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한 철학 번역
2025-08-26 22:45:51![[큰글자책] 괘씸한 철학 번역 - 순수이성비판 길잡이](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59/67/cover150/k842039717_1.jpg)
<괘씸한 철학 번역> 코디정
📚 '인간은 언어 활동을 한다.
언어 활동은 소통을 위해, 지식을 전하기 위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벌이는 활동이다.
그래서 대충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철학은 언어 활동이다.
그런데 한국어로 된 철학은 의미불명에 빠져 있다
왜 그런가?
철학이 어려운 문제는, 한국어가 되지 못한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글로 음역된 일본식 한자어로 철학을 공부하니 머릿속으로 지식이 들어올 리 없다.
그것도 평범한 일본어가 가닌 백여 년 전에 인공적으로 발명된 낡은 단어다.
우리는 관례적으로 공부하고 암기하고 있다.
낡은 단어는 청산해야 한다.
평범한 한국인이 이해할 수 있는 보통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저자는 괘씸하게 철학을 번역해온 사람들을 부드러운 말투와 근거 있는 내용으로 묵직하게 비판한다. 그러면서 잘못된 번역으로 혼란을 주는 단어를 한국인이 평범하게 사용하는 보통의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을 읽다 보면 화가 난다. 제목처럼 진짜 괘씸한 생각이 든다. '무슨 번역을 이따위로 해놨지.'라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든다.
규준, 질료, 우유성, 격률이라는 단어를 보면 무슨 뜻인지 금방 떠오르는가.
나는 모르겠다.
저 단어를 보통의 우리말로 바꾸면 규범, 재료, 비본질, 좌우명이다.
저건 극히 일부다. 더 어이없는 단어도 많다.
그냥 단어를 창조한 수준이다. 뭐 그렇다 치자. 옛 시대에는 받아들이기 급급했을 테니.
그래도 서양 철학이 들어온 지 백여 년 정도 되었으면 이제는 한국인들이 자주 사용하고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거의 없다. 나름 노력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번역가도 있으나 거기서 거기다.
이런 문제는 비단 철학뿐만이 아니다.
법률 용어에도 잘못된 단어 사용이 많다.
'선의', '악의'
법에서는 모르고 한 일을 '선의', 알고 한 일을 '악의'라고 한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의미와는 다르다.
독일어를 직역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데 문제는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 말고도 여러 단어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과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 일반 사람들은 판결문을 봐도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체도 그렇다.
주로 부정의 부정 표현을 자주 쓴다.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
'~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냥 맞는 건 맞다고 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꼬아서 작성한다.
저런 표현은 일제 판결문 영향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일상에서 저렇게 말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논리적 균형 유지와 상급심 법원 판단을 위한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사용한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그냥 책임 회피성 표현이다.
판결은 명확한 증거를 바탕으로 법 규정을 적용해서 결론을 내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 부정 표현은 올바르지 않다.
그래도 요즘은 쉬운 판결문 쓰기 운동으로 많이 변해서 그나마 읽을만하다. 하지만 아직 곳곳에는 저런 문체가 많이 남아있다.
갑자기 말이 엉뚱한 곳으로 샜다.
여하튼 나는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던 불만과 고민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작가님의 용기에 감탄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을 머리로는 알아도 이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세상에 내놓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천적으로 삐딱하신 분인가'
'잘못된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분인가'
기존 번역가들 입장에서 이렇게 괘씸한? 책을 과감하게 내신 것을 보면 멋진 분은 확실하다.
아.... 그런데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바꾸어도 나에게 철학은 여전히 어려웠다. 단어를 바꾸면 무슨 소설책 읽듯이 쭉쭉 읽힐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다.
책의 말미에 있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머리말 전문을 읽다가 멘붕이 왔다. 진도가 안 나가서 살짝 건너뛰었다.🫠🫠🫠🫠
철학은 깊은 사유가 필요한 학문이다. 나 같은 단순 종자들은 파기 힘든 분야다. 어설프게 덤벼들면 안 된다. 술도 안 마시고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해도 이해할까 말까다.
그리고 우리말로 번역을 새로 해야 한다고 하니 순우리말로만 번역해야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
저자는 단어의 기원이 무엇이든, 한자어에서 왔든, 영어에서 왔든, 지금 한국인이 평범하게 사용하는 언어가 한국어라고 한다.
아, 그러고 보니 갑자기 떠오른다.
최근에 어른의 어휘력에 관한 책을 읽었었다. 어른으로서 어휘력을 좀 길러볼까 하는 생각에 그 책을 펼쳤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순우리말이 너무 많은 것이다. 어렴풋이 들어봤던 단어도 있고 아예 처음 듣는 단어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글을 읽어도 이해가 바로 되지 않았고 문맥상 그 단어 의미를 유추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그리고 막상 그 단어 뜻을 보고 헛웃음이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부터 써왔던 순우리말이라고 하더라도 자주 쓰지 않고 모르는 단어라면 지금 현시점에서 한국어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건방진 생각을 잠깐 했었다.
'에잇, 모르겠다. 나 그냥 어른 안 할래'라는 투정을 부리며 저런 단어는 우리말을 연구하는 분들에게 미루기로 하고 책을 덮었던 적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소통과 지식 전달에 방해가 되는 단어는 그만 사용해야 한다.'
'통용되지 않는 언어라면 우리말이라고 하더라도 죽은 단어이지 않은가.'
'기억은 하되, 강요는 하지 말아야 한다.'
'모른다고 어휘력이 부족한 것처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과감하게 책을 덮은 나를 위로하는 말 같았다.
기존의 철학 전문가 집단의 상당한 반발이 있었을 텐데 작가님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번역한 철학 책이 있다면 꼭 읽어보겠습니다.
그때는 제목을 이렇게 지었으면 합니다.
<친절한 철학 번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