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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詩 읽기] 식물은 언제 죽기로 결심할까?
2025-08-11 0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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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식물을 잘 죽인다. 아니, 내가 직접 물리력을 행사해 죽이는 게 아닌데 죽인다고 해도 될까? 식물을 잘 돌보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저희들이 저절로 죽는 것을 어떻게 하냐고 변명하고 싶지만 내게 와서 그들이 죽었으니 내 탓임은 분명하다. 현재 고사 직전인 고사리 한 가닥을 돌보고 있고, 다 죽고 한 가닥 남은 ‘수박페페’를 수경재배 방식으로 살려내고 있다. 어째서 다들 한 가닥이 되는 걸까?
‘애니시다’가 무엇일까, 혹은 누구일까 생각한 자가 있다면 이 시의 첫 줄에 발이 걸려 고개를 갸웃했을지도 모르겠다. ‘애니시다’는 사람일까, 게임 캐릭터일까, 반려동물일까, 반려식물일까 궁금할 수 있다. 무엇으로 상정해도 이 시는 아름답고 말이 된다. 그가 살다가 죽었다는 것만이 자명하다. “심지어 무성하게 살아” 화자에게 “아름다워”라는 말을 종종 듣다 죽은 존재!
알쏭달쏭한 기분으로 시의 행과 행 사이를 누비며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을 지나 아름다움을 넘어”가는 골목에 서 있어도 충분히 좋은 일! 그러나 알아보기로 하자. ‘애니시다’는 ‘양골담초’라 불리며 콩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으로 ‘금작화’라고도 불린다 한다. 영원히 아름다울 것처럼 보이던 존재가 외출했다 들어오니 죽어 있다면, 그게 아껴 키우던 ‘애니시다’라면 사건이다. 슬픔이다. 이상한 일이다. 읽는 사람의 상상을 활발히 작동하게 하는 이 시는 말이 되는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식물은 언제 죽기로 결심하는 걸까? 모를 일이다.
박연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