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내가 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나를 견뎌낼 수 있기에 -로베르트 발저, <산책자>
2025-08-28 06:12:44
요즘 이 책을 호평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밀리로 읽어본 <산책자>
카프카와 헤세가 그의 팬이었다는 게 왜 그랬는지 단박에 이해되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카프카는 발저 작품의 몽환성과 자기혐오를,헤세는 그 누구도 어떤 제도로도 가둘 수 없었던 그의 자유로움에 반한 것이 아니었을까
발저는 스위스 태생으로 제대로 된 문학 교육을 받지 못한채 습작을 시작했고 헤세처럼 문단에서 인정받겠다는 큰 꿈을 안고 베를린으로 가서 소설을 발표한다.헤세는 그의 작품을 추천해 주었고 덕분에 발저는 잠시 베를린 문단의 중심에 들어가게 되지만 거친 언행과 기행으로 인해 결국 주류 문단에서 배척되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팔리지 않는 작품들을 창작하며 월셋방을 전전하고 끝없는 산책을 하며 간혹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기도 했다. <산책자>는 그의 치열한 삶의 기록이다.
이 책은 <산책자>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달리 자연 안의 소박한 삶을 노래한 책과는 거리가 멀다.그저 이 세계의 잉여,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더욱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행위가 산책일 따름이다
따라서 그의 산책은 현실 안의 자연과 사회를 거니는 것이 아니라 산책자 자신의 내면을 통해 이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는 행위가 된다.비유와 암시, 상징,무의식과 욕망의 산책들은 결국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무명작가 발저의 작은 존재로 귀결되어 보는 사람이 다 안타까워 질 정도의 자기비하로 이어진다
그러나 무쓸모한 자신은 역으로 쓸모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주체가 된다. 산책자는 ‘쓸모’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논리적 모순을 간파하고 사회 혹은 자본이 원하는 쓸모가 반드시 한 존재가 살아가기 위한 진짜 ‘쓸모’와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증명한다
어떻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뚜벅뚜벅 걸어서. 그것이 자연의 길이든 혹은 정신병원의 복도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