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피프티피플-권혜정

by 달하루2025-11-29 21:41:03
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개정판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폴댄스를 추는 간호사가 등장하는 단편이다. 폴댄스를 소재로 편견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혜정도 처음 정형외과 교수로부터 폴댄스를 권유받았을 때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폴댄스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댄서, 선정적인 시선, 운동이라기보다 퍼포먼스처럼 소비되는 이미지들. 그런 혜정이었지만, 마침 운동이 필요한 시기였고, 일하는 병원 앞에 폴댄스 학원이 생겼고, 비용을 아끼려고 혜정은 폴댄스 강습을 장기 등록하게 된다. 어릴 때 철봉을 꽤 좋아했으므로, 끈기 있는 성격이었으므로 결국 혜정은 폴댄스에 대한 편견을 잠시 내려놓고 그 매력과 재미를 몸으로 경험해 간다.


그 세계를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과 그 세계를 이미지로 소비하는 사람 사이에는 쉽게 메워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 이런 간극이 폴댄스에만 있는 건 아니다. 게임, 당구, 골프, 아이돌 같은 취미부터 직업, 재산, 외모, 패션, 거주까지. 우리는 수많은 대상에 너무 빨리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를 사실인 것처럼 믿어 버린다.


20대 마지막 날 폴댄스를 추는 혜정의 영상이 퍼지면서 혜정은 편견과 오해의 대상이 된다. 그러다 영상 속 혜정을 알아본 인턴에게서 '익스트림 스포츠'라는 표현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스스로가 가졌던 편견의 틀에서 빠져 나온다. 같은 대상에 전혀 다른 언어를 붙일 때, 밧줄 삼아 그 말을 붙잡고 편견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도 하다. 다른 이들이 나에게 씌운 이미지가, 누군가의 언어로 흔들릴 수 있다는 거. 그런 누군가를 매번 운명처럼 만날 수 없으니 내가 나에게 밧줄이 될 만한 언어를 발견하고 붙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인턴과 혜정이 새벽의 벤치에서 팔씨름 하는 장면이 유쾌하고, '인턴이 일부러 져줬는지 몰라도 혜정이 이겼다'는 마무리가 사랑스럽다.


혜정의 스토리를 따라 읽으며 내가 가졌던 편견이 떠올랐다. 2년 전, 나는 처음으로 수영을 배웠다. 오래전부터 주변에서 수영을 해 보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몸이 찬 편이고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수영은 절대 맞지 않는 운동일거라 생각했다. 수영은 운동 잘하는 사람, 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운동이라고 이미 결론 내버린지 오래였다. 수영에 대한 내 생각은 거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다 직업 특성 때문에 폐활량을 좀 더 기를 필요가 생기고,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도전한 달리기에서 무릎이 버티질 못했다. 결국 선택한 것이 수영이었다. 망설임과 걱정이 뒤섞인 채로 처음 수영장에 갔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시간이 흐른 지금, 수영을 더 길게 하기 위해,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할 정도로 수영이 주는 매력에 빠져 있다. 물이 차가울까 봐, 나와 안 맞을까 봐, 그 세계를 애초에 나와 상관없는 것으로 밀어두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내가 편견을 건너 그 세계가 주는 재미와 매력을 느낀 경험은, 수영만이 아니다.

폴댄스든, 수영이든, 어떤 취미 활동이든 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세계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세계보다 더 복잡한 것이 바로 사람인 것 같다.

몇 가지 정보로 사람을 이해했다고 착각하지 않기. 짧은 만남, 몇 마디 대화, 겉으로 보이는 취향과 모습으로 사람을 규정하지 않기. 특히 학생들에게.


피프티피플 권혜정 이야기를 읽으며, 무엇보다 사람에 대해 쉽게 편견을 갖지 않도록, 더 천천히, 오래 알아가려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해 어떤 이미지와 의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싶다. 활동이든 사람이든, 세계이든, 내가 알지 못하는 더 풍부하고 다양한 경험과 과정이 항상 숨어 있을 테니.


자칫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편견에 대한 주제를 한 인물의 구체적인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작품이다.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내안에 숨어든 작은 편견들을 하나씩 물속에 흘려 보내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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