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기원
2025-10-07 11:12:25
The Origin of Others
이 책의 첫 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 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집단은 권력이 있든 없든, 자기 집단의 신념을 강화하기 위해 타자를 만들어 세움으로써 타 집단을 통렬히 비난해왔다.”
짧지만 이 문장이야말로 『타인의 기원』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느꼈다. 물론 그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흔히 타자화라 하면, ‘우리’ 혹은 ‘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낯선 존재를 배척하거나 낮춰 보는 행위로 이해된다. 하지만 모리슨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이해’와 ‘공감’이라는 선의조차 타자화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상대에게 다가가면서도,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이미지로 상대를 낭만화하거나 환상화한다면 그것 역시 타자화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이다.
모리슨은 자신이 만난 한 어부 여인(fisherwoman)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통해 이런 문제를 풀어낸다. 언뜻 따뜻한 공감의 순간처럼 보였던 일이, 사실은 자신의 시선으로만 재단된 이미지였음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다. 그는 언어와 이미지가 사회적 담론뿐 아니라 개인의 사고방식 속에서도 얼마나 자연스럽게 ‘타자화’를 강화하는지를 경고한다. 동시에, 그만큼 언어와 이미지가 타자화를 극복할 힘 또한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모리슨의 의도적인 ‘인종 지우기’는 모든 쪽에서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실험이지만, 나는 그 시도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이상을 향한 진지한 모색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종, 경계, 차이를 지워버린 인간성의 가능성을 문학 속에서 실험해본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짧았지만 다루고 있는 사유의 깊이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원서로 읽었기 때문에 더욱 그랫을 것이다. 이해하기 위해 찾아보고, 곱씹고,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흥미로운 독서였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의 소설 한 편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