게 느린 실행이었지만,
결국 '현제 문제점을 숙고하고 대안을 모색하려는
생각이 먼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즉, 비판과 대안의 모색이 실행에 선행하는 것이죠.
.. 첫 걸음을 떼는 것은 사실 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미있는 사소한 첫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은
모두 매우 창조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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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과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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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이 없는 분노는 거대한 카타르시스일 뿐이다. (P. 105)
-> 요즘 시대는
전세계가 극단적인 어리석음으로 빠지는 모습입니다.
온라인에서는 갈라치기하는 콘텐츠들이
주류의 인기마저 차지하는 모습을 봅니다.
물론 악한 행동을 하는 타자들은 있습니다.
그러나 성찰이란 사유가 빠지면,
악행의 근원 심리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쉽고 간단하게 자기 합리화 거짓말을 하면서
타자를 미워하고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하나 하나가 모여
역사는 전쟁과 몰락의 패턴을 보여줬습니다.
현 시점의 우리 인류는 그런 자멸의 패턴을
제 때에 잘 졸업할 수 있을까요.
매번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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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싸움은
절대선인 사람들과 절대악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자기성찰이 가능한 사람들과
자기성찰이 불가능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P. 108)
대화란 서로의 생각을 합쳐서 더 나은 생각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P. 117)
사람이 어떤 삶의 방식을 좇는 건
그 삶이 옳아서만은 아니다.
그런 삶이 멋지게 느껴질 때 비로소
그 삶을 좇게 된다. (P. 119)
친절이 사라진 세상을 ‘상업적 친절’이 채워가고 있다.
그 덕에 정당한 수준의 친절은 불친절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P. 122)
공동체적 이상을 좇기 위해 우리는 개인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개인이 되지 않고 도달할 수 있는 공동체는 없다.
이런저런 집단만이 있을 뿐. (P. 123)
한국은 개인이 없는 집단을 공동체라 믿는
보수 아저씨들과
개인이 되지 못한 채 공동체주의자가 되어버린
진보 아저씨들이 망쳐버린 사회다.
필사적으로 (진정한) 개인이 되어야 한다. (P.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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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예술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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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넘어설 힘은
문제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를 꿰뚫어보는 식견과
삶이란 무엇인가를 사유하는 철학에서 나온다.
사람이 철학을 갖는다는 게 뭘까.
인간과 세계에 대해,
삶의 본질에 대해 사유하길 멈추지 않으며
나름의 관점과 태도를 갖는 것 일 게다.
그리고 현실이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더라도
그 관점과 태도에 기대어
사람 꼴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일 게다. (P. 128)
예술이 제 본디 힘과 가치를 가지는 조건은
쓸모가 아니라 ‘쓸모와의 거리’다.
인문학의 힘은 인문학적 사유와 통찰로
최대한의 쓸모를 뽑아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이 제 정신적 고양을 쓸모에만 바치거나
그런 태도에 함락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예술이란 묘한 것이라서,
쓸모없음의 상태에서 그 본디 힘과 가치가 드러난다. (P. 141)
예술은 ‘혁명의 도구’가 될 수 없다.
예술이 바로 혁명이다. (P. 144)
2. 명심보감에서 킬러 문장 하나
다음은 읽을 때마다
저로서는 전율이 흐르는 문장 중 하나입니다.
강태공(여상)이 말하였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고
남을 천하게 여기지 말며,
자신을 크다 여겨
남을 작게 업신여기지 말며,
나의 용맹을 믿고
적을 가벼이 여기지 말지니라."
-> 오늘날 문장으로 바꾸면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가치를 과대평가하지 말고
타인 가치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자신의 능력과 권력에 도취되어
타인을 쉽게 여기지 말라.
여기에 세번째 메시지 디테일을 덧붙인다면,
패기만 높아서 경거망동하거나
도발을 일삼는 짓은
더더욱 피하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중요해서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강태공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자멸 테크트리 패턴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명심보감에 기록된 강태공의 말은
70년간 온갖 수모와 초인적인 인내 속에서
살아내고 때를 맞이하여 마침낸 해낸 자가 남긴
실전 지혜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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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포리즘을 읽는 사람의 자세
격언, 금언, 경구는 간결합니다.
총론적이기까지 하죠.
'너 자신을 알라.'
'인의예지신을 지켜라.'
이런 식으로 간단하고 쉽습니다.
그냥 가볍게 읽고 지나갈 정도로요.
어릴 때엔 특히 우습게 여기는 마음도 들죠.
'누가 그런 말 할 줄 몰라? 나도 할 수 있어.'
그런데, 그런 말을 하신 분들도
점점 실전 경험이 쌓여갈수록
'쉬운 그 말은 더 이상 쉬운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아포리즘은 매력이 있습니다.
짧지만, 그 의미의 깊이와 무게는 끝이 없습니다.
아포리즘은 쉬운 그 말 속에 담긴 진실을
체득하라고 넌지시 알려줍니다.
그러다 보니 수십 수백번을 되살펴 보게 되죠.
조상님들이 왜 소학, 심경, 사서를
평생 반복했는지 이해하게 되는 거죠.
결국 아포리즘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삶에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하고,
그 성찰이 체득이나 실현이라는
도약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힘이 됩니다.
PS.
요즘 새로 읽는 책으로 김민철 저자의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를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습니다.
2023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이기도 한데,
분량이 적지만 내용이 매우 훌륭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이
정말 엄청난 것을 해냈고
지금도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재발견할 수 있었어요.
이를 다음 주에 다뤄볼까 합니다.
- 2025년 11월 8일, 엠마네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