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2025-11-16 19:15:22
“여성의 목소리를 포함하는 것은 가부장적 질서의 토대, 즉 권위와 권력을 쥔 남성들의 목소리가 곧 도덕과 법의 목소리고, 착한 여성은 이타적이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침묵해야 한다는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를 폭로하고 이에 도전한다. (중략) 가부장제의 목소리와 인간의 목소리인 “다른 목소리”는 다르다. 가부장제 사회나 문화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저항의 목소리다.“(11-13면)
이 책을 어떻게 읽을까를 고민하다가 위 내용을 지표로 삼았다. 1970년대 초에 쓰기 시작했고, 1982년 미국에서 출간되어 ‘침묵의 둑이 무너졌다’라는 표현은 당대 사회나 독자 반응을 집약한 듯했다. 머리에 스친 것은 2016년 한국에서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되고, 삼 년 후 2019년 영화로 상영되었을 때 사회 전반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지영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주위 사람들로 인해 거부당하고, 점점 목소리를 잃어가며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말을 하게 되는 설정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범주 속에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여성 인권이 강화되었다. 모성이 숭고함에서 노동으로 전락했다는 식의 반응도 있었다. 남성 목소리에서는 “굳이 저렇게까지”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어떤 것까지 포함한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저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보고, 이를 바탕으로 세 개의 연구를 진행했다. 책 전반에 걸쳐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는데, 이는 사용하는 언어와 인간관계가 그들의 세계관을 드러낸다고 가정했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터뷰 토대는 자아와 도덕 개념, 도덕적 갈등과 선택의 경험에 관한 것이다. 인터뷰에서 ‘하인츠는 약을 훔쳐야 할까?’라는 도덕적 딜레마를 제시한다. 이 질문을 시작으로 “나라면 어떻게 답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읽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딜레마에 답하는 방식이 달랐고, 어떤 말을 하던 그들의 답변은 놀라웠다. 단 하나의 질문에도 답하지 못한 나는 그들과 달랐다. 상황에 따른 현실적 거리가 있어, 나는 방관자적인 태도로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읽는 동안 흥미로우면서 고민했던 내용은 에릭슨이 비판한 간디 태도를 빗대어 설명한 부분이었다. 간디는 공적인 영역에서는 비폭력과 진실을 실천했지만, 사적인 영역에서는 가족에게 냉정하고 돌봄 대신 폭력을 행사했다. 이에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포샤의 재판을 문학적 사례로 끌어왔다. 남장으로 위장한 포샤는 법정에서 자비와 정의를 실현하는 재판관으로 활약했지만, 타자인 샤일록에게는 돌봄을 배제하고 법의 형식만을 적용했다. 이들은 윤리가 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작동하며, 삶과 분리될 때 발생하는 윤리의 왜곡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포샤가 보인 태도는 공적인 영역에서 정의로운 척 위선적인 판결을 하여 타자를 돌봄에서 배제했고, 사적인 영역에서는 반지를 내어준 것을 용서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도덕적 성숙을 말하다> 마지막 부분에서 포샤의 예화가 적절한 인용이었는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낼 수 있었다. 포샤를 통해 윤리적 선택이 관계에 따라 ‘진실이 어떻게 다른 언어와 사고 방식으로 표현되는지’(405면)를 보여주려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여자란 무엇인가”를 질문했다면, 캐럴 길리건은 “여성의 목소리를 관계와 맥락 속에서 어떻게 다양하게 들을 수 있을까”를 질문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가 어떻게 아는지, 어떻게 듣는지, 어떻게 보는지, 어떻게 말하는 지와 같은 것들이다”(23면). 이를 통해 여성의 삶을 위치시키고 그들의 목소리가 발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목소리를 수용한다는 것은 보편적 기준에서 벗어나 관계와 맥락 속에서 유동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등의 전제인 정의의 윤리와 비폭력 사상이 전제인 돌봄의 윤리가 성별 간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고 성인기의 일과 가족관계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은, 불평등과 폭력이 난무하는 현시점에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서로의 다른 목소리를 듣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논쟁을 불러일으킬지라도 정의와 돌봄의 윤리를 바탕으로 수용한다면, 그것으로 도덕적 성숙으로 나아가는 사회가 될 것이다.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